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73화 (27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73화>

학교장실에 내려앉은 침묵이 숨통을 압박한다.

그리고 학교장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중경의 교육 기간을 늘린다?’

솔직히 그라고 왜 중경의 문제에 대해 모르겠는가.

고작 32주다. 그나마 이것도 최근에서야 24주에서 32주로 늘어난 거다.

하지만 그래 봤자 교내 교육과 현장 실습 시간을 나누면 반밖에 되지 않는 16주.

16주 동안 가르쳐 봤자 얼마나 가르칠 수 있을까. 그저 겉핥기로만 가르친 후 실습에 내보내는 것이다.

그 결과 당연히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그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음에도 현행을 유지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교육 기간이 늘어난다는 건 곧 학교장인 그의 임기와 권한도 늘어난다는 것.

당연히 혹할 수밖에 없다.

“……되겠나?”

“아실지 모르겠지만, 곧 경찰 예산이 더 늘어나게 될 겁니다.”

종혁은 그렇게 말했으나 사실 예산이 증대될 예정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될 건 없었다. 사실로 만들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돈이라면 차고 넘치는 종혁에게 적당한 이유를 붙여 후원금이라는 명분으로 지원하면 간단한 문제였다.

“그걸 중경으로 돌린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자네 뭔가를 알고 있군.”

종혁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고, 학교장의 눈이 데구루루 돌아갔다.

“으하하하핫! 미안합니다. 내가 최 교관의 깊은 뜻을 오해했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다 보니 화법이 많이 어설픕니다.”

“아니에요, 아니야. 그 나이에 이 정도면 훌륭하죠. 우리 경찰의 미래가 참 밝습니다. 뭐 필요한 건 없습니까?”

종혁은 눈을 빛냈다.

“있습니다.”

“오, 뭔데요?”

“이번 기수 정원 미달. 커트라인 안쪽으로 100명을 쳐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움찔!

종혁은 다시 표정이 굳는 그를 향해 이유를 설명했다.

“교육생의 수준을 알리자라…….”

“예. 하지만 교육생의 수준이 미달된 게 어떻게 치안감님의 잘못이겠습니까. 다…… 예, 그런 거죠.”

교관들의 방만한 교육 탓.

학교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킹메이커라고 불린다지?’

그동안은 최기룡과 이택문이 종혁을 키우기 위해 그런 수식어를 붙여 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말이 나온 이유가 있었다.

‘새까맣게 어린놈이 능구렁이를 품고 있군.’

학교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런. 내가 너무 교관들을 믿었나 보군요. 지금이라도 알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더 고맙죠.’

일이 더 쉽게 풀리게 됐으니 말이다.

‘자…… 이제 발버둥 쳐 봐라, 개새끼들아.’

커트라인 안쪽이라고 했지, 밑에서부터라곤 안 했다.

어떻게든 상위권으로 올라가기 위한 발버둥. 그건 분명 표시가 날 수밖에 없었다. 또 위기감을 느끼면 서로 뭉치기도 할 터.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뭐 마실래요?”

“주시는 거라면 무엇이든 감사히 먹겠습니다.”

학교장실에 우렁찬 웃음꽃이 피었다.

*   *   *

“너 퇴소. 너도 퇴소.”

고작 3일이다.

3일 만에 무려 60명이 퇴소 절차를 밟았다.

훈련생들의 심장이 아기 주먹보다 더 작아졌다.

의전경이나 군대, 운동을 한 사람들이 말하길 파라다이스.

훈련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많이 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중앙경찰학교는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다. 언제 목을 베어 버릴지 모르는 칼날이 사방에서 번뜩이는 지옥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최하위권만 퇴소를 당한 거랄까.

하지만 그게 큰 착각이란 걸,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란 걸 그들은 알지 못했다.

“168번 퇴소. 이유 벌점 초과 및 의지박약.”

쿵!

체육관에 경악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제, 제가 말입니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168번이다. 하위권이지만 분명 안전선에 있었던 그.

“어. 꺼져. 다들 뭐하고 있지? 계속해.”

종혁은 교육생들의 표정을 빠르게 훑었고, 그렇게 매정히 등을 돌리는 종혁의 모습에 168번 교육생은 이를 악물며 돌아섰다.

‘이거 꼭 중경에 재소한다! 어떻게든 재소할 거야!’

그때였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직권 남용 좀 그만하십쇼!”

“직권 남용?”

‘이름이 도병훈이라고 했던가?’

유도 국대 후배였다.

종혁은 억울함과 분함이 가득한 그 얼굴에 코웃음을 쳤다.

“뭐가 직권 남용이지? 그리고 또 뭐가 그렇게 억울한데?”

