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39화>
스르륵!
“수고하셨습니다.”
택시에서 내린 종혁은 이태원에 위치한 제법 큰 3층 건물을 응시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어야 할 인간이 한국에 왔다라…….”
뜬금없이 연락을 해 무작정 약속을 잡은 린치.
헤어질 때 꽤 놀렸기에 살짝 불안한 생각도 든다.
‘그놈 성격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어.’
종혁은 담배를 피우려는 척 주위를 둘러봤다.
‘흠. 없는 것 같은데…….’
“아.”
종혁은 나탈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일에 올라탄 걸 축하해요, 최.
“……본청에 백도어를 심어 뒀습니까?”
경무인사기획관과 인사담당관, 그리고 각 청의 청장들밖에 모르는 특별 인사이동이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것도 감찰을 받은 어제 결정이 났다.
-후후후.
“어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은 종혁은 용건을 꺼내기로 했다.
“지금 CIA의 린치를 만나러 왔습니다.”
-어느 린치…… 아, 아르헨티나의 그 린치를 말하는 거군요.
‘CIA가 린치란 이름을 흔히 쓰나 보네.’
-후훗. 귀여운 사람. 나 오해하지 말라고 연락 준 건가요?
“자꾸 유혹하지 말고요.”
나탈리아는 웃음을 터트렸다.
피식 웃은 종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 인간이 왜 온…… 아.”
말을 하다 보니 알겠다. 린치가 한국에 왔음에도 나탈리아가 왜 이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는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해요. 물론 너무 즐거우면 질투할 것 같지만요.
“이런. 그럼 최대한 열심히 즐겨야겠네요.”
-……흐응. 정말요?
“봐서요. 끊을게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키득키득 웃었다.
“정말 귀엽다니까.”
고개를 저은 그는 건물 2층의 BAR로 올라갔다.
딸랑!
문을 열자마자 그를 반기는 모던한 분위기의 인테리어.
바텐더의 앞에 앉은 린치가 버번위스키 중 하나인 메이커스 마크를 홀짝이며 시거를 즐기고 있다.
“취향이 저렴한데?”
다른 위스키와 달리 옥수수로 만드는 버번위스키.
그걸 꼬집자 린치의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이봐, 잘 들어. 버번위스키야말로 가장 미국다운 술이야. 알아들었어?”
“글쎄…….”
어깨를 으쓱인 종혁은 바텐더를 봤다.
“난 앱솔루트랑 맥주 주세요. 응? Why?”
린치는 코웃음을 쳤다.
“그 맛없는 걸 잘도 먹는군.”
그런데 짜증이 나는 건 하필이면 종혁이 시킨 게 보드카라는 것이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 그런 보드카에 맥주를 곁들이는 것도 러시아 스타일.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가 없다.
“술은 딱히 가리질 않아서. 당신도 놀라운데?”
외모나 성격을 보면 고상하게 와인이나 즐길 법한데, 제법 와일드하면서 초딩틱하다.
버번위스키는 단맛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흥. 나만큼 남자다운 사람이 어디 있다고.”
“……어, 그래. 그래서 한국 지부장으로 온 건가? 아니면 날 전담할 팀장?”
“빌어먹을 나탈리아.”
오해였지만 종혁은 정정해 주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하면 너무 간단한 문제였다. 요새 머리 쓸 일이 많아서 단숨에 떠올리지 못한 것뿐.
“그래서 줄 게 뭔데? 그냥 앞으로 잘해 보자고 인사하러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Fuck!”
린치는 바 테이블에 올려 뒀던 노란 대봉투를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키득키득 웃으며 안의 내용물을 꺼내 살핀 종혁은 입을 다물었다.
“역시 CIA라고 해야 하나?”
이번 사건의 배후가 적혀져 있다.
대상 렌트카의 조상호 대표.
그 전국 각지 중고차 매매 단지의 사장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아프리카나 중동에 중고차를 판매하는 회사의 대표라…….’
그 중고차 판매의 규모가 상상 이상이다.
‘하긴 이 정도의 자금력이 있으니 언론을 움직인 거겠지.’
“재밌네.”
