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18화>
쿠당탕!
“크허억!”
“아악!”
홍익파출소의 회의실 안으로 빨갛고 파랑머리를 집어 던진 종혁은 노랑머리 여학생의 머리를 틀어쥔 채 끌고 들어갔다.
“꺄아악!”
그 험악한 모습에 종혁의 무전을 듣고 다급히 합류했다가 여기까지 쫓아온 제작진은 얼어붙었고, 장철호 소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들을 달랬다.
몇몇 경찰들은 슬그머니 회의실 앞을 막았다.
휘익!
“아아악!”
머리카락이 뽑히든 말든 소녀를 던져 버린 종혁은 회의실 문을 닫으며 피식 웃었다.
“씨발, 어린 것들이 할 짓이 없어서……. 야, 꼬맹이. 너 몇 살이냐?”
담배? 필 수 있다.
술도 마실 수 있다.
법으로 금지했다지만, 어디 십대가 그런 걸 들을까. 할 놈들은 다 한다.
하지만 원조교제는 아니다.
“…….”
“허쭈? 말 안 해? 대가리 안 돌아가냐? 그저께 너희 여기 와서 니들 이름이랑 나이 말했어. 아놔, 이것들을 확 진짜.”
움찔!
“소, 소년계 보내 주세요!”
“네, 네! 저희 그때까지 말 안 할 거예요! 그치?!”
겁에 질린 듯 구석에 모여서 앙앙 짖는 강아지들의 모습에 종혁은 풀썩 웃고 말았다.
“그래. 너희도 그 좆같은 법을 아는구나.”
미성년자는 보호자 없이 취조를 할 수가 없다.
담배나 술 정도의 경범죄는 모르지만, 일반 범죄인 원조교제로 추정되기에 무조건 보호자의 참관이 필요했다.
‘왜 지들한테 유리한 건 이렇게 잘 알까.’
“좋아. 그럼 딱 하나만 묻는다. 이거 대답 안 하면 니들이 믿는 그 소년계에서도 정말 힘들게 될 거다.”
……꿀꺽.
“뭐, 뭔데요?”
“방금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봤던 그 아저씨 알아, 몰라?”
“……?”
“수영이란 이름은?”
종혁은 이번에도 갸웃하는 그들의 모습에 한숨을 탁 내뱉었다.
“하아. 반성문 쓰고 있어. 좆같이 쓰면…….”
뿌드득!
종혁은 주먹을 쥐어 보였다.
“말 안 해도 알지?”
끄덕끄덕끄덕!
“후, 씨발.”
밖으로 나온 종혁은 선생님을 찾았다.
“뭐야, 왜 아직도 수갑을 채워 두고 있어?”
선생님은 의자에 수갑이 채워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 그게…… 하아. 여기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아까 터진 코드 제로의 범인 같습니다.”
“뭐……?”
종혁은 서 경장이 내미는 피 묻은 과도에 낯빛을 굳혔다.
“품에서 발견됐습니다. 신고 접수된 옷차림도 일치하고요.”
“……지랄 났다. 진짜.”
이번엔 다른 의미로 한숨을 길게 내뱉은 종혁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선생님을 응시했다.
대체 뭐가 불만인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선생님.”
“…….”
“하아. 이러시면 저희도 도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딸…… 아니, 제자 찾으셔야죠.”
흠칫!
‘제자를 찾는 거였던가.’
딸이라고 할 땐 반응이 없었는데, 제자란 말에 반응이 온다.
종혁은 가만히 노려보는 선생님의 모습에 싱긋 웃으며 일어섰다.
“서 경장, 미안한데 이분은 내가 취조해도 될까?”
“아, 예. 괜찮습니다.”
“고마워. 내가 밥 한 끼 살게. 소장님, 저 소장실 좀 쓰겠습니다.”
“커피 줘?”
“사랑합니다. 가시죠, 선생님.”
종혁은 일어나지 않으려는 그를 억지로 일으켜 소장실로 안내했다.
선생님을 소파에 앉힌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니들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이 무능한 새끼들아.’
그저께 검거됐을 때 선생님은 분명 그렇게 외쳤다.
그땐 그저 취객의 헛소리로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 말이 너무 의미심장해진다.
‘설마…….’
낯빛을 굳힌 종혁은 자신의 경찰공무원증을 내밀었다.
“본청 특수범죄수사과 소속 경감 최종혁입니다.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본청은 대한민국 모든 경찰을 총괄 지휘를 하는 곳이며, 특수범죄수사과는 거리와 성역 상관없이 그 어떤 범죄든 수사하는 곳입니다.”
움찔 몸을 굳힌 선생님이 그제야 종혁을 응시한다.
“……정말 본청이란 곳이 모든 경찰을 총괄 지휘를 하는 곳입니까?”