“지금 눈에 안 차는 교육생들을 모두 쫓아내는 거 아닙니까! 당신의 잣대를 우리에게 들이밀지 말란 말입니다!”

“잣대라…….”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계속해 봐.”

“우리가 이 중경에 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십니까? 몇 년을 코피 쏟아 가며 노력했는지 아시냔 말입니다-!”

도병훈의 외침은 현재 얼어붙은 훈련생 전체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푸흐흐. 하, 이거 미치겠네. 168번 컴온.”

“예? 예!”

작은 희망을 품은 168번은 다급히 달려왔다.

“168번. 3일 전 몇 시에 잤지?”

“예? 여, 열한 시에 잤습니다!”

“그날 복장 불량과 수업 중 졸아서 지적받은 횟수는?”

“……7번입니다.”

“옆 사람이랑 잡담 나누다가 걸린 것까지 13번이잖아, 씨발놈아. 됐고. 그럼 저번 평가 성적은? 입교부터 지금까지 체력은 몇 퍼센트나 향상됐지? 대가리에 담은 법률의 개수는? 판례는? 사건의 숫자는?”

심지어 체포술 훈련 땐 장난을 치거나 미적거리기까지 했다.

“…….”

종혁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168번을 무시하며 도병훈을 봤다.

“들었냐? 얘 이런데도 11시에 잤단다.”

도병훈의 얼굴도 빨갛게 달아오른다.

“몇 년을 죽어라 공부하면 뭐하는데? 이미 이렇게 정신줄을 놨는데. 이래도 내가 내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냐?”

“하, 하지만 그건 너무 FM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야. 야, 이 하나만 아는 머저리 새끼야. 그 FM을,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칼 맞고, 차에 치여 뒤지는 곳이 현장이야. 그리고…….”

종혁은 도병훈의 가슴을 쿡 찔렀다.

“그렇게 FM을 하찮게 여기는 너 때문에 동료 경찰과 죄 없는 시민이 사망하는 거고. 그게 살인자 아니면 뭐냐? 너 살인자 되려고 시험 쳤냐? 오, 씨발. 훌륭한데?”

“그, 그건…….”

“지금 학교 수련회에 온 줄 알아-?!”

체육관을 쩌렁쩌렁 울리는 종혁의 외침에 교육생들은 어깨를 움츠렸다.

“다들 잘 들어. 너희가 사회에서 어떤 지랄을 해서 여기에 왔는지는 상관없어. 왜? 너희들이 택한 일이니까. 하지만 여긴 범죄자를 때려잡고 국민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런데! 그렇게 배워 놓고도 매뉴얼을 무시한 너 하나 때문에 취객이 도로에서 얼어 죽고!”

종혁은 도병훈의 발목을 걷어찼다.

쿠웅!

“컥!”

“귀찮아서 훈방으로 되돌려 보낸 경범죄자가 신고한 PC방 알바를 칼로 찔러 죽이고! 경찰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던 아이와 엄마가 스토커에게 찔려 죽고-!”

작은 실수, 부주의 때문에 동료 경찰이 차에 치이고, 칼에 찔려 사망한다.

“알아들었냐, 이 안일한 새끼야? 니들도 마찬가지야! 이 새끼처럼 생각하는 놈 있으면 지금이라도 짐 싸서 꺼져! 괜히 죄 없는 사람 죽이지 말고!”

국민을 지키라고 있는 게 경찰인데, 그 경찰 때문에 국민이 죽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을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이젠 좀 그만했으면 싶었다.

종혁은 침묵이 내려앉은 체육관을 둘러보다 싸늘하게 일갈했다.

“168번, 아니 오종수 씨는 꺼지시고. 도병훈 넌 항명으로 3점 감점.”

“…….”

종혁은 교육생들을 훑어봤다.

“내 말에 불만이 있으면 언제라도 찾아와. 손 들어. 내 교육관이 마음에 안 들어서 완력으로 쫓아내려고 오는 것도 오케이. 하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좆같아서 찾아오는 거면 찢어 버린다.”

“…….”

‘진짜 FM만 지키자, FM만. 개새끼들아.’

일부를 제외하면 죄다 일선 파출소로 가야 할 교육생들이다.

그렇기에 FM, 매뉴얼은 뼈가 부러져서라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동료가, 그리고 본인이.

세상 사람들 전체가 융통성 있게 살아도 FM을 지켜야 하는 게 경찰이었다.

‘뭐, 이렇게 말해도 알아 처먹겠냐마는.’

그래도 가르치고 주지시켜야 하는 게 교관으로서의 할 일이었다.

