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98화>
기이이잉!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인천국제공항.
옷을 두툼하게 입은 채 짐을 꼭 끌어안은 검갈색 피부의 남성이 계속 주위 눈치를 보며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온다.
그런 그에게 명품으로 쫙 빼입은 덩치 큰 남성이 다가선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블랑카 씨? 맞습니까?"
선글라스를 껴서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젊은 남성.
하지만 들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모국어에 그는 반색했다.
"네, 네. 블랑카입니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긴 보는 눈이 많으니 얼른 이동하시죠."
고개를 끄덕인 블랑카는 남성의 뒤를 졸졸 쫓았다.
맹세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스포츠카 앞에 선 블랑카는 손을 내미는 젊은 남성에 행동에 얼른 손을 맞잡았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여권이요."
"아! 여, 여기 있습니다!"
"들으셨다시피 여권은 저희 업체와 계약이 만료될 때 돌려 드릴 겁니다. 기껏 일자리를 알선해 줬는데, 도중에 도망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관광 비자죠?"
"예, 예. 들었습니다. 네, 관광 비자입니다! 그런데……."
"반년 열심히만 일하면 100퍼센트 취업 비자 따게 해 드릴 테니까 그 점은 걱정 마세요."
"가, 감사합니다!"
"수수료가 매달 받는 월급의 10퍼센트라는 건 들으셨을 테고."
블랑카는 이 부분에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한국에 먼저 온 친구에게 듣기로 이런 브로커들이 떼어 가는 수수료는 적게는 30퍼센트, 많으면 40퍼센트까지 떼어 간다고 했다.
그래도 방글라데시에서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이 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 행운을 잡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럼 뭐 얼추 서로 알아야 할 건 다 알았나?"
스스로 질문하고 고개를 끄덕인 젊은 청년은 무전기를 들었다.
"오늘 올 사람 다 왔으니까 이만 출발합시다."
‘응?’
부르릉! 부르릉!
갑자기 불이 켜지는 두 대의 승합차.
젊은 청년은 당황하는 블랑카를 툭 쳤다.
"당신은 이거 타요. 저기는 탈 자리 없을 테니까."
"아, 네네!"
스포츠카에 겨우 구겨 탄 블랑카는 살다 보니 스포츠카도 타 본다며 놀랐지만, 그가 놀랄 부분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과르릉!
"내려요."
"여, 여긴?"
병원이다. 그것도 제법 큰 병원.
"당신 몸에 무슨 병이 있을지 모르잖습니까. 일하는 도중에 병에 걸려 자빠지면 우리도 손해라. 건강검진 한번 받고 갑시다."
"예?"
그렇게 건강검진도 받고, 예방 주사도 맞은 후 10층짜리 빌딩 앞에 도착한 블랑카는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였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오셨습니까!"
불이 켜진 로비를 바쁘게 돌아다니다 젊은 청년을 발견하곤 다급히 허리를 숙이는 덩치 큰 사내들.
‘싸, 싸장님?’
한국에 먼저 온 친구가 이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면서 알려 준 단어를 떠올린 블랑카는 아연실색하며 젊은 청년을 봤다.
그 시선을 느낀 젊은 청년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씩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서로 인사를 안 했네요. 인터내셔널 잡의 사장 최종혁입니다. 다시 한번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랬다. 그는 종혁이었다.
* * *
"뭐? 그런 일이 있다고? 그걸 왜 지금 말해, 새끼야! 알았어, 끊어!"
대장의 고함이 울려 퍼지자 본청 광역수사대 형사들 전원 그를 쳐다본다.
그에 광수대 대장은 담배를 빼물었다.
"뭔 일이에요?"
"하, 참. 나 원 씨발."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소식.
"어떤 미친 또라이 새끼가 브로커 놈들을 잡아먹고 있단다."
"예?"
"어떤 놈이 대한민국 음지에서 기어다니는 일자리 알선 브로커들을 30퍼센트나 잡아먹었다고!"
