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65화 (26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65화>

“헥헥헥헥!”

무릎 위에서 빵빵하게 부푼 배를 까고 누운 덕자.

얼마나 잘 먹고, 잘 잤는지 묵직하다.

“인마, 너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냐?”

“왕!”

세상에 걱정 한 점 없다는 듯 해맑은 미소에 손이 절로 배를 문지르게 된다.

그사이 검토를 다 한 건지 탁 소리가 나게 보고서를 덮은 정용진 부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피해 규모가 상당하군요.”

“전쟁 발발 시 5분 내에 부대 복귀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위수 지역이다 보니 그 피해는 천문학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피해 사실은 확인이 가능하겠습니까?”

“군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피해 사실을 조사하려면 부대 안에 들어가야 한다.

아니면 외박이나 외출을 나온 장병에 접근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일이 번거로워진다.

“흐음. 군이라…….”

정용진은 생각에 잠겼다.

경찰의 공권력이 통하지 않는 군대.

대한민국에서 폐쇄적이기로 손꼽히는 집단이다.

“협조를 요청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괜찮겠습니까? 최 팀장은 분명…….”

육군 소장의 아들 채팅살인마 윤영철을 교도소에 처박아 버린 전적이 있는 종혁이다. 신원이 밝혀진다면 절대 협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초점은 가격 담합과 탈세 범죄다.

범죄의 입증조차 힘든 가격 담합과 탈세. 종혁으로선 처음 맡는 유형의 사건이었다.

정보국 소속이었던 정용진도 처음 접하는 사건이었다. 비슷한 사건은 많이 봤어도 말이다.

그 경험에 의하면 주의해야 될 점은 하나다.

“어디까지 얽혀 있을지 모르기에 자칫 잘못하면 닭 쫓던 개, 아니 역풍이 크게…….”

말을 하던 정용진은 덤덤한 종혁의 표정에 풀썩 웃었다.

“계획이 있군요.”

‘아이고, 이 양반아. 내가 지능범죄수사대 대장이었어요.’

사기, 위조, 횡령, 탈세 등 지능범죄의 전문가가 종혁 본인이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는 종혁의 모습에 정용진은 못 말리는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승인하죠. 다만.”

정용진은 손가락 하나를 펴며 눈을 빛냈다.

“단속부터 시작한 후에.”

명분. 특별수사팀이 나설 명분을 얻기 위해서다.

‘이 양반도 참.’

두뇌 회전이 예술이었다.

씩 웃은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충성.”

“끼잉.”

벌써 가? 하며 아쉬워 우는 덕자를 쓰다듬은 정용진은 마치 허락할 줄 알았다는 듯한 종혁의 반응에 눈을 빛냈다.

“흐음. 제가 허락할 줄 알았던 겁니까?”

“제가 아는 과장님은 상식적인 분이시니까요.”

움찔 몸이 굳는 정용진을 뒤로한 종혁은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남겨진 정용진은 하품을 하는 덕자를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상식적이라…….”

웃는 듯 우는 듯 정용진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   *   *

경찰, 군 위수 지역 집중 단속 시작! 위수 지역이란?

성매매 근절 및 주취, 지명수배 단속!

위수 지역 상인들 날벼락에 항의!

저녁 시간에 들이닥친 경찰? 경찰 때문에 못살겠다!

역시 찔리는 게 있는지 강력하게 반발하는 위수 지역 상인들의 거센 저항에 단속은 고작 일주일 만에 흐지부지 끝나 버리게 됐다.

그에 오택수는 혀를 끌끌 찼다.

‘아주 축배를 들고 있겠구만. 개새끼들.’

“예.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충성.”

오택수는 종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뭐래?”

“뭐긴 뭐래요.”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단속을 시행한 경찰들 중 단 한 명도 가격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대요.”

“단 한 명도? 지랄 났다.”

‘나도 큰 기대는 안 했다, 새끼들아.’

한 지역에 속한 주민 전체가 작정을 하고 입단속을 하는 사건이다. 못 봤을 수도 있고 보고도 못 본 척한 것일 수 있지만, 작정하고 속인다면 속을 수밖에 없다. 물론 둘 다 큰 문제였다.

한숨을 탁 내쉰 오택수는 외투를 챙겨 들었고, 종혁은 황급히 따라 일어서는 최재수를 봤다.

