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70화>
74. 중앙경찰학교
며칠 후 정오, 화천의 위수 지역.
“카악, 퉤!”
기지개를 펴러 나왔다가 며칠 전 일을 떠올린 회장은 얼굴을 구기며 가래침을 뱉었다.
“이번 대대장 새끼는 돈을 너무 밝히네.”
상가 상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으는 거라서 각자 부담하는 금액은 고작 몇 십만 원 정도였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5천만 원이 뉘집 애 이름도 아니고. 씨벌.”
모아야 되는 돈은 종배수 덕분에 삼천오백만 원이었지만, 회장은 그렇게 말해 놓은 상태다.
어차피 욕먹을 거 돈이라도 좀 챙기기 위해서 말이다.
‘원래 다리를 거치면 커미션을 줘야 하는 거야.’
그래도 덕분에 메뉴 가격을 천 원 인상할 수 있으니, 몇 십만 원 내놓고 몇 백만 원 번다면 위수 지역 사장들로서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어? 저 새끼?”
회장은 대각선 맞은편에서 기지개를 펴고 나오는 종배수를 발견하곤 얼굴을 구겼다.
‘저놈 때문에!’
흥정조차 못하고 고스란히 5천만 원을 모두 토해 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 놈.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동네 물을 흐린다더니…….”
하지만 만날 때마다 싹싹거리며 용돈을 찔러 주니 제대로 화를 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묵인하자니 이젠 종배수에게 손님들을 뺏긴 다른 사장들의 등쌀 때문에 견디지 못할 상황.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부우우웅!
“음?”
위수 지역 안으로 십여 대의 승합차들이 줄줄이 들어오자 ‘단체 손님!’이라고 눈을 번뜩였던 회장은 승합차에 부착된 ‘국세청’이란 스티커를 보곤, 그 뒤를 따르는 경찰차들을 보곤 하얗게 질렸다.
“미, 미친!”
회장은 다급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그의 사무실 앞에 승합차들이 멈춰 섰다.
끼이익! 드르륵! 터벅터벅!
승합차에서 내린 국세청 공무원들은 곧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위수 지역 전체를 건드리는 일은 국세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에.
그건 오늘 협조 요청을 받고 출동한 강원경찰청 경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종혁을 찾았다.
카가가가!
입에 담배를 문 채 오함마를 끌고 오는 종혁.
그뿐만이 아니다. 오택수와 최재수도 오함마를 끌고 온다.
이쪽을 멍하니 쳐다보는 군인들 사이에서 팔을 붕붕 흔드는 종배수를 일견한 종혁은 국세청 직원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뭐하십니까? 시작 안 합니까?”
“그, 그건…….”
“아, 별거 아닙니다. 범죄자님들께서 협조를 안 해 주실 때 문을 열기 위해 작은 도움을 줄 도구랄까? 아, 여기부터 시작할까요?”
“아, 아니…….”
싱긋 웃은 종혁은 상가번영회 사무실의 불투명한 유리문을 두드렸다.
퉁퉁퉁!
“경찰입니다. 문 열어 주세요. 영장 나왔습니다. 문 여…… 어이구, 뭘 또 저렇게 찢으시나?”
쫙, 쫙!
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종이 따위를 찢는 소리.
증거 인멸의 정황이 포착됐다.
피식 웃은 종혁은 오함마를 들어 그대로 후려쳤다.
꽈아앙!
“히이익! 뭐, 뭐야?!”
“동작 그만. 더 이상 움직이시면 가중 처벌 됩니다.”
죄목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방금 전 증거 인멸죄도 추가됐다.
국세청은 경찰에게 탈세에 대한 제보를 받고 증거 확보를 위해 경찰에 협조를 요청해 함께 찾아온 것.
매출입 전표를 뒤져 숨은 돈을 찾는 덴 국세청만 한 곳이 없었다.
국세청이 숨은 돈을 발견하면 할수록 이들의 죄는 더 무거워질 터. 위수 지역 상인들을 완벽하게 처벌하기 위해선 국세청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악! 악! 야, 이거 풀어! 풀지 못해?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전화만 돌리면……!”