“뭐해? 계속해. 또 전원 감점받고 싶냐?”

“추, 충성!”

종혁은 다시 봉을 드는 교육생들을 가만히 응시하며 차트를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음?’

발신자를 확인한 종혁은 히죽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어, 그래. 나야.”

이충호는 걸음을 옮기는 종혁을 차갑게 노려봤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

식당에 젓가락, 숟가락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울린다.

며칠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훈련 강도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것도 있지만, 오늘 종혁의 말 때문이기도 했다. 숙연함이 식당을 짓눌렀다.

“씨발. 괜찮냐, 병훈아?”

“……몰라요, 씨발.”

얼굴을 구긴 도병훈은 시큰거리는 발목을 주물렀다.

‘그 인간 옷깃을 안 잡고도 정확히 발목을 후렸어.’

도병훈 본인의 몸무게가 91킬로그램이다.

그럼에도 종혁은 너무도 쉽게 자빠트려 버렸다. 몸의 중심을 흔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 아득한 실력 격차에 이가 악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이가 악물어지는 건 종혁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난 대체 왜 경찰이 되려고 한 거지?’

분명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모르겠다.

“다현이 형. 형은 왜 경찰이 되려고 했어요?”

“나야 뭐…….”

배운 것 하나 없이 운동만 하던 병신 놈에게 정년까지 보장된 일은 몇 개 없어서였다.

지방직인 소방관보다는 편해 보이면서 국가직인 경찰. 하지만 오늘 종혁의 외침을 들으니 그 이유를 입에 담을 수가 없다.

그런 정다현의 마음을 이해한 도병훈은 이충호를 봤다.

“충호 형은요?”

“……아, 난 아버지가 경찰이셔서.”

“죄, 죄송해요.”

“됐어. 오래전에 돌아가셨는걸, 뭐. 그보다…… 좀 짜증 나더라.”

“누구? 최 교관?”

“응. 자기가 겪어 보지도 않았을 일들을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걸 보니 역겹더라고.”

‘범죄자를 때려잡고 국민을 지킨다고? 그럼 왜…… 난 지키지 못한 거지?’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9살 어느 무더운 여름날, 선풍기 바람도 덥기만 해 열어 놓은 현관문으로 들어온 강도가 일으킨 참변이.

도망치라고 외치던 아빠의 찢어지는 외침이.

여기에 숨어 있으면 괜찮을 거라며 장롱문을 닫던 엄마의 서글픈 미소가.

하지만 범인은 결국 잡히지 않았고, 친척들은 유산을 가로채고 자신을 길거리로 내쫓았다.

그러다 흘러 들어간 서울역. 매일 구타를 당하고, 적선을 해 오라 한겨울 반바지만 입은 채 구걸을 해야 됐다.

그때 지금의 어머니에게 구해졌다. 아니, 삶을 구원받았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강도도 어머니가 복수를 할 수 있게 도왔고, 서울역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놈들도 어머니 덕분에 죽일 수 있었다. 유산을 가로챘던 친척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국민을 지키거나 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말만 그럴듯한 무능한 돼지 새끼들이지.’

정말 사람을 구해 주는 곳은 회사였다.

오직 회사만이 삶을 구해 주는 곳이었다.

“그, 그래?”

다현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럼 우리랑 같은 나이에 그걸 다 겪어 봤겠어?”

‘아, 아닌데. 분명 겪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절규 같았는데…….’

그만큼 처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부끄러워져 경찰을 지망한 이유를 입에 담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금 저것도 봐.”

식기를 씻고 식당을 나선 이충호는 참 타이밍 좋다며 멀리서 걷고 있는 종혁을, 한 여성과 팔짱을 끼며 걷는 종혁을 가리켰다.

“한 잔만 더 하자! 한 잔 더! 오빠앙!”

“이게 미쳤나. 야, 팔짱 안 빼냐? 숨질래?”

숨길 생각조차 없는지 큰 목소리로 외치는 둘.

이충호는 피식 웃었다.

“봤지? 저놈도 말만 번지르르한 새끼야.”

“……씨발. 좆같네.”

작게 쌓이던 존경심이 와르르 무너지자 그 자리를 채운 건 배신감과 분노였다.

“야, 도병훈. 아까 저 새끼가 자기 교육관이 마음에 안 들면 완력으로 쫓아내도 된다고 했지?”

“응. 그랬지.”

“애들 동원해. 날 잡아서 씨발 맞짱 뜰 테니까. 감히 이 신성한 중경에 술 취한 여자를 데려와?!”

이충호는 이를 가는 다현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최종혁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열렸군.’

어머니가 건네준 본사에서 내려온 지령.

