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17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늦은 오후의 허름한 주택가.
한승연과 박성아, 이인영이 어느 집 앞에 선 한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요. 고마워요.”
푸근히 웃으며 손을 젓는 박 씨 할아버지의 행동에 웃으며 돌아선 박성아와 이인영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진다.
“이잉. 언니…….”
오늘로 벌써 3일째다. 집을 찾아 달라 파출소의 문을 두드린 박 씨 할아버지를 댁에 모셔다드린 게.
그럼에도 박 씨 할아버지는 여전히 자신들을 기억 못했고, 그러면서도 매번 저렇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게 너무 슬퍼 가슴이 아팠다.
“박 씨 할아버지는 언제부터 저러신 거예요?”
“제가 홍익파출소에 오기 전부터 저러셨대요.”
“가, 가족은요? 같이 사시는 가족분들은 없으신 거예요?”
“다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셨다가…….”
중앙 분리대를 넘어온 트럭과 교통사고가 났는데, 박 씨 할아버지와 손녀만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하지만 손녀는 뇌 쪽에 장애를 입어 먼 지방의 특수시설에 보내졌고, 이후 박 씨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집을 찾아 파출소의 문을 두드리고 계셨다.
“네?!”
철렁!
결국 박성아와 이인영의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제작진들에게도 숙연함이 내려앉는다.
“언니, 어떡해. 할아버지 불쌍해서 어떡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박성아는 어떻게든 해 달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막내를 끌어안아 팔뚝을 쓸어내렸다.
그러며 한승연을 봤다.
“박 씨 할아버지 같은 분들을 도울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건가요?”
“현재로선 없죠.”
씁쓸하면서도 단호한 말에 모두가 탄식을 터트렸다.
나연석 PD는 종혁을 봤다.
“정말 없는 겁니까?”
“있긴 있습니다만…….”
“있습니까?!”
나연석뿐만 아니라 제작진도 종혁을 본다.
그 기대감 어린 눈빛들에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현재로선 요양원으로 인도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박 씨 할아버지를 위한 일일까.
정작 박 씨 할아버지가 그걸 원치 않았다.
사회복지 쪽으로 도우미를 요청해 보기도 했지만, 그때 종혁은 박 씨 할아버지가 화를 내시는 모습을 처음 봤다.
“왜, 왜요?”
“할아버지는 집을 못 찾는 게 아닙니다. 가족이 다 함께 있는 집을 찾는 거지.”
그래서 매일 집을 찾아 달라 파출소를 찾고, 그래서 누군가 집에 들어오는 걸 싫어하시는 거다.
안 그래도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모르는 사람이 오면 더 그렇게 느껴지기에, 그들을 받아들이면 가족이 죽은 걸 정말 받아들여야 하기에 타인의 방문을 거부해 버리는 거다.
치매가 걸린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특수시설에 있는 손녀를 데려오자니 그것도 못할 짓.
이런 종혁의 말에 여성들은 결국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터트렸고, 남성들도 뜨거운 한숨을 뱉어 냈다.
“후. 잠시 컷 합시다.”
카메라가 내려지자 나연석 PD는 담배를 물었다.
“이런 게 파출소의 일상이군요.”
“이 정도는 극히 일부분이죠. 그러니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무거운 이야기라지만 너무 다큐가 되지 않게, 가벼운 이야기지만 개그가 되지 않게.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공감하며 울고 웃을 수 있는 절묘한 편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이 사람 특기지.’
휴머니즘. 진지함 속에서도 웃음을 찾고, 웃음 속에서도 아픔을 찾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연석 PD였다.
“……예. 맡겨 주십시오.”
처음 경찰의 생활상을 그린다기에 솔직히 가볍게 생각했던 그다. 방금 전까지도 완전히 심각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런 사연이 있는 박 씨 할아버지가 매일같이 찾아오는데도 극히 일부분의 일상이라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화할 사람이 없어 파출소로 수다를 떨러 오는 수다쟁이 송 씨 할머니.
종혁이 아니었으면 계속 뻗댔을 비행 청소년.
대낮부터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 여경을 밀쳤다가 엎어치기로 제압을 당한 퇴직한 선생님.
