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20화 (220/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20화>

    쏴아아! 쏴아아!

    갈매기 소리 대신 파도 소리만 가득 울리는 광안리의 해변가.

    종혁은 박종명이 내미는 담배를 받아 들었다.

    찰칵! 치이익!

    타들어 가는 담배를 느긋이 빨며 걷던 박종명이 입을 열었을 때는 광안리 해변의 끝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감사합니다.”

    “이번 세진은행 해킹 사건도 최 경감의 작품이라지?”

    올 게 왔다.

    그가 등장하면서부터 떠올린 주제가 나오자 종혁은 속으로 낯빛을 굳혔다. 하지만 겉으론 어수룩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운이 좋았습니다. 친한 형 집에 놀러 갔다가…….”

    “좀도둑을 발견해서 제압했다지?”

    ‘좀도둑…… 그렇게 묻기로 한 건가?’

    종혁의 머릿속이 차가워진다.

    “아, 그렇습니까? 와, 요새 좀도둑 무섭네요. 군용대검이랑 카람빗도 쓰고.”

    “흠. 뒷이야기에 대해 모르는 건가?”

    “예. 피의자들이 부산 출신이라 부산청으로 넘어가게 됐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저도 일이 바쁘다 보니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저 피해자들이 아는 사이라 걔들만 신경 썼죠.”

    “그런가?”

    안경 속에 가려진 박종명의 뱀눈이 종혁의 얼굴을 훑는다.

    “부산청장님?”

    “자네가 붙잡은 놈들이 살인 청부를 받은 흥신소였다더군.”

    “네? 대체 누가 살인 청부를……. 혹시 용의자는 나왔습니까?”

    “아니, 아직. 한데 무기에 대해 잘 아는군.”

    “경찰대에서 다 가르쳐 줍니다, 하하. 아, 죄송합니다.”

    박종명은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 중앙경찰학교 출신이다.

    커리어만 보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부산청장이라는 높은 곳까지 도달한 엄청난 실력자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회귀 전 박종명 부산청장은 다음 정부에서 경찰청장이 될 만큼 입지적인 인물이다.

    “……상처가 깊었다고 하던데, 어디 볼 수 있겠나?”

    “아하하. 보기 흉하실 텐데…….”

    그러며 종혁은 셔츠를 들어 흉터를 보여 줬고, 박종명은 옆구리 흉터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부, 부산청장님?”

    “많이 아팠겠군.”

    “아, 아닙니다. 별로 아프지 않았습니다.”

    “미안하군. 우리 상부가 현장 형사들의 고충을 더 알아줘야 하는데 말이야.”

    “예?”

    “앞으로도 열심히 해. 우리 부산청도 한번 생각해 보고.”

    툭툭 어깨를 두드린 박종명은 도로가로 걸어갔고, 종혁은 정말 가 버린 그의 모습을 빤히 보다 돌아서며 혀를 내둘렀다.

    “이야. 대체 그 몇 마디 대화 사이에 함정을 몇 개나 파 놓은 거냐.”

    종혁이 세진은행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에 대한 함정이었다. 여기에 수작까지 부렸다.

    어린 경찰을 다독여 감동시키면서 경찰 개혁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은근히 비췄다.

    부산청장이라는 높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 주는데 그 어떤 경찰이 진정할 수 있을까. 종혁이 그저 그런 경찰이었다면 홀랑 반해 버렸을지도 몰랐다.

    혓바닥이 그 뱀눈처럼 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말 왜 온 거야? 꼴랑 이거 확인하려고?”

    종혁은 담배를 물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고, 그 순간 그의 핸드폰이 울었다.

    -소릴 높여 봐. 더 크게 외쳐 봐.

    “예, 최종혁입니다.”

    -저예요.

    나탈리아다.

    -50미터 밖에서 최를 찍고 있는 애들을 발견했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푸하핫! 뭐야, 이거였어?”

    -최?

    “아, 쫓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누가 붙였는지 알 것 같거든요.”

    -아, 그런 거였나요?

    나탈리아는 나지막하게 웃었다.

    -참 재밌는 사람이네요.

    “그러니까요. 아무튼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어디예요? 술이나 한잔 하시죠?

    -흐응. 지금 서울에 있는 사람보고 부산까지 오라는 건가요? 이건 매너가 좀 아닌데요?

    “음. 조개가 아주 맛있는데 말이죠.”

    종혁은 그렇게 통화를 하며 포장마차로 향했고, 사박사박 모래가 뭉개지는 소리는 곧 파도 소리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   *   *

    1박 2일의 짧은 휴가를 마친 종혁은 출근을 하자마자 호출한 이택문을 찾아갔다.

    “충성. 부르셔서 왔습니다.”

    “……그 다크 드래곤 암즈와 잘 놀았나 보군.”

    “영광입니다. 고영광.”

    “그런 이름이었나.”

    “아무튼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놀고 왔습니다. 막판에 박종명 부산청장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움찔!

    종혁은 이쪽을 빤히 보는 이택문을 향해 싱긋 웃어 줬다.

