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40화 (240/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40화>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커피를 홀짝이며 고개를 돌렸던 박영일은 얼른 손을 들었다.

    “여! 종혁아!”

    “이야. 오랜만입니다, 박 부장님.”

    1997년 일진들 때문에 알게 되어 지금까지 계속 인연을 이어 오는 박영일 기자. 아니, 이제는 사회부 박영일 부장이다.

    그땐 검은색으로만 가득했던 그의 머리도 어느새 하얀 새치가 연륜의 멋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큭큭. 좌천됐다며?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거 빨대 무자게 꽂아 두셨네.”

    “본청에 출입하는 후배 기자에게 들은 거야, 짜샤. 그래서?”

    웃던 박영일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는다.

    “어떻게 된 거야?”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이라는 핵심 부서의 창설 멤버이자, 선장 대리였던 종혁이다.

    이제 승승장구만 남았는데 난데없이 지하로 좌천이 됐다.

    개인적인 친분을 뒤로하더라도 박영일 본인이 사회부 부장이 되는데 지대한 공언을 한 종혁.

    일진 사태부터 시작해 탈옥수 한상원 검거, 최근엔 장애아 특수학교 설립까지 하나하나가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특종 소스를 던져 준 종혁이 좌천을 당했는데 당연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여기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아,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저 아직 순환 보직 기간이잖아요.”

    “야, 아무리 그래도!”

    “올림픽 금메달로 국방의 의무를 씹은 것도 모자라 저를 좋게 봐주신 고위 간부님들 덕분에 수사팀이나 마케팅 팀에 있었어요.”

    원래 경찰대학교를 졸업한 간부 후보 생도는 전의경 부중대장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한 다음 2년 6개월 동안 지방서를 돌며 총 3곳의 부서에서 순환 보직 근무를 해야 된다.

    종혁은 그걸 씹은 것도 모자라 본청에 픽업됐고, 그 기간 내에 승진까지 했다.

    “……어휴, 이 미련한 놈아.”

    수사를 할 때나 경찰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땐 그렇게 독하고 영특한 놈이 왜 이럴 때만 순해 빠졌는지 모르겠다.

    종혁은 그런 그의 반응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박영일 부장에게 말할 수 없는 조직내 사정이거니와 대놓고 이용을 하는 것보다는 이게 나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야?”

    종혁은 대답보다 먼저 가져온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들었다.

    “어제 간편 신고 사이트가 오픈된 거 아시죠?”

    “내가 그걸 모를까. 우리도 너희 홍보 쪽 소스를 기다리는 중인데…… 그럼 설마 이게?”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하루 동안 간편 신고 사이트에 접수된 사건이 무려 7천여 건. 그중…….”

    종혁은 그제야 서류의 제목을 보여 주었다.

    “차팔이에게 피해를 당한 사건이 총 397건입니다.”

    “야, 그거?!”

    엉덩이를 들썩인 박영일의 낯빛이 흐려진다.

    당장 얼마 전 언론이 이 문제를 가지고 경찰을 후려치지 않았던가. 박영일 부장 본인도 승인을 한 기사라 모를 수가 없다.

    “후우. 종혁아, 내가 너 때문에라도 웬만하면 경찰에 대해 안 좋은 기사를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삼촌, 아니 박영일 부장님.”

    이번엔 종혁의 표정이 굳는다.

    “전 그런 거 바란 적 없어요.”

    잘못을 했으면 경찰, 아니 경찰 할아비라도 법의 심판과 언론의 질타를 받아야 한다.

    그게 아니면 독재일 뿐이다.

    “독재는 박영일 부장님도 겪었잖아요. 때리세요. 그래서 경찰이 올바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때리세요.”

    이런 종혁의 말에 박영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 너란 놈은 진짜…….”

    왜 이렇게 정직한지 모르겠다.

    폭주를 하더라도 그 대상이 범죄와 범죄자에 국한된 종혁.

    더 미안해진 박영일 부장은 마른세수를 했다.

    “하하.”

    “정정 기사 쓰마. 미안하다.”

    “아뇨.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라니까요? 언론에 왜 그랬냐고 푸념하자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팩트만 알리자는 겁니다.”

    “팩트?”

    ‘뭔가 숨겨져 있다?’

    그제야 종혁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은 박영일 부장은 자세를 바로 했다.

