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15화>
우당탕탕, 지이이잉!
아침의 서울, 한 파출소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좋은 아침입니…… 어우, 뭐야?”
“그거예요, 그거. 오락프로그램 촬영.”
“아, 그거야?”
출근을 하던 경찰들은 파출소에 설치되는 카메라들에 신기해하고, 파출소 한구석에 놓인 벤치에서 신세를 지던 어젯밤의 취객은 슬그머니 자세를 바로 하며 어깨를 움츠린다.
언제나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파출소에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이거 본청에서 기획한 거랬지?”
호록 커피를 마시는 한 경찰의 말에 다른 경찰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 뭐 그런 곳이래요.”
“아니, 파출소에 뭐 볼 게 있다고……. 몇 명이 온대?”
“네 명이요.”
“상전이 네 명이나? 골치 아프겠구만. 차라리 경찰서를 가지.”
그럼 경찰에 대해 더 다채롭게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고, 다른 이유 때문에 껄끄럽다.
무려 연예인이다.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큰일 나는 연예인.
그런 짐덩이가 네 개나 추가되니 파출소 업무는 꼬일 수밖에 없을 터.
거기다 당장 내일이 금요일이다. 주 5일 근무제 시행이후 주말에 편입되어 버린 금요일.
내일부터 이틀간 화장실조차 제대로 갈 수 없을 만큼 바쁠 텐데 그런 짐덩이까지 케어할 순 없었다.
“그런데 본청에선 사람이 안 온 거야?”
“아직요.”
“하, 시발. 아무리 우리 소장님이 신청을 했다지만, 저런 짐덩이를 던져 놓는 거면 와서 인사라도…….”
쿠당탕!
파출소 내의 경찰들은 입을 다물며 바닥을 뒹구는 사내를 봤다.
누군가에게 던져지듯 날아와 뒹군 사내의 손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썩 낯설지가 않다.
분명 황당한 광경임에도 말이다.
‘어디서 봤더라…….’
뚜벅뚜벅!
“충성. 오랜만입니다!”
경찰들은 구둣발 소리를 내며 들어와 거수경례를 종혁을 발견하곤 눈을 껌뻑이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최 경위님-!”
“하하. 잘 계셨죠, 홍익파출소 여러분?”
그랬다. 우당탕탕 좌충우돌 파출소 생활기의 촬영 파출소 중 한곳은 바로 홍익파출소였다.
“정말 우리 파출소가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달그락.
장철호 소장이 종혁의 앞에 믹스 커피를 내려놓는다.
“최초로 남녀 탈의실 및 당직실 분리한 파출소가 여긴데 여길 아니면 어딜 고르겠어요?”
“너 때문이잖아, 인마.”
커피를 마시던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렇다 치자.”
“아니라니까요.”
“알았다고. 아, 이거 인사가 늦었습니다. 홍익파출소 소장 장철호입니다.”
“우당탕탕 좌충우돌 파출소 생활기의 지휘를 맡을 나연석 PD입니다.”
“참고로 남대문서 반장님이셨어요. 별명이 장베르만일 정도로 성격이…….”
“이 자식이?”
“봐요, 그렇죠?”
나연석 PD는 친분이 짙어 보이는 둘의 모습에 눈을 빛냈다.
“서로 잘 아시는 관계인가 보네요.”
“알 수밖에요. 저놈 첫 발령지가 여기였거든요. 그때 얼마나 풍파를 일으켰는지……. 어휴, 말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어? 그렇게 말하시면 나 억울한데?”
“아니라고? 청일고 전따 사건과 윤영철 사건을 네가 안 일으켰다고?”
“전 검거를 한 거지, 일으키진 않았어요.”
“그게 그거지.”
“청일고 전따 사건이요?”
청일고 전따 사건은 나연석 PD도 아는 사건이다.
1학년 전체가 한 학생을 왕따시켰고, 결국 왕따 학생은 자살을 하려다가 경찰에 구출이 됐다.
주범들은 이 동네의 지주 격인 있는 집 자식들.
