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61화 (26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61화>

인천 외곽에 위치한 공장에 혀를 차는 소리가 울린다.

“쯧! 늦었군.”

노리던 공장이 어제 본청 수사팀의 급습을 받아 죄다 끌려갔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보다 앞서 자신의 가구공장에 왔다고 한다. 그저께 전화를 받자마자 곧바로 공장을 옮긴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미적거렸다면?’

지금쯤 본청 취조실에 있을 터였다.

“이 기술자들이야 중국으로 송환만 되지 않는다면…….”

“지들도 머리가 있다면 알아서 단순 가담으로 진술할 테니 길어도 반년 안에 품에 안으실 수 있을 겁니다.”

박 사장은 옆에 서 있는 사십대 중년인, 조직의 법률 자문을 맡아 주고 있는 변호사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현 상황에서 남은 건 모레 인천여객터미널을 통해 들어올 마약 운반책들이군. 문제는 이놈들도 마크를 당할 수 있다는 건데…….”

‘이걸 고개를 들이밀어? 들이밀지 마?’

박 사장은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그냥 본청에 계시는 분에게 알아봐 달라고 물어보면 안 됩니까, 사장님?”

박 사장은 변호사를 어이없다는 듯 응시했다.

“이게 드라마야? 그렇게 해서 알아보면? 들키지 않을 것 같아?”

가구 공장까지 찾아온 본청 수사팀이다. 이미 취조를 통해 위조지폐가 대량으로 찍혔음을 확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후 사정을 알아본다? 배후가 자기가 배후라고 실토하는 꼴밖에 안 된다.

그러고도 들키지 않는 건 영화나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 조선족 놈 취조 때도 취조실에 들어가지 못한 거잖아, 이 멍청한 새끼야!”

“죄, 죄송합니다!”

‘후……. 더 똘똘한 놈을 들이든가 해야지, 원.’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통과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멍청한 소리를 할 때가 있었다. 이럴 때면 괜히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2년 만에 말아먹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 사장은 혀를 차며 사무실 옆 공장 안으로 들어갔고, 곧장 공장 한구석에서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나, 나오셨슴까.”

몸 여기저기에 깁스와 붕대, 반창고를 붙인 채 힘겹게 일어나 인사하는 조선족.

박 사장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온화하게 웃었다.

“그래, 이렇게 협조하니까 얼마나 좋아. 몸 편하고, 마음 편하고. 좀만 더 일찍 협조했으면 이렇게까지 안 다쳤잖아.”

“죄, 죄송함다.”

“그래서 진척은 좀 있고?”

박 사장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마른 체구의 사십대 사내를 향해 물었다.

조선족 사내가 결국 협조하기로 하자 급히 잡아 온 위조범. 그림 위조를 전문으로 하는 놈인데, 그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조, 종이 문제만 해결되면 언제든지 뽑을 수 있습니다.”

“프린터로?”

“인쇄 기계가 있으면 더 완벽할 겁니다.”

“좋군.”

아주 좋다.

일부는 소유한 하우스에서 세탁을 하면 되고, 환치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놈들에게 팔아도 된다. 기계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구분을 할 수 없는 지폐라면 그들도 환장을 할 터.

‘그럼 돈방석에 앉는 거지.’

공장 한구석에 쌓여 있는 위조지폐만 처분해도 족히 30억은 받을 터.

“흐흐흐.”

부푼 꿈에 젖어 가던 그 순간이었다.

쿵쿵쿵!

닫혀 있는 공장 문이 두드려지자 놀란 박 사장은 낯빛을 굳혔다.

‘짭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뒤를 봐주는 이가 가구 공장 근처 CCTV나 블랙박스를 모두 수거해서 폐기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야심한 시간에 올 사람은 한 명뿐이다.

“씁, 말이나 하고 찾아오지.”

“모시겠습니다, 큰형님.”

“됐다.”

바로 앞인데 모시고 자시고 할 게 있겠는가.

손을 저으며 입구로 걸어간 박 사장은 문을 열었다.

드르륵!

“어서…….”

문이 열리자마자 고개를 숙이던 박 사장은 눈을 껌뻑였다.

“……누구?”

올 거라고 예상한 놈이 아니라 웬 덩치 큰 놈과 작은 놈이 있다. 오택수와 함께 온 종혁은 경찰공무원증을 보여 주며 머쓱하게 웃었다.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경찰입니다.”

흠칫!