    “총 397건. 이것도 수사가 종결이 난 사건을 제외한 숫자입니다.”

    억울하다며 성토한 것까지 모두 합하면 500건이 넘는다.

    이에 박영일 기자는 눈을 부릅떴다.

    “한 종류 범죄가 전체 신고 비율에서 5퍼센트나 차지한다고?”

    “피해액은 대략 23억 원 정도고요.”

    차팔이가 중간에 남겨 먹는 마진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강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게 된 자동차값까지 포함된 액수다.

    “근데 이건 어제 하루에 접수된 사건의 피해액일 뿐이에요. 아마 보름 정도만 지나도 피해액이 백억을 넘을 겁니다.

    “미친…….”

    컴퓨터를 싸게 사고 싶어도 용산엔 가지 마라.

    차를 싸게 사고 싶어도 매매 단지에는 가지 마라.

    중고차 사기 피해가 크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클 거라곤 예상 못한 박영일은 담배를 찾았다.

    ‘이건 내 예상을 훨씬 벗어난…….’

    특종이다.

    그렇지 않아도 왜 차팔이를 옹호하냐는 댓글들이 많았는데, 그걸 뒤집을 만한 특급 소스다.

    종혁은 박영일의 표정이 변하자 서류를 톡톡 치며 쐐기를 박았다.

    “참고로 사이트에 처음으로 접수된 사건도 바로 이 중고차 매매 사기입니다. 아니, 협박에 의한 강매죠. 지금 홍보쪽에 부탁해서 스테이한 상황이고요. 아시죠? 뭐든 처음이 가장 주목받는 거.”

    “그런데 왜…… 아.”

    박영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종혁은 언론에 기회를 주는 거다.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말이다.

    “……후. 좋아.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 시간이 길진 않을 거잖아.”

    원하는 말이 나오자 종혁은 꿈틀거리는 입술을 쓸어내렸다.

    “기획으로 가시죠. 방송국까지 껴서.”

    쿵!

    박영일 부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PD수첩으로 가자고?”

    “일단 오늘 9시 뉴스로 먼저 때리는 게 낫지 않겠어요? 삼촌 말처럼 스테이를 오래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요.”

    “으음…….”

    시간을 확인한 박영일은 미간을 좁혔다.

    ‘현재 시각이 9시니까…… 편집까지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긴 하지만 되긴 될 것 같다.

    견적을 낸 박영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러자. 각 언론사나 방송국들도 이 피해 사실에 관한 인터뷰 내용을 픽스해 놓은 게 있을 거야.”

    때를 기다리며 말이다.

    ‘됐어!’

    종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언론에 맞아 인사이동을 당했다. 결국 좋은 일이었다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선동에는 선동이다.

    이게 종혁이 생각한 명분 쌓기였다.

    ‘근데 내껀 좀 더 아플 거야.’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아, 참고로 얼마 전에 어떤 미친 경찰이 중고차 매매 단지를 차로 밀어 버렸다는 거 있잖아요? 그거 저예요.”

    “뭐 인마?! 야, 그럼……!”

    “친구가 강매를 당해서요! 사랑합니다!”

    속여도 다 속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기만을 하는 것밖에 안 되니까.

    ‘상호야, 일단 작은 엿 들어간다.’

    *   *   *

    우리는 선량한 피해자다?

    PD수첩. 백만 원짜리 차가 2백만 원으로 둔갑하는 마법!

    상인이 아니라 도둑?

    강매로 판 중고차. 중고차 매매 단지는 사기꾼의 집합소!

    -얼마 전 경찰의 무자비한 행각에 중고차 상인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를 기억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게 거짓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때가 됐군.’

    박영일 부장을 만난 이후 언론이 중고차팔이를 때리면서 신고 내역이 몇 배나 더 쌓였다.

    여기에 언론까지 이렇게 때려 대며 그들을 마녀로 몰아붙이니 명분도 다 쌓였다고 봐야 했다.

    삑!

    종혁은 고작 며칠 사이에 모던하고 중후하게 변한 사무실의 책상에 앉아 특별수사팀 사무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스크린 TV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형사들을 훑어봤다.

    고작 3명밖에 없는 1팀과 다르게 7명씩 꽉꽉 채운 2팀과 3팀.

    “2팀장님, 3팀장님. 잠깐 회의 좀 하시죠?”

    움찔!

