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00화>
59.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짐승
기이잉! 치이잉!
소음으로 가득한 공장 안.
2층의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던 오십대 장년인이 기지개를 펴며 일어선다.
"어우, 죽겠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4시. 점심 식사 후 3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으니 피곤할 만했다.
하지만 아직 퇴근까진 멀었는지라 기지개를 펴며 피로를 쫓던 장년인은 공장 안으로 뚫린 창가에 섰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군."
흐뭇이 웃던 장년인 이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뭔가 이상했다. 아니, 뭔가 허전했다.
"하나, 둘, 셋, 넷…… 어?"
사람의 숫자가 무려 세 명이나 빈다.
담배를 피러 갔겠거니 생각하던 장년인은 순간 뭔가가 떠올라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 쌍놈의 새끼가 또!"
격분을 하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온 장년인은 공장 뒤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팰릿에 앉아 히히덕거리는 동남아인 3명과 그들 밑에 수북하게 쌓인 담배 꽁초들을.
혈압이 그의 뒷목을 때렸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낄낄거리며 웃다가 화들짝 놀란 3명.
그중 하얗게 질린 2명은 얼른 담배를 껐지만, 남은 한 명은 능글맞게 웃었다.
"왜? 싸장님?"
"왜? 왜에? 느엉,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방금 왔어, 싸장님."
"방금 오긴, 새끼야! 그 밑에 담배가 수북한데!"
그 말에 밑을 본 느엉은 혀를 차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알았어. 일하러 갈게. 그럼 됐지?"
"이 자식이 진짜!"
"나 일한다. 일하러 간다."
느엉은 잰걸음으로 장년인을 스쳐 지나갔고, ‘어? 어?’ 하던 그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너 또 이러면 정말 잘라 버릴 줄 알아! 알았어? 알았냐고! 에이, 씨부럴. 인터내셔널 잡에서 사람을 구하든 해야지."
싸다고 막 쓰는 게 아니었다.
툴툴거린 장년인은 담배를 물었다.
한편 코너를 돌아선 느엉은 잔뜩 굳어 따라오는 두 친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봤지? 저 늙은 새끼는 우릴 자르지 못해."
"방금 자른다고……."
"흥. 그거야 말뿐이지!"
한국인은 130만 원 받는데, 자신들은 60만 원밖에 안 받는다. 절대 못 자른다.
"즉, 우린 두 사람이 한 사람 몫만 해도 된다는 거지. 오케이?"
"와. 역시 느엉 넌 한국에 오래 살아서 잘 아는구나?"
"굳이 힘들게 일할 필요 있어? 어차피 월급은 정해져 있는데?"
"우와아."
느엉은 감탄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콧대를 세웠다.
‘정말 자르면 그땐 확 불질러 버리면 돼.’
느엉의 눈빛이 순간 위험하게 빛났다.
"들어가자. 한 번 욕먹었으니 일하는 흉내는 내야지."
"오오오."
그렇게 공장 안으로 들어간 셋은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퇴근 시간이 되자 재빨리 퇴근을 해 버렸다.
"야, 이 쌍놈의 새끼들아-!"
복장이 터지는 사장의 외침을 뒤로하며 거리로 나선 셋.
그들은 때가 가득한 허름한 옷차림을 한 그들은 슬리퍼를 찍찍 끌며 숙소로 향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분분히 비켰다.
"봐. 내가 말했지? 한국인들 다 겁쟁이라서 우리가 이렇게 다니면 겁먹을 거라고?"
"큭큭큭. 뭐야, 정말이잖아?"
느엉의 말에 둘의 얼굴이 느슨하게 풀린다.
그들은 어깨를 펴며 껄렁하게 걸었다.
"어? 여자다. 예쁜데?"
"엉덩이 흔드는 거 봐라. 저런 애랑 자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그들은 느엉을 봤고, 순간 움찔한 느엉은 이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쟤들 우리 사람 취급 안 하니까."
"아, 느엉도 그건 힘들구나……."
실망하는 두 친구의 모습에 느엉은 입술을 이죽거렸다.
‘이건 나만 알아야 하는데…….’
하지만 패거리를 만들어 목소리를 높여야 편히 일할 수 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쯧.’
"대신 이런 건 할 수 있지."
느엉은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척 앞에서 걷는 여자의 엉덩이를 잡았다.
"꺅! 이 미친 새끼가!"
"미, 미안! 잘못했어! 때리지 마!"
잔뜩 움츠리는 느엉의 모습에 손을 들었던 여성의 눈이 흔들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익!"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주춤 물러서던 여성은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별꼴이야, 진짜!"
