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64화 (264/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64화>

    “아, 겁나 추워.”

    이른 아침, 소속사 JC엔터테인먼트 앞에서 바들바들 떨던 준형은 이쪽을 향해 다가와 멈춰 서는 롤스로이스와 그 차에서 내리는 종혁의 모습에 씩 웃었다.

    “요, 브로!”

    “왜 춥게 나와 있어요.”

    어느새 동장군도 자취를 감춘 3월 말이 됐지만, 아직은 추울 수밖에 없다.

    “오랜만이잖아. 문 밖에서 기다리는 건 주인이 할 일.”

    “왜? 아예 동구 밖에서 기다리지?”

    “동구 밖? 동구 실장 옆에서 기다려야 해?”

    “……한국어 좀 익히자, 이 양반아.”

    고개를 저은 종혁은 JC엔터테인먼트의 건물을 응시했다.

    상암동에 신축으로 지어진 15층짜리 건물.

    한옥의 색채가 묻어나는 건물 디자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속화되는 글로벌 한류에 하나의 랜드마크로 한국을 알리겠다는 정영탁 대표이사의 의지가 드러난 디자인.

    ‘어마어마하게 벌었구나.’

    “맞아. 우리 식사옥 처음 오지?”

    “신사옥.”

    “오케이. 아이 가릿. 어때? 삐까뻔쩍하지? 저거 8층까지 우리가 지은 거야!”

    “인정합니다. 아, 이쪽은 드바 로마노프 차이나의 상무이사인 에바 미진 킴, 김미진.”

    “드바 로마노프? 거기 옷 가게아냐? 우리 연습생 애들도 거기서 옷 많이 사는데! 오우, 커리어우먼 맨-! 헬로, 레이디!”

    준형은 팔을 들었고, 미진은 그 손을 양손으로 낚아채며 눈을 빛냈다.

    “저 팬클럽 1기예요, 오빠!”

    “뭐? 진짜?”

    종혁도 놀랐다.

    ‘쟤가 형들 팬이었어?’

    “누, 누구 팬이었어?”

    “당연히 오빠 팬이었죠! 어머어머, 사인해 주세요!”

    “어, 어메이징! 오케이! 들어와! 내가 식사옥 소개시켜 줄게!”

    준형은 미진의 손을 잡아끌었고, 종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가장 먼저 반긴 건 로비의 바닥을 채우는 한국의 지도였다. 독도와 해역이 확실하게 표기된 지도.

    “헛! 최, 최종혁 자문님?”

    고개를 든 종혁은 멀리서 이쪽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한 중년 남성을 향해 검지를 입술에 대며 윙크를 했다.

    재빨리 입을 다문 중년인은 슬그머니 모른 척하며 걸음을 옮겼고, 그런 중년인을 발견한 로비의 사람들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전무님!”

    “안녕하십니까!”

    ‘누군지 모르겠지만 JC엔터 창립 멤버인가 보네…… 음?’

    종혁은 이쪽을 빤히 응시하는 미진을 향해 어깨를 으쓱여 줬고, 피식 웃은 미진은 준형을 따라 한 바퀴를 주욱 돌았다.

    “이쪽은 우리 JC 예비 스타들이 연습하는 곳! 요, 꼬맹이들! 육수들을 잘 뽑고 있냐-!”

    “헉!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연습실 안으로 들어선 종혁은 몸을 풀다가 재빨리 차렷 자세를 취하는 백여 명의 연습생들의 면면을 보다가 살짝 당황했다.

    본래라면 JC엔터테인먼트가 아닌 다른 소속사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는 스타들이 여럿 자리하고 있는 탓이었다.

    가장 당황스러운 건 제일 앞에 서 있는 미소가 해맑은 작은 키의 미남과 그 옆에 서 있는 4명이다.

    ‘이 새끼들이 왜 여기에…….’

    한 멤버만 제외하고 죄다 초대형사고를 치는 골칫덩이들이지만, 실력만큼은 그 누구도 흠잡을 수 없던 아티스트들.

    ‘아, 삼성클럽 사건 때 그 양반 날아갔지?’

    성상납과 뇌물에 대한 여러 증거들이 나오면서 징역 7년을 받았다. 그때 정영탁 대표에게 그 회사를 인수하라고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쩝, 이것도 나비효과인가? 거기다…….’

    종혁은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체구의 소녀를 보곤 눈을 빛냈다.

    ‘이설아.’

    훗날 대한민국 대표 여자 아티스트가 되는 싱어송라이터다.

