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31화 (23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31화>

66. 굴러온 돌

12월이 되자 전국 경찰서뿐만 아니라 본청도 떠들썩해졌다. 범죄율이 급증을 하는 연말이기도 하지만, 연말정산 때문이다.

또 1월이면 인사이동이 시작된다.

누가 올지, 또 누가 갈지.

그들의 눈과 귀가 활짝 열렸다.

“무조건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으로 간다!”

“특수도 좋아!”

“야, 광수대도 좋더라.”

“자네, 이 나라의 치안을 담당해 볼 생각 없나?”

이렇게 시끄러운 본청.

그건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도 다를 게 없었다.

기획조정 산하로 편입이 되면서 더 넓은 사무실을 배정받은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

“어, 씨발. 올해는 왜 이것밖에 안 나와?”

“뭐가요?”

오택수의 모니터를 본 종혁은 피식 웃었다.

“휴가 시즌에 휴가를 그렇게 썼는데, 휴가 지원금이 나오겠어요?”

정해진 휴가를 쓰지 않으면 그 휴가 일수만큼 돈이 나오는 공무원.

“아니, 그래도…….”

오택수뿐만이 아니다. 다른 팀원들도 작년과 비교를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에라이, 이 양심 없는 사람들아. 올해 받은 성과급과 상여금이 얼만데…….’

“그보다 특진 포인트는 얼마나 쌓였어요?”

만년 경위 오택수. 진급을 하더라도 사고를 쳐서 계급이 강등되기를 반복하다 파출소를 전전했던 그.

함께 해결한 사건이 많고, 올해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이 많은 성과를 올렸기에 종혁은 무심결에 툭 던져 봤다.

“특진 포인트? 글쎄?”

키보드를 몇 번 두드려 본 오택수는 눈을 껌뻑였다.

“야. 종혁아. 최 경감.”

“왜요? 얼마나 쌓였는데?”

“아니, 나 내년 진급 대상자다? 명단에 올랐어.”

“오?”

“진짭니까?”

귀를 쫑긋 세운 팀원들이 몰려들었다가 축하의 말을 건넨다.

“축하드립니다, 오 경위님!”

“이제 오 경위님도 경감님!”

“하하, 고맙다.”

자신과 진급은 인연이 없을 거라 여겼던 그였기에 팀원들의 축하가 얼떨떨하면서도 크게 다가온다.

‘모두…….’

종혁 덕분이다.

종혁이 불러 주지 않았으면 이렇게 진급을 할 수 있었을까.

“아, 너희들도 한번 살펴봐!”

그 말에 눈을 크게 뜬 그들은 재빨리 자리로 돌아가 키보드를 두드렸고 이내 눈을 부릅떴다.

“우왁!”

“이예스!”

특진 포인트가 초과됐거나 거의 근접하다.

종혁은 뜨겁게 달아오르는 사무실에 피식 웃으며 사무실 한구석에 마련해 놓은 흡연실로 향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니 오택수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다.

“고맙다.”

“응? 뭐가요?”

“……다 이 새끼야. 다.”

“고맙다면서 왜 욕을 합니까?”

“몰라, 인마.”

종혁은 얼굴을 붉히는 그를 보며 푸근히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그래…….”

잠시 흡연실에 훈훈한 공기가 맴돌았다.

“아, 그런데 넌?”

올해 종혁이 이룩한 성과가 얼마나 많던가.

여기에 국회의원을 넘어트릴 만큼 큰 사건을 해결했고, 그에 전국 특수학교에 전면 조사가 들어간 상황이다. 아마 어마어마한 포인트가 쌓였을 터.

“경감 단 지 얼마나 됐다고요. 윗분들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경감을 단 지 1년 만에 또 진급을 시킨다?

경찰도 사람인 이상, 종혁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볼멘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종혁 본인은 그런 남들의 시선은 신경을 쓰지도, 쓰고 싶지도 않지만 윗분들은 그렇지 못할 터.

그들을 곤란하게 만들면서까지 진급을 바라진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진급 속도였으니까.

“전 먼저 나갈 테니까 적당히 피고 나오세요. 할 말도 있으니까.”

“할 말?”

눈을 빛낸 오택수는 얼른 담배를 끄며 뒤를 따랐고, 종혁은 어수선해진 팀원들을 보며 손뼉을 쳤다.

짜악!

“이번 설화학교 사건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많아.”

고개를 돌렸던 팀원들이 진지한 종혁의 얼굴에 자세를 바로 한다.

