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04화>
이택문 신임 경찰청장의 칼춤은 본청이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덕분에 본청은 어깨만 부딪쳐도 날 선 눈초리를 보낼 만큼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고, 그런 그곳에 한 청년 경찰이 도착하고 있었다.
부우웅! 빵빵!
한여름의 열기가 더 뜨겁게 느껴지는 거리.
경찰 근무복을 입은 한 이십대 후반의 사내가 대한민국 수십만 경찰들이 가길 원하는 높고 큰 본청 건물을 바라보며 감격을 한다.
드디어 왔기 때문이다. 꿈에 그리던 본청에.
"그것도 콜을 받아서!"
전입 신청을 한 게 아니다.
본청에서 직접 콜이 온 거다.
그렇게 감격하는 그의 눈앞에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1988년, 어느 봄날이었다.
봄 소풍을 겸해 견학을 간 서울경찰청.
상냥하고 친절하게 이곳저곳을 안내해 줬던 경찰 누나들의 모습에 당시 소년이었던 사내는 한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무서운 형사 아저씨들만 가득할 거라고 겁을 먹었던 소년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 버렸던 미소.
그때부터 꿈꾸게 됐다.
-엄마! 나 여경이 될래요!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이불을 걷어차게 되는, 머릿속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은 끔찍한 기억.
하지만 그 꿈이 있었기에 경찰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겨우 이십대의 나이에 이곳에 왔다.
동기들 가운데 자신만큼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사내는 버디프랜드 단체 채팅방에서 부러워하던 동기들을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아차, 늦겠다!"
사내는 빠르게 본청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쪽을 보면 반쯤 펴진 무궁화 네 송이가 보이고, 그 옆을 보면 그런 무궁화 다섯 개가 하나로 뭉친 계급장이 보인다.
여긴 총경이고, 저긴 경무관.
그리고 가장 상석엔 수십만 명 경찰의 정점인 경찰청장님이 뚱한 얼굴로 앉아 있다.
‘엄마…….’
불이 켜진 작은 회의실에 선 사내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그는 방금 전 2층 끝 사무실에서 인사를 나누자마자 잘됐다며 이곳에 끌고 온 최종혁 경감을 원망 어린 눈으로 노려봤다.
"큼. 최 경감, 아직 멀었나?"
"네. 다 되어 갑니다."
"젊은 사람이 손이 느리군. 지금 몇 분째 청장님을 기다리게 하는 줄 알아?"
"죄송합니다! 얼른 하겠습니다!"
활짝 웃은 종혁은 몸을 돌리며 혀를 찼다.
"그럼 와서 좀 도와주든지……. 하여튼 높은 사람은 이래서 문제야. 말만 하면 바로 다 되는 줄 안다니까? 안 그래요?"
"네, 네?!"
"못 들었으면 말고."
‘미, 미친?!’
하얗게 질린 사내는 다급히 무서운 고위 간부들을 봤지만, 그들은 못 들은 듯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친 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런데 자넨 누구지? 못 보던 얼굴인데."
"추, 충성! 겨, 경장 박동구!"
"……아, 경찰청 홍보 포스터 대회에서 1등 한? 동대문서 홍보팀의?"
"그, 그렇습니다!"
‘이분이 날 어떻게?’
범죄자를 때려잡는 형사가 아니라 어렸을 적 한눈에 반한 여경들처럼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새겨 줄 수 있는 홍보팀을 꿈꾸고 결국 이룬 사내, 박동구.
그는 이런 고위 간부들도 알 정도로 자신의 실력이 대단했었나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종혁은 그런 그의 모습에 뚱한 표정을 지으며 홍보담당관을 응시했다.
"이제부터 손발 맞춰 가야 할 사람에게 헛바람 넣으시면 곤란합니다, 홍보담당관님."
"……어흠. 내가 뭐랬나?"
‘에라이.’
혀를 찬 종혁은 문 옆에 서 있는 최재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딱 회의실의 불이 켜지며 정면의 스크린이 빛을 토해 냈다.