“겨, 경찰?”

순간 박 사장의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종혁은 그런 그의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죄송합니다. 아주 큰 범죄를 저지르고 이쪽 방면으로 도주한 차량이 있어서 말입니다. 협조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협조?”

배신, 추적 등 오만 가지 생각이 가라앉은 박 사장은 한숨을 쉬며 손을 저었다.

“됐다. 그냥 가라.”

“에이. 그냥 협조해 주시면 안 될까요?”

“가라고. 안 갈 거면 지금 민원 넣어 주고.”

움찔!

낯빛을 굳힌 종혁과 오택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늦은 시간에 죄송했습니다. 아, 맞아.”

아차 한 종혁은 돌리던 몸을 멈춰 세웠다.

“참고로 이쪽 방면으로 도망친 새끼가 지폐를 위조한 악질이거든요. 무려 50억이랍니다, 50억.”

움찔!

이번엔 박 사장의 몸이 굳는다.

그에 종혁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게 인천 나에 4886 흰색 탑차인데…… 어머나, 씨발? 그게 쪼 있네?”

“푸하핫!”

이미 깡패 따위가 민원을 언급할 때부터 들썩이던 오택수는 빵 터져 버렸고, 종혁도 큭큭 웃음을 흘리며 박 사장에게 다가섰다.

“야, 난 이 공장 안에 5천 원권 위조지폐 50억이 있다는 것에 내 전 재산과 모가지를 걸까 하는데, 넌 뭘 걸래?”

“……푸후.”

우르르루루루!

“형님!”

“큰형님!”

공장 안쪽에서 튀어나온 덩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종혁과 오택수의 표정은 점차 굳어 갔다.

그런 둘의 뒤를 본 박 사장은 이를 드러냈다. 이곳을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지만, 이 두 놈만 묻으면 되는 일이었다.

“둘이 왔냐? 꼴랑?”

종혁은 살의가 번들거리는 박 사장의 눈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나오세요!”

“……?!”

카라라랑! 드드드득!

분명 방금까지 아무도 없던 입구에서 나타난 일단의 무리가 금속 배트나 쇠파이프, 각목 따위로 바닥을 긁으며 다가온다.

“어이구.”

“아따, 쪼그려 앉아 있느라 도가니 나가는 줄 알았네.”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 2팀과 3팀 전원.

“둘이서 왔냐고? 아니, 대략 스물이야.”

종혁은 딱딱하게 굳는 박 사장의 가슴을 쿡 찔렀다.

“내가 머저리냐? 몇 놈이 있는지 모르는데 둘만 오게? 뭐하냐? 꿇어.”

“씨발……! 죽여!”

“으아아아아아!”

종혁은 달려드는 덩치들과 물러나는 박 사장을 한심하다는 듯 보았다.

“이 새끼도 븅신이네.”

일단 뒤로 몸을 날리고 그 말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선후가 바뀌면 잡아 달라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땡큐.”

느려진 시간 속 성큼 발을 크게 내디딘 종혁은 두 발자국도 채 물러나지 못한 박 사장의 머리채를 콱 휘감았다.

“나도 이런 거 좋아해.”

종혁은 커져 가는 박 사장의 눈을 향해 주먹을 후려쳤다.

쩌어억!

“우와아아!”

빠악! 쾅!

주먹과 피가 날아다니는 공장.

“히익!”

하얗게 질린 변호사는 종혁과 눈이 마주치자 방금 전 자신이 나온 사무실의 문을 걸어 잠그며 핸드폰을 들었다.

경찰이 난입하자마자 이곳으로 숨은 위조범과 조선족은 그런 변호사를 빤히 응시했다.

“제발…… 제바알……. 아, 팀장님!”

-이 미친 새끼가! 내가 먼저 연락하지 말랬지!

“지, 지금 경찰들이-!”

콰앙!

굉음이 터지며 흔들리는 문을 본 변호사의 낯빛이 파랗게 굳는다. 그 순간 다시 굉음이 터지며 문짝이 날아갔다.

“히이익!”

“뭐야, 지원군 부르냐?”

성큼성큼 다가온 종혁은 변호사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뭐하냐. 얼른 와라. 너희 큰형님 죽는다.”

……뚝.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종혁은 핸드폰을 수습하며 변호사의 턱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쩌억!

“흥냐!”

괴상한 소리를 낸 변호사는 무너졌고, 종혁은 조선족과 위조범을 봤다.

