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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30화 (230/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30화>

-여기를 아프게 했어요. 여기 안을…… 막…….

진실이었다.

믿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될 이야기였는데 모두 진실이었다.

탁!

바지를 움켜쥐고 있던 현몽준 의원은 갑자기 멈춘 영상에 종혁을 응시했다.

핏발이 선 그의 눈에 종혁은 덤덤히 입을 열었다.

“요안나란 아이입니다. 나이는 14세이고, 아버지는 8살 때 사망하였고 어머니는 그 충격에 반신불수가 됐습니다. 그래서 설화학교의 기숙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 말은…….”

“일단 더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럽시다.”

현몽준은 다시 노트북을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바지를 움켜쥐었다.

이후 영상이 모두 끝나자 종혁은 노트북을 닫고 현몽준을 보았다.

“요안나뿐만이 아닙니다.”

무려 11명의 아이가 부모가 없어서, 법적 대리인이 정상인이 아니라서 고소를 못하고 있다. 박수영처럼 유일한 보호자인 조부모가 치매인 아이도 무려 3명이다.

“그래서…….”

잠시 말을 줄인 종혁은 품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설화학교 설립 25주년 기념사진과 후원회 회원들의 사진이다.

“구국명 의원…….”

종혁이 말한 인물이다.

현몽준 의원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이놈들로 하여금 죗값을 치르게 만들고 싶습니다.”

뒤로 물러난 종혁은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숙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원님.”

쿵!

현몽준은 눈을 부릅떴다.

그 당당하고 재치 있던 청년이 머리를 조아린다. 타인을 위해 망설임도 없이 무릎을 꿇는다.

현몽준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잠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만약 내가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의원님!”

고개를 번쩍 든 종혁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지만, 현몽준은 손을 저었다.

“대답부터 해 주십시오.”

“……글쎄요.”

가능하면 거기까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현몽준을 설득할 수 없다면, 형사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을 수밖에 없기에.

순간 종혁의 전신에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고, 그의 두 눈엔 서늘한 악의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이었던가.’

그 눈빛으로 답을 얻은 현몽준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미지근해진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건물 몇 개는 팔아야 할 겁니다.”

종혁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해선 많은 돈이 들 터였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모두 팔아야 한다고 해도 팔겠습니다.”

부탁을 하러 왔기에 이 정도는 각오했다.

현몽준 의원이 말하는 돈은 아마 다른 의원들을 설득할 때 쓰일 터.

“그 각오면 됐습니다. 난 바빠서 먼저 일어납니다.”

외투를 챙겨 든 그는 나오지 말라며 손을 저었고, 종혁은 닫히는 문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뱉곤 벌렁 누워 버렸다.

“됐네.”

설득이 될지 안 될지 몰라서 불확실했던 수.

한편으로는 그가 거절해서 선을 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역시 이게 옳았다.

이걸로 모든 아이들이 구원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담배를 입에 문 종혁의 입가에 후련한 미소가 맺히기 시작했다.

한편 식당을 빠져나온 현몽준은 담배를 입에 물며 황혼으로 물드는 하늘을 봤다.

“아저씨의 말씀이 진실이었군.”

그때도 이 식당이었다.

이 식당에서 종혁과 만남을 가진 뒤 너무 마음에 든 종혁을 더 알고자 권회수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그때 권회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단단하지만, 선을 넘어야 한다면 서슴없이 넘는 부류.’

세상 전부를 감쌀 수도, 세상 전부를 파괴할 수도 있는 위험한 부류라고 했다.

솔직히 믿지 않았다. 그가 판단한 종혁은 정도를 걷는 이였기에.

한데 권회수의 판단이 맞았다. 방금 전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종혁은 끔찍이도 위험한 부류가 맞았다.

세상을 불태울 거대한 불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그건 아마도…….”

그런 불을 품고 있음에도, 언제든 정도가 아닌 길을 걷을 수 있음에도 정도를 걷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역시 정력이 대단한 친구야.’

“최 경감님을 만나실 땐 언제나 웃으시는 것 같습니다, 의원님.”

“그랬던가?”

곰곰이 생각하던 현몽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재미가 있잖나.”

어떨 땐 능구렁이 같으면서도 어떨 땐 진심으로 부딪쳐 온다.

이런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속에 추악한 구렁이나 숨겨 둔 주위 인물들과는 본질부터 다른 사람이었다.

말없이 차만 나눠 마셔도 재밌는 사람.

“꼭 나를 보는 것 같지 않나?”

“날이 춥습니다, 의원님.”

“……그래. 가지. 그곳으로.”

현몽준은 서울의 한 일식당으로 향했다.

*   *   *

“으흠.”

구국명 의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현몽준 당대표…….”

박노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막대한 기여를 하며 이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 인물이다.

그리고 수많은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며 권력을 공고히 한 인물이다.

다음 대선의 강력한 대권주자.