"……예?!"
"씨발?!"
화들짝 놀랐던 광수대 형사들은 이마를 잡았다.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외노자 일자리 알선 브로커들.
뽑아도 뽑아도 자라나는 잡초라서 여태껏 별일이 아니라면 가만히 방치해 뒀는데, 주제도 모르고 세력을 이뤘다고 한다.
이젠 옛말이 된 전국구 조직이 새로 탄생했다고 봐야 한다.
"시발, 집에 다 갔네."
"아, 이 새끼들은 왜 갑자기 나타나서 지랄이야!"
일단 놈들이 어떤 성향인지, 뭘 지향하는지, 어떤 불법을 저지르는지 알아내기 전까진 집에 다 갔다고 봐야 했다.
‘하, 씨발. 사건 밀려서 걔들까지 신경 못 쓰는…….’
쿵쿵쿵!
사무실 문이 두드려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광수대 대장은 눈을 껌뻑였다.
"김 과장?"
"바쁘지 않으면 커피나 하자."
"……아, 뭐 그래."
광수대 대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김종두 과장을 따라 옥상으로 향했다.
"그래서 뭔데."
"방금 그거 무시하라고."
광수대 대장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뭘 꾸미는 거냐? 대체 뭘…… 너 혹시 네가 먼저 물었으니까……."
"그거 종혁이가 작업하는 거야."
"아……."
종혁이. 광수대 대장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납득을 해 버렸다.
"왜?"
"행방을 감춘 살인 용의자인 외노자 하나 찾자고."
‘미친!’이라는 비명이 목구멍까지 솟다가 가라앉았다.
"……진짜 나 주면 안 될까? 내가 우리 애들 다 줄게. 매스컴 탈 사건도 내가 다 팍팍 밀어준다!"
"꺼져."
"너랑 나랑 청장 놓고 겨뤄도 포기할게! 각서 쓸까? 내가 비상금 어디 숨겼는지 말하면 돼? 응?"
"간다."
"야, 진짜 이러기냐! 야, 김 과장! 김 과장-!"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 * *
한껏 위축된 모습으로 입국을 했던 블랑카.
건강검진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관광도 하고, 빌딩 내에 있는 PC방에서 가족들과 화상채팅도 한 그는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자 가슴 깊은 곳까지 차오르는 아쉬움에 연신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한국에서 큰돈 벌어 가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사고 치시거나 힘들 땐 언제든 연락 주시고요. 그리고 저희 회사 많이 홍보해 주시고요."
홍보. 이게 중요하다.
그래서 종혁은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블랑카는 눈물만 글썽일 뿐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떠나올 때까지만 해도 참 걱정했던 한국행.
이젠 제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이들이 있기에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블랑카뿐만이 아니다. 오늘 전국 각지로 흩어질 외국인 노동자들 모두 똑같은 심정이었다.
종혁은 눈빛이 단단해지는 그들의 모습에 싱긋 웃으며 성철직업알선소의 박 사장, 아니 이젠 인터내셔널 잡의 전무가 된 박성철을 봤다.
"부탁합니다, 박 전무."
"걱정 딱 붙들어 매쇼잉. 내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랑께. 그럼 다녀올께라!"
"예. 안전운전 하세요. 돌아오면 한잔하고요."
"허허. 싸게싸게 다녀 오겠당께요!"
종혁은 로비를 빠져나가는 그들을 흐뭇이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장님."
"뭘요. 다 저희의 소중한 고객인데요."
"크으. 역시 그 전문적인 경영인 마인드! 대단하십니다!"
아부가 아니다. 그는 진심이었다.
대전 일대에서 관리하던 외국인 노동자만 50명을 넘겼던 그, 김 부장.
종혁에게 늘씬 맞아 휘하로 들어오게 된 후 그는 별세계를 맛보게 됐다.