“다리는? 재활치료 안 받아도 괜찮겠어?”

며칠 전 실밥을 뽑고 퇴원한 최재수. 아직은 안정을 취해야 할 때였다.

“괜찮습니다! 재활 치료는 가서 해도 됩니다!”

어떻게든 갈 거라는 듯 눈을 부라리는 그의 모습에 종혁은 피식 웃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도착하면 다리 컨디션이나 끌어올릴 생각만 해. 형사는 그 몸뚱이가 재산이니까.”

언제 뒤질지 모른 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몸뚱이.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몸뚱이가 형사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이번 사건만 해결하고 은퇴할 거 아니면 내 말 따라. 알았어?”

“……옙!”

“그럼 저흰 다녀오겠습니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사무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 잘 다녀오드라고-!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콜하고!”

“올 때 아이스크림!”

이번 수여식 이후 부쩍 가까워진 2팀과 3팀은 일망타진을 외치며 손을 흔들었고,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는 강원도로 향했다.

육군 27사단, 흔히 이기자부대라 부르는 사단의 수색대대.

대대 건물 앞에 선 대대장은 위병소 쪽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윤경수 소장님을 날려 버린 놈이라고?”

사이코패스 아들을 둔 죄로 인해 탄탄대로였던 출셋길에서 내려와 일개 야인이 되어 버린 윤경수 소장.

물론 대한민국의 국방을 지키는 장성으로서 그런 흠집이 있으면 안 되지만, 이런 말이 있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분이 얼마나 청렴결백하셨던 분인데!’

훗날 육군을 개혁할 차기 참모총장으로 유력시되던 위인이었다.

한때 윤경수 소장을 직속 상사로 모셨던 대대장으로서 종혁은 죽일 놈에 불과했다.

“병사들 입단속 확실하게 해. 그딴 새끼한테 터럭만큼 작은 거라도 넘어갔다가는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뭘 받아 처먹었다고 하더라도.”

대대장은 김재우가 소속된 중대의 중대장을 가만히 응시했고, 중대장은 다급히 거수경례를 했다.

“추, 충성!”

“……헌병에 그놈을 아는 놈이 있다고?”

“경찰대에 입학했다가 육사로 편입을 한 신임 소위가 있어서 호출을 했는데, 어제 도착해서 영내에 대기 중인 상태입니다.”

“함께 집어넣어서 감시해.”

“알겠습니다.”

“오는군…….”

부우우웅.

멀리서 다가오는 롤스로이스에 대대장은 얼굴을 구겼다.

“26살이라고 하지 않았나?”

“겨, 경정이라고 합니다. 군으로 치면 대위입니다.”

“……부모 잘 만난 애새끼였군. 쯧.”

26살에 대위. 대대장은 코웃음을 쳤다.

“경찰이 얼마나 개판인지 알겠어.”

차가 멈춰 서자 표정을 수습한 대대장은 차에서 내려 다가오는 종혁을 무심히 응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다른 군인들도 말이다.

종혁은 온몸에 꽂히는 시선에 씩 웃었다.

“협조 요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청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 1팀 팀장 최종혁 경정입니다.”

“수색대대 대대장 성문식 중령입니다. 북핵 문제로 전방 부대 전체가 골치 아픈데 별거 아닌 일로 번거롭게 하는군요. 이게 경찰의 특기입니까?”

“죄송합니다. 이 나라의 장병들이 2년 동안은 군의 소속이지만, 이후엔 저희 소관이라서 말입니다. 이 나라의 국방에 한 목숨 바치는 대한민국 건아들을 위한 일이니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고작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이 많은 사람을 귀찮게 하냐, 그 몇 푼이 니들이 강제로 데려간 국민의 목숨 값이다 이런 칼날을 숨긴 둘의 대화.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불꽃처럼 파바박 튀었다.

“……흥. 장소는 마련해 뒀으니 거기서 조서를 꾸리면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 군의 헌병도 참관할 테고, 이후 협조는 여기 조 중대장이 해 줄 겁니다. 그럼 난 바빠서 이만.”

“추, 충성!”

“다시 한번 협조 감사합니다. 충성.”

“흥!”