“예. 그러니 제게 신고를 하시면 이전처럼 무시당하지 않고 수사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큭! 왜 이제야…….”
‘역시 그랬던가.’
역시나 여기 선생님은 제자의 실종 및 가출을 했을 때 경찰에 신고를 했던 거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무시를 당한 거다.
그게 아니면 수영이란 아이를 그렇게 간절히 찾던 선생님이 이토록 경찰을 불신할 리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다른 이유로 경찰을 불신하는 게 아니니 말이다.
“다시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최종혁 형사입니다. 편히 최 형사라고 불러 주세요.”
“……조상구입니다. 아시다시피 제자 하나 지키지 못한 못난 선생입니다.”
“어이구, 아니요. 제자 한 명을 찾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시는 분께서 못났다니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동안 제자 찾아 돌아다니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울컥!
힘드셨냐, 그 짧은 위로의 말에 조상구는 입술을 깨물었다.
“……감사합니다.”
똑똑!
“네!”
“커피 왔습니다.”
“응? 아, 고마워요, 박 시보.”
박성아가 커피를 들고 오자 잠시 놀랐던 종혁은 그녀를 내보낸 후 조상구 선생을 봤다.
호록 커피를 마시는 그의 어깨가 방금 전보다 훨씬 풀어져 있다. 이제 본론을 꺼내야 될 때였다.
“일단 선생님께서 처하신 상황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선 칼을 휘둘러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셨기에 특수상해죄가 적용되실 겁니다.”
특수상해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다.
‘1, 1년 이상?’
조상구는 다시 울컥했다. 이번엔 다른 의미였다.
“제가 왜 그 나쁜 놈 때문에 그런 벌을 받아야 하는 겁니까!”
“나쁜 놈이요?”
“그놈이…… 그놈이-!”
몇 시간 전 상황을 떠올린 조상구 선생의 두 눈이 불을 뿜었다.
무려 반년이었다.
수영이 집에 간다고 사라져 버린 후 그녀를 찾기 위해 조상구가 서울 전역을 뒤진 시간이.
힘들었다. 괴로웠다. 포기란 단어를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의뢰를 맡겼던 흥신소에서 연락이 왔다.
이 동네의 모텔 골목에서 수영을 발견했다고. 그런데 가출 팸에서 몸을 파는 것 같다고.
아니다. 아닐 거다. 그럴 리가 없다.
애써 진정하며 달려왔는데…….
“그놈이 수영이를 어떻게 끌고 나왔는지 아십니까! 개처럼 끌고 나왔습니다! 그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이!”
마치 사람이 새끼 강아지를 드는 것처럼 뒷목을 잡은 채 모텔에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눈이 돌아 버린 조상구는 혹시나 해서 준비한 칼을 휘둘렀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경찰이 왔고, 놈은 수영과 함께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조상구 역시도 도망치며 흥신소에서 알려 준 그 가출 팸의 다른 아이들을 쫓았다.
제자를 찾기 위해 흥신소까지 동원했다는 말에 정말 대단하다 생각하던 종혁은 순간 미간을 좁혔다.
“혹시 옆방에 있는 저놈들을 쫓아서 그 모텔까지 오셨던 겁니까?”
“예! 저 나쁜 놈들 쫓아서 왔습니다!”
‘모른다고 했는데?’
종혁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아까 그들은 진심으로 수영이란 아이를 모르고 있었다.
“혹시 잘못 보셨거나…….”
“제자를 못 알아보는 선생도 있답니까!”
‘그럼 맞다는 건데…… 왜?’
수영은 왜 그놈을 따라갔을까.
종혁의 머릿속에 슬픈 생각이 떠오른다. 제자를 찾기 위해 이런 노력을 기울인 조상구에게는 못할 말이 말이다.
어떻게 입을 떼야 하나 싶을 때 조상구가 돌연 종혁의 손을 붙들며 눈물을 흘렸다.
“제발! 제발 수영이 좀 찾아 주십시오, 형사님!”
“하지만 선생님, 그게…….”
“압니다. 형사님이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압니다! 하지만 수영이는 12세 미만의 정신 연령을 가진 장애아란 말입니다!”
쿠웅!
‘뭐?’
“그 아이가! 그런 아이가 뭘 알아서 그놈을 따라갔겠습니까-!”
“아…….”
눈을 껌뻑이던 종혁은 이내 벌떡 일어섰다.
그러곤 옆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쪽을 멍하니 쳐다보는 세 명을 무심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 패거리에 장애아 한 명 있지?”
움찔!
그들은 눈을 부릅뜨며 입을 다물었고, 종혁은 어깨를 들썩였다.
“큭큭. 하, 이 사랑스런 새끼들.”
