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01화>
"가으리…… 우리 가으리……."
피해자 김가을의 아버지 김복수 씨가 납골당을 내달린다.
오늘만큼은 절뚝이는 다리가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그런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악! 아아악!"
멈칫!
딸이 안치된 납골당에서 터져 나오는 끔찍한 비명.
자신도 모르게 하얗게 질렸던 김복수 씨는 이를 악물며 봉안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가로세로 두뼘 그 작은 공간에 안치된 딸과 교복을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딸의 사진 앞에 엎드려 있는 동남아인을.
사지와 손가락 모두가 부러진 듯 깁스를 한 동남아인과 그 손가락을 이리저리 꺾는 오택수 형사와 다리를 치는 최재수 형사를.
그리고 머리채를 잡아 바닥을 찍고 있는 최종혁 형사를!
"아…… 아아……."
"이놈입니다, 김복수 씨."
"아아아……."
김복수 씨는 뭔가에 홀린 듯 느엉에게 다가가며 양손을 뻗었다.
느엉은 그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곤 부러진 사지를 버둥거렸다.
"아으으. 사, 살려……."
"어딜 도망가. 더 빌어, 개새끼야."
결국 느엉의 목에 닿은 김복수 씨의 두 손.
"케엑!"
종혁은 그제야 느엉의 머리채를 잡은 손을 풀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김복수 씨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한을 푸십시오."
봉안실을 빠져나온 셋은 담배를 물었다.
"주그어! 주그어-! 가으리 사려 내에!"
그동안 응어리진 채 가슴을 썩혀 가던 한.
터져 나왔음에도 뜨겁기는커녕 슬프기만 한 아비의 한에 셋은 담배만 질근질근 씹었다.
"하. 불 붙이고 싶네."
"참아요."
수많은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이다.
수많은 사연으로 가 버린 망자들의 앞이니 예의를 지켜야 했다.
셋은 살려 내라 외치는 아비의 절규에 잠시 눈을 감았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잠시 외면하기로 했다.
"그건 어떻게 할 거냐?"
오택수는 종혁이 주물럭거리고 있는 증거물 봉투를 가리켰다.
피해자 김가을의 학교 배지가 달린 목걸이.
"줘 봤자 다시 한만 남을 테죠."
딸이 남긴 유품이지만, 결코 받고 싶지 않을 유품.
피해자 김가을도 이게 다시 돌아오길 바라진 않을 거다.
종혁은 증거물 봉투를 다시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이제 떼어 내자."
"예."
그들은 봉안실로 들어갔다.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가 떠난 자리.
남겨진 김복수 씨는 이제야 진짜로 웃는 것 같은 딸을 매만졌다.
"가으라…… 내 따알 가으라……. 이지에 펴언이 자……. 아브아가 미아해……."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자장 자장, 우리 가을이.
사랑하는 내 딸아.
봉우리도 피우지 못한 채 져 버린 내 꽃아.
이제 편히 잠들렴.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정말 미안해.
딸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비는 그렇게 목 놓아 울었다.
* * *
거의 초죽음이 된 느엉을 태운 차는 달리고 달려 서울중앙지검에 섰다.
오는 동안 또 괴롭힘을 당했던 느엉은 이제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낯빛이 밝아졌다.
하지만.
"악!"
머리채가 잡혀 끌어 내려진 느엉은 강제적으로 고개가 들렸다.
"이제 끝일 것 같지? 아니야. 저기 저 사람 보여?"
담배를 문 채 로비 앞을 서성이던 강철선이 수사관들과 함께 다가온다.
"저 사람 나보다 더 지독한 인간이야. 기대해. 살아서 한국을 벗어나진 못할 테니까."
아마 오랜만에 서울중앙지검의 고문실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다가온 강철선은 느엉을 보곤 눈살을 구겼다.
"와 이리 걸레짝으로 만들어 놨노? 툭 치면 뒤져 쁘는 거 아이가?"
"에이. 완급 조절은 했죠."
"글나?"