종혁은 레이저 포인트를 잡으며 숨을 골랐다.
‘아, 귀마개를 가져올 걸 그랬나?’
종혁은 몇 초 후 일어날 반응을 예상하며 실실 웃었다.
"그럼 경찰 이미지 개선 및 인권 향상을 위한 마케팅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화면이 전환되자 간부들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순직, 규정 범위 확대.]
경찰 고위 간부들에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단어, 순직.
고작 25살 경감 따위가 꺼낼 이야기가 아니고, 이런 자리에선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그걸 첫 주제부터 거론하고 있다.
‘저 자식이?!’
‘감히!’
종혁은 갑자기 들끓는 공기와 죽일 듯 노려보는 간부들의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한 해 공무상 사망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하는 경찰의 숫자가 몇 명일까요. ……혹시 아시는 분 계십니까?"
쾅!
"야, 최종혁!
"하!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머리끝에 서지, 지금?!"
"이 자식이 진짜! 야, 이 개새끼야!"
결국 터져 버린 고위 간부들의 분노.
그러나 종혁은 흔들리지 않고 이택문만 응시했다.
무슨 생각인지 뚱한 눈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그.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칼춤을 추셨으면 당근을 내미셔야죠."
흠칫!
"음……."
칼춤이란 단어에 고위 간부들의 입이 다물어진다.
그건 이택문 경찰청장도 마찬가지다.
대신 눈빛이 더 가라앉은 그. 소회의실을 채우던 불편한 침묵이 가신 건 이택문이 입을 열면서부터다.
"아버님 때문인가?"
‘아버지? 아, 그랬지 참.’
아버지 최도철도 범인을 쫓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지만, 결국 순직 처리가 되지 못했다.
너무 오래전 일이기도 하거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어 잊고 있었던 종혁으로서는 딱히 감흥 없는 질문이었다.
"흠. 100퍼센트 아니라곤 할 수 없을 겁니다. 믿지도 않으실 테고요. 하지만 이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아니, 당신들도 알고는 있지만 외면하던 일이지.’
예산 때문에, 애매해서 등등 온갖 이유로 외면하던 고질적인 문제다.
하지만 굳이 이런 말까지 해서 고위 간부들과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조직이 끝까지 돌봐 준다면 조직원은 충성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청장님과 담당관님들께서도 다 아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세 달 후면 경찰의 날입니다."
순간 그들의 눈이 번뜩인다.
경찰의 날.
다른 걸 다 떠나서 민생치안 및 사회 안전보장 확보에 공이 많은 경찰 공무원 또는 관련 유공자들을 대상으로 훈장, 포장, 표창 등을 수여하는 날이자, 어떤 이유로든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던 경찰들 중 일부를 새로이 선별해 순직임을 인정하는 날이다.
둘의 대화에 뭔가를 깨닫고 더 불편한 시선을 보내던 고위 간부들의 턱을 쓸며 눈을 가늘게 떴다.
발칙하지만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가 아닌가.
종혁은 변화하는 분위기에 싱긋 웃었고, 이택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 번 할 거 제대로 하라는 건가?"
"확실한 지지를 얻으실 기회입니다."
"……좋군. 개요는?"
"마저 들으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계속할까요?"
"……계속해."
그렇게 파란의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 * *
무려 2시간 동안 진행된 프레젠테이션도 어느덧 마지막 주제만 남기고 있었다.
그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고위 간부들이 다음 주제 발표 준비를 하고 있는 종혁을 묘한 눈으로 쳐다본다.
‘흐음.’
‘저놈…….’
욕심이다. 그들의 눈에 담긴 건 분명 욕심이었다.
순직부터 시작해 모두 예민할 수밖에 없던 주제들이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우려하던 문제들의 개선점이 명시되어 있고, 납득할 수밖에 없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기에 그들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바닥에서 구르고 구른 그들이 고작 25살 애송이 경찰의 말에 동의를 하게 된 거다.
만약 혈기만 넘치는 애송이었다면, 무슨 말을 하든 무시를 했을 거다. 하지만 종혁은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설득력을 가졌는지도 몰랐다.
