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33화>
주한빈이 말한 회식은 삼겹살에 소주였다.
하지만 1인분에 무려 16000원이나 하는 비싼 강남의 삼겹살에 복분자주였다.
‘그런데!’
모두 깨작거리고 있다.
박봉인 경찰이 어디서 이런 걸 먹어 봤을까 신세계를 보여 주고자 하는 마음에 데려왔는데, 이리도 심드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한빈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야, 오늘 팀장님이 뭐 먹으러 가자고 했지?’
‘박달 대개 코스 요리랑 2차로 와인 바.’
시무식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시작될 업무.
종혁은 새로운 팀장이 오기 전에 마지막 여유를 즐기자며 회식을 제안했었다.
90퍼센트는 종혁이 부담하고 나머진 n분의 1, 갈 사람만 갈 2차는 종혁이 100퍼센트 부담이었다.
그런데 삼겹살에 소주다. 비싸 봤자 어차피 삼겹살에 소주.
물론 삼겹살에 소주도 감사하지만 잔뜩 기대를 했기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풉!”
종혁은 웃음을 터트린 오택수의 옆구리를 쿡 눌렀다.
“크흠. 죄송합니다. 사레가 들려서.”
“허흠. 아니야. 지금 너무 비싸서 얼어붙은 거 같은데, 내 주머니 사정은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먹어. 팀장으로서 이 정도도 못 사 주겠어? 앞으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직장에선 꽉 쥐지만 밖에선 풀어 주는 것. 그게 주한빈이 휘하 직원들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큽! 아, 죄송합니다. 목이 계속 막히는군요. 뭣들 해. 비싼 음식 두고 제사 지낼래?”
“아, 아닙니다!”
“모두 잔에 술들 따르고!”
“팀장님은 제 술을 받으시죠.”
“허흠. 감질나게 소주잔은 무슨. 글라스에 따라 봐.”
“오오. 괜찮으시겠습니까?”
“남자가 돼서 가오 떨어지게 소주잔은 무슨.”
‘오호?’
팀원들의 눈빛도 살짝 변하자 주한빈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언제나 먹히는 필승의 패턴. 그의 어깨가 말랑하게 풀렸다.
“그래, 최 경감도 받아.”
“예, 저도 글라스로 받겠습니다.”
“……흠. 술 마실 줄 아는군. 받아.”
“감사합니다. 그럼 한마디 하시죠.”
고개를 끄덕인 주한빈이 술잔을 들며 입을 열었다.
“내가 갑자기 굴러온 돌이다 보니 다들 지금 어색할 거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흠칫.
몇몇 팀원이 몸을 굳혔지만, 주한빈은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도 어렵게 온 만큼 열심히 할 테니 다들 도와줬으면 좋겠어.”
“옙!”
종혁이 재빨리 대답하자 다른 팀원들도 황급히 대답했다.
“자, 그럼 내가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화합을 하고 선창하면, 위하여라고 후창해.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화합을!”
“위하여!”
채재쟁!
“크아!”
“캬아!”
그렇게 경찰이미지 마케팅팀의 회식이 시작됐다.
* * *
“뭐? 3차를 안 가겠다고? 나 때는 말이야! 어?”
“오오! 3차도 팀장님이 쏘시는 겁니까?!”
“아니…… 그뤠!”
“3차도 가자아!”
“가자아!”
그렇게 4차까지 달리자 시간은 어느새 11시가 됐다.
그럼에도 모두 자리를 지키는 4차 술자리.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주한빈이 종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대전청에 있을 때…… 음…….”
쿵!
“음? 팀장님? 벌써 주무십니까, 팀장님? 에고, 주무시네.”
원형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주한빈을 흔들던 종혁은 팀원들에게 손짓을 하며 담배를 피자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모두 일어서 식당을 빠져나갔다.
겨울의 저녁이라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자 잠시 술에서 깬 그들은 담배를 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미치겠네.”
하급자로선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상사다.
“아, 씨발. 앞으로 일할 맛…….”
“쉿.”
종혁은 취기 하나 없는 눈으로 팀원들을 둘러봤다.
“아가리.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몰라? 사회생활 하루 이틀 해?”
그들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고, 종혁은 밤하늘을 보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팀장님께서 날 밀어내고 오신 것 같다고 불만이 많은 건 알겠는데, 겉으로 드러내진 말자. 그럴 나이 들 아니잖아.”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내일 팀장님께 죄송했다고 문자 넣어. 어차피 시무식이라 만날 테지만.”
“예…….”
종혁은 더욱 고개를 숙이는 그들의 모습에 담배를 빨았다.
그리고 걱정을 담아 팀원들을 봤다.
“팀장님께선 나와 다른 타입의 리더라 많은 게 달라질 거야.”