여자가 빠르게 멀어지고 사람들의 시선도 떠나자 느엉은 넋을 놓은 두 친구를 봤다.
"봤지? 이러면 절대 안 맞아."
"……우와아아!"
"감촉은 어땠어? 탱탱했어?"
"쉿. 가자."
얼른 숙소로 복귀한 셋은 숙소 근처의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술판을 벌였다. 이 근방은 모두 같은 처지 사람들이 쓰는 곳이라 이곳에서만큼은 마음 편히 마실 수 있었다.
"그래서 아까 어땠는데?"
"어떻긴 죽였지. 역시 한국 여자는 베트남 여자랑 살결부터가 달라."
"하아, 부럽다. 나도 만져 보고 싶은데……."
"내일 만져 보면 되지."
"그렇지?"
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으하하핫!"
그들의 웃음을 파고드는 또 다른 웃음소리.
고개를 돌린 그들은 혀를 찼다. 땟국물이 가득한 옷을 입은 자신들과 달리 깨끗한 옷을 입은 무리들.
"인터내셔널 잡 애들이네."
순간 부러움이 그들의 눈에 차오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개새끼들. 그거 추천해 주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아주 지들이 귀족이지. 퉤!"
본인들 행실은 생각 못한 그들은 끓어오르는 화를 생각 못하고 술만 들이켰다.
그렇게 어느 정도 마셨을까. 초점이 흐려질 만큼 술이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음담패설로 넘어갔다.
"그래서 정말 한 번도 안 해 본 거야, 느엉?"
"나? 해 봤지."
"진짜? 어떻게?"
"우리를 상대해 주는 여자들도 있거든. 거기가 어디냐면……."
둘이 눈을 빛내던 그 순간이었다.
"으하하핫!"
"푸하하핫!"
"아, 진짜 시끄럽네. 여기가 자기들 건가."
"그러게."
‘죽여 버릴까?’
눈살을 구기며 쳐다봤던 느엉은 그들 일행에 껴 있는 덩치 큰 남성과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며 이를 악물었다.
‘얼굴 기억했다. 넌 내가 언젠가 꼭 죽인다.’
"그러면 그중에 누가 제일 좋았어?"
"누가 제일 좋았냐고?"
듣자마자 떠오르는 여자가 한 명 있다.
그녀와의 관계가 떠오른 느엉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그는 잠시 재작년으로 돌아갔다.
그녀를 발견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뽀얗고 하얀 살결에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잰걸음으로 걷던 교복 입은 소녀.
모든 한국인이 자신을 벌레 보듯 꺼려 하는데도 마주치면 언제나 먼저 웃으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던 소녀.
저녁 11시, 스쳐 지나가며 인사를 나누는 그 짧은 순간이 느엉에겐 다음 날 고된 일과를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축복이었다.
어쩌다 소녀가 친구에게 받았다며 귤 한 개, 초콜릿 한 조각을 쥐어 줄 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래서 참다못해 고백했다.
맨날 웃어 주니까 소녀도 자신에게 관심이 있구나 확신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 기대를 배신했다.
고백 실패 이후 벽을 친 소녀.
그래서 결국 저질렀다.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지지 못하게, 그러며 소녀가 자신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해 버리기로 했다.
같은 방을 쓰는 병신에게 술을 잔뜩 먹여서 알리바이를 만들고, 고백을 거절할 수 없도록 칼을 가져갔다.
하지만 소녀는 칼을 들이미는데도 거절했다.
그리고…….
"네가 나빴던 거야. 네가 나빴다고!"
"이 미친 새끼야! 놔! 아빠-!"
"시, 시끄러워!"
푸욱!
"아, 아으. 너, 너!"
손에 닿은 물컹한 감촉과 뜨거운 물, 아니 피.
겁에 질린 소녀의 눈을 보자 눈이 돌아 버렸다.
기억이 끊겼다.
누가 좀 살려 주세요. 아빠 살려 줘. 꺼져. 비켜.
그런 소녀의 외침만 기억에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다시 기억이 돌아오니 모든 게 끝난 상황이었다.
그녀의 숨은 멎어 있었고, 주위는 온통 피바다였다.
"좋았던 여자가 누군데! 아, 말 좀 해 봐!"
‘김가을.’
소녀의 이름은 김가을이었다.
"느엉?"
"아니야. 그만 마시고 일어나자. 한국 사람은 농땡이에는 관대해도 지각은 못 참거든."
친구들을 다독이며 일어선 느엉은 어느새 불룩해진 아랫도리에 목에 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역시 팬티까지 챙길 걸 그랬나. 다음엔…….’
술에 취해 초점이 흐려진 눈이 위험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 * *
"이제 이 세 명만 남았네요."