    ‘미래 캐시카우들이 여기 다 모여 있구나!’

    “오우. 종혁 눈 좋네. 얘들 데뷔조거든! 올해 데뷔해!”

    “아, 그래요?”

    “애들아, 인사해. 마이 히스토리 알지? 내 키다리 아저씨.”

    “헉! 이, 이분이요?!”

    JC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 중 준형들의 히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래도 반가워요. 대한민국 경찰청 특별수사 1팀의 최종혁 경정입니다.”

    “겨, 경찰이요?”

    “예. 그러니 괜히 사고 쳐서 나 만나지 맙시다.”

    종혁은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다 가장 어리고 가장 뺀질뺀질하게 생긴 소년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아악?!”

    “그땐 아주 혼쭐을 낼 테니까. 진짜 명심합시다.”

    “아아악! 네, 네네!”

    싱긋 웃은 종혁은 준형을 바라봤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다 모여서 연습해요?”

    “노노. 아침 운동 시간이라서 다 모인 거야.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 부상을 방지한 후에 각자 연습실로 흩어진다?”

    “뎃츠 라잇.”

    ‘좋은 방법이네.’

    정영탁 대표는 매일 아침 데뷔조를 보여줌으로써 다른 연습생들로 하여금 의욕을 고취시키고, 하나 된 소속감을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음.”

    간편한 옷차림을 한 연습생들을 주욱 훑어본 종혁은 미진을 봤다.

    “미진아, JC에 연습복으로 쓸 단체복 좀 후원할 수 있을까? 미래의 스타들이라잖아.”

    “흐응.”

    날카로운 눈으로 연습생들을 둘러본 미진은 이내 곧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마사지를 받으면 제법 연예인 티가 날 애들이 몇몇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지시해 놓을게요.”

    “땡큐. 자, 그럼 둘러볼 건 다 둘러본 것 같으니 우리도 이만 갑시다. 더 지체했다간 재우 울어요.”

    “오케이, 오케이. 애들아 나 간다. 수고해!”

    “서, 선배님!”

    “응?”

    “혹시 재우 선배님 만나러 가세요?!”

    가수 파트 연습생의 외침에 순간 다른 연습생들의 눈빛이 간절해진다.

    가수라면 존경할 수밖에 없는 레전드라서 보고 싶은 것도 있고, 그 핑계로 단 몇 시간이라도 이 연습실을 벗어나고 싶은 것도 있는 등 여러 감정이 혼합된 눈빛이다.

    이런 연습생들의 마음을 아주 잘 아는 준형은 난처하다는 듯 종혁을 봤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종혁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재우도 오랜만에 어린 후배들 보면 좋겠죠. 적당히 추려서 데려와요. 대표님에겐 내가 말해 놓을 테니까.”

    “오우 싯. 역시 브로! 애들아-! 짱! 깸! 뽀!”

    “우와아아아!”

    피식 웃은 종혁은 핸드폰을 꺼내며 몸을 돌렸고, 미진은 그런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여기 투자자였어요? 얼마나?”

    “그러는 넌 언제부터 저 형들 팬이었냐? 너 원래 폼에 살고 죽는다는 다른 그룹…… 읍?!”

    “쉿.”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방금 전 호들갑 떨던 모습은 사회생활이었던 것 같았다.

    *   *   *

    “야.”

    “이병 김재우!”

    “오늘 면회라며?”

    “이병 김재우. 예, 그렇습니다!”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 누가 월요일에 면회 잡으래. 미쳤냐?”

    ‘아, 진짜 종혁이 형!’

    “죄, 죄송합니다!”

    “야, 됐어. 자대 배치 후 첫 면회잖아.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보다 누가 오는데? 혹시 동료 여가수들이냐?”

    여가수란 말에 내무반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아귀들의 눈빛이 모인다.

    밖에선 레전드 가수지만, 여기선 그저 어리바리 이등병일 뿐인 재우는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걸 느꼈다.

    “아, 아닙니다! 준형이 형과 아는 형이 오기로 했습니다!”

    “……에이. 얼른 면회하고 와라. 오후에 작업 있다.”

    “이병 김재우! 알겠습니다!”

    흥미가 떨어진 선임들은 고개를 돌리고, 재우가 남몰래 한숨을 쉬는 그 순간이었다.

    -아, 아. 행정반에서 전파합니다. 이병 김재우는…….

    “이병 김재우! 면회 다녀오겠습니다! 수색!”

    “그래, 다녀와.”

    “재우야,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하나 사 와라.”

