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37화>
공기가 소리와 함께 얼어붙는다.
‘겨, 경찰?’
‘씨발?’
종혁은 더 이상 말을 섞기가 싫어 경찰 공무원증을 던졌다.
“헉!”
마치 역병 단지라도 되는 듯 다급히 물러나는 그들.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눈깔이 있어서 쳐 봤으면 이제 좀 꺼져 주지? 왜? 너희 차들도 싹 다 밀어 줘?”
“……씨발. 경찰이 이래도 돼?!”
“마, 맞아요! 저, 저희 이제 건달 아니거든요?!”
종혁은 얼굴을 구기며 지갑을 열었다.
“야. 너희도 받아.”
촤라락!
허공에 뿌려지는 수표들.
“이제부터 너희 차도 내 거다.”
……꿀꺽.
덩치들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수표에 꽂힌다.
솔직히 욕심이 난다. 웃돈 주고 차를 산다는데 어떤 병신이 안 팔겠는가.
그런데 건드릴 수가 없다.
이건 독이다.
먹는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독.
“아, 아닙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여기 수표. 저흰 이만 퇴근해야 돼서…… 헤헤.”
종혁은 떠나는 그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역시나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놈들이다.
남을 함부로 깔보고 다니면서도 더 큰 힘엔 꼬리를 숨기는 양아치들.
종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멍해진 수호에게 다가갔다.
“보이냐?”
“……개 같네.”
솔직히 종혁이 좀 무섭긴 하다.
하지만 그보단 더 큰 힘에 도망치는 저 덩치들이 더 어이없다.
‘난 왜 이런 놈들한테 당한 거지?’
억울했다. 아까 전과는 다른 의미로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씨발. 진짜. 씨발.”
“오, 박수호. 군대 다녀왔다고 욕도 하네?”
“씨, 진짜!”
“자. 이거 받아.”
종혁은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넘겼다.
“응? 이, 이건 왜?”
“너도 부숴야지. 힘들게 나만 부수라고? 이 의리 없는 놈아?”
“어…….”
“솔직히 엿 같잖아.”
“……그런 거야? 그래도 돼?”
“그래도 돼. 저 새끼들 이래도 아무 말 못하니까 마음껏 부셔.”
이쪽을 곁눈질하는 덩치들과 망연자실 주저앉은 사내를 쳐다본 수호는 설움이 담긴 헛웃음을 터트렸다.
“씨발.”
돌아선 수호는 방망이를 높이 쳐들었다.
“으아아아아! 이 개새끼들아-!”
콰앙! 콰아앙! 콰직! 콰직!
“옳지. 잘한다. 더! 더!”
종혁은 잘하는 수호의 모습에 고개를 주억였다.
앞으로 수호가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은데, 해야 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것도 아닌 이딴 놈들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 어깨가 좁아지면 안 된다.
“그렇지! 다 부숴 버려-!”
“으아아아아!”
킬킬 웃은 종혁은 핸드폰을 귓가에 댄 채 멀어지는 덩치들을 보며 망연자실하는 놈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뺏었다.
-야! 아, 이 새끼는 전화를 해 놓고 뭔 짓…….
“아이고, 사장님. 안녕하세요. 본청의 최종혁 경감이란 놈입니다. 지금 제 친구가 당신 직원의 강매 때문에 원치 않은 차를 사다 못해 좀 다쳤거든요? 아시죠? 협박이랑 폭행은 중범죄라는 거. 그래서 제가 빡돌아서 당신 가게 차 몇 대를 좀 밀었어요.”
-……예?
“값은 얼추 지불했고요. 그런데……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아. 내가 당신 뒤를 파 볼까? 아님 여기서 묻을래?”
-……크흠.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끊겠습니다.
“그래요, 우리 사장님 말이 통하시는 분이셨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놈에게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던진 종혁은 놈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담배를 물었다.
“야, 너 잘리겠다?”
“……이 개또라이 새끼.”
사내는 이를 악물었다.
교도소에 다녀온 이후 겨우 구한 일자리다. 이제야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는데, 종혁 때문에 잘리게 됐다.
아무리 종혁이 경찰이라도 험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깡 좋네. 야, 너 자수할 생각 없지?”
