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81화 (28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81화>

“끄으응.”

“의, 의원님! 정신이 드십니까!”

“어떻게…… 아악!”

홍익현은 마치 터져 버릴 것처럼 끔찍한 고통에 얼굴과 목을 감싸 쥐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여, 여기 진통제입니다!”

정신없이 진통제를 씹어 삼킨 홍익현은 한참을 고통속에서 구른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여기 누워 있고!”

우봉 분교의 양호실.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따로 만든 치료 공간이다.

“기억 안 나십니까?”

“기억?”

홍익현은 정신을 잃기 전을 떠올렸다.

‘웬 덩치 큰 놈이 달려든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눈앞이 번쩍이더니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깨어나니 아무도 없는 양호실의 침대 위다.

“……놈들은? 중경 교육생들은?!”

지금 정신을 잃은 게 문제가 아니다.

무조건 확보해야 했던 중경 교육생들.

나라에 종속된 전경도 아닌 반민간인 신분인 교육생들이다. 그들이 사로잡히면 박노형도 경찰 병력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을 터.

그게 박노형의 응수를 잡아먹을 홍익현의 노림수였다.

“음. 한 놈 사로잡긴 했는데…….”

“뭐? 고작?”

홍익현은 약간 실망했지만, 한 명이라도 어딘가.

“그래도 잘했군. 자네도 잘했어! 어디야!”

“일단…… 그게 음……. 안내하겠습니다.”

홍익현의 얼굴을 본 보좌관은 몸을 돌렸고, 병상에서 내려온 홍익현은 콧노래를 부르며 뒤를 따르다가 양호실 문 옆 거울을 보곤 멈칫했다.

“뭐야, 이 미라는…….”

움찔!

“……보좌관.”

“예, 의원님.”

“이거 설마 나냐?”

“죄, 죄송합니다!”

빠드득!

“그 새끼는. 내 얼굴을 이 꼴로 만든 그 개새끼는 어떻게 됐어?!”

“……시위대가 잡은 놈이 바로 그놈입니다.”

“뭐?!”

홍익현은 다급히 보좌관을 봤다가 악 비명을 지르며 목을 잡았다.

“그놈밖에 못 잡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크으윽!”

‘빌어먹을! 다 알려 줬는데도 아무도 잡질 못하다니!’

“시위대나 정보를 넘겨준 그곳이나 다 병신들이 따로 없군! 이래서 믿고 일하겠어?!”

“…….”

“뭐해! 안내해!”

“예, 의원님.”

드르륵!

문을 열고 나가니 주위를 지나던 시위대들이 경악하며 쳐다본다.

“깨, 깨어나셨습니까, 의원님!”

“야! 다들! 홍 의원님 깨어나셨어!”

“뭐?!”

드르륵! 드르륵!

졸린 눈을 비비며 복도 교실문을 연 시위대들이 홍익현을 발견하곤 식겁하며 달려왔다.

“괘, 괜찮으십니까, 의원님!”

“여기 보세요. 몇 개로 보이세요?!”

“허허. 뭘 이 정도를 가지고 호들갑을 떱니까. 전 이제야 여러분들과 같은 고통을 나누게 되어 참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첫날부터 여러분들과 선두에 설 걸 그랬어요.”

“크흑! 의원님!”

“씨이! 홍-익-현!”

“홍익현! 홍익현!”

홍익현은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시위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자신의 얼굴을 이렇게 만든 놈을 한 대 후려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복도를 빠르게 걸은 홍익현은 보좌관이 열어 주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의자에 묶여 있는 종혁을 발견하곤 주먹을 꽉 쥐었다.

‘이 개……!’

하지만 그는 끝내 몸을 날리지 못했다. 종혁의 곁에 시위대들과 우정경 신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함부로 주먹을 휘둘렀다가는 그동안 쌓은 이미지를 자기 손으로 부숴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정수리를 때리는 분노를 겨우 누르며 종혁에게 다가가 애써 웃었다.

“허허. 당신인가 보군요.”

“누구? 아, 설마 홍익현 의원님?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눈이 돌면 잘 안 보이는지라……. 거기다 상황도 상황이었고……. 이거 사과드립니다.”

‘이 개새끼가!’

“허허. 아니에요. 저녁이고 흥분한 상황인데 그럴 수 있죠.”

“예. 그러니까요. 뼈는 괜찮으시죠?”

“……허허허.”

종혁도 마주 웃어 주었다.

“그, 그래서 교육생이라고요?”

애써 뱉어 낸 그의 말에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누가요? 제가요?”

