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56화>
쿵! 쿵! 쿵!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희 오락실이 오픈을 맞아…….
가리봉동 조선족 밀집 지역 내에서도 우범 지역이라 꼽히는 곳, 종혁이 노린 창고 근처가 난데없는 오락실 오픈 때문에 시끄럽다.
성인 오락실도 아닌 인형뽑기나 코인노래방 따위가 있는 일반 오락실.
그것도 무려 3층짜리다. 옆 번화가라면 모를까 노래방이나 식당, 호프집 따위만 몇 개 있는 이 동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설이다.
그러나 주민은 숨을 죽였다. 화환이 주르륵 놓인 오락실 앞에 서 있는 검은 양복의 사내 8명 때문이다.
안에 하와이안 셔츠나 황금색 셔츠를 입은 껄렁껄렁한 사내들.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습네다.”
자신들은 그놈을 잡으러 온 것뿐인데 왜 오락실을 오픈해야 되는지, 놈이 근처에 있는데 왜 잡지 못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건 리동수도 마찬가지였지만 할 말이 궁색해진 그는 정색했다.
“위대한 공화국 전사가 돼서 은혜를 입어 놓고도 모른 척해야 되겠네? 우리가 짐승이네?”
그들이 지금 입고 있는 옷, 숙소, 차 모두 종혁이 준 것이다.
“거기다 종혁 동지 말 못 들었네?”
여기서 번 돈은 모두 북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잠시 림무를 수행하면서 공화국의 외화벌이를 한다고 생각하라.”
“……알갔습네다.”
띠리링! 띠리링!
리동수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었다.
-이야, 잘 어울리는데요? 진짜 깡패라고 해도 믿겠어요.
……빠드득!
“종혁 동지, 지금 어디네? 나 좀 보자우.”
빠앙!
제법 멀리서 경적을 울리며 불빛이 깜빡이는 외제차.
재빨리 걸음을 옮긴 리동수는 보조석에 올라탔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네?”
몇 명이나 왔냐고 물어보기에 잠입 같은 걸 시키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팔자에도 없는 오락실이라니.
“미안합니다. 나도 그걸 생각 안 한 건 아닌데, 그럼 일이 좀 복잡해져서…….”
아니다. 이들이 잡으러 왔다는 그 위작 전문가라는 놈 때문에 방법을 급선회한 것이다. 그저 컴퓨터 포토샵이나 다룰 줄 알던 정문철에게 위작 전문가가 붙었다.
‘위조지폐의 퀄리티가 말도 안 되게 높아졌겠지.’
그걸 과연 리동수가 두고 볼 수 있을까?
위작 전문가만 쏙 빼돌려 일을 어그러뜨릴 수도 있었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는데?’
물론 순영과 순영이 보낸 리동수는 믿는다. 하지만 리동수의 조원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먼저 그 지폐를 확보해야 돼.’
위작 전문가까지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고 싶어도 얼굴도 노출이 됐고, 이게 또 우리가 하면 함정 수사라…….”
그래서 이렇게 이유들이 서로 물리고 물리니 결국 리동수를 쓰기로 한 것이다.
리동수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남조선 수사는 참 복잡하구나야. 그러니 범죄자가 넘쳐 나는 거 아니네!”
“그러는 공화국은 아무나 막 때려잡아서 범죄청정지역이신가?”
“……공화국을 욕되게 하디 말라.”
“당신이 먼저 우리 쪽 수사 방식 건드렸잖아요.”
“흥. 그래서 대체 뭘 노리는 거이네?”
삽시간에 차가워지는 리동수의 눈빛에 종혁도 살벌하게 웃었다.
“대충 눈치챘잖아요. 당신들이 찾으러 온 위작 전문가와 함께 있는 새끼들. 그 새끼들이 뭔 짓을 꾸미고 있는지 모를 아지트에 들어갈 수 있는 명분.”
그래서 이들을 깡패로 위장시키는 것이다.
탈북 새터민 깡패.
“후. 정찰총국의 혁명전사가 그 아새끼 하나 때문에 이게 뭔 짓인디……. 알았다, 내 너이 계략에 함 어울려 주갔어. 그런데 놈들이 찾아오갔네?”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 겁니다.”
“음?”
“그건 지켜보면 알 테니 부탁 좀 할게요. 우리 최 경장도요.”
“아하하.”
