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26화 (22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26화>

날개 없는 천사들을 도울 방법이 없는가!

행복의 쉼터 재단, 특수학교 설립?!

소외받는 자들의 대부, 권회수 이사장! 이번에도 소외받는 이들을 향해 손을 내밀다!

한국 최고, 최대의 특수학교를 짓겠다!

한때 사채업자였던 그.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랴!

특수학교 유치에 나선 지자체들! 우리 도시로 오세요!

산하 교육재단을 설립한 행복의 쉼터. 첫 번째 특수학교가 지어질 위치는…….

오싹!

“빌어먹을!”

서천웅은 신문을 다시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신문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이곳이었다. 이 도시였다.

얼마 전 언론이 갑자기 ‘우리 주위의 천사들’이라며 장애아들에 대해 다루기 시작해 후원이 늘어서 좋았는데,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교, 교장 선생님! 아니, 형님!”

“입!”

교장실을 박차고 들어온 주임을 향해 일갈을 한 그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었다.

“예, 의원님. 저 서 교장입니다. 잘 계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무슨 일로 전화했는지 아는데, 그 부분은 나도 방도를 찾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설마 서 교장의 설화학교가 있는데, 내가 눈뜨고 지켜보겠습니까?

믿지 못하냐는 듯 구국명의 목소리가 불쾌해진다.

“허허. 제가 어찌 의원님을 의심하겠습니까. 그저 의원님께서 그 병신들을 측은히 여기셔서 혐오 시설을 짓지 않을까 걱정이 든 것뿐이지요. 저희 시에 쓰레기장은 저 하나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주민들이 동네 집값 떨어진다고 싫어하는 특수학교.

교도소, 쓰레기장과 동급으로 취급되는 혐오 시절 중 하나다.

그 부분을 찌르자 구국명의 목소리가 누그러진다.

-그래요. 쓰레기장은 하나로 충분하지요. 그래서 내가 서 교장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다가가기조차 싫지만, 꼭 있어야 하는 필요악. 그런 건 하나로 족했다.

구국명이 마음을 완전히 다잡은 것 같자 서천웅은 흐뭇이 웃었다.

“언제 한번 필드에 나가셔야지요?”

-허허허. 알겠습니다. 시간 한번 내 보지요.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은 서천웅은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다 됐으니 안심하고 교실로 돌아가세요.”

“……예! 수고하십시오!”

허리를 꾸벅 숙인 주임 선생이 나가자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물었던 서천웅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도 움직여야겠군.”

무려 3선이나 한 구국명 의원이기에 믿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둘이 움직이는 게 더 효과가 좋을 터.

재킷을 챙겨 든 그는 교육청으로 향했다.

*   *   *

“아니, 서 교장님 아니십니까!”

“허허. 오랜만입니다, 서 장학관님.”

“어이구, 이게 얼마만이십니까. 이리로 앉으시죠.”

청자와 백자들 따위가 놓여 묵직함이 풍기는 사무실의 소파로 안내된 서천웅은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도자기가 또 늘었구만.’

“아니,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서천웅은 따끈한 녹차를 내려놓는 그의 너스레에 눈을 가늘게 떴다.

“장학관님, 아니 조카님.”

같은 성씨, 같은 파지만 항렬이 낮은 서 장학관.

“아이고, 농담 좀 해 봤습니다. 그 일 때문에 오셨지요?”

서천웅은 그제야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서 장학관의 표정을 살폈다.

웃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불쾌해하는 그.

서천웅은 속으로 혀를 찼다.

‘딱딱한 놈 같으니.’

“솔직히 내가 싫어서 온 게 아닙니다, 장학관님. 나랑 같은 뜻을 함께할 동지가 늘어난다는데 내가 왜 싫어하겠습니까?”

서 장학관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럼요?”

“다 지금보다 높은 곳으로 가야 할 장학관님과 교육감님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움찔!

“음…….”

서천웅은 입질이 오는 그의 반응에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이 좁은 도시에 특수학교가 둘이나 되는 게 말이 됩니까? 과유불급이에요, 과유불급. 솔직히 내가 가져가는 지원 예산이 얼마입니까?”

