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05화 (205/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05화>

    61. 방송국에서

    "죽인다."

    "응. 죽여."

    이게 정녕 경찰들이 쓰는 사무실이라 할 수 있는가.

    따로 완비된 탕비실에, 냉장고에 가득한 부식거리. 빵빵하게 틀어지는 에어컨에 최신형 노트북. 심지어 책상은 원목으로 제작됐다.

    가장 좋은 건 그 누구도 심부름을 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말 좋다. 이곳에서 뼈를 묻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좋아. 다 좋은데, 그래서 우리 과를 관리하는 분은 누군 거야?"

    "……글쎄?"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

    팀도 아닌 과다.

    그런데 지금까지 과장은 코빼기도 본 적이 없다.

    가장 상급자는 고가의 중형 세단 옆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최종혁 경감뿐. 업무에 대한 지시도 종혁이 내리고 있었다.

    "물어볼까?"

    "그, 그래도 될까?"

    다른 곳도 아닌 본청이다. 조상이 은덕을 내려 겨우 온 곳이니만큼 모든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최재수가 콧대를 세우며 다가선다.

    "일단 저희는 임시적으로 홍보 소속이며, 저희 과는 저기 최종혁 경감님이 이끌어 가십니다."

    "예?!"

    그들은 다급히 종혁을 봤다.

    "아, 날씨 좋다. 이런 날엔 냉면에 불고기를 씹어 줘야 하는데!"

    "넌 지금 그게 목구멍으로…… 아니다, 됐다. 내가……."

    "말을 말자. 찌찌뽕."

    "이 새끼가……!"

    그들은 다시 최재수를 봤다.

    ‘저분이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하는 물음.

    "뭐…… 일단은."

    이번만큼은 커버를 치기 힘들다 판단한 최재수는 먼 산을 아련히 쳐다봤다.

    그때였다.

    뚜벅뚜벅!

    오늘도 뚱한 얼굴을 한 이택문 경찰청장이 로비를 빠져나와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추, 충성!"

    "충성!"

    고개를 끄덕인 이택문은 종혁을 봤다.

    "가지."

    "예. 차에 오르시죠."

    최재수에게 문을 열어 주라고 눈짓을 한 종혁은 전국각지에서 모은 팀원들을 응시했다.

    "그럼 저흰 다녀올 테니 박동구 경장과 나머지 분들도 수고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의 손에 수십만 경찰의 이미지가 달려 있는 만큼 단 하나의 대본이라도 놓치면 안 될 겁니다."

    "옙!"

    종혁이 이들에게 내린 명령은 하나다.

    충무로와 방송가를 돌아다니는 모든 대본과 시나리오를 긁어 와라.

    종혁은 그 중에서 양질의, 후에 성공하는 것들을 추릴 생각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차에 올랐다.

    "그럼 방송국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음……."

    그랬다. 오늘은 이택문 경찰청장의 토크쇼 녹화가 있는 날이었다.

    *   *   *

    "하하. 어서 오십시오!"

    방송국 로비, 오십대의 방송국 사장이 양팔을 벌려 이택문을 맞이한다.

    경찰 고위 간부도 아닌 무려 경찰청장이다.

    장차관뿐만 아니라 검찰총장, 대법원장과 더불어 그동안 예능에 출연한 역사가 없는 성역의 인물.

    더욱이 얼마 전 방송국 하나를 날려 버리다시피 한 경찰의 새로운 수장이 아닌가.

    솔직히 그는 경찰에서 먼저 토크쇼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어떤 미친놈이 사기를 치는 줄 알았다.

    경찰청장의 출연은 그 정도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이택문입니다."

    "아이고, 정동영입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음."

    고개를 끄덕인 이택문은 걸음을 옮겼고, 그걸 보던 종혁은 오택수와 최재수를 응시했다.

    "잘 모셔요."

    "알았어. 걱정 마."

    "저만 믿으세요, 경감님!"

    "……질문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커트하셔야 합니다."

    "알았다니까."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믿겠습니다, 오 경위님."

    "최 경감님!"

    끝까지 최재수를 무시한 종혁은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오늘 그는 따로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능국 기태종 부장님과 약속을 잡은 최종혁 경감입니다. 예능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아, 네! 예능국은요……."

