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43화 (24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43화>

69. 어린아이의 친구

휘이이잉!

새하얀 눈보라가 몰아치는 고속도로 위.

다른 차들처럼 종혁이 운전을 하는 차도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저 푸른 바다 끝까지 말을 달리며…….

삑!

-사랑했나 봐. 잊을 수 없나 봐!

삑!

-살다가! 살다가!

“에잇! 노래들이 다 왜이래? 트로트나 뽕짝 없어?”

CD플레이어의 버튼을 꾹꾹 누르던 최기룡이 버럭 하자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아니, 출발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무신 분이 노래 가지고 트집을 잡으신다고요?”

“아, 그래. 내가 이제 경찰청장이 아니라는 거지?”

“말이 또 왜 그렇게 되는데요?”

“몰라, 이 자식아.”

나 삐졌어 하는 그의 모습에 종혁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에휴. 이번 명절엔 또 뭔 소리를 들으셨기에.’

경찰청장직에서 물러나 백수가 되면서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확 떨어진 최기룡. 종혁은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원래 이런 노래를 알아야 손주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는 겁니다.”

“……그래?”

“돌아가는 대로 정리해서 보내 드릴게요.”

“역시 내 마음은 종혁이 네가 제일 잘 알아주는구나. 에휴.”

‘손자손녀 대화에 끼시려다가 사모님에게 한 소리 들으셨구만?’

아무래도 그랬을 확률이 제일 크다.

“아, 이번 대상 렌트카 게이트가 네 작품이라면서?”

“아직까지 라인이 살아 계시네요.”

“물러난 지 이제 1년도 안 됐다, 이 자식아!”

“흐흐.”

“쯧. 아무튼 그러면 요새 눈치 좀 보겠네?”

“뭐,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죠.”

대상 렌트카를 박살 내며, 동시에 그곳과 함께 얽혀 있던 대한민국 3대 언론사 중 한 곳의 턱주가리를 돌려 버렸다.

이에 그 언론사의 기자들이 전부 눈에 불을 켜고 특별수사팀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창설 이유가 드러나면 안 되는 특별수사팀이기에 사소한 행동 하나라도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 잠시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겨울 낚시는 안 갑니다. 겨울에 낚시하다가 얼어 죽어요.”

“안…… 돼?”

“……에휴. 알았어요. 바다 쪽에 좌대 낚시로 한번 알아볼게요. 웬만하면 내일 할 수 있도록요.”

간절한 눈빛을 보자니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다.

‘일평생을 범인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던 양반인데 퇴직 후에 얼마나 좀이 쑤셨을까.’

거기다 올 설날은 토요일부터 시작된 명절이라서 이 기회에 푹 쉬자며 수요일까지 휴가를 신청해 놨기에 시간도 넉넉했다.

“크. 역시 종혁이 너뿐이다.”

“아주 이럴 때만 찾지. 아, 그런데 이 폭설에도 종가에 모이긴 하네요?”

고립이 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눈이 내리고 있다.

“어쩌겠냐. 아직까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원하시는데……. 이러다 자빠져서 병원에 누워 봐야 아, 이런 날엔 모이면 안 되는구나 할 텐데.”

‘동감입니다.’

어르신들 일이라 차마 입에 담지 못한 채 입맛만 다시던 종혁은 창밖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어? 해 뜬다.”

“뭐? 어디?”

앞 유리창 밖에 가득 껴 있던 잿빛구름들이 물러나며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한다. 마치 그들의 명절 귀성을 축하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에 힘입어 달려 도착한 종혁은 트렁크에서 온갖 선물들을 꺼내며 종가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님! 저 왔습니다-!”

“오! 우리 최 경감!”

“아저씨!”

종혁은 반기는 사람들 뒤편 저 멀리서 지팡이를 짚으며 다가오는 할머니를 보며 활짝 웃었다.

*   *   *

“어이구, 됐어요. 더 넣을 자리도 없어요.”

“다음엔 더 큰 차로 몰고 와. 알았지?”

“예. 그럴게요.”

“다 연락해서 중고차 꼭 알아보고 사라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 말고.”

“추워요. 어서 들어가세요.”