    “여기 커피 두 잔.”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택문은 밑에서 꺼낸 사진들을 종혁을 향해 던졌다.

    “오늘 아침에 배달이 왔더군. 보낸 사람은 불명으로.”

    종혁과 나란히 해변가를 걷는 모습, 종혁을 보며 푸근히 웃는 모습, 종혁의 옆구리 흉터를 살피는 모습.

    사진만 보면 종혁과 박종명이 아주 친하다고 오해할 정도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박종명이 사진을 왜 이런 사진을 찍었겠는가.

    무려 경찰청장과 일개 간부임에도 부하가 다쳤다고 문병을 올 만큼 깊은 관계에 금을 내기 위해서다.

    종혁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어도 이택문이었다면 먼저 물었을 터. 알아도 속으로 끙끙 앓을 최기룡 전 경찰청장과 달리, 이택문은 굉장히 직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 전문가를 고용 했나 본데요?”

    “읊어 봐.”

    “급하십니까?”

    “쯧.”

    종혁은 사진을 정리해 다시 넘겨주었고, 이윽고 커피가 들어오자 커피를 홀짝였다.

    그러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택문의 시선에 결국 입을 열었다.

    “영광이들과 술을 마시는데 찾아오더군요.”

    종혁은 단 하나도 숨기지 않고 다 말했고, 모두 다 들은 이택문은 입술을 비틀었다.

    “좀도둑? 흥신소?”

    “그쪽으로 묻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미제로 끌고 가겠단 소리군.”

    아니면 가짜 범인을 잡아넣어 사건을 종결시킬 수도 있다.

    종혁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압력을 넣으신 양반들은 좀 어떻습니까? 뭐 좀 나왔습니까?”

    “흠. 아직.”

    “……하긴 그만한 권력을 가진 양반들이 쉽게 허점을 드러내진 않겠죠.”

    더욱이 얼마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CDMA 방식의 핸드폰, 즉 지금 온 국민이 쓰는 핸드폰도 해킹이 가능하다는 양심선언을 했다.

    안 그래도 복사폰 문제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고 있었는데, 이 선언이 치명타를 가하면서 핸드폰 제조사들과 통신사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박노형 대통령이 삼전 죽이기에 나선 건가?’

    얼마 전 삼전의 정경유착 사건부터 이번 일까지 삼전그룹에 악재만 생기고 있었다.

    ‘대체 뭘 어떻게 밉보였기에. 쯧쯧.’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더 조심하고 있을 터. 아무래도 당분간은 가만히 지켜보는 일 말곤 할 게 없을 듯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오락 프로그램들은?”

    “사흘 뒤 가편집본을 받기로 했습니다. 경찰의 날 행사 준비도 착착 진행 중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택문은 다시 뚱한 표정으로 돌아가 손을 저었고, 종혁은 거수경례를 하며 돌아섰다.

    “유도 기대하지.”

    종혁은 와락 얼굴을 구기며 경찰청장실을 나섰다.

    *   *   *

    어느덧 무더웠던 여름도 다 가고, 말이 살찌는 계절인 가을이 됐다.

    사람들은 사방을 물들이는 단풍을 쫓아 나들이를 갔지만, 경찰들은 경찰의 날이라는 중요한 행사를 맞아 한자리에 모였다.

    우글우글, 와글와글.

    “좌충우돌 파출소 생활기 보셨습니까?”

    “와 제대로 찍었던데?”

    “난 본청에서 한다기에 얼마나 재밌을까 했는데, 재밌데?”

    “저번 주 토요일 X맨 봤어? 거기 나온 애가 우리 서 애야!”

    “홍보단에 차출된 애들이 있던 부서에 상여금 내려갔다면서?”

    유도 대회, 사격 대회를 위해 각지에서 차출된 선수들과 응원단, 고위 간부들까지 천여 명의 경찰이 행사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 그들의 대화 주제는 2주 전부터 방영을 한 예능 프로그램들이었다.

    본청에서 예능을 찍는다기에 또 상부가 예산을 함부로 쓴다며 혀를 찼던 경찰들은 결과물을 보자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파출소 생활을 심도 깊게 다루면서도 웃음과 감동을 주는 ‘좌충우돌 파출소 생활기’.

    저런 게 있었냐며 현직 경찰들도 놀라게 한 ‘돈을 갖고 튀어라’.

    이 외에도 경찰 홍보단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X맨’이나 ‘스타퀴즈 골든벨’ 등 방송국 3사 대표 예능들까지.

    정말 경찰은 저렇게 일하냐며 사방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지난 2주 동안 어깨가 으쓱해졌던 경찰들이었다.

    단상 뒤에서 그런 그들의 반응을 살피던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온통 칭찬 일색이니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 최 팀장. 여기 있었군.”

    “충성.”

    홍보담당관과 다른 고위 간부들이 다가온다.

    그리고 어깨를 두드린다.

    “잘했어!”