“너흰 또 뭐야?”

조선족과 위조범은 양팔을 번쩍 들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저, 저희도 잡혀 온 검다! 흐어엉!”

종혁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둘을 보며 당황했다.

*   *   *

“여깁니다! 여기 위조지폐입니다!”

“뭣?!”

우르르 몰려간 형사들은 창고 한구석에 쌓인 박스 안을 가득 채운 5천 원권에 어퍼컷을 날렸다.

“그렇지!”

“아자아!”

무려 50억 상당의 위조지폐다.

그걸 특별수사팀이 독식한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지분은 종혁의 특별수사 1팀의 차지일 테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상여금과 연말 보너스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어쩌면 꼽사리로 특진까지 노려볼 수 있었다.

종혁에게 수사비 지원을 받는 걸로 오늘 검거를 협조 한 윤선빈 팀장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야, 더 뒤져 봐!”

“그렇지이! 여기요! 여기에 위조지폐를 제작하려는 증거가 있습니다!”

“여기 짝퉁 가방도…… 헉! 마, 마약도 있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박 사장의 공장에 축제가 열렸다.

물론 공장의 주인은 결코 바라지 않았던 축제였다.

“워메. 노다지네. 노다지여. 이 육시랄 것.”

김판호는 종혁에게 얻어맞아 정신을 잃고 차가운 바닥을 꿈틀거리는 박 사장의 뒤통수를 후려치곤 종혁에게 다가갔다.

“뭐혀? 같이 안 즐겨?”

“아뇨. 올 사람들이 있어서요.”

“올 사람들?”

삐요오오옹!

“어, 오네요. 저기.”

“……경찰을 기다렸다고?”

뭔가를 이상함을 감지한 김판호는 낯빛을 굳혔고, 이내 곧 공장 안으로 경찰차들이 쏟아졌다.

차자작!

“꼼짝 마!”

종혁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총부터 꺼내 드는 그들을 향해, 굳은 얼굴로 내리는 반장을 향해 다가갔다.

그와 함께 총구들도 종혁을 따라 움직인다.

“또 뵙습니다, 반장님?”

박 사장의 가구 공장 진입을 막아섰던 그 반장.

“너, 너?”

경악한 반장의 눈이 데구루루 굴러간다.

그러다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며 다가온다.

“남의 구역에서 이게 무슨 짓이야! 본청이면 이래도 돼? 비켜!”

“왜? 안 비키면 쏘기라도 하시게?”

종혁은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듯 긴장감이 가득한 경찰들을 슥 훑고는 반장을 쳐다봤다.

뜨끔!

“뭐, 뭐야?! 이 자식이 그래도 식구라고 봐주니까! 야! 정말 해보자는 거야?! 뭐해, 새끼들아! 본청 식구분들 정중히 모셔!”

“예!”

정곡을 찔린 듯 방방 뛰는 반장과 눈빛을 흉흉히 빛내며 다가오는 형사들.

여차하면 모두 뺏길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자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최 경감입니다. 놈들 검거 때문에 인천에 왔는데 인천 식구분들과 마찰이 생겨서 말입니다. 예. 예.”

종혁은 씩 웃으며 반장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받아 보셔요.”

“흥. 안 되니까 상급자한테 일러바친 거냐? 그래도 여긴 너희 본청이 아니라 인천…….”

-나 이택문 경찰청장인데.

“……꺽! 추, 충성-!”

반장은 기절초풍했다.

“예? 아, 아니 여긴 저희 관할…… 아, 아닙니다! 뒤를 봐주다니요! 예, 알겠습니다. 충성!”

통화를 종료한 반장은 짜증과 초조, 체념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복잡한 눈으로 종혁을 노려봤고, 종혁은 실실 웃었다.

“뒤에 계시는 분께 못 들으신 것 같은데, 이거 위조지폐 사건입니다. 이번 신권 발행을 앞당긴.”

쿠웅!

‘시, 신권 발행을 앞당긴 위조지폐 사건?’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뒤에 누가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아, 계장님을 말하는 건가?”

종혁은 숨이 막히는 게 뻔히 보이는 데도 뻔뻔하게 오리발을 내미는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낮게 속삭였다.

“그럼 왜 일선 파출소의 출동이 이렇게 늦었을까? 왜, 연락받고 아차 했어? 그래서 관할도 아닌데 이렇게 달려온 거야? 우르르 몰려오면 쟤들 뺏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눈앞의 반장은 인천경찰청이 아니라 경찰서의 반장이다. 그것도 이 지역 관할이 아닌.