최종혁에게 접근해 친해져라. 그리고 널 픽업하게 만들어라.

순경시험 합격이라는 지령 아닌 지령 따위가 아니라, 정말 지령다운 지령이었다. 이게 그의 인생에 있어 첫 번째 지령이었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과연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을까?’

그렇게 개박살 났을 때 슬그머니 접근해서 위로해 준다면?

그러면서 훈련생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큭큭.”

지난 3일간 관찰을 한 덕분에 견적이 잡혔다.

리더십이 강한 사람일수록, 승승장구를 해 온 사람일수록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법.

‘내게 기대게 아니 집착하게 만들어 주지.’

이충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이틀 후, 다시 체육관.

무도수업 보조를 위해 오랜만에 유도복을 입은 종혁은 먼저 대기하고 있던 여 사범을 향해 정중히 다리를 모아 허리를 숙였다.

“최종혁 경정입니다.”

여자특공대 2기의 정미정 사범.

그녀는 종혁의 옷차림을 빤히 살피곤 흡족하게 웃었다.

퍼억!

갑자기 어깨를 때리는 우악스런 손길에 깜짝 놀랐던 종혁은 옅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정미정이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잘 부탁한다.”

“저 역시 잘 부탁드립니다.”

“가자.”

그녀를 따라 체육관에 들어가자 하얀 도복을 입은 백여 명의 교육생들이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음?’

종혁은 자신을 향해 모이는 시선에 미간을 좁혔다.

어제부터 묘하게 시선이 모였는데, 오늘은 아주 노골적이다. 대다수가 적개심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자, 오늘도 즐거운 무도수업 시간이 찾아왔다. 다들 체조 대형으로 벌려!”

“…….”

종혁과 크게 외친 정미정의 눈썹이 동시에 꿈틀거렸다. 교육생들이 움직일 생각도 안 했기 때문이다.

정미정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 자식들이?! 내 말 안 들려?!”

반사적으로 움찔 몸을 굳힌 교육생들이 이를 악물며 제자리를 지킨다. 그에 정미정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종혁은 아니었다.

어제 한 교육생이 와서 고발을 했다. 교육생들이 뭔가를 꾸미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때, 그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사범님, 죄송합니다. 저기 방에 여자나 끌어들이는 문란하고 저급한 최 교관과 같이 수업을 듣지 못할 것 같습니다!”

“뭐, 뭣?”

‘여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번에 파악이 됐다.

수업 거부다.

그것도 무도수업을 택한 교육생 전부가 수업 거부를 하고 있다. 적개심 가득한 눈빛이 그 증거였다.

“오, 옳소!”

“말로만 하면 누가 못해!”

“물러가! 꺼져!”

“꺼져라! 꺼져라!”

순식간에 체육관이 달아오르고, 정미정은 처음 겪는 사태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때 손을 들었던 사내, 정다현과 20명 정도의 덩치들이 껄렁이며 앞으로 나섰다.

“어이, 최 교관. 자기 교육관이 마음에 안 들면 완력으로 쫓아낼 수 있다고 했지? 맞짱 뜹시다, 씨발.”

‘지가 아무리 괴물이어도 스무 명을 상대로 어쩔 건데?’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보는 정다현과 교육생들의 모습에 종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종혁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큭큭큭큭! 아, 씨발. 푸하하하하하하하!”

“뭐, 뭐야!”

“와, 진짜 돌겠네. 왜 애새끼들은 말로 하면 알아 처먹지를 못하지?”

손톱만큼도 기대 안 하길 잘한 것 같다.

종혁은 눈빛이 여전한 훈련생들을 훑어보는 척 이충호를 눈에 담았다. 뭔가 뜻대로 되어 간다는 듯한 비릿한 미소.

‘그래, 네가 부추겼다고 했지?’

정다현, 이충호, 도병훈 이 셋이 몰려다니는 걸 왜 모를까.

“그래. 뜨자, 떠.”

‘너흰 아무래도 반 죽어야겠다.’

종혁은 허리에 찬 벨트를 풀며 도복 상의를 느릿하게 벗었다.

그렇게 순순히 종혁이 싸우려는 자세를 취하자 순간 당황했던 정다현과 일행은 이내 얼굴을 구기며 주먹을 쥐었다. 교육생들은 결국 시작되려는 싸움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에 몸을 떨며 흥분에 젖어 갔다.

그 순간이었다.

“누가 우리 대장님 괴롭혀-!”

체육관을 짜랑짜랑하게 울리는 여성의 외침.

모두가 놀라 체육관 입구를 쳐다봤다.

이십대 중반에서 후반의 남녀들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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