대대장은 중대장들과 함께 우르르 대대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남겨진 김재우 소속 중대의 중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차피 얻는 것도 없을 텐데 왜 이렇게 오셔서 여러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겁니까?”

그렇게 많은 걸 처먹고도 짜증부터 내는 그의 모습에 종혁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 얻을 게 없다는 말은 상인들이 깨끗해서입니까, 아니면 얽힌 분들이 계셔서입니까?”

“……저희 군을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상인들도 장병들을 위해 뭐 하나라도 더 해 주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신 분들입니다.”

“예, 예. 그러시겠죠. 그럼 저희가 머물 사무실부터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이렇게 말싸움으로 시간 낭비를 하지 말자는 뜻이 함축된 말에 중대장은 이를 갈았다.

“따라오시죠.”

쾅!

여기서 하면 된다고 안내한 중대장이 거칠게 문을 닫으며 떠난 공간을 둘러본 종혁은 혀를 내둘렀다.

“이야아.”

대대 건물 뒤편의 허름한 창고로 안내될 때까지만 해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바닥에 쌓인 먼지나 거미줄, 쓰레기.

앞으로 어떤 취급을 받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허어. 군이 경찰을 싫어하는 것쯤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 못했네.”

“군이 경찰을 싫어해요? 왜요?”

“……이따가 저녁에 인터넷 찾아봐. 이젠 하나하나 알려 주기도 귀찮다.”

“씨발. 또 자기들만…….”

빠악!

“악!

“닥치고. 가서 청소 도구나 얻어 와. 가져온 거 세팅하려면 여기부터 치워야 할 것 같으니까.”

“쩝. 예, 알겠습니다.”

“누구한테 얻어야 되는지 알아?”

“저 육군 병장 출신이에요.”

군대를 다녀온 후 경찰에 지원한 최재수.

머리를 긁으며 문을 열던 최재수는 문을 두드리려는 포즈로 서 있는 헌병에 깜짝 놀랐다.

“여기가…… 어? 최종혁?”

“엥?”

고개를 돌렸던 종혁은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동기의 모습에 눈을 껌뻑였다.

“뭐야, 네가 여기 왜 있어?”

어느 날 갑자기 자퇴를 하며 사라져서 걱정했던 동기.

여기서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종혁의 동기는 견장에 달린 소위 마크를 매만지며 쓴웃음을 지었다.

“뭐 이런저런 이유가 있어서. 네 소식은 다른 애들한테 전해 들었어. 벌써 경정이라면서? 햐, 경찰대에서도 예술이더니 진급도 예술이네.”

“크크. 넌 이제 아무리 노력해도 내 밑임.”

“……아오, 진짜 이걸 팰 수도 없고.”

“왜? 패. 괜찮아.”

“아냐. 내가 지니까 그래.”

“오올. 이제 실력 파악 좀 하는데?”

“하, 진짜 때리고 싶다.”

“크큭. 그래서?”

종혁의 눈빛이 삽시간에 가라앉자 동기는 입을 다물었다.

“……미안하다. 아무래도 나 감시 역인 것 같다.”

“그거야 당연히 눈치챘고. 그보다.”

종혁은 동기의 가슴을 쿵 두드렸다.

“여기다 새긴 경찰 선서는?”

“씨발 새끼야. 나도 경찰이야.”

으르렁거리듯 사납게 이를 드러낸 동기의 모습에 종혁은 그의 옆통수를 탁 쳤다.

“시끄러워. 동기를 좆으로 아는 병신 새끼야. 아주 한 번만 더 이래 봐라. 콱, 씨발.”

“알았어, 알았다고.”

종혁의 따뜻한 말에 울컥했던 동기는 눈매를 날카롭게 세웠다.

“그래서 뭔 일인데?”

‘이제야 내 동기답네.’

흐뭇이 웃은 종혁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건 저기 오는 피해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알게 될 거야.”

입단속을 당했든 아니든, 앞으로 시작될 대화를 듣는다면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청소를 마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아닙니다. 위수 지역 사장님들은 저희를 마치 친아들처럼, 조카처럼 챙겨 주십니다. 서, 서비스도 많이 주십니다.”

판에 박힌 대답.

종혁은 안경을 치켜세우며 장병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러니까 단 한 번도 위수 지역에서 부당한 일을 당한 적이 없단 말이죠?”