움찔!

종혁은 부릅뜬 눈을 마주쳐 오는 반장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야, 견찰. 내가 그 모가지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게. 지금 돌아가서 사직서 써. 그러면 지금까지 번 건 지킬 수 있을 거야.”

“너, 너 이 새끼…….”

종혁은 말문이 막힌 반장의 어깨를 두드리곤 이쪽의 눈치를 보는 경찰들을 향해 경찰 공무원증을 들어 보여 줬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지만, 이 현장은 저희 본청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이 통제하겠습니다. 그냥 단순히 저희가 범죄자를 검거하던 상황이었거든요.”

“어, 그러면…….”

종혁은 멍하니 중얼거리는 어떤 경찰을 향해 싱긋 웃어 줬다.

“예. 이대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종혁은 반장을 툭 쳤다.

“반장님, 팀원들 기다리는데 뭐해요? 어이구, 노려보는 것 좀 봐라. 혹시 쟤들도?”

“큭! 돌아간다!”

잘 가라며 손을 흔든 종혁은 돌아섰고, 김판호가 어리둥절해하며 다가섰다.

“뭔 일이여?”

“그건 내일 되면 아세요.”

“내일?”

의아했지만 그래도 뭔가 짐작이 가는 게 있는 김판호는 눈을 가늘게 뜨다 종혁의 양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란디 그짝 건 뭐데? 핸드폰 하나 더 샀어?”

“아뇨, 선물 받았어요. 고맙게도.”

정말 고마운 선물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예, 과장님. 검거 끝났습니다. 증거도 모두 확보했고요. 하하, 축하드립니다.”

아마 이번 검거에 가장 이득을 보는 건 바로 정용진 과장일 것이다. 이택문 경찰청장도 말이다.

“예? 아, 그래요?”

-그래요. 최 팀장, 정보국과 인사과 동기들이 말하길…….

방금 전 반장과 연관이 있는 인물.

그중 인천경찰청을 거쳐 본청으로 온 인물이 한 명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름은 종혁도 아는 인물이었다.

‘이 양반일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그래. 이제 끝내자.”

종혁의 입가에 나른한 미소가 맺혔다.

*   *   *

다음 날 아침, 본청이 뒤집혔다.

사라졌던 50억 상당의 위조지폐 전액 환수.

여차하면 이택문 경찰청장을 비롯해 여러 경찰 고위간부의 목을 날려 버릴 초대형 사건이 순식간에 끝난 것이다.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경찰들이 종혁이 들어간 취조실로 모였다. 그중엔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주한빈 팀장도 있었다.

“어? 주 팀장도 왔어?”

“현재 최 팀장 때문에 말이 많잖습니까.”

“아, 조선족? 그거 곧 오해라고 공표될 거잖아?”

“그래도 최 팀장이 조선족을 압박한 건 사실이죠.”

간부들의 표정이 묘해진다.

‘최 팀장과 알력이 있었다더니 진짠가 봐.’

‘아직도 최 팀장이 남긴 그림자 때문에 부서를 장악 못했대.’

‘진짜?’

‘그것도 그건데 최 팀장이 오죽 잘했어? 뭐만 했다 하면 고위 간부들이 어화둥둥 했잖아. 근데 지금 주 팀장은 어때? 욕만 먹잖아.’

‘하긴 나도 요새 마케팅팀이 하는 거 좀 그렇더라. 경찰이 광대야?’

주한빈은 수군거리는 간부들의 모습에 낯빛을 굳히며 유리거울 너머의 취조실을 노려봤다.

‘빌어먹을!’

박 사장과 종혁이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앞이 아득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최 팀장은 또 특진인가?”

“사건이 사건인데 그렇게 되지 않겠어?”

“이야, 1년에 계급이 하나씩 오르네. 이러다 내년엔 총경 되는 거 아니야?”

빠드득!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주한빈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박살 내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 애써야 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다. 나와 연결된 증거는…….’

“뭐야. 일들 안 하나?”

“헛! 충성!”

이택문 경찰청장이 나타나자 모두 분분히 비켜선다.

“아직 시작 안 했나?”

“아직 최 팀장이 정리를 다…….”

-이름 박호섭.

“시작합니다.”

그들은 재빨리 유리거울 너머를 응시했다.