뒷좌석에 앉아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최재수를 본 리동수는 혀를 차며 차에서 내렸고, 종혁은 최재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환전소 안에 침대랑 화장실 만들어 놨으니까 절대 나오지 마. 환전을 받은 돈도 무조건 네가 관리하고. 쟤들이 은행에 입금하러 갔다가 의심받으면 골치 아파진다.”
“……옙!”
처음 하는 잠입 수사다. 그것도 무려 북한의 정보국과 협조하여서 말이다.
‘크으으!’
이걸 잠입 수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혼이 쏙 빠진 최재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목에 두른 목도리를 코끝까지 올렸다.
그때였다.
“잠깐.”
놈들의 공장 있는 골목을 보며 최재수를 멈춰 세운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건 또 뭐지?’
“저것들은 또 뭐이니?”
이상한 놈들이 기어 들어왔다는 소리에 공장을 나선 장발 사내는 시끄러운 오락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고, 양탁락은 혀를 찼다.
“아무래도 한국 조직 같습니다.”
“나도 눈 있다. 내가 물은 건 저놈들이 왜 내 구역에 기어 들어왔냐는 거다.”
정확히는 구역이라고 할 수 없다.
영역으로 선포한 것도 아니고, 보호비를 걷은 것도 아니니까. 괜히 그런 짓을 했다가 한국 경찰이 알게 되면 큰일이니까.
한국 경찰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들의 수사망에 올라가 중국 공안이 찾아오는 게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흑룡강성에서 도주하며 챙긴 돈으로 은밀히 사업을 벌였고, 훗날 그 돈으로 이 일대를 장악하려고 했다.
건물을 사고, 비싼 월세를 놓고, 누구도 자신들이 여기에 있다는 걸 모른 채 동네를 장악하려고 했다. 장발 사내는 처음부터 계획을 아주 길게 세웠다.
물론 지금은 위조지폐가 생기면서 그 계획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이 일대를 돈으로 장악하려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즉 여긴 자신들의 구역이었고, 저놈들은 감히 자신들의 구역을 쳐들어온 것이었다.
“형님! 형니메!”
“뭐이니?”
“저, 저놈아들 한국 조직 아입니다. 조선 놈들임다.”
“……조선?”
북한. 장발 사내와 양탁락의 얼굴에 조소를 터트렸다.
“얼빵한 놈들이 우리 배를 불려 주기 위해 왔구나.”
성인 오락실도 아니고 일반 오락실이다.
아무래도 탈북한 놈들이 먹고살 길이 궁해 서로 돈을 모아서 오락실을 차리고, 혹여 기가 센 조선족들에게 불이익을 당할까 저렇게 검은 양복을 빼입은 것 같다. 정말 얼빵한 놈들이었다.
“적당히 지켜보다가 치우라. 기계는 부수지 말고.”
“예, 알갔슴다.”
“그리고 탁락이는 오늘 박 사장과 거래 끝나면 애들 회포나 풀게 해라.”
드디어 오늘이다.
자신들이 만든 위조지폐가 풀리는 날이, 아니 자신들이 돈방석에 앉는 날이.
“예. 밑에 애들 시켜서 알아보겠슴다.”
“우르르 몰려다녀서 괜히 한국 공안이 눈치채게 하지 말라.”
“걱정 마십쇼, 형님.”
고개를 끄덕인 장발 사내는 안으로 들어갔고, 양탁락은 담배를 물며 턱으로 오락실을 가리켰다.
“저기에 뭐가 있다니?”
“대충 가서 살펴보니 동전 넣고 노래 부를 수 있는 가라오케랑 인형뽑기, 게임들이 있었슴다. 성인 오락 게임기도 있었음다.”
“성인 오락 게임?”
“상품권을 돈으로 바꿔 주는 게 아니라 상품으로 바꿔 준담다.”
“그거 쨉 놈들 수법 아이니? 야, 조선놈들 공안 놈들 검사 안 받으려고 마빡 좀 굴렸구나.”
애초에 성인 오락은 돈으로만 안 바꾸면 불법이 아니다.
그래서 성인 오락실이 현금이 아니라 상품권을 주는 것이고, 기존 조폭들은 성인 오락실 옆에 상품권 교환소를 차려 환전시 발생하는 수수료로 수익을 내고 있었다.
즉, 오락실은 일반인을 끌어들여 차리게 하고, 조직이 투자를 해 수익을 나누면서 수수료까지 먹는 것이다.