“예예. 한 마디만 더하면 협박죄도 추가합니다, 씨발 새끼야.”
“…….”
수갑을 마저 채우고 뒤를 돌아본 종혁은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국세청과 강원청 경찰들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 맞아. 집행 시 부득이 하게 발생될 재물 손괴에 관해선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1팀장인 제가 전액 책임집니다.”
움찔!
마치 돈이 많다는 듯 종혁이 보여 주는 고급 손목시계에 얼떨떨해하던 사십대 후반의 중년인은 이내 정신을 차리곤 씩 웃었다.
“그거 참…… 듣기 좋은 말이군요.”
공무원의 애환을 제대로 찌른 말이었다.
중년인은 직원들을 바라봤다.
“뭐해?! 탈세범에 체납자들이야! 싹 다 엎어 버려!”
“뭐해, 새끼들아! 국세청에 밀릴 거야?!”
“예……!”
화천의 위수 지역에 저승사자들이 강림했다.
우와아아아아!
외박에서 복귀한 병사들이 전한 소식에 부대 전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그에 오늘 유난히 일찍 눈이 떠져 어쩔 수 없이 이른 시간에 출근한 성문식 대대장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 이병 김재우!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김재우 이병에게 한 말이…… 쯧. 그보다 정말 군 생활은 괜찮나?”
“이병 김재우! 괜찮습니다! 모두 잘해 주십니다!”
“그래,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도록 해. 아, 커피 한 잔 들지.”
“이병 김재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도 괜찮아.”
얼마 전 연대장에게 점수를 따고 큰돈이 차명 계좌에 입금된 것도 모자라, 입안의 혀처럼 굴어 줄 종배수까지 알게 된 성문식 대대장은 부쩍이나 너그러워져 있었다.
거기다 김재우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다 아는 최정상의 보이그룹 멤버가 아닌가. 잘만 케어해도 두둑한 인사 고과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즉, 김재우는 어떻게든 보호해야 되는 보물.
그런데 커피 한 잔 타 주는 게 대수일까.
그렇게 손수 커피를 타는 순간이었다.
쾅!
문이 거칠게 열리며 늙은 군인이 난입한다.
수색대대의 행보관이었다.
“대, 대대장님!”
“이게 무슨 짓이야! 노크 몰라?!”
“왜 전화를 안 받으십니까!”
“전화?”
의아해하며 주머니를 뒤진 대대장은 아차 했다.
“아, 집에 놓고 왔나 보군.”
“왜 하필 오늘…….”
“음?”
“아, 아니 지금 그러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어서!”
“그게 무슨…….”
섬뜩 뭔가를 느낀 성문식 대대장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저벅, 저벅!
군홧발을 무겁게 내디디며 대대장실로 난입하는 헌병들.
그 선두엔 종혁의 동기 정지훈이 있었다.
“성문식 중령님?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여기가 어딘지 몰라?! 그리고 야, 정 소위! 지금 네 짬밥에…….”
“아, 행보관님도 받아먹으신 게 많더군요. 이분도 모셔.”
“충성.”
“뭐, 뭣?! 이 새끼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 내가 아는 장군님들이 어?! 너희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놔! 안 놔?!”
개처럼 끌려가는 행보관을 일견한 성문식 대대장은 정지훈을 보며 담배를 물었다.
“소위 따위가 중령을 체포한다라……. 군대가 개판이군. 이거 감당할 수 있겠어? 잔말 말고 김 소령 데려와.”
“김 소령님은 현재 조사 중이십니다. 어떤 분에게 뇌물을 받고 범죄를 묵인한 정황이 드러나서 말이죠.”
성문식 대대장은 눈을 부릅떴다.
“그, 그럼……!”
“일단 전화부터 받아 보시죠.”
순간 성문식 대대장은 몸을 뒤로 뺐다.