불편했던 심기는 가신 지 오래.
‘저놈이 내 밑으로 온다면…….’
‘이래서 밑에 놈들이 저놈을 데려오라고 난리를 쳤나?’
그들은 흥미 가득한 눈으로 다음 주제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주제는 오늘 발언된 내용 중 가장 뜬금없는 주제였다.
"콘텐츠 제작 및 관리?"
"1993년에 개봉한 영화 투 폴리스를 기억하십니까?"
왜 기억을 못하겠는가. 그 탓에 경찰 이미지가 똥통에 처박혔는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경찰은 뒷돈을 받는 개새끼가 됐고, 이 자리에서 너도 뒷돈 받았냐는 전화를 받아 보지 못한 경찰은 없었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두 배우의 열연 때문에 이후 영화건 드라마건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경찰은 거의 무능하거나 뒷돈을 받는 비리 경찰이 되었다.
경찰은 무조건 악역.
"그나마 2003년에 개봉한 살인자의 추억과 제가 자문을 맡았던 영화를 통해 이미지가 좀 개선됐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살인자의 추억에서 경찰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무능했다. 끝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고, 결국 경찰은 절대 범인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미진한 이미지만 남겼을 뿐이다.
종혁이 자문을 맡았던 영화는 그나마 나았다.
결국 범인을 잡았으니까.
형사가 어떻게 범인을 잡는지 잘 보여 줬으니까.
이런 불편한 이야기에 간부들의 얼굴이 다시 구겨진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종혁은 결국 튀어나온 불만에 이를 드러냈다.
"언제까집니까. 대체 언제까지 민중의 지팡이인 저희가 저들 언론과 미디어의 만행을 지켜봐야 합니까?"
"……!"
갑자기 심기를 강타하는 묵직한 직구, 아니 도발에 고위 간부들의 몸이 들썩인다.
하지만 종혁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저희가 지켜야 하는 시민이라지만, 이렇게 턱주가리를 돌리는데도 참아야 하는 겁니까? 이게 경찰입니까? 호구지!"
……뿌득!
이택문과 고위 간부들의 이가 악물어진다.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개그 소재? 될 수 있습니다. 풍자의 소재도 될 수 있습니다. 경찰이 시민들 곁에 있다고 말해 주는데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죠. 하지만-!"
광대는 되지 말아야 한다.
하찮은 웃음거리로 전락해선 안 된다.
"안 그렇습니까!"
"……하!"
순간 공기가 달아오른다.
체면 때문에 엉덩이만 들썩인 그들이 저마다 담배를 물며 종혁을 노려본다. 어서 답을 내놓아라 재촉한다.
"그래서 콘텐츠를 제작하자는 건가?"
"단순히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그럼?"
"관리를 해야 됩니다. 저들이 제작하는 영화, 드라마에서 경찰이 어떤 역할로 나오는지, 나온다면 그게 나쁜 경찰이라면 작가의 픽션이라고 명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움찔!
"흐음."
"그건 나쁘지 않을 듯한데?"
"또 경찰의 선행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선행을? 굳이? 낯뜨겁게?"
"굳이가 아닙니다. 왜 경찰의 이미지가 비리 경찰로 굳어졌습니까? 왜 많은 수의 국민들이 경찰을 꺼려 하는 겁니까."
선행에 대한 뉴스라곤 가뭄에 콩 나듯 나오기 때문이다.
"영웅이 되지 못해섭니다. 저 미국의 경찰처럼 영웅이."
"……!"
종혁은 이제야 깨닫는 그들을 향해 말을 이어 갔다.
"존중을 받진 못하더라도 손가락질은 받지 말아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래. 다 좋아.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야. 국민들이 그런 기사를 찾아보겠어?"
홍보담당관의 말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찾아보지 않아도 계속 내보내야 합니다. 계속 경찰에 대해 언급을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
종혁은 뭔가를 깨달은 홍보담당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경찰이 당신들 주변에 있다는 걸 알리자는 거군."