경찰서장까지 얽힌 일이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전국에 왕따 근절 캠페인까지 일어났을 만큼 큰 사건이었다.
윤영철 사건은 아버지가 육군 장성이어서 유명해진 사건이다.
일명 채팅 살인 미수범 윤영철. 정신감정 결과 대한민국 역사상 첫 번째로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다.
“그게 최 팀장님이 해결한 사건이었습니까?!”
“하하. 뭐,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는 무슨. 네가 여기 있는 동안 잡은 범죄자가 몇 명인데. 오늘도 봐. 또 오는 길에 범죄자를 잡아 왔잖아?”
“아하하.”
나연석 PD는 더 눈을 빛냈다.
‘오늘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먼저 도착해 카메라 설치 동선을 확인하던 나연석 PD.
범죄자를 집어 던지며 등장하는 종혁의 모습에 이게 무슨 일이냐며 경악을 했었는데, 이게 일상이었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보다 이거 어쩔 거야. 정말 할 거야?”
종혁은 장철호 소장이 내민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작은 사각 케이스, 바디캠에 미간을 좁혔다.
정수찬은 끝내 제시간 안에 프로토 타입을 개발해 냈고, 종혁은 그 시범 운영을 이번 예능 촬영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었다.
“왜요. 싫대요?”
“그럼 좋아하겠냐? 감시를 당하는 건데? 말이 나왔으니 하는데 말인데 말이 경찰 인권 향상이지, 이거 본청에서 일선 경찰들을 감시…….”
감시란 말에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네, 맞죠. 감시가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뭐?”
“하지만 이런 도구까지 필요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도 고민을 이젠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임에도 도리어 시민들이 억울한 피해를 입게 만드는 견찰도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이 경찰 조직은 절대 개선될 수 없다.
그렇기에 종혁은 그런 견찰들의 공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진짜 경찰들이 떳떳해질 수 있도록 바디캠의 도입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겁니까? 억울하지도 않아요?”
술에 취해, 분을 못 이겨 경찰을 때려 놓고 나 몰라라 하는 쌍놈들. 먼저 여경들 성추행해 놓고 제압을 당하니 억울하다 외치며 진단서를 끊는 개새끼들. 경찰이 손도 대지도 않았는데 드러눕는 미친놈들.
웃긴 건 이게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평범한 파출소의 일상이라는 점이다.
바디캠을 통해 객관적 증거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런 경찰들의 억울한 피해도 줄어들 터였다.
“소장님, 제가 본청 들어갔다고 목에 힘줄 만큼 없어 보입니까? 상부의 사냥개가 될 정도로 성공에 미친놈으로 보였어요?”
아니다. 범인 검거에만 미쳤던 놈이 종혁이다. 그러면서 파출소 생활 개선에 앞장을 섰던 종혁.
“미안하다…….”
“후, 죄송합니다. 저도 좀 격해졌네요. 아무튼 이 바디캠 시범 운행으로 인해 인권위도 많이 바뀌게 될 겁니다.”
“인권위도?! 어떻게?”
“일단은 경찰 인권위뿐이지만, 싹 다 갈아엎을 거예요.”
여론이 휘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을 강단 있는 고위 간부들을 인권위원으로 위촉할 것이고, 변호사도 제대로 된 변호사들과 전속 계약을 맺을 계획이다.
“이 모두 청장님의 의지십니다.”
“……정말 미안하다. 오해해서.”
“됐어요. 상부가 욕먹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단 이 경사님들부터 불러 주세요. 이왕 말 나온 김에 해치워야죠. 하, 이런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 주시지.”
“어? 어어.”
장철호 소장은 얼른 전화기를 들었고, 이내 몰려들어온 홍익파출소 간부들은 종혁의 설명에 오해를 했다며 사과를 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나연석 PD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하지만 종혁의 말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니 현 시간부로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단호하게 대처하세요.”
“응? 다, 단호하게?”
“정말? 저, 정말 매뉴얼대로 해도 돼?”
