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69화 (269/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69화>

    이틀 후, 춘천의 한 일식집.

    수색대대 인근 위수 지역 상인이자 상가번영회 간부들이 모여 있다.

    “오늘 대대장이 부른 이유가 뭔 것 같아요?”

    누군가의 물음에 상인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쪽에서 먼저 부를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너무하네! 성의를 전달한 지 이제 고작 보름밖에 안 됐는데! 우리보고 굶어 죽으라는 거야, 뭐야! 확 진짜, 그냥 받아 버려?”

    “자자, 대대장들이 이러는 거 한두 번 봅니까? 아무래도 급전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적당히 어울려 줍시다.”

    상가번영회 회장의 다독임에 그들은 혀를 차며 분기를 가라앉혔다.

    “그보다 종 사장은 왜 부른 거랍니까?”

    슬그머니 나타나 호구들을 모두 뺏은 종배수.

    부대 밖을 나온 사병들이 죄다 그의 가게에 먼저 들르다 못해 줄을 서니 매출이 바닥을 찍고 있었다. 아무리 원금 회수부터 하자고 양해를 구했다지만, 이러다간 말라 죽을 판이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돈을 밝히는 놈이니 곧 자신들이 만든 분위기에 편승할 테니 말이다.

    문제는 종배수가 이 만남에 끼었다는 것이다. 군 간부들과 만나는 건 오직 그들 상가번영회의 몫임에도 말이다.

    “글쎄요. 아무래도 외출, 외박을 다녀온 사병들의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확인도 되지 않은 인간을 불러요? 대대장 미친 겁니까?”

    “어허. 말조심…….”

    스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며 종배수가 들어온다.

    “허허. 이거 늦었습니다.”

    “크흠.”

    방금까지 종배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상인들은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고, 종배수는 옅게 웃으며 회장에게 목을 까딱였다.

    “허허. 왔습니까, 종 사장.”

    “예.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배수는 그들이 비워 놓은 맞은편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아니, 그 자리는……!”

    “음? 왜요? 문제 있습니까?”

    “당연히……”

    문제가 있다. 종배수가 앉은 자리는 곧 있으면 도착할 성문식 대대장의 옆자리였기 때문이다.

    옆에 누가 앉는 걸 싫어하는 성문식 대대장이 편히 앉게끔 비워 놓은 옆자리들.

    당연히 자리를 옮기라고 해야 했지만…….

    ‘알아서 점수를 깎겠다는 데 왜 말려?’

    같은 위수 지역 상인이라도 종배수는 반쯤 공공의 적이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성문식 대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먼저와 계시는군요. 종배수 사장님도.”

    “오, 오셨…….”

    “아이고!”

    몸을 일으키는 상인들보다 먼저 일어나 달려든 종배수가 성문식 대대장의 손을 덥썩 잡았다.

    “오셨습니까! 또 뵙습니다, 성문식 중령님. 아니, 성문식 대대장님!”

    “그래요. 며칠 만이군요.”

    “이건 재회를 기념하기 위해 약소하게나마 준비한 제 성의입니다. 흐흐흐!”

    ‘대, 대체 언제?!’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고, 성문식 대대장은 작은 가방 속에 든 두툼한 백화점상품권 봉투와 음흉한 웃음소리에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며 입술을 비틀었다. 종배수는 딱 자신이 생각하는 부류의 인물이었다.

    ‘기회주의자.’

    성문식 대대장은 일이 쉽게 풀리겠다며 안심했다.

    바로 옆방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이야.”

    종배수가 미리 장소를 알려 줘서 잡을 수 있었던 방에 앉아 목소리를 낮춘 오택수와 최재수는 옆방에서 들려오는 종배수의 현란한 혀 놀림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혓바닥이 예술이네.”

    이제 그 누가 있어 종배수가 쁘락지라는 걸 의심할까. 솔직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약간 불안했던 그들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대단한 건 이런 종배수를 저들 사이에 꽂아 넣은 종혁이었다.

    ‘대단한 놈.’

    -내가 여러분을 이렇게 모은 건…….

    종혁은 먹던 참치회를 내려놓으며 귀를 기울였다.

    ‘과연 오늘 대어가 걸리려나.’

    어쩌면 단순한 모임일 수 있는 오늘의 자리.

    그러나 종혁은 작은 기대를 품었다.

    “내가 여러분을 이렇게 모은 건 그동안 여러분께서 부대 군 장병들을 잘 먹이고 재워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섭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아들 같은 장병들인데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런데…….”

    손을 젓던 상인들은 여지를 두는 성문식 대대장의 말에 낯빛을 흐렸다.