경찰에게 되레 위협을 가하는 깡패.
술만 마셨다 하면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아가씨.
주위에서 쉽게 보기 힘든 이들 모두가 경찰에겐 일상이라고 한다.
‘아니, 주위에서 쉽게 보기 힘든 게 아니야.’
이들 경찰이 그들을 보듬어 감싸고 있기에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들을 일개 웃음 소재로 삼는다고?’
절대 그럴 순 없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종혁은 불이 화륵 타오르는 나연석 PD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돌아섰고, 박성아는 멀어지는 종혁의 등을 가만히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녀의 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 * *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홍익파출소에 긴장이 내려앉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여름의 토요일. 진짜 하루의 시작이다.
“항상 말하지만 다치지 말자. 홍익파출소!”
“아자아자, 파이팅!”
-삐이이잉! 코드 제로! 코드 제로!
“……출동해!”
“옙!”
“홍익파출소에서 인근 순찰차에 전파한다. 코드 제로, 코드 제로.”
-삐빅. 순마 47 접수 종발!
삽시간에 부산해지는 홍익파출소.
지난 3일 동안 처음 보는 풍경에 연예인들과 제작진이 얼어붙은 채 눈을 굴리고, 종혁은 튀어 나가는 이 경사와 서 경장을 반사적으로 따라나서려는 스카이 둘의 뒷목을 잡아 세웠다.
“켁?!”
“어딜 가려고요?”
“아니, 이 경사님이 어디든 따라…….”
“코드 제로는 살인 사건입니다. 그냥 대기하세요.”
살인이 발생한 현장 목격, 현재 진행 중이거나 살인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 등 살인에 연관된 모든 위급한 상황을 통틀어 코드 제로라 부른다.
쿵!
스카이와 박성아 씨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어딜 민간인이.’
그래도 영 아닌 건 아닌 듯, 아니면 오늘까지 3일 동안 고생을 많이 한 듯 겁을 먹고 움츠리는 스카이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장철호 소장을 봤다.
“그럼 전 이 네 명 데리고 순찰 다녀오겠습니다.”
“아, 그래 줄래? 고맙다.”
“아닙니다. 아, 홍 경장님. 한 순경 좀 빌릴게요.”
“응? 오케이. 총이나 제압 도구는 있어? 빌려줘?”
“있습니다.”
가슴을 두드린 종혁은 밖으로 나가자며 손으로 까딱였고, 연예인들과 제작진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종혁의 뒤를 따랐다.
“후아.”
“하!”
너무도 살벌한 분위기에 막혔던 숨통이 트인 그들은 자신들을 데리고 나온 종혁을 고맙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의아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순찰을 나가도 되는 건가요?”
나연석 PD의 말에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코드 제로만 사건이 아니니까요.”
“아…….”
“그리고 쌍욕 먹기 전에 사라져 줘야죠.”
“예?”
코드 제로가 터지는 순간 파출소엔 칼날이 세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이라고 눈앞을 알짱거렸다간 쌍욕을 푸짐하게 얻어먹을 터. 반쯤은 같은 식구인 시보도 이때 실수하면 눈물을 쏙 뺄 만큼 혼나는데, 연예인이라면 촬영 중단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파출소를 찾아야 할지도 몰랐다.
“무전기 챙겨 왔습니다, 최 경감님. 임시 순찰 코드는 순 19입니다.”
“아, 땡큐. 그런데 몇 번째 코드 제로야?”
“이번 달 들어서 벌써 네 번째요.”
사람들은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너무 태연히 대화하는 둘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켰다. 특히나 네 번째라고 덤덤히 말하는 한승연의 모습은 너무 이질적이었다.
‘저렇게 젊은 여경이…….’
‘이게 경찰인가?’
종혁의 말은 진실이었다.
박 씨 할아버지는 정말 극히 일부분의 일상이었다.
“아무튼 한 순경은 마포서에 연락해서 현재 순찰 경로 물어봐. 우리만으로 순찰을 돌 순 없으니까. 그리고 최 경장은…… 아, 이 새끼 다른 촬영 현장에 보냈지.”