“예?”

우정경 신부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본청 수사팀의 팀장이랍니다, 홍 의원님.”

“옙! 본청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 1팀장 최종혁 경정입니다. 하하.”

‘본청? 팀장? 경정? 그런 말은 안 했잖아!’

괜히 망신을 당하게 만든 보좌관을 노려본 홍익현은 이를 악물었다.

일이 꼬였다.

반민간인인 교육생이 아니라 경찰이라면 저들 경찰 병력은 신경도 안 쓴 채 밀고 들어올 터.

다신 이번 같은 수작이 통하지 않을 테니 경찰 병력이 이곳 분교까지 치고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잠깐, 아니지?’

홍익현은 경정이란 계급에 주목했다.

그의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맺혔다.

“이거 대단한 엘리트께서 험한 꼴을 겪게 되셨군요.”

국회의원인 홍익현 자신이 밀어준다고 해도 불가능한 속도로 진급을 한 젊은 간부다. 감히 자신으로선 쳐다볼 수도 없는 배경이 있단 소리였다.

‘5선 의원의 사생아인가?’

그쯤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허. 그분은 잘 계십니까?”

“그분? 예, 뭐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 주위 분들은 잘 계십니다.”

“그래요, 그래. 좋군요. 담배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뭐하자는 수작이지?’

종혁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고, 홍익현은 손수 담배를 물려 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담배를 물었다.

“후우. 최 팀장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흐음. 이거 약을 팔려는 것 같은데.’

정치인의 특기인 약 팔기.

하지만 종혁은 일단 들어 보기로 하며 맞장구를 쳐 줬다. 종혁 본인도 이 대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통령께서 잘못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옳거니!’

우정경 신부와 시위대들도 깜짝 놀라 종혁을 봤다.

그러나 종혁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들의 방법도 잘못됐습니다. 충분히 대화로도 풀 수 있는 일에 폭력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순간, 당신들은 범죄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아니, 깡패들보다 더 악질이지.”

“뭐? 깡패?!”

“이 자식이! 말이면 단 줄 알아?!”

“그럼? 죽창이라는 살인 무기를 만들어 놓고, 그걸 거리낌 없이 찔러 놓고도 깡패보다 악질이 아니라고? 깡패 새끼들은 최소한 경찰에게 칼질은 안 해, 이 새끼들아. 왜? 그럼 지들이 죽는 걸 아니까!”

“우린……!”

“어차피 찔러서 부상자가 발생해 봤자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을 걸 알고 그러는 거잖아. 안 그래? 시위 전문이니까 이런 거 잘 알지?”

난전에선 누가 찔렀는지 모르기에 처벌을 내리기가 힘들어진다.

혹여 그 죽창에 경찰이 죽는다고 해도 이들 중 5년 넘는 형량을 받을 사람이 있을까. 증거물인 죽창을 불에 던져 증거 인멸을 하면 길어야 3년이다.

“그마저도 니들이 풀어 달라고 시위하면 형량이 줄어들겠지. 이러고도 너희가 깡패보다 악질이 아니라고?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시발 애새끼들아!”

“…….”

“왜?! 우리 경찰이 너희의 그 좆같은 생각을 모를 줄 알았냐?! 뭐해! 방금처럼 씨불여 봐! 너희 때문에 순직한 경찰의 유족 앞에서! 2년 후면 부모님 품으로 돌아가야 될 전경들의 영정 사진 앞에서 씨불여 보라고! 우리라고 좋아서 너희를 막아 세우는지 알아-?!”

“자자, 진정합시다.”

홍익현은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흐름에 속으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요. 최 팀장의 말처럼 우리가 폭력을 동원한 건 분명 잘못한 일입니다.”

“의원님!”

시위대는 진한 배신감에 휩싸였지만, 그걸 무시한 홍익현은 종혁의 손을 꼭 잡으며 호소했다.

“그러니 우리가 더 이상 폭력을 동원하지 않도록, 평화적으로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게 최 팀장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라고 나라에 끌려온 전경들에게 폭력을 쓰고 싶겠습니까.”

‘약 파는 거 맞네.’

“……어떻게요?”

“영상을 찍읍시다.”

“영상? 아, 설마 제가 당신들의 요구를 낭독하는 그런 영상 말입니까? 에이, 그건 선을 넘는 거죠.”

어딘가를 연상시키는 방법이기에 정말 선을 넘는 거다.

“한 방울의 피라도 덜 흘리기 위한 일입니다. 그를 위해선 이 홍익현, 기꺼이 악마라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협조해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합니다, 최종혁 경정님!”