고개를 끄덕인 강철선은 수사관들을 봤다.
"뭐 합니꺼. 인마 지하로 데꼬가지 않고."
"예!"
"아, 안 돼……. 사, 살려 줘! 살려 줘, 뽈리스!"
"그 주댕이도 다물게 하고!"
쩍! 쩍! 쩍!
느엉은 입을 주먹으로 맞으며 끌려갔고, 시선을 거둔 강철선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수고했데이. 이런 날 술 한잔 마시믄 좋을 낀데 내가 좀 바빠질 것 같다. 배웅도 못해서 우짜노."
"괜찮아요. 온 김에 검사장님 뵈고 갈 거라서요. 저도 술은 못 마셨을 거예요."
"검사장님을? 아, 그 일 때문이가? 알았다. 조심히 드가고, 다음에 술 한잔 진하게 꺾자. 그리고 종혁…… 아니 최종혁 경위님, 오택수 경위님, 최재수 경장님."
강철선은 그들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정말 고맙십니더. 내 이 은혜 꼭 갚겠심니더. 그럼 조심히 드가이소."
그렇게 감사 인사를 한 강철선은 몸을 돌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예, 슨상님. 집니더, 강철서이. 그놈아 잡혔습니더. 퍼뜩 올라오이소."
지하로 향하는 강철선을 빤히 바라보던 종혁은 오택수와 최재수를 봤다.
"먼저 복귀하세요. 전 여기에 볼일이 좀 있어서."
"……알았다. 얼른 복귀해."
"충성."
그들마저 몸을 돌려 떠나자 종혁은 숨을 길게 내뱉으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검사장실로 향했다.
똑똑!
"예, 들어오세요."
전 중수부장이자, 현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종혁을 보곤 눈을 빛냈다.
"오랜만입니다, 검사장님."
"최 경위가 약속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아, 일단 앉아요."
그가 손짓을 했지만, 종혁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책상위에 USB 네 개를 내려놓았다.
"인터내셔널 잡에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 총 28737명의 명단과 직원 386명의 명단과 죄목, 그리고 인터내셔널 잡의 회계 장부입니다."
"……."
검사장은 차를 시키기 위해 들었던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입술을 비틀었다.
"재밌군요. 최 경위의 독단적인 생각입니까?"
"곧 저희 청장님께서도 도착하실 겁니다."
날카로운 미소가 더 짙어진 검사장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예, 총장님. 접니다. 지금 시간 되십니까? 예,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장 좀 호출해 주십시오. 그쪽에서 관심 있을 만한 일입니다."
전화를 끊은 검사장은 외투를 챙겨 들었다.
"밥 먹었습니까? 안 먹었으면 검찰총장실에서 설렁탕 한 그릇 땡기죠."
"세 그릇도 됩니까?"
"푸흐. 갑시다."
둘은 대검찰청으로 넘어갔다.
* * *
"……."
경찰청장, 검찰총장, 국정원장. 여기에 대법원장까지 있으면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모든 조직의 수장이 모인 거라고 봐야 했다.
그런 그들이 네 개의 USB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후룩 후루룩!
"……넌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어우. 이 집 맛집인데요? 아니, 검찰총장실에서 먹는 거라서 더 각별한가?"
종혁과 최기룡의 만담에 검찰총장, 국정원장, 중앙지검 검사장의 경직된 어깨가 풀린다.
"나랑은 처음 보죠? 국정원장 김성구입니다. 덕분에 우리 요원들이 국내외 할 것 없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최종혁입니다. 국가 안보에 이바지가 됐다니 영광입니다."
"나랑은 아까 인사 나눴지?"
"예, 총장님."
"그럼 이야기를 좀 들어 볼 수 있을까?"
검찰총장의 말에 종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최기룡을 봤다.
"허흠. 보시는 그대롭니다. 저희 경찰이 인터내셔널 잡을 검찰에 인계하는 것뿐입니다."
"왜죠? 돈이 많이 들지 않았나요?"
