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46화>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공손하게 말 안 해?!”
“내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조용히 하세요! 조용히!”
문밖으로 온갖 고성이 흘러나오는 광역수사대의 문 앞에 선 종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만득이 있는 곳이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망타진 된 도박꾼 패거리.
거기에 이 인간이 있었다.
“돌겠다, 진짜.”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그래, 솜이를 위해서니까.’
종혁은 머리를 긁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충성.”
광수대 대장은 사무실 안쪽을 가리켰다.
“저기다 데려다 놨으니 물을 거 물어봐.”
“감사합니다.”
“뭘. 서로 돕고 사는 거지. 가 봐.”
“충성.”
안쪽의 회의실로 들어가니 코가 빨갛고 눈이 충혈된 오십대 장년인 오만득이 건방진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뭐야? 커피는? 안 줘?”
‘그래,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음?’
종혁은 한껏 거만한 눈으로 바라보는 오만득의 전신을 살피다 피식 웃었다.
‘아, 그랬어?’
“유치장 친구들에게 뭘 많이 들으셨나 봐요, 오만득씨.”
눈동자와 손끝이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억지로 허세를 부리는 거다.
사나운 도사견들도 눈빛으로 제압하는 개장수임에도, 그만큼 죽음과 밀접한 개장수임에도 이렇게 겁먹은 이유는 아마 하나일 거다.
“유치장에 갇힌 동안 술 생각이 많이 나셨죠?”
움찔!
노랗게 뜬 얼굴이나 눈, 수전증 등 모두가 알콜 중독 증상을 가리켰다.
어디 죽음과 함께 사는 개장수가 유치장에 갇혔다고 겁을 먹을까.
같은 방에 살인자가 있어도 그러려니 하려는 인간들이 바로 개장수다. 특히 그런 처참한 환경을 만들 정도라면 오만득은 이미 인간 말종이라고 봐야 했다.
종혁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유치장에 같이 갇힌 친구들은 아마 상습 도박을 들먹였을 거고.”
오만득은 현장에서 체포됐지만, 동종 전과가 없기 때문에 벌금형으로 끝날 확률이 99퍼센트다.
그런데 이 상습 도박죄라는 게 좀 웃긴 게 판사의 재량에 따라 단 한 번만 도박을 했어도 상습 도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 형님이 이 시간에 없을리 없는데…….’라던 동네 주민의 말.
그렇게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만든 도박판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야 하기에 보통 저녁에 판을 벌이는데, 그걸 비추어 보면 오만득은 이미 그곳에 자주 들른 도박 중독자란 소리도 된다.
아마 함께 검거된 호구들을 추궁하면 오만득을 봤다는 사람이 나올 터.
만약 그로 인해 벌금형이 아니라 징역형을 받게 된다면?
좋아하는 술을 못 먹게 되는 거다.
알콜 중독자에게 그건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런 종혁의 생각이 맞다는 듯 오만득의 몸이 더 크게 흔들린다.
종혁은 담배를 내밀었다.
“근데 미안하지만, 난 다른 사건으로 온 거라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이렇게 잠시 담배 연기 맡은 걸로 만족합시다. ……뭐, 잘 협력해 주면 좋게 말해 줄 수도 있고.”
순간 오만득의 눈이 번뜩인다.
그는 담배를 물며 혀를 찼다.
“씨불. 난 장미 아니면 안 피는데……. 뭘 묻고 싶은데?”
종혁은 마음이 돌아선 그의 모습에 씩 웃으며 사진을 내밀었다.
“1년 전 당신이 데려간 개예요. 이름은 흰둥이. 견종은 도고 아르헨티노.”
그랬다. 솜은 놀랍게도 사납기로 유명한 견종인 도고 아르헨티노를 친구로 삼고 있었다. 처음 딱 보자마자 딱 꽂혔다고 한다.
‘왜 발 달린 꿈틀인가 싶었지.’
솜이네 동네까지 읊은 종혁은 오만득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기억나십니까?”
“으음…….”
종혁은 생각에 잠기는 오만득에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알겠습니다. 그럼 처벌 잘 받으세요.”
“자, 잠깐! 아, 아직 말도 안 했는데 간다고?”
“그럼? 경찰이랑 대가리 싸움을 하려는 개새끼를 내가 왜 계속 봐줘야 하는데?”
흠칫!
“아주 씨발 존댓말로 말해 주니까 본청 경찰이 막 동네 동생 같지? 아님 뇌가 술에 쩔어서 안 돌아가나? 야,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본청 경찰이 시간이 어디 있다고 개를 찾고 있겠냐? 그냥 지인이 부탁해서 찾아봤던 거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오만득을 본 종혁은 담배를 빼앗으며 일어섰다.
“그럼 징역 잘 살고. 안에서 알콜 치료 잘 받아.”
“뭣?! 아, 아니 잠깐!”
“엿이나 드세요.”
