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03화>
비리 경찰의 만행!
사건을 허투루 수사해 범인을 놓친 김 모 경위!
김 모 경위! 여죄 밝혀져!
제2의 김 모 경위! 뇌물을 받고 수사를 눈감아 주다!
제3, 제4의 김 모 경위! 경찰은 비리 공화국?
신임 경찰청장 이택문! 존경받는 경찰이 되기 위해 기꺼이 메스를 들겠다!
경찰이 뒤집혔다.
퇴직한 비리 경찰의 체포.
여태껏 경찰이 재직 도중 어떤 죄를 저질렀어도 들키지 않고 퇴직을 한다면 그냥 묻는 게 암묵적인 관례였는데 그게 깨진 거다.
은밀하게 체포만 했으면 몰라도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찔리는 게 있는 경찰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하고 싶어서 했어?’
‘다 선배들이 시켜서 한 거잖아!’
‘우리 때 그런 거 안 한 놈들이 어디 있어!’
대부분이 군사정권 시절과 문민정부 시절을 거친 현 경찰 조직의 중추들이었다.
하지만…….
-야! 박 경사!
"소장님?"
약이라도 한 듯 거칠게 난동을 부리던 취객을 제압하다가 의도치 않게 취객의 팔을 부러뜨린 박 경사.
그 탓에 대기 발령 징계를 받고 인권위의 조사를 받으며 매일 술로 하루를 보내던 그에게 갑작스런 전화가 걸려왔다.
-너 무죄란다! 내일부터 출근해!
"예?"
-경찰청장님이 범인을 제압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며 강력하게 항의하셨단다!
"아……."
-그리고 너뿐만이 아니라…….
이후 소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박 경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경찰을 할 수 있음에.
다시 치안을 지킬 수 있음에.
여태껏 헌신했던 조직이 자신을 버리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 경사는 구석에 던져 놨던 경찰공무원증을 잡으며 오열했다.
그리고 이건 비단 박 경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 *
전국에서 작은 실수로 대기 발령이나 직무 정지, 강제 휴가를 가야 했던 경찰들이 복귀하며 이택문 경찰청장에게 지지를 보내자, 찔리는 게 있어 들고 일어났던 경찰들도 슬그머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에 힘을 얻은 이택문 경찰청장은 경찰 전체에 메스를 들이밀었고,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무사태평하게 퇴직했거나 아직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경찰들이 줄줄이 검거되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최기룡이 쓸어 낸다고 쓸어 냈으나 아직 남아 있던 견찰들이 모조리 색출되자, 국민들 또한 경찰청장에게 지지를 보냈다.
특수범죄수사과만 제외하고 말이다.
"아니, 씨발! 종혁이가 왜 전출을 가야 하는데요!"
"과장님! 아니, 형님! 이게 말이 됩니까! 종혁이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새끼야! 네가 잘못한 거 아니잖아!"
"고개 들어, 새끼야! 너 잘못한 거 없어!"
김판철에 대한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아 다른 부서로 전출을 가게 된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
그것도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신설 부서로 간다는 소식에,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은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특진 포인트가 다 쌓였다고 종혁이 진급을 하면 뭐하나.
누가 봐도 징계성 전출이었다.
"과장님!"
김종두 과장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종혁을 응시하다 몸을 일으켰다.
"따라와."
둘은 옥상으로 향했다.
찰칵! 치이익!
허공으로 흩어지는 담배연기.
김종두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꼭 이래야겠냐?"
뭔가 이상한 김종두의 말에 종혁은 방금까지 숙이고 있던 고개를 펴며 히죽 웃는다.
"에이, 왜 이러세요. 허락도 하셔 놓고."
그랬다. 김종두 과장은 이미 이택문 경찰청장에게 내막을 다 듣다 못해 허락까지 한 상태였다.
"그야 그러지 않으면 네가 다치니까 그렇지, 인마!"
종혁이 검거한 김판철 때문에 경찰청장이 메스를 들었다.
급격히 기운 여론에 지금은 잠잠해진 일부 견찰들이 종혁을 노리고 있을 터.
신문이야 모자이크로 종혁들의 얼굴이 가려졌다지만, 이미 소문은 다 퍼진 상황이다. 그런 그들에게서 종혁을 보호하기 위해 정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흐흐흐. 사랑합니다."
"……그래, 씨발. 대한민국 경찰은 네가 다 해라."
"사랑해요."
"몰라, 인마."