순간 종혁의 입매가 기괴하게 뒤틀린다.
‘나한테 돈으로 싸움을 걸어왔다라…….’
아주 재밌다.
린치는 흉흉하게 웃기 시작하는 종혁을 보곤 혀를 찼다.
종혁을 전담하게 되면서 자세히 살핀 종혁의 자료.
하나같이 터무니없었지만, 제일 황당했던 건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한국 경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미친놈의 그것.
그중에서도 제일 미친 건 불법 체류자의 여고생 살인사건이었다.
당시에는 불법 체류자가 용의자인지 확실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종혁은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들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직업알선회사를 차렸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서 말이다.
평범한 사람의 발상으로는 결코 저지를 수 없는 터무니없는 행동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걸 말해 줄 의리는 아직 없고.”
“쯧. 비싸군.”
싱긋 웃은 종혁은 보드카와 맥주를 털어 넣으며 일어섰다.
“다음엔 진짜 선물을 기대할게. 헨리 씨가 주라던 진짜 선물.”
이젠 린치의 상관이자 CIA 동아시아 관리팀의 팀장 헨리 스미스.
그라면 러시아가 종혁에게 뭘 줬는지 알고 있을 텐데, 조금만 조사하면 알 수 있는 이런 정보를 인사 선물이라고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종혁이 싫은 린치가 숨긴 게 분명했다.
“Fuck!”
“그럼 자주 보자고, 린치 요원.”
조사 자료를 챙긴 종혁은 중지를 치켜드는 린치를 무시하며 밖으로 나왔다.
휘이잉!
차가운 공기가 잠깐 안에 있었다고 뜨거워진 몸을 식힌다.
“어떻게 할 거냐라…….”
종혁은 린치가 넘겨준 조사 자료를 봤다.
‘그러게. 이놈을 어떻게 엿 먹여야 할까.’
자료에 의하면 조상호의 회사는 꽤 건실한 기업이다. 쉽게 건드리긴 힘들다고 봐야 했다.
“여러 정황들이 있긴 한데…… 아, 그 방법이 있었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하나 방법이 있었다.
일거양득이기까지 한 방법.
‘그를 위해선 일단 명분부터 쌓아야겠지.’
마침 곧 명분을 쌓기에 좋은 게 세상에 선보여진다.
씩 웃은 종혁은 도로가로 걸어가 손을 흔들었다.
“택시!”
* * *
밤사이 내린 눈으로 인해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 이른 아침.
서울의 한 주택에서 이십대 후반의 남성 김민철이 걸어 나온다.
“다녀오겠습니다.”
“눈 쌓였으니까 운전 조심히 하고!”
움찔!
“네.”
점퍼 위에 정장을 입으며 밖으로 나오는 그를 눈 덮인 검은색 중형차가 반긴다.
직장인이 된 기념으로 불과 며칠 전에 산 중고차, 뉴그랜저.
한참 예뻐하고 아껴야 할 시기건만, 김민철의 표정엔 울화와 짜증만 서려 있다.
주머니 속 자동차 키를 만지작거리며 갈등하던 그는 이내 혀를 차며 자동차를 지나쳐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덜컹덜컹!
“윽!”
“좀 비켜 봐요!”
출근 시간치곤 좀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로 가득한 지옥철.
숨이 턱턱 막히고 몸이 찌그러질 것 같자 김민철의 마음에 ‘그냥 차를 탈 걸 그랬나’ 작은 후회가 든다.
차를 산 이후 매일 출퇴근길마다 드는 후회.
“아이고. 요새 경찰이 노력 많이 하네.”
“뭘 그래요. 얼마 전 뉴스 못 봤어요?”
‘응?’
[경찰, ‘이제부터 인터넷 간편 신고 사이트를 이용해 달라’.]
별거 아닌 신문 내용.
대체 어디서부터 탄 건지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는 부러운 사람을 외면한 그는 아예 눈을 감으며 지옥철 출근길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도착하는 것도 금방이었다.
-차 왜 안 가져갔어?
“눈 많이 쌓였잖아. 내 운전 실력이면 백퍼 사고 나.”
-그래도…….
“회사 앞이야. 끊을게.”
