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87화>
늦은 오후, 두 번의 강의가 끝나고 교육생들이 모두 떠난 강의실.
교재 정리를 명분으로 홀로 남은 종혁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창가에 섰다.
방금 전 나타난 학교장이 노인과 함께 걸으며 무언가를 쫑알거리고 있다.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네, 나탈리아.”
-검증 끝났어요, 최.
“그렇습니까?”
종혁은 그 조직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문신을 세 차례에 걸쳐 교육생들에게 보여 주었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두 번부터는 우연이라고 볼 수 없었다.
징표라는 단어에 반응한 것까지 합해 총 4번 반응을 보인 것도 모자라, 그렇게 반응을 보인 이들 전원이 강의가 끝나자마자 황급히 강의실을 빠져나갔는데 더 말해서 뭐할까.
“많기도 하다, 씨발.”
이충호 외 3명을 비롯해 총 14명.
정말 웃음밖에 안 나왔다.
-어떡할까요, 최?
“뭘 어떡해요. 치워 버려야지.”
처음부터 이들에 대한 처분은 정해져 있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순경이 되려는 이들이다. 그런 놈들이 경찰이 됐다간 애꿎은 피해자가 늘어날 수도 있었다.
경찰로서의 책임감도 정의감도 없는 놈들이 경찰이 되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저 멀리 기동대 복장을 한 채 운동장으로 모이는 이충호들을 응시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처음은 저놈들부터.”
이충호, 정다현. 오창진, 조정근.
이틀 전 종혁이 학교장의 결정에 반발하듯 쓴, 본청으로 보내 달라고 교무과에서 쓴 이름이었다.
이제부터 저들은 SVR에 의해 한국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개새끼들.’
종혁은 며칠 전 나탈리아가 보내 준 저들의 인적 사항, 아니 정확히는 범죄 정황이 적힌 서류를 구기며 돌아섰다.
* * *
한국의 어느 모처가 시끄럽다.
몇 시간 전 중앙경찰학교에서 전해져 온 소식 때문이다.
“알아보라는 건 어떻게 됐어?!”
“방금 전 연락이 왔는데, 정말 그런 조직들이 있다고 합니다! 생긴 지는 몇 년 안 됐다고 합니다! 주 활동 지역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아르툠이며, 세 조직의 보스가 서로 사촌지간이랍니다!”
“사촌?”
순간 사무실이 조용해진다.
“……유리 일리아노프는?”
“실제로 4년 전 은퇴를 한 경찰이 맞습니다. 본명은 미하일 고르초바. 나이 62세. 내무본부 소속 비밀경찰이며, 아나키 99라는 반정부 마피아 조직을 와해시켰다고 나옵니다. 그 사건 이후 경찰 대령으로 진급, 그리고 최종혁이 경찰대 소속으로 러시아에 연수를 갔을 당시 그의 멘토였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올가는?”
“아무래도 러시아 정보국 FSB 소속인 것 같습니다.”
올가에 대해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본명도, 나이도, 소속도, 심지어 부모가 누군지까지 아무것도.
그녀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부서도 없는 부서로 나왔다.
“서열 3위까지 올라가며 아나키 99을 와해시킨 미하일 고르초바는 그들의 비자금 중 일부를 획득했는데…….”
“비슷한 시기 잠입한 올가를 미하일의 감시역으로 돌렸다는 거군. 아니면 애초부터 그럴 목적으로 미하일에게 붙였거나.”
“현재로썬 그렇게 판단됩니다.”
어디 경찰과 정보국이 서로 정보를 나누던가.
“개판이군. 역시 부정부패의 소련다워!”
밀레니엄 새천년이 시작된 지 무려 6년이나 지났는데도 중동도 아닌 러시아에 반정부 세력이 있는 것이 놀랍지만, 경찰이 거액을 착복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더 놀랍다.
부정부패 탓에 망한 나라다웠다.
박수를 친 사십대 중년인은 담배를 물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런 그에게 삼십대 후반의 남성이 다가섰다.
“아무래도 회사의 로고가 노출된 것 같지 않습니까?”
“……그걸 이제 눈치챘다고?”
강원도의 연수원이 날아가고, 많은 수의 사원들이 잡혀간 순간 이미 로고는 이미 노출됐다고 봐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진은행 사건 때 디코이로 썼던 해커들을 제거하러 갔던 사원들도 SVR에게 끌려가지 않았던가.
