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54화 (254/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54화>

    가리봉동 조선족 밀집 지역의 한 2층 호프집.

    난데없이 건물주가 바뀐 이십여 명의 상인들은 어두운 낯빛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대체 왜 우릴 모았겠슴까?”

    “뭐 월세를 올리겠다는 것이겠지. 아니면…….”

    “서, 설마 우릴 내쫓겠다는 검까?”

    그들의 낯빛이 거무죽죽해졌다.

    성공을 위해 고향을 등지고 찾은 한국.

    고향에선 혹여 돈을 모아 가게를 차린다고 해도 비리 공안에게 언제 가게를 뺏길지 모르고, 깡패들에게 보호비도 뜯겨야 한다.

    어쩌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용직 막노동부터 시작해 한 푼, 두 푼 모아 겨우 꿈에서나 겨우 그리던 가게를 차렸다.

    깡패들에게 보호비를 뜯기는 거야 이곳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최소한 공안에게 언제 가게를 뺏길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어디였던가.

    그렇게 겨우 번화가인 이곳까지 나왔는데…….

    ‘쫓아낸다고? 이렇게 허망하게 쫓겨나야 한다고?’

    텅!

    누군가 탁자를 때리며 일어났다.

    “하, 역시 이래서 사람들 말처럼 한국인은 믿을 수가 없어! 아무것도 없는 곳에 겨우 상권을 만들어 놨는데, 이제 와서 우릴 내쫓는다고?!”

    “맞아! 우리가 이 상권을 어떻게 만들었는데!”

    식당 몇 개, 노래방 몇 개 있던 작은 상권을 여기까지 키운 게 자신들이었다. 억울했다.

    “하지만 그 건물주가 한국 공안을 동원하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잖슴까.”

    “그건…… 그렇지.”

    웅성웅성.

    정말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차린 가게다.

    이대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

    이곳 조선족 밀집 지역이야 원체 월세가 싸다지만, 큰 도로 하나만 넘어가도 지하방 하나 얻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여,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함까. 설마 거기로 가야 함까?”

    그들 조선족조차 쉬이 가지 못하는 우범 지역.

    한국을 찾은 그들이 처음 터를 잡았던 곳.

    ‘거길 다시 가야 한다고?’

    이제 거기에 남은 사람들은 다 비슷한 놈들뿐이다. 상인도, 거주민도.

    정말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다.

    동포들이 모여 있는 다른 지역, 대림이나 안산 등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과연 텃세를 버티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냥 고향에 돌아가야 하나?”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다면 이곳이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데, 구태여 이곳에 남을 이유도 없었다. 차라리 친구와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터였다.

    그들의 가슴에 우울한 비가 내렸다.

    그때였다.

    딸랑!

    문이 열고 뚜벅뚜벅 들어오는 종혁을 향해 간절한 눈빛들이 쏟아진다.

    그중 한 소년과 노인은 종혁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들에게 윙크를 한 종혁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사람들의 모습에 씁쓸해진 입맛을 다시며 빈자리에 앉았다.

    그 뒤에 오택수와 최재수가 섰다.

    “반갑습니다, 세입자 여러분들. 어제부로 당신들이 세 들어 사는 그 건물들은 제 소유가 됐습니다.”

    쿠웅!

    알고 나온 길이지만 다시 들으니 심장이 내려앉는다.

    숨 막히는 중압감이 그들의 전신을 짓누른다.

    “부, 부탁드리겠슴다. 월세를 올려 받고 싶다면 올려 드리겠슴다. 하지만 제발…… 부디…… 나가라는 말만은…….”

    “마, 맞습니다. 정말 힘들게 온 한국임다! 같은 동포 아임니까?!”

    같은 동포.

    종혁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네요. 한국인이 싫어 그렇게 배척을 하고 위협을 하면서 이렇게 필요할 때가 되니 동포라고 하는 겁니까?”

    “그, 그건……!”

    얼굴이 빨개진 상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종혁은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의 모습에 담배를 물었다.

    “그 부분은 저희가 잘못했슴다. 반성하겠슴다. 그러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주십시오.”

    참다 못한 소년, 이연복이 나서자 상인들은 기겁하고 종혁은 눈을 빛냈다.

    “필요한 거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날 도울 일이 있을까?”

    “그러니 저희를 이렇게 불러 모으셨을 거라 생각함다.”

    월세를 올리는 것이든, 가게를 빼는 것이든 단순히 계약과 관련한 일이라면 이렇게 모두를 불러 모을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아저씨가 형사님이니까.’

