<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89화>
미니멀하게 캠핑을 왔을 뿐, 준비한 것들마저 미니멀한 건 아니었다.
해가 점점 저물어 가자 방금까지 고기를 태우던 숯불 그릴을 치운 그들은 신화호텔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펼치며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타닥! 타다닥!
텐트 옆에서 타들어 가는 작은 모닥불.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그런지 그 작은 온기가 크게 느껴진다.
그때였다.
“저 결심했어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장미에게 시선이 모인다.
오택수보다 예쁜 부인의 외모를 더 닮은 단발머리의 장미. 입가에 묻은 스테이크 소스가 인상적이다.
“저 팀장님한테 시집 갈래요! 사랑해요.”
“……엄마, 여기 가니쉬도 먹어 봐. 이거 괜찮네.”
“넌 고기 먹고, 이 엄마는 풀떼기 먹으라고? 너 내 아들 맞니?”
“사랑해요, 팀장님! 사랑한다니까…… 읍?!”
“호호. 미안해요, 팀장님?”
“읍! 으으읍! 푸하! 사랑…… 으으읍!”
“어머,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꺾어 ……해.”
“끅?”
무슨 귓속말을 들은 건지 하얗게 질리는 장미의 모습을 종혁은 슬그머니 외면해 주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형수님께서 와일드하시네.’
형사 와이프인데 어련할까.
남편이 잡아넣은 범죄자들의 협박 전화에 성격이 드세지든지, 아니면 견디지 못해 이혼을 하든지.
형사 와이프에겐 이 두 가지 미래밖에 없었다.
“관심 없습니다.”
“왜? 우리 장미가 어때서!”
“관심 가져 달라고요?”
“싸우자, 이 자식아! 우리 장미는 절대 못 준다!”
“뭐래는 거야, 이 양반이. 우리 캐릭터는 지킵시다, 좀.”
고개를 저은 종혁은 순희에게 작게 썬 랍스터를 물려 주었다.
부스럭!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종혁은 잠시 굳어 버렸다.
얼마나 씻지 못한 건지 꾀죄죄한 몰골을 한 예닐곱쯤으로 보이는 소녀와 소년.
남매인 듯 손을 꼭 잡은 둘은 종혁들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하얗게 질리며 얼른 몸을 돌렸다.
이 순간 종혁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하나였다.
“……잡아!”
오택수와 최재수도 곧바로 땅을 박찼다.
“히끅! 히끅!”
“어구구. 누가 그랬어? 저 아저씨들이 그랬어?”
달려드는 형사 셋에 결국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려 버린 아이들.
양팔을 든 채 벌을 서는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는 억울했다.
무슨 이유로 도시와 떨어져 있는 이런 산을 방황하고 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 전에 보호해 주는 것이 경찰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혼이 나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눈초리에 그들은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고, 순철만이 그들의 등을 두드렸다.
“안 그래도 못생긴 분들이 너무 험했습네다.”
“씨부럴?”
“씁! 아빠, 바른 말! 애들이 듣잖아!”
“…….”
그들은 구시렁거리며 멀리 떨어졌고, 두 아이는 여성들의 보살핌에 진정을 할 수 있었다.
찰칵! 치이익!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온 그들은 그제야 담배를 물었다.
“일단 버려진 건 아니었어요.”
“버려졌어도 하루는 안 됐을 거야.”
손에 풀물이 들지 않았고, 수풀에 쓸린 자국도 없다.
“폭행을 당한 징후도 없고.”
두 아이는 놀랐을 뿐이지 사람의 손을 피하진 않았다.
“흠. 저기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놀러 온 걸까요?”
“그럴 확률은 적지.”
차로는 5분 거리이지만, 저런 어린아이들의 걸음으론 몇 십 분을 걸어야만 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산까지 타고 올랐다?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보. 애들 입 열었어.”
“아, 형수님.”
다급히 담배를 끄는 종혁과 최재수의 모습에 싱긋 웃은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 산 밑에 지어진 고아원에 사는 아이들이라는데?”
“이 산 밑에요? ……내 땅에?”
종혁은 어떻게 된 거냐는 시선들에 눈을 껌뻑였다.
* * *
“욤뇸뇸.”
‘짜식들. 잘 먹네.’
