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08화 (208/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08화>

    "와, 이씨!"

    "우와아!"

    "딱 말해! 당신들 경찰 아니지? 그치?!

    2000년대 초중반 예능의 트레이드마크인 댄스 신고식에서 토마스와 에어트랙을 작렬시키며 연예인들 기를 죽이는 걸로 시작한 경찰들.

    복고댄스에 테크노댄스, 심지어 막춤까지 화려하고 절도있는 그들의 모습에 촬영장은 뒤집어졌고, 여자 연예인들 두 눈에 하트가 뿅뿅 들어찼다.

    촬영장 한구석에 선 종혁은 그 모습을 흐뭇이 지켜봤다.

    ‘그렇지! 그거지!’

    뭘 하나를 해도 제대로, 확실히.

    그동안 들인 공이 아깝지 않음에 종혁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잘한다, 내 새끼들!’

    언젠가 물러날 단장 자리지만, 그래도 그동안은 자신이 케어해야 되는 부하 직원들이다.

    그런 그들의 활약에 종혁은 진심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종혁의 옆에 서 있는 PD도 마찬가지였다.

    "이야, 정말 대단하네요. 경찰은 외모랑 끼도 보면서 뽑습니까?"

    "고르고 고르긴 했죠. 그래도 다른 경찰들도 저 반절쯤은 합니다."

    그런 종혁의 허세에 PD는 피식 웃으며 당황하는 연예인들을 봤다.

    ‘새끼들. 꼴좋네.’

    정규 편성이 된 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프로그램이라서 그런지 어느덧 초반만 못하던 모습들을 보이던 연예인들.

    메인 MC야 여전히 성실하지만 다른 고정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반인들이 나와서, 그것도 웬만한 남자 배우 뺨치는 미남 경찰들이 나와서 엄청난 기량을 뽐내고 있다.

    ‘아주 정신이 번쩍 들 거다, 이놈들아.’

    다들 예능 바닥을 구른 짬밥이 있으니 지금부턴 이를 악물고 달려들 터. PD는 연예인들의 정신무장을 다시 해 준 종혁이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났다.

    ‘최종혁 경감, 아니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종혁 선수.’

    유도선수 최초로 팬클럽을 가진 미남 선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면서 수많은 여성들의 애간장을 닳게 만든 선수.

    솔직히 PD도 당시 종혁을 예능에 출현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랐다.

    그랬던 그가 이렇게 경찰 간부가 되어 나타났다. 그것도 경찰 홍보단 단장으로.

    "혹시 최 경감님은 출연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저요?"

    눈을 동그랗게 떴던 종혁은 비실 웃었다.

    "글쎄요. 저 출연시키면 재미가 없을걸요?"

    "예?"

    "오늘 X맨 있죠? 연예인 출연자 쪽에."

    PD는 눈을 부릅떴다.

    ‘그, 그걸 어떻게?!’

    특집 방송이라 출연 연예인 전부 X맨이 없는 줄 안다. 심지어 MC인 김재선까지도 말이다.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다 보입니다."

    "끄응."

    "그리고 제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저기 끼어들면 반칙이라서요."

    장호돈과 김국종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넘어갈까.

    종혁은 둘을 한 손에 한 명씩 들고 뜀박질도 할 수 있었다.

    "……사람이세요? 아, 죄송합니다."

    "아니요. 많이 들은 소리라서 괜찮습니다."

    그 말에 PD는 결국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후우우. 그래도 아까운데…… 아, 그런데 걔는 왜 출연시키지 못하게 하신 겁니까?"

    종혁은 딱 한 명의 연예인을 출연시켜 주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내부에서 말이 많았지만, 경찰에 의해 방송국 하나가 더 날아갈 뻔했다는 소식을 입수한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 곧 수사에 들어갈 거라서요."

    "……예?"

    "그 새끼가 미성년자를 추행하고 다니더라고요. 연예인 시켜 준다고 꼬드겨서."

    순간 PD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어린 여자 연예인들에게도 추파를 던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종혁의 눈이 가늘어지자 PD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몰랐습니다."

    알았지만 모른 거다.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을 건들인 순간 그놈은 절대 모르는 놈이 되는 거다.

    종혁은 놈의 그런 행위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묵인한 PD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신 거라서 말씀드린 거니 비밀은 지켜 주세요."

    "아이고, 아니요. 최 경감님이 저희를 구한 거죠!"

    만약 X맨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인기를 끌고 있을 때 그게 터졌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에 PD는 이를 악물었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어디서 재를 뿌리려고.’

    경찰 이미지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그런 범죄자와 한자리에 있는 것조차 피해야 했다.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종혁은 눈을 부릅떴다.

