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57화>
자정이 다 된 오락실, 정찰총국의 요원들이 리동수에게 거수경례를 한다.
“저흰 먼저 들어가겠습네다.”
“그래. 자라.”
놈들이 걸려들 그날까지 24시간 운영하기로 한 오락실.
그들은 5명이 정오부터 자정까지, 남은 3명이 자정부터 정오까지 24시간 2교대 체제로 오락실을 지키기로 했다.
“최재수 동지?”
우당탕!
졸다가 침대에서 떨어진 최재수가 환전소 구멍 안으로 눈을 들이민 요원에게 어색하게 웃는다.
“드, 들어가세요!”
“……푹 주무시라요.”
고개를 저은 요원은 몸을 돌렸다.
“저 동지는 한참 봐야 사람 같은 놈이지 않네?”
“에이, 그 정도 수준은 아닌 것 같습네다. 그보다 게임 해 보셨습네까?”
“리듬 게임이라는 거 요물이더라야. 안력 훈련에 좋갔더랐어.”
“전 순발력과 통찰력 훈련으로 땅따먹기 게임이란 거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락실을 떠나는 그들.
그들이 어둠 속에 삼켜지는 것을 바라보던 리동수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낯빛을 흐렸다.
‘벌써 남조선 자본주의에 물드는구나야.’
정찰총국이라는 기관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입맛이 썼다.
스릅, 쪽! 스릅, 쪽!
“그런데 남조선 아새끼들은 얼음보숭이에 대체 뭔 짓을 한 거이네?”
꿀이라도 탄 건지 자꾸자꾸 손이 간다.
“비비빅…… 갈 때 많이 사 가야겠구나.”
잊지 않겠다는 듯 껍데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는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는 소음에 고개를 돌렸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효과가 좋구나.”
스릅스릅스릅!
“보오. 내가 24시간 한다고 했잖슴까!”
“거 알았다. 아주 잡아먹겠구나야.”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는 4명의 사내들.
그중엔 요주의인물인 양탁락이 있다.
“PY 게임센터에 오신 걸 환영합네다. 어서 오시라요.”
아이스크림을 슬그머니 뒤로 숨기며 인사하는 리동수의 모습에 잠시 멈춘 양탁락은 코웃음을 치며 안으로 들어갔다가 놀랐다.
‘이게 뭐이니? 여기가 오락실 맞니?’
“크. 형님, 죽이지 않슴까?”
그들이 생각하는 우중충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인조대리석으로 꾸며진 화사한 공간. 은은한 푸른빛 조명이 마음을 가라앉힌다.
심지어 지폐 교환소 옆으로는 음료수와 씹을 거리도 판다. 소주와 맥주도 말이다.
‘그래, 너희도 남조선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알게 됐구나.’
리동수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희 PY 게임센터에서 게임을 하려면…….”
툭!
“함부로 다가오지 말라. 그러다 죽는다.”
양탁락도 아닌 똘마니가 툭 밀자 리동수는 멈춰 섰고, 그에 정신을 차린 양탁락은 그걸 어떻게 오해한 건지 킬킬 웃으며 동전교환기 앞을 기웃거렸다.
“야, 이건 만 원 교환이 아이 되는 거이니?”
“그러게 말임다. 아, 저기 지폐 교환소 있슴다.”
“이거 다 바꿔 와라.”
“사, 삼십만 원이나 말임까?”
“너희들은 안 놀 거이니? 여기 돈 나눠 줄 테니 너희들 알아서 놀라.”
“형니메…….”
다른 이들도 감동한 얼굴이 된다.
양탁락은 그런 그들을 보며 흐뭇이 웃었다.
“오늘 날 새 보자. 술도 사라.”
“와아아아아!”
“알겠슴다! 여기 돈 바꿔 달라!”
“예, 예!”
최재수는 지폐를 받아 들며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어떤 게임을 하실 건가요? 일반 게임은 백 원짜리도 충분한데, 리듬게임은 오백 원, 경품 게임은 천 원짜리로 가능하세요!”
“적당히 바꿔라! 그리고 술도 적당히 내놓으라.”
“술은 가져오셔야 해요! 그리고 일반 게임장에서 술은 취식 금지세요. 성인 게임 구역에서만 가능하세요! 다른 곳에서 취식하다 걸리면 경찰 부릅니다!”
