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58화 (25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58화>

“드르렁!”

“커어어!”

코골이 소리들이 하모니를 이루듯 울리는 좁은 방.

쿵!

이리저리 뒤척이다 침대에서 떨어진 한 사내가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킨다.

“무울.”

흐느적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간 사내는 옆에 있는 공용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에 얼굴을 박았다.

꿀꺽꿀꺽!

“어으으.”

이제야 타는 듯한 갈증이 가신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가 퉁퉁 붓은 코에 깜짝 놀랐다. 그제야 어젯밤의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아. 이 미친 새끼.”

꼬르륵!

정말 미친 게 틀림없다. 이 와중에도 배가 고픈 것을 보면 말이다.

그는 머리를 긁으며 계단을 내려와 공장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타는 냄새가 그를 반겼다.

타닥, 타닥!

공장 앞마당 한구석에서 타오르는 잘린 드럼통.

“뭐 태우니?”

“이제 일어났니? 돈 태운다.”

“돈? ……돈!”

사내는 눈을 부릅떴다.

“뭐, 뭐이니!”

타오르는 드럼통 앞에 앉아 불이 붙은 5천 원짜리로 담뱃불을 붙이던 동료가 벌렁 뒤로 넘어갔지만 사내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젯밤 점퍼 안주머니에 남아 있던 5천 원이 어떤 것인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이 미친 새끼! 멍청한 새끼!’

큰형님이 절대 밖으로 유출하지 말라던 위조지폐.

눈앞의 동료처럼 담뱃불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것이었다. 옛 홍콩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폼나게 말이다.

“아, 아니다. 그보다 탁락 형님과 큰형님은 어디 계시니.”

“탁락 형님은 중국 가는 애들 배웅 나갔고, 큰형님은 화가 선생이랑 콧바람 마시러 나갔다.”

어젯밤 큰 거래가 있었는데도 1차만 마시고 돌아온 화가 선생.

“그러고 보면 화가 선생도 참 술이 약한…….”

“아, 알았다. 나 나갔다 온다.”

‘회수해야 된다!’

그때였다.

“흡?!”

“악!”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사내는 드럼통을 바라보며 놀란 두 명을 보곤 바로 눈치를 챘다. 그들도 자신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그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니들은 또 뭐이니?”

“아, 아님다. 식사하셨슴까?”

“먹었다. 너희도 먹고 오라.”

“알겠슴다.”

서로를 본 셋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급히 공장을 나섰다.

그 순간이었다.

“뭐이니. 어디 가니?”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가만히 쳐다보는 장발 사내, 큰형님의 눈빛에 오금이 저려 왔다.

사내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시, 식사하셨슴까.”

“시간이 몇신데 안 먹었겠니. 지금 먹고 오는 길이다. 너흰 먹었니?”

“이, 이제 먹으러 감다.”

“대충 속만 풀어라. 곧 저녁 때다.”

“아, 알겠슴다.”

고개를 꾸벅 숙인 셋은 장발 사내와 화가를 지나쳤다.

“아, 잠깐.”

“흡?! 예, 예?”

설마 들킨 걸까. 셋의 심장이 쪼그라든다.

“뭘 그리 놀라니. 이걸로 사 먹어라. 하찮게 편의점 가지 말고 든든하게 탕으로 먹어라.”

“가, 감사함다!”

“그래. 가라.”

손을 저은 장발 사내는 옆의 화가를 봤다.

“화가 선생, 이제 어쩔 것 같소. 기계만 구하면 되는 거이오?”

“대충 가닥을 잡았으니…….”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는 둘의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 셋은 공장을 빠져나가려다 또다시 몸을 멈춰야 했다.

“저건 또 뭐이니.”

새까만 양복을 입은 8명이 망치 따위를 든 채 골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락실?”

긴장했었던 사내는 한숨을 탁 내쉬었다.

“하아. 지금 뭐하자는 거이니?”

“뭐일 것 같네?”

“……됐다. 그거 내려놓으라. 그러다 죽는다.”

“아, 이거 말이네?”

리동수는 손에 쥔 망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휙! 빠아악!

‘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내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고, 리동수는 당황하는 두 명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니, 니 지금…….”

“돈 받으러 왔다. 너희들이 부순 기계값 천만 원.”