중지를 치켜든 종혁은 문을 쾅 닫고 나갔고, 종혁이 잘하나 밖에서 듣고 있던 광수대 대장은 그런 종혁을 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분명 쉽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동안 종혁이 해결한 사건을 주욱 훑어봤을 때, 종혁으로선 아마 처음 접하는 유형의 범죄자일 터.
거기다 자기가 잡은 것도 아니고 다른 팀인 광수대가 잡았다. 함부로 대할 수도 없을 테니 종혁으로선 이래저래 골치가 아파야 했다.
그런데 풀코스로 요리를 끝마쳐 버렸다.
“대체 김 과장이 뭘 어떻게 가르친 거냐…….”
같은 형사로서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하하. 커피나 한잔 주십쇼.”
“……아, 진짜 자존심 상하네. 따라와.”
탕비실로 종혁을 끌고 간 광수대 대장은 믹스커피를 타서 넘겨줬다.
“캬. 죽이네요. 역시 연륜은 무시 못하나 봅니다.”
“지금 멕이냐? 아오, 이제 이것도 팀장이라고 함부로 쿠사리를 줄 수도 없고. 진짜 경찰 좋-아졌다!”
“흐흐흐. 사랑합니다.”
“시끄러워. 어떡할까. 넘겨줘?”
종혁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인마 너한테 얻어먹은 게 있는 데 저놈 하나 못 넘겨주겠냐.”
“어…… 감사한데 됐습니다. 그냥 상습 도박으로 엮어서 처넣으세요.”
그런 처참한 광경을 만들었으면서도 도박 따위나 한 놈이다.
역지사지. 갇혀 있던 개들의 입장이 되어 볼 필요가 있었다.
“쯧. 요거 안 먹히네.”
‘어딜.’
이 기회를 빌어 빚 하나를 탕감해 보려는 듯했지만 어림없었다. 이미 오만득은 요리가 끝났으니까.
“그럼 전 이만 마무리하러 가겠습니다.”
“어후으!”
실실 웃으며 돌아선 종혁은 이내 낯빛을 굳히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절망을 한 건지 아까와 자세가 많이 달라져 있던 오만득이 두 눈에 의문을 품으며 종혁을 봤다.
“마지막 기회를 줄게. 말해 주면 술 사 준다. 안주도 시켜 줄게.”
아마 오늘 마시는 술이 앞으로 3년간 마실 수 있는 마지막 술이 될 거다.
“수, 술?!”
종혁은 그의 맞은편에 서며 눈을 빛냈다.
“어떡할래? 나 이대로 나갈까? 아니면 앉을까?”
“수, 술은 얼마나…….”
“한 병. 순순히 협조했으면 세 병까지 주려고 했는데, 이젠 괘씸해서 안 돼.”
“아…….”
“이거라도 먹기 싫으면 관두고.”
“마, 말할게!”
“그래요. 이렇게 협조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우리 시작해 볼까요? 흰둥이 어떻게 했습니까?”
“팔았어.”
“팔았다고요? 설마 개 농장에 팔았습니까?”
“아니, 투견으로 팔았는데?”
쿵!
‘여기서 투견이 튀어나온다고?’
순간 촉이 선 종혁은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어 몽타주들을 보여 줬다.
“그거 설마 이놈들 중에 있습니까?”
“어?”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대답을 들은 종혁은 이마를 잡았다.
“너흰 또 왜 엮이고 지랄이냐.”
참 빌어먹을 우연이었다.
* * *
“후, 협조 감사합니다.”
겨우 소주 한 병으로 큰 소득을 얻었다.
“그, 그럼 술은?”
“안주는 뭐 사다 드릴까요?”
“……양평 해장국도 되나?”
술에 술국. 참 알콜 중독자다운 레퍼토리다.
“약속이니까 사다 드릴게요. 수고하셨습니다.”
“빠, 빨리 갔다 와!”
몸을 일으키던 종혁은 아차 했다.
“그런데 댁에 있는 개들은 어떡하실 겁니까. 거의 다 죽기 직전이던데. 이미 죽은 애들도 있고. 만득 씨 찾으려고 댁에 다녀왔거든. 이렇게 협조해 줬으니까 내가 대신 처리해 줄까요?”
“그러든가! 그 개새끼들 걱정보다 술부터 얼른!”
“예에. 알겠습니다. 술독에 빠져 뒤지세요.”
코웃음을 치며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표정이 싸늘하게 식은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주인 허락 떨어졌다. 애들 옮겨.”
-예!
전화를 끊은 최재수는 다급히 뒤를 돌아봤다.
오만득의 집 대문 입구, 녹색 조끼를 입고 있는 동물보호단체 사람들과 하얀 가운을 입은 수의사들, 사설 구급차까지 오직 그만 노려보고 있다.
“허락 떨어졌습니다! 옮겨도 된답니다!”
“그렇지!”
“좋았어!”
우르르르!
다급히 문을 연 사람들은 오만득의 집 안으로 밀려 들어갔고, 곧 구출 작전이 시작됐다.
“깨앵! 깽!”
자신들을 살리려는지도 모르고 살려 달라 짖는 개들.