    뭔가를 눈치챈 김판호와 윤선빈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구석의 흡연실로 향했다.

    “어떡하실래요.”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순간 그들의 몸이 들썩였다.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낯빛을 굳혔다.

    “참고로 하나 말하자면 두 분이 어떤 결정을 하시든 쟤들은 제가 땁니다. 이 판을 깐 게 저니까요.”

    흠칫!

    “믿든 안 믿든 상관없습니다.”

    ‘……아따. 이놈아 능력이 허벌나게 좋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좋아블 줄은 몰랐네잉.’

    지난 일주일 동안 언론에 PD수첩까지 중고차 상인들을 때렸다. 지금 중고차 상인들은 거의 도적 수준으로 취급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게 종혁이 만든 작품이다?

    그들은 순간 내달리는 전율에 머리털이 쭈뼛서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실적이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실적.

    깔끔하게 세팅까지 끝난 그걸 종혁이 나눠 주려는 게 중요했다.

    먹음직스럽다.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되겠어?”

    “그랴. 일이 이 지경이 됐는디 특수랑 광수대에서 가만있겠냐고.”

    특별수사팀은 이제 신설된 부서다.

    초반부터 이런 커다란 걸 상의 없이 삼키려 들다간 미움과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그분들도 갈 건데요?”

    “……응?”

    종혁은 피식 웃었다.

    “특수와 광수대, 전국 경찰, 하물며 중앙 지검까지 다 움직일 겁니다. 저거 저 혼자 다 못 삼켜요.”

    그 말에 단숨에 상황 파악을 끝낸 2팀장과 3팀장은 입술을 비틀었다.

    “허미. 이거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도 될까 모르겄네잉. 우리 1팀장, 아주 리더여. 참된 리더!”

    엄지를 치켜세운 2팀장 김판호는 흡연실문을 활짝 열며 크게 외쳤다.

    “야들아, 연장 챙겨라! 방금 그 후래질 새끼들 우리가 따야겄다!”

    “3팀도 연장 챙겨! 출장이다!”

    “우와악!”

    순간 뒤집어지는 사무실.

    종혁은 뛰쳐나간 2팀장과 3팀장을 따라나서며 담배를 물었다.

    그러다 멍해 있는 오택수와 최재수를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뭐해요? 안 가요?”

    “……옙!”

    콰자작!

    “이 씨발!”

    구긴 신문을 던져 버리다 못해 질근질근 밟았지만, F1 모터스의 신 사장은 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지난 일주일간 언론이 중고차 상인들을 개쓰레기로 만든 것도 모자라 오늘 아침 뉴스에선 정정 보도까지 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 주부터 급감한 매출이 더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다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왜 이렇게 안 받는 거야!”

    핸드폰을 소파에 던져 버린 그는 치미는 짜증을 해소하고나 담배를 물며 사무실을 나섰다.

    씨잉 불어온 겨울 찬바람이 뜨겁게 달아오른 그의 머리를 잠시 식혀 주었다.

    “큭큭. 신 사장, 신문 보고 나온 거야?”

    “지금 누굴 놀리…….”

    버럭 화를 내려던 신 사장은 김 사장의 발치에 널브러진 담배꽁초들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맞지. 그렇지. 김 사장도 나랑 같은 처지였지. 그 집은 좀 어때?”

    “한 달 동안 이러면 저 돼지 새끼 잘라야지. 그 집은?”

    “몰라. 내 집 돼지 새끼는 그날 인터뷰를 한 이후로 도망쳤어. 하여튼 이래서 깜빵 다녀온 놈은 쓰면 안 된다니까. 그보다 조 대표는 왜 연락이 안 돼?”

    “몰랐어? 조 대표 지금 배 위에 있잖아. 이번엔 아프리카 어디라고 하던데? 아, 지금은 비행기 타고 오는 중이려나?”

    “아…….”

    여러 나라에 중고차를 판매하는 조상호 대표.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하아. 근데 이거 우리는 괜찮은 거 맞지?”

    경찰이 지금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분위기다. 지금이라도 잠시 문을 닫아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조 대표가 그랬잖아. 아는 의원들 있으니까 수사가 들어와도 걱정 말라고. 그리고 우리도 나름 아는 사람들 많잖아.”

    “그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얼마 전 자신의 가게에서 깽판을 친 경찰이 마음에 걸린다.