둘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다 나오라! 습격이다-!”

“습격?!”

“뭔!?”

우당탕탕! 우르르!

“무슨 일이니!”

달려 나온 삼십여 명은 정찰총국 요원들과 그 앞에 쓰러져 있는 동료를 보곤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뭐야, 오락실이니?”

“어제 탁락 형님이 부순 기계값 받으러 왔단다.”

“하…… 이 개밥으로 만들 새끼들. 아이 그래도 어제 술 때문에 골통이 깨질 것 같은데 별게 다 와서 귀찮게 하는구나.”

스륵.

선두에 선 사내가 칼을 꺼내 들자 다른 이들도 혀를 차며 도끼나 칼을 꺼내 들었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흉흉해졌지만 리동수는 오히려 킬킬 웃었다.

“정찰총국.”

순간 눈에서 감정이 사라져 버린 리동수는 담배를 물었다.

“예, 조장 동지.”

“다 죽이라.”

“예!”

어젯밤 무리의 대장이 모욕을 당했는데도 참아야 했던 맹수들.

고삐가 풀린 맹수들은 야성이 가득한 이빨을 보이며 놈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 죽이랍신다!”

“쳐, 쳐라!”

“와아아아아!”

* * *

“후우우.”

희뿌연 담배 연기가 PY 게임센터 옥상에서 흩어진다.

“빡빡이는요?”

-어,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다. 거의 도착했어.

“알겠습니다. 조심히 오세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옥상에 몰려 있는 정찰총국 요원들을 봤다. 그들은 종혁이 나눠 준 방탄복을 입으며 당황하고 있었다.

리동수가 혀를 내두르며 다가왔다.

“이야, 역시 미제는 달라도 다르구나야.”

가벼우면서 얇다. 위에 옷을 입으니 티가 잘 나지도 않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두껍고 무거운 방탄복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SVR에서 개발한 겁니다.”

“로씨아 거였네?! 역시 로씨아…… 대단하구나야.”

깜짝 놀랐던 다른 정찰총국 요원들도 감탄을 하며 방탄복을 만지작거린다.

“우리 공화국도 어서 이런 걸 개발해야 할 거인디…….”

“알았어요. 갈 때 그것도 챙겨 줄게요. 됐죠?”

“혹시 내가 이 말 한 적 있네? 사랑한다, 동무.”

‘에라이.’

고개를 저은 종혁은 방탄복을 처음 입는 것인지 낑낑거리는 최재수를 향해 손을 까딱였다.

“예!”

“여길 단단하게 당겨서 붙여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여기로 칼 들어온다. 중경에서 안 배웠어?”

“흡!

종혁의 다정한 손길에 순간 최재수는 깜짝 놀랐다. 처음으로 받아 보는 따뜻한 손길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몇 번 입어 보지 못해서…….”

“아, 그렇긴 하겠네.”

경찰대학교처럼 4년간 전문적으로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고, 겨우 8개월 교육시키는 곳이다. 아무래도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콱, 콱!

“됐다.”

“가, 감사합니다!”

종혁은 무슨 일인지 눈이 크게 흔들리는 최재수의 모습에 의아해하다가 이내 낯빛을 굳혔다.

“최 경장, 아니 최재수.”

“……예, 팀장님.”

“여차하면 물러나. 아니, 차라리 엎드려.”

“예?”

지금까지 최재수와 한 팀이 되어 해결한 사건 중 목숨까지 위험했던 사건은 없었다. 날붙이와 각목이 휘둘러지고, 돌이 날아다닌 적은 있지만 그래도 목숨까지 위험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번 상대는 조선족 깡패들이다.

감당할 수 없는 사이즈까지는 일을 키우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한국 조폭들과는 달리 선이라는 게 없는 놈들.

여차하면 진짜 목숨을 빼앗으려고 달려들지도 몰랐다.

“네 목숨은 네가 지키는 거다. 누가 널 지켜 줄 수는 없어.”

눈치 없고 뺀질거려도 그래도 할 땐 해 주는 최재수. 일이 잘못되어 잃고 싶진 않았다.

‘나보고 너한테 절하게 만들지 마라.’

다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종혁의 마음이 전해진 것인지 최재수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쥐었다.

“예,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래. 긴장 풀고.”

