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10화>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눈을 번쩍 뜬 고영광은 컴퓨터 책상 아래부터 살폈다.
"헤헤."
어젯밤 드디어 조립을 끝낸 보물.
학생의 신분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초고가의 컴퓨터.
지난 1년여 동안 알바를 하며 당한 모진 수모와 고통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스쳐 지나가던 추억으로 느껴졌다.
부모님의 유산을 친척들이 모두 가로채면서 생긴 인간에 대한 불신 탓에 더 집착하게 된 컴퓨터.
이젠 저 컴퓨터가 고영광 본인의 새로운 친구고, 가족이었다. 온갖 고생을 다하며 겨우 조립해서 그런지 더 그렇게 느껴진다.
본체 케이스를 조심스레 쓸어내리던 고영광은 문득 창밖으로 시작된 아침을 보며 눈을 빛냈다.
"오늘인가?"
오늘이다.
고가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
짹짹짹!
좋은 일이 있으려고 하는 건지 아침부터 참새가 울자 결국 크게 웃어 버린 영광은 화장실로 향했다.
까악까악!
뒤늦게 운 까마귀 울음이 화장실 문을 부딪쳤지만, 이미 샤워기를 틀어 버린 영광은 듣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아침 아르바이트 준비를 시작했다.
* * *
어스름한 햇빛이 비추는 태릉 피트니스 센터 안.
뿌드득! 뿌드득!
우람한 근육이 약동을 한다.
엎드린 상태에서 양다리를 허공에 띄운 채 팔을 굽혔다 펴는 종혁.
"후우욱! 후우욱!"
거친 숨과 땀이 쏟아진다.
‘878, 879…….’
"팔백팔시입!"
쿠웅!
무반동으로 물구나무를 서는 것을 마지막으로 예열을 마친 종혁은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런 그에게 제법 몸이 좋은 삼십대 사내가 다가서며 수건을 내밀었다.
"살벌하다, 살벌해. 적당히 해. 애들 기 다 죽일 셈이야?"
"아, 형."
태릉 피트니스 1호점의 매니저인 사내의 말에 주위를 둘러본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전직 상비군 출신들이 질린다는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요새 무슨 일 있어?"
요사이 부쩍 훈련의 강도가 높아진 종혁.
눈빛은 누구라도 하나 걸리면 찢어발길 듯 살벌해서 마치 사냥감을 코앞에 둔 맹수처럼 느껴진다.
"아니, 요새 몸에 녹이 슨 것 같아서 말이야."
"……그게? 너 지금 우리 기만하냐?"
지금 당장 태릉에 들어간다 해도 1군 선수 전원을 씹어 버릴 것 같은 피지컬과 운동량.
"하하. 그럼 난 다른 운동 하러 갑니다!"
딱히 변명할 거리가 없는 종혁은 마무리 운동을 하는 장소에 걸린 샌드백 앞에 서며 숨을 골랐다.
"결국 연락이 오지 않았네."
오늘이다.
일이 벌어지는 날이 오늘임에도 고영광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범죄 쪽에 관심이 있었다면 안부 문자라도 보냈을 터.
이로써 종혁이 고영광을 잘못 본 게 아니냐는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억울한 피해자이거나 우연히 놈들의 일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커졌다.
종혁은 우연히 놈들의 일에 휘말렸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옛날 대전 어린이 사건 때 만난 놈들 조직의 킬러가 떠올랐다.
반사 신경이 예사롭지 않았던 놈. 아마 당시 종혁 본인의 몸이 회귀 전과 같았다면 큰 상처를 입었을 정도로 위험한 놈이었다.
"아니, 어쩌면 죽었을지도……."
이런 놈이 수두룩하다는 그 조직이다.
‘한 놈이 올까, 여러 놈이 올까.’
일단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다.
사로잡힐 순간이 되자 결국 음독으로 자살을 택했던 놈의 모습이 샌드백에 투영되자 종혁은 발을 내디뎠다.
쿵! 뻐엉!
기역자로 꺾이며 솟구치는 샌드백.
‘시작.’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은 종혁의 팔과 다리가 샌드백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운동 후 먹는 밥은 왜 이리 꿀맛일까.