전화를 끊은 그는 사무실로 올라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그렇게 인턴 김민철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후우.”
터벅터벅.
어둔 밤, 쌓인 눈이 발밑을 위태롭게 하지만 오늘도 고생한 김민철은 그걸 느낄 틈도 없다.
그저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은 마음뿐.
인턴으로 입사할 때만 해도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얼른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하지만 합격 통지에 누구보다 기뻐하던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멈칫!
“하아…….”
집 앞, 아버지 차 뒤로 주차된 차를 보니 더 답답해지는 가슴.
뿌연 입김만이 그의 답답한 가슴을 드러내 준다.
고개를 저은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가며 활짝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왔니? 밥은? 회사에서 별일은 없었고?”
매일 보는 아들이 뭐 그리 좋은지 뽀로로 달려와 이곳저곳을 살피는 어머니.
귀찮아 짜증이 드는 한편 좋아서 웃음도 나온다.
“먹었어요. 별일도 없었고요. 엄마랑 아빠는요?”
“나야 먹었지.”
“나도. 얼른 씻고 과일 먹어라.”
“옙!”
허물을 벗듯 옷을 벗으며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나온 그는 어머니 옆에 앉으며 멍하니 TV를 봤다.
“푸흐.”
“왜 웃어?”
“그냥요. 아까 회사에서 웃겼던 일이 생각나서요.”
언제나 똑같은 풍경. 그래서 웃음이 나왔는지 몰랐다.
“왜? 뭔데? 무슨 일인데?”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애 힘들게.”
“아니, 엄마가 돼서 물어볼 수도 있죠.”
“그거 다 참견이야. 애 좀 그만 괴롭혀.”
“뭐예요? 어머 이 사람 말하는 것 좀 봐?”
갑자기 싸우기 시작한 부모님이지만, 이마저도 일상이라 김민철은 태연하게 포도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경찰이 이번에 인터넷 간편 신고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하여 화제입니다. 서대기 기자?
-예, 서대기입니다. 경찰은 기존의 복잡했던 인터넷 신고 절차를 간소화하여 누구나 빠르고 간편하게 신고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였는데요. 모든 신고자의 익명성을 지키면서…….
‘간편 신고 시스템?’
멍하니 뉴스를 보던 김민철의 눈이 번뜩였다.
거쳐야 할 여러 절차들을 떠올리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신고.
그런데 빠르고 간편하게 신고를 할 수 있다니, 그의 귀가 솔깃해졌다.
“잘 먹었습니다. 전 좀 쉴게요.”
몸을 일으킨 그는 잰걸음을 옮겼고, 그에 언성을 높이던 그의 부모는 입을 다물었다.
“쟤 오늘도 차 안 끌고 갔지?”
“네. 차를 사 뒀다가 국을 끓여먹으려는 건지, 아님 저 차를 사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부모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아들의 반응.
대충 사정을 파악한 아버지는 걱정하는 부인을 향해 손을 저었다.
“놔둬. 모른 척해. 쟤도 이제 사회인이야.”
‘몇 십만 원 정도 덤터기 썼나 보군.’
그도 차를 타는데 어찌 중고차 매매 단지의 악명을 모르겠나.
하지만 그런 시련과 역경이 결국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기에 아버지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몇 십만 원이 아니라 3백만 원인 걸 알았다면 그는 결코 이렇게 반응하지 못했으리라.
“아씨. 왜 오늘이 아닌 건데!”
쾅!
잔뜩 기대하며 컴퓨터를 켰던 김민철은 키보드를 내려치며 짜증을 토해 냈다.
“……아니야. 내일이라는 말이지?”
내일 오전 8시 30분에 사이트가 오픈된다.
고작 몇 십만 원도 아니고 무려 3백만 원이다.
이대론 억울해서 못 산다.
그는 내일 출근을 하자마자 꼭 신고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컴퓨터를 껐다.
* * *
본청의 경찰도 잘 찾지 않는 지하.
그곳엔 위기관리센터가 있다.
전국 모든 치안 상황을 관리감독을 하는 거대한 부서.
“우리 정말 좌천이 아닌 거 맞죠?”