최재수의 가슴을 두드리며 미소를 지은 종혁은 힐끗 옥상 너머를 봤다가 눈을 빛냈다.

“대가리로 추정되는 놈과 리 조장이 찾는 놈이 들어가네요.”

“……그래. 얼마나 돼지처럼 처먹었는지 살이 포동포동 하구나야. 배때기를 갈라 심지를 꽂으면 10일은 족히 타갔어.”

공화국에게 큰 피해를 입힌 적도. 인민의 적의 얼굴에서 개기름이 흐른다. 리동수의 눈이 처형자의 무심한 그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싸늘한 냉기가 그의 몸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자 종혁도 이를 드러냈다.

“시작합시다.”

“천천히 와라. 남조선 아새끼가 보기엔 좀 험한 거이야. 가자.”

“명심해요. 10분입니다.”

콧방귀를 뀐 리동수는 몸을 돌렸고, 정찰총국 요원들은 리동수의 뒤를 따라 옥상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의 시간이 흐른 후.

“이 개새끼들이-!”

택시에서 내린 양탁락이 기겁하며 안으로 달려가는 것까지 본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수고하십니다. 본청 특별수사팀의 최종혁 경감…… 아, 예. 전에 보셨죠? 지금 조선족들끼리 패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서 연락드렸는데요. 한 40명쯤 되네요. 네, 네. 단단히 준비하시고 오는 게 좋을 겁니다. 예, 수고하세요.”

그렇게 전화를 끊은 종혁은 앞에 놓인 커다란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찌이이잉!

일대에 재밍이 펼쳐졌다.

이로써 유선을 제외한 모든 무선통신은 먹통. 혹여 놈들에게 다른 패거리가 있더라도 안심이었다.

“우리도 가자.”

“예……!”

* * *

서로 무기를 든 36 대 8.

당연히 36명이 유리한 상황이어야 했다.

하지만…….

“으악!”

“컥!”

울대, 어깨, 턱, 인중, 무릎, 옆구리.

망치가 한 방 한 방 급소를 노리며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26명이 누웠다.

이들은 살인 병기였다.

“이, 이놈들 뭔가 이상함다! 칼이 안 들어감다!”

“그게 말이 되니! 더 불러오라!”

“이게 다임다!”

그들은 큰형님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숨을 고른 리동수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있네, 조동철이.’

리동수의 눈이 빠르게 건물 안쪽을 살피는 순간이었다.

“이 개새끼들이!”

갑자기 양탁락이 나타나자 패색이 역력하던 놈들의 얼굴이 환하게 핀다.

“탁락 형님! 너흰 이제 죽었다!”

공장 앞마당을 주욱 둘러본 양탁락은 손도끼를 꺼내 들며 살의를 번들거렸다.

“너희는 뭐이…… 오락실? 설마 수리비 받으러 온 거이니?”

“그래, 네가 있었디.”

“조장 동지.”

“됐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놈은 자신의 것이었다.

손을 저은 리동수는 앞으로 나섰고, 양탁락은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얼굴을 구겼다.

“개밥으로 만들어 주마! 이야아아아!”

리동수는 머리를 쪼개려는 도끼에 피식 웃으며 망치를 휘둘렀다.

뻑!

손목 안쪽을 맞은 팔이 튕겨져 나가고, 얼이 빠진 양탁락의 옆구리에 망치가 작렬한다.

빠아악!

“컥?!”

순간 틀어막힌 숨통.

옆구리를 잡으며 무너지는 양탁락은 깨달았다.

‘혀, 형님.’

공장 건물 입구, 이제야 담배를 물며 느긋이 나오는 큰형님을 발견한 양탁락은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도, 도망치십쇼. 보통 놈들이 아임다.’

맞아 보니 알겠다. 전문적으로 배운 놈들이다.

히트맨 아니면 공안. 흑룡강성에서 그들을 잡기 위해 저승사자들이 왔다.

“어딜 보네? 아, 저기 나오네? 잡으라.”

“예, 조장 동지.”

요원들은 아직 서 있는 이들을 향해 다가갔고, 리동수는 양탁락의 망치를 들었다.

“어제 감히 내 용안을 만진 게 이 팔이었지. 이것부터 못 쓰게…….”

퍼억!

“윽?!”