아마 간식의 퀄리티부터 달라질 거다. 그동안은 종혁이 팀장직을 수행하기에 사비로 냉장고를 채웠지만, 이제부턴 그럴 수 없다.
“왜, 왜요?”
“그런 행위가 팀장의 권위를 넘보는 거니까.”
“아니, 그런 게 어디 있…….”
“너희도 한참 어린놈이 돈지랄해서 사람들 환심 사면 기분 나쁘잖아. 안 그래?”
“아…….”
그제야 이해를 한 그들은 좋은 날 다 갔다며 울상을 지었다.
“다들 똑똑히 명심해. 팀장님은 부서장이야. 팀장님이 우리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우리가 팀장님에게 맞춰야 돼. 그게 조직이야.”
“……예.”
“알겠습니다.”
“그래. 나도 중간에서 할 수 있을 만큼 해 볼 테니까 다 같이 노력해 보자.”
“옙!”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멀쩡한 모습으로 보자. 팀장님께는 내가 잘 말할 테니까.”
“예, 팀장님 아니, 부팀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저흰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손을 저은 종혁은 오택수 최재수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팀장님 어디…….”
“어후. 취한다.”
주한빈이 화장실 쪽에서 휘청거리며 다가온다.
“자! 5차 가야지, 5차. 뭐야, 다들 어디 갔어?”
“내일 시무식이잖습니까. 다들 힘들어하기도 하고 시간도 다 늦어서 제가 먼저 보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랬어? 쯧.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체력이 없어서야…… 나 때는 아침 7시까지 마시고도 출근했는데……. 이모님, 계산!”
그렇게 계산을 마친 그들은 길가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끽!
“기사님, 워커힐 호텔이요.”
“뭐야, 우리집은…….”
“댁이 인천이시잖습니까.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일단 오늘은 호텔에서 주무십시오. 세탁 서비스까지 예약했고, 1108호입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헤벌쭉 웃은 주한빈은 종혁의 목을 툭툭 두드렸다.
“이렇게만 해, 최 경감. 이렇게 날 도와주란 말이야. 난 최 경감만 믿는다.”
“옙! 들어가십쇼!”
오택수와 최재수도 거수 경례를 했고, 문이 닫힌 택시는 출발했다. 그렇게 멀어지는 택시를 응시하던 오택수는 담배를 물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서? 오늘 그렇게 혀를 현란하게 놀린 이유가 뭔데?”
오늘 종혁은 평소의 종혁 답지가 않았다. 간신도 이런 간신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풉!”
코웃음을 터트린 종혁도 담배를 물었다.
“저 인간 하나도 안 취했어요.”
“……뭐?”
“예에?!”
“아니다. 몸은 취했지만 이성은 꽉 붙든? 아까 제가 애들한테 하던 말도 다 들었을걸요?”
분명 기척 하나가 가까이 온 걸 느꼈다.
“그, 그럼? 그래서 네가 혓바닥을 그렇게?”
“제가 전에 말했잖습니까. 새로 온 팀장에게 적극 협력할 거라고.”
“아니, 그래도…… 대체 왜…….”
“능력은 있잖아요.”
종혁이야 미래의 지식이 있으니 쉽게 떠올릴 수 있었던 간편 신고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걸 이제 아저씨가 되는 나이의 주한빈이 떠올렸다. 초고속 승진을 한 엘리트 간부답게 능력이 있단 소리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적극 협력은 해 주되 아무것도 넘길 순 없다. 그것이 혹여 팀원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주한빈이 쥐어짤 때마다 팀원들은 종혁을 찾을 터.
“미친…… 아, 난 모르겠다. 너 알아서 해라, 씨발.”
“와, 진짜 팀장님 머리는…….”
타악!
종혁은 최재수의 입을 때렸다.
“입. 아가리. 저 팀장 앞에서도 날 팀장이라고 부를래?”
“아, 죄송합니다.”
“주의하자.”
“옙!”
“자, 그럼 우리도 집에 갑시다.”
“아, 쓰브럴. 그냥 사무실에 정복을 가져다 놓을 걸 그랬나?”
오택수와 최재수는 애처롭게 저녁 서울의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흔들었다.
“택시-!”
한편 종혁이 예약한 호텔방에 들어와 따뜻한 물로 씻은 주한빈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방에 들어오니 이제야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흠. 최종혁 경감…….”
솔직히 오늘 종혁의 모습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항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쪽에서 빈틈을 드러내자마자 팀원들을 다독이며 본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팀장에게 맞춰야 한다라……. 나이가 어려서 걱정했는데 주제를 아는 간부였군.”