종혁은 뭔가를 느끼고 슬그머니 의자에서 일어서는 파랑머리의 목을 한 손으로 잡아 올려 유리벽을 향해 던져 버렸다.
와장창!
“꺄악!”
“으악! 뭐, 뭐야!”
종혁은 난리가 난 바깥을 무시하며 순간 얼어붙은 빨강머리의 뺨을 후려쳤다.
쩌어어억!
마찬가지로 박살 난 유리벽 밖으로 날아간 빨강머리.
“어? 아?”
종혁은 마찬가지로 얼어붙은 채 입만 뻐끔거리는 소녀의 머리채를 휘감아 꺾었다.
“아으으…… 왜 이러…….”
“내가 웬만해선 너희 같은 십대에게 손찌검을 안 해. 왠지 알아? 아직 대가리가 여물지 못하는 나이니까 그래.”
모를 수 있기에,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수 있기에 웬만해선 참는다.
“그런데 너흰 안 되겠다. 내가 그은 선을 넘었어.”
“아, 아, 아 그, 그그그그그…….”
쏴아아.
밑으로 소변이 쏟아졌지만 무시한 종혁은 소녀를 향해 진심으로 살의를 드러냈다.
“아까 도망친 새끼 어디 있어. 찢어 버리기 전에 불어.”
* * *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이 적막을 해치는 공간.
불빛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 구석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던 수영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꼬르륵!
“배고파.”
그녀의 눈이 힐끔 싱크대 위 찬장으로 향했다가 급히 원래대로 돌아온다.
잠깐 나갔다 온다고 했다. 올 때 맛있는 걸 사 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기다려야 한다.
먼저 뭘 먹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무섭게 화를 내고 아프게 했던 친구들.
그렇기에 라면을 끓여 먹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늦다. 늦다. 나 배고픈데…… 히이잉.”
띵동!
휙 고개가 돌아간 수영은 재빨리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잡았다가 아차 했다.
“누, 누구세요?”
“나 민정이 친군데, 문 좀 열어 줄래?”
‘민정이?’
맨날 머리도 말려 주고, 속옷도 나눠 주는 고마운 친구. 머리가 노래서 너무 예쁜 친구 이름이다.
“네!”
문을 활짝 연 수영은 사람이 아니라 벽이 있음에 의아해했다가 고개를 들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아.”
크다. 엄청 크다.
그런데…….
“왜 우세요? 아저씨도 아파요?”
“네가 수영이니?”
“네! 아, 맞아. 안녕하세요. 박수영입니다.”
정중히 배꼽인사를 하는 수영의 모습에 종혁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미안하다. 이 아저씨가 늦어서 미안해…….”
“네?”
“정말로…… 미안하다.”
여기저기 멍이 든 몸을 겨우 가리는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늘어진 티셔츠만 입은 수영.
종혁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 * *
“앗! 민정이다! 민정아, 할룽할룽!”
종혁이 벗어 준 셔츠를 입고 홍익파출소 안으로 들어오던 수영은 민정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다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친구 민정이 듣지 못한 건지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정아-! 쩡아-!”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여전히 못 듣는 친구에 수영은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더 크게 부를 준비를 했다.
“수영아, 민정이가 자는가 봐. 우린 안으로 들어갈까?”
“녜! 히힛!”
그렇게 소장실 안으로 들어간 수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 수영아!”
“앗! 선생님이다! 아, 맞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른을 만날 땐 무조건 배꼽인사.
그걸 여전히 잊지 않은 수영의 모습에 조상구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와락!
“윽! 숨 막혀요.”
“미안해. 선생님이 미안해!”
“선생님도 미안해요?”
“흐어어어엉!”
종혁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에, 선생님이 왜 우는지도 모른 채 울상을 지으면서도 괜찮다, 괜찮다 말하는 수영의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며 소장실의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아직 슬플 일이 남아 있다는 걸 종혁은 모르고 있었다.
“후우. 죄송합니다.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닙니다. 늦게 찾은 저희가 더 죄송합니다.”
“그, 그럴 리가요! 이렇게 수영이를 찾아 주신 것만 해도…… 해도…….”
종혁은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의 모습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수영이 부모님 연락처는 아십니까?”
“아, 부모님이요…….”
“음?”
“후우. 수영이 부모님은 안 계십니다.”
왜일까. 왜 이렇게 천사 같은 아이만 시련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럼…….”
“아니요. 완전 고아는 아니고,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십니다. 서울 어디에서 사신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서 이 아이가…….’
“휴우. 다행이네요. 그분 연락처는 아시나요?”
조상구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종혁은 탄식을 터트렸다.
‘이 양반 아주 나를 들었다 놨다 하시네.’
“혹시 성함은 아시나요? 생년월일도…….”
“성함은 기억합니다.”
