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02화 (202/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02화>

60. 태스크 포스

7월 15일, 여름.

전국 경찰 중 총경 이상의 간부들 전원이 정복을 입은 채 한자리에 모였다.

새 경찰청장의 취임식 때문이다.

대강당에 모인 그들은 새 경찰청장은 어떤 성향의 사람일까, 어떤 말을 할까 귀추를 주목했다.

그때였다.

뚜벅뚜벅!

걱정과 우려, 기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단상에 선 이택문 경찰청장은 박수를 치는 간부들을 쭉 둘러보며 날카로운 눈매를 빛냈다.

"이번에 새로이 경찰청장이 된 이택문입니다."

이택문이 입을 열자 모두 숨을 죽였다.

"힘들게 시간을 내어 먼 길 찾아오셨으니 긴말은 안 하겠습니다. 요새 가만 보고 있자니, 경찰의 인권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약간은 뜬금없는 말에 간부들이 웅성거린다.

그러나 이택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재임 기간 동안 경찰의 인권 향상과 공권력 강화, 이 두 가지에 온 힘을 기울일 테니 간부님들도 나를 적극 지지해 주기 바랍니다. 이상."

"……응?"

"어?"

간부들은 벌써 끝나 버린 연설에 당황했지만, 이택문 경찰청장은 모두 무시한 채 단상을 내려갔다.

아니, 그러다 못해 아예 강당을 떠나 버렸다.

-처, 청장님의 말씀이 끝나셨습니다. 오늘 찾아 주신…….

"뭐야. 지금 뭐가 어떻게 된 일이야? 이렇게 끝난다고?"

"캬. 저 형님 저럴 줄 알았지. 올해부터 회사 생활이 다이나믹해지겠구만?"

대강당이 혼란에 휩싸였고, TV를 통해 취임식을 지켜보던 경찰들은 입을 떡 벌렸다.

한편 그길로 본청의 경찰청장실에 올라온 이택문은 의자에 앉아 청장실 안을 둘러봤다.

"……."

지금 무슨 감정이 드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

‘박종명 부산청장.’

대강당 안에서 유일하게 질투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던 인물과 그 패거리들. 동기인 최기룡과 각을 세우던 인간들이다.

피식.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최 경위? 시작해."

-예.

딱 이 말만 하고 끊긴 대화.

등받이에 몸을 묻은 이택문 경찰청장은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   *   *

강남 모처의 한식집.

이택문과 최기룡이 술잔을 기울인다.

물러나는 자와 차지하는 자.

하지만 둘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가 않다.

"크으. 우리도 성공하긴 성공했어? 이런 곳에서 술도 마시고?"

"형만 그랬지. 난 안 그랬어."

"얼씨구? 그래! 집 안에 금송아지 많아서 좋았겠다!"

"좋지. 돈 많아서 싫은 사람도 있나? 그건 형도 마찬가지잖아?"

경주 최씨 충렬공파에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은 최기룡.

할 말이 없어진 최기룡은 입맛을 다셨다.

"아주 한 마디를 안 지지."

이택문은 툴툴거리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걱정 마. 우리 약속은 잊지 않았으니까."

경찰이 경찰다울 수 있게 만들자.

선배들처럼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시민들을 괴롭히지 않으면서도 존경받을 수 있는 경찰을 만들자.

수십 년 전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처음 발령을 받은 경찰서에서 만난 사나이들끼리 나눈 뜨거운 약속이었다.

"……그래. 부탁한다."

이 순간 20살 혈기만 넘쳤던 그때로 돌아간 둘은 조용히 술잔을 부딪쳤다.

똑똑똑!

"음? 아, 들어와."

최기룡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며 종혁이 들어온다.

"충성…… 경위 최종혁.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이분이 왜?’

최기룡이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해서 왔던 종혁은 살짝 당황했고, 그런 그를 보며 최기룡은 낄낄 웃었다.

"그래, 어서 와. 이쪽은 알지?"

"예."

