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75화 (275/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75화>

    75. 시위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몰라도 계획이 어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머리도 엉클어졌다.

    ‘일단 아니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여기서 오리발을 내밀어 일단 중앙경찰학교에 붙어 있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훗날 경찰에 잠입했을 때 도움을 줄 정다현과 도병훈이라는 인맥을 선택할지.

    이충호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뭐하냐, 새끼야. 안 나오냐?”

    이충호는 차가운 종혁의 시선과 교육생들의 시선에 입술을 깨물었다.

    ‘칫!’

    그는 이를 악물며 발을 뗐다.

    ‘어차피 다 들켰어. 여기서 물러나면 절대 최종혁과 친해지지 못해!’

    머릿속을 정리한 이충호는 눈에 분노를 담았다.

    “난 당신 같은 사람이 싫습니다.”

    대체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분노에 종혁은 울컥 솟는 살의를 눌러야만 했다.

    “……그래.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그런 발언은 안 해서 좋네.”

    “풉!”

    작년 한 보이그룹 멤버의 어처구니없던 발언. 체육관의 공기가 잠시 환기된다.

    “하지만…….”

    종혁은 눈빛이 점차 깊어진다.

    “난 너처럼 되지도 않는 짱구를 굴리면서 사람을 이용하는 새끼들이 제일 싫어.”

    “우연이네요. 나도 그렇거든.”

    “……새끼. 연장 들려면 들어라. 목검도 좋고, 목봉도 좋고, 칼도 좋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

    “됐습니다.”

    “좋아. 시작?”

    “시작!”

    이충호는 외침과 동시에 종혁을 향해 몸을 날리며 목을 향해 중지를 뾰족하게 세운 주먹을 날렸다.

    ‘됐…….’

    “병신 새끼.”

    ‘뭐?’

    이충호가 마지막으로 목격한 건 어느새 코앞에 자리한 커다란 주먹이었다.

    뿌가아악!

    체육관이 정적에 휩싸인다.

    주먹 한 방에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채 꿈틀거리는 이충호.

    무슨 좋은 꿈을 꾸는 건지 입가엔 미소가 맺혀 있다.

    ‘사, 사람이 튀, 튕겼어?’

    분명 매트에 처박혔던 이충호가 그 충경에 튕겨져 올랐다.

    “다음.”

    교육생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종혁을 봤다.

    종혁은 공포에 굳어 버린 그들을 보며 나른하게 목을 꺾었다.

    “지금부터 안 나오는 새끼는 정말 퇴소다.”

    “……씨발!”

    쩌억!

    “범죄자를 제압하는 요령 첫 번째. 절대 정면으로 달려들지 마라. 범죄자라고 너희보다 약한 게 아니다. 다음.”

    교육생들은 파랗게 질렸다.

    *   *   *

    “아으…….”

    “으으윽!”

    피투성이가 된 10여 명이 매트 위를 구르고 있다.

    하지만 교육생들은 그들보다 종혁을 보고 있었다.

    10명을 맨손으로 때려 눕혔는데, 숨소리가 조금 흐트러진 것 말고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종혁.

    교육생들의 붉은 피가 기괴하기까지 한 근육질 몸을 타고 흐르는 그 모습은 마치 귀신을 보는 것처럼 섬뜩하기만 하다.

    종혁은 피에 살짝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먹잇감을 찾듯 교육생들을 둘러봤다.

    “더 안 나오냐? 지금부터 나오는 놈들은 가점 10점 준다.”

    ‘가점?!’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떴던 교육생들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누구라고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을 구르고 싶을까.

    아니, 화풀이 상대를 고르는 저 괴물의 먹잇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없어? 오케이. 20점.”

    ‘안 나가, 씨발!’

    ‘나가겠냐!’

    “……쯧.”

    종혁은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그들의 모습에 흥이 팍 식는 걸 느끼며 몸을 돌렸다.

    그러며 작게나마 품고 있던 희망을 버렸다.

    총대를 메고 나선 동기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침묵하는데 어찌 사람 대접을 해 줄 수 있을까. 주제도 모르고 나선 이놈들보다 저들이 더 구제불능이었다.

    “병신 새끼들.”

    경멸이 가득 담긴 그 말에 교육생들은 그저 시선만 피할 뿐이었고, 종혁은 동기들과 함께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체육관 입구로 향했다.

    훗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불리게 된 사건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아우우! 개운해!”

    “씨부랠. 결국 나만 손맛 못 봤잖아!”