    “예! 알겠습니다! 수색!”

    ‘흐흐. 면회다.’

    숨 막히는 내무반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은 재우는 최대한 걸음을 재촉했다.

    “형, 좋아요?”

    “이병 김재우! ……솔직히 좋습니다.”

    아직 백일 휴가 전이라서 전우조로서 면회소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는 맞선임 일병은 그 마음 다 안다는 듯 푸근히 웃었다.

    “어, 김재우 이병!”

    “수, 수색!”

    김재우는 행보관과 중대장이 함께 걸어오자 다급히 경례를 했다.

    “크. 역시 바깥에서 큰일을 하고 와서 그런지 지인분도 참 대단하더구나?”

    “예? 헉! 자, 잘 못 들었습니다?”

    “아냐! 따라와!”

    ‘나, 나 면회 가야…….’

    하지만 감히 중대장과 행보관을 거스를 수 있을까.

    의아해하며 건물을 나선 김재우는 커다란 트레일러와 그 속에서 물품을 빼내는 장병들을 보곤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아냐. 됐어, 됐어. 김재우 이병은 일할 필요 없어. 그렇지 않습니까, 중대장님?”

    “그럼요. 손 하나 까딱하면 안 되죠. 김재우 이병, 그 지인분께 정말 고맙다고 전해 드려. 덕분에 우리 애들 편하게 지내게 될 거라고.”

    사제 국방 셔츠에 활동복, 군화뿐만 아니라 온갖 부식에 연예인 화보집, 자기계발 서적 등 수십 가지 물품이 가득 실려 있는 트레일러.

    황금마차와도 비교도 안 되는 것들이 쏟아진다는 소식을 들은 건지 장병들이 창문을 열고 구경하고 있었다.

    ‘종혁이 형이다!’

    그의 지인 중 이런 미친 짓을 할 인간은 종혁밖에 없었다.

    “오늘 영내 면회지? 영외 면회, 아니 외박하고 내일 들어와. 백일 휴가 전이라 이것밖에 못해 줘서 미안하다. 대신 백일 휴가 때 포상 휴가까지 모두 합쳐서 나갈 수 있게 할 테니까 서운해도 참아.”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수색!”

    “그래. 김 일병이 인솔 병사인가? 자네도, 아니 재우 지인분께서 내부반 전원 보내 줄 수 있냐고 했었지…….”

    처음엔 말도 안 되는 말이라 난색을 표했는데, 이런 걸 받은 이상 어찌 거절하겠는가.

    “좋아. 지금 튀어가서 자네 내부반 총원 외박 준비하라고 해! 10분!”

    “……수-색!”

    김 일병이 내무반으로 달려가자 중대장은 재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내무반 생활에 힘든 점은 없고?”

    “아, 아닙니다! 선임들 모두 모두 잘해 주십니다!”

    “그래그래.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감히 김재우 이병 괴롭히는 놈 있으면 내가 아주 아작을 내 줄 테니까!”

    ‘최종혁. 야, 이 미친 인간아.’

    정말 선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지난 몇 달간 그렇게 보고 싶었던 바깥 풍경과 맡고 싶었던 바깥 공기지만, 지금 김재우에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부대 밖에서 담배를 문 채 손을 흔드는 종혁을 향해 다급히 달려갔다.

    “야, 이 미친 형님아.”

    “큭큭. 왜? 마음에 안 들어? 어리바리 고문관 좀 잘 봐 달라고 뇌물을 드린 건데.”

    “……그럴 거면 말이라도 하지.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서프라이즈다, 인마.”

    툭툭 재우를 두드린 종혁은 주춤거리며 다가오는 재우의 선임들에게 다가갔다.

    “충성. 저기 멀대 고문관의 아는 형인 최종혁입니다. 이거 바쁘신데 괜히 외박을 하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덕분에 월요일에 쉴 수 있게 돼서 참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음…….”

    “아, 연예인 아니고 경찰입니다.”

    “그, 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그럼 타시죠. 바깥에 나오셨는데, 1초라도 더 즐기셔야죠. 아, 오늘 경비는 저놈 좀 잘 봐 달라는 의미로 제가 모두 쏠 테니 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예에?!”

    경악하는 선임들을 본 재우는 종혁이 또 돈지랄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   *   *

    치이이익!

    고기가 노릇하게 익어 가는 고깃집. 오늘 갑자기 몰려든 손님들에 고깃집 사장의 입이 귀까지 찢어진다.

    “……고마워, 형.”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와야 하는 군대.