김종두는 혀를 찼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경찰청장의 명령이라고 통보를 해도 될 텐데 그러지 않아 줘서.
세상을 제 것처럼 여겨도 될 텐데 그러지 않아서.
‘맞아. 이놈은 이런 놈이지.’
언제 폭주할지 몰라 불안하면서도, 이런 면에선 칼 같아 안심이 되는 놈.
어떨 땐 넘치는 혈기를 주체 못하는 것 같아 보이면서도 또 어떨 땐 베테랑 같은 면모를 보이는 놈.
결코 일반적인 잣대로 가늠을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놈.
그렇기에 떠나보낼 수밖에 없음을 직감한다.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이 아님을 직감한다.
‘이놈도 벌써 시야를 넓힐 때가 된 건가.’
순간 아련하고 대견해진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1997년, 일진에게 대가리가 터졌다며 한국을 뒤집어 놨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경감이다.
그때만 해도 그저 싹수가 범상치 않은 놈이라 생각했던 종혁이 경찰대를 졸업하더니 어느새 진짜 간부인 경감이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봐 온 김종두로선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종혁이 뛰어난 형사가 되기만을 원했다면 이택문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거부했을 거다.
하지만 김종두는 종혁에게 그 이상을 바라고 있었다.
‘이놈이 경찰청장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수사에 돈을 아끼지 않는 수준을 벗어나, 언제나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종혁. 그러며 언제나 경찰 처우 개선에 목을 맨다.
이런 종혁이 경찰청장이 된다면 아마 그때가 경찰의 최고 부흥기가 되지 않을까, 김종두는 조심스럽게 예상해 봤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걸 겪어 봐야 할 터.
김종두 과장은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다녀와."
다녀와. 그 한 마디가 순간 종혁의 가슴을 울린다.
종혁 본인이 이곳을 제2의 집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김종두도 종혁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단 의미다.
‘과장님!’
입술을 깨문 종혁은 속으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놈들을 쫓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어요.’
언제나 사건이 밀려 있는 특수범죄수사과. 사건을 겨우 해결하면 또 다른 사건이 기다린다.
놈들을 제대로 쫓을 시간이 없는 거다.
그래서 이택문 청장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그가 뭘 준다고 해도 거부했을 터.
그래서 미안했다.
‘나도 슬슬 말하긴 해야 되는데…….’
하지만 공식적으로 놈들을 검거한 적이 없기에 밝힐 수가 없다.
놈들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어떤 놈들인지.
물론 김종두라면 믿어 줄 테지만, 그래도 확신을 주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최소한 놈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만 밝힐 수 있어도…….’
그때였다.
"가서 한풀이 다 하고, 몸성히만 돌아와."
흠칫!
‘눈치채셨구나!’
하긴 김종두 같은 베테랑이 철량리 사건을 벌써 잊었을 리가 없다. 종혁은 도와주지도, 함께하지도 못해서 미안하고, 또 믿는다는 표정에 이를 악물었다.
"충성. 경위, 아니 경감 최종혁.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몸조심하고."
푸근히 웃던 김종두는 이내 아차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가선 뭘 할 거냐? 아무리 가라로 만든 부서라도 뭘 하긴 해야 될 거 아니야."
‘가라는 아닌데…….’
이택문 경찰청장은 진심으로 경찰 이미지 개선을 바라고 있었다. 아직은 내부 정리가 끝나지 않았기에 참고 있을 뿐, 정리가 끝난다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할 거다.
경찰의 인권 향상과 공권력 강화를 위해.
‘뭐, 이건 나중을 위한 재미로 남겨 둘까?’
짓궂은 생각이 떠오른 종혁은 잠시 입을 다물기로 했다.
"흠. 글쎄요. 경찰청 사람들부터 부활시켜 볼까요?"
"뭐?"
종혁은 어이없어하는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 * *
다음 날, 평범한 일상복이 아니라 근무복을 빼입은 종혁은 거울 속 자신의 어깨에 달린 견장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옛날엔 이거 달려고 15년을 좆뺑이 쳤는데……."
회귀 전처럼 대강당에서 수많은 경찰들의 시선을 받으며 단 견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감이다.
조촐하게 특수범죄수사과 식구들의 축하 속에서 이택문 경찰청장이 약식으로 달아 줬어도 경감은 경감.
회귀 전 머리가 터져도, 칼에 찔려도 병원만 퇴원하면 다시 복귀하던 나날들. 수백 번 잠복을 하고, 수천 명의 범죄자를 잡고 나서야 겨우 달았던 게 바로 이 경감이라는 견장이다.