그런 그가 식사를 하자고 불렀다.

“……설마 나를 후계자로?”

순간 심장이 멎을 정도로 행복한 상상을 했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구국명 본인이 3선의원이라지만, 지방 도시의 국회의원일 뿐이다.

아쉽지만 그는 미련을 버렸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분명 큰 제안을 해 올 터. 과연 어떤 제안일까 그는 상상에 젖어 갔다.

똑똑!

구국명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미안합니다. 내가 늦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도 방금 막 왔습니다.”

“그래요? 앉읍시다.”

현몽준 의원이 앉자 따라 앉은 구국명은 술병을 들었다.

“아닙니다. 후에 약속이 있어서 술을 마실 수가 없군요.”

“아, 그러십니까?”

구국명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런 그의 모습에 냉녹차로 입안을 행군 현몽준은 젓가락을 들었다.

‘맛있군.’

혀 위에서 부드럽게 풀리는 농후한 참치 대뱃살의 맛.

현몽준은 결정을 내렸다. 종혁이 구국명을 언급했기에 만들었던 이 자리에 대한 결정을 말이다.

“구국명 의원.”

“예, 의원님!”

“구국명 의원이 우리 당에서 충성을 바친 게 벌써 20년 정도 되는군요.”

어느 국회의원의 비서로 시작해 정치판에 입문한 구국명 의원.

“하하, 별거 아닙니다. 모두 이 나라의…….”

“요새 꽤 골치 아픈 일이 있다지요?”

움찔!

“……이런 제가 의원님을 걱정시켰나 봅니다. 절 음해 하는 세력이 지껄이는 헛소리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배지 내려놓으세요.”

“예?”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휴지로 입술을 닦은 현몽준은 무심한 눈으로 구국명을 응시했다.

“지금 구국명 의원에겐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발적으로 배지를 반납하고 야인으로 돌아가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는 것. 다른 하나는 강제로 쫓겨나 비루한 개새끼처럼 조리돌림을 당하는 것.”

“의원님, 이게 무슨……! 이러려고 날 부른 겁니까!”

이제야 현몽준이 부른 이유를 알게 된 구국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현몽준은 그런 그를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 다른 길도 있군요. 오늘 이후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오싹!

“방금 전 하찮은 짐승 새끼 따위가 감히 사람을, 아니 천사를 짓밟고 능욕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그 천사님들이 직접 말을 하더군요.”

철렁!

끝났다. 구국명은 모든 게 끝났음을 직감했다.

“의, 의원님…….”

현몽준 의원은 할 말 다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내 정중한 권유를 무시해도 상관없습니다. 국회의원에겐 불체포특권이라는 게 있으니 부정하고 이리저리 압박을 넣으면 무마시킬 수 있겠죠. 구국명 의원도 나름 3선이니까.”

아마 다음 총선에서도 당선이 되어 배지를 달 거다.

“그런데…….”

옷매무새를 정리한 현몽준은 얼어붙은 구국명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감히 너 따위가 내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

“흐읍! 사, 살려…… 살려 주십시오! 의원님! 아니, 대표님!”

쿵 쿵 쿵!

재빨리 뒤로 물러난 구국명은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박았다.

현몽준은 그걸 보며 혀를 찼다.

‘같은 모습이라도 너무 다르구나.’

“오늘 이후로 당사나 의회에서 보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내 충고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제바알!”

스르륵! 탁!

“아악! 아아아아악!”

비명 소리를 뒤로하며 가게를 나선 현몽준은 담배를 물었다.

“빨리 나오셨습니다.”

“버러지 따위에게 할애할 시간이 있겠나. 가지. 법을 개정하려면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아.”

고개를 끄덕인 그는 문을 열었고, 현몽준은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밤이 깊어져 갔다.

*   *   *

교육과 보호의 사각에서 벌어진 끔찍한 만행!

교육자가 아닌 악마!

악마에게 짓밟힌 천사들!

현몽준 당대표 법을 개정하겠다!

성범죄 관련 모든 친고죄 폐지?!

뜻을 합친 여야. 국민이 바라고 있다!

구국명 의원, 겸허히 법의 심판을 받겠다.

“이 개새끼들! 어디 할 짓이 없어서!”

한국이 뒤집어졌다.

선생이 정신연령이 낮은 장애아를 강간한 것도 모자라, 후원회라는 단체에 아이들을 가져다 바친 끔찍한 사건.

국회의원, 병원 원장, 공무원, 조폭 등 수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이 사건에 국민들은 공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에 재판은 유례없이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죄질이 너무 악랄한 바 피고 서천웅과 서호철에게 각기 징역 17년과 15년형을 선고한다.”

“아, 안 돼! 아아아악!”

“형님! 어떻게든 된다면서요! 말 좀 해 봐요, 형님!”

“우와아아아아!”

“그렇지-!”