    “하아. 거참, 이런 말을 꺼내도 될는지…….”

    “말씀…….”

    “말씀하시죠, 대대장님. 대체 어떤 놈이 우리 대대장님께 고충을 안겨 준 겁니까. 어떤 놈이!”

    회장은 자신이 할 말을 낚아챈 종배수를 경악하며 쳐다봤고, 성문식 대대장은 너냐는 듯 상인들을 노려보는 종배수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고충이라면 고충이겠지요. 이제 곧 봄이라 부대를 정비해야 되는데…….”

    “부대 정비. 음, 그거 참 골치 아픈 일이지요.”

    “오, 아십니까?”

    “허허. 이래 봬도 육군 만기 병장 출신입니다, 제가.”

    “그러셨습니까? 정말 훌륭한 분이셨군요.”

    “아닙니다. 겨우 병장이 어찌 나라를 위해 젊음과 청춘을 다 바친 대대장님의 희생만 하겠습니까.”

    주거니 받거니.

    상인들은 그 가관도 아닌 모습에 이를 떡 벌렸다.

    이러다간 종배수가 대대장과의 대화 창구가 되겠다는 위기감이 회장의 뒷목을 강타했다.

    “그런 거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 드려야죠. 저희가 부대 장병들 덕분에 먹고사는데, 그 정도도 못하겠습니까. 얼마가 필요하십니까?”

    대화를 끊고 들어오는 회장에 살짝 불쾌해져 그 얼굴을 살핀 성문식은 이내 눈을 빛냈다.

    ‘안달이 났군.’

    의도하지 않았지만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러면?’

    원래 얻으려는 것보다 더 세게 불러도 될 듯싶었다.

    “흐흠. 5천만 원 정도가 필요할 듯싶습니다.”

    “오, 오천만 원이요?”

    다급히 끼어들었던 회장이나 상인들의 얼굴이 검게 죽는다.

    ‘얼마 전에 5천만 원을 모아 보냈는데, 또 5천만 원이라고?’

    그들은 느긋이 녹차를 마시는 성문식 대대장을 보며 안절부절못했고, 종배수는 탁자를 탁 쳤다.

    “거 다들 너무하십니다. 자주국방을 위해 애쓰는 군부대를 정비하는 일이라고 하잖습니까! 그게 다 우리 군 장병들을 위한일인데…… 쯧쯧. 옹졸하다, 옹졸해. 나부터 내겠습니다!”

    종배수는 지갑에서 잡히는 돈을 모두 내려놨고, 일단 크게 지르고 살짝 깎으려 했던 성문식 대대장은 10만 원 수표 뭉치에 깜짝 놀랐다.

    당연하게도 상인들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저! 저!’

    옆에 누가 앉는 걸 싫어하는 성문식 대대장이 옆에 종배수가 앉았음에도 불쾌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이젠 꼼짝없이 5천만 원을 주게 된 상인들은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허허허. 역시 우리 종 사장님은 통이 크시군요.”

    “앞으로 신세를 질 대대장님이 힘드시다는데 이깟 돈이 문제겠습니까.”

    “하하핫! 감사합니다!”

    성문식은 웃으며 상인들을 주욱 둘러봤다.

    그 차가운 눈빛에 회장은 섬뜩함을 느꼈다.

    ‘위험하다! 이대로 가다간!’

    굴러온 돌에게 상가번영회 회장직을 뺏기게 생겼다.

    “허허. 그런 거라면 당연히 드려야지요. 안 그렇습니까들?”

    “그, 그럼요! 그런 거라면 드려야죠!”

    “다들 감사합니다. 그럼 드실까요? 음. 역시 이 집 요리가 참 맛있군요.”

    상인들은 구겨지는 얼굴을 억지로 펴며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누군가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허허. 그럼 전 여러분들만 믿고 가겠습니다. 식사 잘 했습니다.”

    뻔뻔하게도 식사비마저 전가하며 떠난 성문식 중대장의 모습에 이를 악문 상인들은 종배수를 노려봤다.

    “어쩌자고 그 돈을 내놓은 겁니까! 이제 어쩔 거예요!”

    원래 이런 건 서로 밀고 당기며 금액을 정하는 거다.

    “음? 군부대 정비를 위해서라지 않습니까.”

    “뭐요? 지금 그 말을 믿습니까?”

    “그럼? ……아, 설마 이거 뇌물이었습니까? 씨브럴?”

    “쉿! 쉿! 이 사람이 정말! 됐고. 지갑에 얼마가 있었습니까?”

