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68화 (26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68화>

오늘 연대장과의 약속이 있어 씻고 가기 위해 관사로 돌아온 성문식 대대장은 콧속을 파고드는 구수한 된장국 냄새에 살짝 놀랐다.

“어머, 이제 오세요?”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른 세련된 사십대 중년 여성이 당번병과 함께 걸어 나오자 대대장은 미간을 좁혔다.

“평일에 여기까지 왜 왔어? 때 되면 어련히 올라갈 텐데.”

“아내가 남편 만나러 오는 데 이유가 있어야 오나요? 그런데 그건 뭐예요?”

“……김 상병은 차 대기시켜 놔.”

“수색!”

당번병이 나가자 대대장은 아내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또 얼마가 필요한 건데?”

“어머어머. 이 양반 말하는 것 좀 봐. 누가 보면…….”

“얼마야?”

“애들 생활비도 있고, 당신 장인어른, 장모님 건강검진…….”

“얼마!”

“……천만 원이요.”

뿌득!

“알았어. 곧 붙여 줄 테니까 가 봐. 일하는데 괜히 방해하지 말고. 나도 평일엔 숨 좀 쉬자.”

“뭐예요? 내가 당신을 숨 막히게 한다는…….”

“가. 내 입에서 험한 말 나오기 전에.”

“……호호. 주말에 봐요옹. 사랑해용-!”

아내가 문을 닫고 나가자 소파에 털썩 앉은 성문식 대대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진급만 아니었어도 벌써 치워 버렸을 텐데…….”

군대에서는 이혼도 하나의 흠이 된다.

가정도 다스리지 못한 장교가 어떻게 병사들을 다스릴 수 있을까. 라이벌들에게는 아주 먹음직스런 흠집이었다.

“옛날엔 참 예뻤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한참 혈기 넘치던 초임 장교 시절 대민봉사지원을 갔을 때, 제 부모 농사일을 돕기 위해 드러낸 그 뽀얗고 하얀 다리에 눈이 돌아 버리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더 나은 결혼 생활을 했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자식새끼들도 달라졌겠지.”

하도 사고만 치기에 유학을 보내 버린 자식들.

“쯧.”

‘그나저나 천만 원이라……. 내일이나 모레에 상가번영회 회장과 자리를 잡아야겠군.’

얼마 전에 성의를 받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도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부엌을 힐끔 본 대대장은 화장실로 향했다.

부우웅!

저녁이라 한적한 국도.

성문식 대대장은 운전대를 잡은 당번병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시계 아직 못 구했지?”

유럽에 놀러 간 사단장 아드님이 첫 선물로 사 왔다고 은근히 자랑을 하던 시계.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는 라인이라서 여러 고위 장교들의 애간장만 닳게 한 놈.

“사, 상병 최진만. 죄송합니다. 아무리 찾아도…….”

“더 찾아봐. 희귀한 건 어떻게든 가지려고 하는 게 한국 사람들이잖아.”

그건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추, 충성.”

‘쯧. 그것만 구하면 차기 연대장이 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텐데.’

시계를 구해서 연대장에게 가져다 바치기만 해도 큰 점수를 딸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면 내가 사단장님 눈에 들 수도 있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피어나던 성문식 대대장은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쿵짝쿵짝!

뒤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음악 소리.

힐끔 뒤를 돌아본 성문식 대대장은 저 멀리서부터 휘황찬란한 불빛을 내뿜으며 달려오는 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동네에 저런 놈들도 있었군.”

저런 놈들을 낳고도 미역국을 먹었을 부모를 생각하니 같은 부모로서 한숨밖에 안 나왔다.

“속도 줄여.”

“상병 최진만. 속도 줄이겠습니다.”

부아아앙!

“끼얏호-!”

“이 새끼들아! 우린 여행 간다-!”

옆을 따라붙은 차에서 사내들이 차창 밖으로 몸을 빼 혀를 내밀거나 중지를 세운다.

“저, 저!”

“신경 쓰지 말고 운전에 집중해.”

연대장을 만나러 가는데 저런 놈들을 상대할 시간이 있을까.

“상병 최진만. 알겠습니다.”

입술을 꾹 다문 당번병은 속도를 조금 더 줄였고, 그런 그들의 반응에 흥미가 떨어진 것인지 요란하게 꾸며진 차는 속도를 높였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옆 차선에서 칼치기로 치고 들어온 상대 차.

놀란 당번병은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헉!”

빠아앙!

‘야, 이 개새끼들아!’

아마 뒤에 성문식 대대장만 없었더라도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끼이익!

경적 소리가 거슬린 것인지 브레이크를 밟은 요란한 차에서 염색과 문신을 한 사내들이 내린다.

“흡?! 대, 대대장님!”

‘빌어먹을.’

