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72화>
“하악! 학!”
햇볕이 쏟아지기 시작한 중앙경찰학교 운동장.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교육생들의 입에서 가쁜 숨이 쏟아진다.
그런 그들의 귀로 종혁의 우렁찬 외침이 내리꽂힌다.
“새로운 훈련교관이 왔다고 해서 좋아했겠지만, 너희가 동경하는 엘리트 중 엘리트 본청에서 왔다고 해서 좋아했겠지만! 미안하다! 난 너희를 합격시키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총 32주의 교육 기간 중 고작 16주만이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간이다.
인권 소양, 수사 법률, 현장 실무, 현장 대응 등 경찰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16주란 소리다.
이후엔 현장 투입. 현장에서 한가롭게 공부를 할 틈이 어디 있을까.
즉, 못 따라올 놈들은 여기서 걸러 내야 한단 소리다.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니 말이다.
‘알아, 씨발!’
‘뛰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준비 운동도 하지 못한 채 발에 땀나도록 뛰고 있다. 이미 몇 명은 다리에 쥐가 나 아침구보를 포기한 상태.
좋은 소리가 나오는 게 이상했다.
‘앞으로 15분! 15분만 버티면 돼!’
군대의 아침점호와 똑같은 의미인 중앙경찰학교의 아침맞이는 총 30분이다.
종혁은 얼굴이 구겨지는 교육생들을 무심히 둘러봤다.
‘여기까지는 나름 따라오네.’
솔직히 이런 느린 구보도 따라오지 못하면 정말 실망했을지 모른다. 종혁은 교육생 중에서 호흡을 다스리려 노력하는 이들을 체크했다.
그중엔 놈들이 심은 끄나풀 이충호도 있었다.
‘놈들이 그냥 아무나 무작정 보냈을까?’
아닐 거다. 끄나풀이다. 중요 정보에 접근을 하고, 차단을 할 수 있는 요직에 가야만 하는 놈들. 그러려면 두각을 드러내야 한다.
성적과 체력 모두.
즉, 중상위권 이상은 모두 유심히 지켜봐야 될 대상이었다.
‘일단 근성부터 체크해 볼까?’
종혁은 점점 속도를 늦추며 교육생들을 앞으로 보냈다.
그에 교육생들의 표정이 살짝 밝아진다.
덩치와 다르게 체력이 나쁘구나, 이제 곧 끝나겠다 그런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부터 속도를 높인다! 나보다 늦는 놈은 감점! 뛰어……!”
감점이 쌓이고 쌓이면 퇴소인 중앙경찰학교.
아침부터 날벼락이 떨어진 교육생들의 입에서 결국 된소리가 터져 나왔다.
“씨바알-!”
“달려!”
“으아아아아아!”
우르르르!
순식간에 대형이 무너지고, 어떻게든 앞서가기 위한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참 한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종혁이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다.
옅게 웃은 종혁은 발목에 힘을 주며 땅을 강하게 박찼다.
‘그럼 나도 달려 볼까?!’
퍼억!
태릉선수촌 시절, 자칫하면 육상선수들도 놓치던 종혁의 주력이 발휘되었다.
사람이 녹초가 되는 데 얼마나 걸릴까.
교육생들은 그리 긴 시간은 필요 없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10분. 고작 10분이면 충분했다.
“허억! 헉!”
“끄헉! 웨에엑!”
운동장 여기저기, 누군가는 대자로 뻗고, 또 누군가는 헛구역질을 한다. 제대로 서 있는, 아니 끝까지 따라온 교육생이 10퍼센트를 넘기지 못했다.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씨발.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네.”
아무리 군대 훈련소와 비교하면 파라다이스라는 소리를 듣는 중앙경찰학교라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다.
놈들의 근성을 체크하기 위해 아주 약간, 운동을 좀 한 일반인 기준으로 아주 약간 무리를 했을 뿐인데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똑바로 서 있는 놈이 거의 없다.
명색이 경찰이 되려는 놈들이 말이다.
‘그렇게 경찰을 바꾸려 노력했는데…… 나 뭐했냐, 씨발.’
짜증이 정수리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정렬 안 해?! 자세 똑바로 안 잡아?! 용모 단정히 안 해?!”
