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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55화 (25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55화>

지익, 직!

허름하고 작은 사무실.

컬러 프린트가 5천 원 뒷면이 복사된 종이를 토해 낸다.

안경을 낀 삼십대의 중년인은 미리 뽑아 놓은 앞면과 복사 방지용 그림이 그려진 종이까지 세 장을 겹치고 그 사이사이에 특수한 풀을 발라 붙인다.

그리고 그 위에 책으로 탑을 쌓고는 잠시 물러나 팔짱을 낀다.

그에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인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쌓은 탑을 무너트리듯 치운 중년인은 붙여진 종이를 뒤집어 보고, 천장등에 비추어 보고, 마지막으로 종이를 매만지다가 미소를 지었다.

“됐습네다. 이거면 기계를 가져다 대지 않는 이상 은행원 할애비라도 모를 겁네다.”

정문철에게 전수받은 노하우에 자신의 기술을 접목시켜 만든 지폐다. 그는 자신만만할 수밖에 없었다.

“가져다주시라요.”

“아, 알았다.”

마치 스님처럼 머리가 파르스름한 삼십대의 사내는 다급히 2층 안쪽의 사무실로 향했다.

쿵쿵!

“혀, 형니메! 들어가겠슴다.”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연 대머리 사내는 소파에 앉아 뻐끔뻐끔 대마를 피고 있는 장발의 사내에게 위조지폐를 내밀었다.

“개정판이 나왔슴다!”

공허함에 젖어 있던 장발 사내의 눈이 빛을 찾는다.

방금 전 중년인처럼 만져 보고 전등에도 비추어 본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대머리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일은 자신들이 다 하는데, 돈은 윗선에 모두 가져다 바쳐야 했던 엿 같던 흑룡강성에서의 생활. 그러다 조직이 망해 땡전 한 푼 없이 한국으로 도망쳐 와야 했다.

이후 조직을 여기까지 키우는 데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흑룡강성 때의 일을 반면교사 삼아 소문을 퍼트려 아무도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해 조직의 위치를 숨기고, 여러 사업을 벌였다.

그렇게 고생한 자신들에게 드디어 황금이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는 황금샘이 쥐어진 것이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었다.

“나흘 후까지 백만 장이다. 서둘러라.”

“예!”

“그리고 뻐꾸기들 만나서 다시 분위기 잡으라고 해라. 절대 누구도 이곳에 접근하면 아니 된다. 우리가 아지트를 옮길 때까지.”

이제 황금샘이 쥐어졌으니 그 황금샘을 키우며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선 조직을 더 은밀하게 숨길 필요가 있었다.

정확히는 이 공장을 유지하되, 황금샘처럼 중요한 것들은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것이다.

흑룡강성의 조직이 왜 쓸렸던가.

사업장의 위치나 본부의 위치가 공안의 손바닥에 있는데, 뇌물 좀 줬다는 것만 믿고 뻗대다가 그런 것이다.

장발 사내는 다신 그 꼴을 당하기 싫었다.

그래서 조직을 점조직 형태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예. 알겠슴다!”

대머리 사내는 희희낙락하며 사무실을 나섰고, 장발 사내는 다시 대마를 입에 물며 천장을 응시했다.

‘새로운 둥지로는 어디가 좋을까. 일단 번듯한 사업가로 위장부터 해야겠지.’

그의 입가에 나른한 미소가 맺혔다.

한편 본격적으로 위조지폐를 뽑아내라는 지시를 내리고 느긋이 공장을 빠져나온 대머리 사내, 양탁락은 담배를 물며 번화가의 노래방으로 향했다.

아지트 근처에서 노래방들이 있지만, 죄다 맥주 맛이 영 밍밍하고 아가씨들 상태도 나빠서 한번 엎어 버린 후 찾지 않았다.

당연히 걸음이 번화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늦게 기승을 부리는 추위에 양탁락은 괜히 멀리 나왔나 혀를 찼다.

“아, 안녕하심까!”

양탁락은 갑자기 허리를 굽히는 소년, 이연복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넌 누구니? 내가 누군지 아니?”

“전에 오시지 않았슴까. 저 여기서 일함다.”