그 많은 수의 사원들을 확보했는데도 SVR이 회사의 로고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로고를 은밀한 곳에 새기게 한 거잖아.”
자살용 장신구도 사원용은 조직의 로고를 제거했고, 현재는 그것도 혹시 몰라서 새로운 디자인을 고르는 중이었다.
“요새 너 좀 그렇다? 다시 지부로 갈래?”
“그, 그게 아니라 이것도 SVR의 수작이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정부 요직 침투를 경계하는 건 정보부의 행동강령 아닙니까.”
부하 직원의 말은 그런 행동강령이 있기에 이쪽의 수를 짐작한 게 아니냐는 뜻.
“……그건 모르지.”
SVR의 수작이라고 치부하기엔 증거가 너무 명확하다. 이번마저도 우연이라고 봐야 했다.
‘그래. 우연이 참 많아.’
어느 순간부터 시작된 우연과 어그러지기 시작한 회사의 프로젝트들.
“최종혁은?”
“오늘도 이충호 인턴들을 괴롭히다가 1박 2일 휴가를 내고 미하일 고르초바와 함께 서울로 향했다고 합니다.”
“특이 사항은 없고?”
“이충호 인턴들의 2학기 현장실습 장소로 본청을 택했다고 보고를 드렸습니다.”
“아, 그랬지 참.”
하루에 쏟아지는 업무량이 어마어마한지라 잠시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종혁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확률이 더 높아진, 아니 이젠 확신을 해야 한다는 건데…….’
하지만 꺼림칙하다. 종혁이 회사의 일을 방해했을 때부터 계속.
그런데 고작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종혁을 제거하기엔 그 배후를 봐주는 놈들이 너무 위험했다.
제거를 한다면 어떻게든 무마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그땐 종혁을 품은 러시아의 압박에 국정원, 검찰, 경찰 전부가 자신들을 쫓을 수 있었다.
“후. 일단 혹시 모르니까 중경에 파견된 인턴들 관리하는 사원들에게 활동을 중단하라는 공문 내리고, 전 지부에 알려서 중요 프로젝트를 제외한 프로젝트들은 현상 유지만 하라고 해.”
부하 직원의 말처럼 SVR이 수작을 부리는것이라면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다.
‘씨발, 그 러시아 년을 죽여 버렸으면 소원이 없겠네.’
하지만 그건 더 위험했다.
그땐 러시아가 전면으로 나서서 피의 보복을 감행할 거다. 러시아는, 아니 그가 기억하는 소련이라는 나라는 그런 나라였다.
엿 같고 개 같지만, 회사를 위해선 참아야 했다.
“관리 사원들에게 언제든 철수할 준비를 하라고도 전하고……. 음, 언론도 언제든 가동시킬 준비해.”
“예.”
가 보라는 듯 손을 저은 사십대 중년인은 다 타들어 간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마신 뒤 사원들을 향해 손뼉을 쳤다.
“자, 일하자! 부산 지부 쪽 진행 사항은 어떻게 됐어? 올라온 서류 없어? 충주 쪽은?”
“아, 예!”
“그리고 내년에 진행시킬 바이칼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어? 왜 아직도 최종 수정본이 안 올라와?! 씨발, 일들 똑바로 안 할래!”
겉으로 보면 여느 회사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 * *
시간이 흘러 어느덧 1차 교육이 종료하는 날이 왔다.
“와아아아아아!”
창살 없는 감옥이었던 시간이 모두 지나자 해방의 기쁨을 함성으로 표현하는 교육생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교관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얼씨구? 쟤들 운다.”
“쯧쯧쯧. 저놈들은 알까. 여기가 천국인 걸.”
“알면 저렇게 기뻐하지 못하지.”
이제부터 피가 튀고 시체가 굴러다니는 현장으로 가는 그들.
매일매일 터지는 고함과 비명에 피 말리는 지옥이 될 것이다.
이제 드디어 저 멍청이들과 안녕이라는 생각에 절로 후련해지지만, 고작 4개월 배운 햇병아리들을 그런 지옥에 던져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썩 좋지 못하다.
“최 팀장은 이제 본청으로 복귀한다고?”
“그동안 저 때문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충성.”
“수고는 무슨. 오다가다 만나면 인사나 하자고. 아, 그때는 내가 먼저 인사해야겠네.”