배정받은 사무실에 도착한 최재수는 망연자실했고, 오택수는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찾았다.
처음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로 인사이동을 했을 때 배정받은 사무실보다 더 상태가 심각한 사무실.
크기는 그때의 사무실보다 다섯 배는 더 크지만, 여기는 곰팡이가 가득한 것도 모자라 물까지 샌다.
‘이러다 본청 인테리어는 내가 다 하겠네.’
종혁도 이 풍경을 보곤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어이구. 그쪽이…… 씨벌?”
“오메, 씨부럴. 이건 또 뭐여?”
이쪽으로 다가오던 삼십대 후반 형사들이 사무실의 몰골을 보곤 화들짝 놀란다.
“지하 4호 사무실…… 맞는데?”
“이딴 곳에서 수사를 하라고? 청소하는 데 한세월이겄네.”
종혁은 눈을 빛냈다.
“혹시 신설된 특별수사팀의 팀장님들이십니까?”
“그런디…… 그쪽은 누구?”
“충성. 반갑습니다. 1팀 팀장 최종혁 경감입니다.”
“……그짝이? 이짝이 아니고?”
“하하. 오택수 경감입니다. 이쪽은 최재수 경장.”
“충성!”
놀랐던 두 팀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의 눈빛이 묘해진다.
‘이 젊은 친구가 최종혁…….’
그들을 보낸 청장들이 꼭 친해지라고 신신당부한 인물이다.
“충성. 난 3팀장 윤선빈입니다. 계급은 경정. 경기청 출신이에요. 젊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젊을 줄은 몰랐네요.”
“난 2팀 팀장 김판호여. 계급은 이짝과 이하동문. 부산청에 있었고. 나이는 방년 37세! 앞으로 잘해 보드라고!”
“부산…… 청이요? 사투리가 전라도이신데?”
다른 이들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하핫! 그래서 눈칫밥 무자게 먹었제. 그랑께 더 고치기 싫더라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종혁과 다른 사람들 모두 직감했다.
‘또라이다.’
하지만 그래서 첫인상은 합격이었다.
“쩝. 나이로 보나 계급으로 보나 제가 가장 어리네요. 다들 말 편히 하십시오.”
“수사에 계급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여. 범인만 잘 잡으면 되제. 선의의 경쟁 하자고.”
더 마음에 든다.
“하하. 맞는 말이시네요. 그럼 가실까요?”
“우딜?”
“직속 상관에게 인사하러요.”
그들의 부서명은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이다. 위로 과장이라는 상관이 있었다.
“……아.”
그들은 옆의 간편신고관리과로 향했다.
“오픈 준비는 어때?!”
“트래픽 감당할 수 있게 서버 넉넉하게 잡아 놔!”
종혁이 배정받은 사무실과 똑같은 크기의 사무실.
컴퓨터가 빼곡하게 놓인 사무실이 근무복을 입은 수십여 명의 경찰들로 인해 시끄럽다.
오늘이 간편 신고 사이트의 오픈일이기 때문이다.
‘씨벌. 여긴 왜 멀쩡혀? 멀쩡하다 못해 신식인디? 우리 좌천이었어?’
‘쉿. 쉿.’
그들은 사무실 맨 뒤에서 양손으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잡은 채 사무실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십대의 총경에게로 향했다.
“충성. 특별수사 1팀 팀장 경감 최종혁 외 2인.”
“2팀장 김판호.”
“3팀장 윤선빈.”
“현시간부로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으로 특별 인사이동을 명 받았기에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그래요, 만나서 반가워요. 간편신고관리과장 정용진 총경입니다.”
종혁은 눈을 번뜩였다.
“혹시 정보 1과에 계셨던…….”
“호오?”
마치 세상 다 산 노인처럼 허허롭게 웃고 있던 그의 눈에 순간 날카로움이 서렸다가 사라진다.
“맞아. 최 경감이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선장이었죠.”
경찰의 이미지를 총괄 마케팅하는 곳이기에 부서장들의 이름을 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이름만 겨우 알고 있는 종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휘유.’
이곳 위기관리센터보다 한층 더 아래에 위치한 정보국.