    “……대충 천 오백 정도 들었을 거요. 허, 거참. 이런 곳에서 장사하려면 그런 게 있단 소리는 들었지만, 허허. 뭐 이렇게 해서 사병들이 더 자주 나오면 나쁜 건 아닌데…… 흠.”

    ‘그나마 다행이군.’

    뇌물 그 자체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회장은 종배수에게 등을 돌리며 상인들을 봤다.

    “삼천오백, 맞출 수 있겠습니까?”

    “십시일반 모으면 맞추는 거야 문제가 안 되지만, 다른 사장들이 과연 납득을 할지…….”

    맞다. 그게 문제다.

    또 돈을 모아야 한다면 회장으로서의 능력을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뇌물을 적당히 조절하는 것도 회장의 능력.

    ‘그렇다고 내가 다 내놓을 수도 없고…….’

    삼천오백만 원. 솔직히 내놓으라면 못 내놓을 돈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나 아깝다.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모았는데?’

    사병들 후려치고, 뇌물 주고 그렇게 모은 돈이다.

    “쯧. 어쩔 수 없죠. 상인들에게 말해서 천 원씩 올립시다. PC방은 2천 원에 맞추고요.”

    “끙. 역시 그 수밖에…….”

    “뭐요? 지금 가격을 올리자는 겁니까?”

    “닥쳐! 지금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목소리를 높여?!”

    “아, 아니…….”

    종배수는 죽일 듯 노려보는 상인들의 모습에 어깨를 움츠리며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눌렀다.

    ‘이런 미친?’

    뇌물에 가격 담합. 설마하니 그 모든 범죄에 대한 증거를 오늘 확보할 줄 몰랐던 종배수는 찢어지는 입을 누르느라 애써야 했다.

    ‘흐흐. 형님, 증거 들어갑니다!’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는 양팔을 번쩍 들었다.

    ‘만세!’

    ‘잘했다, 종배수!’

    -그런데 이래도 괜찮겠습니까? 사병들의 반발을 뒤로하더라도 갑자기 매출이 증가하면 세금 문제가…….

    -걱정 마세요. 다 방법이 있으니까. 하, 진짜…….

    정말 알려 주기 싫은 데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회장의 말투에 종혁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핸드폰을 들며 목소리를 낮췄다.

    “예, 과장님. 가격 담합에 대한 증거 확보됐습니다. 국세청 불러 주십시오. 그리고…… 제1야전군사령관님도.”

    종배수가 해 줬으니 이제부턴 자신이 나설 때였다.

    종혁은 제1야전군사령부 사령관의 프로필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하 이 새끼.’

    “이래서 자퇴한 거였냐?”

    *   *   *

    본청의 소회의실.

    오늘 이 자리에 참관한 이택문 경찰청장과 제1야전군사령부의 사령관 정균진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택문 경찰청장으로선 쉬이 믿지 못할 이야기.

    정경진 사령관으로선 공공연하게 쉬쉬했던 이야기.

    위수 지역 상인들의 가격 담합이 군부대와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에 둘은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종혁은 따갑게 쏘아지는 두 사람의 눈빛에 말을 이어 갔다.

    “현재 성문식 대대장의 차명 계좌로 전달된 부대 후원금 중 천만 원은 그의 아내 선옥자에게 흘러간 정황이 포착됐으며, 나머지 4천만 원 중 천만 원은…….”

    수색대대를 예하로 두고 있는 연대장의 차명 계좌로, 또 그중 일부는 사단장의 차명 계좌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아니 증거가 포착됐다.

    또한 이런 뇌물 공여 정황에 성문식 대대장의 차명 계좌를 싹 다 훑으니, 그가 거쳐 온 부대의 군 장교와 장성들도 뇌물을 받은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양구와 다른 위수 지역으로 두는 군부대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안 엮인 장교와 장성을 세는 게 빠를 수준이었다.

    종배수와 그 동생들이 정말 큰일을 해 주었다.

    “또한…….”

    “그만. 그만합시다.”

    “……이상입니다.”

    회의실에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렇다는군요.”

    이택문의 말에 정균진은 이를 악물었다.

    군의 치부를 경찰에게 들켰다.

    이보다 부끄러운 일이 또 있을까. 하물며 그게 본인 휘하에 있는 장교 및 장성들의 일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눈빛을 무심히 가라앉히며 종혁을 지그시 응시했다.

    “흐음.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심각한 사안이군요.”

    갑자기 이택문 경찰청장이 중히 할 말이 있다며 약속을 잡기에 본청을 찾았다가 뒤통수를 맞은 정균진 사령관의 발뺌에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습니까?”

    “예. 그래도 감사합니다. 그 익명의 제보자에게도요.”