“예. 매뉴얼대로 엄정하고 단호하며 신속하게. 이에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청장님께서 지십니다.”
그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단호하게.
겨우 한 마디뿐인데 왜 이렇게 울컥하게 될까.
‘드, 드디어 상부가 우리를 돌봐 주는구나!’
‘우리의 노고가 인정된 거야! 드디어! 드디어-!’
그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이 경찰 생활 최고의 기념일이었다.
“씨발. 다 죽었다, 이 개새끼들아!”
“이 쌍놈의 새끼들-!”
-치익! 출연자들 도착했습니다. 나 PD님 어디세요?
드디어 녹화 시작.
이제부터 카메라가 자신들을 찍는다 생각하자 으쌰으쌰 파이팅을 하던 경찰들은 딱딱하게 굳었고,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자, 그럼 하루 일과를 시작해 볼까요?”
그렇게 가칭 우당탕탕 좌충우돌 파출소 생활기 촬영이 시작됐다.
* * *
“후우우.”
도로가에 세워진 승합차 안.
4인조 걸그룹 티파니의 리더 박성아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홍익파출소’ 이 다섯 글자를 응시하며 숨을 고른다.
‘여기가 오늘부터 우리가 녹화할, 아니 근무할…….’
일주일에 무려 3일, 하루 9시간 이상 근무할 파출소다.
파출소, 경찰.
솔직히 좀 무섭다.
하지만…….
‘그때보다 힘들겠어?’
유럽을 횡단하며 버스킹을 하고 그 수익으로만 생존하던 프로그램을 찍었던 그녀. 아마 그보다 힘든 경험은 그녀 자신의 인생에 없으리라.
그렇기에 다른 걱정부터 든다.
박성아는 예능 출현이 처음이라 하얗게 질린 막내 멤버의 손을 꼭 잡으며 걱정을 토해냈다.
“실장님, 저희 정말 9시간이나 촬영해도 스케줄 괜찮은 거 맞아요?”
“……안 괜찮지.”
현재 인기 절정인 티파니다.
하루에 잡히는 행사만 기본 4개. 이 3부작 예능 촬영으로 인해 일주일에 6개 이상의 행사가 날아가 버린다.
이렇게 막대한 손해를 입는데도 승낙을 한 건 경찰이 내민 달콤한 대가 때문이다.
우승 시 경찰의 날 행사 초대 및 앞으로 1년간 모든 국가 행사 초대. 일반적인 참석이 아니라 초대 가수로서 참가한다.
티파니처럼 한 곡 반짝 뜬 가수가 아니라, 국내 최정상의 연예인만 참가할 수 있는 국가 행사에 말이다.
즉, 격과 급이 달라진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소속사는 한번 도박을 걸어 보기로 한 것이다.
“구, 국가 행사요?!”
이 말을 처음 듣는 박성아와 막내 멤버는 파랗게 질렸다.
“그러니까 뭐든지 열심히 해. 힘들면 울어! 토해! 대신 성아 네가 제일 잘하는 악바리 근성을 보여! 알았어?”
“우, 울어요? 토해요?”
‘또?’
버스킹 예능을 촬영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쏟아 냈던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내가 알아보니까 순경이 처음 파출소에 출근하면 선배들이 화장실 청소부터 시킨다더라. 전날 취객들 때문에 난장판이 된 화장실을.”
“아.”
“거기다…….”
매니저는 나름 알아본 것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박성아와 막내 멤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갔다.
쿵쿵쿵!
“나오실 시간입니다.”
“파이팅! 악바리 박성아, 아자아자아자!”
“……후, 다녀오겠습니다.”
“잘해!”
드르륵 문을 연 박성아는 자신을 찍는 카메라에 활짝 핀 미소로 인사를 하며 홍익파출소로 향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파출소 문에 그녀는 다시 심호흡을 했다.
‘잘하자. 잘하자. 무조건 잘하자.’
“언니…….”
“우리 연습한 거 잊지 않았지?”
“……응, 언니.”
“들어가자.”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들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하나, 둘. 충성! 티파니 박성아와!”