리동수는 망치를 든 채 뒤를 돌아봤다.

요원 한 명이 팔뚝에 칼이 꽂힌 채 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하아.”

무려 정찰총국 요원이 별것도 아닌 깡패에게 칼을 맞았다.

‘종혁 동지가 보고 있을 건데…….’

“넌 돌아가면 나랑 얼굴 좀 보자우.”

리동수는 하얗게 질리는 요원을 무시했고, 다른 칼을 꺼내 든 장발 사내는 불이 붙은 대마초를 입에 물며 나른히 웃었다.

“어디서 왔니? 아니, 됐다. 얼빠진 아들은 그만 괴롭히고 나랑 놀자.”

리동수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때였다.

삐요요요용! 삐용 삐용!

‘벌써?’

약속과 다르다.

리동수는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쯧.”

장발 사내는 몸을 돌렸다.

경찰에 잡혀서는 곤란했다.

* * *

“크. 예술이네.”

사타구니를 맞고 정신을 잃은 놈, 무릎이나 옆구리를 얻어맞고 바닥을 기는 놈, 전의를 잃은 놈…….

전문적으로 살인 기술을 배운 요원들이라서 그런지 정찰총국 요원들은 급소를 망설임 없이 후려쳤고, 때문에 놈들이 제압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야, 저놈들과 국정원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국정원이요.”

‘누가 가르쳤는데?’

제아무리 기술이 좋다고하더라도 피지컬에서 차이가 나면 의미가 없었다.

“오 경감님이랑 최 경장은 뒷문 막아요.”

“예.”

“다치지 마세요.”

오택수와 최재수가 몸을 날리자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이제 슬슬 도착할 때가 됐는데…….”

상황도 거의 끝나 가고 있다.

삐요요요용!

“타이밍 예술이네.”

종혁은 마치 들판을 호령하는 사자처럼 느긋이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오케이. 거기까지. 타임 리미트.”

“종혁 동무, 너…….”

분명 조동철을 먼저 확보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말했잖아요. 10분이라고. 그 안에 확보 못한 건 당신들이야.”

“이 간나 새끼…….”

리동수는 이를 악물며 종혁을 노려봤지만, 종혁은 근처에서 리동수를 피해 물러서는 양탁락의 뒷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야, 빡빡아. 니들 두목 어디 있냐?”

“너, 넌 또 뭐이니.”

“뭐긴 뭐겠어. 한국 짭새지.”

양탁락은 눈을 부릅뜨며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늦었다. 종혁은 두목이란 말에 양탁락의 눈이 움직이는 걸 이미 확인한 뒤였다.

뻐억!

턱을 돌려 정신을 잃게 만든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저긴가?”

삐요오오옹!

“뭐해요? 일단 몸부터 빼야지 않겠어요?”

“……나중에 보자.”

“예, 예. 그럼 수고해요.”

입술을 깨문 리동수는 재빨리 몸을 뺐고, 종혁은 입술을 깨물며 발을 굴렀다. 왜인지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제발, 빨리.’

그런 종혁의 마음이 닿은 것인지 그 순간 경찰차들이 공장 안으로 난입했다.

‘왔다!’

“꼼짝…….”

“특별수사 1팀장 최종혁 경감입니다! 이놈들 일단 모두 잡아 놓으세요!”

‘늦은 게 아니길!’

종혁은 대답도 듣지 않고 뒤로 몸을 날렸다.

남겨진 경찰들은 지옥이 따로 없는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 * *

“쯧.”

하필이면 경찰이라니.

잡히면 곤란해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뺀 장발 사내는 두고 온 양탁락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괜찮다. 상관없다.’

이미 범죄에 대한 증거는 모두 인멸한 상황인 데다가 그가 알기로 한국 경찰은 패싸움 정도로 공장을 뒤질 수 없다.

혹여 공장을 뒤진다고 해도 남은 건 원단 쪼가리뿐. 바닥에 마약 알갱이 몇 개가 뿌려져 있겠지만 고작 그걸로 어떻게 마약인 줄 알까.

신원 조회를 당한 오른팔 양탁락은 중국으로 넘겨질 테지만, 자신만은 살 수 있었다.

“화가 양반, 얼른 오시오.”

“예, 예!”

