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06화>
순간 옥상이 얼어붙었다.
"어? 짭새다."
누군가 미친 소리를 지껄이기 전까지 말이다.
"짭새…… 푸흐흐. 야, 난쟁이. 이리 와."
박정수의 옷을 빼앗아 입은 키 작은 개그맨이 종혁의 손짓에 덧니를 드러내며 웃는다.
"이봐요, 경찰 아저씨. 나 누군지 몰라? 그냥 가라. 너 나 건들면 골치 아파진다."
"……끅끅! 그래, 안 오면 내가 가면 되지."
종혁은 그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 진짜. 상황 파악……."
짝!
"어?"
"왜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리니. 응?"
종혁은 볼을 잡은 채 멍해지는 키 작은 개그맨의 다른 쪽 뺨을 후려쳤다.
짝! 짝!
"야. 다시 말해 봐."
"악! 욱?!"
"건들면 뭐? 골치?"
쩌억!
몇 대 맞자 정신을 차린 건지 반항 어린 눈빛을 보내려던 키 작은 개그맨이 제대로 턱을 맞고 무너지듯 쓰러진다.
한여름 뜨거운 햇빛이 내려쬐는데도 옥상은 북극처럼 얼어붙는다.
"다, 당신 뭐야! 경찰이 이래도 돼?! 야, 선배들 불러!"
"그래, 뚱땡이. 네가 있었지."
종혁은 그의 발목을 후려치듯 걸어 버렸다.
뿌득!
발목이 나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물살 개그맨.
쿠우웅!
"컥?! 악!"
쪼그려 앉아 머리를 틀어쥔 종혁은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다, 당신……."
"얼마 전 고가의 시계가 도난을 당했어. 바쉐린 콘스탄틴 한정판이라고 국내에 딱 5개만 들어온 시계야. 그런데 요 있네? 뚱땡이 네가 다른 소유주분들하고 친할 것 같진 않고."
물살 개그맨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이, 이건 내 거 아니……."
박정수를 향해 고개가 돌아가려 하자 종혁은 주먹을 들었다.
"일단 맞자, 절도범 새끼야."
쩍! 쩍!
코에 종혁의 주먹이 내려꽂혔다.
"커허억! 아아악!"
힘 조절을 했기에 얼굴을 붙잡은 채 바닥을 구르는 물살 개그맨.
손을 털고 일어난 종혁은 엉거주춤 서 있는 애매하게 생긴 개그맨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넌 어디 가니? 폭행 및 협박 현행범 새끼야?"
"나, 난……."
"그래, 거기 딱 서 있어라."
땅을 박찬 종혁은 그대로 턱을 돌려 버렸다.
바닥에 착지한 종혁은 다시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았다.
"내가 여태까지 다른 사람을 때린 경험이 있다, 거수."
그 순간 옥상의 기온이 더 떨어졌다.
그때였다.
우르르 옥상으로 몰려 들어오는 개그맨들을 본 종혁은 혀를 내둘렀다.
"이야, 아는 얼굴 많네."
"당신 뭐야!"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보다시피 경찰입니다. 폭행 및 협박 현장을 딱 보게 돼서 검거 중이거든요? 그러니 신경 끄고 내려가세요."
그 말에 옥상을 둘러본 선배 개그맨들이 탄식을 터트린다.
‘하, 씨발. 좆됐네.’
집합이 일상인 희극인실 문화. 내부에서만 쉬쉬하는 일이기에 외부로 새어 나갈 일이 없었는데, 하필 걸려도 경찰에게 걸리고 말았다.
요새 가장 인기가 있는 개그맨이 한숨을 푹 내쉬며 앞으로 나섰다.
"이봐, 경찰 동생. 이거 그냥 우리들끼리의 일상이거든? 종종 있는 일이고, 다들 불만 없으니까 그냥 가 줄 수 있을까? 내가 다음에 꼭 보답한다. 요새 일하느라 힘들지?"
지갑에서 돈을 빼 든 개그맨이 그 돈을 종혁의 상의 앞주머니에 밀어 넣는다. 종혁은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봤다.
"섭섭치 않게 넣었으니까…… 악!"
뿌드득!