    “거기다 그 경찰 놈, 한직으로 좌천됐다잖아. 그놈이 오길 하겠어, 뭘 하겠어? 걱정하지 마.”

    “……그렇겠지?”

    신 사장은 한숨을 내쉬며 가슴에 맺히는 불안을 쓸어내렸고, 김 사장은 그런 그를 보며 낄낄 웃었다.

    “하여튼 우리 중 돈을 제일 많이 버는 사람이 가슴은 새가슴…….”

    삐용삐용삐용!

    “어?”

    고개를 돌린 신사장과 김사장은 혀를 찼다. 매매 단지 안으로 경찰차 두 대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많이 후려쳤나 보네. 몸까지.”

    “쯧. 좀 적당히 하지.”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이기에 그들은 신경을 껐다. 그러면 안 됐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그들이 외면 속에서 멈춘 경찰차에서 내린 종혁은 확성기를 꺼내 들었다.

    삐이이이!

    순간 중고차 매매 단지를 꿰뚫는 소음.

    얼굴을 찌푸린 종혁은 확성기를 입에 가져갔다.

    -아, 아! 모두 자리 잡았죠?

    다시 사람들의 이목이 종혁에게 집중된다.

    사장도, 차팔이도, 손님도.

    그런 그들을 보며 종혁은 씩 웃었다.

    -그럼 시작합시다!

    뜻 모를 말에 차팔이들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 순간.

    “야들아, 시작하랍신다-!”

    “예-!”

    중고차 매매 단지를 우렁차게 울리는 대답들.

    “어, 손님. 지금 뭐…….”

    “뭐하겠냐! 으랏챠!”

    “이야압!”

    뻐억! 빠아악!

    손님이 갑자기 응대를 하던 직원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얻어맞은 직원은 나가떨어진다.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쿠엑!”

    “으악!”

    당황한 차팔이들이 소심한 반항을 하며 물러선다.

    “뭐, 뭐야! 왜 이러세요!”

    “뭐긴 뭐야, 짭새지.”

    “짜, 짭새? 이 씨발……!”

    오싹!

    ‘장부!’

    순간 파악을 마친 사장들은 이를 악물었다.

    웬만해선 카드 거래를 하지 않는 그들이다.

    현금 거래 내역이 담긴 장부와 이중장부. 그걸 걸리면 인생 종 치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 막아! 그놈들 막아-!”

    그렇게 외친 그들은 다급히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들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소란에 가게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다른 업체 사장들도 말이다.

    그에 당황하던 직원들도 이를 악물며 반격을 시작한다.

    “우와아아아아……!”

    “씨발! 제껴-!”

    혼란과 당황에 휩싸여 있던 중고차 매매 단지가 시끄러워진다.

    “씨발. 씨발!”

    다급히 사무실 이곳저곳에 숨겨 둔 장부를 찾아 든 신 사장은 슬그머니 바깥을 향해 발을 뗐다.

    그때였다.

    콰장창!

    “흐억?!”

    유리로 된 벽을 부수며 사무실을 덮친 옆집 김 사장네 직원.

    “아이고, 우리 사장님 착하시네. 그렇게 장부까지 다 모아 두시고. 우리 주려고 따로 챙기신 거죠? 에휴, 이러면 영장을 안 받을 걸 그랬나 봐요.”

    신 사장은 까득까득 유리 파편을 밟으며 들어오는 종혁을 멍하니 바라봤고, 종혁은 그를 향해 씩 웃으며 거수경례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전에 전화한 그 경찰 놈입니다.”

    “아…….”

    신 사장은 망연자실 주저앉았고,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상호야, 엿 들어갔다. 맛있니?’

    이들 중고차 상인들에게서 폐차 직전의 차를 구매한 후 해외에 되파는 조상호 대표.

    그런데 그 폐차 직전의 차들을 구할 길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이게 종혁이 생각한 일석이조의 방법이었다.

    중고차 상인들을 응징하면서 조상호도 엿을 먹이는 일석이조의 방법.

    ‘조상호랑 계약을 맺은 업체가 또 어디더라?’

    린치가 넘겨준 자료를 떠올린 종혁은 키득키득 웃었다.

    *   *   *

    기이잉!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인천공항.

    캐리어를 끌며 입국 게이트를 넘은 조상호가 비서를 발견하자 캐리어를 그대로 밀어 버리며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비서는 익숙하다는 듯 능숙히 캐리어를 챙겨 들며 조상호를 따라붙었다.