“이인영은!”
“현 시간부로 홍익파출소 근무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실력파 가수다운 우렁찬 성량이 꿰뚫자 모든 게 멈춰 버린 파출소.
‘……응?’
박성아는 자신들을 보며 눈만 껌뻑이는 경찰들의 모습에 뭘 잘못한 건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였다.
짝! 짝! 짝!
‘저, 저분은?’
박성아는 박수를 치는 종혁을 보며 깜짝 놀랐고, 장철호 소장은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었다.
“와아, 여기가 군대인 줄. 야, 누가 저 시보들에게 인사 좀 가르쳐 줘라.”
“푸하하하핫!”
“으하하하핫!”
박성아와 이인영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으흐흐. 넌 순경, 난 경장. 넌 한 순경, 난 최 경장. 넌 핫바리, 난…….”
퍼어억!
“커헉?!”
“닥쳐라. 나 너 팰 수 있다.”
“버, 벌써 때려 놓고…… 헉!”
종혁을 따라와 놀리다 결국 배를 얻어맞은 최재수를 일견한 한승연은 잔뜩 얼어 있는 박성아의 모습에 아차 했다.
“어머. 호호, 반가워요. 앞으로 두 분의 사수가 될 한승연 순경이라고 해요.”
“바, 박성아입니다.”
“이인영이에요!”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마요. 여긴 그런 곳 아니니까. 따라와요.”
한승연은 둘을 데리고 탈의실로 향했다.
“여기가 여자탈의실.”
“여, 여자탈의실이요? 파출소는 탈의실이 따로 있어요?”
남녀 탈의실 분리가 뭔가, 음악방송 대기실이건 행사 대기실이건 대기실에선 남녀 함께 옷을 갈아입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행사 땐 대부분 차에서 갈아입는다.
“따로만 있을 뿐일까.”
콧대를 세운 한승연은 탈의실 문을 열었고, 박성아와 이인영은 탈의실 풍경에 헛숨을 삼켰다.
우중충하게 나무로 꾸며진 벽에 서늘한 철제 캐비닛.
앉아 있어도 불편할 것 같은 검은색 소파에 탈의실 옆 여자 숙직 공간엔 허름한 라꾸라꾸 침대와 이불이 각을 지어 세워져 있다
그나마 화장대들과 커다란 냉장고 두 대가 이곳이 여성들의 공간임을 알려 줄 뿐, 보기만 해도 절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알까.
이건 이번 촬영 때문에 모조리 싹 다 거짓으로 리모델링을 했다는 걸. 원래는 연분홍빛 대리석 공간에 원목 화장대, 원목 캐비닛 등 최고급으로 꾸며져 있었다.
‘에혀. 이분들만 아니었으면…….’
오늘도 핑크색 소파에 앉아 우아하게 모닝커피를 마시며 고아하게 화장을 고쳤을 것이다.
‘그러다 콜 터져서 눈썹을 반만 그리고 튀어 나가…….’
“꺄, 꺄악! 피, 피!”
이인영이 휴지통에 담긴 피투성이 붕대 뭉치를 발견하고 호들갑을 떨자 한승연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런 건 따로 봉지에 싸서 버려 달라니까. 아주 자기 다쳤다고 자랑 안 하면 못 살지?”
그렇게 말하며 화장대 서랍에서 검은 봉투를 꺼내 아무렇지도 않게 담는 한승연의 모습에 둘뿐만 아니라 촬영팀도 식겁한다.
“이, 이런 일이 자주 있나 봐요?”
“아, 피요? 자주 보죠. 하루에 한두 번은 무조건?”
이건 진실이다. 원래 기온과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엔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데, 관내에 강변공원과 번화가가 있어서 시비나 폭행으로 이어지는 주취 사건이 많다. 그걸 말리다보면 경찰도 자연스럽게 피를 보게 된다.
“저도 어제 다쳤어요, 여기.”
팔뚝을 따라 길게 그어진 상처.
