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80화>
76. 당신들 말고
“수고하시지 말입니다.”
“밀리지 마세요, 아저씨들.”
최전방에 서니 공기가 달라진다.
마치 공기가 적어진 느낌. 아니, 담배를 연신 피우고 뜨거운 수증기 가득한 공간에 들어갔을 때처럼 숨이 탁 틀어막힌다.
어쩌면 저 멀리서 이쪽을 노려보는 시위대들의 적개심 어린 눈빛 때문인지 모른다.
마치 맨몸으로 맹수들 앞에 던져진 느낌.
“과도한 긴장은 하지 마라. 그럴수록 더 빨리 피로해진다.”
교육생들의 등을 일일이 두드리며 정신을 일깨우는 종혁. 다른 교관들도 마찬가지다.
“시위대를 보지 마라. 전방 15도만 봐. 눈이 마주쳐서 좋을 거 없다.”
“집중. 포커스. 잡담 나누지 마.”
“숨을 깊게 쉬어! 시야를 넓게 봐.”
“너희에겐 보호구와 방패와 무기가 있다. 안 죽어!”
‘후욱! 훅!’
‘씨발! 씨발! 너희가 여기 있어 봐!’
“명심해라. 너희들의 뒤엔 우리 교관들과 동기가 있다. 믿어라. 끌려가게 두지 않는다. 밀리게 두지 않는다.”
움찔!
“……후우우.”
‘씨발. 그래, 우리에겐 방패와 무기가 있어! 후우우.’
교관들의 말처럼 안 죽는다. 다치지 않는다.
교육생들은 든든한 방패와 진압봉, 그리고 등에 닿는 교관들의 손길에 깊게 심호흡을 하며 표정을 풀었다.
그러자 그제야 시골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이 그들의 시야에 담긴다.
내려앉은 어둠을 헤치며 달려온 시원한 바람과 저 멀리 수풀에 숨어 노래하는 이름 모를 풀벌레들. 불빛에 이끌려 춤추는 하루살이들.
종혁은 딱딱하게 굳은 교육생들의 근육이 이완을 시작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됐군.’
이제야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겉핥기로 배웠다고 해도 어느 정도 버틸 순 있을 터.
그럼 이쪽에서도 충분히 대응을 할 수가 있다.
퍽!
종혁은 한 교육생의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과도한 긴장을 하지 말라고 했지, 긴장을 아예 풀라는 소린 안 했다. 교대하려면 아직 1시간은 남았다. 똥꼬에 힘줘라, 이 새끼들아. 쌀 것 같아도 힘줘.”
“풉!”
지루한 대치가 1시간가량 이어지며 느슨하게 풀리던 교육생들은 다시 긴장의 끈을 쥐며 전방 15도를 주시했다.
그때였다.
“너흰 생각하지 마라. 생각은 우리가…… 음?”
우연히 시위대 방향을 본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어째 거리가…….’
줄어든 것 같다. 대략 3미터가량. 시위대 사이에 있던 홍익현도 어느새 맨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종혁은 거기에 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시위대들 중 10명이 갑자기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헉!”
방금 전까지 수고가 무색하게도 다시 딱딱하게 굳는 교육생들.
“뭡니까. 오지 마세요. 괜히 도발하다가는 다칩니다.”
“거참 너무하시네.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됐다지만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양손을 허리에 얹은 여대생의 외침에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용건은요? 없으면 가세요. 그쪽 수작이 뭔지 아니까.”
마음 흔들기다. 자신들이 적이 아니라 같은 사람임을 어필해 이쪽이 망설이게 하려는 수작.
“전방 15도 쳐다봐, 새끼들아! 귀 막아!”
“에휴. 벽이랑 이야기하고 말지. 오빠들도 많이 힘들겠어요. 안 그래요, 오빠들?”
움찔!
오빠, 그 마법의 단어에 교육생들이 당황한다.
‘에라이.’
“오늘 저희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여대생이 주먹밥을 내민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여대생들뿐만이 아니다. 함께 온 다른 이들도 담배나 주먹밥을 내밀며 온정이 담긴 말을 건넨다.