    “푸헤헤헤! 그래서 어쩔 건데! 오쩔 건데? 종혁이에게 덤비게?”

    “넌 뒤졌어!”

    “꺄하하하!”

    종혁과 동기들은 추격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거였어?”

    “글쎄…… 여자를 방으로 끌어들였다는데?”

    “네가? 여자를? 드디어?”

    경찰대에서도 고자로 유명했던 종혁이다.

    “잉? 혹시 그거 나 때문 아니야? 그저께 내가 내려와서 술 마실 때 네 숙소 보여 달라고 졸랐었잖아.”

    본청 수사팀의 팀장인 종혁이 경찰대도 아닌 중앙경찰학교의 교관으로 갔다기에 식겁해 달려왔었다.

    “아?”

    드디어 이유를 알게 됐지만, 종혁은 딱히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매점 근처로 자리를 옮긴 그들은 캔커피를 손에 들고 종혁을 쳐다봤다.

    “그래서 우릴 부른 이유가 뭐야?”

    종혁은 대뜸 본론부터 물어 오는 동기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일단 오늘 예비 순경들을 본 소감이 어때?”

    “음…… 병신?”

    “머저리들.”

    “신체 밸런스도 구려, 눈빛도 동태눈깔이야, 대가리에 든 것도 없어 보이던데? 저 새끼들이 밑으로 오면 다시 한번 작살을 내 준다.”

    역시나 평가가 신랄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교육 기간이 짧은데.”

    “지금 이론 교육이 16주였던가? 솔직히 그 안에 기본기를 다 배운다는 건 불가능이지.”

    “맞아. 그렇다고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볼 때 중경의 존재 의의는 하나야. 악과 깡을 심어 주는 거.”

    “훈련소처럼?”

    “어. 그래도 눈빛은 좋은 애들이 좀 있던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한테 덤빈 놈들도 합격. 또 그런 놈들이 키우는 맛이 있지.”

    “난 반대. 고작 며칠 욕먹는 것도 못 참아서 폭발하는 놈들은 고쳐 쓴다고 해도 결국 또 폭발해 버리고 말 테니까.”

    “허이구, 48기 최고의 반항아가 누구셨더라?”

    분석도 정확했다.

    종혁은 커피로 살짝 목을 축이며 입을 열었다.

    “만약 그 이론 교육 기간이 늘어난다면?”

    순간 눈에 기광이 스친 동기들은 생각에 잠겼다.

    “흠. 한 24주 정도면 어느 정도 욱여넣을 수 있을 듯한데…….”

    “수면 시간도 조금 줄이고,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시간을 최대한 없애 봐야지.”

    종혁은 주제가 주어지자 격렬하게 토의하는 동기들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래서.”

    “음?”

    “이번엔 중경을 뜯어고치게?”

    움찔!

    종혁은 갑자기 훅치고 들어온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미 생각을 눈치챘다는 듯 초롱초롱 빛나는 동기들의 눈빛에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야,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냐?”

    “어. 너라면 가능할 것 같아.”

    종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 안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일본에 가서 그 동네 경찰들 죄다 때려눕혔는데도 최첨단 과학수사 기술도 들여오고, 임성원 교수님이랑 쿵짝쿵짝하더니 수사 기법을 개발해 각국과 교류를 하는 것도 모자라 자매 결연을 맺고…….”

    “우리는 의전경에서 구르고 있을 때 넌 경찰을 개혁시켰잖아?”

    “……끙.”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아무래도 더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잘 키웠나?’

    “맞아, 너희들 생각이.”

    “그렇지!”

    “아싸, 맞췄다!”

    “조용히 해 봐! 종혁이 이야기하잖아.”

    종혁은 다시 몰리는 시선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어 오묘한 눈빛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다른 동기들에게도 다 물어볼 테지만, 너희들부터 알려 줄게. 너희들 생각처럼 난 이 중경을 근본부터 바꿀 생각이야. 그 첫 번째로 교육 기간부터 늘릴 예정이고, 교육 커리큘럼도 다 뜯어고칠 거야.”

    “오오.”

    “씨발. 진짜 넌…….”

    “하지만 이걸 실현시키려면 선결시켜야 할 조건이 있어.”

    동기들이 종혁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저 일반인들을 한 명의 경찰로 만들어 줄 스승.”

    “어? 자, 잠깐! 그 말은?!”

    “야, 미친 거 아냐?!”