“……나가서 진정시켜.”

“하, 하지만…… 힉?!”

터엉!

한 사내가 차를 걷어찬다.

“씨발. 깜짝 놀랐잖아!”

“하, 이 씨발. 꼰대들! 어이, 나와 봐! 나와 보라고!”

텅! 텅텅!

차를 걷어차거나 문손잡이를 잡아당기는 양아치들.

“이런 씨!”

대대장의 압박을 못 이긴 당번병은 다급히 문을 열고 나가려 했지만, 무서워 차마 손잡이를 젖히진 못했다.

그렇게 반응을 보이지 않아선지 난동을 부리던 사내들의 팔과 다리가 이내 힘을 잃는다.

‘가, 가려는 건가?’

그러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야, 나와 봐.”

당번병과 성문식 대대장은 앞으로 나서는 사내가 꺼내 든 칼에, 그 칼이 타이어를 향해 휘둘러짐에 경악을 했다.

“마, 막아……!”

“이 씨발 꼰대들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콰악!

“미친!”

‘오늘 약속!’

성문식 대대장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때였다.

부우우웅!

뒤에서 다가오던 고급 세단 한 대가 그들을 지나쳤다가 멈춰 서며 세 명의 중년인들이 내린다. 종배수였다.

“이놈의 새끼들!”

“꼰대들은 또 뭐야?”

“꼬, 꼰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 종배수는 양아치들에게 윙크를 하였고, 양아치들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종배수는 품에 손을 넣어 권총처럼 생긴 무언가를 꺼냈다.

“그래, 꼰대다. 이놈의 새끼들아!”

종배수는 가소롭게 웃으며 방아쇠를 잡아당겼고 이내 총구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게 뿜어져 나왔다.

촤아아아아아!

“아악, 내 눈!”

“끄아아악!”

눈을 잡고 바닥을 뒹군 양아치들은 헐레벌떡 요란한 차에 올라타 차를 출발시켰고, 코웃음을 친 종배수는 대대장의 차로 향했다.

“어이구. 이거 타이어 갈아야겠네. 이봐요, 괜찮습니까?”

벌컥!

“아악! 타이어!”

그제야 헐레벌떡 내린 상병은 찢겨져 바람이 빠지는 타이어를 보곤 머리를 움켜쥐었고, 따라 내린 성문식 대대장은 종배수에게 다가갔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허허. 뭘요. 다 돕고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군인이신가 봅니다?”

“크흠. 성문식 중령입니다.”

“성문식? 흠.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다 알고 있음에도 천연덕스럽게 모른 척한 종배수는 이내 신경을 끄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뭐 됐고. 그보다 스페어 타이어는 있습니까? 아니면 견인차를 불러야 할 텐데…….”

대대장은 움찔 몸을 굳혔다.

그러면 늦는다. 그는 급히 당번병을 봤다.

“10분 안에 타이어 교체 가능하지?”

“사, 상병 최진만! 최, 최대한 빨리 해 보겠습니다! 으악!”

“으음.”

성문식 대대장은 트렁크로 달려가다 넘어지는 당번병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고, 종배수는 눈을 빛냈다.

“군인이 양복을 입은 것 보니 아무래도 어디 약속을 가시는 것 같은데, 같은 방향이면 제 차 타고 가시죠? 우린 춘천 쪽으로 갑니다.”

춘천. 성문식 대대장이 가야 할 곳이었다.

“아닙니다. 이미 신세를 졌는데 그렇게까지 할 순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한국인끼리 정이 있는데 어려울 때 돕고 사는 거죠. 혹시 또 압니까? 이후로 제가 중령님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지?”

“으음.”

성문식 대대장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답은 하나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더 신세를 지는 것보다 연대장과의 술자리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차에 오른 성문식 대대장은 살짝 눈매를 좁혔다.

“허허, 미안합니다. 좀 어지럽죠? 옛날에 제 호텔에 머무시는 분들에게 이벤트 형식으로 이것저것 팔다 보니…….”

종배수는 뒷좌석에 널려 있는 카달로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 가는 길에 심심하시면 독서 좀 하시겠습니까?”

종배수는 대답도 듣기 전에 카달로그를 안겨 주며 운전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뭐해? 출발 안 하고.”

“거 성질 더럽게 급하네. 알았어요, 알았어.”

“뭐, 인마? 이놈의 자식이…….”

“자, 출발합니다. 아, 형님. 춘천 쪽은 어떡해요? 거긴…….”

‘으음.’

그들이 대화를 시작하자 낙동강 오리알이 된 성문식 대대장은 결국 카달로그에 시선을 돌렸다.

‘흠. 요새 호텔에선 이런 것들도 파는 건가.’

핸드백이나 정장, 구두, 시계, 장신구 등 호텔에서 왜 파는지 모를 명품들이 카달로그 안에 가득 있다.