“아.”

소탕과 꼬치를 기가 막히게 하는 식당. 여기라면 양탁락도 부하들과 두어 번 온 적이 있다.

‘몇달 전 일을 기억한다라…….’

현재 조직의 사정상 노출을 삼가야 하는데 자신을 알아보자 순간 양탁락의 눈에 붉은빛이 맴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연복을 어떻게 했다가 경찰이라도 출동하면 더 큰일 난다고 생각한 양탁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순간 섬뜩해졌던 연복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디 가심까? 아직 저녁때는 아이지만, 배고프시면 저희 집은 어떻슴까?”

“됐다. 술 마시러 간다.”

“아, 그렇슴까? 그럼 저기 노래방 가 보심이 어떻슴까? 맥주 10병 시키면 5병과 2시간이 공짜임다.”

“그런 곳이 있다고?”

“얼마 전에 이벤트를 열었슴다. 저김다.”

“알았다. 수고해라.”

“……수고하십쇼!”

연복은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물러섰고, 양탁락은 어린 것이 돈이나 밝힌다고 혀를 차며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양탁락이 노래방 안으로 들어가자 연복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후우. 후.”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정보만 가져오면 무려 3년간 월세와 관리비가 공짜라고 했다.

14살 아무것도 모르고 기술도 없는 자신을 거둬 준 이곳 식당의 사장 할아버지. 그 은혜를 갚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이걸론 부족하다.

그리고…….

“비즈니스…… 사례…….”

종혁은 분명 자신들에게 비즈니스라고 했고, 새로운 정보를 가져오면 합당한 사례를 한다고 했다.

어린 연복도 아는 단어인 비즈니스.

“아버지…….”

골방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떠올린 연복은 입술을 깨물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버지와 연복이 가져오는 돈과 팔고 남은 음식이 아니라면 굶어 죽어야 하는 동생들.

가족과 사장 할아버지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선 자신이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결심을 한 연복은 후들거리는 다리는 누르며 일어서 노래방을 향해 걸었다.

딸랑!

“여, 연복아!”

종혁이 제안을 건네던 자리에 있었던 노래방 사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복을 부른다.

‘이럴 줄 알았다.’

평소 소심하기로 유명한 노래방 사장.

그래서 그때 우왕좌왕하다 때를 놓쳐 그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었지만, 협조를 하지 않을 거란 건 연복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형사님이 준 CCTV는 설치했지.’

그뿐인가. 반년 간 월세가 공짜니 이 기회에 손님을 끌어모으자고 이벤트를 벌였다. 참 이기적인 양반이었다. 종혁이 괜히 조선족을 욕한 게 아니다.

연복이 노래방 사장의 한심함에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딸랑!

문을 열고 3명의 젊은 청년들이 들어오자 연복과 사장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놈들은?’

번화가 쪽에서 술 먹고 꼬장을 부리기로 유명한 놈들이다.

언제나 칼이나 도끼를 지니고 다녀서 함부로 쫓아낼 수도 없는 골칫거리들. 그것도 모자라 출동한 한국 경찰에게 반항을 하며 살벌한 분위기를 만드는 놈들.

사장은 몰랐지만, 이들은 종혁이 처음 가리봉동에 온 날 종혁에게 중국어로 비아냥거리다 된통 당한 놈들이었다.

“셋이오?”

“먼저 온 일행 있소.”

움찔!

사장과 연복의 눈이 흔들리다.

지금 그들을 제외하고 이 노래방에 있는 사람은 양탁락뿐이었다.

“크흠. 알았소. 8번방이오.”

“술부터 얼른 넣어 주오.”

셋은 안쪽으로 향했고, 사장은 연복을 봤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니. 저치들이 왜 그 사람과 어울리는 거이니?”

“그, 그러게 말임다.”

골칫덩이와 큰 벌레의 만남이다.

뭔가 이상해도 대단히 이상했다. 아니, 위험했다.

“나, 난 여기까지다.”

뭔지는 모르지만, 귀중한 정보를 얻었으니 더 이상 위험한 일에 얽히는 건 사양이었다.

하지만 연복은 아니었다.