정보국 소속 경찰이 아니라면 출입조차 엄금되는 시크릿 부서다. 이 본청 안에는 이런 부서가 몇 개 더 존재한다.
그런 배경에 김판호와 윤선빈도 놀람을 금치 못하다 헛웃음을 터트린다.
‘이거 만만치 않은 양반이 상관이구마잉.’
전에 있던 부서도 부서지만, 정용진이 순간 터트렸던 안광을 그들도 본 탓이다.
허허실실. 무서운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런데 다들 일찍 출근했네요.”
아직 특별수사팀 사무실 공사가 시작조차 안 한 상황이다.
“오늘이 사이트 오픈일이잖습니까.”
“저도 1팀장과 같은 이유로 와 봤지라. 솔직히 나만 올 줄 알았는디…… 우리 과장님께 점수 따는 건 글렀구마이라.”
“하하, 다들 성실하네요. 커피 한잔씩 할래요?”
“예.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제, 제가 타겠습니다!”
“됐어요. 됐어. 최재수 경장이죠?”
“추, 충성! 경장 최재수!”
“그래요. 잘 부탁해요.”
그렇게 말하는 와중 커피를 모두 탄 정용진 총경이 종이컵을 나눠 준다.
“사이트 오픈까지 3분!”
종이컵을 조심히 받아 들던 모두가 사무실을 바라본다.
그런 그들의 눈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지난 며칠 동안 언론과 뉴스로 신나게 홍보한 간편 신고 사이트. 오늘부터 접수되는 모든 사건이 그들 특별수사팀이 맡을 사건이다.
광역수사대, 마약수사대, 특수범죄수사과처럼 거리와 성역이 없는 특별수사팀. 어떤 의미에선 그들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수사팀.
그들의 몸이 절로 들썩였다.
그런 종혁에게 정용진이 슬그머니 다가선다.
“기분이 어때요. 마지막으로 만든 작품을 보는 소감이.”
“글쎄요. 뭐…….”
“5! 4! 3! 2! 1! 사이트 오픈!”
“접속자 10명, 35명, 100명 돌파!”
“처, 첫 신고 접수됐습니다! 내용은 중고차…….”
“일단 캡처부터 해! 홍보용 자료로 넘겨야 되니까!”
방금 전보다 몇 배는 더 정신이 없어진 사무실의 풍경.
종혁은 눈을 빛냈다.
“나쁘지 않군요.”
첫 신고 내역이 중고차 관련이라서 더.
종혁은 입술을 비틀며 커피를 홀짝였고, 그런 종혁을 보는 정용진은 눈을 빛냈다.
“허허.”
간편신고관리과를 나서는 김판호와 윤선빈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오픈부터 방금까지 10분 사이에 쌓인 신고 내역이 몇 개던가.
실적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런 노다지가 저 1팀장 덕분에 만들어졌단 말이제?’
그들을 보낸 청장들이 말했다.
특별수사팀은 종혁이 제안한 간편 신고 시스템으로 인해 창설된 것이라고.
‘무조건 친해져야겠네.’
그들의 눈이 묘해지자 대충 상황을 파악한 종혁은 피식 웃으며 수첩을 꺼내 들었다.
“함께할 팀원은 각자 몇 명이세요?”
“그건 왜 물어보시죠?”
“인테리어를 할 때 참고하려고요.”
“아.”
그들은 각자 데리고 올 팀원의 숫자를 말했고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요? 뭐 선호하는 커피메이커라든가 공기청정기라든가 수사 장비라든가. 요리에 취미가 있는 팀원이 있다면 주방도 만들어 드릴 거고요.”
“자, 잠깐! 정말 그런 것들이 허락된다고요?”
“웜메. 본청, 본청 하는 이유가 다 있었네. 씨부럴.”
“푸훕!”
김판호와 윤선빈이 웃음을 터트리다 놀라는 최재수를 본다.
“큼. 인테리어 비용은 모두 저희 1팀장님이 자비로 하실 예정입니다.”
휙!
김판호와 윤선빈의 시선이 모이자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그런 그의 손목에서 롤렉스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오메.”
친해져야 될 이유가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