"계륵이니까요. 뭐, 필요 없으시면 도로 주시든가. 우리 애들이 몇 명인데 이거 하나 관리할 놈 없겠습니까."
최기룡은 싫으면 말라며 USB를 가져왔고, 그에 검찰총장과 국정원장은 반사적으로 USB를 잡았다.
"끙. 싫다는 건 아니고……."
싫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삼키기도 꺼림칙하다.
폭탄이기 때문이다.
자칫 현 정권에 큰 독이 될 수도 있는 폭탄.
말이 좋아 일자리 알선이지, 이건 외국인 혹은 외국인 노동자를 잠재적 불법 체류자 및 범죄자로 분류해 통제하고 탄압하는 행위에 가깝다.
만약 이게 들킨다면 반대표가 많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재외 동포의 입국 규제 조치를 완화하면서 외국인 개방에 시동을 거는 정부 정책에도 치명적인 타격이 될 터.
종혁은 떨떠름해하는 그들을 향해 말을 툭 던졌다.
"총 46건."
"……?"
"그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아 미제로 전환됐던 사건 중 외노자 명단과 DNA 확보로 인해 해결된 사건의 숫자입니다."
순간 최기룡과 검찰총장의 눈에 불이 켜진다.
종혁은 고민을 하는 국정원을 보며 입을 열었다.
"탈북자, 아니 새터민과 다문화 가정을 회원으로 만들 프로젝트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불끈!
"아무래도 이건 저희 국정원이 관리하는 게 옳을 것 같군요."
"허어. 검찰도 잘할 자신 있습니다."
"우리 경찰 무시하지 마십시오."
국정원장은 코웃음을 쳤다.
"들키지 않을 자신 있습니까?"
"……."
그 말에 최기룡과 검찰총장은 입을 다물었다.
종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손을 들었다.
"전 자신 있습니다."
"아니, 최종혁 씨!"
"그렇지! 말 잘했다, 우리 종혁이!"
낯빛이 다시 밝아지는 둘의 모습에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서로에게 이득이 될 이야기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아, 참고로 인터내셔널 잡은 시스템이 모두 안정화 되어 있으며 일 년 순이익은 약 3억가량입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허리를 꾸벅 숙인 종혁은 검찰총장실을 빠져나와 담배를 물었다.
"어딜 값도 안 치르고 꿀꺽하려고."
어차피 인터내셔널 잡은 국정원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
검찰은 어려서부터 법 공부만 한 사람들이 모인 경직된 조직이라 그만한 회사를 관리할 역량이 안 되고, 경찰은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남은 건 국정원뿐이다.
국정원이라면 전문 경영인을 데려오거나 종혁처럼 직원들에게 공포로 군림해서라도 회사를 꾸려 나갈 수 있을 터.
짝짝짝.
"싸움 붙이는 솜씨가 제법이군요, 최 경위님. 내가 한 수 배워야 할 정도입니다."
외국인은 외국인대로 관리하면서 돈까지 번다.
그 어떤 조직이 이걸 싫어할까.
종혁은 검찰총장실의 문에 등을 기댄 채 냉랭하게 웃고 있는 검사장을 보며 싱긋 웃었다.
"외국인의 지문을 합법적으로 딸 수 있는 법적인 규제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먼 훗날 대한민국을 찾는 모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규제.
"혹시 이런 부분에 대해 관심 있는 분이 계실까요?"
이를테면 정치인.
강철선에게 듣기로 야망이 대단하다는 검사장이다. 결코 검찰총장으로는 만족하진 않을 터.
그런 종혁의 눈이 빤히 살핀 검사장은 이를 드러냈다.
"아직 배 안 부르지? 마침 줄 것도 있는데, 한 젓가락 어때?"
종혁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 * *
서울 모처의 한 BAR.
얼음에 잠긴 호박빛 술을 앞에 둔 종혁이 생각에 잠긴다. 그런 그의 손에서 USB가 굴러다닌다.
중앙지검 검사장이 준 USB다. 아니, 폭탄들이다.