    종혁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은 그들은 입을 떡 벌렸고, 종혁은 싱긋 웃었다.

    “어. 너희들이 맡아 줘라, 그 스승.”

    쿠웅.

    막대한 충격이 그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입을 뻐끔거리던 그들은 벌떡 일어났다.

    “야, 안 돼. 우린 현장도 제대로 못 겪었다고!”

    “맞아! 현장을 모르는데 어떻게 현장 일을 가르쳐! 아무리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봐야 쟤들이 깊게 듣기나 하겠어?!”

    종혁은 그들의 반발을 예측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식을 가르치라는 게 아니야. 솔직히 우리가 아무리 알아 봐야 교수들보다 더 알겠어?”

    “……그럼?”

    “인성을 가르치라는 거야. 경찰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하는 인성.”

    그리고 엇비슷한 또래이기에 가르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그것도 지금 바로 가르치자는 것도 아니고.”

    무려 중앙경찰학교라는 국내 최대의 경찰 양성 교육기관을 근본부터 뜯어고치는 일이다.

    고작 1, 2년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커리큘럼을 뜯어고치는 데만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흠. 그 말은 우리가 순환 보직을 마친 후에 여기에 오라는 거네?”

    “빙고. 난 그래 줬으면 좋겠어.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들을 위해?”

    “야, 씨발. 귀 닫아. 종혁이 또 약 판다.”

    종혁은 키득키득 웃으며 본인을 가리켰다.

    “어차피 너희도 나중엔 나처럼 팀장이 될 거잖아?”

    다들 이르면 30대 초반부터 하나의 팀을 이끌게 될 거다. 늦어도 30대 중반에는.

    그게 경찰대학교 졸업생, 경찰을 경위로 시작하는 경찰대 출신 간부라면 기본으로 주어지는 길이다.

    “인재 수급해야지?”

    “……거봐, 씨발! 약 파는 거 맞잖아!”

    그런데 이번에도 먹고 싶을 수밖에 없는 약이다.

    “그, 그러니까 훗날의 내 새끼를 내가 키워라? 지금 그거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잖아.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아?”

    움찔!

    종혁의 동기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쓸어내리거나 관자놀이를 눌렀다.

    듣기 싫다. 귀를 막고 싶다. 경찰대 시절 종혁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수면시간을 뺏겼던가.

    하지만…….

    “씨발. 씨바알!”

    “졸라 구미 당기네-!”

    종혁은 눈이 저 하늘의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시작한 동기들을 보며 씩 웃었다.

    시간이 흘러 동기들의 흥분이 가시자 종혁은 동기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난 말이야…….”

    그 입에서 다시금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우리 48기가 팀장을 넘어 서장, 청장까지 다 해 먹었으면 좋겠어.”

    훗날 대한민국 모든 경찰청의 정점에 경찰대 48기만 있는 것이다.

    종혁이 경찰대를 택한 이유엔 이런 계획도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1학년 때부터 세심하게 가르치며 자신의 색으로 물들였던 것이다.

    “이건 그 첫 번째 포석이 되겠지.”

    쿠웅!

    “미친…….”

    너무도 거대한 꿈. 계획.

    하지만 종혁이 말하니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온몸에 전율이 내달린다.

    가라앉았던 흥분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종혁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USB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제대 축하 선물. 아마 형사 신고식에 요긴하게 쓰일 거야.”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지능범죄 및 경제 사건들, 현재로선 세상 누구도 감을 못 잡은 사건들이다.

    이제 곧 순환 보직 근무에 돌입해 경제팀으로 갈 동기들. 이제야 드디어 회귀 전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잠자고만 있던 사건들을 아낌없이 내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신고와 민원이 모이는 간편신고관리과라는 명분도 있지 않은가.

    이제 익명을 가장해 다른 형사들에게 정보를 건네는 것도 그만할 수 있었다. 드디어 자신을 위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쓸 수 있었다.

    “아무튼 이따가 보자. 난 아무래도 이분을 만나야 할 것 같거든.”

    지이잉! 지이잉!

    중앙경찰학교 학교장에게 전화.

    종혁은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고, 동기들은 그런 종혁을 망연히 바라보다 이내 풀썩 의자 위로 무너졌다.

    그들은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캔커피를 만지작거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쟤가 저런 그림을 그린 게.”

    “……난 경찰대에 입학하기 전부터라는데 한 표.”

    “하긴 입학 전부터 한상원을 잡았던 놈이니까.”