괜히 오락실을 조직 명의로 운영하다가 경찰에겐 날벼락을 맞아 영업을 아예 접는 것보다는 그게 더 안전하게 수익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단속을 하려면 얼마든지 한다.
“근데 이게 휘황찬란함다.”
“그래? 뭐가 있다니?”
“혹시 20만 원짜리 면도기라고 들어 보셨슴까?”
“20만 원?!”
양탁락은 호기심을 드러냈고, 부하는 자신이 본 걸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차에 앉은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저 빡빡이가 굽실거리는 놈이 있다라…….’
연복들의 말이 아니라도 그냥 봐도 중간보스 이상인 포스를 뿜어 대던 빡빡이.
‘그럼 두목이네.’
좋은 정보를 얻었다.
“가 보고. 저녁엔 나 봐도 아는 척하지 마라.”
“예!”
최재수가 내리자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접니다, 조주환 선배님.”
종혁은 차를 출발시켰다.
* * *
“후. 정말 해야겠어요?”
“죄송합니다. 저도 과장님께서 처음 지시하신 업무만 아니었어도…… 하하.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건 저희 때문에 수고하시게 됐으니까 끝나고 회식이나 하십쇼.”
종혁은 슬그머니 수표를 찔러 줬다.
‘수, 수표?’
그것도 백만 원짜리가 다섯 장이다.
“그리고 한번 길들일 때도 됐잖습니까.”
맞는 말이다. 안 그래도 종혁에게 말한 게 있으니 조만간 조선족 조폭들을 한번 털려고도 했었다.
형사라면 다 알고 있지만,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조폭 봐주기.
여차해서 종혁이 기분이 나빠져 이쪽에 통보도 없이 엎어 버리면 조선족 밀집 구역을 관할로 두는 그들도 골치가 아프니 차라리 자신들이 나서는 게 나았다.
“……쯥. 그럽시다. 뭐 공문도 내려왔으니까.”
이 부분은 종혁도 놀랐다.
정용진 과장이 이걸 승인해 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본청 수사팀이 까라는데 까야지. 씨벌.”
조주환은 뒤에 서 있는 형사들과 제복 입은 경찰들을 봤다. 진압복을 입은 전경들도 있었다.
“모두 방검복 착용했지?”
“예!”
조주환뿐만 아니라 종혁에게 회식비를 받은 모든 경찰이 우렁차게 대답한다.
“여차하면 칼 휘두르는 놈들 있는 곳이니까 특별히 주의하고, 반항하면 박살 내 버려. 사정 봐주지 말고.”
“예!”
“가자.”
우르르 차에 오른 그들은 곧 조선족 밀집 지역으로 향했다.
* * *
콰앙!
“단속입니다!”
오후 9시의 가리봉동. 조선족 밀집 지역 전체가 일거에 날벼락을 맞는다.
“자자, 동작 그만!”
“꺄악!”
“이 씨발! 너희 뭐이니!”
“뭐긴 뭐야, 경찰이지. 자, 여기 보시고.”
찰칵!
“오, 오늘 처음 온 검다!”
“오, 오늘이 첫 출근이에요!”
“예. 이야기는 서에 가서 합시다.”
성인 오락실, 노래방, 성매매를 하는 모텔, 보도방, 마작도박장 등 식당이나 술집을 제외한 모든 곳이 단속을 맞는다.
“형사님, 왜 이러시는 검까. 저희가 뭐 실수한 거라도 있음까.”
조주환이 조용히 눈감아 주고 있던 청사파 두목이 모텔에서 끌려 나오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본청에서 사람들이 왔어.”
“예?”
“그러게 분위기 관리 좀 똑바로 하지 그랬냐. 너희 조선족이 사고 치지 못하게 어? 사고 친 놈이 있으면 따로 불러서 다신 그러지 못하게 하든가.”
“아니, 그걸 저희가 왜 해야 됨까. 그리고 그걸 어찌 다 함까!”
“그럼 내가 하리? 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 이해해. 내일 적당히 두세 놈 내놓으면 훈방으로 풀려날 거야. 그놈들도 적당히 벌금만 맞고 끝날 거고.”
정말 마음 같아선 이놈도 함께 처넣고 싶지만, 이놈이 사라지면 또 누가 슬그머니 기어 들어와 이놈들의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 테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하아. 알겠슴다.”
‘알겠긴. 씨발.’