“좆까! 퉤!”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 고맙다. 나도 여기서 끝낼 생각 없었거든.”
“……뭐?”
종혁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사내의 눈을 응시했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을 말해 줄게. 난 내일부터 네가 생활한 조직이 어딘지를 찾을 거야. 네가 숙소 막내 생활을 하다 도망을 쳤든, 그저 동네를 빌빌거리면서 돌아다니던 양아치였든 상관없이 그냥 네 주위에 있던 조직을 족칠 거야.”
방금 찍은 사내의 얼굴과 문신 사진이 과거를 쫓을 증거가 되어 전국에 퍼질 것이다.
“왜? 못할 것 같아?”
섬뜩!
“너, 너…….”
사내의 눈동자뿐만 아니라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그리고 내가 족친 이유를 말할 거야. 어떤 씹새끼 때문에 너희가 이런 꼴을 당하는 거라고. 날 원망하지 말라고.”
철렁 사내의 심장이 내려앉고,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간다. 눈에 가득 찼던 독기도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공포가 채운다.
“어쩌냐. 잘리면 다른 일 알아보면 되지 뭐 그런 희망을 가졌을 텐데.”
“왜, 왜 이러세요. 저한테 왜 이러시는데요.”
끝내 사내의 가랑이가 젖어 간다.
“너 같은 놈이 싫어서.”
참 싫다. 대체 이놈들은 뭔 자격이 있어서 같은 사람을 협박하고 갈취하는 걸까. 그러면서도 왜 언제나 당당한 걸까.
정말 토악질이 나올 만큼 싫은 놈들이다.
덥썩!
“오, 범죄자가 형사를 잡네? 세상 많이 좋아졌다, 야.”
“자수할게요! 자수하면 되잖아요! 네? 네에?!”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아니야. 그러지 마. 너 이런 놈 아니잖아.”
“아니요! 자수할게요! 협박! 폭행! 강매 모두 자수하겠습니다!”
“……쯧. 그리고?”
“사, 사과도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뭐에 씌었나 봅니다!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내는 눈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연신 사과를 했고, 야구방망이를 든 채 멈춘 수호의 표정은 묘해졌다.
종혁은 그의 뒷목을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다른 피해자들은?”
“그, 그분들에게도 사과하겠습니다!”
“환불도 할 거지?”
“…….”
“그래. 아예 이 나라를 뜨든, 나중에 경찰서에 살려 달라고 찾아와라. 그럼 구해 줄 거야.”
“하, 할게요! 어떻게든 다 하겠습니다! 대출을 하든 사채를 쓰던 다아!”
일어서던 종혁은 몸을 멈추며 사내를 봤다.
“지금 한 말 지키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럼 뭐…… 나머진 네 상상에 맡길게. 참고로 수표 봤지? 나 돈 많다.”
꿀꺽!
“그래. 지켜본다. 가자, 수호야!”
“헉! 헉! 벌써 가게?”
“어. 이분이 폐차도 알아서 해 주신대. 에이, 지지. 방망이는 버리고.”
둘은 발걸음도 가볍게 멀어졌고, 사내는 그 모습을 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씨발.”
평소처럼 차 한 대 팔았다가 인생이 나락에 떨어지게 됐다.
한편 찬바람을 헤치며 중고차 매매 단지를 빠져나가던 수호는 담배를 문 채 어슬렁 걷는 종혁을 가만히 응시했다.
‘멋져.’
문신이 가득한 이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도리어 압도하던 종혁은 오늘도 멋졌다.
거기다 자신의 자존심까지 지켜 준 종혁.
생각에 잠겼던 수호는 문득 옛날 일을 떠올렸다.
벌써 오래전인 1997년 IMF의 겨울.
후원사에게 받았다며 주유 상품권과 백화점 상품권을 줬던 친구 종혁.
그땐 철이 없어서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로 인해 그해 겨울 부모님이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걸.
덕분에 참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는 걸.
그럼에도 종혁은 단 한 번도 그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나였으면 몇 번이고 생색냈을 텐데. 하지만 만약 종혁이가 그랬다면 많이 쪽팔렸겠지?’