    익명의 제보자의 제보로 인해 대화를 엿들었다는 종혁.

    다른 인물도 아니고 형사가, 그것도 경찰청장을 이 자리에 앉힐 만큼 능력을 인정받는 형사가 직접 들었다.

    ‘윤경수 소장의 말에 의하면 중앙지검과 대검, 법원에도 인맥이 있는 것 같다고 했지.’

    게다가 그 말을 증명할 상가번영회의 회장과 간부들, 그리고 성문식 대대장이 같은 시각 한 일식집을 출입한 것이 찍힌 CCTV까지 있는 상황이다.

    영장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 아니 당장 몇 분 후에 나올 수도 있었다.

    “허허. 군 장교들의 생계형 비리가 이 정도일 줄이야……. 흐흠. 경찰의 뜻은 대충 알았으니 난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 사령부로 가야 했다. 경찰이 움직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움직여야 했다.

    ‘빌어먹을! 어쩌다가…….’

    하지만…….

    “장군님.”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생계형 비리라고 폄하하면 곤란합니다.”

    그 누구도 생계를 위해 매달 몇 천만 원씩의 뇌물을 받진 않는다.

    “하물며 그 돈이 나라에서 억지로 끌고 간 대한민국 건아들의 목숨값이라면 더 심각한 문제죠. 이것이 군 사기에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한데…… 이 정도면 거의 내란죄 아닙니까?”

    내란죄. 그 말이 정균진 사령관의 발을 붙들었다.

    사령관은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런 말은 함부로 입에 담는 거 아닙니다.”

    “그런가요? 아, 맞아. 위수 지역 근방 군부대의 장이 돼서 1년 안에 강남에 아파트 한 채 못 올리면 병신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누구보다 국가 안보에 신경을 써야 하는 군 장교들이 그런 말을 공공연히 한다라…….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라가 아닌 개인의 안위부터 챙기는 군 장교들의 행태.

    이래도 생계형 비리냐는 물음에 사령관은 이를 갈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자체 정화하시죠?”

    정균진은 눈이 동그래졌다.

    “어차피 군의 일이잖습니까.”

    경찰이 아무리 떠들어 봐야 군이 침묵을 한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만든 자리였다.

    “……그렇군.”

    이제야 속내를 알아차린 정균진 사령관은 피식 웃었다.

    “우리가 그들을 비호할 게 거슬렸던 거였어.”

    정답이었다. 위수 지역을 통째로 엎는 것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에 얽혀 있는 군 장교들도 나선다? 여론에 밀려 흐지부지될 확률이 높다.

    ‘그쪽 지방을 지역구로 둔 정치인들도 압박을 하겠지.’

    그렇게 되면 경찰만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쯧. 눈치가 빠르군.’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 없는 종혁은 한 발 더 내디뎠다. 여기서 물러나도 흐지부지 되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강제적으로 정화를 당하시든지요.”

    “지금 협박하는 건가?”

    감히라며 비웃는 그의 모습에 종혁은 더욱 입술을 비틀었다.

    “예. 협박하는 겁니다. 불편하시면 청와대에서 국방부 장관님과 함께 이 일을 논의해 보시겠습니까? 곧 군이 곤란해질 일이 있을 텐데요?”

    곧 미군 기지가 이전을 한다. 현 정부부터 군대까지 미국에 휘둘린다며 여론과 국민의 질타를 받게 될 거다.

    이런 상황에서 군의 대규모 비리가 터진다?

    장군 중 몇 명이 옷을 벗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군기지 이전도 백지화될 확률이 높다.

    터엉!

    테이블을 후려치는 정균진 사령관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달아오른다.

    “아버님.”

    그랬다. 종혁의 동기이자, 자퇴해 헌병이 된 정지훈. 정균진은 그런 동기의 아버지였다. 이래서 동기가 자퇴를 하고 사관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순간 눈을 부릅뜬 사령관은 이택문을 봤다.

    “미안한데 잠시 자리 좀 비켜 주시겠소, 경찰청장.”

    “흠. 그러시죠. 최 팀장, 난 잠시 커피를 마시고 오지.”

    “충성.”

    이택문이 나가자 정균진 사령관은 더 이상 감정을 숨길 생각 없다는 듯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윤경수 소장이 자네 입을 조심하란 말을 하긴 했지.”

    그땐 군 장성이 경찰과 어울릴 일이 뭐 있겠냐며 코웃음을 쳤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종혁의 혀는 악마의 혀였다.

    “이거 감당할 수 있으니 하는 협박이겠지?”