짜증을 억지로 참는 그의 모습에 순간 손을 들 뻔했던 조주환은 이내 애써 참아 내며 관용차의 문을 닫았다.
드르륵! 탁!
“카악, 퉤! 야, 나 최 팀장한테 갔다 온다. 제일 위험한 구역에 갔잖냐. 혹시라도 칼 맞으면 골치 아프다.”
본청 수사팀장이 일제 단속을 벌이던 와중에 칼을 맞는다?
그땐 정말 동네가 뒤집어지는 거다. 이전 검찰의 단속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예! 다녀오십쇼!”
“어휴. 왜 그런 위험한 곳에 가고 지랄이야.”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재빨리 그쪽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노래방에서 끌려 나오는 업주와 도우미, 손님들.
여긴 유흥 시설이랄 게 호프집과 노래방 몇 곳뿐이었지만, 경찰들은 번화가보다 더 긴장을 하며 그들을 관용차에 실었다.
“응? 어떤 미친 새끼가 여기에 오락실을 오픈했지? 아, 최 팀장!”
“예!”
놀라 이쪽을 보고 있는 리동수를 향해 씩 웃어 주던 종혁은 고개를 돌렸다.
“그쪽은 다 끝나셨습니까?”
“대충 마무리되는 상태죠. 여기는요? 최 팀장은 다친 곳 없고요?”
“그냥 들어갔다가 데리고 나오면 되는 걸로 다칠 게 있나요. 아, 모텔 하나 있는 거 한번 뒤져 봤는데, 거긴 뭐 없던데요?”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거긴 그럴 깜냥이…… 이크!”
부르릉!
스쳐 지나가는 트럭을 피한 조주환은 이내 술잔을 꺾는 시늉을 했다.
“다 됐으면 한잔하러 가죠? 다행히 별일은 없었으니까.”
“어?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야죠. 아니면 날밤 까야 하는데…….”
오늘 일제 단속에 동원한 경찰 병력만 수백 명이고, 현장 검거된 이들도 백 명이 넘는다. 내일 아침 해가 뜨는 걸 보면서 퇴근할 수 있었다.
“아하하, 죄송합니다.”
“에휴. 됐습니다. 이건 뭐 공문이 내려온 거라 말도 못하고……. 그럼 이따가 연락할 테니까 와요.”
“옙. 이따가 뵙겠습니다.”
종혁은 조주환이 멀어지자 담배를 물었다.
‘그렇지. 공문 때문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일제 단속을 벌일 수 있었을까. 이건 종혁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과장님은 내 뭐를 믿고 승인을 한 거지?’
정확한 실태 조사를 위해 일제 단속이 필요하다고 하니 망설임도 없이 그러라고 했던 정용진 과장.
‘날 믿는 건지, 아님 이것도 시험인…… 음?’
“왜 그래요?”
“아니, 방금 전 저 골목에서 나온…… 음, 아니다. 그럼 이제 된 거냐?”
찰칵! 치이익!
“네, 됐죠.”
이제 이 근방에 유흥 시설은 저기 오락실 하나만 남았다.
놈들이건 놈들 똘마니건 분명 찾아올 터.
그때 리동수가 시비를 걸어 작은 소란만 일으키면 된다.
‘그럼 합법적으로 놈들의 공장을 뒤져 볼 수 있는 거지. 놈들이 위조지폐를 써 주면 더 좋을 테지만…….’
혹시나 그럴까 하고 최재수를 오락실 환전소에 처박아 놓은 거지만, 얼마가 걸릴 줄은 모른다.
“이젠 놈들이 멍청하고 성급하기만을 바라야죠.”
“걱정 마. 그런 놈들 인내심 깊은 거 봤…… 끙. 그러네.”
무려 8개월이다. 저 공장에 새로운 세입자가 생긴 게.
등록한 업종은 원단 납품. 중국에서 원단을 떼어 와 동대문이나 남대문에 납품을 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속내를 꽁꽁 감춘 채 여론만 어지럽히던 놈들. 인내심 하나는 인정해 줘야 했다.
“역시 대량으로 위작을 풀려는 건가?”
그럼 아마 저놈들만 친다고 해서 끝이 나는 일이 아닐 거다.
“뭐, 이제 곧 확인되겠죠. 갑시다.”
판을 깔았으니 이제 남은 건 다시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 * *
인천 외곽의 한 공터. 이미 선객이 있는 그곳에 가리봉동에서 출발한 탑차와 도중에 합류한 승합차 두 대가 멈춰 선다.