    "그만-!"

    종혁의 입에서 터져 나온 호통이 촬영장을 꿰뚫었다.

    *   *   *

    댄스 타임이 끝나자 어느새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갔다.

    제작진이 준비한 제비뽑기를 통해 게임을 정하는 방식이었는데, 첫 번째는 말뚝박기였다.

    하지만 말뚝박기조차 전투적으로 연습한 그들을 제대로 운동조차 안 한 연예인이 이길 리는 없었다.

    여성 연예인들이 애교를 부리며 가위바위보를 이기려고 해도 ‘저 여자친구 있습니다. 아내가 있습니다.’ 철벽을 쳐 버렸고, 겨우 싱글인 경찰과 대결을 해도 가위바위보 운이 좋지 않았다.

    결국 완패.

    경찰들의 무자비한 내려찍기와 흔들기에 환자만 양성했다.

    외모에서도 져, 끼에서도 비등해, 이런 상황에서 게임까지 져 버리니 독이 올랐던 연예인들은 두 번째 게임이 정해지자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렇지!"

    "씨이! 이제 너희 다 죽었어!"

    두 번째 게임은 씨름.

    장호돈이 특유의 약 올리는 표정을 지으며 목을 방정맞게 꺾었다.

    "아이고, 이거 괜찮겠어요? 쪼매 다칠 수도 있을 긴데?"

    "우리 형 얼마나 센지 모르지?! 백두장사야, 백두장사!"

    "천하장사. 무제한."

    "들었지?!"

    "우우우우!"

    멘탈을 흔들려는 건지, 아니면 분량을 위해선지 방정맞게 구는 그들.

    그러나 경찰들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귀엽네.’

    ‘그러게. 난 연예인이라서 접근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마치 귀여운 꼬마들의 재롱을 보는 듯한 삼촌처럼 푸근하기만 한 그들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김재선이 눈을 빛냈다.

    "이야, 역시 대한민국 치안을 지키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자신만만하네요. 그럼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하영훈 나와!"

    "나요?! 나, 난…… 패스!"

    "패스가 어디 있어! 얼른 들어와!"

    "에이씨."

    ‘누가 나갈래요?’

    ‘짬밥 밀리는 순서대로 나가자.’

    "이야, 하영훈 씨가 강적처럼 느껴지시나 보죠?"

    "아, 그건 아닙니다. 자칫 하영훈 씨가 다치실 수 있어서 저희 중에서 그나마 근력이 약한 사람을 고르던 중이었습니다."

    "예? 푸하하하하! 하영훈, 너 오늘 많이 망가진다?"

    "이야아아아! 지금 너희 나 무시해?! 다 나와!"

    하영훈이 일명 하 망나니 모드로 돌입하자 결국 경찰 중 가장 계급이 낮은 이가 나섰다.

    "하. 순경 김세경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저도요. 아프지 않게 살살 부탁드릴게요."

    등빨 좋은 순경이 나서자 방금 전 호기는 어디 간 건지 갑자기 쪼그라드는 하영훈.

    그 급격한 변화에 순경은 얼떨떨해했지만, 연예인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손을 저었다.

    하영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최대한 아프지 않게 빨리 끝내 드리겠습니다."

    "씨이! 날 동정하지 마! 덤벼-!"

    ‘그냥 미친 사람이구나. TV로 봤을 땐 참 웃겼는데…….’

    실제로 보니 환상이 와장창 깨진다.

    순경은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무릎을 꿇었다.

    "자, 자세 잡고…… 시작! 삐이익!"

    "죽어-! 어?"

    부웅! 터엉!

    허공을 반 바퀴 돌아 매트 위에 메쳐진 하영훈은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멍한 눈으로 순경을 봤고, 순경은 그에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약속대로 최대한 빨리 끝내 드렸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아, 아니 잠깐! 에이, 이건 아니지! 다시 해! 다시 하자고!"

    순경은 무시하며 자리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거수경례를 하곤 원래 자리에 섰다.

    "야! 야! 경찰 아저씨-!"

    "졌으면 좀 빠져!"

    결국 김재선에게 걷어차인 하영훈은 억울해하며 자리로 돌아갔고, 이내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됐다.

    경찰들은 이번에도 상대 연예인들을 파죽지세로 넘어트렸고, 그건 여자라고 결코 봐주지 않았다.

    ‘여자라고 봐주는 순간 진상 민원이 늘어난다’라는 종혁의 말 때문이었다.

    "진짜 너무하네! 아니, 어떻게 여자를 그렇게 넘길 수 있어요?"