순경으로 시작해 경감까지 다는 데 15년.
누군가는 그것도 빠르다고 말했지만, 정말 죽도록 노력한 결과였다.
그런데 이번 생에는 경찰대에 입학해 겨우 6년 만에 달게 됐다.
"역시 이 길이 맞았어."
‘앞으로는 얼마나 걸릴까?’
경정, 그리고 그 위.
아마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씩 웃은 종혁은 경찰모를 챙겨 들며 방을 나섰다.
달그락!
"음?"
거실에 앉아 과일을 씹고 있던 순철과 순희가 종혁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다. 왜인지 한숨을 내뱉은 고정숙은 일어서 다가와 종혁의 어깨를 쓸어내린다.
"잘 다녀와. 너무 힘들어하진 말고."
멍하니 고정숙을 봤던 종혁은 이내 곧 그녀의 말뜻을 알아듣곤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핫! 아니에요. 그런 거였다면 정복을 입었겠죠."
보통 형사는 평생토록 거의 네 번의 상황에 정복을 입는다.
임용이 됐을 때.
표창 및 진급을 할 때.
퇴직을 할 때.
그리고 동료 형사가 순직을 했을 때…….
고정숙이 말한 건 네 번째 상황이었다.
아들의 웃음에 그게 아님을 깨달은 고정숙은 이내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좌천됐니?"
"아들한테 좌천이 뭡니까, 좌천이."
"범인 하나 잡겠다고 4개월 동안 복귀 안 한 놈이라면 나라도 좌천시킬 것 같은데……."
"그래도 2주에 한 번은 집에…… 죄송합니다."
고정숙은 혀를 찼고, 종혁은 배시시 웃었다.
"좌천을 당할 거였으면 이렇게 진급은 안 시켜 줬겠죠. 아무튼 당분간은 집에 일찍 들어올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알았어. 조심히 다녀오고. 새 부서에서는 성격 좀 죽이고."
‘그것도 아닌데…… 아니, 맞나?’
갸우뚱하던 종혁은 이내 다시 웃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그렇게 종혁이 떠나자 소파에 앉아 사과를 물던 고정숙은 닫힌 현관문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거 아무리 봐도 좌천이 맞는데……."
"아줌마, 좌천이 뭡니까?"
"제가 한번 알아봅네까? 해킹을 하면 금방 압네다."
고정숙은 뜻을 알아듣고 딱딱하게 굳은 순철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러다…….
콱!
"악! 아아악!?!"
갑자기 구레나룻이 당겨진 순철은 당황했고, 고정숙은 그런 그를 향해 단호한 눈빛을 보냈다.
"난 내 집에서 범죄자 안 키운다."
"죄, 죄송합네다! 사, 살려 주시라요!"
"명심해."
고정숙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순철을 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뭐 지가 알아서 하겠지.’
자기 앞가림은 충분히 하는 아들이니 그럴 수 있을 거다.
걱정을 지워 버린 고정숙은 아침 장사 준비를 위해 움직였다.
한편 출근을 마친 종혁은 배정받은 사무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2층 구석에 위치한 20평이나 될까 한 작은 사무실.
책상은커녕 공장에서나 볼 법한 철골 선반만 몇 개 놓인 삭막한 풍경에 웃음부터 튀어나온다.
"이야, 노골적이구만?"
알아서 예쁘게 꾸며 보라는 이택문의 의도가 절로 읽혀진다.
웅성웅성.
"하. 진짜 내가 왜 아침 출근부터 이놈 얼굴을 봐야 하지?"
"에이, 너무 그러지 맙시다. 나는 뭐 기분…… 아?"
열린 문 안으로 들어오던 최재수가 사무실 풍경을 보곤 굳어 버린다.
"……우리 좌천 맞죠? 그렇죠?! 맞잖아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듯 일그러지는 얼굴.
종혁은 눈을 끔뻑이며 오택수를 봤다.
"우리가 설명을 안 했던가요?"
"했는데?"
"그럼 왜 저러는데요."
"몰라. 뭐부터 할까? 청소? 비품은 네가 가져오고."
마찬가지로 오열하는 최재수를 무시한 종혁은 사무실 풍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알아서 예쁘게 꾸며 보라는, 아니 예쁘게 꾸며 놓고 훗날 특수범죄수사과로 복귀할 때 그 상태 그대로 놓고 가라는 이택문의 괘씸한 의도가 가득 느껴지는 풍경.