“그래. 우리도 미안해. 하지만 어쩌겠어. 진짜 너 보면 내 동생 생각 난다. 얘가 내 동생인데, 어때? 예쁘지?”
“부모님께 전화는 드렸어? 아, 한 대 피울래?”
움찔! 흠칫!
종혁은 한숨을 내쉬며 발을 내디뎠다.
‘지랄한다. 지랄해.’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알짱거리면…….”
“아, 아니…….”
흠칫!
종혁은 기겁하며 입을 연 교육생을 쳐다봤고, 그건 시위대도 마찬가지였다. 눈에 기광이 스친 시위대들은 입을 좌우로 찢으며 교육생들의 방패를 젖혔다.
“됐어!”
“헉?!”
방패가 젖혀지고 멱살이 잡힌 이충호들은 그제야 오늘 받은 따라가라는 지령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곤 몸에 힘을 뺐다.
“잡아끌어!”
“우와아아아아!”
“씨발! 잡아!”
마치 이것을 기다렸다는 듯 몸을 일으켜 달려오는 시위대들과 끌려가는 교육생들의 향해 손을 뻗는 교관과 다른 교육생들.
‘뭐지?’
지난 며칠 동안 저들에게 체벌을 가장해 진압 훈련을 가르쳤던 종혁이다. 저들의 신체 능력과 반사 신경이 어느 정도인지는 그 누구보다 종혁이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이상했다. 저들은 자신들을 우악스럽게 잡아끄는 손길에 저항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아니, 마치 스스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무언가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종혁은 황급히 이충호와 오창진의 뒷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날리며 정다현과 조정근도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 반동 때문일까.
“헉!”
시위대 사이에 서게 된 종혁은 놀라 눈을 부릅뜨는 시위대의 두 명의 멱살을 잡아 땅바닥에 처박으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홍익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너희 뜻대로 해 줄까 보냐!’
“이 개새끼야!”
뿌가악!
경악에 눈을 부릅뜬 얼굴이 뭉개지는 감촉과 함께 공중에서 360도 돌아가는 홍익현.
종혁은 순간 얼어붙은 시위대의 멱살을 잡아 안으로 밀치며 포효했다.
“다 덤벼, 이 개새끼들아-!”
“호, 홍 의원님-!”
“죽여!”
“우와아아아!”
“최, 최 교관-!”
새된 비명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 * *
“……뭐?”
벌떡 몸을 일으킨 경기청장은 보고를 하러 온 이를 불신가득한 눈으로 응시했다.
“최, 최종혁 경정이 시위대에 잡혀갔다고 합니다…….”
“이 개새끼들아! 너흰 그걸 지켜보고 있었어?!”
경기청장은 보고하러 온 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악!”
최종혁이 누구던가.
킹메이커이다.
미래의 경기청장 그 자신을 보좌할 인재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택문 경찰청장이 가장 신임하는 인재다.
임기가 얼마 안 남았어도 레임덕은커녕 경찰들의 지지율이 하늘에서 노는 이택문 경찰청장.
인천청장의 목도 날려 버렸는데 경기청장인 자신이라고 목이 무사할까.
‘아니, 임기가 얼마 안 남았기에 더…….’
섬뜩!
“어떻게든 데려와-!”
경기청장은 부하 직원의 멱살을 잡으며 포효했다.
그 순간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맹렬히 울리는 핸드폰을 본 경기청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봉분 교의 한 교실 안.
우정경 신부는 씩씩 거리는 시위대들의 중앙, 의자에 앉혀져 밧줄로 묶인 맹수를 보며 어이없어했다.
무려 20명이다.
고작 10분도 안 되어 20명을 맨손으로 때려눕히더니 갑자기 ‘가자’며 순순히 따라온, 아니 앞장서서 우봉 분교로 온 종혁.
우정경 신부는 점심 식사 후 햇볕에 늘어진 사람처럼 나른하게 웃고 있는 종혁을 향해 다가갔다.