    "옳소! 옳소-!"

    그들의 야유에도 경찰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칫 여자라고 봐줬다가는 종혁에게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젠틀맨 되려다 맨틀에 무덤 파는 거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연예인들을 치를 떨었고, 결국 그들만의 사대천왕을 소환시키기로 했다.

    "이 무자비한 경찰들! 야, 불꽃 아이! 복수해 줘!"

    언제나 두 눈이 용광로처럼 이글거려서 붙은 별명 불꽃 아이.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남자 배우가 머리를 긁으며 나선다.

    "아, 이분들은 나도 힘들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지만 그의 눈과 몸은 이미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에 연예인들도 전의가 불타오른다.

    불꽃 아이 이종도, 완력으로는 X맨에서 3번째인 인물이다.

    그러나 경찰들은 이번에도 여유만만이었다. 그들에게 경계의 대상은 김국종과 장호돈이지, 단련도 제대로 안 된 듯한 이종도가 아니다.

    하지만.

    ‘아까 저놈이었지?’

    ‘어. 내 배 발로 찬 놈.’

    미간을 살짝 구기고 있는 그들은 방금 전 말뚝박기 때를 떠올렸다.

    실수인 듯 아닌 듯 배가 걷어차이거나 뒷목이 잡혔던 그들. 애매해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무래도 복수할 시간이 온 것 같다.

    "내가 나갈게. 너희 둘은 김국종 씨랑 장호돈 씨 맡아."

    "쳇. 복수 잘해 주십쇼."

    "걱정 마."

    씩 웃으며 나선 경찰은 일단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김태영 경장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흐흐. 살살 합시다."

    ‘합시다?’

    "그러다 다치면 안 되니까."

    "오오! 도발 좋다-!"

    "우우우!"

    연예인들의 야유에 김태영 경장은 푸근히 웃었다.

    ‘이 새끼 아까 일부러 그랬구나?’

    이러면 양심의 가책도 없다.

    김태영 경장은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으며 무릎을 꿇었고, 둘은 곧 서로의 샅바를 잡았다.

    ‘흐흐. 사람들에게 날 각인시킬 기회야. 저놈을 완전히 밀어낼 기회라고.’

    이종도는 연예인들 사이에서 표정이 묘한 박정수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비슷하기에 계속 겹치는 캐릭터. 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박정수가 더 높다.

    현재 X맨 내에서의 인지도도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수준.

    ‘내가 여기서 이기면 너도 끝이다!’

    "쉽지 않을 거야, 경찰 아저씨."

    ‘예, 예. 그러세요.’

    "일어나시고. 준비…… 시자악!"

    "흡!"

    김태영 경장은 단숨에 샅바를 잡아당겼다. 아니, 잡아당기려 했다.

    콱!

    강하게 밟히는 발만 아니면 말이다.

    ‘어?’

    "걸렸어!"

    순간 오금이 걸려 몸이 기울어지자 김태영 경장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반칙? 아니 이렇게 지면 최 경감이…… 이 개새끼가…….’

    억울하고 식겁하는 머릿속. 그런데 그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지난 일주일 동안 지옥을 겪으며 각인된 신체적 반응이 김태영 경장도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만-!"

    촬영장을 꿰뚫는 고함 소리.

    순간 얼음이 되었던 연예인들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종혁을 발견하곤 의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억?!"

    "꺄악!"

    사람들은 이종도의 관자놀이 앞에 있는 김태영의 팔꿈치를 발견하곤 경악하고 말았다. 이종도는 이미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다가온 종혁은 김태영의 팔꿈치를 수습하며 이를 드러냈다.

    "그 사람 일반인이다. 범인 아니야. 긴장 풀어."

    "……경장 김태영. 죄송합니다."

    "조심해."

    어깨를 다독인 종혁은 김태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들 흉악한 범죄자들을 맨몸으로 검거하는 게 일상이다 보니 반사적으로 반격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깊이 사과드립니다."

    "아니, 지금 이게……."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런 반격을! 역시 여러분 같은 경찰분들이 계셔서 제가 오늘도 편히 잘 수 있나 봅니다!"

    종혁은 이종도의 얼굴이 구겨지자마자 다급히 나서는 김재선의 모습에 눈을 빛냈다.

    ‘이래서 국민 MC라고 불리는 건가?’

    눈치가 비상할 정도로 빠르다.

    이런 김재선의 의도를 읽은 건지 연예인들도 한발 늦게 반응한다.

    "우와아!"

    "와, 나 깜놀! 경찰 아저씨! 무에타이 배우셨어요? 옹박처럼?!"

    "트, 특수부대 출신이긴 합니다."