총 83명 중 80명은 모두 인터내셔널 잡의 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세 명만큼은 수배가 안 되고 있었다.
느엉 반 티 느엉. 올해 나이 37세. 국적 베트남.
틴 랏 리 라차논. 올해 나이 25세. 국적 태국.
탄 자만 메스리아. 올해 나이 24세. 국적 방글라데시.
이 중 느엉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성격이 개좆같다고?"
"허언, 허세에 피해 의식도 많은 것 같아요."
여러 증언들을 확보한 결과 강약약강의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소인배, 찌질이다.
"개좆같은 게 아니라 그냥 병신 새끼네. 이런 새끼들이 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르는데……."
오택수의 촉이 느엉을 가리킨다.
종혁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긴 한데…….’
다른 둘과 다르게 느엉만 그날 다쳤다.
그날 숙소를 빠져나간 것도 느엉뿐이다.
모든 정황 증거가 느엉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다.
"하. 그래도 이제 끝이 보이구만?"
83명을 용의선상에 올린 후 수사를 시작해 결국 3명까지 좁혔다. 지난 4개월의 대장정도 이제 끝을 보이는 것 같다.
만약 이 3명 중에 없다면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갈 테지만, 지금은 그것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피로가 잔뜩 쌓인 그들의 어깨가 잠시 느슨하게 풀리며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문제는 이 새끼들을 어떻게 찾아야 하냐는 건데……."
최재수의 낯빛도 어두워진다.
대한민국에 있는 건 확실한데, 어떤 수단을 써도 수배가 안 되는 셋. 어디서부터 뒤져야 할지 막막해진다.
하지만.
"뭐가 걱정이에요?"
오택수와 최재수는 자신만만한 종혁의 모습에 어떤 기대를 시작했다.
그에 종혁은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이번에 경찰에서 협조 공문이 도착했습니다. 살인 용의자라는데, 파견 나간 전 고객들에게 이 사람들 신상 좀 발송하세요. 아, 회사에 필요한 놈들이니 경찰 말고 우리 쪽에 먼저 연락해 달라는 말도 덧붙이고요."
전국에 퍼져 있는 인터내셔널 잡의 파견 고객들.
"미친?!"
종혁은 벌떡 일어나는 둘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사냥을 시작해 봅시다."
겁이 많아 수풀에 숨어다니는 짐승들.
수풀을 건드린다면 어떤 반응이라도 보일 터.
당당하다면 자백할 것이고, 아니면 도망을 칠 것이다.
그 도망치는 놈이 범인이다.
그때부터가 사냥의 시작이었다.
* * *
수군수군.
숙소 앞, 이상한 공기를 감지한 느엉은 눈을 가늘게 떴다.
편의점 앞에 끼리끼리 모여 있던 외노자들의 시선이 느엉 본인을 따라붙는다. 한 걸음, 한 걸음 시선이 계속 따라붙는다.
공장의 외노자들도 보냈던 의심 가득한 시선들.
누군가는 핸드폰을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며 뭔가를 확인한다. 그러다 어떤 누군가는 몸을 돌려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그 순간 칼날처럼 섬뜩한 불길함이 느엉의 뒷목을 때렸다.
‘씨발! 이 병신!’
왜 편하게 돈 벌 줄도 모르는 공장의 병신들이 저것과 똑같은 시선을 보낼 때 눈치채지 못했을까.
느엉은 친구들을 봤다.
"오, 오늘은 마시지 말자. 몸이 안 좋네."
"그래? 알았어."
"그럼 먼저 들어가. 난 약국 좀 다녀올게."
"같이 가 줘?"
"돼, 됐어!"
느엉은 얼른 몸을 틀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느엉! 그쪽은 약국이 아니잖아! 야, 느엉!"
친구들의 부름을 무시한 느엉은 걸음을 재촉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이들 중 한 명이 얼른 핸드폰을 들었다.
"싸장님, 나 블랑카. 느엉 도망가. 도로 쪽. 얼른 가."
-고마워요, 블랑카. 수고했어요.
"싸장님. 은혜 갚는다?"
배시시 웃으며 전화를 끊은 블랑카는 핸드폰을 꼭 쥐며 부디 성공하길 빌었고, 전화를 끊은 종혁은 피식 웃었다.
‘고맙네.’
은혜를 갚겠다며 뭐든 하려는 그 모습이 너무 고맙고 기특하다.
"뭐래?"
"나오고 있답니다. 아, 저기 나오네요."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가 느엉을 눈에 담는다.
"하, 제발 저놈이어야 할 텐데……."