종혁은 가슴을 두드리려는 그의 손을 잡아 힘을 주었다.
"그러니까 폭력을 방조하시다 못해 독려하셨네요? 거기다 입막음을 하려고 뇌물까지 주시네? ……개새끼가?"
빠아악!
"꺅!"
"헉!"
사람들의 비명 속 코를 얻어맞은 개그맨의 눈이 뒤집힌다.
"이, 이 새끼가! 너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내가 아는 높은 분이 몇 명인 줄 알아? 너 이제 좆됐어! 밤길 조심……."
콱!
멱살을 틀어쥔 종혁은 그를 코앞으로 끌고 왔다.
"밤길 조심하라고? 내 밤길 조심시킬 새끼가 누구니? 어떤 씹새끼야? 아니다. 그냥 전화 걸어 봐."
"너, 너……!"
"걸어 보라고. 정말 죽여 버리기 전에."
‘기, 기다려!’라고 외친 그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형님! 저……."
종혁은 그의 핸드폰을 뺏어 왔다.
"이름이 박창도? 그래, 창도야. 어느 조직인지 모를 새끼야."
-이런 개새끼가…….
"나 본청 특수의 최종혁 경감이거든? 이번에 특진해서 경감. 내 이름 들어 봤지?"
……뚝!
종혁은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그의 손에 들려 주고 그의 턱을 돌려 버렸다.
"당신을 폭행 사주 및 공모, 협박 사주 및 공모, 뇌물 수수, 경관 협박 혐의로 체포합니다."
철컥!
수갑까지 살뜰히 채운 종혁은 개그맨들을 둘러봤다.
"지금부터 한 놈이라도 튀면 내 손에 다 뒤진다."
"이,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헐레벌떡 옥상으로 난입한 기태종.
"아, 오셨어요? 늦었네요, 기 부장님. 기태종 부장님, 이 개씹새끼야."
"뭐, 뭣? 이 새끼가!"
"씨발, 이 새끼들이 개그맨인지 아님 조폭 새끼들인지. 내가요, 이 새끼들 싹 다 폭력조직 결성 혐의로 엮어 볼까 하거든? 아, 일단 그 전에……."
이번엔 종혁이 핸드폰을 들었다.
"최 경장? 난데, 청장님 바꿔 봐. ……바꾸라면 바꾸세요."
-예, 옙!
잠시 수화기 너머로 소란이 일더니 이택문의 뚱한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야?
"최종혁입니다, 청장님. 이렇게 전화로 말씀드려서 정말 죄송하지만 그만 나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제가 지금부터 이 새끼들 멱살을 잡을 것 같은데, 그런 불편한 관계로는 계속 함께 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애써 힘든 결정을 해 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돌아가면 어떤 징계를 내리시든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있는 곳이 어디야? 내가 가지.
"별관 옥상입니다, 청장님."
뚝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수습한 종혁은 파랗게 질린 기태종을 보며 히죽 웃었다.
"기대해, 씨발놈들아. 내가 오늘부터 이 방송국을 씹어 먹어 버릴 테니까."
한편 전화를 끊은 이택문은 입술을 비틀었다.
‘멱살을 잡는다고? 이 방송국의 멱살을?’
재밌다. 아주 재밌다.
"아, 아니 왜……. 저, 저희가 불편하게 해 드린 거라도……."
"별관이 어딥니까?"
"예, 예?"
"저번 쓰레기 만두 파동 때 특수본의 제1부본부장이었던 부하가 귀사 직원들과 트러블이 생긴 것 같군요. 미안하지만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아, 오늘 고생했는데 미안합니다, MC 양반들."
"예에?!"
‘미, 미친! 그, 그 사건의 주역과 얽혔다고?’
대형 사고다.
예능국장은 빠져나가려는 혼을 다급히 붙잡았다.
"아, 아니 거, 거기엔 분명 오해가……."
"가지, 오 경위."
"별관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충성."
예능국장은 기겁하며 이택문을 잡으려 했지만, 막아서는 최재수의 행동에 결국 미수로 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셋이 떠나자 예능국장은 다급히 핸드폰을 빼 들었다.
"사장님-!"