이렇게 자기 주제까지 알고 있으니 인천청장도 욕심을 내는 것일 터. 아직 밑바닥을 다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대충 견적이 나왔다고 봐야 했다.
어떻게 꼬드겨야 할까 생각을 하던 주한빈은 돌연 낯빛을 굳혔다.
“그보다 대단하군.”
그 늙어서 굳은 머리로도 간편 신고 시스템을 생각해 낸 이택문 경찰청장. 한발 늦어서 아쉽긴 하지만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러면서도 같은 걸 생각했다는 것에 희망이 생긴다.
이대로 계속 진급을 하면서 주한빈 자신의 능력을 계속 갈고닦으면 경찰청장도 무리가 아니라는 희망이 말이다.
“이왕 조직에 들어왔으면 정점을 노려 봐야지.”
족벌로 운영되는 대기업처럼 결코 넘을 수 없는 천장이 있는 게 아니라, 능력과 정치력이 좋으면 정점에 앉을 수 있는 경찰.
나름 상류층에 가까운 중산층에서 태어난 그로선 충분히 노려 볼 수 있는 목표였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침대에 누운 그는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올렸다.
그 순간 스멀스멀 올라오던 취기가 그의 머리끝까지 덮쳤다.
* * *
다음 날, 주한빈이 약간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난 걸 제외하면 시무식도 무사히 끝나면서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 됐다.
“내가 다른 걸 바라는 건 아니야. 복장 단정, 시간 엄수, 상명하복. 딱 정도만 지키란 거야.”
“옙!”
“좋아. 그럼 구호 한번 하고 가지.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
“파, 파이팅!”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
“파이팅!”
“업무 시작!”
‘아주 별걸 다하는구나.’
종혁은 컴퓨터를 켜는 주한빈에게 다가갔다.
“그럼 저와 오택수 경위는 출장 나갔다 오겠습니다.”
“출장?”
팀원들도 다급히 종혁을 봤다.
“콘텐츠 제작 현장을 둘러보면서 관리를 해야 돼서 말입니다. 출장계도 이미 제출했고, 승인도 났습니다.”
“언제 복귀하지?”
“전국 촬영장을 다 돌아봐야 해서 꽤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래야 너도 편하지 않냐는 종혁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이쪽을 보며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재빨리 고개를 돌리는 팀원들을 발견한 주한빈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협력을 해 주는군.’
그는 이제 의심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알았어. 다녀와.”
“충성. 가죠, 오 경위님.”
“충성.”
‘안 돼! 가지 마!’
팀원들은 속으로 손을 뻗었지만, 그중 최재수의 간절함이 제일 컸지만 종혁과 오택수는 무시하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야, 나도 모르는 출장은 언제 잡았냐?”
“어제요.”
어제 업무 보고가 끝나자 기획조정관에게 연락을 해서 받아 냈다. 주한빈은 아직 정식으로 발령받아 온 게 아니라서 문제는 없었다.
“이유는?”
“내가 없어야 귀한 줄 알죠.”
입술을 비튼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사장님. 저 최종혁입니다. 예, 예. 내일부터 빵을 배송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을 전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아뇨, 아뇨. 다른 가게를 뚫은 게 아니라 새 팀장님이 오셔서요.”
오택수는 키득키득 웃었다.
“잔인한 새끼.”
주한빈은 꿈에도 모를 거다.
종혁은 주한빈이 부서를 장악하라고 자리를 비우는 게 아니라 불만을 만들기 위해서 비우는 거란 걸.
“가죠.”
그동안 아침 배달을 받았던 모든 업체와의 계약을 끊은 종혁은 오택수를 툭 쳤다.
“어디부터?”
“음. 부산부터?”
종혁은 정말 전국을 돌 생각이었다.
끼룩끼룩! 끼룩끼룩!
겨울인데도 춥지 않은지 갈매기가 울어 대는 부산의 바닷가.
“아이고. 오셨어요, 최 팀장님!”
“하하. 잘 계셨죠? 그리고 저 이제 팀장이 아니라 부팀장입니다. 팀장님께서 새로 오셨거든요.”
“아…….”
“전 아무렇지 않으니까 표정 푸세요. 그보다 촬영에는 문제없죠?”
“그, 그럼요! 아, 안으로 오시죠!”
종혁과 오택수는 조연출의 안내를 받아 촬영 현장으로 향했다.
부산을 무대로 마약계 형사와 마약 중간 판매책이 협력하여 거대 마약 조직의 보스를 잡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의 촬영 현장.
종혁은 감독과 감독의 뒤에서 모니터링을 하던 배우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극중 마약반 10년 차 형사 역할을 맡은 윤성민.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연기력으로 흠잡을 곳 없는 연기파 배우다. 훗날 두 개의 천만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천만배우에 등극한다.