    그리고 잘 보면 여기에 모인 상인들 모두 진상들에게 꽤 피해를 입은 상인들이다. 물론 종혁이 부른 이유와 연관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재밌네.”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상인들은 하얗게 질렸다.

    “야, 야! 누가 쟤 입 좀 막아라!”

    “와 이러네! 다 죽일 참이네?!”

    상인들이 호들갑을 떨었고, 이연복을 빤히 보던 종혁은 손을 들었다.

    “아, 연복이의 말이 맞습니다. 전 여러분께 원하는 게 있어서 이렇게 소집한 겁니다.”

    ‘맞, 맞다고?’

    “그, 그게 뭠까?”

    종혁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하죠. 전 형사입니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공안. 그것도 본청 공안입니다.”

    “예?”

    잠시 이해를 못했던 그들은 눈을 부릅떴다.

    “설마 당신이?”

    며칠 전 처음 보는 형사가 동네에 나타나 동네 주민을 괴롭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는 그들이다.

    종혁은 등을 뒤로 젖혔다.

    “내가 원래 이곳에 온 이유는 가리봉동 조선족 실태 조사를 위해서였습니다.”

    최재수가 급히 종혁을 봤다.

    ‘그, 그걸 왜 말하는?’

    “주취 흉기 난동, 절도, 강도, 성추행, 협박, 폭행, 경관 폭행, 바가지 등등 아주 가관이더군요. 범죄의 온상이 따로 없어요.”

    상인들의 얼굴이 다시 붉어진다.

    다른 지역과 달리 조선족 밀집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못하고, 실제로 치안도 좋지 못하다는 건 그들도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다.

    하지만 억울했다. 그런 시선과 상황을 만든 건 자신들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 또한 당하는 처지에 있었으니까.

    바가지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결단코 한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운 적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면 손님만 떨어지는데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뭐 당신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니 다 집어치우고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를 하죠.”

    이건 자신들을 압박하는 걸까, 아니면 도와준다는 손을 내미는 걸까.

    그리고 비즈니스는 또 뭘까.

    그들은 정신이 없었다.

    “……뭠까?”

    이연복이 힘겹게 말하자 종혁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우선 제안을 하기 전에 선택권을 줄 겁니다. 이 이야기를 계속 들을지, 아니면 이대로 돌아 나갈지. 그냥 나가신다고 해도 아무런 불이익은 없을 거고, 남아 계신 분들에게는 좋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종혁은 이제 선택은 당신들 몫이라며 눈을 감았고, 상인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종혁이 언급한 좋은 제안이란 게 과연 뭘까.

    ‘월세? 관리비?’

    상인인 그들로서는 생각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년, 연복은 생각이 좀 달랐다.

    ‘뭔지 몰라도 우리 조선족에게 좋은 일이다.’

    일개 식당 종업원, 그것도 미성년자인 자신에게 존댓말을 써 주고 조선족의 미래에 대해 말했던 종혁이다.

    연복은 사장 할아버지를 툭 건드리곤 고개를 끄덕였고, 사장은 푸근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도 종혁이 말이나 행동이 무서울 뿐, 선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본 상인들은 눈을 빛냈다. 종혁이 난동을 부렸다는 식당의 구성원 둘이 자리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이건 뭔가 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종혁은 단 한 명도 떠나지 않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속 이야기를 들으실 각오가 됐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일단 오늘 제 억지에 가까운 소집과 제안에 응해 주신 대가로 여러분 전원에게 반년간 월세와 관리비를 받지 않겠습니다.”

    ‘월세! 관리비!’

    그것도 무려 반년이다.

    종혁은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그들 가운데로 사진 몇 장을 던졌다. 정문철과 함께 이연복의 식당에 들렀던 놈들의 사진이었다.

    “당신들 동네에 큰 벌레들이 기어 들어왔습니다. 들통이 나면 당신들 동네가 싹 다 쓸려도 이상하지 않을 벌레들이죠.”

    정문철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놈들은 악이다.

    움찔! 흠칫!

    사진을 보며 의아해하던 상인들의 몸이 굳었다.

    “언제 들어왔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모르는 얼굴이라고 하진 않겠죠?”

    몇몇 상인들이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아는 얼굴들이다. 칼이나 도끼 따위를 차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놈들인데 모를 리가 없다.

    종혁은 최재수에게 손가락을 까딱였고, 최재수는 탁자 중앙에 CCTV가 든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내려놨다.