“많으시죠…….”

그렇기에 좀 문제다.

여기서 더 예산을 지원해야 된다? 지금이야 주목을 받으니 좋을지 몰라도 나중에 가면 이게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더욱이 내 설화 같은 혐오…… 음, 아무튼 좋은 뜻이라도 주민들이 싫어하는 시설을 세우면 표가 모이겠습니까?”

그랬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교육감 선거였다.

교육자인 장학관의 입장으로서야 장애아들을 위해 보다 더 좋은 시설이 생긴다니 양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주민들의 시선이다.

참담하게도 혐오시설로 꼽히는 특수학교. 아마 도시 내에 설립이 된다면 이 도시의 표가 모두 날아갈 수도 있었다.

“푸후우……. 교육감님도 그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목을 받는데 마냥 안 된다고도 할 수 없는지라…….”

“장학관님, 이럴 때일수록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그런 일이 있었냐며…….”

띠리링! 띠리링!

“음? 잠시만요.”

서천웅은 일어나는 장학관을 보며 혀를 찼다.

‘쯧. 다 넘어왔거늘…….’

“헉! 교, 교육감님?! 예예, 예?!”

교육감이란 단어에 귀를 쫑긋 세웠던 서천웅은 이쪽을 멍하니 쳐다보는 장학관의 모습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예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예!”

서천웅은 전화를 끊는 장학관을 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서 교장님, 혹시 들어오시는 길에…… 아닙니다. 일단 저랑 함께 올라가시죠.”

“어딜…….”

“교육감님께서 서 교장님까지 부르십니다.”

“예?”

서천웅은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잠시 후 교육감실에 도착한 그는 하얀 한복을 입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곤 눈을 부릅떴다.

‘저, 저자는?’

권회수. 이 사단을 만든 장본인이자, 자신의 돈을 뺏어 갈 도둑놈이었다.

그런데 교육감실엔 교육감과 권회수만 있는 게 아니었다. 행정부시장까지 와 있었다.

“허허. 안녕하시오. 곧 이웃이 될 권회수올시다.”

“……설화학교 교장 서천웅이올시다.”

“의외의 장소에서 보니 참 반갑구려. 자, 그럼 올 사람도 다 온 것 같으니 시작해 볼까요? 그래도 되겠소, 교육감님?”

“아이고, 어르신! 말 편히 하십시오! 선배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흡?!’

눈을 부릅뜬 서천웅은 교육감과 권회수를 번갈아 봤다. 불길함이 갑자기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예. 말 편히 하시지요, 어르신. 저도 여러 선배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 이……!’

행정부시장도 권회수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서천웅은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허허. 그래도 이렇게 한 단체의 장이 된 분들인데 어찌 함부로 하겠습니까.”

“끄응.”

권회수는 껄껄 웃었다.

“아무튼 이 뒷방 늙은이 때문에 참 고민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그럴 리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부시장?”

“그럼요.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니 심려 놓으시지요, 어르신!”

가출청소년 쉼터, 행복의 쉼터가 있는 지자체 기관장들에게서 연락이 쏟아졌다. 권회수는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허허. 그렇게 말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편치 않으니 두 분께, 아니 여기 서천웅 교장까지 세 분께서 납득할 만한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교육감과 행정부시장은 다급히 허리를 세웠다.

“경청하겠습니다.”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권회수는 입을 열었다.

“내 도심에는 짓지 않으리다.”

“예? 그, 그럼?”

“그리고 국가 지원도 최소한만 받으리다.”

“어, 어르신!”

“김 비서.”

“예, 이사장님.”

권회수의 뒤에 시립해 있던 여 비서가 들고 온 가방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꺼내 그들의 중앙에 펼쳤다.

그건 거대한 조감도였다.

그걸 본 사람들은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건?!”

학교 건물과 운동장, 체육관뿐만이 아니다.

수영장에 체험관, 기숙사 등 마치 대학교의 그것처럼 그려진 조감도.

“반기숙학교 형태를 고수하되 셔틀버스 10대를 운용할 것이고, 아픈 자식들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 부모들을 위해 주거 시설도 지을 것이외다. 이 정도면 교육감님과 행정부시장님의 앞길에도 지장이 없겠지요?”