    "특수부대!"

    "우와아아아! 아저씨, 아저씨. 그럼 아저씨가 여기 짱이에요?!"

    "짜, 짱이요?"

    "가장 강한 거 맞죠? 그렇죠?"

    "아, 아니 전 그렇게 강한 게 아닌데요……."

    "네에?!"

    "저희 중 제일 강한 건……."

    최종혁 경감이다. 그런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던 김태영 경장은 아차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사람들 모두 종혁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씨?’

    ‘죄, 죄송합니다!’

    ‘……어후. 넌 나중에 보자.’

    혀를 찬 종혁은 싱긋 웃으며 퇴장을 하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아! 아아아! 그래, 맞아! 최종혁 선수죠?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종혁 선수! 그래, 어쩐지! 어디서 봤다 싶더라니-!"

    종혁은 박수를 치는 김재선의 모습에 탄식을 내뱉었다.

    ‘텄다.’

    이런저런 이유로 TV에 얼굴을 비추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비춰 버리게 될 것 같았다.

    종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하하. 안녕하세요."

    "이야, 어쩜 어떻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어요?"

    "속인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반갑습니다. 전 유도 국가대표, 현 대한민국 경찰청 소속 경감 최종혁입니다. 충성."

    "와아!"

    "나, 나 저분 알아! 올림픽 때 봤어!"

    어느새 이종도의 일을 잊어버린 연예인들은 호기심을 잔뜩 드러냈다.

    한때 국민영웅으로 추앙을 받았던 어린 천재, 초살의 최종혁. 당시 TV에서 방영되는 경기를 보며 열광하지 않은 사람이 있긴 했을까.

    거의 모든 경기를 30초 안에 끝내 버리는 그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수많은 국민들이 열광을 했었다.

    종혁은 1997년 IMF로 고통받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 주었던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었다.

    "미쳤다. 그런데 왜 최 선수, 아니 최 경감님은 출연을 안 하셨어요?"

    출연을 했다면 더 큰 이슈를 끌 수 있을 거라는 말이 함축된 김재선의 질문에 종혁은 턱을 긁었다.

    "음. 제가 출연하면 너무 반칙이라서요?"

    "……예?"

    "제가 나서면 어떤 게임이든 성립이 되지 않으니까요."

    이건 진심이다.

    종혁 본인이 조금만 힘을 써도 이 중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장호돈 정도나 겨우 20초 정도를 버틸까.

    "절대 안 됩니다. 분량 안 나와요. 그래서 출연을 고사한 거고요."

    "……야! 우리 형 백두장사거든?!"

    "천하장사. 무제한."

    "들었지? 우리 형 이런 사람이야!"

    "하하. 그렇게 따지면 저도 무제한 체급 세계랭킹 1위였는데요."

    "……네? 세계 1위요?"

    호기롭게 외쳤던 하영훈이 슬그머니 쭈그리자 연예인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호돈은 아니었다.

    눈살이 꿈틀거린 그는 입술을 핥았다.

    "이야, 우리 최 갱감님께서 허풍이 쪼매 세시네. 무섭다면 그냥 무섭다 하지 뭔. 됐어요. 나도 관심 없어요."

    특유의 얄미운 표정으로 손을 젓는 그.

    종혁은 그런 장호돈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도발이다.

    평소라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아니다.

    ‘어쩔 수 없나?’

    이미 방송을 탈 것 같은 상황이지 않던가.

    아니, 경찰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이기 위해선 방금 전 이종도와 김태영의 상황이 전파를 타야 한다.

    생각을 정리한 종혁은 이를 드러냈다.

    "그럼 붙어 보실래요? 룰은 씨름으로 해도 괜찮습니다."

    "뭐라꼬요?"

    "……오오오오오오!"

    "누구 말이 맞나 붙어 보시죠."

    "……하. 후회할 낀데요."

    ‘당신이 후회하겠죠.’

    천하장사 출신 연예인으로서 지금까지 힘으로 하는 게임에선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장호돈. 다른 방식의 게임은 졌어도 힘으로는 결코 진 적이 없다.

    그렇기에 힘=장호돈이라는 공식마저 생겨났다.

    여태껏 불패였기에 그 공식은 더 신뢰를 얻고 있었는데, 그 불패신화가 깨진다?

    캐릭터에 흠집이 날 수 있었다.

    ‘뭐, 난 경고했으니까.’

    자업자득. 앞으로 벌어질 일은 모두 자업자득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무대가 마련됐다.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진 스튜디오.

    샅바를 잡고 앉은 장호돈이 히죽 웃는다.

    "지금이라도 포기하시믄 내가 졌다고 할게요, 젊은 경감님."