“경찰이 피해자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 줬다면 어땠을까.”

조상구 선생님이 박수영을 데리고 잠적한 이유가 뭐던가. 경찰을 믿지 못해서다.

서천웅의 뒤를 봐줬던 모정대.

실종 신고를 했음에도 수사할 의지가 없던 경찰서.

“아니, 그보다 더 본질을 파고들어서 정신연령이 낮은 장애아라도 신고를 편히 할 수 있는 간편 신고 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그런 시스템이 있었다면 아이들 중 누군가는 신고를 했을지 모른다.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은 가능성. 제로가 아니다.

설화학교의 지적장애아들뿐만이 아니다.

말을 하거나 들을 수 없어 수화밖에 못하는 지체장애인들이나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불법 체류자들도 있다.

또한 경찰을 믿지 못하고, 112에 신고하기가 꺼려져 범죄를 당하거나 목격을 하고도 침묵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을 위한 비대면 간편 신고 시스템, 우리가 만들자.”

보다 나은 경찰의 이미지를 위해.

쿵!

순간 사무실이 방금 전과 다른 의미로 달아오른다.

“예!”

“비대면 간편 신고 시스템이라…… 이미 있잖아?”

“아닙니다. 기존 인터넷 신고처럼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게 아니라 문장 하나, 사진 한 장을 첨부하는 것만으로도 신고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신고자가 지금 사건이 접수됐는지, 수사가 진행 중인지, 사건이 종결됐는지까지 간편하게 알 수 있도록 만드는 거다.

또한 간편한 인증 시스템을 도입해 굳이 아이디를 생성하지 않아도 신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거다.

“신호 위반, 과속, 불법 주차 신고가 빗발치겠군. 장난 신고도.”

“훌륭하십니다.”

종혁은 솔직히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다는 말을 덧붙였고, 기획조정관은 개소리 말라는 듯 코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탁 까놓고 말하자. 그래, 새로운 신고 창구를 만들겠다. 의미가 좋아. 뜻도 좋고. 그런데…….”

기획조정관의 눈빛이 흥미로 번들거렸다.

“이거 감찰 기관을 따로 만들자는 거잖아.”

사건 접수부터 종결까지 국민이 안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현재도 전화로 경찰서에 연락을 하면 그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문제는 이게 인터넷 사이트라는 점이다.

즉, 본청이 원하기만 한다면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전국의 모든 수사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떤 견찰 새끼가 수사를 개좆같이 했는지 알 수 있겠지. 아니야?”

신고를 했는데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채 사건 종결이 된다면, 이를 납득하지 못한 사람은 분명 재신고를 할 터.

이때 본청은 그에 대한 사건자료를 요구할 수가 있었다.

씨익!

종혁의 입술이 비틀렸다.

“신문고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정말 간절하고 억울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 줄 신문고.

그러면서 얼마 전의 모정대처럼 아직까지도 숨어 있는 견찰을 후려칠 감찰 기관.

기획조정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소속은?”

“표면적으로는 신고센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 청장님들을 모아야겠군. 그 전에 차장님부터 뵈어야겠지만.”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겠습니다.”

종혁은 고개를 숙였다.

*   *   *

불이 켜진 본청의 대회의실.

전국 경찰청의 청장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올라올 때부터 이미 기분이 좋지 않았던 그들.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우리의 신고센터를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그들의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말이 간편 신고 시스템이지, 결국 너희의 신고센터를 믿지 못하니 새로 신고 창구를 개설하겠다는 것.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럼 뭔데?!”

“아, 그게…….”

오늘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경무부 소속의 삼십대 초반의 젊은 간부.

그는 전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울상을 지으며 다급히 발표 서류를 뒤졌고, 멀리서 그걸 지켜보던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씨발. 떠 먹여 줘도!’

제안은 종혁이 했지만, 결국 새로운 부서를 만드는 일이다.

경무부에서 맡는 게 맞았다.

‘그래서 넘겼는데…… 얼씨구?’

이젠 여기를 쳐다보기까지 한다.

“어이, 어딜 보는 거야! 지금 우리 말 안 들려?”

“지금 바쁜 사람들 모아놓고 뭐 하는 거야! 장난해?!”

“그, 그게…….”

살벌해지는 분위기에 종혁은 옆에서 이마를 잡고 있는 경무부 간부를 응시했다.

“후우, 미안하다. 애써 넘겨줬는데…….”