“아, 아니…….”

교육감과 행정부시장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반박을 하려던 그들은 다 안다는 듯 푸근히 웃는 권회수의 모습에 결국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껄껄! 지금 돈 귀신의 돈을 걱정하는 겁니까?”

“크흠. 죄송합니다.”

농담이라는 듯 손을 저은 권회수는 웃는 눈으로 서천웅을 쳐다봤다.

“서천웅 교장님의 고견은 어떻소? 회개하고자 이 바닥에 뛰어든 나보다 훨씬 전부터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헌신을 하신 분이니 내 어떤 말을 하시든 참고하리다.”

“그게…….”

서천웅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가!’

외통수다. 이젠 구국명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에 눈빛이 서늘해지는 그의 얼굴을 살핀 권회수는 의뭉스레 웃었다.

“없다면 첫 삽을 뜨는 날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시길 바라오. 내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 아, 그건 교육감님과 행정부시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참석해 주시오.”

“예?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하실 정도시라면…….”

“내 잘 봐 달라 부탁해야 될 분들에게 몹쓸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습니까? 현몽준 당대표께서 참석하시기로 하셨소이다.”

벌떡!

‘미친!’

교육감, 행정부시장과 함께 일어난 서천웅의 표정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는데, 권회수의 의뭉스런 미소는 더 짙어졌다.

“아, 혹시 다른 쪽 정치인을 좋아하시는가? 껄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우리 좋은 경쟁을 하세나.”

‘이, 이 개 같은 늙다리가!’

서천웅은 푸들푸들 떨면서도 애써 웃었다.

“하하. 좋은 경쟁이라니요.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일인데 그런 게 어디 있겠소. 그래도 내 참석할 터이니 그때 봅시다. 난 바빠서 이만. 교육감님, 행정부시장님, 서 장학관. 난 이만 갑니다.”

“멀리 안 나가리다.”

서천웅은 껄껄껄 웃음소리에 이를 부득부득 갈았고, 권회수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눈 깊은 곳은 시리도록 빛나고 있었다.

‘재활용도 하지 못할 종자로구나.’

그러면 태워 버려야 할 터.

권회수의 가슴속에서 오래전 팽을 당한 뒤 다 태워 버리고 흔적만 남았다 생각한 분노의 불길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이쪽이야, 애들아. 이쪽!”

“자, 옆 친구 손잡고!”

설화학교 운동장이 떠들썩하다.

여행을 간다고 새 옷을 입은 아이들이 가방을 든 채 옆 친구와 손을 잡고 서 있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따라나서기로 한 부모들은 연신 제 자식 이름을 부르며 사진을 찍기 바쁘다.

“철수야!”

“요안나!”

생애 첫 여행.

그 의도가 어찌 됐건 간에 난생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이기에 그들의 가슴을 누르고 있던 짐이 한결 덜어진다.

아프게 태어나게 만든 것만으로도 죄스러운데 열악한 사정에 뭐든 제대로 해 줄 수 없는 아픈 손가락.

눈물이 찔끔 고인 부모들은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는 교장을 향해 허리를 숙인다.

“가서 비밀놀이에 대해 말하지 말고.”

“네, 네.”

“웃어. 웃어야지?”

바들바들 떨며 울상을 짓던 아이가 억지로 웃는다.

“교장 선생님과 약속?”

“야, 약속.”

결국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진다.

괴물. TV에서 본 것보다 더 무서운 괴물.

하지만 그때 말고는 너무도 잘해 주는 교장 선생님.

이제 안 볼 수있으니까 좋지만, 또 싫기도 한 복잡한 마음에 아이는 울면서 웃는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는 그렇게 교장 선생님과 떨어지기 싫냐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부모들에게 인사를 한 후 돌아선 교장을 향해, 아이들의 부모와 선생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아 올려 흔들었다.

“교장 선생님께 빠빠이 해야지?”

“선생님, 빠빠이!”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이 손을 흔들지만 결코 돌아보지 않는 교장에게 주임 선생이 천천히 다가섰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 생각해 보니 이렇게 되면 후원회는…….”