서천웅과 서호철은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았고, 뒤에서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터트렸다.

고작 17년과 15년.

천사들을 짓밟은 죗값으로는 너무 쌌지만, 이게 끝이 아님을 알기에. 친고죄가 폐지된 순간 이보다 더한 형량이 부과될 걸 알기에.

법의 엄중함이 살아 있음에 부모들은 아이를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트렸고, 아이들도 그에 울음을 터트렸다. 기자들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후우.”

밖으로 나온 종혁의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진다.

“다행히 지켰네.”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인지 공기가 찬데도 차다 느껴지지 않았다.

뚜벅! 뚜벅!

구둣발 소리에 힐끔 고개를 돌렸던 종혁은 다시 하늘을 보며 담배를 주욱 빨았다.

찰칵! 치이익!

옆으로 다가온 강철선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여론이 들끓을 만큼 큰 사건이었기에 이번 사건은 중앙지검이 맡았다.

“수고했데이.”

“뭘요.”

그저 경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뿐이었다.

그런 종혁의 말에 강철선은 흐뭇이 웃었다.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음에도 처음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변치 않기에.

참 여러 유혹에 흔들릴 나이임에도 변치 않기에.

그게 참 고맙고 대견했다.

“이제 우얄끼고? 약속 있나?”

“약속은 없는데 재판은 다 보려고요.”

오늘 하루 모든 피의자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천사들을 잔인하게 짓밟은 악마들의 말로가 어떤지 끝까지 보고 싶었다.

특히 구국명. 종혁 자신으로 하여금 큰돈을 쓰게 만든 그놈의 재판은 꼭 보고 싶었다.

이번엔 성폭력이고, 다음에도 성범죄고, 그다음에야 탈세 등의 처벌을 받아 일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 그.

그리고 감히 경찰 얼굴에 먹칠을 한 모정대의 재판도 보고 싶었다.

“글나? 그람 끝나고 곱창에 소주 한잔하까?”

“곱창전골은 어떠세요. 날도 추운데.”

“뭐든 어떻겠노.”

가슴이 너무도 따뜻해 춥지가 않은데.

아마 이번 겨울은 무척이나 따뜻할 듯싶었다.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드가자.”

“옙!”

그들은 다시 법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싸늘하지만 따뜻한 공기가 그들을 감쌌다.

*   *   *

강원도에선 벌써 눈이 내려 버린 12월 초.

아직 공사가 반절도 채 끝나지 않은 행복의 쉼터 학교가 잠시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한다.

내년 3월이면 손님이 아니라 가족으로 맞이할 사람들.

“우와!”

“와아!”

아이들은 너무도 커다란 학교 본 건물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모들은 저 멀리 지어지고 있는 수영장과 경마장에 뒤집어진다.

그러다 기숙사를, 부모님들을 위한 빌라를 보고 주저앉는다.

“저, 정말 저희 아이가 여기를 다녀도 되나요? 저희가 이런 곳에서 살아도 되는 건가요?”

권회수는 무섭지도 않은지 옷자락을 꼭 잡은 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천사들을 땅에 보내 놓고 무책임하게 방치한 하늘을 대신해 고생한 대가라 생각해 주십시오.”

“어, 어르신!”

“이사장님!”

“아빠, 왜 그래? 또 울어?”

“아니야! 안 울어, 수정아. 이제 수정이랑 함께 살게 돼서 너무 기뻐서 우는 거야.”

“정말? 정말 다 같이 살아?! 우와아아아!”

“와아아아아! 엄마! 엄마도 같이 살아?”

“으응. 내 따알 요아나…….”

“아!”

아차 한 부모들이 다급히 종혁에게 다가와 허리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형사님!”

“형사님들, 감사합니다!”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뭘. 그러니 저희에게 감사하기보다 아이들과 더 함께 있어 주십시오. 저흰 그거면 충분합니다.”

“네! 그럼요! 저흰 그거면 충분합니다!”

손을 젓는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의 모습에 부모들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형사님…….”

“음. 전 잠시 담배 좀!”

“저도!”

후다닥 빠져나온 셋은 숨을 몰아쉬다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담배를 물며 빌라를 봤다.

꺄아우, 호호호, 하하하 해맑은 웃음이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 내는 빌라.

셋의 얼굴에 푸근한 미소가 맺혔다.

‘그래. 이젠 울지 말고 웃으렴.’

언제나. 행복하게.

그것이 곧 보답이고 선물이었다.

이르지만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에 종혁은 행복한 한숨처럼 어깨를 늘어트리며 돌아섰다.

“야, 기분도 째지는데 팬션에 놀러가서 고기나 구울까?”

“아, 그거 좋죠. 기다렸다가 권 이사장님도 모셔 가죠.”

“지금 바로 예약하겠습니다!”

낄낄거리며 어깨동무를 한 셋은 차로 향했다.

정말 이번 겨울은 춥지 않을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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