타악! 드르륵!
탑차에서 내린 장발의 사내는 승합차에 내린 조직원들과 함께 먼저 와 있는 선객에게로 향했다.
그들이 타고 온 것과 똑같이 생긴 탑차와 승합차 앞에 서 있는 십여 명의 검은 양복들. 장발 사내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등진 채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사십대 중년인에게로 향했다.
“박 사장.”
“천 사장.”
서로 악수를 한 장발 사내는 담배를 물었다.
“돈은?”
“물건은?”
“돈부터.”
피식 웃은 사십대의 사내는 손을 들었고, 이내 그의 뒤에서 서류 가방을 든 사내가 걸어 나왔다.
달칵!
“빳빳한 걸로 40억. 나머진 저기 차에 있고.”
“……탁락아.”
장발 사내의 부름에 양탁락도 서류 가방과 핸드백 하나를 들고 온다.
“살펴보오.”
양탁락이 열어 주는 서류 가방 속, 하얀 가루가 든 투명 봉투와 함께 든 5천 원짜리 뭉치 중 하나를 꺼내 든 그는 손전등을 꺼내 지폐를 살펴보곤 입술을 비틀었다.
“예술이군.”
두께나 감촉 모두 위화감이 없다. 기계로 검사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다.
“우리 쪽 그림쟁이 솜씨가 좋소. 다른 것도 살펴보오.”
사십대 중년인은 다시 손을 들었고, 그의 뒤에 서 있던 다른 사내가 하얀 가루가 든 투명 봉투 하나와 핸드백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이내 중년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 사장 기술자들 솜씨가 참 좋아. 나머지도 믿을 만하겠지?”
“겨우 40억 따위로 장사 접을 마음 없소.”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그럼 이제 서로 키를 교환해 볼까?”
복잡하게 내용물을 옮길 필요 없이 타고 온 차들만 바꾼다. 깔끔한 방식이었다.
그렇게 키와 서류 가방을 교환하던 장발 사내는 슬그머니 중년인을 봤다.
“그런데 그 많은 건 어찌 처분할 생각이오?”
움찔!
순간 박 사장이 선글라스를 내려 눈을 보이며 이를 드러냈다.
“이봐, 천 사장. 선 넘지 마.”
“미안하오. 그럼 다음 거래는 언제 하겠소?”
“……두 달 뒤. 우리도 위폐를 처분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알았소. 그땐 약이 좀 많을 거요.”
“흥. 가자.”
손을 놓은 박 사장이 장발 사내를 스쳐 지나가자 이를 악문 양탁락이 장발 사내가 아직까지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태워 버림까?”
“됐다. 아직은 아이다.”
정말 아니다. 저놈들 조직을 한입에 삼킬 때는.
장발 사내는 공터를 빠져나가는 차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내일 되면 중국에 보내는 애들 늘려서 약을 더 받아 와라. 동대문 남대문 쪽과 원단 교환도 신경 쓰고. 요새 공안이 냄새 맡았다고 흉흉하다.”
“알겠슴다. 그보다 오늘 회식은 어찌함까.”
그들도 오는 와중에 봤다. 동네 모든 유흥업소가 일제히 단속을 맞는 걸 말이다.
“……일단 오늘은 대충 술 마시고 내일 생각하자.”
“끙. 알겠슴다.”
오늘 큰돈이 들어왔으니 옆구리에 여자를 끼고 술을 옴팡 마시는 게 계획이었던 그들. 양탁락은 부하들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여자는 날아갔으니 다른 걸로라도 채워야 하는데 그 마저도…… 아.’
“그럼 오늘 연 오락실에 보내도 되겠슴까. 게임을 하면 20만 원짜리 면도기나 브랜드 속옷 같은 걸 상품으로 얻을 수 있담다.”
“20만 원짜리 면도기? 면도기에 금을 바른 거이니?”
“가 봐야 알 것 같슴다. 또 동전 넣으면 노래 부를 수 있는 기계도 있담다. 리, 리듬 게임? 그런 것도 있담다.”
“……사고만 치지 마라. 오늘은 동네 공기가 더럽다.”
“걱정 마십쇼.”
“그럼 알았다. 가자.”
장발 사내는 넘겨받은 키를 양탁락에게 주며 승합차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도 곧 공터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