“대책위원장인 우정경신부입니다.”
“아.”
자세를 바로 한 종혁은 고개를 숙였다.
“중경에 잠시 지원을 나온 본청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 1팀 팀장 최종혁 경정입니다. 늦은 밤에 실례가 많습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우정경 신부는 수십 명의 시위대가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종혁의 모습에 낯빛을 굳혔다.
‘이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경정?’
그것도 본청 소속의 팀장.
군사정권 시절에 군부 장성을 배경으로 뒀어도 가능했을까 싶은 진급 속도다.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실례를 끼쳐도 되겠습니까? 곧 소식을 들을 홀어머니께 전화 한 통을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시위대는 그 뻔뻔한 모습에 눈을 부릅떴고, 종혁의 맑은 눈을 빤히 바라본 우정경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신부님! 이자는……!”
“홀어머니라고 하잖아요.”
“……제길!”
“하하. 역시 신부님이라서 자애가 넘치시는군요. 제 가슴팍 주머니에…… 어, 거기요. 거기. 단축번호 0번을 누르면 됩니다.”
뚜르르! 뚜르르! 달칵!
-여보세요.
“예, 어머니. 제가 지금 어쩌다 보니 평택 시위대에 붙잡히게 됐습니다. 모르시면 안 찾아봐도 됩니다. 아무튼 별일 아니니까…….”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저한테 아들 없어요.
뚝!
“……어머니? 엄마?”
울상이 된 종혁은 단축번호를 눌러 준 남성을 간절히 쳐다봤다.
“씨발.”
뚜르르! 뚜르르!
-나가 죽어.
뚝!
“……하. 좆됐네.”
사태가 마무리돼도 당분간 집에 들어가지 못할 듯싶다.
“저기요. 내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담배 있거든요? 그것 좀 줘 봐요. 아, 좀 줘 보라고요!”
“여, 여기…….”
“불도 붙여 줘야 될 거 아닙니까! 거 센스가 없네, 센스가!”
찰칵! 치이익!
“하. 씨발, 어쩌지? 희야한테 애교 좀 떨라고 할까?”
우정경 신부와 시위대는 초조하게 발을 떠는 종혁을 복잡미묘하고 떨떠름한 눈으로 응시했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겁니까?”
“응? 알죠, 당연히.”
“……그런데 무섭지 않은 겁니까?”
종혁은 우정경 신부를 보며 나른히 웃었다.
섬뜩!
“호랑이가 하룻강아지 무서워하는 거 봤습니까?”
하룻강아지가 아무리 모여 봤자 결국 하룻강아지다. 지금 당장이라도 여기 있는 인원 정도는 거뜬히 때려눕힐 수 있었다.
“이런 씨발!”
“이 개새끼가……!”
“그만! 그만!”
폭발하는 시위대를 말린 우정경 신부는 종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의 눈빛 깊은 곳에 간절함이 피어났다.
“최 팀장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 무섭지 않습니까?”
종혁에게 당한 사람이 20명이다. 그중엔 홍익현 의원도 있다. 이 이상 도발을 하면 정말 큰일이 날 수 있었다.
신부로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무조건 막아야 했다.
하지만…….
“성직자가 죽음을 쉽게 입에 담는다라……. 재밌네요.”
“이봐요, 최 팀장님!”
“그럼 당신들 중 열 놈은 무조건 죽어.”
“흑!”
우정경 신부뿐만 아니라 시위대도 다급히 종혁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순간 심장을 쥐어짠 끔찍한 살의.
그들은 질린 눈으로 종혁을 바라보았고, 종혁은 다 피운 담배를 퉤 하고 뱉었다.
“어이, 한 대만 더 물려 주라.”
“……일단 서로 흥분한 것 같으니 이따가 다시 대화하죠.”
“개새끼. 넌 내가 꼭 죽인다.”
“씨발 새끼. 카악, 퉤!”
종혁은 감시조 10명만 남기고 빠져나가는 그들을 보며 실실 웃다가 낯빛을 굳혔다.