“쯧, 알았다.”
최재수는 4만 원은 동전으로, 나머진 천 원짜리로 바꿔 줬다.
“확인해 보세요.”
“흥. 당연한 말을 하는구나. 백 원이라도 부족하면 넌 내 손에 죽는 거다.”
“뭐하니. 대충 하고 오라.”
“아, 알겠슴다! 너 운 좋다. 야, 와서 나 좀 도우라!”
그들은 돈과 술을 챙겨 우르르 안쪽으로 향했고, 최재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
어색하게 말한 건 없었는지 되짚어 보던 최재수는 교환받은 지폐들은 한쪽으로 챙겼고, 리동수는 낄낄거리며 흩어지는 이들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물었다.
“하, 이 한입거리도 안 되는 아새끼들. 참 아름답구나야.”
하는 행동이, 그리고 마음이.
“조장 동지. 망치, 칼, 총 골라 잡으시라요.”
“……술부터 먹이라. 잔뜩 취해서 난장 부리게. 그래야 명분이 선다. 그럼 현 시간부로 작전…… 시작이다.”
그 한마디에 지금까지 불만 가득했던 요원들의 눈빛이 착 가라앉는다.
“알갔습네다.”
리동수와 요원들은 안쪽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한편 일반 게임장임에도 캔맥주를 따는 양탁락에게 부하가 은근히 말을 건넨다.
“형님, 어떡함까. 지금 엎슴까?”
이래저래 건드려도 아무 말 못하는 게 생각보다 더 어수룩한 것 같다. 양탁락은 순간 혹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됐다. 형님이 오늘 사고 치지 말라고 했다. 조용히 해라.”
“……알겠슴다.”
“그보다 20만 원 면도기는 어디서 뽑니?”
“아, 저쪽임다!”
“혀, 형님! 여기 게임기도 뽑을 수 있슴다! 이, 이거 30만 원이 넘는 검다!”
“뭐?”
다급히 고개를 돌린 양탁락과 부하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형뽑기 위에 방금 말한 게임기나 면도기, 심지어 최신형 핸드폰도 제조사별로 있다. 여기가 별세계였다.
“혀, 형님, 어떡함까. 망치 가지고 옴까?”
“……사, 사고 치지 마라.”
‘적어도 오늘은.’
종혁의 돈지랄에 양탁락의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진정한 별세계는 이제 시작임을 그들은 몰랐다.
* * *
-빠바바밤! 와우! 당신은 가수 킹! 100점입니다!
“백 점이시군요! 여기 백 점 경품입네다!”
“겨, 경품?”
“인형과 음료수, 술이 있는데 뭘 고를 겁네까?”
“수, 술로 주오.”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러 대던 이들의 혼이 빠진다.
-빠바바밤!
“떠, 떴다-!”
“축하드립니다!”
3층, 경품 뽑기용 게임기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양팔을 번쩍 든다.
이제 양탁락의 패거리 30여 명만 남은 PY 게임센터.
오늘 거래에 따라오지 않고 공장에 남아 있던 기술자나 나머지 패거리까지 모두 모였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경품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특히 노리던 면도기 세트 등 옆에 경품을 산처럼 쌓아 놓은 양탁락은 심장이 벌렁거리고 있었다.
흑룡강성 뒷골목 거지로 태어나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감정이 메마른 양탁락조차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행운의 연속. 목이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옆에 놔둔 캔맥주를 입에 가져갔던 그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여기 술 가져오라!”
그렇게 외친 양탁락은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그러다 다시 옆으로 손을 뻗은 양탁락은 잡히는 게 없자 미간을 좁혔다.
주변을 둘러본 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죄다 이쪽은 신경 쓰지 않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눈빛이 차가워진 양탁락은 담배를 물었다.
“어이, 뭐하니. 내 말 안 들리니?”
“예? 아, 형님. 죄송함다. 지금 바로…….”
퍼억! 쿠당탕!
순간 PY 게임센터의 공기가 얼어붙는다.
그때였다.
“여기 서비습네다.”
달그락!
푸근히 웃으며 다가온 리동수가 양주가 가득 담긴 플라스틱컵을 내민다. 그가 든 쟁반엔 그런 플라스틱컵이 가득 올려져 있었다.