여기 있는 교관들 중 종혁보다 계급이 높은 이가 없었다.
“하하.”
“뭘 벌써 헤어지는 것처럼 말합니까? 아직 정리할 것 많습니다.”
“……망할. 가자, 가. 최 팀장, 가자고.”
“아, 예.”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다른 교육생들과 얼싸안고 방방 뛰는 이충호들을 바라보던 종혁은 다 피운 담배를 던지며 돌아섰다.
땅바닥에 떨어진 담배 불똥이 팍 하고 튀었다가 싸늘히 식어 버렸다.
“건배!”
채재쟁!
“크으!”
종혁에게 찍힌 이후 처음 마시는 술에 행복의 고개짓을 하는 이충호, 정다현, 오창진, 조정근.
하지만 생각보다 기쁜 건 아무래도 1차 교육이 모두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주말이 지나고 다음 주 월요일이 되면 현장실습장소인 서울의 본청으로 갈 그들.
순간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솔직히 글렀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나도.”
종혁이 어떤 언질조차 하지 않아서 회사에서 보낸 두 번째 임무를 실패했다고 생각한 그들 넷.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고 봐야 했다.
“이거 학교장에게 선물이라도 보내야 하나?”
“엿이면 되려나?”
“울릉도 호박엿은 어때?”
학교장이 성적 상위권 학생들을 한곳에 불러모았을 때는 얼마나 식겁했는지 모른다.
혹여라도 다른 인턴이 있어서 자신들을 알아보기라도 할까 봐 온종일 긴장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종혁이 자신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일을 진행시킨 학교장에게 반발심을 품고 자신들을 택해 준 것이기에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인턴은 발견 못했지?”
“못했지. 창진이 넌?”
고개를 저은 오창진은 술을 들이켰고, 조정근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괜찮겠냐? 너 여기 충주로 주소지를 옮겼다며?”
“본청행을 거부 안 한 거 보면 몰라?”
중앙경찰학교에서 현장 실습 장소로 본청이 배정되는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래는 모두 파출소나 경찰서행이다.
본청으로 가게 된 것만으로도 상당한 고평가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종혁의 손발까지 될 수 있다면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줄 터.
“그러니 은근슬쩍 수작 부리지 마, 조정근. 너도 원래 충주행 아니었나?”
……씨익.
그동안 경박함만 담겼던 조정근의 입가에 잔인한 살의가 담긴다.
“우리 창진이 단어 선택이 재밌네.”
“더 재밌게 해 줄까?”
탕!
젓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들은 정다현을 봤다.
“좋은 날이니 그냥 마시자.”
“……쩝. 그래. 벌써부터 죽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종혁의 밑으로 가는 게 확정됐는데, 여기서 사고를 쳐서 퇴소가 된다? 조직은 제거조를 파견할 거다.
아쉬워한 조정근은 이충호를 봤다.
어느 순간부터 독기가 빠지기 시작한 이충호.
‘이거 잘하면…….’
그 순간 조정근은 기겁하며 손을 들었다.
탁!
쥐어진 주먹 안에서 요동치는 쇠젓가락 하나.
“이 씨발……!”
“좆까, 시발아. 난 먼저 일어난다. 본청에서 보자.”
“왜? 창진이 집이 근처니까 자고 가지!”
중지를 치켜세운 이충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때, 멀리서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SVR 요원은 핸드폰을 들었다.
“이충호 이동합니다.”
* * *
일요일 아침, 문을 닫은 가게 안.
이충호의 어머니는 경찰 근무복을 입은 이충호의 양 어깨를 쓸어내렸다.
“가서 잘하고. 다치지 말고. 정식 임용만 되면 너도 이제 사원인거 알지?”
“걱정 마세요, 어머니. 저도 이제 다 컸어요.”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이젠 너무 커서 옛날처럼 품에 쏙 안을 수가 없네.”
등을 토닥이는 작고 주름진 손에 순간 이충호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슴으로 낳고 키워 준 어머니다.
이충호 인생에 부모란 이분밖에 없었다.
“잘 자라 줘서 고마워, 아들.”
잠시 그들 모자 사이에 따스한 침묵이 감돈다.
“하이구, 늙으니 주책이지. 어서 가 봐. 버스 시간 늦겠다.”
“서울에 도착하면 연락할게요.”