    친절히 알려 주는 데스크 직원의 설명에 감사의 뜻을 표한 종혁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제법 중후하게 꾸며진 사무실에서 만난 기태종 부장은 살집이 있는 실눈의 오십대 장년인이었다.

    "기태종 부장이네."

    "본청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의 최종혁 경감입니다."

    "오. 젊은 나이에 벌써 경감이야? 대단한데? 아, 반말을 해서 미안하군. 워낙 습관이 되어 놔서."

    눈살을 꿈틀거린 종혁은 옅게 웃었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차? 아니면 커피?"

    "녹차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내선 전화로 차를 주문했고, 종혁은 그가 손짓으로 권하는 소파에 앉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기태종…… 그래, 기억나네.’

    대가성 뇌물을 받고 연예인을 출연시키던 악질적인 인간.

    다만 수법이 어찌나 교묘한지 회귀 전 수사상에는 올랐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끝내 검거를 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기태종뿐만이 아니다.

    종혁은 오는 길에 마주쳤던 몇몇 피디들을 떠올렸다.

    ‘어떤 놈은 여대생 스폰에, 어떤 놈은 성상납, 또 어떤 놈은…… 씨발, 여기가 뭔 비리공화국이야?’

    혐의만 있을 뿐 증거를 확보 못한 놈도 있고, 증거가 밝혀져 수갑이 채워진 놈도 있다.

    "그래. 경찰의 날을 맞아 특집 방송을 의뢰하고 싶으시다고?"

    그 외에도 이곳 방송국의 다른 예능 프로그램 출연 문제도 있다. 요새 제법 인기를 끌고 있는 연예인 퀴즈 프로그램.

    그리고 이 대화가 끝나면 다른 방송국으로 넘어가야 했다. 대한민국의 안방을 웃기는 예능은 이곳 방송국에서만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 일단 이걸 봐 주시겠습니까? 저희 나름대로 포맷을 짜 봤습니다."

    "이야. 이런 것까지 준비했어? 역시 공무원이라서 준비성이 좋네."

    거만한 손놀림으로 종혁이 내민 서류를 가져온 기태종 부장은 첫 장을 보자마자 피식 조소를 터트렸다.

    그 순간 종혁은 깨달았다.

    ‘아, 이 새끼 구타유발자구나.’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이 새끼가 대체 뭘 믿고 이 지랄을 하는 거지?’

    무려 경찰청장이 토크쇼에 출연해 주는 대가로 의뢰하는 일이다. 원래라면 부장 따위가 아니라 국장과 이야기를 나눠야 할 일.

    예능국 국장이 사장실에 함께 있는지라 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뿐이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아, 그냥 확 엎어 버려?’

    아니다, 됐다. 경찰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일이다.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종혁은 들끓는 화를 애써 누르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자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기태종 부장은 그런 종혁을 힐끔 보곤 이를 드러냈다.

    ‘되바라진 새끼.’

    방금 전, 처음 본 것처럼 이야기를 나눴지만 기태종은 종혁을 알고 있었다.

    ‘만두 파동 때 그 방송국을 뒤집은 새끼가 저놈이었지.’

    당시 용무가 있어 잠시 그 방송국에 들렀던 기태종은 종혁이 거칠게 방송국 직원을 대하는 모습을 모두 목격할 수 있었다.

    아무리 범죄자라지만 어른의 팔을 잡아 꺾다 못해 쌍욕을 퍼붓던 그 되바라진 모습이란.

    심지어 그 보도국의 부장인 친구에게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꺼지라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간 자신의 자리마저 위태롭기에 기태종은 애써 참아 내야 했다.

    "허흠. 좋네. 취지도 좋고, 와꾸도 좋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태종은 회의적이었다.

    인기 절정의 남녀 아이돌 그룹이 파출소 신입 순경이 되어 좌충우돌 파출소의 생활을 담는다? 그러다 경찰의 날 행사 때 축하 공연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방송국에 부담 가지 않게 3부작이란 것만 제외하면 아주 형편이 없다.

    ‘인기 절정의 아이돌이 미쳤다고 그런 고생을 하겠어? 또 그걸 사람들이 보겠어? 이래서 공무원들이란…… 쯧.’

    "그래도 일단 제작해 줄 PD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게 좋겠지?"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아주 변명할 거리를 찾는구나, 찾아.’

    표정은 흡족해하지만, 온몸으로 싫다고 외치는 기태종.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부아가 치밀던 종혁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고, 기태종은 누군가를 호출했다.