‘그래야 네놈의 배경이 대통령을 압박하겠지!’

종혁은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홍익현은 경정이라는 단어로 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의 양심을 찔러 버린 것이다.

하지만…….

‘고맙네. 먼저 이야기를 꺼내 줘서.’

참 너무도 고마웠다. 이렇게 알기 쉬운 부류라서.

“으음.”

종혁이 고민에 휩싸이자 시위대는 긴장을 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종혁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알겠습니다. 찍죠. 대신!”

환호를 터트리려던 시위대는 다시 종혁을 봤다.

“그런 방식은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차라리 대담 형식으로 가시죠.”

“오……! 그런 수가!”

이쪽에 사망자가 생기는 것보다 더 좋은 수였다.

종혁이 경찰 측 대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경찰이기에 대통령으로선 큰 압박이 될 터. 종혁의 배경 때문이라도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이 대화 테이블을 홍익현 자신이 만들어 냈다?

전국적으로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느 지역구를 가도 당선된 확률이 높아질 터.

‘불의에 맞선 평화의 상징 홍익현!’

그의 머릿속에 다음 선거 때 홍보할 문구가 절로 떠올랐다.

홍익현은 순간 몸이 달아올랐다.

“알겠습니다! 뭣들 합니까! 어서 세팅해 주세요!”

“아? 네, 네!”

꼬리에 불붙은 멧돼지처럼 이리저리 날뛴 그들은 빠르게 세팅을 했고, 밧줄이 풀린 종혁은 굳은 팔을 이리저리 풀다가 맞은편에 앉아 실실 웃는 홍익현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음? 홍 의원님이 왜 거기에 앉으십니까?”

“허허. 최 팀장이 아직 젊어서 잘 모르시나 본데, 원래 이런 건 저 같은 사람과…….”

“거 말 희한하게 하시네. 누가 당신하고 이야기한데요?”

“예?”

“당신, 아니 당신들 말고 주민분들 데려오세요.”

“……예?

“못 들었습니까? 우봉리 주민이 아닌 부외자는 꺼지시라고.”

종혁은 경멸을 담아 홍익현을 노려봤다.

그가 할 일은 이제 다 끝났다.

‘아니, 아직 하나 남았네.’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다.

*   *   *

‘제길!’

상부에서 내려진 지령을 실패했다.

벌써 두 번째 실패.

어떤 문책이 따를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 알 수 없는 건 바로 자신들이 잡혀가자 망설임 없이 시위대를 향해 뛰어든 종혁의 행동이었다.

‘대체 왜?’

희생이란 단어를 배우지 못한 이충호는 혼란에 휩싸여 동료들을 돌아봤다.

그들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빠아악!

헬멧을 강타하는 작은 발의 드롭킥.

“컥?!”

“또 한눈팔지, 개새끼야! 넌 씨발 뒤졌어!”

눈이 뒤집힌 임세라는 파운딩에 들어갔고, 그녀의 동기는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뒤로 빠졌다.

“놔! 놔아! 저 새끼들 때문에 종혁이가……!”

“알아. 아는데 일단 빠져.”

그들이 물러서자 교육생들이 다급히 방패를 들며 이충호가 뚫리면서 생긴 구멍을 메운다.

“일어나.”

“다현아.”

“뭔 말인지 아니까 일어나라고.”

일단 살아야 한다. 눈이 돌아 버린 저 50여 명의 괴물들에게서 말이다. 종혁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경찰대 48기들.

이렇게 시달린 지 벌써 3시간째다. 다리는 이미 힘이 풀렸고, 하늘은 노랬다.

“여어. 얘들이냐?”

“어, 왔냐? 씨발, 얼굴 보기 힘들다?”

“바쁜 거 알잖아. 비켜 봐. 일단 저 새끼들부터 죽이게.”

“그냥 때리면 폭력이고.”

뒤늦게 도착한 동기를 진정시킨 사내는 스크럼을 짠 채 공포에 질려 있는 교육생들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또 뚫리면 너흰 진짜 씨발 죽는 거다. 몸에 힘줘, 개새끼들아.”

교육생들은 이를 악물며 서로의 몸을 밀착했고, 경찰대 48기들은 먹잇감을 덮치는 늑대들처럼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삐익! 삑!

호각 소리와 함께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임성원 교수.

“그쯤 해둬라, 이 똥강아지들아.”

종혁의 동기들은 다급히 차렷 자세를 취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차렷! 교수님께 경례!”

“충성!”