이충호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옮기며 시장을 빠져나갔고, 그의 어머니는 문 앞에서 가만히 지켜보다 돌아섰다.
스르륵! 탁!
가게 문을 닫자마자 소주를 꺼내 드는 그녀.
“후…….”
영원히 못 볼 것이 아님에도 갑자기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가슴에 그녀는 술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한 잔, 두 잔. 한 병, 두 병.
김치 쪼가리를 안주 삼아 취할 때까지 마신 그녀는 더 넓어져 버린 것 같아 낯설어진 가게 풍경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어이구, 그만 마셔야지. 충호도 전화 준다고 했으니까.”
그때였다.
스르륵! 탁!
“어휴, 죄송해요. 오늘은 장사…….”
반사적으로 응대하던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과 아리따운 젊은 외국인 여인.
또각또각!
“우리가 누군지 알지?”
능숙한 한국어에 이충호의 어머니가 이를 악물던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그녀는 테이블에서 맹렬히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안 돼! 도망쳐, 충호야!’
한편 어머니의 간절한 외침을 듣지 못한 채 본청 근처 한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이충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한 동짜리 오피스텔임에도 때깔부터 다른 건물.
“이걸 숙소로 떡하니 내줬단 말이지?”
자기가 본청으로 불렀으니 숙소까지 책임진다고 말한 종혁.
“부르주아 새끼.”
왜인지 짜증이 솟구쳐 이를 간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뚜르르, 뚜르르.
“……핸드폰 두고 어디 가셨나?”
회사의 사원으로서 연락이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여태까지 별일 없었기에 그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계단을 밟았다.
“짐 풀고 다시 전화 드려야겠네.”
‘그때도 연락이 안 되면…….’
일이 터진 게 분명할 터.
“그땐 회사에 연락을 해야겠지.”
어머니의 윗선에게 말이다.
그게 행동강령이었다.
만약 이충호가 실전을 충분히 겪었더라면 아마 알아차렸을 지도 모른다. 머리 한구석에서 맹렬히 울리는 위험 신호를 말이다.
경험이 일천해 그걸 깨닫지 못한 그는 전자도어락의 버튼을 눌렀다.
띠디디디디! 띠리릭!
“어? 벌써 도착한 건가?”
신발장에 놓인 신발들에 의아해하며 안으로 들어간 이충호는 거실에 펼쳐진 광경에 재빨리 돌아섰다.
피투성이 알몸이 된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정다현들과 그들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고 있는 덩치 큰 외국인들.
그리고 거실 소파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찻잔을 들고 있는 한 외국인 중년 여성.
함정이었다.
‘씨발! 어서…….’
철컥!
이마에 닿는 싸늘한 총구에 이충호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Войти(들어가).”
‘러, 러시아어?’
툭툭!
‘빌어먹을!’
이마를 미는 권총에 이를 악문 이충호는 결국 나탈리아의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퍽!
오금이 걷어차여 무릎을 꿇은 이충호.
“크악!”
“으음. 역시 최의 컬렉션은 훌륭하다니까. 아, 왔니?”
“다, 당신 뭐야! 누구야!”
찻잔을 내려놓은 나탈리아는 나른하게 웃으며 검지를 까딱였다.
“으응. 그런 귀여운 수작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네가 아무리 소리친다고 해도 아무도 듣지 못할 테니까. 내가, 그리고 우리 러시아가 경외하고 사랑하는 최는 이런 면에서 아주 철두철미하거든.”
“……최? 서, 설마 최종혁?!”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최종혁이 우리를 이미…….’
콱!
나탈리아의 하얗고 가는 손이 이충호의 입을 틀어쥐었다.
“큽?!”
“그러지 마렴. 내게 집중해야지?”
나탈리아는 눈을 부릅뜬 이충호를 향해 고혹적으로 웃어 주었다.
“내가 지금부터 아주 정중히 어떤 부탁을 할 거란다, 아가야. 이 아줌마가 지금 어떤 징표, 아니 로고라는 걸 찾고 있거든? 내 조국 러시아에 아주 못된 범죄를 저지른 단체의 징표란다.”
“크으읍……!”
“내가 찾는 게 없으면 정중히 사과하고 보상금도 줄게. 그러니…… 옷 좀 벗어 볼래?”
껍질을 산 채로 벗겨 버릴 것 같은 도살자의 눈이 웃으며 바라봄에 이충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