‘위험을 감수해야 큰 걸 얻는다.’

어차피 감수하기로 한 위험이 아니었던가.

“사장님, 쟁반 어딨슴까.”

연복은 이를 악물었다.

*   *   *

“저희 왔습니다, 형님.”

“왔니? 왔으면 술부터 받으라.”

종혁이 경찰임을 알면서도 이죽거렸던 것과 달리 양손을 모으며 들어온 그들은 공손히 글라스를 들어 술을 받았고, 양탁락은 거만하게 술병을 들었다.

꼴꼴꼴꼴!

“곧 우리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거다.”

셋의 눈이 번뜩인다.

“드, 드디어 시작을 하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

꿀꺽!

“어, 어떻게 하면 되겠슴까.”

“이번엔 납치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을 옮기면 되겠슴까?”

순간 얼굴을 구긴 양탁락은 그 말을 꺼낸 놈의 뺨을 후려쳤다.

“이 얼빵한 새끼! 그럼 한국 공안이 찾아올 거라 생각은 아니하니?!”

“죄, 죄송함다!”

대번에 쪼그라드는 그들의 모습에 양탁락은 한숨을 내뱉었다.

흑룡강성이었으면 벌써 개밥으로 만들어 버렸을 어수룩한 놈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점조직 형태의 조직을 만들기 전까지는 이런 놈들이 꼭 필요했다.

조직의 형태가 완성되어도 최소 한 개의 사업 아이템은 놔둘 공장을 지키기 위해선 필요한 놈들.

“됐다. 그냥 지금보다 더 한국 놈들에 대한 적개심만 더 강하게 조성하라. 사고 쳐서 한국 공안들도 정신없게 하고.”

그렇게 말하는 양탁락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때였다.

쿵쿵쿵!

-드, 들어가겠슴다!

“……너 뭐이니?”

연복을 본 양탁락의 눈에 의문이 들어찬다.

연복은 하얗게 질렸다.

“괘, 괜찮겠니?”

“뭐 나오면 저한테도 공이 있는 검다.”

“아, 알았다. 조심하라.”

쟁반에 맥주를 올린 연복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려 애쓰며 8번 방으로 향했다.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조용하기만 노래방.

그것은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8번 방도 마찬가지였고, 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자 반주 대신 대화 소리만이 들려왔다.

-곧 우리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거다.

-드, 드디어 시작을 하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

‘사업? 시작? 도대체 어떤 사업을 시작한다 거이니?’

무슨 대화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설령 자신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겐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가족과 사장 할아버지를 떠올린 연복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후 흘러나온 말이 연복의 머리를 강타했다.

달그락!

“흡?!”

쟁반 위에서 쓰러질 뻔한 맥주를 겨우 잡은 연복은 안쪽을 향해 모든 신경을 기울였다.

‘들렸을까? 들켰을까?’

연복은 입술을 깨문 연복은 정면 돌파를 하기로 했다.

쿵쿵쿵!

“들어가겠습니다!”

양탁락을 본 순간 연복의 숨이 멎는다.

하지만 태연해야 된다. 여기서 이상한 모습을 보이면 자신은 죽는다.

‘아버지!’

“……너 뭐이니?”

“저, 저녁 장사 시작 전엔 여기서도 일을 합니다. 저만 바라보는 동생들이 많아서…….”

양탁락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앙큼한 버러지 새끼. 그래서 여길 말한 거이니?”

연복의 앙큼한 짓거리에 양탁란은 부아가 치밀었다.

“죄, 죄송함다. 하, 하지만 이벤트는 진짜임다!”

“술 내려놓고 꺼져라. 처맞기 전에.”

“죄, 죄송함다…….”

“맞기 전에 아가리 다물어라.”

입을 꾹 다문 연복은 고개를 숙인 채 맥주병들을 테이블에 올렸고, 기분이 상한 양탁락은 혀를 차며 소파에 앉았다.

“아, 안녕히 계십쇼!”

후다닥 8번 룸을 빠져나온 연복은 순간 힘이 풀리는 다리에 카운터를 붙잡았다.

‘이, 이게 뭐이라니? 지, 지금 이자들이 뭔 소리를 하는 거이니?’