언제 겁먹고 울었냐는 듯 과자를 갉아먹는 아이들. 백미러로 눈이 마주치자 히죽 웃는 모습이 참 귀엽다.
절로 피어나는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도착한 고아원은 정말로 산 밑에 있었다.
아까 왜 이 길을 발견하지 못했나 의아할 정도로 도로와 연결된 흙길을 쭉 따라 들어가니 나타난 작은 집.
소위 조립식 건물이라는 샌드위치 판넬로 지어진 스무 평 정도 되는 집이었다.
나름 오래 산 것인지 감자 줄기가 자라난 텃밭도 있고, 처마 밑 늘어진 빨랫줄에선 작은 사이즈의 옷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공터와 맞닿은 산자락 수풀을 뒤지거나 공터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빨랫줄에 빨래를 널던 11살 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가 종혁의 차를 발견하고 옆에 있는 중년 여성을 콕콕 찌른다.
의아해하며 다가온 여성은 이내 곧 차에서 내리는 두 아이를 발견하곤 기겁하며 다가온다.
“예지야! 호연아!”
“원장님!”
낯선 승합차에서 원생들이 내릴 줄 몰랐던 그녀는 기절초풍하듯 놀랐다가 다급히 아이들을 등 뒤에 숨기며 경계심이 가득 서린 눈으로 종혁들을 살폈다.
‘고아원 원장이 사람을 경계한다라…….’
종혁은 일단 푸근히 웃었다.
“여기 산의 계곡에 놀러 온 사람인데, 이 아이들을 발견해서요. 여기 아이들 맞죠?”
“아! 죄,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예지! 박호연! 내가 산 깊숙이는 가지 말랬지! 호랑이가 어흥 하고 잡아간다고!”
“죄, 죄송해여.”
“자, 잘못했어여.”
옷을 꽉 잡는 손길에 아차 하며 정신을 차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어디 아이들의 잘못이겠는가.
한참 호기심이 많을 나이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그녀 자신의 잘못이었다.
‘도시에서 쫓겨나지만 않았어도 아이들이 이런 산을 돌아다닐 일은 없었을 텐데…….’
그녀는 애써 웃으며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부턴 그러면 안 된다?”
“네!”
“그래도 잘못했으니까 들어가서 무릎 꿇고 손 들고 있어. 뭘 그렇게 놀라? 어서.”
용서받는 분위기라 안심했다가 놀란 아이들은 이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집으로 향했고, 그녀는 그제야 종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아이들을 데려다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이들이 귀찮게 하진 않던가요?”
종혁은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혼날 짓을 했으면 혼이 나야죠.”
“그렇게 말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참, 내 정신 좀 봐.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 드시고 가세요. 이렇게 외진 곳이지만 고마운 분들에게 드릴 차는 있답니다.”
푸근히 웃는 그녀의 말엔 거부할 수 없는 따스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묻고 싶은 게 많은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신세는요. 아, 애들아. 손님이 오시면 이 엄마가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지?”
“아, 안녕하세요! 김수철입니다!”
“안녕하세요! 최지희입니다!”
주춤거리면서도 배꼽인사를 하는 여섯 명의 아이들. 이른 아침 재잘재잘 울어 대는 참새들의 합창 같아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호호. 안으로 들어오세요.”
집 안은 따로 공간이 나눠지지 않고 뻥 뚫려 있었고, 바닥엔 장남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여느 아이 있는 가정집과 흡사한 풍경이다.
그들은 안쪽에 커튼으로 따로 분리시킨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나름 테이블과 의자를 갖춘 협소한 공간.
한구석에 곱게 개어진 이불을 보니 아무래도 이곳이 그녀가 자는 곳이자, 찾아온 손님을 응대하는 곳 같았다.
테이블에 놓인 의자의 수를 헤아린 오택수의 부인은 눈을 곱게 접으며 입을 열었다.
“원장님, 전 아이들과 놀아도 될까요?”
“네? 아, 아니…….”
“제 딸이 중학생인데 이제 다 컸다고 잘 놀아 주지 않아서요. 어떻게 안 될까요?”
“애, 애들이 많이 활발해서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다면…….”
“감사합니다! 히힛. 이것저것 다 해 봐야지!”
그녀가 커튼을 힘차게 걷으며 나가자 종혁은 오택수를 봤다.
“올.”