특수범죄수사과에서 형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줄었던 운동 시간 때문에 약간 늘어졌던 몸뚱이가 전처럼 다시 기민하게 반응해서 그런지 더 꿀맛처럼 느껴진다.
운동 전에도 먹었던 밥을 후에도 먹던 종혁은 맞은편에서 졸린 눈으로 밥을 먹는 순철을 향해 말을 툭 던졌다.
"뭔데?"
흠칫!
"그렇게 놀라 놓고 무슨 소리냐고 하지 마라."
오늘 벌어질 일 때문인지 약간은 서늘한 목소리.
그에 잠이 달아나 버린 순철이 목을 긁는다.
"저 그거이…… 아입니다. 신경 쓰지 마시라요."
"왜? 지령이라도 내려왔어?"
화들짝 놀란 순철은 재빨리 손을 저었다.
"절대 아입니다! 다른 것 때문입니다! 절대! 절대!"
"알았으니까 말해 봐. 말을 해야 돕든지 말든지 하지."
"……그 혹시 세진은행이라고 아십네까?"
"세진은행?"
순간 종혁의 몸이 흔들렸다.
‘그게 왜 네 입에서 나와?’
"알지. 거기가 왜?"
"제가 자주 가는, 그러니까 해커들만의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습네다. 딥 웹에 있긴 한데, 한참 봐도 사람이 되지 못할 놈들이 모이는 곳이 아입네다!"
"……일단 계속해 봐."
"아무튼 거기서 들은 말인데……."
종혁은 이어지는 말에 눈을 빛내며 경청했다.
‘그래, 영광이 네가 그런 걸로 얽혔구나.’
이제야 코가 간질거리며 고약한 냄새를 제대로 맡기 시작한다.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수고했어. 네 입장에선 어려운 말이었을 텐데 말해 줘서 고맙고."
해커들만의 커뮤니티 사이트.
경찰인 종혁으로선 오해를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미안합네다. 그동안 좀 외로웠나 봅네다."
종혁은 풀이 죽은 순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됐어. 계속해도 돼. 네 사생활인데, 왜 내게 죄책감을 가져? 너 거기서 범죄라도 공모했어?"
"아, 아닙네다!"
"그럼 뭐가 문제야?"
순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제가 만약 지령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실 겁네까?"
"일단 널 체포하겠지? 그리고 순영 씨와 너희 가족을 빼내겠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이용해서라도 말이다.
"형님……."
순철은 이 순간 종혁과 만나게 해 준 신께 다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종혁은 그런 그의 머리를 헤집었다.
"알았으니까 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있어."
"네?! 하, 하지만……!"
"철아, 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건 경찰과 검찰의 일이야. 너처럼 민간인의 일이 아니라."
"……알겠습네다."
‘전혀 아는 것 같지가 않은데…….’
하지만 지금 말한다고 해서 들을까.
"좋아. 그럼 형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뭐, 뭡네까?"
종혁은 부탁할 것을 말했고, 순철의 얼굴은 확 밝아졌다.
"그건 쉽습네다! 지금 바로 해 드립네까?"
"대신 이것 하나만 약속하자. 이것 말곤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마. 알았지?"
만약 이 이상 개입을 한다면 그땐 정말 혼을 낼 생각이었다.
"알갔습네다! 걱정 마시라요!"
"그래, 믿는다."
웃어 준 종혁은 나머지 밥을 입에 욱여넣고는 일어서 방으로 향했다.
순철 덕분에 큰 정보를 알게 됐다.
단순히 사건 파일로만 접했던 그날의 숨겨진 내용과 결시일.
‘마냥 아침부터 죽치고 있으려고 했는데…….’
뿌드득 목을 좌우로 꺾은 종혁은 이를 드러냈다.
"운동 다시 해야겠네."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팀장님. 저 종혁입니다. 예전에 하신 약속 지금도 유효한가요?"
예전, 러시아에 피지컬 트레이닝 전수를 위해 다녀온 날 공항에서 한 약속.
전화를 끊은 종혁의 눈이 살기등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 오 경위님. 저 오늘 결근이요."
-뭐 인마?!