예상치도 못했던,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진실을 알게 된 연복은 하얗게 질렸다.

*   *   *

“연복아, 그게 무슨 말이니!”

정혁빌딩의 1층 카페.

오늘 자신들이 알아낸 정보를 말하고자 종혁을 찾은 상인 몇 명은 연복이 꺼낸 말에 파랗게 질렸다.

“재밌네.”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카페의 공기가 낮아진다.

“이제야 알겠어.”

조선족도 사람인 이상 숙일 줄도 알아야 하는데, 계속 망종을 부린 이유를.

경찰 무서운 줄 모르고 계속 대거리를 한 이유를.

서로 타협을 하고 맞춰 가면 되는데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무작정 경계하고 적개심을 보인 이유를 말이다.

“그래, 너희 동네에 미꾸라지가 있었구나?”

솔직히 정문철이 나타났기에 조선족 실태 조사를 뒤로 미뤄 뒀던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 이 깜찍한 새끼들을 어떡하면 좋지?’

“이,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일 검다!”

“맞습니다!”

“연복아! 뭐라고 말 좀 해 보라!”

종혁은 입을 꾹 다문 채 이쪽을 보는 연복과 그런 연복을 다그치는 상인들을 봤다.

아니어야 한다. 이건 무조건 아니어야 한다.

“연복이가 평소에 거짓말을 하는 그런 아이였던가요?”

“…….”

결국 진실을 받아들이게 된 상인들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함다.”

“아냐. 네가 죄송할 게 뭐있어.”

이제 겨우 15살인 연복이 죄송할 게 뭐 있겠는가.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엄청난 정보를 가져온 게 대견하고 미안할 뿐이다.

종혁은 연복과 함께 온 다른 상인들을 봤다.

놈들이 누굴 만나는지 사진을 찍어 온 상인들. 그들의 얼굴이 터질 만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조선족들이 한국인을 싫어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니.

이런 인간 같지도 않는 한량들에게 휘둘렸다니.

그들은 쪽팔리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복이야 어리다지만 이들은 다 큰 어른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였다.

“미, 미안함다.”

“……에혀. 됐습니다.”

이들도 반쯤 피해자인데 누굴 탓할까.

원래 인간이란 이렇게 선동당하기 쉬운 생명체였다. 죄라면 이들이 인간인 것뿐이다.

“그래도 이렇게 정보를 가져오셨으니 추가로 2년간 월세와 관리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놈들이 뭘 하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으니까요.”

“하, 하지만!”

“시간을 좀 더 주시오!”

“아뇨. 지금부터는 당신들이 개입할 일이 아닙니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여론을 형성하라고 했다. 함부로 그들 영역에 발을 디뎠다간 이들이 다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긴 한데…….’

정문철이 위조지폐범이란 걸 밝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골치 아프네.’

놈들 아지트를 어떻게 넘어야 할지 답이 나오질 않았다. 한숨을 내쉰 종혁은 아쉬워하는 상인들을 일견하며 연복을 봤다.

“연복이는 잠시 나 좀 볼까?”

“예!”

기다렸던 부름인데 어찌 거부할까.

안쪽으로 간 종혁은 대뜸 명함을 내밀었다.

“이분께 아버님 모시고 가. 연락해 놨으니까.”

연복은 들켜 버린 속내에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그건 묻지 말라는 듯 옅게 웃은 종혁은 명함 한 장을 더 내밀었다. 행복의 쉼터 재단 권회수 이사장의 명함이었다.

“아무 걱정 없이 공부를 하고 싶으면 내 소개를 받았다고 여기로 연락해. 그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고 충분히 지원해 주는 곳이니까. 그리고 다른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 내 번호로 연락해 주고.”

“아, 아니…….”

“이젠 네 나이에 맞게 살도록 해, 연복아.”

가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연복.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이젠 다신 이런 일은 하지 말고.”

“큽……! 가, 감사함다. 저, 정말 감사함다.”

“그래. 다음엔 교복 입은 모습으로 보자.”

“크흐흐흐흑!”

연복의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카페를 빠져나와 담배를 물었다.