* * *
종혁은 옥상으로 들어오는 이택문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은 이택문이 옥상을 주욱 훑었다.
쓰러져 있는 몇 명과 겁을 먹은 다수,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기태종 부장. 개판 오 분 전의 광경이었다.
"죄목은?"
"폭행, 폭행 교사, 공모, 협박 그 외 이하 동일, 경찰 뇌물 수수, 경관 협박, 절도 등이 있습니다. 절도는 아직 혐의일 뿐입니다."
"깡패 새끼들이군."
"그래서 폭력조직 결성 혐의로 엮을까 합니다."
"되겠어?"
"집합이라는 부조리가 있는데 군대보다 더 가혹하다고 합니다. 깡패 새끼…… 죄송합니다. 조직폭력배 뺨치는 놈들이고, 실제 조폭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충분하겠군. 정리해서 광수대로 넘겨. 특수는 많이 했잖아. 김 과장에겐 내가 얘기 해 놓지."
"옙! 충성!"
"아, 아이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택문은 돌아서며 방송국 사장을 봤다.
"방송국이란 곳이 참 재밌는 장소군요. 범죄자를 양성하는 곳과는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으니 본청에서 봅시다. 최 경감은 광수대 부르고, 오 경위는 가지."
"충성."
순식간에 마무리되는 모습에 사장은 기함했다.
"하, 하하하! 무, 무슨 오해가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이, 일단 대화부터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 모지리들은 제가 광수대란 곳으로 보낼 테니까…… 예, 청장님?"
이택문의 눈이 가늘어졌다.
"흠. 마치 이들과 연관이 없는 듯이 말을 하시는군요."
"그, 그럼요! 어, 어디 저런 새끼들이랑!"
저번에 다른 방송국에서 한 직원의 실수로 방송국 사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파멸이었다.
"이놈들은 제가 책임지고 출두시킬 테니 일단 노여움부터 가라앉히시죠. 아하하."
"흠…… 최 경감."
"으음. 알겠습니다. 제가 적당히 타이르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래. 나머지 스케줄 잘 마무리하고 본청에서 보지."
"충성."
‘사, 살았다!’
"자. 가시죠! 뭐해, 어서 청장님 안 모시고!"
이택문을 먼저 보낸 사장은 예능국장을 죽일 듯 노려봤다.
"예능국장은 여기 남아서 책임지고 정리해. ……죽여 버린다, 진짜."
"죄, 죄송합니다. 들어가십시오!"
"어휴. 내가, 씨발."
사장이 사라지자 허리를 편 예능국장은 기태종의 종아리뼈를 구둣발로 후려쳤다.
빠아악!
"아악!"
"태종아, 내가 저 염병할 새끼들 관리하랬지."
타이르듯 말하기에 더 무서운 음성.
"죄, 죄송합니다!"
"죽여 버릴까 진짜?"
한숨을 길게 내쉰 예능국장은 개그맨들 중 낯이 익은 개그맨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예, 예! 국장님!"
"외부로 말 나오지 않게 확실히 정리해. 그리고 혹시라도 기자들에게 떠벌렸다간 내가 내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너희들 이 바닥에서 퇴출시킨다. 처신 잘해. 농담 아니야. 씨발,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지들이 진짜 예쁜 줄 아네. 하, 참!"
이 상황을 기자들이 터트린다?
그럼 경찰청장이 가만있을까?
여론이 나빠져도 경찰 전체가 방송국을 물어뜯을 거다.
털어서 먼지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는 듯 털면 터는 대로 먼지가 나올 방송국.
그땐 방송국이 경찰에 멱살을 잡히게 되는 거다.
이미 반쯤은 잡힌 거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다시 한숨을 내쉰 예능국장은 종혁을 보며 활짝 웃었다.
"하하. 저희 직원들끼리의 장난 때문에 심려가 크셨지요?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제가 혼쭐을 냈으니 경감님께서도 이제 걱정 놓으시면 됩니다."
"흠. 그래도 저 네 명은 보내 주셔야 합니다."
"그럼요. 아무렴요! 자자, 일단 저와 차나 한잔하시죠. 제게 아주 좋은 차가 있습니다."