‘종수 형에게도 오늘 간다고 연락해야겠네.’
* * *
"후우. 후우."
헤드셋을 낀 채 컴퓨터 앞에 앉은 고영광은 모니터를 보며 숨을 골랐다. 실전다운 실전은 오늘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가슴이 답답해질 만큼 심장이 뛴다.
[rabbit Foot]님의 채팅-시작까지 10분 남았네. 모두 배는 든든하게 채우셨어?
[Blow hook]님의 채팅- 난 일할 때 공복으로 해서 물만 마시는 중임.
[winTer castle]님의 채팅- 난 든든하게 국밥 먹음.
[Blow hook]님의 채팅- 아오, 저 국밥성애자. 차라리 국밥 킹이라고 짓지 그러냐!
[winTer castle]님의 채팅- 오, 그럴까? 나이스 자위 머신.
[Blow hook]님의 채팅- 아니라고, 씨발라마 ㅡㅡ^ 여자한테 그런 말 쓰지 말라고, 개새끼야.
"킥킥."
긴장을 사르르 녹이는 커뮤니티 형, 누나들의 만담에 고영광도 얼른 채팅을 쳤다.
[Dark Dragon Arm]님의 채팅- 저도 먹었어요!
[rabbit Foot]님의 채팅- ㅎㅎㅎ 다들 스탠바이인 것 같네. 그런데 이 양반은 왜 안 와?
[Blow hook]님의 채팅- 그러게. 똥 싸나?
고영광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 10분 전인데 자신들에게 일을 맡긴 사람이 오질 않는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설마 갑자기 없던 일로 한다는 건……."
‘그럼 내 알바비는?’
저녁 아르바이트를 쉬면서까지 애써 만든 시간이다. 고영광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chief kim 님이 접속했습니다.]
"왔다!"
[rabbit Foot]님의 채팅- 뭡니까, 왜 이렇게 늦었어요.
[chief kim]님의 채팅- 일이 있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럼 바로 오더를 정하겠습니다. 오더는 다암 님이 해 주시길 바랍니다.
[Dark Dragon Arm]님의 채팅- 네?
반사적으로 채팅을 친 고영광은 눈을 껌뻑였다.
"내, 내가 오더를? 마, 말도 안 돼!"
모니터 안에서도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chief kim]님의 채팅- 다암 님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클라이언트 쪽에서 말하길 대단한 실력자가 오더를 잡는 건 피해 달라고 하더군요. 너무 쪽팔리는 건 안 된다고.
[rabbit Foot]님의 채팅- 아, 그럼 어쩔 수 없네.
[Blow hook]님의 채팅- 쳇. 이런 건 제대로 까야 지들이 뭘 잘못하는지 아는 건데.
[winTer castle]님의 채팅- 난 찬성. 다암이가 나이가 적을 뿐이지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다암이는 괜찮겠어?
‘괜찮냐고?’
괜찮지 않다.
업계 선배인 형과 누나들을 오더한다?
이건 중학생이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거다.
하지만…….
[rabbit Foot]님의 채팅- 힘들어도 해 봐. 이런 거 다 경험이다.
[Blow hook]님의 채팅- 그래. 한번 해 봐. 다암이가 오더 잡으면 재밌겠네. 힘들면 우리가 받쳐 줄 테니까 부담 갖지 마.
‘형들. 누나들…….’
입술을 꾹 깨문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형, 누나들이 있는데 뭔 걱정이야! 해 보자!’
자신의 지휘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꿈을 매일 꾸지 않았던가.
그는 용기를 내어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Dark Dragon Arm]님의 채팅- 네, 그럼 해 볼게요!
[rabbit Foot]님의 채팅- 오케이! 그래야 남자지!
[Long Dick]님의 채팅- 응? 나 불렀어?
[Blow hook]님의 채팅- 넌 좀 닥쳐! 이 성추행범아!
[chief kim]님의 채팅- ㅎㅎ. 그럼 5분 후 세진은행 불시 보안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건투를 빕니다.
[Dark Dragon Arm]님의 채팅- 네. 끝나고 봬요, 김주임님.
‘해 버렸다!’