“너흰 이런 것도 주니?”
“돈 많이 써 주시는 손님께 이따위가 문제겠습네까.”
“……이야, 저 얼빵한 새끼들보다 네가 낫구나.”
‘이런 서비스를 줄 정도로 많이 벌었다는 소리구나.’
이곳 오락실을 접수해야겠다는 욕심이 다시금 고개를 치켜든다.
“힘든 일 있음 말하라.”
속내를 숨긴 양탁락은 리동수의 목을 툭툭 쳤고, 패거리들은 고개를 숙이며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들을 차갑게 노려본 양탁락은 1등 경품을 가리켰다. 무려 상품권 3천 장짜리 경품.
“그런데 저거 진짜 금이니?”
“99.9퍼센트 순금입네다. 8냥.”
“8냥!”
거진 5백만 원에 달하는 가격에다가 중국인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숫자 8이다.
“오픈 이벤트로 딱 3일간 전시해 놓으니 얼마든지 따 가시라요. 보아하니 곧 가져가실 수 있을 것 같습네다.”
“흐흥. 알았다. 가 보라.”
고개를 숙인 리동수는 성인 오락 게임관에 있는 똘마니들에게 컵을 모두 쥐여 주었다.
그러다 이들 중 유일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처음 양탁락과 함께 들어온 5명 중 한 명.
이렇게 퍼 주기만 해서 어찌 작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었다.
리동수는 오늘 중 가장 밝게 웃었다.
“좀 따셨습네까?”
흠칫 몸을 굳힌 사내가 눈을 돌려 죽일 듯 노려본다.
“너이 조작하는 거 아이니?”
무려 십만 원을 꼴아 박았는데, 상품권 한 장이 안 나온다. 남들은 경품을 최소 한 개씩 바꿨는데 말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네까. 한번 자리를 옮겨 보시는 게 어떻겠습네까.”
리동수를 빤히 보던 사내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앉아 있던 의자를 집어 옆으로 던져 버리며 칼을 뽑았다.
쿠당탕!
다시 PY 게임센터의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어디 계속 웃어 보라.”
“아, 그…….”
리동수가 어색하게 웃는 그 순간이었다.
“주선달! 너 지금 뭐하는 거이니. 내가 사고 치지 말라 하지 않았니.”
“하지만 형님!”
퍼억!
뒷말을 이어 가려던 사내는 얼굴로 날아온 플라스틱컵에 굳어 버렸다.
“내 말 아이 들리니?”
“……죄송함다.”
“좋은 날 기분 망치지 말라. 니 그러다 개밥 된다.”
“죄, 죄송함다!”
하얗게 질린 사내는 다급히 무릎을 꿇었고, 양탁락은 리동수에게 입을 열었다.
“내 일행이 실례 많았다. 가서 일 보라.”
“감사합네다. 계시는 동안 양주는 계속 저기서 따라 드시면 됩네다.”
그렇게 다시 게임이 시작됐지만, 방금 전과 달리 분위기가 꽤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리동수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소매를 입에 가져갔다.
“분위기 됐다우. 확률 조작하라. 머리가 우리 린민의 산처럼 아무것도 없는 놈이 앉은 8번 포함해서 여덟 놈만.”
쏴아아아!
“후우.”
화장실 안, 방금 전 컵에 맞아 피범벅이 된 얼굴을 대충 씻은 사내는 거울을 보며 뜨거운 숨을 뱉어 냈다.
그런 그에게 대변기 칸에서 나온 동료가 혀를 찼다.
“니 어찌 그랬니. 미친 거이니?”
감히 양탁락에게 반항을 하다니. 정말 개밥이 될 뻔했다.
“탁락 형님 좀 어떠니?”
“좋겠니? 분위기 다 잡쳤다.”
양탁락 옆에 있던 놈이 양탁락의 말을 듣지 못한 게 컸다.
“미안하다. 술 먹어서 그랬다.”
“그래 보인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고, 초점이 풀린 눈은 끔뻑끔뻑 느릿하게 깜빡였다.
“알았다. 게임이나 해라.”
“어디 가게?”
“돈 바꾸러 간다.”
“돈은 있니?”
손을 저은 사내는 PY 게임센터 건물을 빠져나와 담배를 물며 위층을 응시했다.