받기 싫다. 고작 소위 따위가 전화를 건 상대가 얼마나 대단하겠냐마는 그래도 받기가 싫었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귓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댄 정지훈의 행동에 그는 결국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나 제1야전사령관 정균진이야.
“수, 수새액-!”
-군사 물자에도 손을 댔다지? 내란, 뇌물 둘 중 어느 게 좋겠나?
철렁 순간 심장이 내려앉고 온몸의 피가 빠져나간 성문식 대대장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그걸 어떻게…….’
-여보세요? 안 들리나?
성문식 대대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뇌물로 하겠습니다.”
-그래, 재판장에서 보지. 하지만 외롭진 않을 거야. 다른 장교와 장성들도 함께할 테니까. ……개새끼들.
뚝 전화가 끊기자 정지훈은 혼이 빠진 얼굴을 한 성문식 대대장, 아니 성문식을 차갑게 응시했다.
“이제 가시겠습니까?”
……끄덕.
“모셔 가.”
“충성. 가시죠, 중령님.”
헌병들에게 양팔이 붙들린 성문식이 힘없이 끌려가자 정지훈은 담배를 물며 대대장실을 주욱 둘러봤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지금쯤 한참 위수 지역을 뒤엎고 있을 종혁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여태껏 다른 친구들에게 들은 것처럼 난리를 치고 있겠지.’
아직도 연락을 하는 동기들이 말하길 불도저.
조폭이고, 같은 경찰이고, 정치인이고 상관없이 모두 밀어 버리는 불도저라고 했다.
참 대단한 놈이었다.
하지만…….
“군대의 일은 군인에게.”
종혁에게 속인 게 있어서 좀 미안하지만, 군인의 일은 군인의 몫이었다. 종혁의 옳은 결정에 피식 웃은 정지훈은 담배를 군홧발로 비벼 끄며 돌아섰다.
“음? 아, 당신이 있었군요. 김재우 이병.”
“수, 수색! 이병 김재우!”
일련의 상황에 넋이 나가 있던 김재우는 다급히 거수경례를 했다.
“당신의 그 지인 형에게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예?”
피식 웃으며 김재우의 어깨를 두드린 정지훈은 밖에 서 있는 헌병들을 향해 싸늘히 일갈했다.
“대대장실, 아니 부대 전체와 관사 폐쇄하고, 싹 다 잡아들여.”
“충성!”
“……멋있다.”
딱딱한 옷차림과 절도 있는 자세.
그야말로 군인의 귀감이었다.
거기에 소위가 중령을 제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희열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인 형? ……설마 종혁이 형?”
왜일까. 지인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종혁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말이다.
“이 인간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김재우는 아까 전에 터진 환호성이 종혁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27사단 이기자부대 수색대대를 비롯한 여러 군부대에도 헌병이라는 저승사자들이 강림했다.
한편 그 시각 경찰청장실.
“흠…….”
이택문 경찰청장은 중앙경찰학교에서 보내져 온 한 인물의 프로필과 그에 첨부된 어떤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군.”
경찰에 벌레가 기어 들어왔다.
감히 경찰에 말이다.
* * *
경찰과 국세청. 대한민국 위수 지역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다!
소상인? NO! 악덕 상인! 냉동삼겹살 19000원, 여관은 10만 원!
악마를 징치하는 경찰!
현금 거래를 유도한 위수 지역 상인들. 중대한 탈세 혐의.
경찰, 가격 담합 증거 포착! 털면 털수록 나온다?
제대한 군인들의 증언 잇따라!
대한민국의 건아들아, 어른이 미안하다!
칼만 안 든 강도들의 시위!
이택문 경찰청장.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전 경찰 움직여 달라!
결국 전국 위수 지역이 뒤엎어졌다. 제대한 군인들이 위수 지역의 폭리와 부조리를 폭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매일, 아니 매시간 새로운 뉴스가 포털 사이트와 신문가판대를 장식했고, 여론의 반응도 당연히 위수 지역 상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옹호를 하려는 순간 부모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훈련소에서 눈물로 헤어졌던 아들들의 일이다.