수영이 입학을 할 때 그가 직접 그 자리에 있었기에 기억을 한다. 하지만 그것밖에 모르기에, 자세한 내용은 일개 선생인 그로선 열람 불가이기에 주소지가 서울이라는 것과 이름만 알 뿐이었다.
“저희 학교가 특수학교라…….”
“아, 이해합니다.”
이해는 못하지만 분명 개인 자료를 열람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 겨우 그 두 개의 단서만 가지고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다.
이런 종혁의 칭찬에 머리를 긁적인 조상구는 옆에서 짜장면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아버님의 성함은 말했고, 그걸 받아 적던 종혁은 볼펜을 떨어트렸다.
“……예? 서, 성함이 뭐라고요?”
“왜 그러시는지…….”
“자, 잠시만요. 정말 잠시만…….”
손짓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던 종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닐 거다.
하늘이 이래선 안 됐다.
‘그래, 아닐 거야. 아니겠지.’
“최 경감님?”
“바, 박 씨 할아버지 사진. 박 씨 할아버지랑 찍은 사진 있지? 그것 좀 줘 봐.”
“네?”
“빨리-!”
“네, 네!”
파출소를 터트릴 듯한 외침에 화들짝 놀란 한승연은 재빨리 서랍을 뒤졌고, 파출소 사람들은 넋이 나간 종혁을 보며 의아해했다.
“여, 여기요!”
평소처럼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사진을 낚아챈 종혁은 회의실로 달려가 조상구에게 내밀었다.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제발, 제발…….’
하지만…….
“아, 이분 맞습니다!”
쿵!
결국 종혁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이건 아니잖아. 이래선 안 되는 거잖아-!”
종혁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 * *
“할아버지!”
“……뉘신가?”
“흑!”
“흐아아아앙!”
“허어어어엉!”
“이 씨발, 하늘 개좆같은 새끼야-!”
홍익파출소가 눈물에 잠긴다.
사정을 몰랐던 조상구도 무릎을 꿇으며 절망한다.
수영을 맡긴 후 단 한 번도 학교를 찾지 않은 박수철 할아버지.
‘그런 잔인한 할아버지일지라도 가족이 낫겠다 싶었는데…….’
조상구는 잔혹한 현실에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눈을 질끈 감은 종혁은 홍익파출소를 빠져나와 담배를 물었다.
“……흐흐. 진짜 지랄이네, 지랄이야. 그렇지 않습니까?”
종혁은 하늘을 보며 끅끅끅 웃었다.
너무도 감사하지만, 매번 원망스럽던 하늘이 오늘은 특히 더 원망스럽다.
“푸흐흐.”
오늘따라 더 담배가 썼다.
그때였다.
“흐윽! 끅!”
“음?”
고개를 돌린 종혁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건물이 만든 그림자 속에서 박성아가 울고 있다.
“아직 안 가셨습니까?”
“끅! 어, 어떻게 가요…….”
촬영을 막 접으려던 때 회의실 유리창이 깨지며 소년 두 명이 파출소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때 그녀는 직감하게 됐다.
이 학생들 때문에 무슨 일이 터졌구나. 그래서 차마 가지 못했던 거다.
그런데 그 결말이 이거였다.
“어, 어떡해요. 수영이 불쌍해서 어떡해요! 박 씨 할아버지 불쌍해서 어떡해요-!”
박 씨 할아버지가 불쌍해서 어떡하냐는 막내의 물음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슬펐지만 맏언니라서, 리더라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그녀.
그랬던 그녀조차도 이 상황에선 견딜 수가 없다. 아니, 이걸 견딜 수 있는 게 이상했다.
종혁은 그렇게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에 씁쓸히 웃었다.
“후우, 그래도 박성아 씨가 구한 겁니다.”
“……네?”
종혁은 코를 훌쩍이며 묻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었다.
“박성아 씨가 그 네 명을 발견했기에 수영이를 구하게 된 거란 말입니다.”
만약 박성아가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조상구가 놈들을 쫓아 그 모텔을 찾은 것도 몰랐을 것이고, 조상구를 제압해 사정을 듣지도 못했을 거다.
그러니 박수영을 구한 건 박성아가 맞았다.
“아…….”
“그럼…….”
뭔가 위로를 해 주고 싶은데, 지금은 아무런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 잠……!”
붙잡으려는 박성아의 부름을 무시한 종혁은 어둠과 소음이 뒤죽박죽인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며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좀처럼 안 된 종혁은 결국 핸드폰을 들어 흥신소에 연락했다.
“납니다. 사람 두 명만 찾읍시다. 기한은 일주일. 현상금은 5억. 하루 앞당길 때마다 2천씩 추가. 가능하겠습니까?”
-가, 가능합니다! 어떻게든 찾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종배수와 명동파에도 연락을 했다.
대한민국 어둠의 일부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