“저, 정렬!”
“요, 용모 단정!”
종혁은 그들이 정렬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이크를 들었다.
“일단 전원 감점.”
흠칫!
교육생들이 다급히 고개를 쳐든다.
종혁은 그 눈들에 서려 있는 억울함과 반발심에 더 짜증이 났다.
“본 교관은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겨우 이따위 정신력을 가지고 왜 경찰을 하겠다고 시험을 본 걸까. 그냥 필기 시험만 있다면 말을 안 한다. 하지만 순경시험엔 엄연히 체력 평가도 있다.
“중경에 오기 전 이런저런 말들을 들어서 내심 기대를 했어.”
방금 전 교관들도 나름 잘 빠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모습이 지난 11주 동안 배운 전부야? 고작? 이게? 너희 그동안 뭐했냐?”
‘군대는 억지로 끌려간 거기라도 하지.’
그런데 이놈들은 경찰이 되겠다고 자진해서 온 놈들임에도 간절함이 단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꼭 경찰이 되고 싶다는 간절함이.
이건 오늘도 일선 현장을 누비며 목숨을 거는 동료 경찰들을 욕보이는 행위였다.
현재 경찰이 여러모로 변화를 하는 중이라서 내심 기대를 했던 종혁으로선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니, 너흰 왜 경찰이 되고 싶은 거냐? 무슨 이유로 코피 흘려 가며 공부한 거냐? 경찰이 철밥통 공무원이라서? 파출소가 널널해 보이니까 월급도둑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님 폼 나 보여서?”
“…….”
아무런 말을 못한 채 고개를 숙이는 교육생들.
종혁은 그 모습에 완전히 실망해 버렸다.
“됐다. 그냥 너희 모두 퇴소. 끝. 시마이. 땡땡땡!”
퍼억! 삐이익!
종혁은 들고 있던 마이크를 집어던지며 돌아섰고, 끔찍한 말에 다급히 고개를 든 교육생들은 교관들과 함께 멀어지는 종혁을 황망히 쳐다봤다.
“퇴, 퇴소?”
“……이렇게 허무하게? 11주를 버텼는데?”
“씨발, 이건 너무하잖아!”
혼란에 빠진 그들은 남겨진 교관을 응시했고, 그중엔 이충호도 있었다. 그는 이 훈련소에 온 이후 가장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남겨진 교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해! 식당으로 안 가고!”
“……추, 충성!”
일단 한시름 놓은 그들은 혹여 교관의 마음이 바뀔까 얼른 식당으로 향했다.
* * *
전원 퇴소라는 폭탄에 화들짝 놀란 교관들이 다급히 종혁을 달랜다.
“아이고, 최 팀장. 첫 만남부터 너무 빡센 거 아냐?”
“빡세긴요. 정신 상태부터 글러먹은 놈들인데요. 아무리 순경 지망이라지만…….”
“최 팀장이 이해해. 고작 16주 배워서 쟤들이 뭘 알겠냐.”
“그래.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마음뿐이지. 군대 훈련소처럼.”
‘……이 양반들부터 문제였구만?’
16주이기에,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기에 굴려서라도 더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걸까.
아니다. 아마 교관이 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매너리즘에 빠진 거겠지.’
이해한다.
그래서 씁쓸할 뿐이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적는 거야?”
“아, 운동장 상태에 대해 적고 있었습니다. 아침맞이 운동에 대해 개선할 점도요.”
교관들의 눈빛이 묘해진다.
‘역시 그냥 한 말이었구나!’
애초에 전원 퇴소는 말이 안 된다.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종혁은 본청에서 온 간부가 아닌가.
중앙경찰학교의 직속 단체인 본청.
그런 곳의 간부가 계속 전원 퇴소를 고수했다가는 교관인 본인들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인사 고과라든지, 훈련실태 조사라든지, 감찰이라든지 말이다.
“어이구. 뭘 그런 걸 적고 그래?”
“너무 성실한데? 젊어서 그런가?”
종혁은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 그들의 모습에도 짜증이 났지만, 이내 꾹 참아 내며 억지로 웃었다.