다른 두 명의 사냥은 실패했다. 노리던 범인이 아니었다.
이제 남은 건 느엉뿐.
느엉도 아니라면 모든 건 도로 제자리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움직이죠."
셋은 움직이는 느엉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도로가로 나온 느엉은 손을 흔들었다.
"택시…… 제기랄!"
생각해 보니 지갑을 챙기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느엉은 다급히 왔던 길을 돌아봤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의 본능이 다시 돌아가는 건 위험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아, 안 되는데. 다른 곳에 가려면 돈이…… 아! 그 여자!’
느엉은 공장에서 숙소로 오는 길에 위치한, 언젠가 목이 너무 말라서 들어갔던 편의점의 아리따운 알바를 떠올렸다.
언제나 미소로 자신을 맞이해 주는 그녀.
‘그래서 곧 고백을 하려고 했는데!’
느엉 자신에게 마음이 있으니 웃어 줬을 거고, 짧게 던지는 유머에도 웃어 줬던 거다.
"이번엔 느낌이 좋았는데!"
그녀라면 도움을 줄 것이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사랑하니까.
느엉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꺅!"
"뭐야! 야, 어깨를 쳤으면……."
"됐어. 자기야, 그만 가자."
다른 것은 눈에 뵈지도 않던 느엉은 편의점의 간판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걷는 속도를 늦췄다.
그때였다.
"어? 느엉 씨?"
편의점에서 나오다 느엉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긴 생머리의 여대생.
그녀다.
김가을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에 느엉은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말았다.
"안녕, 환희……."
흠칫!
완벽한 타인처럼 무정하게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나무인형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거슬러 오는 사람이 두 명 있다.
‘나, 날 보고 있어!’
아닌 척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지만, 느엉은 느낄 수 있었다.
경찰이다.
정말 들킨 거다.
"왜 그래요, 느엉 씨. 어디 아파요?"
순간 콧속으로 파고드는 풋풋한 살 냄새에 느엉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미안해. 이해해 줘. 아니, 너라면 날 이해하겠지!’
눈빛이 돌변한 느엉은 그녀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
여대생 환희는 갑작스런 공격에 반응을 못한 채 멍한 반응만 보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느엉은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꼼짝 마! 다가오면 이 여자는 죽어!"
그 순간이었다.
덥썩!
느엉은 자신의 팔뚝을 잡은 커다란 손의 주인을 봤다.
"뭐하냐?"
어느새 옆에 다가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거인.
"넌 또 뭐야!"
느엉은 거인을 향해 다른 손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다.
으드드드드드득!
팔뼈가 부셔질 듯한 아득한 고통만 아니라면 말이다.
"아악! 아아아악!"
"뭐하냐고 묻잖아, 새끼야."
‘너니?’
느엉을 무심히 쳐다보던 종혁은 이 상황에서도 환희의 목을 잡고 있는 느엉의 손가락을 잡아 꺾어 버렸다.
"아, 일단 이 손은 놓자."
우둑! 우둑! 우둑!
"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느엉은 땅바닥을 구르며 죽기 직전의 벌레처럼 발버둥을 쳤고, 종혁은 그런 그를 무심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느엉 반 티 느엉 씨, 당신을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일단 폭행 현행범.
하지만 곧 강간 후 살인 사건의 범인이 될 거다. 이렇게 도망치는 건 이놈이 유일했으니까.
앞으로 겨우 1시간.
딱 그것만 참자며 애써 살의를 달래던 종혁은 느엉의 옷 밖으로 삐져나온 목걸이를 보곤 뚝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기는 걸 느꼈다.
손가락 반 마디만 한 크기의 엠블럼.
김가을이 다니던 학교의 배지였다.
"하!"
‘너구나. 너였어.’
종혁은 머리채를 덥썩 잡아 골목으로 질질 끌고 갔다.
"사, 살려……."
"이 손이지?"
피해자 김가을을 찌르고 만진 손이.
종혁은 느엉의 오른팔에 다리를 휘감으며 그대로 꺾었다.
뿌드득!
기괴한 소리를 내며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인 팔꿈치.
"……꺼억?!"
"이 다리지?"
도망치는 피해자 김가을을 쫓아가고 때리며 짓누르고 지탱한 다리가.
종혁은 망설임 없이 그 무릎도 꺾어 버렸다.
"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그냥 오늘 죽자, 이 개새끼야."
개새끼란 말조차 아까운 짐승, 아니 그 말조차 아까운 짐승 이하의 새끼다. 징계를 받는다고 해도 이놈이 사지 멀쩡히 걸어 다니는 꼴을 볼 순 없었다.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지는 골목.
오택수와 최재수가 그 입구를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