    종혁에게 당한 윤경수는 고작 소장이지만, 자신은 대장이다. 동원할 수 있는 인맥과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소장과는 천지차이였다.

    일그러진 얼굴에서 발산된 끔찍한 경고가 심장을 옥죄었지만 종혁은 옅게 웃었다.

    “아버님.”

    “아버님이란 말을 집어치우…….”

    “지훈이를 군으로 데려간 이유가 뭡니까? 아니, 지훈이를 헌병에 넣은 이유. 아버지가 육군 대장인데 굳이 헌병으로 집어넣은 이유 말입니다.”

    움찔!

    몸을 굳힌 정균진 대장의 표정이 다시 변화한다.

    무심하게. 차갑게.

    종혁은 이게 그의 참된 모습임을 깨달았다.

    ‘휘유우.’

    자리에 앉은 정균진 사령관은 담배를 물었다.

    ‘지훈이가 동기 중에 괴물이 있다고 하더니만…….’

    종혁의 짐작이 맞다.

    오랜 악습이자 적폐.

    이것부터 해결해야 군납 비리를 건드릴 수 있기에.

    하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얽혀 있는지 알 수가 없기에, 자칫 함부로 칼을 꺼냈다간 믿었던 도끼에도 발등을 찍힐 수 있기에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자식을 헌병에 넣은 것이다.

    헌병마저 이 악습이자 적폐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그것도 신분을 숨긴 채 말이다.

    아니었다면 지훈은 종혁의 감시역을 맡지 못했을 것이다.

    감히 육군사령부 사령관의 아들을 일개 대대장이 호출한다?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조금씩 증거를 모으는 와중에 종혁이 이런 폭탄을 들고 왔다.

    “물러날 생각은 없는 거겠지?”

    “그랬을 거라면 이렇게 아버님을 모시지도 않았을 겁니다. 대신 확보되는 증거들 중 군과 연결된 증거는 모두 넘겨 드리죠.”

    아무리 동기의 아버지라지만, 더 이상의 피해가 일어나는 걸 좌시할 수는 없었다.

    “그게 국가안보에 직격탄을 날리는 일이라도?”

    “여태껏 시간은 많았습니다.”

    위수 지역 폭리가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어느 위수 지역에선 군 장성의 아내가 식당을 차렸다는 소문도 있다. 그럼에도 미적거린 건, 아니 묵인한 건 군대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뿐이었다.

    이런 종혁의 질책에 정균진 사령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괘씸한.’

    하지만 어찌 할 방도가 없다.

    언론을 완벽하게 통제할 자신이 없는 이상, 이번 비리는 어떻게든 밝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놈이나 경찰청장 등 이번을 알고 있는 이들의 입을 막는다고 해도 그렇게 되겠지.’

    만약 그랬다가 들통이 난다면 자신 하나 옷 벗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에 얽힌 장교 장성들 전부 제1야전군사령부 휘하의 장교, 장성들이기에 아래에 있는 파벌이 줄줄이 쓸려 나갈 것이다.

    그런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인지 종혁은 대답을 종용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정화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정화를 당하시겠습니까?”

    정균진 사령관은 이제 결정을 내려야 될 때임을 직감했다.

    그는 재떨이에 담배를 끄며 일어섰다.

    “……말만 아버님이군.”

    정균진 사령관은 흔들리는 종혁의 눈썹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래, 이번엔 우리 군이 경찰에게 진 걸로 하지. 단, 이 이번 일에 군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언론에 밝혀지면 안 될 거야.”

    ‘됐다.’

    “군이 침묵을 한다면 충분히 그렇게 될 겁니다, 아버님.”

    종혁은 씩 웃었다.

    그렇게 정균진 사령관이 돌아간 이후 국세청장에게도 브리핑을 마친 종혁은 이쪽을 묘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택문 경찰청장을 빤히 바라보며 어서 결정을 내리라며 실실 웃었고, 이택문은 이번에도 종혁의 뜻대로 되어 버린 결과에 피식 웃었다.

    몇 개의 지역을 엎는 일이다.

    대한민국에 산재한 위수 지역 전체를 건드릴 수 있는 일이기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 외면한다? 협조를 안 한다?

    가격 담합에 현금 유도를 한 상황에서 위수 지역 상인들 전부 차명으로 된 외제차나 부동산 등 탈세한 증거를 경찰이 내민 상황인데?

    이게 들켰다간 국세청장 본인의 목이 날아간다.

    국세청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승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은 정말…….’

    지켜볼수록 놀랍기만 했다.

    “최 팀장.”

    “예, 청장님.”

    “쓸어버려.”

    “충성.”

    이젠 정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