‘하, 나탈리아랑 린치가 판단을 잘못하면 안 되는데…….’
나탈리아라면 자신이 일부러 잡혔다는 건 능히 알아차릴 테지만, 허당에다 공명심이 많은 린치라면 오판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끝이지.’
헨리 스미스에게 알리지 않은 채 한국 정부를 압박하거나 미군을 움직일 수 있었다. 놈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그러면 정말 다 죽는 거였다.
“이봐, 홍익현 의원은 좀 어때? 살 것 같아?”
움찔! 빠드득!
‘나탈리아, 부탁합니다. 그 애송이 말려 줘요.’
종혁은 킬킬 웃으며 간절히 바랐다.
* * *
스륵.
분홍빛 혀가 새빨간 입술을 핥고, 그 눈이 고혹적으로 휜다.
“사랑스러운 사람.”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고정숙에게는 연락을 했지만, 자신에겐 연락을 하지 않은 점에서 나탈리아는 종혁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괴물인 그에게 이런 인간적인 면모가 있단 것에.
‘고정숙 씨는 정말 복을 타고나셨네. 부러워. 나도 최 같은 자식을 낳으면 얼마나 좋을까?’
종혁처럼 듬직하고 능력 좋은 아들이 점점 커 가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을 자신도 느껴 보고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탈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든 걸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이제 슬슬 은퇴해서 가정을 꾸려야 할 것 같기도 했다.
“그건 좀 싫은데…….”
저벅저벅.
즐거운 상념을 깨는 구둣발 소리에 나탈리아의 눈이 차가워진다.
“러시아의 영광을 위해. 러시아와 연결이 됐습니다.”
“……알았어.”
몸을 일으킨 그녀는 보안실의 문 손잡이를 잡다가 아차 했다.
“CIA 애송이에게 연락해서 닥치고 있으라고 해. 최는 내 거니까 허튼짓하면 헨리에게 연락할 거라고.”
“예.”
고개를 끄덕이며 보안실로 들어간 그녀는 한쪽 벽을 커다랗게 채우는 스크린 속 메드베제프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러시아의 영광을 위해!”
-최가 납치됐다고? 무도한 폭도들에게?
꽤 다급했는지 단정하게 넘긴 헤어스타일이 좀 흐트러져 있다.
나탈리아는 메드베제프도 종혁에게 진심이라는 것에 작게 안심했다.
“납치가 된 게 아니라 스스로 들어간 겁니다.”
-……자세히.
안도의 한숨 내쉰 메드베제프는 나탈리아를 차갑게 노려봤고, 그녀는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걸 모두 들은 메드베제프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모두를 구하려는 건가.
“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혁이 연락을 안 한 거다.
-최는 정말 알 수 없는 인물이군.
냉철한 괴물이면서도 이상주의적 몽상가 기질이 있다.
서로 공존하기가 힘든 기질.
-하지만 최가 왜 경찰을 택했는지 알 것 같군. 후, 그런 인물이 우리 러시아의 경찰이 되어야 했을 텐데…….
그랬다면 러시아는 지금 내외로 보다 더 큰 발전을 이뤘을지 몰랐다.
-계속 주시하도록 해. 최는 우리 러시아의 보물이니까.
“러시아의 영광을 위해!”
-러시아의 영광을 위해.
스크린이 꺼지자 나탈리아는 눈치 좋게 홍차를 가져오는 부하를 응시했다.
“최가 요청한 교육생들의 보호자에 대한 감시는?”
“지금 막 완료됐다고 합니다.”
“언제든 제거할 준비해. 그래야 다른 꼬리를 끄집어낼 테니까. 그리고 그 홍 뭐라는 의원과 연결된 그놈들도 언제든 확보할 준비 마쳐 놓고. 음, 아니야. 걔들은 껍질 벗겨서 최의 팀원들에게 던져 버려.”
거수경례를 한 부하가 돌아서자 나탈리아는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호록!
‘여긴 준비가 끝났답니다, 최.’
이젠 종혁의 차례였다.
그녀의 두 눈이 장난기를 가득 머금으며 호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