첫날 데리고 다니며 가르칠 건 대충 가르쳤기에 우당탕탕 좌충우돌 파출소 생활기의 다른 촬영 현장에 보냈다.
한승연은 그런 종혁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재수는 벌써 이렇게 인정을 받는구나…….’
왠지 분했다.
“……경. 야, 뭐해. 연락 안 해? 아, 내가 해야 하는구나.”
“아,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승연이 핸드폰을 쥐며 돌아서자 고개를 모로 기울이던 종혁은 이내 스카이와 박성아, 이인영을 불렀다.
“들었다시피 마포서 의경들과 도보 순찰을 돌게 될 텐데, 스카이 씨들은 한 순경과 한 조가 돼서 움직여 주세요.”
“네, 네.”
살인이란 말에 겁에 질린 건지 스카이는 넋을 놓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종혁은 박성아를 봤다.
“그리고 박성아 씨와 이인영 씨는 저와 함께합니다.”
정확히는 함께하는 게 아니다.
이 둘은 의경 순찰조와 합류해 인솔 경찰의 지휘를 따를 거고, 종혁은 한 발 떨어져 뒤에 있을 거다.
이런 종혁의 말에 박성아는 스카이와 약간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런가요…….”
꽤 실망하는 표정.
“한 순경과 떨어져서 실망스럽겠지만, 혹시라도 상황이 터졌을 때 대처하기 편하기 위해서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남자인 스카이야 상황이 터지는 순간 뒤로 던져 버리면 그만이지만, 여자인 박성아와 이인영은 보호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종혁 본인이야 그런 것 따지지 않고 뒤로 던져 버릴 테지만, 잔정이 많고 책임감이 큰 승연은 분명 박성아와 이인영부터 보호할 터.
뭐가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사람의 인력이 빠진다는 건 너무도 큰 손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 그럼 출발합시다.”
* * *
홍익파출소의 도보 순찰 합류 소식에 의아해했던 의경들은 카메라들과 함께 나타난 사람들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바, 박성아!’
박성아다. 요새 인기 절정인 박성아가 무려 경찰 근무복을 입고 나타났다.
‘꾸, 꿈인가?’
하지만 틀어 올린 머리로 인해 매끈하게 떨어지는 하얀 목덜미와 반팔을 입어 거의 드러난 얇고 하얀 팔, 그리고 코에 닿는 향긋한 향기는 진실이었다.
그들은 결국 참지 못했다.
“우와아아아악!”
화들짝!
갑작스런 환호성에 놀랐던 박성아와 이인영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맞아. 우리 가수지, 참!’
그동안 정신없이 한승연을 따라다니며 온갖 상황을 겪고, 파출소 경찰들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기에 자존감이 밑바닥을 뚫고 있었던 그녀들의 입가에 점점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조용! 조용히 안 해?!”
의경을 진정시킨 한 이십대 중반의 사내가 앞으로 나선다.
“허흠. 안녕하십니까! 오늘 두 분과 함께 순찰을 할 마포서 의경중대 최고 선임 노수길 수경이라고 합니다! 충성!”
“아, 충성!”
“잘 부탁해요, 오빠들-.”
‘오, 오빠!’
‘나 죽어!’
몸을 배배 꼬며 미소를 주체 못하는 의경들.
그런 그들의 모습에 한숨을 탁 내쉰 인솔 경찰이 종혁을 힐끔 보곤 얼굴을 구긴다.
‘썩을 놈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있을까.
하지만 그런 그도 미소를 주체 못하며 박성아와 이인영에게 다가갔다.
“흠흠. 저희와의 합류를 환영하며 순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네! 충성!”
“크흠. 충성.”
그들은 그렇게 순찰을 시작했다.
웅성웅성. 시끌벅적.
“어? 카메라다. 촬영하나 봐!”
“해 저어문 소양강에-!”
열을 맞추어 걷는 그들의 곁으로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간다.
많이 취한 건지 위태롭게 걷는 두 직장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남자 친구를 보며 헤실헤실 웃는 여자, 골목에 숨어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남자들.
전단지를 나눠 주는 삐끼, 술집으로 들어가는 어려 보이는 친구들.