“그, 그렇습니다.”

“협박을 당하시거나 강요받는 그런 일은 없으시고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전종호 상병, 이거 가져가세요.”

눈치를 보던 상병은 슬그머니 책상 옆에 놓인 과자 중 한 봉지를 챙겨 일어섰고, 문가에 서 있던 중대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거보십시오. 문제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체 누구에게 뭘 들었기에 이렇게 부대를 뒤집어 놓는지 몰라도 계속하셔 봤자 없는 일을 있는 일로 만들 순 없는 겁니다.”

“뭘 들은 게 아니라 제가 직접 당했습니다. 이야, 위수 지역 물가 살벌하데요? 강남인 줄?”

“…….”

종혁은 씩 웃었다.

“곧 점심시간인 것 같은데 잠깐 쉬었다 할까요?”

“……알겠습니다.”

콰앙!

“하아.”

“후우.”

뜨거워진 머리를 쓸어 올린 사람들은 무너지듯 의자를 젖혔다.

안경을 벗은 종혁은 담배를 문 채 방금 정리한 진술서를 저장했다.

“야, 이 새끼들 대본을 줬나 본데?”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똑같은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오택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정말 계속해야겠냐?”

앞으로도 똑같은 말만 나온다면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오택수는 목소리를 낮췄다.

“차라리 이 부대를 제대한 사람들을 찾는 게 낫지 않겠어?”

제보자의 신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대대원 전원에게 진술을 받고 있음에도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을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이들로서는 심적 부담이 크게 다가오는 탓일 터였다.

이대로라면 피해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고, 더 이상 수사를 이어 나간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종혁은 태연한 모습으로 대꾸했다.

“뭐 그건 그거대로, 이건 이거대로 해야죠. 이것도 다 증건데.”

어디에 쓰일지는 아직 모르는 증거지만 말이다.

“뭐? 너 혹시…….”

“자, 우리도 밥 먹으러 가죠. 짬밥은 맛이 어떠려나?”

“엑! 짬밥 먹어요? 굳이?”

“군대에 왔으면 짬밥을 먹어 봐야지! 내 동기님은 많이 드셨겠지만 또 드셔.”

“야, 그냥 내가 살게. 나가자!”

“응. 안 돼.”

“……씨발.”

출장까지 나와서 짬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종혁의 동기는 낙담을 했고, 종혁은 킬킬 웃으며 일어섰다.

그렇게 장병 식당으로 향하는 길.

종혁의 동기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묻는다.

“위수 지역 바가지 때문에 온 거였냐?”

“그럼 내가 병영 비리 때문에 왔을까. 아는 거 있어?”

“……모를 리가 있겠냐.”

그가 헌병 장교가 된 후 제일 먼저 다루려고 했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군부대 밖 민간인의 일이라며 그 자리에서 기안서가 찢겨 버렸다. 민간인의 일은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라며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헌병대로 부임된 초임 간부들이 한 번씩은 겪는 연례 행사였다.

“오, 맞는 말 했네.”

“야! 그 새끼들도 반쯤 군 관계자야!”

군인들에게 팔아먹기 위해 장사를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위수 지역 장사꾼들.

어찌 그들을 군과 관계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민간인 신분이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수사는 경찰의 역할이었다.

냉정한 종혁의 눈에 동기는 무력감을 느꼈다.

“후우. 돌아가면 그때 조사한 자료…….”

“됐어. 그러다 괜히 잘리지 말고.”

“……미안하다.”

“동기끼리 미안하긴, 씨발. 그보다 저기가 말로만 듣던 병영 식당이야? 오, 나름 깔끔한데?”

“깔끔하기만 하지.”

첫째도 청결, 둘째도 청결, 셋째도 청결인 군대.

“정말 당부하는데, 기대하지 마라.”

“시끄러워.”

콧방귀를 뀐 종혁은 갑자기 나타난 민간인에 몰리는 장병들의 시선을 받으며 배식판을 들었다.

그리고 첫술을 뜨곤 얼굴을 와락 구겼다.

‘곧 망할 분식집을 가도 이것보단 잘하겠다!’

“거봐, 내가 뭐랬어.”

“……씨발.”

*   *   *

“후우. 아직까지 하는 건가?”

벌써 4일째다.