종혁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박 사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름 박호섭. 인천 상도파 두목. 나이는 46세. 오, 깡패 대가리치곤 좀 젊다? 능력 있는데?”

“……내가 아무리 범죄자라지만 예의를 지켜 주시오.”

종혁은 진중한 그의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야, 애꾸눈. 개소리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답하세요.”

종혁에게 눈을 얻어맞아 안대를 착용한 박 사장은 이를 악물며 종혁을 노려봤다.

“자, 당신에게 적용된 혐의가 범죄단체 조직에 폭행 사주, 금품 갈취, 협박, 탈세, 살인, 살인 교사…….”

“증거가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마시오. 경찰이 이래도 됩니까?”

“야. 넌 조폭 두목인 것만으로도 무기징역이야. 알 만한 사람이 왜 이러지? 그리고 위조지폐에서 네 지문이 나오고, 컴퓨터에서 위조지폐…… 후, 아니다. 됐다. 어차피 상품권 이 지랄하겠지.”

아니면 공장에 와 보니 그런 게 쌓여 있었다 발뺌을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형을 덜 받기 위해선 이 모든 걸 우연이라고 주장해야 됐다.

움찔!

“됐고, 네 뒤에 있는 놈 누구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만.”

“아, 그러셔? 내가 티엔쉔, 너랑 거래하던 천 사장이란 놈을 검거한 그날 인천의 가구 공장을 불 지르고 날라 버린 게 우연이다?”

“그렇소.”

‘어차피 그 자리에 장부는 없었다!’

박 사장 본인만 아는 비밀스런 장소에 숨겨 둔 뇌물 장부.

그것만 있으면 교도소에 들어가도 겨우 4, 5년이다.

종혁은 부리부리하게 노려보는 그의 모습에 다시 헛웃음을 터트리며 핸드폰을 던졌다.

“어디서 많이 보던 거지?”

“내 핸드폰이니까 당연히.”

‘흥. 아무리 전화번호부를 뒤져 봐라!’

어차피 저장된 이름은 죄다 다르다.

혹여 잡혀도 윗사람이나 관련된 사람이 엮이게 하지 않기 위해 저장된 이름을 달리하는 것. 그게 건달의 덕목이었다.

“그럼 이건?”

투욱!

박 사장은 테이블에 놓인 슬라이드폰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너희 법률 자문을 맡고 있다던 변호사 놈의 핸드폰이야. 그런데 이 새끼가 어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라? 난 그게 네 뒤에 있는 놈이라고 생각하는데…….”

“흡!”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네. 많이 익숙한 이름이지?”

종혁은 통화목록 가장 상단에 박힌 이름을 보여 줬다.

“헉!”

“경마클럽 송미나 매니저. 이야, 이름 예쁘다.”

종혁은 크게 흔들리는 그를 빤히 노려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수신호가 갔다.

“오오오!”

유리거울 안쪽이 소란스러워진다.

“캬. 죽이네. 진짜 저런 친구가 내 밑에 와야 하는데.”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아주……. 실력이 좋다, 좋다 하더니 저렇게 좋았어?”

“그런데 뒷배? 저 새끼 뒷배도 있었어?”

“조직원이 40명인데 없었을…….”

지이잉! 지이잉!

“응? 주 팀장, 전화 오는 거 아니에요?”

흠칫!

“……스팸입니다.”

“아, 그래요? 어? 뭐야? 왜 나오지? 지금 취조하다 말고 어디 가는 거야?”

“에이 씨! 클라이맥스에 끊는 게 어디 있어!”

쿵쿵쿵!

사람들은 갑자기 두드려지는 문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고, 문을 열며 들어오는 종혁의 모습에 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어, 여길 왜…….”

사람들의 눈에 의문이 가득 차올랐지만, 종혁은 오직 주한빈만 보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지이잉! 지이잉!

“…….”

타이밍 좋게 다시 울리는 주한빈의 핸드폰에 이상함을 느낀 간부들이 거리를 벌린다.

종혁은 경악과 당황으로 얼어붙는 주한빈의 눈을 무심히 응시하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이잉! 지이잉!

“뭐하세요? 제 전화 안 받으세요? 경마클럽 송미나 매니저님? 아참,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주한빈 팀장님이시죠. 이 미꾸라지 새끼야.”

이딴 놈에게 팀을 뺏겨야 했던 종혁의 분노가 이제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