어디 밖에 나가서 굶고만 와도 서러워 죽겠는데, 몇 푼 안 되는 목숨값을 바보처럼 뺏기고 왔다는데 화를 내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위수 지역 상인들의 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을 지역구로 삼은 정치인들도 입을 다문 상태.
소수의 인권 단체들이 그들의 곁에 기웃거렸으나, 그것도 이내 후원 편취를 목적으로 접근했음이 드러나며 싹 다 박멸되었다.
일각에선 이 일에 대검 중수부가 관여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금이 기회니까 전국에 지점을 늘리도록 하세요.”
그런 와중에 종혁만이 다른 관점에서 위수 지역을 바라보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위수 지역 전체가 털리며 여론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자, 군 수뇌부는 위수 지역 확대를 논의 중이었다.
위수 지역이 확대되며 사병들이 갈 수 있는 곳이 늘어난다면, 고객 유치를 위한 경쟁 탓에 바가지 문제는 자연스레 사라질 테니까.
그에 기존 위수 지역의 부동산값은 곤두박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위수 지역이 그렇게 쉽게 확대될 리가 없지.’
종혁은 작금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여러 이해관계 뒤얽혀 있는 이상 위수 지역의 확대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탓이었다.
군 수뇌부는 지금은 사병들을 위하는 척 움직이고 있지만, 여론이 잠잠해지면 그들의 움직임 또한 잠잠해질 터였다.
“권&박 홀딩스를 다시 찾아가면 대규모 투자를 해 줄 겁니다. 명심하세요. 모텔은 최소 3개 이상, 식당은 100평 규모. PC방은 최소 150석 완비.”
그에 종혁이 세운 계획은 간단했다.
바로 M-컴퍼니를 위수 지역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악덕 상인들이 다시 개수작을 부리려고 해도 사병들이 더 이상 그곳을 찾을 이유가 없도록.
-헉! 그, 그런 엄청난 일을 제게 맡겨 주시다니! 이 종배수 앞으로 영원히 백골이 진토가 되어도 견마지로를…….
“개소리 마시고 내 말대로 물가나 안정시키세요.”
그렇다고 무작정 가격을 낮춰서 위수 지역의 상권을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종혁이 바라는 건 오로지 사병들이 값을 치른 만큼 정당한 서비스를 받는 것뿐이었다.
만 원을 냈다면 만 원만큼, 5만 원을 냈다면 5만 원만큼. 정당한 거래를 하려는 것이다.
종혁은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진아, 난데. 위수 지역에 드바 로마노프 오픈 가능하겠냐?”
-위수 지역에요?
“장병 면회 온 부모님들 상대로.”
-흐으응! 그럼 핸드크림이나 샴푸, 기능성 속옷들도 많이 갖춰 놔야겠네요.
역시 미진이었다.
“속옷은 국방색으로 맞추는 게 좋을 거야. 원단은 특별히 신경 좀 써 주고.”
-그건 걱정 마세요. 장병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서 제품을 갖추도록 할 테니까요. 그보다 진짜로 데이트는 언제…….
탁!
전화를 끊은 종혁은 차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음? 이 사람이 왜?”
김희건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딸, 호텔 신화의 김부현 기획부장이었다.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 최종혁 경정입니다.”
-호호. 저예요, 김부현.
“예. 무슨 일이십니까? 안부 인사나 하자고 전화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 여자에게 인기 없어요, 최 팀장님.
“용건은요?”
-칫. 혹시 M컴퍼니에 대해 잘 아시나요?
종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 여자가 그걸 어떻게? 흠. 역시 삼전인가?’
-후훗. 그 침묵은 M컴퍼니의 뒤에 최 팀장님이 있다는 걸 실토하시는 건가요?
“흐음. 예전에 알게 된 범죄자인데 새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돈을 좀 빌려줬습니다. 뜻도 가상하고, 마음도 제대로 고쳐먹은 듯해서요.”
-어머나.
‘그렇다고 5억이나 빌려주나요?’
김부현은 속말을 꾹 삼켰다.