술기운에 무거워진 그의 눈에 살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대가리를 도끼로 쪼개도 시원찮을 놈.”
정말 언젠가 꼭 자고 있는 양탁락의 머리를 도끼로 쪼개 버릴 것이다.
“카악, 퉤!”
다 핀 담배를 던진 그는 안으로 들어가다가 멈췄다.
지금 올라가 봤자 다시 양탁락의 심기만 거스를 터.
한숨을 내쉰 그는 1층의 게임이나 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음? 뭐니. 벌써 다 쓴 거이니?”
오늘 하루 놀라며 양탁락이 준 15만 원의 용돈.
주머니 여기저기를 만져 보던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점퍼 안 주머니에 걸리는 게 있어 빼낸 사내는 손에 들린 5천 원에 기뻐하는 한편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게 왜 여기 있을까.
그것도 빳빳한 새 돈이 말이다.
“……뭐 사 먹고 넣은 돈이겠지.”
생각나지도 않고, 술기운 때문인지 생각하기도 귀찮았다.
“어이, 환전원. 바꿔라. 5천 원은 여기서 바꾸는 거 맞지?”
“네? 아, 네네!”
차라락 백 원짜리를 받아 든 사내는 아무 게임기나 앉았고, 몇 번 삐용삐용 버튼을 누르다 결국 취기를 이기지 못해 고개를 푹 숙였다.
* * *
콰앙!
게임기를 걷어차며 몸을 일으킨 양탁락은 씩씩거렸다.
“어이, 점장! 이게 뭐이니!”
“무, 무슨 문제 있습네까?”
“이거 왜 갑자기 아이 되는 거이니!”
무려 80만 원이 빨렸다. 그것도 고작 30분도 안 돼서.
그동안 상품권 한 장은커녕 그림이 맞지도 않았다. 아무리 풀로 베팅했다지만 이건 아니었다.
양탁락은 놀라 다가온 리동수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너 지금 나하고 장난치니?”
짜증과 살의로 번들거리는 양탁락의 풀린 눈.
콧속을 지독하게 파고드는 술과 담배 찌든 냄새에 리동수는 억지로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네까. 딸 때가 있으믄 잃을 때도…….”
리동수는 어느새 목에 닿은 손도끼에 입을 다물었다.
“니가 해 봐라. 장난치나 안치나 내 함 봐야겠다.”
“왜, 왜 이러십네까. 정말…….”
지이잉! 지이잉!
“……일단 앉아라. 만 원 안에 상품권 나오면 넌 사기 쳤으니 그 손목 잘리고, 만약 안 나오면 이딴 걸 가져다 둔 죄로 오늘 여긴 불탄다.”
패거리에게 고개를 까딱인 양탁락은 전화를 받았고, 양탁락만큼은 아니어도 돈이 쭉 빨린 똘마니들이 눈을 붉히며 일어섰다.
무한히 공급된 양주에 취한 그들은 순간 서로 모른 척을 해야 된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누구니?”
-어디니? 왜 아무도 없니.
“……죄송함다. 오락실임다.
-재밌나 보구나.
“내일 함께 오심이 어떻슴까. 여기 정말 죽임다.”
-사고는 안 쳤니?
칠 뻔했다.
정신이 번쩍 든 양탁락은 손을 저었다.
“조용히 놀았슴다. 지금 들어가겠슴다.”
-자라. 4시다.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수습한 양탁락은 리동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운 좋다. 가자.”
“아, 저기!”
리동수는 양탁락이 걷어찬 게임기를 가리켰다.
“부셔졌습네다. 수리비는…….”
“하. 어이, 정말 죽고 싶니? 확 그어 주까.”
“……미, 미안합네다. 그냥 가시라요.”
양탁락은 손도끼를 갈무리하며 계단으로 향했고, 그에 양탁락과 함께 왔던 이들이 재빨리 뒤를 따랐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1, 2분 시간 차이를 두며 게임센터를 빠져나갔고, 3층의 창문을 연 채 그걸 보던 리동수는 입술을 비틀었다.
“아주 동무들이라고 광고를 하는구나야.”
“조장 동지.”
코웃음을 치던 그는 다가온 요원의 붉어진 눈을 보곤 핸드폰을 들었다.