다양한 모습의 이들을 훑으며 고개를 돌리던 박성아는 문득 종혁을 발견하곤 잠시 넋을 놨다.
“……에서 잠든 주취자 확인. 인근 순찰차 보내 주십시오.”
길바닥에서 잠든 취객 앞에 서서 덤덤히 무전을 보내고 있는 종혁.
첫 만남부터 시종일관 당당했던 경찰 간부. 분명 동갑임에도 한참 어른에게서나 맡을 수 있던 향기를 풍겼다.
‘그저께 PC방에서도 날 구해 줬지…….’
구해 줬다는 말엔 어폐가 있을지 모른다.
종혁은 그 파랑머리 꼬마가 악의에 찬 말을 하려고 할 때 뒤통수를 쳐버리며 끊어 버렸다. 그러며 잠시 끊고 가자고 말하던 박력 있던 모습이란…….
“음?”
“헉!”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고개를 돌린 박성아는 발을 동동 굴렀다.
‘어, 어떻게! 나 미쳤나 봐!’
“언니, 뭐해? 얼른 가자.”
“응? 으응. 그래.”
이인영의 등을 두드리며 고개를 돌리던 그녀는 문득 무언가를 발견하곤 눈을 껌뻑였다.
“어? 쟤들은?”
빨갛고, 노랗고, 파랑머리의 학생들.
아는 얼굴이다. 알 수밖에 없는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모텔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십대의 꼬맹이들이 말이다.
“어어?”
박성아는 다급히 종혁을 찾았다.
이번엔 다른 의미였다.
“신호등 꼬맹이들이요?”
“네, 네! 저기로 들어갔어요!”
“흠. 알겠습니다. 제가 확인할 테니 성아 씨는 계속 순찰을 진행해 주세요.”
“네? 네에…….”
‘음?’
또 실망하는 모습에 의아해한 종혁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나연석 PD를 봤다.
“전 잠시 저기 좀 다녀올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주세요.”
“하하.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박성아가 가리킨 모텔로 향했다.
“흠.”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듯 모텔의 외관은 제법 세련됐다. 미래, 호텔 같은 모텔들과 비교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말이다.
“새끼들. 돈이 없으면 집에서 마실 것이지.”
피식 웃은 종혁은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후다닥!
양복을 입은 웬 중년인이 곁을 지나쳐 모텔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종혁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저 사람은?”
그저께 한승연에게 엎어치기를 당한 그 선생님이었다.
‘피 냄새?’
분명 피 냄새였다.
피가 난 건지, 묻은 건지는 몰라도 냄새가 신선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디서 뒹굴기라도 한 건지 옷과 얼굴이 엉망이었다. 종혁은 긴장을 끌어올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들어간 그놈들! 그 세 놈들은 어디 있습니까!”
“무슨 소리세요. 세 명이라뇨.”
“몇 호실이냐고요-! 수영아! 수영아-!”
‘수영이?’
몸에서 피 냄새를 풍기는 선생님이 수영이란 사람을 찾는다.
종혁은 갑자기 맡아지는 고약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모텔 직원의 얼굴을 살폈다.
‘흐응?’
“아, 이 씨발 진짜! 아, 어서 오세요! 여긴 그런 사람 없으니까 나가라고요!”
“수영아-!”
“아, 진짜 업무 방해로 신고하기 전에 가시라고요! 손님도 오셨는데, 씨발!”
“이익! 그럼 내가 찾겠습니다!”
“저 씨!”
당황해 뛰어나오려는 모텔 직원의 얼굴과 간절하기 그지없는 선생님의 얼굴을 번갈아 본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요것 봐라?’
종혁은 일단 계단으로 달려가는 선생님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켁?!”
뿌득 소리와 함께 허공에 붕 떴다가 바닥에 떨어진 그.
“워워, 일단 진정하시고.”
종혁은 문을 열고 나오다 굳어 버린 모텔 직원을 향해 경찰공무원증을 꺼내어 보여 줬다.
“헉?!”
“오호? 내 생각이 맞구나?”
원조교제 혹은 보도방이다.
“아, 아니 그게…….”