“제가 간부님들께 예쁨 좀 받잖습니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요.”
종혁은 이걸 자신의 실책이라고 생각했다.
‘경찰대뿐만 아니라 중경도 살펴야 했어.’
이들의 말처럼 군대 훈련소처럼 버티는 장소가 아니라, 경찰이 되기 위한 함양을 기르는 장소가 되어야 했다.
그랬다면 오늘 마주한 교육생들의 눈빛부터 달랐을 것이다.
‘최재수나 한승연 같은 순경들을 겪었음에도…… 쯧.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어. 조금씩 바꿔 가면 돼.’
솔직히 이번 기수는 많이 늦었다.
하지만 다음 기수부터는 조금씩 달라지게 될 것이다.
‘최소한 치안 조무사란 말은 듣지 말아야지, 씨발.’
종혁은 그렇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충호를 제외한 그 조직의 다른 끄나풀을 찾기 위해 온 중앙경찰학교에서 해야 될 일이 생겼다.
‘……씨발, 대한민국 경찰은 내가 다 바꾸지.’
어쩔 수 없다. 원래 간절한 놈이 손해를 보는 거였다.
그런 종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원이라는 말에 교관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일단 제가 주욱 둘러보고 궁금한 점을 말하겠습니다. 그때 귀찮으시겠지만…….”
“그럼! 당연히 설명해 줘야지!”
“언제든지 물어봐!”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충성.”
교관들은 갑자기 굴러 들어온 돌이 나긋나긋하게 굴자 그들은 짓궂게 웃었다.
“최 팀장, 그런데 퇴소는 어떡 할 거야?”
“맞아. 그렇게 말했는데 아무도 퇴소시키지 않으면 교육생들이 얕잡아 볼걸? 내가 좋은 방법 알려…….”
“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정말 퇴소시킬 테니까.”
“……뭐?”
“뒤에서 10명 정도요.”
작년부터 지금까지 중앙경찰학교를 거쳐 간 기수 중 최고 기수라는 평가를 받는 게 이번 기수라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11주를 훈련받았는데도 이 모양 이 꼴이라면 더 이상 봐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점수가 아슬아슬한 놈들. 오늘 먹인 벌점이라면 충분히 퇴소시킬 사유가 됐다.
게다가 저 한심한 이들 중 한 명이라도 더 제대로 된 경찰로 육성하기 위해선 일단 통제부터 되어야 했다.
‘그 방법으로 가장 손쉬운 게 공포지.’
지난 몇 년간의 수고가 언제든 물거품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
그렇게 되면 놈들도 분명 어떤 반응을 보일 터.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었다.
“퇴소는 어느 선배님께 말하면 됩니까?”
“아마 지금 행정실에…….”
“감사합니다. 충성.”
종혁은 돌아서며 핸드폰을 들었다.
“나다. 아, 다름이 아니라 우리 기수 복무 언제 끝나냐? 어, 끝났어? 언제? 어제? 근데 왜 말 안 했는데, 개새끼들아.”
교관들은 멀어지는 종혁을 멍하니 바라보다 기겁했다.
“씨발?!”
굴러온 돌이 첫날부터 사고를 치려고 하고 있었다.
최하위권 10명의 퇴소 소식에 중앙경찰학교가 얼어붙었다.
자진 퇴소나 벌점 누적으로 일주일에도 몇 명씩 퇴소를 하기에 퇴소가 일상이기도 한 중앙경찰학교.
그러나 여태껏 단 한 번도 10명이 무더기로 퇴소된 적은 없었다. 교육생들은 패닉에 빠지게 됐다.
“미, 미친 새끼.”
종혁은 단 몇 분 만에 미친놈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씨발,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흐으윽!”
“울지 마! 왜 울어!”
혼란에 빠진 교육생들.
이충호는 턱을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보통 또라이가 아닌데?’
번번이 회사의 일을 방해하던 종혁이 중앙경찰학교로 온다는 소식에 본사가 뒤집어졌다.
그에 회사는 서둘러 그 목적을 조사했는데, 참으로 황당한 이유였다.
너무 빠른 승진가도에 주위 간부들이 질시를 한다는 것. 그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몸을 숨기는 것.