“음? 헉!”

별생각 없이 한 장, 한 장 넘기던 대대장은 어떤 시계 사진을 발견하곤 눈을 부릅떴다.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어두워서 잘 안 보이시나?”

“아, 아닙니다. 그보다 이 시계도 팔았던 겁니까? 제가 알기로 이건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라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종배수는 다시 눈을 빛냈다.

입질이 오고 있다.

“어디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손님을 유치할 수 있겠습니까. 희귀한 것들로 쫘악 깔아야 손님이 오지요.”

뇌물도 그렇다.

뇌물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지만, 한 번에 몇 천만 원 턱 내놓을 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런 희귀한 것들이 좋다.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힘들거나 해외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

‘그럼 그 쉐끼들이 껌뻑 죽지, 죽어.’

성문식 대대장도 곧 껌뻑 죽을 것 같았다.

종배수는 슬쩍 콧대를 세웠다.

“왜요? 필요한 거 있으면 구해 드릴까?”

“이거 초면에 큰 실례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요. 다 돕고 사는 거지. 연락처나 주쇼. 이건 내 명함.”

“저도 여기 있습니다.”

교환한 명함을 받아 든 종배수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허어…….”

“왜 그러십니까?”

“아니요. 거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이거 우리가 인연인가 봅니다.”

“음?”

“반갑습니다. 수색대대 근방 위수 지역에서 작게 모텔이나 PC방을 하는 M컴퍼니 사장 종배수입니다.”

성문식 대대장의 눈이 살짝 흔들린다.

“……그랬습니까?”

“허허. 이거 대대장님 휘하 장병들 덕분에 잘 먹고삽니다. 그래서 언제 한번 인사를 드려야겠다 생각했는데…… 아, 이래서 이름이 익숙했구만?”

“인사…… 말입니까?”

성문식 대대장의 눈에 경계심이 서리자 종배수는 능글맞게 웃었다.

“장병들 외출, 외박이 많아야 제가 더 돈을 벌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장병들 좀 팍팍 내보내 주십시오.”

“아아.”

“흠. 이거 완전히 모르는 사이도 아닌 것 같으니 최대한 빨리…… 잠깐, 어떤 시계라고 했지요? 아, 이거? 야, 지금 트렁크에 롤렉스 있냐?”

“롤렉스요? 있을걸요? 그, 그 손님들이 롤렉스는 싸구려라고 안 샀잖아요.”

“맞아, 그랬지. 그 배때지가 돈으로 채워진 개새…… 으허헛. 이거 실례.”

“음. 아닙니다.”

“형님, 춘천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아, 중령님 가실 목적지가 어딥니까? 가까운 곳이면 데려다 드릴까요?”

“아닙니다. 난 여기서 내려 주면 됩니다.”

솔직히 얻어 탄 김에 목적지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그보단 시계가 먼저다.

“시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예. 뭐 그럽시다. 내리시죠.”

차에서 내린 종배수는 트렁크를 열었고, 성문식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방금 전 대화는 진실이었다.

정말 커다란 박스 안에 빼곡히 채워져 있는 롤렉스 시계 박스들.

귀금속이나 핸드백도 마치 쓰레기처럼 박스째로 널브러져 있다.

“어디 보자아아. 아, 이거네! 이거 맞지요?”

“……맞군요.”

‘이걸 이렇게 구하다니!’

구하려고 할 때는 그렇게 찾을 수 없던 놈을 이렇게 쉽게, 그것도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될 거라곤 생각조차 못한 성문식은 입이 찢어지는 걸 막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위수 지역의 상인이라고 했지?’

성문식 대대장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솔직히 원하던 걸 얻긴 했지만, 돈을 주려니 아까웠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신과 연관이 깊은 위수 지역의 상인이지 않은가.

“큼. 내가 지금 현금이 없으니 부대에 복귀하면…….”

“아이고. 어디 팔 곳도 없는 재고 가지고 돈은 무슨……. 됐어요, 됐어.”

“허허. 그렇습…….”

“정 뭐하시다면 수색대대 근방뿐만 아니라 양구나 여기 춘천에도 제 사업체들을 오픈을 했으니 다른 동료분들에게 소문이나 쫘악 내 주십시오.”

움찔!

돌아서던 성문식은 놀란 눈으로 종배수를 봤다.

“사업을 크게 하시는군요?”

종배수는 그의 눈에 들어차는 욕심에 씩 웃었다.

“여기 동생들이랑 이래저래 먹고살기 위해 노력하는 거지요. 아, 이것도 가져가십시오. 이게 그 모델의 아들 모델인데, 아빠랑 아들이랑 같이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어어. 괜찮아요. 이 종배수 그렇게 속 좁은 놈 아닙니다?”