다행히 얇게 베인 듯 대수롭지 않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안 그래도 하얗게 질려 있던 박성아는 숫제 시체처럼 파랗게 질려 버렸다.
“딸꾹!”
“자, 그럼 얼른 환복을 할까요? 야, 박 시보!”
“시보 박시연-!”
“방송국분들 정중히 내보내고, 아침 식사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충성! 자, 이제 나가 주시지 말입니다. 여자들 환복하지 말입니다.”
“어? 어?”
‘안 돼! 가지 마세요!’
‘여기에 우리만 남겨 두지 마세요!’
박성아와 이인영은 마음속으로 손을 뻗었지만 문은 속절없이 닫혔다.
“응? 안 갈아입어요?”
“가, 갈아입을게요!”
‘어, 엄마야!’
그들은 학교에 지각을 할 때보다 더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환복을 마치고 화장실로 간 둘은 오바이트 지뢰로 가득한 내부를 닦는 다른 시보들의 모습에 절망하고 말았고, 키득 웃은 승연은 둘을 밀어 넣고 종혁을 찾았다.
“남자아이돌팀은 왜 아직도 안 왔다고 합니까? 9시가 넘어가는데. 얘들 그쪽에서 먼저 꽂아 달라고 사정한 거 아니었어요?”
“차가 막힌다고…….”
“그럼 빨리 출발했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놔. 경찰일이 우습게 보이나.”
‘최 경위님, 아니 최 경감님…….’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더 멋있어진 종혁.
고작 25살에 경감으로 특진을 하더니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라는 부서의 팀장이 됐다고 한다. 무려 본청의 팀장이 말이다.
둘 사이의 간격이 더 커진 느낌이었다.
‘이제 현장은 안 뛰시는 건가? 조금만 더 배운 후에 특수에 가려고 했는데…….’
괜스레 울적해지고 있었다.
“하, 진짜 아무리 스카이라지만 경찰이 우습나…….”
주로 발라드를 부르며 2000년 초반에 한국을 휩쓴 꽃미남 아이돌 그룹 스카이. 티파니와 함께 홍익파출소에서 근무하며 근무 평가로 대결을 할 이들이다.
그런 중요한 출연자가 아직도 오지 않자 투덜거리던 종혁은 한승연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추, 충성!”
한승연은 어느새 다가온 종혁에 화들짝 놀랐고, 종혁은 그런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올-. 이젠 좀 경찰 티 나는데요?”
순경 2년 차가 돼서 그런지 이제야 좀 근무복이 어울리는 느낌이다. 이제야 모진 풍파에 단단해진 느낌이랄까.
이런 그의 칭찬에 한승연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머리는 좀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팀장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뭘요. 고작 임시인데.”
“그래도…….”
싱긋 웃은 종혁은 화제를 돌렸다.
“박성아 씨들은 좀 어때요?”
정확히는 카메라가 없을 때를 묻는 거다.
“아, 풋. 뭘 들은 건지 군기가 바짝 들었던데요? 마치 겁에 질린 강아지 두 마리 같았어요.”
“시보 때 한 순경처럼?”
“저, 전 안 그랬는데요?!”
“뭘 안 그래요. 다 들었는데…….”
눈을 부릅뜬 승연은 시보 때 사수였던 김 경장을 찾았지만 올해도 결국 고배를 마신 그는 이미 지방의 파출소로 전출을 가 버려서 보이지 않았고, 종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때였다.
끽!
파출소 앞에 밴이 멈춰 서자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하. 이제야 설렁설렁 도착…….”
말을 하던 종혁은 밴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아, 진짜 내가 왜 저딴 좁고 더러운 파출소 따위에서 촬영을 해야 하냐고! 그것도 겨우 3부작을!”
“맞아! 우리가 급이 있지!”
“닥쳐! 회장님 명령이니까 하라면 해!”
종혁과 승연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는다.
아니, 종혁의 눈과 입술은 삐뚜룸 비틀어지고 있었다.
“이 새끼들 봐라?”
“힉?!”
종혁을 본 승연은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