그것이 종혁이 중경으로 오는 이유라는 게 회사의 조사 결과였다.
그래서 본사는 이충호에게 하나의 지령을 하달했다.
“흐음…….”
이충호가 지령의 내용을 떠올리는 그 순간이었다.
“충호야!”
뒤에서 달려온 덩치 큰 남성이 이충호를 덮친다.
순간 눈빛이 서늘해졌던 이충호는 이내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리곤 세웠던 손끝의 힘을 풀었다.
“다현아.”
정다현.
역도로 태릉까지 갔던 인재로, 어깨 인대가 끊어지며 특채가 아닌 순경 공채로 중경에 오게 되었다.
“우리 허약한 충호 괜찮아? 퇴소자들 때문에 많이 놀라진 않았어? 어이구, 가벼운 것 좀 봐. 이러다 성적으로 번 점수 체력 평가로 다 깎아 먹으면 어떡해? 형이 같이 운동해 줄까?”
“……네가 너무 튼튼하다는 생각은 안 하냐?”
“내가? 에이, 난 평균이지. 진짜 괴물은 그 인간이고.”
“그 인간?”
“최종혁. 전 유도 국가대표 역대 최연소 주장이자, 역대 최연소 수석코치. 피지컬로는 모든 스포츠 중 최강이라는 레슬링도 그 인간 앞에선 고개도 못 들 정도였어.”
종혁에 대한 정보다. 본사에선 간략하게만 보낸 프로필을 보강할 수 있는 정보.
이충호의 눈이 빛났다.
“힘으로 누른 거야?”
“응. 그 인간 프라이드가 미칠 듯이 강해서 당시 누가 유도 국대를 무시하면 10년 위의 선배고 뭐고 멱살부터 잡았거든. 그러면서도 유도 선배들은 또 깍듯이 모시고…… 어, 야! 병훈아!”
“왜요?”
“너 최종혁 그 인간 본 적 있지? 너 유도 국대였잖아.”
“글쎄요? 전 그 황금 세대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선배들이나 코치님들에게 듣기론 정말 주장다운 주장이었대요.”
“황금 세대?”
“방콕에서 시드니까지 유도 메달은 죄다 한국 차지였잖아요. 지금도 성적이 나쁘진 않지만, 진짜는 그 인간 세대죠. 정확히는 그 인간이 만들고 이끈 세대. 유도 명문 학교에서 시행되는 훈련법과 스포츠 의학, 영양학 모두 죄다 그 인간이 개발한 걸 따라 한 거잖아요.”
당시 유도 황금기를 이끈 사람이 바로 종혁이었다.
지금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중학 유도선수들의 제1지망은 종혁의 모교인 동일고다. 종혁의 흔적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동일고.
“그렇게 머리도 좋아서 경찰대를 수석으로 입학했잖아요. 그때 참 말이 많았다던데…… 전 세계를 발밑에 둘 왕이 경찰 됐다고.”
“……중2병이야?”
“운동선수 유치한 건 다현이 형도 알면서.”
“들었지? 그렇대.”
“……정말 괴물이네.”
듣기만 해도 알 것 같다.
하지만.
‘흠…… 그래도 언제든 제거할 수 있을 듯한데? 왜 가만 놔두는 거지?’
이충호에겐 오픈된 정보라고는 간략하게 정리된 프로필이 전부였기에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어머니와 이야기를…….’
“야, 애비 없는 놈. 또 병신이랑 어울리냐?”
편모가정의 외동아들로 위장한 이충호.
이충호는 또 시비를 거는 이십대 중반의 사내에게 중지를 치켜세워 주곤 걸음을 옮겼다.
오전 학과 수업을 가야 할 시간이었다.
“저 새끼가!”
* * *
“이충호. 1983년 태생. 7살 때 입양. 편모가정이며 중학교 자퇴 후 검정고시 패스. 어머니의 이름은 정옥희. 나이 49세.”
이충호가 장님이 문고리 더듬듯 종혁에 대한 정보를 알아 갈 때, 종혁은 이충호의 배 속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다.
“현재 시장에서 2000원짜리 백반집을 운영하며 돈 없는 노인들을 먹여 살리는 중…… 지랄.”