"정확히는 경찰은 믿을 수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인식시켜야 하는 겁니다."
경찰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적대시해야 될 대상이 아니고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인 협조를 하여 함께 범죄를 해결하고 예방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음."
"흐으음."
"하지만 예산이……."
나지막한 재정담당관의 중얼거림에 생각에 잠기던 사람들의 낯살이 구겨진다.
예산. 빌어먹을 예산.
종혁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누군가 말했다. 예산이 부족한 게 아니라 중간에 삥땅 치는 놈들이 많은 거라고.
하지만 이번에도 이걸 언급할 순 없었다.
"다들 은혜를 입혀 놓은 기자 한둘쯤은 있잖습니까? 경찰서 출입 기자들에게 다음에 큰 사건을 주겠다 거래를 해도 될 테고요."
"아!"
‘그런 묘수가!’
"좋군. 제법 좋은 생각이야."
아니, 정말 마음에 든다.
"그래서 콘텐츠는? 어떤 걸 제작할 거지?"
홍보담당관의 질문에 종혁은 눈을 빛내며 화면을 전환시켰다.
[젊은 피.]
"……?"
"일단 저희에겐 콘텐츠를 제작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현 대한민국 대표 예능에 젊고 끼 있는 경찰들을 출연시켜서 시간부터 버시죠?"
종혁은 미간을 좁히는 그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한참 후, 종혁의 말이 끝나자 간부들은 다시 침묵을 했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종혁이 오늘 말한 것들의 타당성을 따지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결과는…….
‘이거 가능성이 있겠는데?’
‘예산이 많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고…….’
생각을 정리하던 고위 간부들을 보던 이택문은 흡족한 눈으로 종혁을 응시했다.
‘생각보다 더 유능하군.’
그때 술자리에서 어느 정도 파악했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종혁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인재였다.
"잘 들었어."
특히 콘텐츠 제작 및 관리가 가장 파격적이면서도 구미를 당겼다. 잘하면 방송국의 모가지를 틀어쥘 수 있는 명분.
물론 과하면 언론 탄압이다 뭐다 말이 나올 테지만, 그거야 잘 조절하면 그만이다.
"감사합니다."
싱긋 웃은 종혁의 모습에 고개를 주억인 이택문은 홍보담당관을 봤다.
"홍보담당관은 어떻지?"
"저도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종혁은 시선이 닿자 얼른 마시던 물을 삼켰다.
"예. 말씀하십시오."
"가령 X맨이라는 거 말이야. 몸 좋고 잘생긴 경찰들을 출연시켜 남성 연예인들을 압살하고, 여성 연예인들과 러브라인도 만들고. 좋아. 다 좋은데, 너무 가볍게 보여지지 않겠나?"
그래도 경찰인데라는 뒷말이 삭제된 물음.
"대신 백마 탄 왕자님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겠죠."
"……!"
위험한 상황에서 공주님을 구하는 왕자님.
그 이미지가 가지는 효과를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여성에게는 믿음직한 보디가드가, 남성에겐 감히 덤비기 힘든 존재가 되는 겁니다. 대체 언제까지 양말을 돌려 신고, 팬티를 며칠씩 입는 더러운 이미지를 가져가야 합니까? 언제까지 험하고 무서운 이미지를 고수해야 됩니까?"
형사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뭐던가.
늙고 더러우면서 거칠고 무서운 사람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 낸 이미지.
"시민들이 쉽게 경찰을 찾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해야 됨에도 말이다.
친근하지 못해서다. 신고하러 갔다가 나도 나쁜 소리를 들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젊고 유쾌하며 듬직해 친근하게 느껴지면서도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경찰도 이젠 변해야 하는 거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보통 그런 이를 보고 영웅이라고 한다.
"흐음…… 음?"
거기까지 생각하자 아까 종혁이 언급한 영웅이란 단어가 떠오른 고위 간부들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경찰이 연예인들과 경찰과 도둑 같은 추격전을 벌이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건?"