그렇게 예능국장에게 등을 떠밀리는 종혁은 실실 웃었다.
‘역시 청장님 저 양반도 정상은 아니라니까.’
방송국 멱살을 잡을 것 같다는 말을 던지자마자 상황 파악을 끝내고 달려와 대본도 없는 한 편의 영화를 라이브로 찍은 이택문.
‘폭력조직 결성은 무슨.’
폭력조직 결성은 겨우 이런 것들로 인정이 될 만큼 가벼운 죄가 아니었다.
‘정말 재밌어.’
종혁은 박정수에게 윙크를 하곤 제대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방송국은 종혁이 기존의 것들에 덧붙이는 조건들을 모두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십 몇 분 난리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소득이었다.
* * *
왜 우린 경찰청장이 출연하지 않냐며 투덜거리는 다른 방송국들을 적당히 구슬려서 서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낸 종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그 소년이 사는 동네로 향했다.
한 방송국은 이미 목줄이 채워진 곳이고, 다른 방송국은 오늘 일을 들은 건지 납작 엎드렸다. 그래서 가능했던 결과였다.
"룰루."
어느새 사복으로 갈아입은 종혁은 차 보닛에 앉아 동네를 주욱 훑어봤다.
듬성듬성 세워진 가로등 불빛만 어둠을 쫓는 골목길이라서 그런지 종혁의 입에 물린 담배의 불빛이 선명하게 비춰졌다.
"뭘 어떻게 해야 그놈들이 의심하지 않을까."
‘옆집을 사들이는 건 무리수고. 편의점? 경찰 장학생? 행복의 쉼터 재단의 도움…… 아, 이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경찰로서 이 동네에 있을 명분이 필요한 상황. 뜬금없이 이곳 파출소로 전출을 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 그냥 이 동네에 강력범죄자라도 숨어 있으면 좋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이런 범죄자 새끼들에게서 경찰 인권을 보호하려면 새로운 수사 장비로 들여야…… 와, 이 의식의 흐름 봐라."
상황이 골치 아프다 보니 의식의 흐름대로 중얼거렸던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리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왕 흘러 버린 흐름인 데다 지금은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으니 볼일을 보려는 것이다.
"예, 권 이사. 나예요. 고프로 어떻게 됐습니까? 지분은 얼마나 확보했어요?"
몸에 부착할 수 있는 개인용 블랙박스, 바디캠.
현장을 실시간으로 촬영하여 증거물이 되어 주는 바디캠은 억울한 일들이 만들어지는 걸 막아 주는 게 가능하다.
경찰들을 향한 한 폭언, 폭행을 예방하고 현장 증거를 확보하거나, 반대로 경찰들의 부적절한 공권력 남용도 방지하는 것이다.
이런 좋은 건 한시라도 빨리 도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문제도 벌어지지 않게 해야겠지.’
회귀 전에는 2015년 처음 경찰에게 바디캠이 지급되어 시범 운영이 시작됐으나, 몇 년간 시범 운영만 하다가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외국과는 다르게 법률적인 규정이 만들어져 있지 않아, 충분한 예산도 확보되지 못했고 제대로 된 보급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시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그에 종혁은 한국 경찰에게 예산 걱정 없이 바디캠을 보급하는 문제부터 해결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3퍼센트요? 겨우?"
-그쪽에서 완강히 버티고 있어요. 어차피 자신들은 서핑이나 익스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판매하면 된다면서요.
"……골치 아프네요."
미국의 액션캠 제조사, 고프로(GoPro).
종혁이 바디캠 제조사도 아닌, 액션캠 제조사인 고프로의 지분을 매입하려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노하우.
아직 이 당시에는 바디캠이라는 것 자체가 제대로 개발이 활성화되지 않는 탓에, 그들만큼 이쪽 분야의 제작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이들이 없는 탓이었다.
그들의 제작 노하우를 이용하여 본격적으로 바디캠을 만든다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시작부터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M&A 들어갈까요?
"음…… 일단 놔둬 보세요. 대신 그쪽이 가진 특허에 대해 알아봐 주세요. 그들이 낸 특허인지 아니면 로열티를 내는 건지."
-……수찬 씨에게 맡기려는 거군요?