    “미친 새끼…….”

    하지만 솔직히 부럽다.

    질투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똑같은 시간을 걷고 있음에도 이렇게 아득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어서. 언제나 수십 발자국 앞에서 여기라고 등불을 흔들고 있어서.

    쟤와 내가 대체 뭐가 그렇게 다른 건지 이해가 안 되어 짜증이 솟을 때도 있다.

    “그거 종혁이도 알고 있을걸?”

    “뭐?”

    “아까 봤어. 물어보려다가 말던데? 우리가 왜 자기를 이렇게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가, 나한테 질투심도 안 느끼나 하고.”

    “엥? 그런 거야 그냥 물어보면…… 아.”

    “큭큭. 맞아. 걔가 은근히 소심한 구석이 있잖아.”

    하지만 그렇기에 자신들의 리더다.

    인간성까지 갖췄기에 온전히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

    “청장이라…….”

    그들은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흉흉한 미소를 지었다.

    벅찬 감이 있지만 인생을 걸어 볼 목표로써 꽤 훌륭하지 않은가.

    몸이 달은 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이 흥분, 술로 달래지 않으면 안 됐다.

    “씨파. 나중에 동기들 다 모였을 때 볼 만하겠네.”

    “큭큭큭.”

    그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중앙 경찰학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사 신고식이 뭐임?”

    “……글쎄? 윗기수 선배들에게 물어볼까?”

    “아, 나 들은 적 있어! 수사팀 선배들이 빨래를 엄청 안겨 준다는데? 막 몇 년씩 묵은!”

    “……그럼 이건 그 묵은 때를 벗겨 내는 방법인가?”

    그들은 종혁이 준 USB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굳이?’

    *   *   *

    “마셔요, 최 교관.”

    달그락 학교장이 내민 커피를 본 종혁은 볼을 긁적였다. 학교장이 부른 이유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종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학교장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최 교관. 덕분에 애들이 빠릿빠릿해졌다고 합니다.”

    군대 훈련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중앙경찰학교.

    가르치는 지식이 아니라 통제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윽박지르고, 얼차려를 주며 교육생들을 통제했다.

    벌점과 퇴소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기에 그동안 교육생들은 교관들의 그런 통제에도 군말 없이 따라 주었다.

    하지만 따라 준다는 게 불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중앙경찰학교는 군대처럼 강제성이 있는 게 아니다.

    퇴소는 교육생들도 휘두를 수 있는 칼이었다.

    매 기수마다 교관에게 대드는 사건이 일어나고, 심지어 폭행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다. 안에서 쉬쉬해서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 일로 교육생들의 기가 팍 눌렸다. 교관들이 언제든 자신들을 무력으로 짓누를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폭력이란 원초적인 공포가 교육생들의 심리에 족쇄를 채워 버렸다.

    종혁이 정말 큰일을 해 준 것이었다.

    ‘서론이 너무 장황한데.’

    이럴수록 학교장이 소환한 이유가 더 명확해진다.

    그리고 그런 종혁의 생각은 여지없이 맞아떨어졌다.

    “그러니 여기서 멈춥시다, 최 교관.”

    달그락.

    찻잔을 내려놓은 종혁은 학교장을 응시했다.

    “캐삭빵, 아니 퇴소를 철회하라는 겁니까?”

    “이미 너무 많은 숫자가 퇴소했어요. 그들마저 퇴소시킨다면 이번 기수에서 뽑아야 할 정원을 맞출 수 없을 겁니다.”

    “그건 이야기가 된 거 아니었습니까?”

    “과한 건 안 좋죠.”

    ‘하, 이 양반 봐라?’

    출셋길을 알려 줬더니 그새 말을 바꾸고 있다.

    ‘그래. 중경의 교육 기간을, 아니 당신의 목숨줄을 늘릴 방법을 알았다는 거지? 내가 다 알려 줘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찰 예산이 늘어났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물론 예산은 늘릴 테지만, 종혁은 이 순간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너 아웃.’

    교육자가 되면 안 될 부류의 인간이다. 그게 순경을 양성하는 기관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종혁은 어디까지 가나 보자며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하지만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순 없습니다. 교관이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어떤 교육생이 믿고 따르겠습니까.”

    “그 신념이 택문이의 체면보다 중요한 가요?”

    ‘개새끼!’

    학교장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아예 퇴직을 시켜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고맙네.’

    “전…….”

    표정이 완전히 굳은 종혁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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