아쉬움을 가득 담아 손을 젓는 할머님을 뒤로하며 차에 오른 종혁과 최기룡은 종가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며 백미러로 뒤를 본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건강검진은 받으셨으려나.”

보일러는 제대로 돌아가는지, 외투는 좋은 걸 입으시는지, 영양제는 드시는지 할머님 낯빛이 작년보다 좋지가 않다 보니 많은 게 걱정되고 거슬린다.

“어쩌겠냐. 종부님 연세가 연세신데.”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것 같은 최기룡의 모습에 종혁의 가슴은 더 무거워졌다.

“아무튼! 오늘 아주 배 터지게 먹겠네!”

할머님이 이번에도 이것저것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 주셨다.

최기룡은 그걸 말하고 있었다.

“아니 낚시를 하자는 거예요, 캠핑을 즐기자는 거예요?”

“둘 다, 이 자식아!”

틱!

-따, 따라라라! 아, 당신은 못 믿을 사람.

“고렇치! 이게 노래지!”

‘예, 예.’

종혁은 고개를 저으며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은 도로를 조심스럽게 달렸다.

바다에 가기 위해 국도로 접어든 그들.

고속도로보다 통행량도 적고 일조량도 적어서 그런지 아직도 눈에 뒤덮인 국도를 거북이처럼 달리다 보니 늦은 아침에 출발했음에도 벌써 해가 지고 있다.

“휴가 내고 오길 잘했네.”

“끙. 미안하다니까.”

최기룡이라고 이렇게 눈이 녹지 않았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오늘 밤낚시 하고 내일은 무조건 올라올 겁니다.”

“그래, 그래. 내가 죄인이다.”

다시 한번 사과를 듣고 나서야 짜증이 풀린 종혁은 저 멀리 표지판을 보곤 눈을 번뜩였다.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하고 가실래요? 물도 뺄 겸.”

“좋지!”

종혁은 얼른 휴게소 안으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휴게소에 진입한 순간 종혁과 최기룡은 동시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응? 웬 차들이 이렇게 많지?”

“그러게요?”

고속도로의 휴게소도 아니고, 국도의 허름한 휴게소에 20여 대에 가까운 차들이 세워져 있다. 주차장이 넓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이대로 차를 돌려 나갈 뻔했다.

‘날이 이러니 모이게 된 건가?’

그럴 확률이 있긴 하다.

그런데 거슬리는 점은 이렇게 차들이 뭉쳐 있는 모습이 둘에게는 썩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뭐지?’

하지만 도통 떠오르지가 않아 고개만 갸웃거리던 그들은 결국 주차를 한 채 차에서 내렸다.

탁! 타악!

“끄으으!”

멀리서 불어온 한겨울 차가운 바람이 오랜 운전에 지친 그들의 심신을 달래 주었다.

“아우, 죽겠네. 아, 화장실이 저쪽에 있네요.”

“어우우. 그래, 얼른 가자.”

둘은 잰걸음으로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시원하게 볼일을 마친 둘은 휴게소 매점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캔커피를 계산한 후 매점 내부를 스윽 훑어봤다.

“방금 저놈의 새끼들 우리 경계했지?”

화장실을 가고, 매점에 들어올 때까지 뒤통수에 시선이 따라붙었다.

“예. 총 두 놈이요.”

휴게소 입구 쪽에 세워져 있던 차량에 한 놈, 뭉쳐 주차된 차들 중 한 놈.

“그런데 그 두 놈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눈치였어요.”

정확히는 총 7개의 무리와 주변인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차 안에 틀어박혀 라디오를 켜 놓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서로 어울려 커피를 홀짝였다.

“……바지선에 낚시 가는 양반들인가?”

조금만 더 가면 바다다.

그럴 확률이 높았다.

“아무래도…….”

딸랑 종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에 둘은 입을 다물었고, 그런 그들을 향해 한 오십대 남성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배 타러 가시는 분들입니까? 그럼 얼른 마시고 나와요. 곧 출발합니다.”

둘은 그제야 안심하며 손을 저었다.

“아뇨, 아뇨. 저희는 좌대 낚시를 예약해서요.”

“아, 그래요? 그럼 어신 낚으십쇼.”

“하하, 옙! 수고하세요!”

장년인이 안쪽으로 들어가자 서로를 본 종혁과 최기룡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차로 향했다.