결국 승낙해 버리고 말았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함에 고영광은 떨리는 손을 꽉 잡았다.
‘더티 래빗 선생님! 제게 힘을 주세요!’
자신들에겐 전설 중 한 명인 더티 래빗.
우연히 그가 쓴 자서전을 발견하고 이쪽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고영광은 초조하게 시간이 되길 기다리다가 마이크 전원을 켰다.
"후우. 오더를 맡은 다암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20초 후 세진은행 불시 보안 테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준비 완료.
-라져 뎃.
시간이 가까워지자 방금 전까지 한없이 가볍던 형과 누나들의 목소리에 진지함만 남는다.
그래선지 더 부담이 솟는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이 겪고, 거쳐야 할 길.
고영광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삐비비!
알람이 울렸다.
"다이브 시작."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보안 전문가 고영광의 커리어는.
고영광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입을 열었다.
타라라라라라라락!
-오 씨발 반격이 거센데?
-작은 은행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잖아!
-어떻게 할까, 오더?
형, 누나들의 말처럼 방어가 너무 탄탄하고 반격이 거세다.
고영광은 하는 수 없이 정면 승부를 버리기로 했다.
"토끼발 형, 우회! 겨울왕국 형과 블로 훅 누나가 디코이 해서 시간 벌어 주시고! 롱딕 누나는 깔짝이 하며 대기!"
-우회 중!
-야, 국밥 킹. 거기 들어오잖아!
"막아…… 겨울, 역추적! 끌어들여요!"
-뭐? 역추적인데? 알았어, 씨발!
빠르게 전투의 판세를 읽고 있던 고영광은 순간 뭔가를 보곤 눈을 빛냈다.
"지금! 롱딕 누나, 잘라요!"
-……커엇 완료!
-그렇지!
"겨울 형 빠지고, 토끼발 형!"
-우회 성공! 침투 중 디코이 요망!
"블로 누나!"
-간다!
"저도 지원 들어갑니다!"
타라라라라라라라락!
‘제발…… 제발…….’
영광은 부디 저쪽에서 이쪽의 의도를 읽지 않기를 바라며 거세고 거세게 공격을 해 갔다.
역추적의 뱀이 몸을 휘감아 와도 공격일변도로 달려들고 달려들었다.
‘토끼발 형! 뭐하는 거야?! 왜 이렇게 늦어!’
앞으로 겨우 몇 초. 그때부턴 역추적의 뱀이 목을 물어뜯을 거다.
그럼 실패였다.
‘안돼. 이렇게 허망하게 끝낼 순…….’
그 순간이었다.
"어?"
갑자기 사력을 다해 방어하고 반격해 오던 적들의 움직임이 멈추며 성문이 열린다. 아니, 성벽 자체가 햇빛에 녹는 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며 화면에 점점이 찍히는 파충류 발자국.
-다들 나 찾았어?
"혀어어엉-!"
-이야야야야야!
-으아자뵹-!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이 사랑스런 오빠 새끼야!
-오더가 다암이라 시그니처 바꾸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
‘내 시그니처 그거 아닌데…….’
그래도 웃음이 나온 고영광은 얼른 채팅을 켜서 일이 끝났다는 걸 알렸다.
[chief kim]님의 채팅- 수고하셨습니다. 약속한 돈은 내일까지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Dark Dragon Arm]님의 채팅-네, 감사합니다. 저흰 흔적 지우면서 나갈게요.
흔적 지우며 철수.
이건 김 주임이 요구한 것이었다.
"흐히히히히. 돈이다, 돈."
감히 학생으로선 꿈도 못 꿀 액수.
두 개의 알바를 한 달 동안 해야 벌 수 있는 거액도 거액이지만, 은행이라는 거대한 성을 뚫은 성취감이 온몸을 저릿저릿하게 울렸다.
"그럼 다들 철수 준비하죠."
-이응이응.
-원래 진정한 신사는…….
-닥쳐.
다시 가벼워지는 형, 누나들의 모습에 킥킥 웃던 고영광도 흔적을 지우기 위해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너무 흥분해서일까.
갑작스럽게 난 오타를 지우려 했던 그는 모니터 속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눈을 껌뻑였다.