안다. 왜 모를까.

‘임기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2년 임기를 모두 마친 최초의 경찰청장.’

지금은 비록 최기룡 청장이 임기를 모두 채우고 물러나면서 최초란 칭호를 뺏기게 됐지만, 그래도 대단한 인물이다.

"최종혁 경위입니다."

‘이 어린 경위가…….’

동기이자 이제 곧 전임이 될 경찰청장인 최기룡이 말하길, 이택문 본인이 생각하는 경찰 조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극찬한 인물.

"이택문이다. 말 편히 해도 괜찮지?"

"예, 괜찮습니다."

최기룡의 옆자리에 앉은 종혁은 슬그머니 눈을 굴렸다.

‘이택문.’

이 자리에 나오기 전 최기룡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듣긴 했지만, 좋은 사람이 꼭 좋은 상사, 좋은 리더는 아니다.

‘성격도 범상치 않다던데…….’

하지만 딱 그 정도만 알 뿐이다.

회귀 전 이때의 종혁은 고작 경찰서 형사 나부랭이였으니 말이다. 경찰청장을 만날 일도 없고, 연관된 일도 없었다.

‘게다가 회귀 전에는 이 양반이 경찰청장이 되는 건 내년 초였단 말이지.’

아니, 최기룡이 임기를 모두 채우고 물러난 것부터 이미 회귀 전의 역사와 다르다.

즉, 최기룡과 이택문 사이에 경찰청장이 한 명 더 있었다는 소리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종혁은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훤칠하군."

"예? 잘못 들었습니다?"

"마스크도 좋고."

"가, 감사합니다."

"나이가 몇이지?"

"올해 스물다섯입니다."

"나이도 훌륭하군. 혹시 선볼 생각 있나?"

"……예?"

"야, 이택문이! 종혁이는 내가 소개시켜 줄 거거든!"

"없나? 아쉽군. 내 막내딸이 27살이니까 생각 있으면 언제든 말해."

종혁은 직감했다.

‘이 양반 최기룡 청장님과 같은 과다!’

말투가 권위적이며 무뚝뚝하고 화법이 마이웨이라서 슬쩍 불안해졌던 종혁은 약간 안심했다.

하지만 아직 이택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어떤 경찰을 만들어 가고 싶은지는 알고 있나?"

"……여기 청장님께 들었습니다."

경찰의 인권 향상과 공권력 강화.

종혁이 언제나 바라는 일이고, 또 노력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랐다.

"잘됐군. 그럼 최 경위는 어떤 방식으로 두 개의 일을 꾀할 거지?"

‘그걸 왜 나한테?’

종혁은 살짝 당황했다가 이내 최기룡이 이 자리에 부른 이유를 떠올리곤 낯빛을 굳혔다. 비록 이유를 말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데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종혁 본인이 쓰임이 있다는 걸 후임 경찰청장에게 알려 주기 위한 최기룡이 만든 자리.

‘진짜 이 양반 오지랖 하나는…….’

입을 다문 채 의미심장한 눈빛만 보내는 최기룡의 모습에 종혁은 속으로 고개를 저어야 했다.

"생각해 본 게 없나?"

‘그럴 리가.’

종혁은 이택문의 눈을 또렷이 응시했다.

"일선 파출소 및 일선 형사들의 예산 증대 및 처우 개선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경찰 이미지 개선이겠죠."

범인을 쫓다가 접촉 사고가 나면 일정 부분의 수리비를 물어야 하고, 민원 때문에 함부로 범인을 제압할 수 없는 파출소.

언제나 부족한 예산 때문에 함부로 범인 아지트의 유리창조차 부술 수 없고, 부족한 작전비 때문에 양질의 수사를 할 수 없는 일선 형사들.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경찰 조직이 외부에서 부는 태풍에서 이들을 보호해야 된다.

그러면 인권 향상과 공권력 강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그러며 친근하면서도 감히 들이댈 수 없는 경찰이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경찰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에 약간 실망을 하던 이택문이 눈을 번뜩인다.