노비나 짐승 따위로 치부했던 불법 체류자들을 약간 대우해 줬을 뿐인데, 도주나 농땡이가 사라졌다. 사고도 안 친다.
그렇다 보니 공장이나 업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내던 클레임이 사라진 것도 모자라 너도나도 보내 달라고 난리다.
거기다 관리하는 숫자가 엄청나다 보니 버는 수익도 단위가 달라졌다.
그가 가져가는 인센티브도 종전보다 높은 수준.
‘이래서 장사도 소질 있는 사람이 하면 다르다고 하는구나!’
종혁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그를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이딴 놈에게 이런 소리 들으려고 한 짓이 아닌데…….’
그래도 어쩌겠나. 일을 벌인 이상 감당해야 될 업보다.
그때였다.
"다 같이 죽자, 이 씨벌 새끼들아! 여기 사장 나오라고 해-!"
로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외침.
한 10명 정도 되는 덩어리들이 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로비를 지나던 사람들은 또 왔구나, 어디서 개가 짖냐 한심하게 쳐다보거나 비웃음을 터트렸다.
거의 3일에 한 번씩은 이런 놈들이, 10퍼센트 수수료를 고집하는 그들 때문에 장사 접은 브로커들이 찾아왔기에 이젠 거의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찾아와 난동을 피웠고, 그러다 죽어라 처맞은 뒤 인터내셔널 잡에 입사를 하거나 검찰에 넘겨졌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사장님!"
"됐어요. 그 나이에 뼈 부러지면 잘 안 붙습니다. 그냥 오택수 경호실장님 부르고, 로비 문이나 걸어 잠가요."
"옙!"
종혁은 넥타이를 풀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한편 블랑카는 박 전무를 따라 울산의 한 공장에 도착했다.
"아이고, 박 전무님!"
"잘 계셨어라, 싸장님. 이짝이 싸장님이 말한 인재. 대학물 먹은 양반이라 일머리가 좋을 거랑께요."
"내가 인터내셔널 잡을 못 믿겠습니꺼? 이번에도 좋은 일꾼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데이. 그란데…… 앞으로도 문제없는 거 맞지예?"
"왜요. 우리가 허벌나게 잘 나가븐께 걱정되어라?"
"그게 이렇게 사업이 크면 경찰이라든지 검찰이라든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예?"
"으하하하핫! 아따 걱정 마쇼잉. 우리 싸장님이 우떤 양반인디."
경찰이다. 그것도 본청 경찰이다.
아무리 몸집을 키워도 잡혀갈 걱정은 없었다.
"하여튼 그란 게 있응께 우리 강 싸장님은 걱정 콱 붙들어 매고 사업 번창할 생각이나 하쑈!"
"음. 그럼 계속 믿고 부탁합니데이?"
"아따, 내가 더 부탁해야지라!"
악수를 나눈 박 전무는 블랑카를 봤다.
"어이, 블랑카! 일 열심히 하고, 뭔 일 있으면 연락혀. 다음에 보드라고."
"아, 안녕히 가세요!"
"그려어. 굿 빠이! 씨 유 넥스트!"
그렇게 멀어져 가는 박 전무를 응시하던 블랑카는 가자는 공장 사장의 말에 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첫날부터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돌아온 그는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야 했다.
‘아, 신고식이 있는 건가…….’
블랑카는 울컥 차오르는 두려움에 방어 자세를 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봐, 블랑카. 당신 정말 인터내셔널 잡을 통해서 왔어?"
"어?"
가쁘게 터져 나오는 영어에 블랑카는 눈을 껌뻑였다.
"정말 거기 수수료가 매달 10퍼센트밖에 안 돼? 건강검진도 해 주고, 백신도 맞게 해 줘?"
"내 말이 맞다니까!"
"당신은 좀 닥쳐 봐, 거짓말쟁이!"
"뭐 인마?!"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상황 파악을 끝낸 블랑카는 히죽 웃었다.