그러곤 의아해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아? 어?"
-왜 그래? 뭔데?
"이, 이거 뭔가 이상해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은행 정보를 확인하고 있어요!"
정보뿐만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돈이 어딘가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뭐?
고영광의 헤드셋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들이 들렸다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씨발! 야, 다들 손 떼!
"왜, 왜요! 뭔데요!"
-일단 빠져나와! 절대 흔적 남기지 마!
그 말을 남긴 후 토끼발은 보이스 채팅에서 나가 버렸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는 말을 남기고 나가 버린 그들.
"뭐, 뭐야. 뭔데!"
순간 두려움에 휩싸인 고영광은 일단 흔적을 지우며 빠져나온 후 손톱을 깨물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때였다.
쿵쿵!
흠칫!
고영광은 다급히 거실 쪽에 난 작은 창문을 봤다.
"다크 드래곤 암? 안에 있지? 문 좀 열어 볼래?"
‘흡?!’
"……없나?"
"그럴 리가 없잖아. 나온 걸 본 적이 없는데."
하얗게 질린 영광은 숨을 죽이며 본능적으로 컴퓨터 책상 밑에 숨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었다.
"거, 거기 112죠? 저, 저는 고등학생이고, 오늘 사람들이랑 은행 보안 테스트를 했는데, 그게 해킹이 돼서 지금 저희 집에 누가 잡으러 왔거든요?"
숨을 죽인 그는 횡설수설 말을 뱉어 냈다.
-……장난전화는 하지 마세요.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진다.
다급하지만, 목소리를 높일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영광은 순간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자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혀, 형. 저 좀 살려 주세요! 누가…….
-알아. 지금 네 집 앞이니까 문 잠그고 있어.
"네?"
"어이-! 좀도둑 둘! 나 좀 보자?"
밖에서 들려오는 종혁의 외침에 영광은 눈을 부릅떴다.
* * *
한여름이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듯 밤에도 무더운 날씨.
대충 시간이라서 박정수 집의 옥상에서 담배를 펴는 척 옆집의 동태를 살피다 담벼락을 넘는 둘을 발견한, 그들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발견한 종혁은 이를 드러냈다.
‘그래. 너희 맞구나, 새끼들아.’
그럼 앞으로 해야 될 일은 하나다.
종혁은 그대로 담벼락을 박차며 옆집에 난입했다.
쿠우웅!
흠칫 놀라며 쳐다보는 두 명의 모습에 종혁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지치고 힘들 땐…….
종혁은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을 들었다.
"알아. 지금 네 집 앞이니까 문 잠그고 있어."
전화를 끊으며 그들을 부른 종혁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뭐해? 목격자잖아. 안 와?"
그 말에 서로를 본 두 명은 한숨을 내쉬며 종혁에게 다가왔다.
"이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흰 경찰입니다. 지금 해킹에 대한 신고가…… 컥?!"
콱 목을 틀어쥔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어느 서? 난 본청 소속인데."
종혁이 꺼낸 경찰공무원증에 순간 눈을 부릅뜨는 둘.
"말 못하지? 그럼 죽어."
종혁은 바깥다리를 걸 듯 그의 다리를 걸며 그대로 땅에 처박았다.
쿠웅!
"컥!"
유도에서 금지된 기술, 목 잡고 바깥다리 걸기.
그 효과는 대단했다. 단숨에 땅에 처박힌 놈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 이제 그럼?’
종혁은 다른 놈을 요리하기 위해 고개를 틀었다.
그 순간 쉬익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칼날이 위에서부터 목을 향해 찔러 들어온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꽤 빠르면서도 치명적인 공격.
종혁은 몸을 비틀며 주먹을 뒤로 잡아당겼다.
"너도 뒈…… 어?"
갑자기 시야 안에 들어오는 발이 칼을 휘두르던 놈을 노린다.
그에 칼을 휘두르던 놈은 다급히 가드를 했고, 발은 그 위에 작렬했다.
뻐어억!
"큽?!"
"사건을 안 맡기는 씨발.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새끼야."
종혁을 등지며 선 작은 키의 사내.
종혁은 이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오 경위님?"
‘당신이 여기 왜 있어?’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