“씨발! 의료품 있는 대로 가져와!”
“여기선 안 돼! 일단 병원으로 옮겨!”
최재수는 이를 악물었다.
“오만득, 이 씹새끼…….”
최재수는 부디 종혁이 법의 엄중한 철퇴를 내렸기를 기도해 보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동물병원을 찾은 종혁은 개들이 입원한 곳으로 안내됐다.
“멍멍!”
“왈왈!”
낯선이가 등장을 하자 맹렬하게 짖기 시작하는 개들.
종혁은 그보다 더 안쪽으로 안내됐다.
“여기가 집중치료실입니다.”
“……동물도 집중치료실이란 게 있나 보네요.”
“동물도 엄연한 생명인걸요.”
마치 혼을 내는 듯한 말투에 종혁은 잠시 반성을 했고, 그런 종혁의 모습에 의사는 푸근히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은 일 하신 겁니다.”
“그냥 눈에 밟혔기에 구한 것뿐입니다.”
그뿐이다. 말도 못하는 짐승이 살려 달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어서 구한 것뿐이다.
“그게 대단한 거죠.”
쥐꼬리만 한 월급의 대명사인 공무원.
그것도 이렇게 젊은 사람이면 아마 이제 겨우 순경이나 됐을 거다. 그런데 사비를 털어 자비를 베풀었다.
‘역시 경찰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건가?’
솔직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던 경찰.
의사는 역시 편견이었다며 자신의 좁았던 시야를 반성했다.
“개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보다시피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역시 위험했나요?”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구출 작전에 참여했던 최재수는 고작 위험한 수준이 아니었다며 이를 갈았고,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장 심각한 건 아무래도 영양실조와 탈수였죠. 위험한 기생충도 발견됐고요. 그래도 지금은 다 치료가 됐습니다. 한번 만져 보실래요?”
“아니…….”
“한번 만져 보세요.”
의사가 종혁의 손을 잡고 블록처럼 쌓인 집중치료실로 다가가자 케이스 안에 있던 개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친다.
마치 자신을 살려 준 사람이라는 걸 아는 듯 짖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눈빛이, 선하게 빛나는 그 검은 눈망울이 종혁에겐 왜인지 낯설지가 않다.
달칵!
“너무 급하게 넣진 마시고, 조심스럽게. 애들이 아직 겁에 질려 있으니…….”
의사는 입을 다물었다.
개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안으로 뻗어진 종혁의 손을 향해 얼굴을 가져다 댔기 때문이다.
분명 겁에 질려 있을 시기임에도, 그런 일을 당했기에 인간에게 공포를 느껴야 함에도 먼저 스스로 다가오고 있었다.
“애들이…… 너무 착하네요.”
울컥한 의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의사의 말에 종혁은 깨닫는 게 있었다. 이제야 낯설지 않은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어린아이의 눈…….’
얼마 전 만난 솜이, 희설, 영우처럼 선한 눈이다.
삶이란 굴곡의 흔적이 새겨지는 어른과 달리 증오도 슬픔도 피로도 없는 맑은 눈.
그래서 마치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이래서 강아지를 보고 어린아이의 친구, 아니 반려견이라고 하는 건가?’
묘한 감정이 가슴에서 몽실 피어난다.
찌르르!
온기에 집중하던 손바닥을 핥는 축축한 혀에 갑자기 전류가 온몸을 관통한다.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개를 응시했다.
‘요놈 봐라? 너 지금 고맙다고 한 거냐?’
왜인지 그렇게 느껴진다.
분명 말을 못하는 짐승인데,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솔직히 종혁은 동물에 대해 애견인처럼 남다른 감정이 없었다.
개장수 집에 들어가는 걸 꺼려 한 것은 그저 그런 처참한 모습이, 인간으로서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이 보기 싫고 그런 모습을 태연하게 만드는 인간 말종들을 패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다른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할 뿐이었다.
어쩌면 성격이 이래 처먹어서 더 크게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눈에 보였고 밟히기에 구했을 뿐이다.
능력이 되니 결정을 내리는 것도 쉬웠다.
그런데…….
“너희 좀 크게 밟힌다?”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흠. 나도 개나 키워 볼까?”
“전 쟤들 중 한 마리를 입양할 겁니다.”
“어? 정말? 너희 집은 이미 개 키우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도 너무 불쌍하잖아요. 한 마리 정도는 괜찮아요.”
그 이상은 힘들지만 말이다.
개들의 할짝임에 정복을 당한 최재수와 오택수의 대화에 종혁도 갈등이 생긴다.
‘흠. 나도 한 마리 입양할까? 엄마가 좋아하려나?’
이미 강아지 같은 놈들이 둘이나 있기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이, 팀장.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구하러 가야죠. ……구하러 갑시다.”
흰둥이뿐만 아니라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다른 개들도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종혁은 다시 헛웃음을 터트렸다.
‘동물을 구하기 위해 돈을 쓴다라…….’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뭔가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좀 써 보지, 뭐.”
외유한다고 생각하면 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