“흐흠.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식사라도 하지요. 그럼 난 이만.”

고개를 까딱인 대대장은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멀어졌고, 그 모습을 흐뭇이 바라보던 종배수는 돌연 빡빡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야, 이 빙신아. 거기서 말을 왜 더듬어?!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인마?!”

“오, 오랜만이라 그랬습니다. 그, 그래도 그냥 넘어갔잖아요!”

“그래서 네가 지금 숨 쉬고 있는 거야, 짜샤. 쯧.”

빡빡이는 미안하다며 머리를 긁었고, 곱슬머리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 코를 꿴 거겠죠?”

“당연하지, 인마. 방금 눈빛 못 봤어? 아주 눈깔이 뒤집어져서는…… 흐흐흐.”

이제부터 성문식 대대장은 트렁크에 있는 물품들을 어떻게 하면 다 선물로 받을 수 있을까 머리를 엄청 굴릴 게 뻔했다.

“그런데 안 들키겠죠? 그것들이 짜가란 게?”

그랬다. 지금 트렁크에 있는 건 죄다 진품과 똑같은 짝퉁이었다. 이번에 동대문과 남대문 일대 짝퉁들이 싹 쓸려 나가면서 정말 어렵게 구한 것들이었다.

“씁! 장사 한두 번 해 봐?”

진짜를 만든 사람이 와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에 종배수는 손목을 걸 수 있었다.

‘크. 역시 이 방법은 언제나 통한다니까?’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구해 주는 것부터 시작해, 진짜 같은 가짜를 들이밀며 목표물과 원만한 교우 관계를 쌓는 방법.

이게 밑바닥의 방식이었다.

“그럼 그 형님한테 전화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차! 그런 건 빨리 말해야지!”

종배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예, 형님! 에헤헤. 잘 계셨습니까?”

곱슬머리와 빡빡이는 굽실거리는 종배수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   *   *

“허허. 수고했어.”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연대장의 손길에 성문식 대대장은 고개를 더 숙였다.

그런 그의 입은 귀까지 찢어져 있었다. 오늘 함께 자리한 다른 대대장들이 질투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됐다!’

“앞으로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성문식의 손목에 걸린 아들 라인의 손목시계를 본 연대장은 피식 웃었다.

“그래, 조만간 연락할 테니 식사라도 한 끼 하지.”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수-색!”

“충성.”

그렇게 연대장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성문식은 다른 대대장들을 주욱 둘러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쯧!”

“에잉!”

‘패배자들 같으니.’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차로 향한 성문식 대대장은 안절부절못하는 당번병을 무시하며 차에 올랐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 대대장인데. 지금 위수 지역에 M컴퍼니라는 회사가 있나?”

-……아. M모텔, M고깃간 등을 말하시는 겁니까? 거기라면 다녀온 병사들의 호평이 자자해서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M은 밀리터리의 약자라고 합니다.

“그래, 아마 거기일 거야. 뭐하는 인물인지 아나?”

-위수 지역에서 흘러나온 말에 의하면 서울에서 호텔 사업을 크게 하던 인물이랍니다. 그리고…… 제 동기들에게 말하길 양구와 다른 위수 지역에도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대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진짜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대어다.

“알았어. 끊어.”

통화를 종료한 대대장은 담배를 물며 생각에 잠겼다.

“이게 우연일까, 아님 의도적일까.”

우연으로 치기엔 너무 공교롭고, 의도적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치밀하다.

대대장은 종배수가 후자 쪽이길 바랐다. 그래야 말이 통할 테니까.

“흠. 그나저나…….”

그런데 그보다 신경이 쓰이는 건 이렇게 돈 많은 인물이 위수 지역에 왔는데도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상가번영회 회장의 심보였다.

“자기 자리가 흔들릴까 무서워한 건가.”

피식 웃은 성문식 대대장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납니다. 장병들을 위해 이런저런 수고를 해 주신 것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으니 내일 모레 식사나 합시다. 아, 이번에 위수 지역에 새로운 분이 오신 것 같던데……. 예, 그럼 그때 보는 걸로 합시다. 난 참치회가 좋을 것 같군요. 예, 끊습니다.”

전화를 끊은 성문식은 운전석에 앉은 당번병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출발해.”

“예, 예! 출발하겠습니다.”

한편 그보다 몇 시간 전.

종배수와의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핸드폰을 오묘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이 새끼 진짜 능력 좋네.”

돈을 좀 쓸 수도 있다고 말한 지 고작 나흘이 흘렀을 뿐인데 대대장과 안면을 텄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 코를 꿰어 버렸다.

이제 남은 건 그들만의 세상에, 그들만의 은밀한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종혁은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예, 과장님. 최 팀장입니다. 제가 말한 시기에 국세청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이제 끝을 볼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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