그냥 넘기기만 했는가?

아니다. 이 PPT까지 모두 종혁이 만든 그대로를 가져다 썼다.

즉, 발표만 하면 되는 일이라서 젊은 간부에게 맡겼는데, 혹여 자신의 밑에서도 종혁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을까 해서, 또 자기도 잘할 수 있다고 하기에 맡겼는데 이렇게 똥을 싸고 있다.

“아닙니다.”

한숨을 푹 내쉬며 일어선 종혁은 단상으로 걸어가 젊은 간부의 손에서 마이크를 뺏었다.

“이번 비대면 간편 신고 시스템을 건의한 기획조정 소속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최종혁 경감입니다.”

종혁의 이름이 나오자 센터장들은 눈을 빛냈다.

박종명 부산청장은 슬쩍 손을 들며 잘하라며 응원을 했다.

‘지랄.’

그가 뭔 짓을 했는지 아는 종혁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겉으론 고맙다며 미소를 보냈다.

“일단 청장님들께서 우려하시는 부분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신고 창구를 분할시켜서 센터 업무의 강도를 낮추자는 겁니다. 청장님들께서도 센터에서 접수하는 사건이 평균적으로 몇 개인지 다들 아시잖습니까. 그리고…….”

종혁은 스크린을 향해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성희롱 & 진상, 장난 전화]

‘이렇게 버튼 하나만 눌렀으면 됐을 텐데, 씨발!’

“신고를 받기도 바쁜데 경찰들을 붙잡고 이런 개짓거리나 하는 놈들 때문에 업무의 강도가 더 높아지지 않습니까.”

경찰이라고 성희롱을 당하지 않는 게 아니다. 여경뿐만 아니라 남경들 역시도 이런 일들에 시달린다.

장난 전화는 또 어떤가.

신고센터에서는 이게 일상이었다.

“음.”

“으음.”

낯빛이 무거워진 청장들이 혀를 찬다.

안 그래도 이 부분은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신고센터가 한직에 가까운지라 묵인을 하고 뒤로 달랠 뿐.

또 이런 전화 중에서 사건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보니 단호하게 대처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신고 창구를 분할시켜도 이런 놈들은 전화를 걸 테니, 그를 위해 매뉴얼을 강화하고 전담 부서를 설립할 것을 건의합니다.”

오늘 이 프레젠테이션은 통보를 하는 게 아니라 이런 걸 만들 테니 협조해 줄 수 있겠냐 설득을 하기 위해 만든 자리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청장들이 반대를 한다면, 이택문 경찰청장도 강력히 밀어붙일 수 없었다.

“전담 부서? 그러니까 욕받이를 만들자고?”

“정확히는 우리 경찰의 인권을 위해 이런 놈들을 따로 관리, 단호하게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겁니다.”

종혁은 다시 리모컨을 눌렀다.

[지금부터 신고자님의 통화 내역은 모두 녹음이 되며, 법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명시합니다.]

“전담 부서로 넘기는 대기콜에 이 문구를 삽입하는 겁니다.”

“……호오. 억지력을 만들자는 건가?”

“나쁘지 않은데?”

112콜에 이 문구를 삽입한다면 신고를 하려다가도 마는 사람이 생길 테지만, 대기 콜에 삽입을 한다면 문제가 없다.

종혁은 그들의 분위기가 바뀌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택문 경찰청장님께서 신고센터의 전문화 및 전문 인력 양성의 뜻을 밝히셨는데, 신고센터에 해가 될 일을 할 리가 없잖습니까. 보다 나은 센터를, 신고 문화를 만들고자 함이니 청장님들께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종혁은 부디 그래 주시라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이제 오해가 모두 풀린 청장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우리가 오해한 건 사과하지. 한데 문제가 있어.”

“인력 문제에 관한 것이라면, 올해 경장으로 진급을 하는 경찰들과 순환 보직을 마친 경위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을 예정입니다. 또한 청장님들께서 이 안건에 동의를 하셔서 통과가 된다면, 앞으로 순환 보직을 하는 초임 간부들은 무조건 이 시스템을 담당할 부서를 거치게 할 예정입니다.”

본청은 치안상황 관리관 휘하의 위기관리센터에 편입이 될 것이다.

“물론 원활한 운영을 위해 각 센터에서도 관리자를 차출하게 될 겁니다.”

현재는 임시적으로 이렇게 인력을 충원해 운영을 하되 이후 경찰대와 중앙경찰학교에서부터 전문적으로 배운 인력들로 점점 교체시킨다.