부르릉!

시동이 걸린 차는 곧 다시 어둠에 잠긴 도로를 향해 출발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계속 고개를 모로 기울이던 종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희한하네. 왜 짐승 누린내가 났지?”

방금 전 장년인이 풍기던 짙은 생선 비린내.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던 그 냄새 속에 짐승 누린내가 있었다.

“짐승 누린내?”

“예. 꼭 평생 안 씻긴 개 냄새…… 투견 도박! 씨발!”

종혁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최기룡도 얼굴을 와락 구겼다.

왜 익숙한 모습인가 싶었다.

원래부터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외곽 도로 휴게소에서 상황을 살피다 은밀한 장소로 향하는 투견 도박꾼들.

최기룡은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 난데! 지금 내가 불러 주는 주소 근처 관할서에 협조 요청해서 경찰 병력 출발시킬 준비 좀 해 줘! 개놀음 하는 새끼들 꼬리 잡았으니까!”

불법 하우스도박보다 더 은밀하게 도박을 해서 꼬리조차 잡기 힘든 투견 도박꾼들.

이놈들은 회귀 전 종혁조차도 겨우 한 패거리만 검거했을 정도로 은밀하고 치밀한 놈들이다.

종혁은 위험을 감수하며 속도를 높였다.

부아아앙!

그렇게 40분 뒤 다시 도착한 휴게소.

“……씨발.”

“담배 줘 봐.”

휘이잉!

사람 그림자는커녕 찬바람만 몰아치는 휴게소에 둘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놓친 건 아니다.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의 최종혁 경감입니다. 어휴, 명절인데도 수고하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차량 소유주 좀 확인하고 싶어서 연락드렸는데요.”

종혁은 방금 전 외운 차량 번호들을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차량 번호나 몽타주 더 딸 수 있나 CCTV부터 확인하죠.”

“……에이, 씨부랄. 낚시는 공쳤네.”

공치다 뿐일까.

이대로 근처 관할 경찰서에 가서 몽타주부터 작성해야 됐다. 한두 장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날을 새야 할 듯싶었다.

“하아. 확인하기 전에 라면이나 먹자. 배고프다.”

“……할머님이 싸 준 음식들 꺼내 올게요.”

“그 생전복이나 굴 같은 것들도 꺼내 와. 같이 끓여 달라고 하게.”

가족들과 함께 먹으라고 할머님이 챙겨 주신 완도산 전복과 통영 굴, 자연산 홍합 등 해산물들.

낚시를 못하게 되어 쓰린 속, 이걸로 달래야 할 듯싶었다.

“하. 이런 건 술이랑 먹어야 하는데.”

“몽타주 따야 하잖아요.”

“아, 진짜 욕 나오네!”

그들은 툴툴거리며 불이 꺼지려는 휴게소 매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개운하지 않은 휴가를 마친 종혁은 본청으로 복귀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부팀장…… 아니, 팀장님!”

오늘도 시끌시끌한 본청 로비.

종혁을 발견한 옛 부서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팀원이 종혁을 발견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온다.

“오, 이게 누구야? 명절 휴가는 잘 다녀왔어?”

“……해남 땅끝이 시골이라서 이틀을 고속도로에서 보냈습니다. 하, 진짜 팀장님이 계셨으면…….”

아마 명절 휴가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큭큭. 수고했다. 그럼 출근 잘하고. 언제 날 잡아서 알려 줘. 한잔해야지?”

“……넵!”

옛 팀원의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돌아서며 아는 사람을 향해 인사를 했고, 옛 팀원은 그 밝은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그렇게 지하 사무실로 내려온 종혁은 손을 들며 크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충성!”

“오, 1팀장. 휴가 잘 보냈어?”

“에휴. 잘 보내긴요. 투견하는 놈들 꼬리 잡았다가 놓치면서 휴가 다 날렸어요.”

“에엥?”

“그런 게 있습니다. 오 경감님은 좀 어땠어요?”

“이번 명절은 어디 가지도 못하고 방콕 했지. 돈이 있어야지…….”