    하지만 예상과는 너무 달랐던 자대 생활에 저기에서 구르면 제대를 할 수 있을까, 이대로 탈영하면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고통스런 충동이 들었다.

    정말 이대로 버티다간 미쳐 버릴 것 같은 와중에 종혁이 찾아와 이렇게 환기를 시켜 줬다.

    거기다 잘 봐 달라는 선물까지.

    종혁이 너무도 고맙고, 또 고마운 재우였다.

    그런 재우의 마음을 알아차린 종혁은 잘하고 있다며 재우의 손등을 두드렸다.

    “됐어. 형이 돼서 이것도 못해 주겠냐. 그보다 몰골이 이게 뭐냐? 살은 또 왜 이렇게 빠졌어?”

    군대에 간 지 얼마나 됐다고 애가 반쪽이 됐다.

    제아무리 물살이지만, 그래도 덩치가 종혁 본인에게 육박했던 놈이 이렇게 홀쭉해진 모습을 보자 괜스레 짜증이 났다.

    “혀엉…….”

    종혁은 결국 눈물을 보이는 재우를 향해 술병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런 냉동 삼겹살로 괜찮겠어? 사제 음식 많이 먹고 싶었을 텐데.”

    솔직히 아무리 냉동 삼겹살이라지만 고기의 질이 썩 좋지 않다.

    “아냐. 형은 내가 이걸 얼마나 먹고 싶어 했는지 모를 거야.”

    영외 외출이나 외박 휴가를 다녀오는 장병들이 풀풀 풍기는 고기 냄새를 맡을 때마다 먹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다.

    “그보다 다른 형들한테는 다녀왔어?”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재우의 소속 부대가 가장 멀리 있어서 제일 먼저 온 것이다.

    “아니, 동반 입대를 했는데 왜 부대를 죄다 찢어 놓냐? 이럴 거면 동반 입대를 왜 하는데?”

    “그래서 나도 알아봤는데 원래 그렇대.”

    “원래 그런 게 어디 있…… 에라이.”

    원래부터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유명한 군대. 말해 봐야 입만 아팠다.

    “됐다. 대충 먹었으면 저기서 간절히 쳐다보는 애들한테나 가 봐. 너 보러 여기까지 찾아온 애들이야.”

    “아, 응! 좀 이따 봐!”

    음료수병을 들고 일어서는 재우와 슬그머니 따라 일어서는 준형을 보다 가만히 있는 미진을 응시했다.

    “자, 낙동갈 오리알 씨. 한잔하시죠.”

    “정말 일부러 방치한 거였어요?”

    “그러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잖아. 굳이 따라오겠다고 한 건 너……. 아니야, 주먹 쥐는 거 아니야.”

    “하아. 내가 뭘 바라. 술이나 따라 봐요.”

    “……내가 오늘 한 게 있어서 봐준다.”

    혀를 찬 종혁은 미진의 잔에 술을 따라 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충 1차를 마친 그들은 2차를 가기 위해 일어섰다.

    “잘 먹었습니다, 재우 지인분!”

    “자, 잘 먹었습니다!”

    “어? 지금 배를 다 채우면 안 되는데? 2차 가서 더 먹어야 하는데?”

    “그 배는 따로 있어요!”

    “옳지. 당연히 그래야지.”

    웃음을 터트린 그들은 가게를 빠져나갔고, 종혁도 모두 잘 먹고 마신 것 같아 기분 좋게 웃으며 카운터로 향했다.

    “아이고, 맛있게 드셨어요?”

    “뭐 적당히 먹은 거죠. 얼마예요?”

    “225만 3천 원입니다!”

    “……얼마요?”

    “40명이서 고기랑 밥, 술, 음료수를 드셨는데 이 정도면 싼 거죠! 현금으로 계산하시면 220만 원에 끊어 드릴게요!”

    환청이 아니었다. 싱글싱글 웃는 사장의 낯짝을 일견한 종혁은 등 뒤의 테이블을 바라봤다.

    ‘내가 소고기를 먹었던가?’

    “흐응.”

    눈을 가늘게 뜬 종혁은 이내 혀를 차며 지갑을 열었다.

    좋은 날 괜히 돈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고 싶진 않았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글쎄…….’

    울컥 솟는 짜증을 누르며 나온 종혁은 자신을 보자마자 걱정 어린 표정을 짓는 재우의 모습에 풀썩 웃어 버리며 입을 크게 열었다.

    “자, 이제 2차 갑시다! 저기 노래방을 향해 진격 앞으로!”