고마우면서도 쪽팔렸을 거다. 어쩌면 창피함을 참지 못해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대학교와 군대에서 그런 사람을 너무 많이 봤기에 수호 자신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종혁은 애초에 그럴 상황조차 만들지 않는다.
언제나 큰형처럼 크고 작은 배려로 말없이 챙겨 주는 친구.
그래서 그냥 같이 있어도 참 즐겁고 든든했다.
종혁은 그런 친구였다.
“종혁아, 고마…… 벱?! 야, 짜!”
“시끄러워, 인마. 친구끼리 고맙다는 말은 무슨. 됐어.”
그렇게 말하지만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친구 수호가 자신을 어려워하지 않아서, 친구 수호의 마음에 어둠이 남지 않은 것 같아서 흡족해진다.
그런 종혁의 모습에 수호도 웃음을 흘린다.
“흐흐.”
‘고마워, 종혁아. 언제나. 정말로.’
그렇게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그린 수호는 길가로 걸어 나왔다.
“……근데 종혁아. 우리 어떻게 가?”
“어? 잠깐, 어?”
몇 대의 차가 굼벵이처럼 나아가는 도로. 택시는커녕 버스조차 지나지 않는다.
“에라이.”
“……야, 네가 오늘 그러면 안 되지.”
“몰라.”
“허허허. 이 배은망덕한 놈 보소? …… 아, 그래. 차가 없으면 스키를 타면 되겠다!”
“스키? 스키가 어디 있는데?”
“어디 있긴. 여기 있지! 박수호란 스키가!”
“어? 야? 잠깐! 으악! 안 돼!”
“거기 서!”
둘은 눈이 쌓인 길을 달리다 동시에 휘청 자빠졌다.
“으악!”
둘에겐 약간 특별할 수 있는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 *
담배 연기가 가득한 어두운 공간.
녹색 모포가 깔린 둥근 테이블에 화투패들이 널려 있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앞에 지폐 뭉치를 쌓아 놓은 사람들은 가려진 승자와 패자에 웃거나 한숨을 내쉰다.
그 순간이었다.
퍼억!
핸드폰이 소파에 내팽겨쳐진다.
“이 씨발!”
사람들은 방금 전 게임에 참가하지 않고 통화를 했던 오십대 장년인을 봤다.
“무슨 일이야, 신 사장. 사무실에 일 생겼어?”
“아니, 이 씨발 개좆같은 짭새 새끼가…….”
신 사장은 울분을 토했다.
“뭐야?! 그런 일이 있었어?”
“푸핫! 차를 밀어 버렸다고? 그거 완전 또라이 새끼네!”
“그 이번에 들어왔다는 실장은 뭐하고?”
“몰라. 그 새끼도 얻어터졌대! 아오, 덩치값도 못하는 새끼!”
장년인과 같은, 중고차 매매 단지의 사장들은 킬킬 웃었다.
어디 경찰이 찾아와 조사를 하는 게 한두 번인가. 뽀찌를 찔러 달라고 오는 놈들에서 또라이로 바뀐 것뿐이다.
“돈은? 받았고?”
“이 병신이 또 받았단다, 아오!”
“그럼 됐네.”
“뭐야?!”
일상에 가까운 해프닝이지만 장년인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전화를 받던 목소리가 너무 어려서 그런지도 몰랐다.
“내가 이 나이에! 아오, 개 같은 짭새 새끼들! 아주 만만한 게 우리지?!”
움찔!
‘우리’란 단어에 다른 사장들도 반응을 한다.
정당히 차를 팔았을 뿐인데도 한 달에 몇 번씩 찾아오는 경찰들. 연례행사처럼 1년에 꼭 한 두 번씩은 중고차 매매 단지에 대한 혐오 여론을 형성시키는 신문사들.
물론 차를 팔 때 약간의 위협을 했다는 건 인정을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판매 전략이다. 중고차를 사러 오는 놈들도 차를 싸게 사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는 게 그들의 생각.
‘이런 것도 각오 안 했으면 그냥 새 차를 사, 이 거지들아.’
구매자는 새 차보다 저렴하게 차를 사서 좋고, 판매자인 그들은 차를 비싸게 팔아서 좋다. 서로 윈윈이다.
“아, 씨부럴?”
자신들이 왜 이렇게 한데 모여서 팔았던가.