“충성. 그쯤 해 둬. 몸에 힘 빼지 마.”

“하지만 교수님!”

“곧 진격 작전이 시작될 텐데 무기 수령 안 하려고?”

작전 시간은 12시 정각. 곧 도착할 병력까지 합하여 약 만여 명의 경찰 병력이 우봉 분교까지 시위대를 밀어붙이고 종혁을 넘겨받는다.

움찔!

눈을 크게 뜬 경찰대 48기들은 사납게 웃으며 교육생들을 훑어봤다.

“운 좋네.”

“종혁이 구하고 다시 이야기하자. 지금처럼 밍숭맹숭하게가 아니라 찐하게.”

그들은 미련 없이 돌아섰고, 일방적인 폭력에 가까운 체벌에서 벗어난 교육생들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임성원 교수는 그런 그들을 일견하며 시위대들을 보았다.

찰칵! 치이익!

“하필 잡아가도 종혁이를 잡아가나.”

최기룡 전 경찰청장부터 최씨 문중, 행복의 쉼터 재단 권회수 이사장 등이 본청에 항의를 했고, 러시아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 그리고 경찰대와 교류한 각국의 대사관에서 청와대로 전화를 넣었다.

“종혁이만 아니었다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을 텐데…….”

일이 너무 커지고 말았다.

그들이 종혁을 넘겨준다고 한들, 우봉리 주민들에게 다음은 없었다.

“부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한숨을 뱉은 임성원 교수는 담배를 던지며 돌아서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들은?”

한편 이런 사실을 모르는 새벽 6시의 우봉 분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우봉리 주민 대표들이 한 교실로 모인다.

의문과 경계가 서려 있는 그들의 면면을 본 종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농사일에 검게 타 버린 피부와 굵고 선명한 주름들. 웃는다면 세상 걱정 없을 것 같은 순박한 삶의 흔적에 종혁의 가슴이 아려진다.

이제야 만나게 된 진짜 피해자들의 움츠린 어깨가 심장을 깊숙이 찌른다.

종혁은 몸을 일으켜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이제야 만나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대한민국 경찰청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 1팀의 최종혁 경정입니다. 잠시 지원을 나왔던 저는 어젯밤 이렇게 붙들리게 되었고, 지금은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모, 목소리 말이오?”

“우, 우리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겁니까?”

주민들의 얼굴에서 잠이 달아나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전 위에 여러분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만 있을 뿐, 여러분들의 요구를 들어줄 권한은 없습니다.”

“아…….”

주민들의 얼굴에 실망감이 번진다.

“그럼 왜…….”

“그래요. 그럴 권한도 없는데 왜 힘든 어르신들을 이 꼭두새벽부터 괴롭히는 겁니까.”

이러다 자신의 활약이 사라질 걸 우려한 홍익현 의원이 다급히 나선다.

그런 그의 마음을 짐작조차 못하는 주민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들보단 많이 배운 홍익현이 더 조리 있게 말해 줄 터. 그동안 아무리 외쳤지만 들어주지 않은 건 결국 자신들이 조리 있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을 불쌍히 여긴 고마운 사람들이 이렇게 찾아왔고, 결국 국회의원이라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대단한 사람까지 찾아와 자신들의 손을 잡아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들이 나선다는 건 이들의 수고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행위. 지금까지처럼 홍익현이 대변해 주면 되었다.

그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기에 어쩔 수 없더라도 그게 옳았다.

주민들은 체념과 기대가 어린 눈으로 홍익현을 응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원님.”

“허허. 걱정 마세요. 여러분들께서 원하시는 결과를 어떻게든 얻어 낼 테니!”

홍익현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자, 그럼 나와 이야기…….”

“닥쳐요.”

“뭐, 뭐라고? 최 팀장! 아까부터 계속……!”

“닥치라고, 이 개새끼야.”

순간 교실이 침묵에 휩싸인다.

종혁은 홍익현을 씹어 먹듯 말을 뱉었다.

“내가 지금 피해자들에게 말하고 있잖아. 뒤늦게 슬그머니 찾아와 피해자처럼 구는 너희 부외자가 아니라 진짜 피해자들에게!”

‘낄 데 좀 끼자, 씨발아. 그렇게 발악하지 않아도 죽여 줄 테니까!’

얼어붙은 홍익현과 시위대를 일견한 종혁은 다시 주민들을 응시했다.

“부디 앉아 주십시오. 피해를 당한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세상 그 누구도 들어 주지 않는 법입니다, 어르신들!”

진짜 피해자.

종혁의 굳센 시선을 받은 주민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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