“봤냐? 내 마누라가 이 정도야. 부러우면 너도 결혼…….”
“전 커피 있으면 그걸로 부탁드립니다, 원장님.”
“저, 저도요!”
“이런 씨. 저도 같은 걸로 부탁드립니다.”
“……호호. 네.”
‘좋은 분들이시구나.’
예지와 호연을 데려다줬을 때부터 느꼈지만, 정말 좋은 분들 같다.
그녀는 얼른 커피 세 잔을 타 왔다.
“전 아까 마셔서…….”
부끄러워하는 그녀에 종혁은 신경 쓰지 않는다며 손을 저었다.
“그럼요. 커피는 하루에 한 잔만 마시는 게 좋죠. 그나저나 아이들에게 이곳이 고아원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도시에 살아도 부족함이 많을 텐데, 왜 이런 산 밑에 집을 짓고 사는 걸까. 여기에 산지는 얼마나 됐을까.
이런 많은 궁금증이 담긴 종혁의 표정에 중년 여성, 원장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네. 여러 사정이 있었죠. 그, 그래도 너무 걱정 마세요! 여기가 이렇게 허허벌판이어도 도시와 다르게 공기도 맑고, 물도 깨끗해서 아이들이 참 좋아하거든요! 정말이랍니다!”
종혁들은 애써 변명하는 그녀의 모습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펴고자 애써야 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원장은 당황하던 걸 멈추고 푸근히 웃었다.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원래 있던 곳에서 쫓겨나며 전전긍긍하던 중에 시청에서 이렇게 집도 지어 주고 길도 내주었다.
“어른인 제겐 불편함이 있더라도 방금 보셨다시피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놀 수 있다면 전 충분히 만족한답니다.”
작은 발전기로 전기도 해결하고, 지하수도 나오니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예. 정말 진심으로 웃더군요.”
“후훗. 제 자랑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들이랍니다.”
다 만족한다니 더 할 말은 없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여긴 어린아이들만 보호하는 곳인가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생긴 궁금증이다.
온통 작은 사이즈의 옷과 속옷이 걸려 있던 빨랫줄.
청소년기 아이들의 옷이나 속옷은 보이지 않았고, 집 안에도 교복이나 책상, 책들이 보이질 않았다. 온통 동화책이나 아이들용 장난감만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순간 원장의 눈에 아픔이 서렸다가 밝아졌다.
“혹시 행복의 쉼터라는 곳을 아시나요?”
오택수와 최재수의 시선이 종혁에게로 향한다.
종혁은 슬그머니 외면하며 입을 열었다.
“예. 알죠. 가출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곳이잖습니까.”
“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되는 원생들은 다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답니다. 가출한 아이들이 아님에도 선뜻 맡아 주시니 정말 고마운 분들이죠.”
“아, 그래서…….”
원래 있던 곳에서 쫓겨나며 원생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면 어쩌나 걱정한 그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행복의 쉼터 재단은 고아원에도 재정적으로 지원을 하지 않던가요?”
종혁은 이 산 밑에 둥지를 튼 것을 꼬집고 있었다. 행복의 쉼터 재단의 지원이 있었더라면 도시 내에서 살 수 있었을 테니까.
“그, 그것까진 너무 죄송해서…….”
“어이구. 겨울이 되면 힘들 텐데. 아이들 통학 문제도 있을 테고요.”
흙길이 차들이 생생 달리는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그 말에 원장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죠. 이런 곳에서 살게 된 이상 감내해야 될 부분이죠.”
이렇게 비를 피할 지붕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는 이마를 짚었다. 미련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다.
“팀장님.”
“어, 그래. 나도 더는 참지 못하겠다.”
“저도 보탤게요.”
“나도.”
“그렇다네요. 원장님. 계좌번호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네? 아, 아뇨! 후원은…….”
“제가 드리고 싶어서 그럽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후원을 하려면서도 고개까지 숙이는 종혁의 모습에 당황하던 그녀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계좌를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
“아, 잠시만요.”
핸드폰을 든 종혁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지점장님. 저 최종혁입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계좌로 1억, 아니 2억만 이체해 주세요. 계좌번호가…….”
“힉?!”
원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많은 액수라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 돈이 결국 아이들에게 입힐 옷이고, 먹일 밥이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기름값이라고 생각하니 차마 거부할 수가 없다.