    “당신들은 그저 이걸 가게에 설치해 놓고, 놈들이 왔을 때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됩니다. 놈들이 뭔 짓을 하는지, 누굴 만나는지, 누굴 만나 뭔 말을 하는지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어느새 집중한 그들의 모습에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가장 양질의 정보를 가져오는 사람 3명에겐 건물주의 권한으로 앞으로 3년간 월세와 관리비를 받지 않겠습니다.”

    “사, 삼 년?!”

    “어쩌면 영원히 안 받을 수도 있겠죠.”

    상인들의 눈이 부릅떠진다.

    그들의 눈에 간절한 욕심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시간이 빠를수록 내가 지불할 대가는 더 세질 겁니다. 아, 다른 사람이 모르는 정보를 가져와도 충분한 대가를 치러 주죠.”

    종혁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몸을 돌렸다.

    “어떤 게 당신들에게 도움이 될지 그것부터 생각하십시오. 저딴 범죄자들도 같은 조선족이라고 감싸서 거리에 나앉을지, 아니면 범죄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처단해 보다 좋은 동네를 만들지……. 참고로 한국 정부가, 한국인이 호구라서 저놈들의 작태를 가만두고 보는 게 아닙니다. 소수의 만행이라도 그게 거듭되면 결국 전체의 만행이 되는 거니까. 잘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한 종혁은 호프집을 빠져나갔고, 그런 종혁을 멍하니 바라보던 상인들은 사진을 가만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와, 진짜……!”

    건물을 나서자 최재수는 종혁을 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방금 전 종혁의 모습이 너무 멋져서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오택수도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 월세는 월세네.”

    무기로 사용한 월세.

    대체 어떻게 이런 걸 떠올리는 걸까.

    오택수는 혀를 내둘렀고, 종혁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따라 줄까요?”

    최재수의 말에 최종혁과 오택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어르고 달랬는데 안 듣는다고?’

    그들이 같은 조선족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면 또 모른다.

    하지만 신고가 자주 접수된 가게의 사장들만 골랐다.

    이미 같은 조선족에게 학을 뗀 불쌍한 사람들이란 소리였다.

    ‘그러니 보자마자 살려 달라고 빈 거겠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저도 나름 대처를 해 놓을 테니까 일단은 저분들이 정보를 가져올 때까지 잠시 해산하죠.”

    시간이 꽤 걸릴 테니 오랜만에 집에 가서 깨끗이 씻고 가족에게 봉사하는 거다.

    “넌 뭐하게?”

    “저도 집에 가 보려고요. 그럼 저들에게 연락 오면 보자고요. 예, 사장님. 납니다.”

    손을 흔든 종혁은 며칠 만에 집으로 향했다.

    *   *   *

    “엄마!”

    “에그머니나!”

    아직 점심시간이 시작되지 않은 아침. 정혁빌딩 뷔페식당을 우렁차게 울리는 외침에 카운터를 보던 아주머니가 놀라고, 주방에서 어머니 고정숙이 놀란 눈을 한 채 걸어 나온다.

    이젠 편하게 살아도 될 텐데 언제나 손님들 대접하는 음식은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존경하는 어머니.

    “뭐야? 잠복 간 거 아니었어?”

    “흐흐. 엄만 모르겠지만 원래 아들처럼 유능하면 잠복을 할 때도 이렇게 쉴 수 있어.”

    “지랄한다. 또 뭔 사고를 친 건데?”

    “흐흐흐.”

    “……알았어. 쉬고 있어. 저녁엔 외식하자.”

    “옛썰!”

    어머니 고정숙을 꼭 끌어안은 종혁은 돌아섰고, 고정숙은 어느새 걱정이 들어찬 눈으로 식당을 빠져나가는 종혁을 봤다.

    ‘뭔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알아서 잘하는 아들이라도 부모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으로 올라온 종혁은 순철부터 찾았다.

    “잠복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네까?”

    “어. 잠깐 시간이 생겨서. 그보다 철아.”

    “예?”

    “지금도 순영 씨와 연락되지?”

    “예. 자주는 힘들지만 가끔 연락을 합네다.”

    “그으래?”

    종혁의 눈이 번뜩였다.

    “그럼 이놈이 누군지 좀 알아봐 달라고 할 수 있을까?”

    식당에서 북한말을 쓰던 놈.

    북한 사람은 북한 공무원이 잘 알 수밖에 없었다. 탈북자라도, 탈북자가 아니라도.

    “……알갔습네다. 맡겨만 주시라요. 더 필요한 건 없습네까?”

    종혁의 부탁이다. 순철의 표정이 진지하게 물들었다.

    “응. 그거 말고는 없어. 그럼 난 쉴 테니까 저녁에 보자.”

    “알갔습니다. 푹 쉬시라요.”