    “와아아아아!”

    그들은 근처의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   *   *

    재우뿐만 아니라 다른 형들의 면회도 싹 다녀온 종혁은 휴가가 끝나자 다시 출근을 했다.

    “오, 최 팀장! 이제 출근해? 아니, 최 경정이라고 불러 줘야 하나?”

    “하하. 아닙니다, 선배님.”

    “최 팀장님, 진급 축하드려요!”

    로비를 지나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지하로 내려온 종혁은 자리에 앉자마자 담배를 물며 턱을 쓰다듬었다.

    출근 시간보다 빨리 출근해서 그런지 특별수사팀 사무실엔 오택수만 있었다.

    “흐음.”

    움찔!

    어젯밤 날을 새며 술을 마시고 온 건지 술 냄새를 풀풀 풍긴 채 의자에 늘어져 있던 오택수가 종혁의 신음에 반응하며 눈을 뜬다.

    종혁이 뭔가 냄새를 맡았다. 오택수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 오택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 휴가 때의 일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던 종혁은 결국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예, 수고하십니다. 특별수사 1팀장 최종혁입니다. 혹시 전방 군부대 위수 지역에 관한 신고가 접수된 게 있을까요? 아, 있어요? 그럼 그것 좀 싹 다 정리해서 제 메일로 보내 주세요. 일단 양구랑 화천부터. 감사합니다.”

    “위수 지역? 바가지 상인들?”

    종혁은 단번에 핵심을 찌르는 오택수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아는 지인 면회를 위해 다녀왔는데, 바가지가 꽤 심하더라고요.”

    마치 여름휴가철 해변 상인들처럼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가 따로 없는 수준.

    회귀 전 이 문제로 인해 꽤 시끄럽기는 했지만 이래저래 복잡한 문제라서 관심을 끊었는데, 이번에 당해 보니 꽤 심각한 수준이었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고?”

    “여인숙보다 못한 수준의 모텔 숙박비가 4만 원이더라고요. 4명 누우면 꽉 찰 수준의 모텔방이.”

    그 외에도 상리를 벗어난 폭리를 취하는 곳이 많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분명 군인 메뉴판과 일반인 메뉴판이 따로 있다고 했었어.’

    “미쳤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오택수는 이내 이를 갈았다.

    “그런데 그 새끼들 잡아 처넣어 봤자 어차피 벌금이잖아.”

    더 강력하게 처벌한다고 해 봤자 영업정지 며칠이 전부. 출장비조차 나오지 않을 수준이라 오택수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종혁은 아니었다.

    “단순히 폭리를 취한 거라면 그렇겠죠.”

    “……설마 담합?”

    오택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지금 대충 떠오르는 것만 해도 탈세에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이 있죠.”

    위수 지역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군인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했다. 귀에 잘 걸기만 하면 공정거래법 위반도 걸고넘어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위수 지역을 날려 버리자고?”

    단순히 폭력 조직 하나를 날려 버리는 게 아니라 하나의 행정 구역을 날려 버리는 일이다. 오택수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가능…… 하겠냐?”

    “전국 중고차 매매 단지도 날려 버린 양반이 뭔 엄살이래. 그리고…….”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언제 가능할 것 같은 놈들만 들이받았습니까?”

    “…….”

    띠링!

    “아, 왔네.”

    간편신고관리과가 보내온 신고 내역들을, 한풀이에 가까운 신고 내역들을 살핀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 여기 나오네. 군인용 메뉴판.’

    “새끼들. 졸라게 해 처먹었네.”

    신고 내용들만 봐도 얼마나 받아먹었는지 감이 잡힌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피해를 당한 군인들. 그들의 사정이 가장 중요했다.

    ‘맞아. 이 시기 군인 월급이 이 수준이었지.’

    한 달 월급이 고작해야 5만 원에서 7만 원. 이마저도 작년에 비해 40퍼센트가량 인상된 것이다.

    강제로 끌려간 것도 억울할 텐데, 겨우 이 돈을 받고 이 나라를 지키는 거다.

    그리고 위수 지역 상인들은 이 싸구려 목숨값을 아무렇지 않게 갈취하는 것이었다. 김재우처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참으며 겨우 번 목숨값을 말이다.

    열이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개쌍놈의 새끼들. 군인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이를 뿌득뿌득 간 종혁은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출장비가 나올 수준의 사건이건 아니건 이놈들을 잡아 처넣지 않으면 속이 뒤집어져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도 도울게.”

    오택수도 눈에 불기둥을 세우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