"도망치는 연예인들을 쫒을 땐 도주 경로를 예측하며 빠르게 쫓는 치밀함과 영리함을, 빠른 검거를 통해 신속함을, 그리고 첨단 수사 기기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스마트함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걸 시청자의 무의식에 각인시키는 거다.
이런 종혁의 말에 고위 간부들은 혀를 내둘렀다.
‘빈틈이 없군. 빈틈이 없어.’
‘나이 따위가 문제가 아니야!’
종혁은 다 넘어온 것 같은 그들의 모습에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이 예능 출연들은 그런 이미지 확립을 위한 첫 번째 걸음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 이상 질문이 없으시다면 이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겠습니다."
마무리까지 완벽하다.
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봐, 최 경감."
"예?"
"홍보팀은 어떻게 생각해? 현장도 어느 정도 겪었으니 이제 진짜 일을 해 봐야지?"
"……예?"
"거 무슨!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최 경감, 경무팀 어때? 아니,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를 아예 저희 경무로 주십시오, 청장님!"
"다들 무슨 소리 하십니까! 최 경감은 재정이 딱 맞습니다! 저렇게 철두철미, 적재적소, 빈틈없는 걸 보십쇼!"
"아, 됐어! 내 기수 밑으로 다 닥쳐!"
"경찰에서 기수를 왜 따져!"
"뭐야?!"
종혁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소회의실의 모습에 눈을 껌뻑이다 이택문을 봤다.
미간을 좁히던 이택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타앙!
"다들 어린 간부 앞에서 무슨 추태야!"
"……어흠."
"커허험."
여전히 뚱한 목소리인 이택문은 종혁을 봤다.
"일단 콘텐츠 쪽부터 진행해 봐."
"충성.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방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택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로 끝인가? 끝이라면 다들 일어서지."
"옙!"
‘됐다.’
드디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훗날 더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을 제외하곤 모두 다.
‘이제 경찰도 점점 바뀌어 가겠지. 회귀 전과 다르게…….’
어서 그때가 오길 바라던 종혁은 순간 눈을 부릅떴다.
‘아차!’
까먹은 게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아직 마지막이 남았습니다."
종혁은 애매하게 엉덩이를 들다 멈춘 그들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좆됐다. 어떻게 말하지?’
아까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했으면 쉽게 넘어갔을 일이지만 타이밍을 놓친 지금은 아닌 일. 짧은 시간 갈등하던 종혁은 이내 어쩔 수 없다며 약을 팔기로 했다.
종혁은 눈을 부릅떴다.
"청장님."
"왜 그러지?"
"취임사 때 경찰의 인권 향상과 공권력 향상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하신 발언은 아직 유효합니까?"
그 말에 이택문의 미간이 더욱 좁혀진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굳이 이런 자리를…… 음."
왜일까. 갑자기 종혁의 발언이 불길한 예감과 함께 뇌리를 강타하는 이유는.
종혁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그를 보며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다행이군요."
"뭐가……."
"토크쇼에 한번 출연해 주시죠."
"……뭐?"
"경찰의 인권 향상을 위한 경찰 이미지 개선과 공권력 향상을 위해서. 새롭게 변화할 경찰을 알리기 위해서!"
‘그래 주실 거죠?’
어색하게 웃는 종혁의 모습에 이택문 경찰청장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 * *
"미친놈. 또라이 새끼. 와, 어떻게 청장님을……."
다시 생각해도 식은땀이 절절 흐르는 상황.
오택수는 수명을 몇 년 정도 줄인 종혁을 노려봤고,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거 나도 실수였다니까요……."
"실수? 아주 두 번 실수하면 다 죽이겠다, 새끼야! 그리고 네가 퍽이나 그랬겠다!"
‘진짠데…….’
꿍얼거리며 새로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던 종혁은 잠시 멈춰 섰다. 안에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엇?! 추, 충성!"
"충성!"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하는 그들.
"왔어요?"
이들이 이택문이 준비한 태스크 포스였다.
"앞으로 잘해 봅시다."
종혁은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