“예지와 호연이를 찾아 주셨는데 이런 거액의 후원까지…….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지…… 흑!”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서조차도 언제 퇴거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거액은 구원의 빛이나 다름없었다.
“쫓겨난다고요?”
“저도 최근에야 알게 됐는데, 여기 땅과 산에 주인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얼마 전 시청 관계자가 와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땅 주인이 있는지도 모르고 고아원을 설립해 주었단 말입니까?”
“행정 착오였다고…….”
솔직히 그녀라고 이런 산 밑이 좋을까.
그러나 원래 있던 곳에서 쫓겨나 오갈 데가 없는 상황에서 시청이 어렵사리 지어 준 곳이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든 살아 보기로 했는데,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땅 주인이 있다고 한다.
땅 주인이 자신들에 대해 알게 되면 무조건 내쫓을 터. 땅 주인이 나가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쯤 체념한 원장의 말에 종혁은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다 멈췄다.
‘씨부럴. 이 나라라면 가능할 것 같아서 놀랍지도 않다.’
누가 관리를 하긴커녕 잡풀만 무성해 무주지로 보였을 테니 제대로 확인조차 안 하고 건물부터 세웠을 것이다. 뻔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미안하다, 하지만 우린 할 만큼 다 했다고 말하겠지. 씨발 새끼들.’
어디 한두 번 보는 일이던가.
“달리 가실 곳은 있으십니까?”
원장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 주신 후원금도 있고, 정 안 되면 다른 고아원에서 고맙게도 아이들을 맡아 주기로 했으니 후원자님들께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리고 며칠 내로 입양을 희망하는 부부도 오기로 했다.
“고마운 분들이군요.”
“네. 정말 고마운 분들이죠.”
종혁은 다시 푸근히 웃는 그녀의 모습에 주먹을 꽉 쥐었다.
“알겠습니다.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아니요! 후원자님들께서 귀한 걸음을 해 주신 거죠!”
그녀는 일어서는 종혁들을 허둥지둥 따라나섰다.
“애들아! 손님들 가신대! 인사해야지!”
“안녕히 가세요!”
“히잉.”
그 짦은 시간 오택수의 부인에게 정이 든 건지 아쉬워하는 아이들.
툭툭 바짓단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고개를 내린 종혁은 손가락을 빨며 아쉬워하는 예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저씨, 가?”
“응. 저 위에 계시는 분들이 걱정하실 거거든. 대신 금방 또 온다고 약속할게.”
“……약속?”
“그래, 약속. 이렇게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 꾹. 복사 쫙.”
종혁은 꺄르르 웃는 예지의 손에 명함 한 장을 쥐여 주었다.
“무슨 일 있으면 이 번호로 전화해. 그럼 아저씨가 달려갈게. 알았지?”
“응!”
예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어선 종혁은 원장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원장님, 이곳이 정말 좋으십니까?”
“……네. 아이들이 이렇게 걱정 없이 뛰어놀 수 있으니까요.”
웃는 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도시보다는 교통편이 부족하고 위험해도 차라리 이곳이 나았다.
아이들이 어깨 활짝 펴고 마음껏 웃을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땅 문제는 걱정 마십시오. 제가 개인적으로 땅 주인에 대해 아는데, 원장님 같은 분이나 이런 천사들이 산다고 하면 양팔 벌려 환영할 분이니까요.”
“네?”
“그럼. 가시죠, 형수님!”
“네-!”
“잘 가요. 빠빠이!”
원장은 차에 오르는 종혁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이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이렇게 고맙고, 또 고마운 분들이 있을까.
그리고 이런 분들과 만나게 해 준 하늘과 예지, 호연에게 감사했다.
“엄마, 울어?”
“아, 아니야. 울기는.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래. 그런데 그건 뭐니?”
“방금 아저씨가 줬어.”
“어머. 명함이네?”
그제야 은인들에게 연락처 하나 받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더욱 죄송해하며 명함을 받아 들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경찰이었다니.”
그녀는 차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래, 돌려 드리자!”
경찰의 월급이 얼마나 되겠는가. 무리해서 준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필요하다지만, 돌려 드리는 것이 옳았다.
그래도 그녀는 다시 한번 종혁의 차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인사밖에 할 수 없는 게 참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