순수한 마음으로 이런 짓을 할 놈들이 아니다.
“김 대리가 말한 안가 관리인인가 보군.”
작전이 실패하거나 작전 성공 후 잠시 머무는 안전 가옥. 회사에는 그 안전 가옥을 관리하는 이들이 따로 있다고 했다.
“나탈리아, 이년은 이게 몇 번째 신분일까요?”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그년이 시장에 나타나기 이전, 즉 8년 전부터의 행적이 불분명해요. 이충호도요. 정말 7살 때 입양이 됐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아요.
둘 모두 8년 전에 그 시장에 등장을 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존재했다는 흔적 자체가 없다.
“8년 전이면 IMF 때문에 한참 고통을 겪을 시기군요.”
수없이 망하고 또 새로 생겨나던 혼란과 암울의 시기.
하지만 이 자료를 보니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숨기엔 참 좋은 시기로 보였다. 아니, 새로운 신분을 만들기에 너무도 좋은 시기였다.
“진짜 지랄 났다.”
잔꾀가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걱정 마세요. 다른 건 다 위조해도 결코 위조할 수 없는 게 있잖아요.
“지문.”
-정답. 후훗.
“하지만 그 당시에는 지문 데이터베이스가……. 하긴 그 이전의 행적만 알아도 소득이겠네요.”
-그래서 인력을 더 충원해야겠지만, 나의 최를 위한 일인걸요.
이미 김 대리 등이 지금 신분을 얻기 전에 머물렀던 곳에 감시 인력이 파견되어 있는 상태다.
혹시라도 다시 올 걸 대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안가 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레이더에 걸렸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놈들의 몸통을 타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부담을…….”
쿵쿵!
“최 팀장!”
“……일단 끊도록 하죠.”
노트북도 닫은 종혁은 배정받은 숙소의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배님?”
“학교장님께서 찾으셔.”
“학교장님께서 말입니까? 무슨 일로?”
“내가 알아?!”
종혁은 버럭 화를 내는 교관을 무시하며 볼을 긁었다.
‘흠. 오늘 퇴소 때문인가? 승인을 해 놓고 왜?’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소식을 알리러 온 교관을 따라나섰다.
* * *
“하루도 안 되어 또 보게 됐습니다, 최 교관?”
뼈가 있는 말에 종혁은 입맛을 다셨다.
“물의를 일으켰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압니다. 그들이 퇴소 대상이었다는 걸 말이죠. 퇴소를 당할 이유가 있으면 당연히 중경을 나가야죠.”
‘표정은 그런 게 아닌데?’
나 지금 불쾌하다라는 감정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그보다 우리 중경을 둘러본 소감은 어떻습니까?”
“음. 아직 다 둘러보지 않아서 뭐라 평가를 내릴 순 없지만……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게 가슴 깊숙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말로 굉장히 낡았다는 뜻이었다.
“허허. 그래요? 경찰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아니, 간부 육성을 위해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경대와 비교할 수는 없겠죠. 요샌 더 좋아졌다는 그곳과요. 안 그렇습니까?”
종혁은 그제야 교장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아차리게 됐다.
‘돈을 토해 내란 소리구나.’
종혁 본인이 경찰대에 기숙사를 신설한 걸 들은 게 틀림없다.
무너지는 표정을 겨우 수습한 종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치안감님께선 이 중경에 입교하는 교육생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과연 경찰로서의 덕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학교장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봐, 최 경정.”
“경정 최종혁.”
“그 나이에 경정 다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오냐오냐해 주면 선을 지켜야지, 지금 이게 뭐하자는 짓이야!”
교육생들의 자질을 의심한다는 건, 그들을 입교시킨 학교장의 자질을 의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눈앞에서 무시를 당했다고 느낀 학교장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종혁은 살벌한 압박이 심장을 짓눌러 옴에도 태연히 입을 열었다.
“제가 봤을 땐 다들 형편없어서 말입니다. 현장에 배치되면 칼 맞고 죽기 딱 좋은 수준이랄까요?”
“야!”
“그러니 교육 기간을 늘려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음?”
“32주가 아니라 40주, 가능하다면 그 이상으로 말입니다.”
종혁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