    “나 없는 동안 한국에 무슨 일 없었지?”

    “이젠 직원들에게 맡겨도 되실 텐데 말입니다.”

    한 해 발생하는 매출이 얼마고, 직원이 몇 명인가.

    “흥. 그놈들을 어떻게 믿고?”

    1997년 IMF 때 잘하던 사업이 망한 후 정말 불알 두 쪽만 가지고 시작해 각국을 누비며 여기까지 키운 회사다.

    이렇게 규모가 커진 것도 3년이 채 안 됐다.

    그런데 한 번 거래를 할 때마다 수십억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안 지 몇 년 안 된 직원들에게 맡겨 노하우와 인맥을 나눠 준다?

    아직은 어림도 없는 말이다.

    그놈들은 그냥 폐차 직전의 차들만 모아 오거나 그리 중요하지 않는 폐차 중고차 업체 사장들의 술상무로 충분했다.

    ‘안 그래도 이놈들 숫자도 줄이긴 해야 되는데…….’

    하는 일도 없이 월급만 축내는 월급 도둑들.

    매입에서 판매까지 모든 시스템을 완성시켜 놔서 그런지 그들에게 주는 월급이 아까워 죽겠다.

    “그래서?”

    “음. 사건이 좀 있긴 했습니다.”

    “뭔데?”

    “언론에서…….”

    이어진 비서의 말에 조상호는 코웃음을 쳤다.

    “짭새 놈들이 꽤 아팠나 보군.”

    하지만 괜찮다.

    그동안 수없이 중고차 매매 사기가 발생했음에도 경찰이 나서지 않은 이유가 뭐던가. 수사를 한다고 해도 대충한 이유가 뭐던가.

    피해 액수가 하찮기 때문이다.

    50만 원, 100만 원.

    거기에 그쪽 사람들 성격들이 좀 드세고, 업체들의 사이가 좀 끈끈한가? 거의 카르텔 수준이다.

    어쩌다 압수 수색을 하려고 해도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니 경찰도 쉬이 나설 수가 없다.

    여기에 중고차 업체 사장들도 자신들이 불법을 저지르는 걸 아는지 저마다 나름의 인맥들을 가지고 있다.

    경찰은 결코 쉽게 그들을 건드리지 못한다.

    ‘또 내가 안전장치도 하고 갔고.’

    조상호 본인의 인맥인 구의원과 시의원, 신문사 기자들.

    경찰은 절대 그들을 건드릴 수가 없다.

    하지만 조상호는 몰랐다. 그런 걸 모두 씹어 버리고 무시하는 미친놈이 하나 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꽤 심각합니다. 중고차 업체 사장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피해 사실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아, 괜찮다니까!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야!”

    “……예.”

    큰소리를 낸 것 때문인지 시선이 집중되자 조상호는 걷는 속도를 높였다.

    “쯧. 그 외에는?”

    “그 외에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다시 혀를 찼다.

    ‘이거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쫙 돌려야겠군.’

    자신이 없는 동안 중고차 업체 사장들이 얼마나 불안에 떨었겠는가.

    솔직히 귀찮지만 한 번 움직여 준 걸로 막대한 차익을 냈으니 서비스적인 의미로 다독여 줄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말을 한다고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차에 오른 그는 신발과 양말을 벗으며 축 늘어졌다.

    “출발해. 라디오 좀 켜고.”

    “예.”

    부우웅.

    그를 태운 차가 인천 공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플라잉 투 더 문. 치익!

    오랜 비행 때문에 피곤했는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에 눈이 스르르 감기던 조상호는 노이즈가 끼자 미간을 좁히며 운전대를 잡은 비서에게 이를 드러냈다.

    “거 주파수 하나 똑바로 못…….”

    -긴급 속보입니다. 경찰이 전국적으로 대규모 검거를 시작한 가운데, 중고차 매매 상인들의 사기와 탈세 행각이 드러나면서…….

    움찔!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뜨이며 라디오를 노려본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긴급 속보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겨, 경찰이 전국적으로 검거를 시작했다고? 중고차 상인들이 싹 쓸렸다고?’

    “이,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괜찮다고 괜찮은 게 아니었다.

    새된 비명 소리가 차 안을 가득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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