작은 폭탄, 큰 폭탄.
지금은 터트릴 수 없는 폭탄도 있다.
그 출처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총장도 그 안에 어떤 사건이 있는지 들여다볼 수 없다는 중수부의 비밀 사건 기록 창고일 게 분명할 터.
대만민국 모든 권력자의 치부가 숨겨져 있다는, 말만 무성한 비밀 창고.
"……재밌는 양반이네."
예상보다 야망이 커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웃음을 흘린 종혁은 USB를 안주머니에 소중히 보관했다. 이제부터 이것은 종혁 본인의 보물이었다.
달그락.
입술에 닿는 차가운 얼음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종혁은 생각만 해도 웃긴 고민을 시작했다.
한편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다 종혁을 발견한 장년인이 다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리곤 얼른 걸어가 종혁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인다.
"먼저 와 계셨어라."
고개를 돌린 종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왔어요, 박 전무."
성철인력사무소 사장이었던 박성철 전무.
"아따 왜 청승맞게 자작을 하고 계시요잉. 아가씨, 그거 우리 사장님이 시킨 거 맞지라? 좀 줘 보쇼."
종혁은 바텐더에게 술병을 빼앗는 박 전무를 아래위로 살폈다.
‘이 새끼도 때깔 많이 좋아졌네.’
몇 달 전, 요상한 골프웨어 따위를 입은 채 컵라면이나 먹던 범죄자가 이젠 제법 사업가 티가 난다.
종혁은 술병을 빼앗아 박 전무의 잔에 술을 따랐다.
"아따 영광이어라, 사장님."
종혁은 그의 넉살에 피식 웃었다.
"곧 사장이 바뀔 겁니다."
움찔!
"……결국 그렇게 됐구마이라."
씁쓸히 웃은 박 전무는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사장님과 오 실장, 최 대리가 함께 거시기 할 때부터 눈치 깠지라. 그럼 이제 복직하는 거여라?"
"그렇게 되겠죠."
"그럼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요? 다른 놈들처럼 교체당하는 거여라?"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씩 본사에서 자취를 감추던 브로커들. 이제 본사에 남은 건 박 전무 본인과 비교적 착한 놈들 뿐이다.
"그라도 정이 있응께 좀만 때려 주쇼!"
종혁은 그러며 양손을 내미는 박 전무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순순히 포기하네요?"
"……무섭지 않으면 거짓말이겠지라. 깜빵에 가는디."
애써 웃던 박 전무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진다.
‘아니, 아깝게 된 거제.’
이 바닥에 뛰어든 후 외노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다 원양어선에 팔아넘겨도, 그러다 죽어도 자신에게 그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데 뭐가 걱정인가?
그들은 그저 돈을 벌어다 주는 가축이었다.
하지만 종혁에게 멱살 잡힌 채 끌려가 일하다 보니 참 많은 걸 깨닫게 됐다.
가장 큰 건 그들도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는 점이다.
고마우면 고맙다 할 줄 알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사람. 한국어가 서툴 뿐 제대로 생각할 줄 알고, 박 전무 자신처럼 가족이 있는 사람이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언젠가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던 어떤 태국인.
-첫 월급 탔다. 박 전무 선물 준다.
첫 월급을 탔음에도 가족에게 돈 부칠 생각은 안 하고 삐뚤빼뚤 쓴 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냈던 어떤 말레이시아인.
이날, 가슴이 싱숭생숭해 참 술을 들이켜야 했다.
‘그라제. 나도 이 짓을 접을 때가 된 거제.’
죗값을 받을 때가 된 거다. 사람이 아닌 가축, 짐승은 그들이 아니라 자신이었기에. 그런 짐승이 사람처럼 행동했으니 이제 그에 대한 벌을 받을 때가 온 거다.
"그라도 죗값을 털고 나오면 그 사람들 볼 면목이라도 있지 않겄소?"
종혁은 눈을 빛냈다.
"진심입니까?"