‘친근하면서도 감히 덤빌 수 없는 경찰!’

딱 그가 생각하는 경찰이 아니던가.

굳어 있던 그의 낯빛이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최기룡은 ‘잘한다, 내 새끼!’를 속으로 외쳤다.

"미디어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예능을 만들고, 드라마, 영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경찰서 견학 프로그램을 증대해 초등학교 이하 자라나는 새싹들로 하여금 경찰에 존경심을, 중학생 이상 청소년들에겐 범죄를 저질렀을 때의 현실을 깨닫게 해야 된다.

‘훌륭하군.’

최기룡이 왜 그렇게 칭찬을 거듭했는지 알 것 같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청사진.

그러나 아직 종혁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내부 정리부터 끝내야겠죠."

쿵!

‘내부 정리!’

어쩜 이렇게 생각이 같을까!

이택문은 더 이상 참지 않고 빈 메모지를 내밀었다.

"써. 그리고 내가 만들 TF에 들어와."

‘태스크 포스?’

종혁은 눈을 빛내며 빈 메모지를 봤다.

백지 수표.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겠다는 의미다.

‘내가 원하는 걸 모두 들어주겠다고? 언제나 예산에 허덕이는 경찰이?’

종혁의 미소가 사나워졌다.

"감당 안 되실 텐데요?"

"큭큭. 그래, 감당 안 될걸? 나도 이놈 겨우 감당했어."

이택문은 코웃음을 쳤다.

"일단 내년에 약속된 진급부터 바로 하지."

종혁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죽이 맞았던 최기룡이 가니 최기룡보다 더한 인간이 왔다.

그런데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이거…… 재밌겠는데?’

경찰 생활이 더 재밌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저희 과장님부터 설득해 주십시오."

"음?"

태스크 포스도 좋고, 경찰 인권 향상과 공권력 강화 모두 좋다.

하지만 결국 앞으로 계속 있어야 할 곳이자, 제2의 집이나 다름없는 특수범죄수사과의 분위기를 흐리게 된다면 단호히 거부할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포문을 시원하게 열어 드리겠습니다."

마침 때려죽이고 싶은 놈도 있는 와중이니 신호탄으로서 썩 나쁘지 않을 터.

이택문은 당당한 종혁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 한번 내 기대에 부응해 봐."

내부 정리.

어떻게 할지 기대가 되었다.

‘그럼 나도 팍팍 밀어줄 테니까.’

한편 허락이 떨어지자 종혁은 오택수를 봤다.

"이제 그놈 잡으러 갑시다."

"……어이구, 이제 가는 거야?"

솔직히 이걸 허락받을 거라곤 생각 못했던 오택수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과장님! 저희 출장 다녀오겠습니다!"

"뭣?! 야, 이 개새끼들아! 또 나가냐아-!"

셋은 재빨리 특수범죄수사과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

이젠 선풍기로도 감당하기 힘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의 막바지.

덩치가 좋은 육십대 노인이 오일장을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한 과일 가판대 앞에 선다.

"어이구, 수박이 아주 실하네. 이거 얼맙니까?"

"아이고. 김 경위님 왔어?"

손바닥만 한 작은 TV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칠십대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김 경위를 반긴다.

그러나 그 표정은 묘하게 어둡다.

"뭘 돈을 줘. 됐어, 그냥 가져가."

"어허! 그래서 돈 벌겠어요? 내 누차 말하지만, 난 이제 경찰이 아니에요!"

경찰이었다면 가능했다는 이상한 말.

할머니는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 그럼 5천 원만 줘."

"이걸 5천 원씩이나? 허어, 요즘 수박 비싸네."

‘그럼 그렇지! 이 쌍놈의 새끼!’

하지만 할머니는 속내와 달리 웃을 수밖에 없었다.

"2천 원만 줘."

"허허. 여기 있습니다. 아, 그보다 요새 시장에 별일 없죠?"