    “역시 최 팀장이야. 젊은 게 무색할 정도로 능력이 좋아!”

    “하하. 감사합니다.”

    처음엔 미심쩍어 했던 그들의 얼굴엔 흡족함만 가득하다.

    그에 종혁의 미소도 더욱 짙어진다.

    “모두 팀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 준 결과입니다.”

    “허허. 벌써 부하들에게 공을 돌릴 줄도 아나?”

    “진실로 이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종혁이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의 팀원들을 가리켰고, 안 그래도 고위 간부의 등장에 얼어붙어 있던 그들은 아예 각목처럼 단단해졌다.

    그런 그들과 종혁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번갈아 본 고위 간부들은 미소를 지으며 팀원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자네도 수고했네.”

    탁탁!

    “경장 박동수!”

    “경장 최재수!”

    “그래그래. 앞으로도 기대하지. 거기 경찰 홍보단도. 아, 내가 약속한 건 오늘 행사가 끝나면 모두 지급될 예정이야.”

    “충-성!”

    인사고과, 특진 포인트, 상여금.

    3종 세트에 경찰 홍보단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도 기대해.”

    “추웅-서엉-!”

    히죽 웃은 홍보담당관은 종혁을 봤다.

    “최 경감은 잠시 우리 좀 보지.”

    “예.”

    종혁은 따라나서기 전 최재수를 봤다.

    “나 없는 동안 인수인계 잘하고, 사고 치지 말고.”

    “아니…….”

    최재수가 멀어지는 고위 간부들을 힐끔 보며 입을 연다.

    “솔직히 이번 경찰의 날 행사는 저희가 담당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저희가 해 준 게 얼만데.”

    그 말에 다른 팀원들의 낯빛도 흐려진다.

    지난 2주간 방영된 예능 덕분에 방송 3사까지 촬영을 오면서 더 주목을 받게 된 경찰의 날 행사다.

    이건 자신들이 진행하는 게 맞았다.

    “앞으로 매해 경찰의 날 행사 진행을 네가 할 거면 그렇게 해 보든가. 내가 어떻게든 뺏어 올 테니까.”

    “아.”

    종혁은 그제야 문제점을 깨닫는 최재수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우리 감당 못할 일은 벌이지 말자. 안 그래도 업무에 치여 죽겠구만…… 쯧. 간다.”

    “추, 충성! 다녀오십시오.”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긴 종혁은 한곳에 모여 담배를 펴고 있는 간부들에게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아냐, 아냐.”

    괜찮다며 손을 젓던 고위 간부들은 종혁을 보며 풀썩 웃었다.

    “결국 최 경감 생각대로 됐더군.”

    종혁은 눈을 빛냈다.

    “그럼…….”

    “그래. 바디캠 외 이번 촬영에서 쓰인 모든 첨단 기기와 시스템 전체를 업무에 적용시키기로 하지.”

    “충성!”

    단 하나도 빠짐없이 다 통과됐다는 것에 종혁의 전신이 저릿저릿 울렸다.

    “다만 일단은 파출소에만 적용시킬 거야. 형사들에게는 당장은 좀…….”

    강력범죄자들을 잡다보면 언제 어떤 위급한 상황이 터질지 모르고, 이때 바디캠이 심리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다. 형사들은 이런 이유를 들먹이며 반발을 하고 있었다.

    시퍼런 사시미가 찔러 오고, 쇠파이프 망치가 몸을 부수려 드는데 묵사발을 내지 않을 형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바디캠이 발목을 잡으면 형사가 다칠 수 있다.

    이런 그들의 말에 종혁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처음 프레젠테이션 때 말씀드렸다시피 매뉴얼이 만들어질 필요성이 있는 겁니다. 바디캠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제도적, 법률적인 장치를 말입니다.”

    “흠.”

    “또한 그를 원활하게 돕기 위해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음? 아……!”

    고위 간부들은 예전 종혁이 한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떠올리곤 눈을 크게 떴다.

    “예. 영화와 드라마, 또 언론을 통해 그에 대한 부분을 계속 언급할 예정입니다.”

    영화와 드라마, 언론 등에서 바디캠의 좋은 사례들을 계속해서 보여 준다면, 대중들이 바디캠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호적이 될 수밖에 없을 터.

    그렇다면 형사들도 조금은 부담없이 당당하게 바디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푸하하하핫!”

    “하하하하핫!”

    거기까지 종혁이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그들은 종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까지 수고했고, 앞으로도 수고해 줘. 우리가 시간을 너무 뺏은 것 같군.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만 가 봐.”

    “충성.”

    종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아, 그런데 좌충우돌 파출소 생활기에서 우승한 세 팀은 대체 누구야?”

    “그건 축하 무대를 보시면 압니다.”

    종혁은 다시 일그러지는 그들의 미간에 싱긋 웃었다.

    ‘하아. 그럼 이제 유도 대회를 준비해 볼까?’

    하기 싫은데 해야만 하는 일.

    종혁은 부디 주제를 모르는 경찰들이 깝치지만 않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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