“몇 호실이냐, 그 새끼들?”
“아, 아니 저…….”
띵! 스르릉!
“와 씨 그 뚱땡이 더럽게 많이…….”
움찔!
“뭐야, 왜 안 가는…….”
열린 엘리베이터를 통해 나오다 굳어 버린 신호등 강아지들, 아니 여자 꼬마 강아지까지 넷.
보도방이 아니라 원조교제다.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거기 똥강아지들, 이리로 튀어와.”
“……씨발, 튀어!”
“꺄악!”
종혁은 황급히 뒷문을 향해 도주하는 그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로 튀라는 게 아니었잖아, 새끼들아.”
혹시 모르기에 선생님에게 수갑을 채운 종혁은 뒷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 19, 순 19. 원조교제 패거리 발견 추적 중! 이더 모텔에서 신한 사거리 방향으로 도주 중! 인근 순찰차는 지원 바람!”
* * *
“허억! 헉!”
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달리고 달린 노랑머리의 소년은 가로등 불빛조차 제대로 없는 어둔 골목길에 위치한 모텔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형! 형님!”
벌컥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던 소년은 무언가를 발견하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거실에 앉아 담배를 펴고 있는 목에 문신 있는 사내의 팔뚝에 피가 묻은 붕대가 감겨 있고, 그 옆에서 티셔츠만 입은 소녀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형님? 다, 다치셨어요?!”
“아, 씨발 좆같은 꼰대 새끼. 별 미친 새끼한테 걸려서…….”
한탕 뛰고 소녀를 데리고 나오는데, 갑자기 옆의 ‘수영’이란 이름을 부르짖으며 달려들더니 칼을 꺼내 들어 휘두른 것도 모자라 경찰에게 쫓기기까지 했다.
“야, 이 씨발년아. 똑바로 말해. 그 미친 새끼 알아, 몰라?”
“선생님이요? 선생님 좋은 사람인데.”
눈을 껌뻑이며 해맑게 웃는 소녀.
“……너 설마 이름이 수영이냐?”
“네! 박수영입니다!”
그 순간 상황을 모두 파악한 사내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씨발. 좆같네.”
된통 걸린 거다.
‘씨발, 괜히 꼬드겨서 데려왔나.’
지하철역을 서성이기에 데려왔더니 결국 이 꼴이 되고 말았다.
“넌 또 뭔데? 왜 혼자 왔어? 다른 애들은? 민정이는?”
“……아! 저, 저희 좆됐어요! 짭새한테 걸렸어요!”
“뭐?! 어쩌다가!”
“몰라요! 민정이 데리고 나오는데 그저께 그 PC방에서 저희 끌고 간 그 짭새 새끼가……!”
“미친! 그래서 의리 없이 너만 도망친 거냐?!”
“어떡해요! 죽일 듯 쫓아오는데!”
“아으으! 씨발, 진짜 되는 게 없네!”
벌떡 일어난 사내는 안방으로 달려가 가방에 돈부터 집어넣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노랑머리는 화들짝 놀랐다.
“뭐, 뭐하시게요!”
“그럼 씨발 이대로 잡히리? 너도 얼른 와서 챙겨!”
“아, 네!”
다급히 달려와 다른 가방에 옷을 집어넣던 노랑머리는 뒤통수를 찌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가 움찔 몸을 굳혔다.
“혀, 형님. 저 똥개는 어떡해요?”
뒤를 돌아본 사내는 초롱초롱 이쪽을 보는 소녀를 보며 혀를 찼다.
“놓고 간다. 그 선생 새끼 또 쫓아올라.”
“……네.”
대충 챙길 거만 챙긴 둘은 현관문으로 향했고, 소녀는 그런 둘을 쪼르르 뒤쫓았다.
그에 노랑머리는 소녀를 툭 밀었다.
“우리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집 지키고 있어. 알았어?”
“응! 맛있는 거 사 와!”
‘사 오기는 씨발.’
혀를 찬 둘은 문을 열고 나갔고, 쿵 닫히는 문을 바라보던 소녀는 거실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무릎을 모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언제나처럼. 새로 사귄 저 친구들이 돌아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