종혁이 부대 분위기를 어지럽힌 게 말이다.

“멍청한 건지, 강단이 있는 건지.”

“멍청하니까 그렇게 돈을 써 가며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과자나 음료수를 나눠 주고, 맨날 장병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장병들의 환심을 사려 한 수작을 왜 모르겠나.

하지만 그들이 부대 밖 민간인인 이상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위수 지역 상인들이 다치면 결국 장병들이 피해 입는 거 알지? 말 나오지 않게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단속해.”

“충성.”

-왼발! 왼발!

대대장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장병들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마침 마지막 인원들이 오는 것 같군요. 김재우 이병 내무반 병사들입니다.”

“김재우 이병은?”

“걱정 마십시오. 잘 처리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대대장은 담배를 물며 돌아섰다.

“차 대기시켜. 사단에 가야 하니까.”

“예.”

“재우 지인분…….”

“재우는요?”

“……멀리 진지 보수 갔습니다. 아마 며칠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여기 이것들도 가져가시고요.”

“죄송합니다.”

손을 저은 종혁은 웃으며 배웅을 했고, 중대장은 그런 종혁을 향해 얄밉게 웃었다.

“더 이상 장병은 없습니다만? 왜요? 휴가나 지원 나간 장병들도 불러 드릴까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 감당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종혁은 싱긋 웃었다.

“휴. 아니요, 괜찮습니다. 대신 못 온 병사의 신상명세서는 보내 주시겠습니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부대원 전부를 조사했다는 증거는 남겨야 돼서.”

“……그럽시다.”

“끝까지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얼굴 보기 더럽게 힘든 친구님. 다음에 연락했을 때 안 나오면 죽여 버린다, 진짜.”

“하하, 알았어. 애들이랑 다 같이 얼굴 한번 보자.”

“크흠! 멀리 안 나갑니다.”

쿵!

문이 닫히자 남겨진 셋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군대……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요.”

“아주 아름답다 못해 징그럽다! 씨발!”

특별한 이유가 있어 오지 못하는 인원을 제외한 대대 장병 전원을 조사했는데, 그중 단 한 명도 위수 지역 상인들을 고발한 사람이 없다.

‘이게 다 징병제라서 그런 거지…….’

강제적으로 시간이 얽매이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입을 다물었을까.

“에휴. 갑시다, 가. 내일부턴 양구 쪽 부대 가야 해요.”

양구 쪽 군부대가 뭔가, 인근에 위수 지역이 있는 군부대는 모두 들러야 한다.

“야, 이번 수사 끝나면 꼭 여행 가자. 뭔 놈의 수사가 할 때마다 힘들어?”

“그럽시다, 그래요. 재수, 다 챙겼어?”

“옙!”

가리봉동 사건 이후 종혁은 최재수를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군부대를 빠져나온 셋을 태운 차는 위수 지역을 가로질러 시내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퍼억!

“악?!”

다급히 차를 세운 최재수는 앞 유리를 물들인 흰색 액체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종혁과 오택수는 우유팩을 던지고 후다닥 멀어지는 십대 소년의 모습에 낯빛을 굳혔다.

“저, 저 꼬맹이가!”

“문 열지 마.”

“예?!”

퍼억!

최재수는 운전석 창문에 부딪쳐 깨진 계란을 보곤 몸을 굳혔고, 낯빛을 굳힌 종혁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차 출발시켜. 네가 세차할 거 아니면.”

“예, 예!”

부우우우웅!

“씨발, 우리가 조사한다는 게 퍼졌나 본데?”

“당연히 그렇겠죠.”

“어떻게 할 거냐? 이거면 양구 쪽도 이 지랄 날 것 같은데.”

군부대에 진입할 수 있으면 다행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갈 거야?”

“……아니요. 서울로 갑시다.”

“서울로?”

오택수는 껌뻑이던 눈을 크게 떴고, 종혁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군부대와 위수 지역에선 너희가 왕이지?’

하지만 그 바깥에선 경찰이 갑이다.

“일단 신고한 사람들 중 휴가 나온 장병이 있는지 확인부터 해 주세요.”

“흠. 걔들이 말하겠어?”

“말할 이들이 있잖아요.”

국가가 강제로 채워 놓은 족쇄를 벗을 준비를 하는 이들. 그들을 만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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