“어, 종혁 동지. 일어났네?”
-아직 술자린데, 왜요?
“여긴 명분 쌓았어. 결시일 잡자.”
-……지금 가죠.
통화를 종료한 리동수는 요원을 봤고, 하찮은 깡패나부랭이 따위가 감히 정찰총국 조장에게 도끼를 들이미는 걸 빤히 지켜봐야 해서 열이 머리끝까지 올랐던 요원은 살벌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리동수는 담배를 물었다.
‘망치가 좋갔디?’
칼이나 총은 너무 심심했다.
리동수는 내일 아침이 되면 망치부터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 * *
오픈한 날에 명분을 쌓았단 말에 술자리를 파하고 달려왔던 종혁은 사정을 듣곤 헛웃음을 터트렸다.
타이밍이 맞아도 이렇게 맞을 수 있을까.
‘그런데 다 같이 왔다라…….’
그동안 주위 주민들에게도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놈들이 한 공간 안에 모였다.
그 숫자도 숫자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의심이 됐다.
‘설마 회식인가?’
만약 짐작이 맞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보통 회식이라면 큰일을 마쳤을 때 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저 공장에 위조지폐가 없을 확률이 높았다.
“혹시 이놈도 왔던가요?”
종혁은 다급히 블랙박스에서 추출한 장발 사내의 사진을 보여 줬다.
“이런 놈도 있었네?”
“저놈들의 대가리로 추정되죠.”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리동수가 눈을 빛냈다.
“그럼 내일 올 수도 있을 기야. 그렇게 통화하는 거 들었다.”
“그래요?”
그럼 지폐 위조가 오늘 막 성공해서 회식을 한 것일 확률이 컸다.
다행히 한시름 놨지만, 그래도 지폐가 완성됐다면 시중에 풀리는 건 정말 시간문제이기에 종혁은 마음이 급해졌다.
“곧 날짜 잡을게요.”
“아, 종혁 동지. 우리가 많이 참을 순 없을 기야.”
우린 짐승이라는 듯 살벌하게 노려보는 정찰총국 요원들의 눈빛에 종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정찰총국의 조장이 모욕을 당했다. 아마 며칠 잡아 두지 못할 것이다.
“후우. 부디 이제야 막 완성…….”
“팀장님!”
“음?”
“여기요. 오늘 수익입니다.”
“아, 그래. 최 경장도 수고했어. 응? 구권이 제법 있네?”
“구권 쓰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하긴…….”
신권 발매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다. 아직은 구권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컸다.
“알았어. 수고해. 아, 교환해 줄 잔돈은 있고?”
“천 원짜리는 따로 빼 놨으니까 괜찮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푸후!”
침대에 주저앉은 종혁은 옆에 내려놓은 만 원과 5천 원이 담긴 종이백을 응시하다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멍청한 놈은 없을 테지만…….”
어떤 바보가 자기들 아지트 근처에서 위조지폐를 쓸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책상에 놔둔 휴대용 감식기를 가져온 종혁은 5천 원짜리 지폐에 불빛을 드리웠다.
그리고 잠시 후…….
“큭큭큭.”
나란히 놓인 5천 원짜리 구권 3장을 보는 종혁이 몸을 들썩였다.
“멍청한 놈들 맞네.”
위조지폐는 이미 찍히고 있었다.
그것도 회귀 전 살핀 것과 달리 촉감과 냄새 등 위화감이 전혀 없었고, 결정적으로 일련번호도 죄다 달랐다.
회귀 전 정문철을 검거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인 77246의 똑같은 일련번호. 소심한 위조지폐범 정문철은 그토록 허술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예상대로 놈들은 슈퍼노트를 만들고 있었다.
아니, 이미 완성되었다.
‘이게 시중에 대량으로 유통된다면?’
차라리 국내라면 낫다.
그런데 이게 만약 해외에서 유통이 된다면?
종혁의 두 눈에 다급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리 조장, 난데요. 그냥 오늘 날짜 잡죠. 오후 3시. 네. 그때 보죠.”
전화를 끊은 종혁은 증거물 봉투를 가져와 구권 3장을 조심히 담았다.
이쪽도 명분이 생겼다.
아니, 이젠 명분 따윈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놈들의 공장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