신고 센터가 전문화될 때까지 길어야 7년이었다.

웅성웅성.

“좋은데?”

“응. 나쁘지 않아.”

가장 좋은 건 바로 한직이었던 신고센터가 더 이상 한직이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그 말은 즉 지방청의 권한과 TO, 예산이 늘어난다는 것.

청장들로서는 이 TO와 예산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종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 고비를 넘겼군.’

그러던 종혁은 경무부 간부에게 넘기며 손을 뗀 내가 왜 이래야 하냐며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박종명 부산청장이 입을 열었다.

“일단 신고센터를 위해 이렇게 애써 줘서 고맙군. 청장인 우리가 먼저 생각을 했어야 할 일이었기에 부끄럽기도 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우리 대전청도 같은 생각이야.”

“서울청도 마찬가지.”

“감사합니다. 그럼 더 이상 질문이 없으시다면…….”

“하나 더.”

박종명 부산청장의 눈매가 좁아진다.

“이거 각 도의 일은 지방청에 맡기는 거…….”

종혁은 말을 하다 마는 그를 보며 혀를 찼다.

‘눈치챘군.’

역시 고위 간부답게 이 간편 신고 시스템 속에 숨겨진 다른 의도를 읽어 버렸다.

그런데 이는 박종명 부산청장뿐만이 아니다. 다른 지방청의 청장들 역시도 눈을 매섭게 빛내고 있었다.

“아니, 이건 경찰청장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눠야겠군. 일단 총괄 관리감독은 치안상황 관리관이 맡게 되는 건 확실하겠지?”

“예, 그렇습니다.”

‘아, 또 불안하게 왜 그런 질문을…….’

종혁은 청장들 사이에 앉아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까딱이는 치안상황 관리관이 어느쪽 파벌이었나 기억을 뒤져 봤다.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이었네. 정말 우리 부산청에 데려오고 싶어. 진심이야.”

“엇! 욕심내기 있습니까? 이봐, 최 경감. 오늘 저녁 시간 돼?”

“어허. 최 경감은 우리 서울청에서…….”

“하하. 더 이상 질문이 없으시다면 이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짝!

고개를 숙인 종혁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끝났군.’

이로써 올해 해야 될 일은 모두 끝났다.

이후 나머지를 지지든 볶든 모두 이들 고위 간부들의 일. 어차피 간편 신고 시스템이 통과되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일이었다.

다만 어디까지 양보하느냐, 뭘 얼마나 주고받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택문 청장님 파이팅.’

종혁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   *   *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은 12월이 되자 더 빨리 지나가 버렸다.

어느덧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거리엔 캐롤송이 울려 퍼졌고, 연인들과 가족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크리스마스 나들이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아쉽게도 화이트크리스마스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물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었다.

웅성웅성.

사람들로 가득한 강남의 한 술집.

몸을 움츠린 종혁이 안으로 들어선다.

“어우, 추워. 올해는 유난히 추운 것 같네.”

“흥.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춥긴 뭐가 추워? 네가 군부대의 추위를 알아? 거긴…… 읍?! 읍읍!”

“예, 예. 거기까지만 합시다, 박수호 병장님.”

말년 휴가를 나온 수호의 입을 틀어막은 종혁은 안쪽의 룸으로 향했다.

“저희 왔습니다!”

“요, 종혁!”

문을 여는 종혁을 발견하자마자 준형이 손을 번쩍 들며 인사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형들과 김재우도 손을 들며 둘을 반긴다.

대한민국의 레전드 보이그룹인 그들과 배우 정혁.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그 달동네의 멤버가 모두 모였다.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텐션이 높은 준형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낯빛이 밝지가 않았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종혁과 박수호는 활짝 웃으며 준비한 하모니카를 입에 물었다.

삐리리리리!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를 가는 날-!”

“야, 이 나쁜 새끼들아!”

“닥쳐-!”

그랬다. 준형을 제외한 이들 전원이 내년에 군대를 가게 된 것이다.

원래는 나이가 찬 멤버들만 가려고 했는데, 이왕 가는 김에 다 같이 입대를 하기로 한 그들.

“푸흐흐. 그런데 어쩌자고 이런 기특한 선택을 한 거예요?”

원래 역사대로라면 이들 중 몇 명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국적이 미국인 터라 병역의 의무가 없는 탓이다.

그런 형들이 모두 자원 입대를 신청했다.