“한국인이나 조선족이나…….”

왜 저런 아이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왜 부족한 게 많아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종혁이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응?”

정혁빌딩 입구에서 웬 남성과 경비원 드미트리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그 남성이 아는 얼굴이다.

“거 꼭대기 층에 사는 순철 동무에게 모란이 피었다는 말만 전해 주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네까.”

“신원 불명의 사람의 말을 입주민에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기다리게만 해 주시라요.”

“그것도 안 됩니다.”

“아니…….”

종혁은 피식 웃으며 둘에게 접근했다.

“북한 사람도 아니라는 말을 씁니다?”

“……!”

“그리고 모란이 필 계절은 멀었는데, 왜 모란이 피었다고 하세요? 정찰총국에서 화훼 농장도 합니까, 리동수 조장?”

태국에 있을 때 순영을 잡으러 왔던 정찰총국의 리동수 조장.

“사, 사람 잘못 보셨습네다. 큼.”

“흠. 그래요? 국정원 번호가 몇 번이더라…….”

“비공식으로 협조 요청을 하고 왔으니까네 전화하지 말라!”

기겁하는 리동수의 외침에 종혁도 기겁했다.

“왜? 아주 간첩이라고 동네방네 다 떠드시지?”

‘비공식은 개뿔이.’

비공식이든 뭐든 리동수가 정혁빌딩에 접근하는 순간 나탈리아나 국정원이 연락을 해 왔을 것이다.

“흡!”

“됐고. 따라와요.”

종혁은 손가락을 까딱였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리동수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종혁의 뒤를 따랐다.

“리동수…… 조장 동지?”

마침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오던 순철은 리동수를 보고 하얗게 질렸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흡!”

“아니, 왜 애 겁을 주고 그래요? 철이는 방에 들어가.”

종혁의 눈치를 보며 경례를 한 순철은 냉큼 방에 들어갔고, 리동수는 얼굴을 구겼다.

종혁은 그런 그를 끌고 부엌으로 향했다.

탁! 탁!

달콤한 오렌지주스가 리동수의 앞에 놓였다.

“순영 씨가 보냈어요?”

“쿨럭! 컥!”

“에이, 진짜.”

종혁은 걸레로 어질러진 테이블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가 보낸 사진 때문에 온 것 같은데…… 그 새끼가 그만큼 중요한 놈인가? 그래서 철이 옆구리를 찔러 내가 그 사진을 어디서 찍었는지 알아보시려 했다?”

“끄응.”

“에라이. 이렇게 허술한 양반이 어떻게 정찰총국 조장이지?”

“그, 그만 놀리라!”

“됐고. 뭐하는 새낍니까? 나도 대충 통빡이 굴려져서 그래.”

“……모작 전문가다.”

“아, 그래요? 그럼 공화국의 외화벌이에 큰 손해를 끼치고 튄 놈인가?”

“……!”

“거참 알기 쉬운 양반일세.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어흠흠.”

‘흠. 그럼 정문철은 죽었을 확률이 크겠네…… 씁!’

어디 종혁이 조선족 깡패들을 모를까. 그렇게 됐을 확률이 80퍼센트 이상이었다.

위조지폐를 만들어서 결국 정부까지 움직이게 만든 정문철이지만, 그래도 죽을 정도까진 아니었던지라 입맛이 썼다.

하지만 이 상황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종혁으로선 횡재였다.

‘요게 요렇게 풀리나?’

“그런데 정말 협조 요청을 하고 내려온 거 맞아요?”

“아니면 내가 이 서울 바닥을 돌아다닐 수 있었을 것 같네?”

‘그건 맞지.’

무려 정찰총국의 조장이다. 국정원이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감시하는.

“그럼 나하고 거래 하나 합시다.”

“거래?”

“은신처, 활동 자금, 그리고 그놈까지 다 순순히 넘겨 드릴게.”

“……뭘 원하네?”

바라는 건 당연히 한 가지뿐이다.

하지만 정찰총국이라는 패를 손에 쥐었는데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까.

종혁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보다 몇 명이나 데리고 오셨어?”

종혁은 마치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냐는 상인처럼 음흉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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