그 옆에 있는 류승재 배우 역시도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다.
“오셨습니까, 최 팀장님!”
“푸핫. 억양이 부산 사람 다 되셨네요.”
“으흐흐. 부산 형사를 맡았는데 당연히 이래야지요.”
“저도요!”
종혁은 이들이 그만큼 영화에 몰입해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아, 맞아. 그리고 저 이제 팀장 아닙니다.”
종혁은 놀라는 감독과 윤성민을 향해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다고 제 투자가 중단되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마세요.”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명의가 아니라 개인 투자자로서 투자를 하며 경찰 이미지에 대해 컨트롤을 하는 종혁.
이건 자신의 업적이기에 팀장이 새로 왔다고 해서 투자를 끊을 순 없었다. 물론 이후 촬영되는 영화나 드라마들은 달라지게 될 테지만 말이다.
이를 모르는 감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전 믿고 가겠습니다.”
“예. 좋은 영상미 부탁드립니다.”
종혁은 윤성민을 봤다.
“연기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어데요. 그런 것 없심…… 하하, 그런 것 없습니다. 최 팀장님, 아니 최 부팀장님이 마약반 형사님들도 소개시켜 주시고 교도소에 있는 마약 판매책과도 인터뷰를 시켜 주셨잖습니까.”
“옙! 저도 와…… 마약 중간 판매책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이란 걸 처음 알았잖아요. 연기에 도움이 크게 됐으니 너무 걱정 마십쇼! 충성, 충성!”
“하하, 다행이네요. 그럼 계속 좋은 연기 부탁드리겠습니다.”
배우들의 컨디션도 좋은 것 같자 종혁은 만족하며 돌아섰다.
그때였다.
“아, 저 부팀장님.”
“예?”
“음…… 아닙니다.”
종혁은 말을 하다 마는 윤성민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왜요. 무슨 일이신데요. 편히 말해 주세요.”
종혁의 따뜻한 재촉에 우물쭈물 거리던 윤성민은 결국 입을 열었다.
“그게…….”
“슛 들어가겠습니다! 준비해 주세요!”
“아닙니다. 그럼! 가자, 승재야.”
혀를 찬 종혁은 류승재와 함께 카메라 앞으로 향하는 윤성민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뭐지?’
“야, 시작한다.”
“하이-! 액션!”
종혁은 시작된 배우들의 연기에 입을 다물었다.
* * *
오후부터 시작된 촬영은 새벽까지 진행됐다.
그때까지 남아 촬영을 지켜보던 종혁은 슬그머니 따뜻한 캔커피를 챙겨들고 윤성민에게로 향했다.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고된 촬영에 넋이 나가 있던 윤성민은 추운 기온에 얼어붙어 가던 손가락이 녹아들자 재빨리 캔을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꿀꺽!
“아따, 살긋다! 고맙습니데이.”
“하하.”
종혁은 함께 가져온 캔커피를 따며 그의 옆에 앉았고, 뭔가를 눈치챈 윤성민은 다시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부팀장님, 그게 말입니다. 그게…… 후우, 제 지인이 웬 회사에 거금을 투자했는데 말입니다.”
“음? 그런데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게 마음에 걸려서 말입니다. 제가 연기밥만 먹다 보니 사회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러는지도 모르는데…….”
“예, 편하게 말씀하세요.”
“원래 투자 배당금이라는 게 1년에 20퍼센트씩 주고 그럽니까?”
흠칫!
어디서 많이들은 것 같은 레퍼토리.
순간 낯빛이 굳어졌던 종혁은 재빨리 표정을 풀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회사마다 다르죠. 건실한 회사라면 그렇게도 줄 수가 있긴 한데…….”
거짓말이다. 세상 그 어떤 회사라도 투자자에게 1년에 20퍼센트씩 배당을 해 주는 곳은 없다. 정말 자금이 급한 곳이나 그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할 것이다.
“무슨 회사라고 하던가요?”
“음. 무슨 의료 기기를 대여해 주는 회사라던데…….”
움찔!
시선을 아래로 내린 종혁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아, 그래요? 정확한 건 모르시고요?”
“저는 원체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서, 하하. 제 지인에게 한번 물어볼까요?”
“음.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배우님께서 걱정을 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어이구. 이거 제가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싶네요.”
“아닙니다. 경찰이라면 당연히 해야 될 일이죠. 아무튼 제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 우리 윤 배우님께서는 아무 걱정 마시고 연기만 잘해 주십시오. 파이팅.”
“옙! 파이팅!”
일어나 몸을 돌린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조희구.’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
희대의 사기꾼, 조희구.
그는 의료 기기 대여라는 다단계 투자 사기를 했던 사기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