"새로 오는 사장님께 부디 그 불쌍한 사람들 잘 부탁한다고만 전해 주쇼. 뭐하요. 싸게싸게 안 채우고."
"……푸하핫!"
"사장님?"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 내가 말을 잘못 전달했군요. 제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천거될 겁니다."
"……야?"
종혁은 그의 손을 끌어다가 손바닥에 국정원 세 글자를 썼다.
"흡?!"
손바닥과 종혁을 번갈아 보며 정말이냐 눈으로 묻는 그의 모습에 종혁은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들로선 대표 자리에 앉는 게 부담일 수밖에 없죠."
언제라도 들킨다면 발을 빼야 하기에 사장 자리엔 앉을 수 없다.
"그래서 난 박 전무를 추천할까 하는데……."
"사장님!"
"어라? 죗값을 받는다 하지 않았던가요?"
"아, 아따 왜 그러쇼잉. 내가 뭘 하면 될까라? 뭐든지 시켜만 주쇼! 아주 뼈가 으스러지도록 거시기 해 블랑께!"
‘그래. 이 사람이라면 잘 해내겠지.’
원래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진심으로 후회하며 뉘우치고 있다.
교도소에 보내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보다 이렇게 죗값을 갚아 나가게 하는게 훨씬 이로울 터.
‘거기다 자산을 정리해 외국으로 보내고 있었지.’
조사해 보니 그를 스쳐간 불법 체류자들 중 죽거나 장애를 입고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부치고 있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그때 잡아넣어도 돼.’
"아따 사장니임!"
매달릴 모습이 귀여워 푸흐흐 웃던 종혁은 돌연 낯빛을 굳혔다.
"그럼 내 귀가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귀요?"
전국에 퍼져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들이 보고 들은 모든 걸 알려 줄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
종혁은 마른침을 삼키는 박 전무를 가만히 응시했다.
* * *
다음 날, 모든 게 잘되어 콧노래를 부르며 본청에 도착한 종혁은 발걸음도 가볍게 사무실 문을 박차며 들어갔다.
"저 복귀했습니다-!"
"……."
"음?"
왠지 싸늘하기가 북극보다 더 추운 사무실의 분위기.
차갑게 노려보는 동료 형사들의 모습에 당황한 종혁은 사무실 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들고 있는 오택수와 최재수를 발견하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거기서 뭐해요?"
"뭐하는 것 같냐?"
"쉿. 쉿. 최 경위님도 어서 오세요."
"그래. 너도 얼른 같이해. 아니, 넌 이거 들고 해."
어느새 다가온 김종두 과장이 내민 12kg 아령.
"아, 아니……."
"너도 해."
"에, 에이. 이건 아니죠! 저희가 사건을 몇 개나 해결했는데!"
무려 46건의 미제 사건이다.
종혁들이 없는 지난 4개월 동안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이 해결한 사건의 숫자에 버금가는 숫자의 사건들.
미제라 가산점이 더 높다.
종혁은 그 사건들 중 절반을 다른 형사들에게 나눠 줬다.
"그래서 이 정도로 끝내려는 거다. 안 할 거야?"
"아,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
"해, 이 시키야-! 너만 물구나무서 볼래?! 아오 이걸 확 진짜! 아오오!"
"진짜 내 나이가 몇인데……."
‘그리고 어제 내가 뭔 일을 했는데…….’
억울했다. 정말 눈물이 나도록 억울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음을 깨달은 종혁은 최재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들었다.
"어서 와요, 최 경위님."
"닥쳐."
"너희나 닥쳐-! 다들 잘 들어! 오늘 저 세 망나니 새끼들한테 물이라도 한 모금 주는 새끼는 나랑 옥상 가는 거다! 알았냐!"
"예!"
‘저 배신자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잘해 줬는데!’
안다. 아무리 사건을 넘겼어도 4개월이나 자리를 비운 건 분명 큰 잘못이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종혁은 다신 사건을 넘기나 보자 복수를 다짐했고, 그렇게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기존에 있던 사람이 가고,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는 여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