    ‘그래. 어떤 놈을 붙이려는지 일단 확인만 하자.’

    만약 이상한 놈이라면 그때 가서 엎어 버리면 되는 일이다.

    이젠 종혁도 한계에 치닫고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똑똑!

    "들어가겠습니다."

    한 삼십대의 사내가 어수룩하게 웃으며 들어오자, 얼마나 형편없는 놈이 들어오나 돌아봤던 종혁은 눈을 부릅떴다.

    ‘어라? 이 양반은?!’

    "부, 부르셔서 왔습니다."

    "지금 한가하지? 이거 한번 확인해 봐. 아, 일단 인사부터. 이쪽은…… 이름이 뭐였지?"

    기태종이 다시 속을 긁었지만, 종혁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었다.

    "본청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의 최종혁 경감입니다."

    "예, 예. 나, 나연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구. 아니요. 제가 더 잘 부탁드려야죠."

    가까운 미래,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얼굴을 알게 되는 스타 PD.

    야생 버라이어티 예능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훗날 사단까지 만들게 되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런 이 사람을 메인 PD로 붙여 준다고?’

    갑자기 기태종이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한 종혁이었다.

    그런 종혁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얼굴을 구긴 기태종은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넘겼다.

    "읽어 봐!"

    "아, 예!"

    부장과 살짝 떨어진 자리에 살포시 앉아 나연석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류를 살피다 이내 고개를 처박듯 서류를 뜯어 보기 시작했다.

    종혁은 그 모습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지!’

    종혁은 얼른 나연석이 궁금한 점을 물어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나연석의 반응이 너무 격렬해서일까. 기태종은 얼른 입을 열었다.

    "어때? 괜찮아?"

    "좋은데요?"

    "그래. 요새 트랜드에 맞진 않지만 그래도 재미…… 뭐?"

    "좋습니다. 정말로."

    "그, 그래?"

    "예!"

    정말 좋다.

    뜻깊은 날을 기리기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포맷 그 자체가 탐날 정도다. 반응이 있으면 정규 편성으로 돌리고 싶을 수준.

    ‘아니, 내가 생각하던 방식의 예능이야! 관찰 예능!’

    연예인들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괴롭히며 자연스러운 웃음을 뽑아내는 방식의 예능.

    현재는 스튜디오 예능이 대세라 먹히지 않을 테지만, 분명 언젠가 먹힐 코드다. 촉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제게 맡겨 주신다면 꼭 하고 싶습니다!"

    "……알았어. 일단 나가 봐."

    "정말 하고 싶습니다, 부장님!"

    "알았다니까!"

    나연석은 거듭 시켜 달라고 말하며 부장실을 빠져나갔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흐뭇이 웃었다.

    ‘빌어먹을!’

    "크흠. 알았으니까 두고 가세요. 제작 준비가 되면 연락드릴 테니까. 그 프로그램 출연 문제까지도 함께."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고개를 꾸벅 숙인 종혁은 부장실을 빠져나와 핸드폰을 들었다.

    "최 경장, 어디야? 청장님은?"

    -아, 청장님께선 지금 화장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가 어디냐면…….

    "알았어. 난 다른 방송국과 약속 있어서 넘어갈 테니까 청장님 잘 모시고. 그건 할 수 있잖아."

    -다, 다른 것도 잘할 수 있는데요!

    "끊는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시간을 확인하곤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애매하네."

    다음 약속 시간까지 약 2시간 정도 남은 상황.

    "어디서 시간을…… 음?"

    순간 뭔가가 떠오른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 형이 여기 소속 개그맨이지 않나?"

    몇 년 전 중부서로 현장 실습을 갔을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인연이 떠오른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이게 누구야.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형사님 아니야?

    "푸흐흐. 나 지금 일이 있어서 형네 방송국에 왔거든? 시간 돼?"

    -우리 방송국에? 어…… 곧 회의 시작이라 밖에서 만나긴 힘들 것 같은데…….

    "힘들면 다음에 보지, 뭐."

    -아냐, 아냐. 오랜만에 보는 건데 그럴 수 있나. 네가 별관 옥상으로 올래? 내가 아주 죽이는 커피 사 줄게.

    "오케이. 접수. 종발!"

    -푸하핫!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웃으며 별관으로 향했다.