    또다시 시작된 그의 도발.

    그에 종혁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나중에 캐릭터 흠집 나셨다고 하소연하시면 안 됩니다."

    "하! 끝까지 권주를 마다하시네."

    "이야. 치열하다, 치열해! 자, 양 선수 모두 일어서시고!"

    둘은 동시에 몸을 일으켰고, 장호돈은 순간 비틀어지는 샅바에 표정을 굳혔다.

    마치 두꺼운 쇳덩이가 허벅지를 조이는 듯한 아픔.

    그는 종혁이 결코 쉽지 않은 상대란 걸 알아차렸다.

    ‘참말이가? 이야, 호기롭게 말할 만하네. 이라믄 나도 위험한데…….’

    그동안 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얍삽하고 깐죽거리고, 모두 압도적인 힘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기에 시청자들도 웃을 수 있었다. 언제든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도 다른 방식으로 풀어 나가려는 그의 모습은 국민들의 호감을 샀었다.

    그런데 그 압도적인 힘에 흠집이 생긴다?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압도적인 힘에 의혹이 생길 수 있다.

    여태까지도 힘을 안 쓴 게 아니라 못 썼던 거 아니냐는 끔찍한 의혹이.

    순간 장호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순간 매정하게도 경기가 시작되었다.

    "시작!"

    쫘악!

    등을 맞자마자 반사적으로 샅바를 잡아당기는 장호돈.

    ‘제길! 몰라! 선수필승!’

    "찻!"

    이를 악문 장호돈은 곧바로 달라붙으며 발을 휘둘러 오금을 휘감았고, 그걸 느낀 종혁은 입맛을 다셨다.

    ‘미안합니다. 나도 어쩔 수 없어요.’

    느려진 시간 속 종혁은 그대로 양손을 잡아당겼다. 아니, 그러다 못해 팔꿈치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화악!

    "……어?!"

    "헉!"

    "흐어억!"

    경악한 사람들이 종혁과 장호돈을 번갈아 보며 눈을 비빈다.

    마치 아빠에게 매달린 아이처럼 번쩍 들려 버린 장호돈.

    종혁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얼떨떨한 눈으로 쳐다보는 장호돈을 향해 싱긋 웃었다.

    "역시 몸이 많이 가볍네요. 근육을 많이 빼셨나 봐요."

    "……한 번에 몇 킬로까지 듭니까?"

    "3대 1600이요."

    "사, 사람 맞아요?"

    "그래서 다들 괴물이라고 부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이 양반도 수습할 수 있겠지.’

    후에 불미스런 일을 겪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대한민국 양대 MC라는 평을 받는 사람이다. 척을 지기보단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좋기에 종혁은 그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삐이익!

    "장호돈 패애! 그래, 내가 이 형 언젠가 이렇게 당할 줄 알았다니까! 최 경감님, 나이스! 정말 듬직하다-!"

    "하하. 그럼 수고하십시오."

    싱긋 웃은 종혁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향했고, 이 장면은 후에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   *   *

    "통편집."

    "아니거든! 당하지 않을 거거든!"

    저녁의 도로를 달리는 차 안, 종혁이 던진 말에 박정수가 격렬하게 반발한다.

    하지만 종혁은 놀리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것치곤 존재감 느껴지지 않던데. 허수아빈 줄."

    "그건 너희 애들이 괴물이라서 그런 거고!"

    몸을 쓰는 게임은 무조건 완패고, 머리를 쓰는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뭘 그렇게 아는 게 많은지 파죽지세였다.

    그나마 멘탈 게임인 당연하지에서 기대를 해 봤는데, 상대는 돌부처였다. 그것도 도발까지 하는 돌부처.

    결국 먼저 멘탈이 터져 버린 박정수는 침몰했고, 결국 존재감은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경찰들이 이종도보단 더 오래 싸워 줬다는 점이다.

    "다 변명입니다."

    "야, 너 내려. 우리 집 오지 마."

    "에이, 왜 그러실까. 우리 애들이 어떻게 그렇게 강한지 알고 싶지 않아?"

    "……."

    "큭큭, 갑시다."

    종혁이 너무 얄미웠지만 그래도 듣고 싶은 박정수는 툴툴거리면서도 차를 계속 몰았고, 키득키득 웃던 종혁은 정면을 보며 낯빛을 굳혔다.

    ‘이제 일주일 남은 건가?’

    소년이 경찰서로 뛰어오는 그 날이 말이다.

    혹시라도 놈들이 맞다 한들 박정수에게 피해는 안 끼친다.

    종혁은 그렇게 다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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