후원회뿐이겠는가. 자신들의 취미도 즐기지 못하는 거다.

“당분간 못하는 거지.”

서천웅도 그 부분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호재다.

‘권회수인지 지랄인지 하는 인사 때문에 저 병신들의 부모들 마음도 흔들렸을 터.’

내색은 안 하지만 분명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단체 일본 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내년 2월까지다.

체류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 역시 그쪽에서 책임지기로 했으니, 거기다 숟가락만 얹으면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붙들 수 있다.

‘삼류 대학이나 겨우 나온 무지렁이들이 일본어를 어찌 알겠어?’

설화학교의 교문을 두드리는 부모들은 죄다 그런 부류이다. 형편이 어렵고, 배운 것도 없어서 설화학교가 아니면 안 되는 이들.

“아, 버스 출발합니다.”

“교장 선생님, 빠빠!”

“빠빠이-!”

“잘 다녀오너라-!”

뒤늦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크게 외친 서천웅은 다시 매정히 몸을 돌렸다.

“이젠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그 학교 짓는 걸 막지 못한다면서요!”

그랬다. 결국 구국명 의원조차 이 일을 막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장애아들에 동정 여론이 생긴 와중에 행복의 쉼터 재단에서 세우려 하는 특수학교의 크기와 구성이 알려지자, 처음 있었던 지역민들의 반발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아니, 오히려 지역에 랜드마크가 생기는 거 아니냐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이걸 반대하고 나선다?

정치 인생에 타격이 갈 일이었다.

‘외곽에 세워지니 타격이 없을 거라고? 지원을 더 빵빵하게 주겠다고? 흥!’

그따위 말을 누가 못하나.

“어쩔 수 있나.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서천웅의 눈이 위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   *

푸다다다다당!

현몽준 당대표가 와서 첫 삽을 뜬 이후 수십여 대의 중장비들이 돌아다니며 땅을 헤집는 거대한 공사판.

멀리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종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교육재단을 설립하는 것부터 이렇게 공사가 시작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열흘밖에 걸리지 않아서다.

“정말 대단한 양반이야.”

오택수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최재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허. 그걸 이제 아셨는가.”

몸을 돌린 종혁은 하얀 한복에 패딩 점퍼를 입은, 하물며 신발까지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권회수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잘 어울리시네요.”

언제나 새하얀 한복이나 정장만 입을 것 같았던 그였기에 이런 변화가 썩 기껍게 느껴졌다.

“크흠. 쉼터 아이들이 선물로 주는데 어쩌겠는가. 입어야지. 그래, 새로 온다는 팀장님과는 인사하셨고?”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내년 1월 정기 인사이동 때 온답니다, 그 양반.”

“몸을 사리는 거구만.”

“요직에 앉는 건데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죠.”

인사이동 기간이 아닐 때에, 그것도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팀장으로 갑자기 부임한다면 좋지 않은 시선이 집중될 수도 있을 터.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게 분명했다.

“아, 이쪽은 제 파트너인 오택수 경위와 최재수 경장입니다.”

“허허허. 반갑습니다. 행복의 쉼터 재단 이사장 권회수올시다.”

“오택수 경위입니다.”

“최, 최재수 경장입니다! 이사장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서울만 해도 거의 두 개 구에 하나씩 있는 가출 청소년 쉼터.

파출소 순경이었던 그가 이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참고로 90년대 초까지 명동 돈 귀신이라 불렸던 분입니다. 아, 밤의 황제라고 해야 할까요?”

흠칫!

설마 자신에 대해 동료 형사들에게 밝힐 줄은 몰랐기에 당황했던 권회수는 종혁을 바라봤다. 그리고 종혁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말을 이었다.

“……허허허. 내 많이 반성하며 살고 있으니 너무 타박하진 말아 주시구려.”

“아닙니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예, 예! 과거야 어찌 됐건 현재 이렇게 베풀며 사시는 게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말해 주시니 고맙구려.”

푸근히 웃은 권회수가 공사장을 응시했다.

“그래, 최 경감이 보기엔 어떠신가. 괜찮으신가?”

“말이라고 하세요?”