그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솔직히 혁이 형이 제일 걱정됐지.’

원 역사대로라면 병역 비리에 얽혔을 그.

그런데 지금은 그런 낌새조차 없었다.

움찔!

“그건 뭐…….”

종혁을 힐끔 본 그들은 풀썩 웃었다.

모두 경찰인 종혁 때문이다. 키다리 아저씨였던 종혁에게 미안해지기 싫어서. 쪽팔리기 싫어서 자원 입대를 신청한 것이다.

“음?”

“아니야. 지금 상황에서 그게 뭐가 문제야. 군대에 간다는 게 중요하지.”

“하. 군대를 안 가는 넌 모른다. 이 형들의 답답한 심정을.”

자원 입대를 선택했지만, 그래도 군대는 군대다.

24개월 동안 자유를 박탈당하는 곳.

그들의 마음은 심란 그 자체였다.

“전 압니다, 형들!”

“그래, 수호야! 우리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어흑! 수호야!”

“수호 형!”

형들은 수호를 와락 끌어안으려 했지만, 수호는 코웃음을 치며 그들의 팔을 툭툭 쳐 냈다.

“응?”

“훈련병 찌끄래기도 못 되는 양반들이 어디 감히 말년 병장을 건드려? 미쳤어? 와, 이 형들 개념 없네.”

“수, 수호야?”

“이야, 그 나이 먹고 이제야 군대 간다고? 그것도 1월에? 와, 씨. 나 같으면 그냥 자살했다. 내가 1월 군번이라서 장담합니다.”

순간 룸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 새끼 죽여.”

“응. 죽이자.”

“어? 자, 잠깐? 악! 아악!”

순간 시끄러워지는 룸.

한바탕 난리를 치는 그들을 무시한 종혁은 이 중 유일하게 군대를 안 가는 준형을 향해 술병을 들었다.

“저 멍청이들은 무시하고 마시죠.”

“오우. 굿 아이디어. 만땅으로 따라 봐.”

“부어! 마셔! 죽어!”

숙취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겠다는 듯 쏟아붓던 그들은 얼마 못 가 장렬히 산화하고 말았다.

“어흐. 군대 가기 싫어!”

“지금이라도 취소해 줘-!”

“2차! 2차아!”

“에라이, 이 진상들아.”

그들이 타고 온 밴에 모두 구겨 넣은 종혁은 구슬땀을 뻘뻘 흘리는 매니저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못 즐겨서 어떡해요?”

“하하, 괜찮습니다. 어차피 애인도 없는걸요.”

“아…….”

이 순간 종혁도 울고, 매니저도 울고, 수호도 울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차가 멀어지자 종혁은 수호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말년 휴가라고?”

“어. 1월 4일에 부대에 복귀했다 다시 나오면 돼.”

“햐, 시간 참 빨리 가네.”

수호가 군대에 간다고 난리블루스를 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제대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수고했고, 고생했다.”

그리고 무사히 견뎌 줘서 너무 고마웠다.

올해 유독 많았던 군 관련 사건사고.

종혁은 그때마다 수호는 괜찮은지 부대에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뭘. 남들도 다 가는 건데.”

“……풋. 역시 남자는 군대에 다녀와야 하는가 보다. 네가 그런 어른스러운 말을 다 할 줄 알고. 박수호 남자 됐다잉?”

“뭐야? 야, 이씨!”

“푸흐흐. 그래서 제대하고 뭐 할 거야? 계획은 세워 놨어?”

4학년 마지막 학기까지 모두 마친 후에야 군대에 간 수호.

“뭐, 일단은 푹 쉬었다가 여행 자금을 모아 볼까 생각중이야.”

“여행?”

“응! 해외여행! 렌트카를 타고 스위스의 눈 덮인 산맥의 도로를 쫙 달리면서 국경도 넘고 어?”

“……에라이.”

변한 줄 알았는데 역시 알맹이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흔히 여행은 무전여행이라고, 그래야 얻는 게 많다고 말하지만 몸 편하고 즐거운 휴가 같은 여행에서도 얻는 건 많다.

생각하고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면 어떤 방식의 여행이건 상관은 없다.

“그래, 뭐든 응원한다. 몸 무사히만 돌아와.”

“역시 너라면 그렇게 말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런데 종혁아…….”

“응?”

“너 차에 대해 잘 알지?”

“차?”

종혁은 얘가 대체 뭘 부탁하려나 싶어 눈을 껌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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