종혁은 20억을 말했지만, 소시민인 오택수는 그 돈을 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숨겨 둔 비상금을 모두 꼬라박았는데, 그 결과 명절에 부모님이나 장인장모께 아내 몰래 드릴 용돈은커녕 애들 줄 세뱃돈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애들 줄 세뱃돈이야 꼬불쳐 둔 상여금으로 어찌어찌 해결했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당분간 군것질은커녕 술도 꿈을 못 꾸게 됐다.

중고차 사건이 터지기 전 촬영장을 모두 돌았을 때처럼 말이다.

이번엔 정말 폭설이 내려 겨우 면피를 하게 된 상황이었다.

“정말 괜찮지? 믿어도 되는 거지?”

“걱정 마세요. 그 돈, 이자 톡톡히 얹어서 돌려받을 테니까. 힘드시면 지금이라도 돌려 드릴 수도 있고요.”

조희구는 지금 건드릴 시기가 아니다.

지금보다 사기 액수가 더 커졌을 때, 아랫돌을 빼내어 윗돌을 괴는 것도 한계에 다다라서 도주를 하려고 할 때, 그때 단번에 몰아쳐야 한다.

그래서 놈들의 조직에 큰 타격을 입혀야 한다.

“아, 그건 아니고……. 후, 미안하다. 내가 그렇게 큰돈은 집 살 때 말고 써 본 적이 없어서 그래.”

“아니요. 그럴 수 있죠. 언제든 부담되시면 말해 주세요.”

“……그래. 그럴 일은 없겠지만.”

오택수는 이제 그 비상금을 없는 돈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그의 표정 변화에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최재수를 봤다.

무슨 일인지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최재수.

종혁은 최재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택수를 봤다.

“소개팅 망했대.”

“푸핫!”

“웃지 마십쇼!”

“켈록켈록. 그래, 다른 좋은 여자가 있을 거야. 최 경장, 파이팅.”

“……진짜 때리고 싶다.”

특별수사팀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얼굴이 시뻘개졌던 최재수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컴퓨터를 켜는 종혁에게 다가갔다.

“이번 주에 시간 되십니까?”

“주말? 글쎄. 주말엔 잠깐 어디 가야 하는데…… 무슨 일인데?”

“그, 그게…… 꾸미는 법 좀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굳이 비싼 명품을 입지 않아도 귀티가 나는 종혁. 최재수 주위에서 옷을 제일 잘 입는 사람은 종혁이었다.

‘내가 까인 건 옷을 못 입어서야!’

이만하면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큰데 애프터를 거절당했다. 이건 입고 나갔던 옷이 구렸던 것이다.

“저녁 사겠습니다!”

종혁은 간절한 그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오케이. 알았어.”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누굴 만나시는 겁니까?”

“옛날에 내가 담당했던 사건의 피해자. 늦은 산타라도 되어 보려고.”

‘그것뿐만은 아니지만.’

순간 두 눈에 서늘한 냉기가 퍼진 종혁은 손을 젓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수고하십니다. 특별수사 1팀의 최종혁 경감입니다. 사이트에 도박 신고 들어온 거 있으면 정리해서 보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종혁은 위기관리센터에도 전화를 했고, 종혁이 뭔가 냄새를 맡은 것 같자 오택수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다시 사건이었다.

*   *   *

아이들이 사는 집인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40평대의 아파트.

거실에서 배를 내놓은 채 고롱고롱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는 젊은 엄마의 눈에서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그때였다.

띵동!

아이들을 깨울 수 있는 초인종 소리지만, 젊은 엄마는 기다렸던 건지 재빨리 달려 나간다.

벌컥!

“형사님!”

활짝 피는 그녀의 미소에 종혁이 잠시 멍해진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네, 네? 호호호!”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아, 이쪽은 저와 한 팀인 최재수 경장입니다.”

퍼억!

옆구리를 얻어맞은 최재수는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추, 충성!”

“호호. 아,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빈손으로 오기 그래서 대충 집어 왔습니다.”

“이, 이러지 않으셔도…… 어머?”

그녀도 말로만 들었던 스웨덴 고급 화장품과 인형놀이 세트, 곰인형, 변신로봇 세트와 조립 장난감이다.

그녀는 토끼 모양, 로보트 모양의 목걸이를 보고 가장 놀랐다.

“형사님도 이걸 아세요?”