‘이 그림쟁이만 있으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지.’

“제대로 챙겼소?”

“예.”

조동철은 품에 끌어안고 있는 컴퓨터 본체를 두드렸고, 장발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추적에 혼선을 두고자 공장 뒷문을 닫았다.

“갑시다.”

“어, 어디로 가는 겁네까?”

“일단 인천 공장으로 넘어가 상황을 지켜보다가 동남아로 밀항을 할 거요.”

“그,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겁네까?”

“당연히 그래…… 쉿!”

장발 사내는 조동철의 입을 틀어막으며 옆 골목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잠시 후.

타다다닥!

“후욱! 훅! 분명 여긴데. 어디에…… 오 경감님, 이놈들 아직 안 나온 것 같습니다.”

“하악! 학! 알았어. 그래도 조심해. 이 새끼들 칼 함부로 휘두른다.”

‘한국 공안? 둘?’

귀를 기울여 봤지만 더 다가오는 기척은 없다.

겨우 둘. 충분히 해볼 만했다.

‘이놈들부터 치우고 간다.’

장발 사내는 마침 자신들이 숨은 골목 앞을 지나다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키 큰 멀대를 향해 칼을 내질렀다.

“허억! 헉!”

최재수는 정말 전력을 다해 달렸다.

종혁이 믿고 맡긴 일. 실망을 끼칠 순 없었다.

“가, 같이 가, 이 새꺄!”

“흑! 훅! 그러게 러닝머신 좀 뛰라니까!”

“저 새끼가?”

‘흐흐. 이겼다.’

오택수에게 이긴 게 생기자 입가에 미소가 번진 최재수는 더 힘차게 땅을 박찼고, 오택수는 등짝으로 환하게 웃는 최재수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달린 둘은 곧 며칠 전 은밀히 찾아와 발견한 공장의 뒷문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때처럼 잠기지 않은 채 살짝 열려 있는 쪽문.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고른 둘은 천천히 쪽문을 향해 다가갔다.

“진짜 조심해.”

“에이, 걱정 마세요. 한두 번 출동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 이것도 있잖아요.”

셔츠 속 방탄복을 두드리는 최재수의 모습에 오택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야, 이 병신 새끼야. 닥치고 긴장해. 그게 얼마나 네 목숨을…….”

섬뜩!

말을 하다 만 오택수는 본능이 외치는 대로 최재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최재수!”

“예?”

푸욱!

“어?”

뭔가가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고개를 밑으로 내린 최재수는 허벅지에서 뽑혀 나오며 목을 향해 날아오는 날붙이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게…… 칼? 아, 나 죽는구나.’

최재수는 목에 닿는 차갑고도 뜨거운 감촉에 허탈히 웃었다.

‘씨발. 여자랑 손도 못 잡아 봤는데……. 미안, 할머니. 죄송합니다, 팀장님.’

슬퍼할 그들을 떠올리자 왈칵 눈물이 솟았다.

“최재수-!”

최재수가 포기하고, 오택수가 그런 최재수를 걷어차는 그 순간이었다.

콰득!

‘어?’

죽음을 받아들이던 최재수도, 장발 사내도 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두 눈이 차갑다 못해 얼어붙은 종혁. 그곳엔 장발 사내의 손목을 잡은 종혁이 있었다.

“야, 내 새끼한테 뭐하는 짓이냐?”

우득. 우드득!

바이스로 손목을 죄는 것처럼 손목뼈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우그러든다.

“악……! 아아악! 놔, 놔라! 놔-!”

“뭐하는 거냐고 묻잖아, 새끼야.”

콰직!

얼굴을 뭉개 버린 종혁은 그대로 팔을 꺾어 버렸다.

콰드득!

꺾이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꺾인 팔.

“크아아아아악! 차오니마!”

입을 떡 벌린 장발 사내는 종혁을 향해 이를 들이밀었다.

뻐어억!

“씨발놈이 뭐래. 어이, 최재수. 괜찮아? 살아 있냐?”

“예? 네! 사, 살았습니다!”

“그럼 됐다. 야, 거기 환쟁이. 이리 와. 이리 와, 새끼야.”

장발 사내를 집어 던진 종혁은 조동철에게 다가갔다.

조동철은 본체를 더 꼭 끌어안으며 오들오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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