    “오냐. 너도 대충하고 쉬어. 대학 1년 늦게 간다고, 1년 늦게 사회에 뛰어든다고 인생이 어떻게 되는 거 아니다. 오히려 빨리 가려다 망하는 거지.”

    수능 성적을 좋게 받았지만, 쉽게 대학과 진로 사이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순철.

    “아, 아니…….”

    종혁은 항변을 하려는 순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방으로 향했고, 그런 종혁을 보며 발을 구르던 순철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   *   *

    쾅!

    갑자기 열린 문에 얼굴을 와락 구기며 ‘대가리가 이렇게 혁명적으로 미친 아새끼는 누구냐’고 고개를 들었던 리순영은 의아해하며 몸을 일으켰다.

    “중좌 동지를 뵙습네다.”

    “지금 인사가 중요한 게 아니야! 이 아새끼래 어디서 찾았네?”

    텅!

    사십대 군관이 내려놓는 사진을 본 순영은 미간을 좁혔다.

    ‘이 사진이 왜 이 인간의 손에 들어가 있는 거이네?’

    종혁이 부탁한 일이기에 부하들을 시켜 알아보던 놈의 사진.

    그걸 위작 따위를 팔아서 나라의 살림에 한 손 보태는 부서의 사람이 들고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무슨 일 있습네까?”

    “날래 대답하라!”

    “……무슨 일인디 모르겠디만 여기가 어딘지 모릅네까? 목소리 낮추시라요. 다신 짖지 못하게 찢어 버리기 전에.”

    ……꿀꺽.

    “크, 크흠. 내가 급해서리 실수를 좀 했다. 미안하다.”

    “일단 앉으시라요.”

    순영은 순철이 긴밀히 보내온 남한표 믹스커피를 타왔다.

    “그쪽 부서 동무입네까? 실력이 영 아닌 건 아닌가 봅네다?”

    “실력 없으면 내가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찾아왔갔어?”

    “날래 보따리 풀어 보시라요.”

    “하……. 이번에 우리 부서 동무들이 죄다 선선한데 간 거 기억하네?”

    교도소를 일컫는 선선한 곳.

    “예, 알고 있습네다.”

    부서 하나가, 그것도 외화벌이를 하던 부서가 통째로 날아간 사건인데 모를 리가 없다.

    “분명 팔아넘낀 위작에 큰 결함이 발견됐다고…… 맞습네까?”

    “나만 겨우 이 질긴 모가지 간수할 수 있었디.”

    “아, 그럼?”

    중좌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고, 순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위대한 공화국의 외화벌이에 장난을 친 놈이 탈북을 한 것도 모자라 종혁 동무의 시야에 걸렸단 말이네?’

    경찰인 종혁이 물어본 거라면 분명 범죄에 연관된 일일 터.

    “제발 도와 달라. 이놈을 잡아야 내가 데리고 있던 동무들이 산다.”

    “그리고 중좌 동지도 살겠디요.”

    눈앞의 중좌는 부서를 책임지는 장이다.

    든든한 배경이 있어 겨우 책임은 피했다지만, 이대로 계속 부서 업무가 멈추게 되면 탄광에서 흙냄새나 맡게 될 것이다.

    “……그렇디. 내 이 은혜 꼭 갚갔어. 아파트 어떠네?”

    “아파트는 나도 있습네다. 그보다 이 미친 동무는 왜 그런 짓을 했다고 합네까?”

    “뭔 외래 영화를 보고 그런 걸로 추정되고 있디.”

    솜씨가 기가 막히지만 창의성이 부족한 어느 화가가 같은 화가나 평론가들에게 넌 평생 가도 인정을 받을 수 없을 거냐는 말을 지껄이기에, 너무 화가 나서 명작을 똑같이 모작하고 어떤 게 진짜냐 묻는 그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순영은 입을 헤 벌렸다.

    “뭔 그런 미친 동무가…….”

    “소좌 동지!”

    “알갔습니다. 한번 아는 동무들에게 부탁해 보갔시오.”

    “그 혹시라도 보위부에는…….”

    “용무 끝났으면 가 보시라요. 업무 중입네다.”

    “아, 알갔어! 내 이 은혜 확실히 갚을 테니 그놈만 잡아 달라!”

    거듭 부탁한다고 말한 중좌는 사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닫으며 나갔고, 순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치국 부장 아들내미의 부탁이라…….’

    피식 웃은 순영은 옆에 놓인 전화기를 들었다.

    “예, 국장 동지. 리순영 소좌입네다. 뵙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네다.”

    한국의 범죄 사건에 북한이 끼어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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