다 상부상조를 위해서다. 자격도 없는 놈들이 저마다 중구난방 가격을 후려치면 고객들이 힘들기에 다 같이 함께 모여 가격 안정화를 이루기 위해서다.
그런 의인들인데 만날 자신들만 괴롭힘을 당한다.
사장들의 손아귀에서 화투패가 구겨지자 조용히 침묵을 하고 있던 한 사십대 사내가 안경을 치켜세우며 입을 연다.
“이런. 그동안 사장님들 속이 많이 상하셨나 보군요.”
“아, 조 대표님!”
자신들에게서 중고차를 매입에 중동이나 아프리카, 인도 등에 판매하는 큰 손 조상호 대표.
자신들이 영세 상인이라면, 조상호 대표는 거의 중견 기업의 회장이다.
“어떻게 제가 한번 나서 볼까요?”
사장들의 얼굴이 순간 확 펴진다.
특히 F1 모터스의 사장은 더욱 그렇다.
“그, 그래 주시겠습니까?! 이거 너무 미안한데…….”
“아닙니다. 저와 사장님들이 인연을 맺은 기간이 얼마나 길고 깊은데요. 이 정도는 해 드려야죠.”
그러며 번뜩이는 차가운 눈빛에 사장들을 낯빛이 어두워진다.
이득이 없다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 조상구 대표.
“……다른 건 안 바라겠습니다. 이 새끼 물만 제대로 먹여 줘요. 그러면 내가 기존의 반값에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선 폐차에 가깝지만 그래도 족히 10년은 넘게 굴러다닐 중고차들을 조상구 대표에게 싸게 넘기는 그들.
보관비나 관리비, 폐차비 이것저것 다 합쳐도 이득이기에 넘기는 것이다.
“나도 반값에 드리겠습니다! 내가 아주 이 개새끼들 때문에 살 수가 없어!”
“나도!”
견찰들 뒷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게 훨씬 이득이다.
조상구 대표는 너도나도 손을 드는 사장들의 모습에 흡족하게 웃었다.
‘그래. 이게 진정한 상부상조지.’
“하하. 이거 그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사장님들의 뜻이 그러시다니 제가 한번 힘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 대표님!”
“자, 그럼 어서 자리들 앉으시죠. 이러다 흐름 끊기겠어요.”
“어이구. 그러면 안 되죠.”
“신 사장도 다시 쉬었으면 얼른 와!”
“잠깐만. 기분이 좋은 박카스 한 병씩 마시고 해야지!”
“박카스 좋지. 박카스 아가씨는 없나?”
“왜? 불러?”
그들은 낄낄낄 웃으며 다시 패를 쥐었다.
조상구는 그런 그들을 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뭐부터 해 볼까. 아, 그게 좋겠군.’
마침 아주 좋은 방법이 생각난 조상구는 입술을 비틀었다.
그리고 이날의 승자는 당연하게도 조상구가 되었다.
* * *
경찰인가, 깡패인가!
중고차량 판매소를 차로 받아버린 경찰!
중고차량 판매소의 사장들. 경찰들 때문에 힘들어서 못살겠다!
자업자득? 우린 피해자다!
아침부터 헤드라인으로 때리는 뉴스에 전국이 들썩인다.
-조, 종혁아. 나, 나 때문에……
“으응. 이거 우리 아니야. 알아보니까 저기 경기도 쪽 중고차 매매 단지에서도 나처럼 경찰이 난리를 쳤나 봐. 에휴, 지금 그것 때문에 본청도 난리가 아니다. 아니, 나처럼 깔끔하게 처리했으면 좀 좋아?”
-저, 정말? 정말 아니야? 정말 너한테 피해 없어?
“너만 미니홈피에 쓰지 않으면?”
신문에 이름은커녕 성조차 밝혀지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변명.
-……후하아아.
“큭큭. 그러니까 너도 얼른 알바나 나가셔. 지금 본청 분위기가 말이 아니라서 이런 개인적인 통화도 제대로 못하니까 내가 나중에 상황 봐서 전화할게. 다음에 통화하자.”
-응! 너도 일 잘해!
전화를 끊은 종혁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점차 커지더니 이내 온몸이 들썩일 정도가 됐다.