-네. 그렇다고 칠게요.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끙, 됐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M컴퍼니와 협약을 맺고 싶어서요.
“호텔 신화가요? ……모텔 사업하시게요? 호텔 신화가?”
신화 호텔이 지닌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하면, 모텔 사업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한 종혁의 의문을 읽은 듯 김부현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나라에서는 군인의 처우가 몹시 좋지 못하지만, 미국으로만 눈을 돌려도 군인은 나라의 영웅이랍니다.
‘확실히.’
그런 방향으로 포장해서 마케팅을 한다면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으면서, 서민들의 시장까지 장악할 수 있을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종혁은 김부현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M모텔에 조식을 지원하고 싶다는 소리시군요.”
-……정답.
‘이 남자 뭐야?’
고작 협약과 군인이라는 단어로만 조식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괜히 신성이 아니라는 건가?’
경찰의 신성, 최종혁 경정.
‘이러면 끼리끼리 만난 거네! 어머나! 어머나!’
드바 로마노프의 보물 에바 미진 킴 상무와 그렇고 그런 관계인 종혁. 물론 큰 오해지만 그녀는 잔뜩 흥미가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는데?’
핸드폰을 가져다 댄 그녀의 입가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다.
-호텔로의 승격은 저희 호텔 신화가 도와줄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흐음.”
‘종배수에게 김부현이라…….’
김부현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쌓아 올린 실적을 고려하면 종배수가 잡아먹힐 확률이 컸다.
하지만 그건 종혁 본인이 컨트롤하면 될 일. 여차하면 M-컴퍼니를 호텔 신화에 매각해도 상관없었다.
훗날 여성 기업가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김부현과 호텔 신화라면 종배수보다 훨씬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김부현 부장님의 연락처를 종배수 사장에게 알려 주면 되겠습니까?”
-딱딱하게 부장님이 뭐예요. 누나라고 불러 봐요.
“허락하신 걸로 알고 전달하겠습니다. 전 바빠서 이만.”
매정하게 전화를 끊은 종혁은 턱을 긁었다.
“……나쁘지 않네.”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고개를 주억인 종혁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이잉!
“후. 아침부터 바쁘네. 또 누구…… 청장님?”
이른 아침부터 이택문 경찰청장의 호출이었다.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 * *
“충성. 경정 최종혁.”
“앉아. 더 가까이.”
종혁은 의아해하며 이택문의 옆에 앉았다.
“커피?”
“괜찮습니다.”
“마시도록 해. 여기 냉커피 두 잔.”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택문은 어리둥절해하는 종혁을 보며 피식 웃었다.
“특별수사팀도 이제 자리를 잡았더군.”
벌써 해결한 초대형 사건만 몇 개인가.
현재 경찰 내부에서는 아니 각 지청에서는 은밀히 소속 간편신고과와 연결된 전담 수사 부서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일어나는 민원은 지방에서 해결하겠다는 듯 말이다.
아무래도 저번 중고차 사건과 이번 위수 지역 사건 때 특별수사팀이 전국을 누비며 제대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다 최 팀장 덕분이야.”
“……그렇게 칭찬하시면 불안합니다만.”
오늘 이택문의 모습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옆에 붙으라고 하질 않나, 거절하면 그만두는 커피를 억지로 시키질 않나.
마치 사형 집행 직전의 사형수를 대하는 것처럼 사근사근 굴고 있다. 이택문답지 않게 말이다.
종혁은 낯빛을 굳혔다.
“설마 또 전출입니까?”
‘이건 아니지. 에이, 진짜 아니지!’
만약 이번에도 인사 이동을 시킨다면 이택문을 유도 매트 위로 불러낼 수도 있었다.
그런 종혁의 마음을 읽은 건지 피식 웃은 이택문은 다시 수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이택문 경찰청장입니다. 예, 지금 출근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받아 봐.”
미간을 좁히며 수화기를 넘겨받은 종혁은 이내 곧 흘러나온 목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반갑습니다, 최종혁 경정. 나 박노형입니다.
‘대통령님?!’
종혁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