그 의도를 따라 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사장님. 안녕하세요. 예, 예. 본청 사무실 인테리어를 의뢰했던 최종혁 경위입니다. 또 의뢰를 싶은데 혹시 지금 시간되실까요?"
종혁은 경악하는 오택수를 일견하며 실실 웃었다.
‘사무실 인테리어 예산은 얼마나 배정됐으려나?’
누군가 들으면 뒷목을 잡을 생각이었다.
"그럼 전 잠시 출장 좀 다녀오겠습니다."
"응? 어디 가게?"
‘확인을 위한 탐문을 좀 하려고요.’
얼마 후 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회귀 전에는 이놈들의 역사가 이렇게까지 깊은 줄 몰라서 간과했지만, 회귀 후 놈들과 본격적으로 얽히다 보니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사건이다.
그러나 아직은 의심인 수준.
혹여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분명 소득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촉이 맞다면?
중국에 있는 놈들이 아닌, 또 다른 꼬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 더듬어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는 꼬리를!’
종혁은 그걸 확인하기 위해 탐문을 할 생각이었다.
‘이번엔 절대 안 놓친다, 개새끼들아.’
치솟는 살심을 애써 누른 종혁은 몸을 돌렸다.
"다녀올게요. 오 경위님도 대충 있다가 퇴근하세요."
"어, 그래."
그렇게 본청 건물을 나선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네, 나탈리아. 저예요. 중국에 있는 놈들은 좀 어때요?"
과르릉!
종혁을 태운 차가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 * *
과르릉.
한참을 달려 한 주택가 골목에 차를 세운 종혁은 차 안에서 한 주택을 응시했다.
"이곳이군."
멀지 않은 미래, 놈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사는 집이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시간을 확인하곤 눈을 감았다.
현재 시각 오전 10시. 그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한 잠복이 시작됐다.
"으아! 죽겠다! 진짜 피방 안 갈 거야?"
"응. 다음에 가자."
"끙. 알았…… 와, 씨발. 포르쉐다."
"뭐? 우와."
이제 17살이나 됐을 법한 어린 소년들의 수다에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던 종혁이 고개를 돌린다.
짙게 선팅이 된 차창에 붙어 폴더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흥분하는 아이들. 어른이라면 미소가 절로 나올 천진난만한 모습이건만 종혁은 아니었다.
그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옆 친구와 달리 목이 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애를 쓰는 소년을 빤히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너구나?’
기다리던 사람이다.
앞으로 한 달이 채 지나기 전 경찰서로 달려와 살려 달라고 외친 소년. 그렇게 구해졌음에도 자살을 한 소년.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
이렇게 해맑게 웃을 줄 아는 소년이 마치 뭔가에 쫓기 듯 흘겨 쓴 유서만 남긴 채 목을 매달고 죽은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유서를 흘겨 쓴다고?’
말이 안 된다.
자살이란 인생에서 마지막 선택이기에, 가족과 지인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이기에 보통의 유서는 평소 그 사람의 필기체보다 훨씬 정갈하고 깔끔하다.
아니면 슬픔을 참지 못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든지.
그런데 이 소년의 유서는 그 둘에 해당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에 대해 조사한 형사는 없었고, 경찰에 살려 달라고 달려왔던 소년이 사법당국의 보호 아래 있다가 자살을 했는데도 신문에 기사 한 토막 실리지 않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묻어 버린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놈들이라면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지.’
"대체 넌 뭘 봤을까……."
앞으로 한 달 안에 벌어질 어떤 사건의 주범인 소년.
그때 대체 무얼 봤기에, 어떻게 얽히게 됐기에 자살을 당하게 된 걸까.
종혁은 안경을 껴서 더 앳된 소년의 얼굴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차창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터엉!
"으악!"
"죄, 죄송합니다!"
후다닥!
친구와 함께 엉덩이를 방실거리며 헐레벌떡 도망치는 소년.
‘귀엽네.’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종혁은 아까 지켜봤던 집 안으로 들어가는 소년을 응시하다 핸들을 잡았다.
"자, 그럼 나는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해 보실까?"
이택문의 칼춤이 멈춘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될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가 앞으로 해야 될 일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이건 기회다.
그동안 생각만 했지, 제대로 풀어놓지 못했던 걸 풀어낼 기회.
눈을 빛낸 종혁은 차를 출발시켰다.
과르릉!
종혁의 차가 주인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사납게 울음을 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