    *   *   *

    휘이잉.

    시작된 무더위를 잠시 식힐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방송국 별관의 옥상 위.

    중부서에서 맺은 인연인 박 수경, 아니 대한민국 인기 절정 개그맨 박정수를 잠시 골려 줄 생각으로 구석에 숨은 종혁은 돌연 얼굴을 구겼다.

    방금 전 기태종의 반응이 떠올라서다.

    "……에이, 아니겠지."

    경찰청장의 토크쇼 출연을 대가로 의뢰하는 것들이다. 중간에 어깃장을 놓으면 다치는 건 기태종이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태종의 반응이 거슬린다.

    왜인지 처음부터 종혁 본인을 거슬려 했던 기태종 부장.

    ‘이거 미루고 미루다 엎는 거 아니야?’

    "그럼 나가리긴 한데…… 흐으음."

    거슬려서 엎자니 나연석이란 대한민국 대표 예능 PD의 존재를 놓칠 수가 없고, 그대로 믿고 가자니 기태종이 걸린다.

    이런 갈등에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한 종혁은 이내 일단 지켜보자며 생각을 마무리했다.

    아직 3개월이나 남은 일이다.

    아직은 그렇게까지 신경 쓸 단계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 형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띠링!

    "얼씨구?"

    오라는 사람은 안 오고, 애먼 문자만 온다.

    문자 내용을 확인한 종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종혁아 미안!

    회의! 다음에 보자!

    "에라이."

    혀를 찬 종혁은 담배를 물며 일어섰다.

    그때였다.

    웅성웅성!

    계단 쪽이 시끄러워지더니 제법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옥상으로 뛰어 들어온다.

    ‘뭐야? 왜 저래?’

    의아해하던 종혁은 그 안에 섞여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정수 형?’

    회의라고 문자를 보낸 사람이 왜 옥상으로 달려온 걸까.

    그런 종혁의 의문은 곧 풀리게 됐다.

    "야, 야! 얼른 엎드려!"

    "네!"

    종혁도 낯이 익은 한 개그맨의 외침에 다급히 엎드리는 삼십여 명의 사람들.

    소위 집합이라 말하는 행위였다.

    ‘이야, 이런 걸 내 눈으로 목격할 줄은 몰랐는데…… 희극인실 군기가 세다더니 정말이구나. 1시간 안에는 끝나려나?’

    그래야 엎드려 있는 박정수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종혁은 오늘 운이 좀 나쁘다 생각하며 아예 엉덩이를 깔고 앉아 버렸다.

    "푸후."

    오늘따라 담배 맛이 거지같다고 느낀 종혁은 눈까지 감으며 외면했다. 악습이긴 하지만, 집합은 어디에나 있는 문화이기에, 지금 나서면 박정수에게 피해가 가기에 종혁은 꾹 참았다.

    쫘아악!

    뺨이 돌려 지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아니, 박정수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이 개새끼야! 너 좀 잘나간다고 희극인실에서 핸드폰 써도 돼? 어? 하, 이 새끼 아주 기본이 안 된 새끼네?"

    "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핸드폰? 문자?’

    낯빛이 딱딱하게 굳은 종혁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가 풀썩 웃어 버렸다. 볼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박정수의 모습에 미치도록 미안한 것도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게 왜 저 새끼 손모가지에 있을까?’

    물살만 가득한 뚱땡이의 손목에 걸려 있는 영롱한 손목시계.

    바쉐린 콘스탄틴 한정판. 시가 5860만 원.

    종혁이 박정수의 개그맨 합격 선물로 사 준 거였다.

    키가 난쟁이만 한 놈은 종혁이 박정수의 개그 코너가 성공을 하자 선물로 준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맞춤으로 맞춰 준거라 브랜드 상표가 없음에도.

    "하, 씨발. 이 인간은 어떻게 저것들을 다 뺏기냐."

    푸흐흐 웃은 종혁은 눈빛을 싸늘하게 가라앉히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기태종 부장님. 저 최종혁 경감입니다. 지금 별관 옥상으로 튀어 오세요. 당신 방송국 대표 개그맨들 다 뒤지는 꼴 보기 싫으면."

    -뭐, 뭣?! 너 지금…….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며 새 담배를 물며 어슬렁 발을 뗐다.

    "어이, 개새끼들. 동작 그만."

    종혁의 두 눈이 살의를 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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