종혁의 얼굴에도 미소가 맺힌다.

다만 그 속에 죄책감이 숨겨져 있다.

먼저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죄책감.

지금 지어지는 이 학교는 서천웅을 엿 먹이기 위함도 있지만, 사죄의 선물이기도 했다.

“솔직히 좀 더 컸으면 하지만 뭐…….”

“허헛. 감당할 돈은 되시고?”

이 학교는 권회수 지분 40퍼센트, 종혁의 지분 60퍼센트로 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어이구, 제 돈 걱정을 하십니까?”

드바 로마노프에서 분기마다 보내는 돈만 가지고도 이런 학교 몇 개는 동시에 지을 수 있다.

“허허. 그래, 내 농을 좀 했네. 그럼 이제 가 보시게. 더 있다가는 그 개잡놈들에게 걸릴 수 있을 터이니.”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부지 안에 파출소를 하나 짓기로 했거든요.”

그곳을 컨트롤센터로 해서 경찰대 생도와 도시 학생들을 상대로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기획을 결재받고 오는 길이다.

본청 생활안전국과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이 협력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 그러니 부지를 살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 종혁은 그 파출지소를 짓는 것부터 경찰이 개입하면 어떻겠냐 건의도 했는데, 그마저도 결재가 떨어져서 현재 할 일이 없는 경찰 홍보단을 이끌고 내려왔다.

“홍보단?”

“경찰이 머물 파출소는 경찰이 짓는다, 뭐 그런 보여 주기입니다.”

여기에 공사장과 인근 순찰도 경찰 홍보단이 담당하기로 결정 났다. 근처 파출소와 관할 서 생활안전계에도 공문이 내려갔으니 종혁은 언제든 이 장소에 합법적으로 있을 수가 있었다.

“허허허.”

“그러니 이사장님 걱정이나 하세요.”

설화학교 25주년 사진 속에 있던 인물을 떠올린 종혁은 진심으로 말했다.

“잉? 지금 날 걱정하시는 겐가?”

너털웃음을 터트린 권회수는 저 멀리 안전모를 쓴 채 지시를 내리는 정장 입은 오십대 장년인을 향해 손짓을 했다.

“헉헉! 부르셨습니까, 어르신!”

“서로 인사하시게. 앞으로 오다가다 만날 일이 제법 있을 터이니.”

“최종혁 경감입니다.”

“아, 어르신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서동건설이라는 작은 건설 회사를 이끌고 있는 송춘만입니다.”

흠칫!

종혁과 오택수는 그 이름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서동파의 송춘만.

80년대 서울을 주름잡았던 전국구 조직 중 한 곳이다.

그러다 80년대 말 범죄와의 전쟁 때 조직이 박살 났는데, 보스 송춘만은 무슨 거래를 한 것인지 겨우 7년의 징역형만 받았다.

정경 유착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며 경찰대에서 가르친 내용이다.

종혁과 오택수의 표정이 나빠지자 권회수가 얼른 입을 열었다.

“내 뒤를 잘 봐주던 친구였네.”

“아, 그래서…….”

송춘만은 씁쓸히 웃었다.

“그때 어르신께서 이 불한당 때문에 참 많은 돈을 포기…….”

“어험. 쓸데없는 소린 하지 마시게.”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나이가 들다 보니 입이 방정입니다.”

“내 앞에서 나이 이야기신가?”

“아이구,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습니까. 크흠. 아무튼 이젠 맘 고쳐먹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너무 고깝게 보지 말아 주십시오.”

“예. 그러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종혁이 너무 순수하게 손을 내밀자 깜짝 놀랐던 송춘만은 이내 푸근히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날이 추우니 적당히 둘러보고 들어가십쇼!”

그렇게 송춘만이 후다닥 달려가자 권회수가 묘한 표정으로 종혁을 바라봤다.

“이사장님이 보증하는 사람이잖습니까.”

“……으하하하하핫!”

피식 웃은 종혁은 아직도 굳어 있는 오택수를 두드리며 돌아섰다.

‘뭐 이것도 빈틈이 없네.’

종혁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져 갔다.

곧 파라다이스로 변할 테지만, 아직은 황량한 벌판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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