"그것뿐이겠어요? 관광도 시켜 주고, 나중에 가족이 나 만나러 한국에 올 수 있으면 내가 받은 서비스를 똑같이 해 준다고 약속했어요. 취업 비자도 받게 해 준다고 했고요."
그뿐만 아니다. 가족 중 한국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은 주방 찬모나 홀 서빙, 외국어 자격증이 있으면 통번역이나 학원 강사 등 그리 힘들지 않은 직종에 취직시켜 준다고도 했다.
"뭐?! 진짜?!"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쥐가 나올 것처럼 허름하고 더러운 숙소가 조용해졌다.
"그, 그럼 우리도 거기 통해서 일할 수 있어? 브로커 옮겨도 괜찮을 수 있어?"
블랑카는 간절히 쳐다보는 그들의 모습에 종혁이 한 말을 떠올렸다.
‘홍보를 해 달라고 했지?’
무슨 의도로 그렇게 말한지 모른다면 바보다.
자신 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종혁은 돈을 더 많이 벌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내려야 할 결론은 하나다.
"연락처 드릴까요?"
"나, 나도!"
"나도!"
블랑카는 너도나도 손을 드는 사람들을 보며 푸근히 웃었다.
‘이렇게라도 은혜 갚을게요, 싸장님. ……우리 싸장님.’
그리고 이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 * *
화려한 사무실, 독일에서 직수입한 고급 원목 책상에 앉아 이번 주 결산 내역을 살피던 종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소개비를 줄인 업주들이 있네요?"
보통 이쪽 업계에선 외국인들에게 월급 중 일부를 알선 수수료로 받는 한편, 업주들에게도 외국인을 소개시켜 준 대가를 받는다. 이를 보통 소개비라고 한다.
"이유는 알아봤습니까?"
"뭐 언제나 똑같은 개소리죠."
외국인을 한껏 부려 먹어 돈을 벌어 놓고는 막상 소개비를 줄 때가 되니 돈이 아까운 것이다.
"앞으로 파견시키지 않으면 땡이니까 사장님은 너무 걱정 마십시오!"
별일 아닌 듯한 모습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런 업주들은 재깍재깍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파견 나간 분들은 회사로 불러 올려서 케어 좀 해요. 이런 이기적인 업주 밑에서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아이고, 사장님. 제가 누차 조언을 드리는 거지만 이런 외국인 놈들은……."
"전 상무."
순간 종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내가 부탁하는 걸로 보여?"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종혁에게 꺾였던 팔꿈치가 시큰거리며 아파 오자 그의 등골이 식은땀을 토해 냈다.
"후우. 전 상무님."
"예! 사장님!"
"잘합시다."
"예, 옙!"
"나가봐요."
"사랑합니다, 사장님!"
허리를 꾸벅 숙인 그는 사장실을 빠져나갔고, 종혁은 닫히는 문을 싸늘한 눈으로 쳐다봤다.
"저 새끼도 슬슬 정리해야겠네."
그동안은 그가 가진 노하우와 인맥이 필요해서 데리고 있었던 것뿐이지, 계속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혀를 찬 종혁은 탑처럼 쌓인 서류들을 옆으로 밀어내며 마우스를 잡았다.
"오늘은 몇 명이나 이직을 해 왔으려나?"
‘오늘은 부디 있기를.’
벌써 이 짓만 세 달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꼬리를 드러내지 않는 놈의 실체에 슬슬 짜증이 났다. 마음 같아선 다시 발로 뛰고 싶은 기분.
하지만 참아야 했다. 이게 가장 빠른 길이기에 참고 견뎌야 했다.
"후우. 음?"
이직 명단을 살피다 고개를 모로 기울인 종혁은 재빨리 하나의 파일을 켰다. 그리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 이거지!"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터트린 종혁은 다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예에…… 청소과 대리 최재수…….
"최 대리, 떴다!"
-……!
드디어 떴다.
83명 중 무려 다섯 명이.
수사에 진전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