잡아당기면 방범벨이 크게 울리고, 버튼을 누르면 녹음도 되는지라 아이 엄마라면 필수적으로 구하는 제품이다.

“형산데 잘 알아야죠. 이건 여기 인형 눈을 통해 녹화도 되는 거예요.”

“저, 정말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남편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죽을 뻔했던 이희선.

그녀에게 있어 종혁은 평생 은혜를 갚아도 갚을 수가 없는 은인이었다.

종혁은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지나쳐 거실로 들어왔다가 배를 내놓은 채 잠든 두 아이를 발견하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영우와 희설이도 많이 컸네요.”

하마터면 엄마를 죽인 아버지에게 죽을 뻔했던 영우와 희설. 종혁이 4학년 때 해결한 아내 독살미수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이희선, 정영우, 정희설.

그때 그 밤톨처럼 작고 귀엽던 꼬맹이들이 어느새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될 정도로 커 있었다.

“벌써 햇수로 4년째인걸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요. 아, 잘 마시겠습니다.”

종혁은 그녀가 준 음료수를 홀짝이며 집 안을 둘러봤다.

“집이 좋네요.”

“호호. 모두 형사님 덕분이죠.”

종혁이 알려 준 자산운용사 권&박 홀딩스.

거기서 찍어 준 아파트다. 평수가 넓을수록 좋다고 해서 약간 무리를 해 구입했는데 집값이 벌써 2.5배나 뛰었다.

상가 건물은 또 어떤가. 거기도 2배나 뛰었다.

덕분에 그녀는 직장이 없어도 돈 걱정 없이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한편, 아이들 정서 발달을 위해 비즈공예나 인형 만들기 등 자격증 준비도 하고 있었다.

종혁은 그렇게 말한 그녀가 가져온 작품들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팔아도 되겠는데요?”

“에이, 아니에요.”

종혁은 발개진 얼굴로 손을 젓는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푸근히 웃은 종혁은 그녀와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도중에 일어난 영우, 희설에 약간 시달려야 했다.

애들 체력은 무한이었다.

그러다 시간을 확인한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버, 벌써요?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약속이 있어서요.”

종혁은 가지 말라는 듯 허벅지에 매달려 있는 희설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희선을 봤다.

“잘하고 계십니다, 희선 씨.”

“……흑!”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 남편만 바라보고 살다가 남편에게 큰 배신을 당하며 세상에 맨몸으로 던져진 그녀.

영우와 희설이 남편의 자식이기도 하기에 못된 마음을 먹을 수도 있건만,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지키는 그녀의 숭고한 모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정도면 잘하다 못해 훌륭한 거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시되, 이제부턴 저란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잊으면서 사세요. 아픈 기억은 꺼내지 말아야죠.”

“형사님!”

“그럼.”

고개를 숙인 종혁은 돌아섰고, 결국 그녀는 양손에 얼굴을 묻으며 무너졌다.

최재수는 울상이 된 아이들에게 둘러싸이는 그녀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다 종혁을 따라나섰다.

저벅저벅!

“……감사합니다. 가르쳐 주셔서.”

사건을 해결한다고 끝이 아니다. 피해자가 잘 살아가는지도 지켜보는 것도 형사의 일이다. 종혁은 오늘 그걸 가르쳐 준 것이다.

종혁은 그런 최재수의 말에 살짝 놀랐다가 이내 등을 두드렸다.

“그래. 너도 잘하고 있어, 최 경장.”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싶다. 형사가 조급하면 봐야 할 것도 놓치기에.

울컥!

“예!”

순간 뜨거워지는 눈을 비빈 최재수는 종혁의 뒤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아파트 밖에 차를 세워 두셨습니까?”

“애 딸린 미망인에게 외간 남자가 찾아가는 건 썩 좋지 않거든.”

특히 사람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선 그런 소문이 더 잘 퍼진다.

이희선도 그렇겠지만, 영우와 희설에게도 좋지 못하다.

그리고…….

“최 경장, 빨리 따라와!”

자그마한 팬시점으로 들어가는 오십대 남성과 7세 정도의 여자아이.

그 둘을 발견한 종혁은 이를 악문 채 뛰기 시작했다.

저것이었다. 종혁이 오늘 이곳을 찾은 또 다른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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