“하아.”
‘어떤 씹새끼지?’
그날의 일은 그날 중고차 매매 단지를 벗어나며 묻었다.
참 거지 같은 놈들이지만 그래도 해 버린 게 있고, 아직은 좋은 경찰 이미지 형성에 주력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당분간은 참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러면 나도 못 참지.’
고작 6평이나 될까 한 작은 공간을 울리는 살벌한 음성.
종혁은 한쪽 벽에 붙여진 유리 거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시작하시죠?”
벌컥!
취조실의 문이 열리며 정장을 입은 두 사람이 들어온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깐깐한 인상의 중년인과 이십대 후반의 젊은 여성. 감찰이었다.
그런데 그중 중년 남성의 얼굴이 낯익다.
“어?”
“에효. 어째 작년은 그냥 잘 넘어가나 했다.”
2004년, 윤영철 사건 때 감찰을 맡았던 그분이다.
“아하하. 죄송합니다. 그런데 파트너가 바뀌셨네요?”
그 말에 여성이 낯빛을 굳힌다.
“야, 후배님. 나 경찰대 44기야.”
“……충성. 48기 최종혁.”
중년인은 각이 잡히는 종혁의 모습에 킬킬 웃으며 담배를 권했다.
“담배 피지? 피워.”
“아, 감사합니다.”
종혁은 어깨를 늘어트렸다.
딱 봐도 형식적인 감찰이었다.
그래도 정중히 임해야 하기에 담배를 모두 피운 종혁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자 본격적인 감찰 조사가 시작됐다.
삑.
캠코더의 불이 꺼지자 중년인은 한숨을 탁 내뱉었다.
“또라이 같은 놈.”
열 받았다고 주차된 차들을 밀어 버리다 못해 야구방망이로 박살을 내 버리는 미친놈이 또 있을까.
“아하하. 죄송합니다. 그런데 전 어떻게 됩니까? 역시 대기 발령입니까?”
종혁은 차라리 대기 발령이기를 원했다.
그래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종혁 본인을 도발하다 못해 경찰 전체에 싸움을 건 놈이다. 견찰 몇 명이 뒷돈을 챙기면서 빌미를 제공하긴 했지만, 이제 경찰은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함부로 놈들을 건드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놈들뿐만 아니라 전국 중고차 판매, 아니 강매하는 놈들을 말이다.
가만둘 수 없었다.
“흠. 글쎄…….”
종혁이 촉망받는 간부만 아니었다면, 무조건 대기 발령 징계를 받을 정도로 큰 사고다. 그래서 감찰에 뼈가 굵은 그조차도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청장님께서 설명해 주실 거야.”
“예?”
대답 대신 몸을 일으킨 중년인은 취조실의 문을 열었고, 이택문 경찰청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뚱한 얼굴의 이택문 경찰청장.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충성. 경감 최종혁.”
“……다들 나가 있지. 저기 녹화하는 것도 끄고.”
“충성.”
감찰들이 기기와 서류를 챙겨 나가자 이택문은 종혁의 맞은편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현재 상황이 심각한 건 알 거야. 경찰 인권과 공권력 향상, 올바른 경찰 이미지 형성을 위해 나 대신 애를 쓴 최 경감이라면 더 잘 알겠지.”
흠칫!
평소답지 않게 이택문 경찰청장의 말이 길다.
종혁은 갑자기 불길해졌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과는 사과다.
비록 종혁 본인이 기획했다고 하더라도 그 거대한 프로젝트에 똥을 뿌린 건 맞으니까.
아마 여기서 경찰이 제스처를 취하지 않으면 과도한 복지다 군부 독재의 부활이다 뭐다 하면서 모든 언론이 달려들어 물어뜯을 터.
그땐 아마 정부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대기 발령이든, 직무 정지든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찾아 죽인다.
고개를 숙인 종혁은 솟구치는 분노를 찍어 눌렀다.
이택문 경찰청장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종혁의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드디어 종혁을 찾은 이유를 말하기로 했다.
“위기관리센터로 가. 자리 마련해 뒀으니까.”
쿠웅!
고개를 번쩍 든 종혁은 이택문 경찰청장의 얼굴을 봤다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개……!’
징계가 예상을 아득히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