정수찬. 교통사고로 죽은 어린 아들을 기리기 위해 블랙박스를 창시하고, 종혁의 제의에 한국으로 넘어온 재일교포.
현재 대한민국에서 굴러다니는 자동차에 설치된 블랙박스들 가운데 70퍼센트 이상이 그의 회사 제품이고, 전국에 깔린 CCTV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이제 회장님이었다.
"특허에 문제가 없다면 외국산보단 국산이 낫지 않겠어요?"
거기다 이쪽의 렌즈나 화질 쪽 기술은 무려 독일에서 넘어온 이들이 담당하고 있다. 돈을 밀어 넣는다면 길어도 올해 안에 프로토 타입 제품을 받아 볼 수 있을 터였다.
-알았어요. 바로 알아볼게요. 아, 그런데 오늘 사고를 치셨다면서요?
"방송국 쪽 일이 왜 권 이사 귀에 흘러 들어가요?"
-찌라시로 돌아서요.
"역시 증권가 찌라시……."
-호호. 새로 이동한 부서는 좀 어때요? 할 만해요?
"뭐 그냥저냥 맡은 일을 잘하려는 거죠."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종혁은 이내 통화를 끊고 정수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 설날 때 일본으로 아들 성묘를 다녀오느라 만나지 못한 정수찬.
-고프로를 말씀이시군요.
"아세요?"
종혁은 살짝 당황했다. 격한 운동에도 흔들림이 없는 초고화질 캠이라는 말밖에 안 했을 뿐인데 바로 고프로를 말해서다.
-알 수밖에요. 저도 그걸 보며 반성을 많이 했으니까요.
"그럼 설마?"
-예.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습니다.
‘……미쳤네.’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게 됐다.
"그럼 신체에 착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아직 이렇다 할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으니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특허 쪽은요? 문제없을까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예. 문제없습니다. 화질 및 보정 기술이야 완성 단계고, 그들이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는 내구성 문제도 이미 해결된 상태니까요.
그쪽은 다양한 익스트림의 상황, 혹은 낙하의 충격에서도 버티는 데 중점을 두었지만, 이쪽은 모든 교통사고 상황에서 저장된 내용을 지키기 위해 내구성 기술을 발전시켰다.
수백 킬로그램에서 수 톤의 차량이 시속 수백 킬로미터 속도에서 부딪쳐도 영상만은 멀쩡할 수 있도록.
내화성, 내수성, 내구성 모두 세계와 겨룰 만하다는 게 정수찬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영하 100도, 수심 200미터의 압력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실험 중에 있습니다.
"……왜요?"
‘굳이?’
-여객선을 타고 가다 자동차가 급발진해서 빠질 수도 있고, 갑자기 북극으로 텔레포트될 수도 있으니까요.
"예?"
-농담입니다. 순이익의 50퍼센트를 연구비로 꼬라박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꼬라박아…… 한국 사람 다 되셨네요."
-원래부터 한국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2006년 월드컵에서도 4강 진출! 어게인 2002!
"……제가 가져가는 비율을 좀 줄일까요?"
-감사합니다.
"아무튼 특허는 문제없다는 말이죠?"
-전혀 문제없습니다. 있어도 사 버리면 그만이고요. 그때 보태 주십시…… 야마다! 그건 거기에…… 엎드려-!
펑!
종혁은 작은 폭음과 함께 전화가 끊기자 119에 신고를 해 준 후 헛웃음을 터트렸다.
"공돌이를 사장으로 앉히니 이렇게 되는구나……."
원래부터 제품을 만들 때 꼼꼼한 일본. 그래서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그들의 꼼꼼한 성격을 이어받은 공돌이에게 무제한의 예산을 허락하니 이런 미친 결과들이 만들어진다.
정수찬을 꼬드겼던 과거의 자신을 적극 칭찬한 종혁은 잠복에 대한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하며 보닛에서 내려왔다.
그때였다.
"어? 종혁아?"
"엥? 정수 형?"
박정수다.
"형이 여긴 왜……."
"나야 집이 이 근처라서……. 저기 저 집이야."
박정수가 가리키는 집을 본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그래요?"
‘찾았다! 방법!’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