"기, 김 경위님이 이렇게 만날 순찰을 도시는데 별일이 있을 리가 없지."

"그래요. 뭔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내가 비록 은퇴는 했지만, 아직 인맥들은 다 살아 있으니까!"

"그, 그럼! 내가 우리 김 경위 모를까! 그때 부탁해!"

"허허. 그럼 수고해요."

그렇게 수박을 든 김 경위가 멀어지자 웃고 있던 할머니의 얼굴이 구겨진다.

"퉤이!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놈 안 잡아가고!"

도시로 경찰 한다고 떠났다가 40년 만에 완전히 돌아와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망나니.

그나마 그동안은 명절에만 코빼기를 보였기에 참을 만했는데, 이젠 완전히 돌아왔다. 거기다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동네 경찰들도 김 경위 앞에선 맥을 못 춘다.

"잘 참았어, 언니. 똥이 무서워서 피해? 더러워서 피하지."

"몰라, 이년아!"

할머니는 멀어지는 김 경위를 보며 제발 죽어 버리길 기원했다.

그런 그녀의 소원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흐흐. 내가 이 맛에 여길 못 끊지…… 응?’

시장 상인들을 괴롭히며 양손을 무겁게 만들던 그의 앞에 세 사람이 선다.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다.

"김판철 씨? 혹시 김가을 씨를 기억하십니까? 퇴직 전 마지막 사건이셨을 텐데요."

종혁은 속에서 들끓는 화를 가라앉히며 애써 담담히 물었다.

"아, 식구였어? 무슨 일?"

"김가을 씨 사건 때문에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럽니다."

"아아, 김가을이라…… 글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렇게 말하는 김 경위가 음흉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비빈다.

그에 종혁은 한숨을 푹 내뱉었고, 오택수는 낄낄 웃었다.

"봤지? 이런 새끼들은 후회라는 걸 안 한다니까?"

"나도 그냥 혹시나 했어요."

그래도 후회하고 있기를.

뒤늦게라도 잘못을 깨닫고 살아가길.

고작 그 정도만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너무 큰 바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둘의 모습에 김 경위는 뭔가 잘못되어 가는 걸 느꼈다.

"뭐, 뭐야. 너흰 뭐 하는 놈들이……."

쩍!

순간 김 경위의 턱이 돌아간다.

종혁은 정신을 잃으며 주저앉으려는 그의 머리채를 잡았다.

"아악!"

"경찰, 개새끼야. 너 같은 견찰과 다른 진짜 경찰."

종혁의 눈빛이 삽시간에 차가워졌다.

"김판철 씨, 당신을 뇌물수수, 뇌물공여, 직권남용, 협박, 폭행 등등 씨발 졸라게 많네. 암튼 이런 것들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당신은……."

"이 개새끼들이! 야! 너희 실수하는 거야! 같은 식구한테 칼질하면 다른 경찰들이 가만히…… 아악! 목! 모옥-!"

뿌득! 뿌득!

머리채를 쥔 채 크게 흔드는 종혁도 김 경위의 말이 뭔지 알고 있다. 여태껏 경찰이 재직 도중 어떤 죄를 저질렀어도 들키지 않고 퇴직을 한다면 그냥 묻는 게 암묵적인 관례.

아마 이번 일로 많은 경찰들이 들고 일어날 거다.

‘하지만 그래서?’

견찰은 경찰이 아닌 존재.

선량하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경찰에게 민폐나 끼치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들고 일어난다고 해서 무서울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종혁은 흔들림 없이 말을 이어 갔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체포구속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말은 모두 법적인 효력을 가집니다. 알았냐, 이 개새끼야?"

종혁은 그를 코앞까지 끌고 와 이를 드러냈다.

"기대해. 내가 너 좆되게 해 줄 테니까."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자신의 책무를 저버린 견찰에겐 이게 맞는 처벌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종혁과 아주 친분이 깊은 박영일 기자가 찍고 있었고, 며칠 후 대한민국 경찰 조직 전체가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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