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95화>
어느덧 봄이 찾아왔다.
거리엔 개나리, 진달래와 함께 웃음꽃이 피고, 사람들은 꽃을 찾아 봄나들이를 떠나는 따뜻한 봄이 왔다.
하지만 삼전그룹의 회장실은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은지 지독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이 회장실의 주인인 김희건 회장 때문이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의 기업, 삼전그룹.
눈앞에 도열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진들을 서늘히 바라보던 김희건 회장이 입을 열었다.
"찾았어?"
무려 약 2조 원의 수주를 중국에서 받으며 그룹 전체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2조 원의 건설 수주는 시작일 뿐, 핸드폰 공장 설립과 핸드폰 및 가전 수출 등으로 앞으로 이어질 호재에 전 직원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뜨겁던 열기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주가의 25퍼센트가 고작 열흘 만에 날아간 탓이었다.
"그, 그게 미국과 러시아가 범인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랬다. 이번 주가 증발 사건의 주범은 미국과 러시아였다.
그중 미국은 2001년 닷컴 버블 때 갑자기 월가에 나타나 공룡이 된 기업들이며, 삼전의 투자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투자금을 회수하고, 러시아가 배후로 있는 걸로 예상되는 곳들이 공격해 왔다.
"못 찾았다는 소리군."
호재만 가득했던 삼전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갑자기 자금을 뺄 이유가 없거니와 국제 정세나 미국과 러시아 정세상 모두 갑자기 돈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도 난데없이 공격이 들어왔고, 삼전은 방어조차 제대로 못한 채 탈탈 털려야 했다.
만약 삼전그룹만 털렸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을 거다. 주식 판에서 이런 일이야 비일비재하니까.
너무 갑작스러웠는지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뿐, 잃어버린 주가는 얼마든지 다시 복구할 수 있다.
다음에 이런 공격이 들어오면 막아 낼 거다.
김희건 회장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다만 그때까지 그룹 내의 자금이 원활하게 돌지 못해 중국에서 벌일 일에 차질이 생긴다는 게 뼈가 아플 뿐이었다.
탄력을 받아 대현과의 격차를 더 벌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게.
그런데 대현까지 털렸다. 대현그룹과 대현자동차그룹 둘 모두. 그쪽은 무려 27퍼센트와 23퍼센트다.
여기서 문제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기업 중 삼전과 대현만이 털렸다는 점이다.
‘이건 세력이 한 짓이다!’
누군가, 어떤 세력이 지독한 악의를 품고 삼전과 대현을 공격한 거다. 그리고 적당히 이득을 취한 뒤 여유롭게 돌아간 거다.
더 공격할 수 있음에도 마치 자비를 베풀었다는 듯.
그들 월가의 투자 기업들도 자신들의 뜻이 아니었다고 피력했지 않은가.
김희건 회장은 이를 악물었다.
‘감히!’
"권&박은 알아봤어?"
"예? 갑자기 거긴 왜……."
"그야……."
‘최종혁.’
권&박 홀딩스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청년이 바로 경찰이다. 김희건 본인이 얼마 전 중국의 일 때문에 직접 압력을 넣었던 경찰청장과도 밀접한 청년.
그리고 갑자기 실각해 버린 장쑤윈.
알아보니 경찰청장에게 압박을 넣으면서까지 빼내려 했던 장웨이란 범죄자가 다 불었다고 한다.
다행히 담당이 바뀌었어도 거래의 주체만 바뀌었을 뿐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이 네 가지가 버무려지니 뜬금없어도 그런 결론이 나왔다.
노회한 사업가의 감은 아주 날카로웠다.
하지만.
"권&박 홀딩스가 그런 사이즈가 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권&박 홀딩스는 1997년 IMF 때와 러시아 모라토리엄 때 반짝였던 회사로, 그 정도의 역량을 갖춘 곳은 아니었다.
실제로 미국 닷컴 버블 때 제대로 된 재미를 못 봤다지 않던가.
‘혹여 명동의 돈 귀신, 권 노인이 도왔다고 해도 이번 일은 힘들지.’
금융실명제 발표 이후 강제적으로 은퇴당한 명동 밤의 황제.
김희건 그 역시도 그에게 돈을 빌린 적이 있고,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김맹철도 쩔쩔맸던 인물이지만 지금은 거지들이나 돕는 이빨 빠진 호랑이다.
‘그럼 대체 누구인 거야!’
다시 열이 오른 김희건 회장은 중진들을 죽일 듯 노려봤다.
"찾아. 알았어?"
"예!"
김희건 회장이 분노하는데 이 외에 다른 답을 할 수 있을까.
김희건 회장은 우르르 빠져나가는 중진들을 보며 혀를 찼다.
"돈만 축내는 밥버러지들."
정리하고 싶지만 삼남이었던 그가 회장 자리에 앉을 때 도운 이들이기에 혀를 차던 그는 한숨만 뱉었다.
"……정말 누구인 거야?"
그는 답답한 마음에 올해엔 꼭 끊겠다 다짐한 담배를 물었다.
그건 대현그룹과 대현자동차그룹의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그런 그들이 찾는 종혁과 박태규는 권&박 홀딩스의 사무실에서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후루룩! 후루룩!
"어흐! 잘 먹었다."
세 그릇의 짜장면 곱빼기와 두 그릇의 짬뽕 곱빼기를 모두 비운 종혁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다.
"아, 이집 잘하네. 홍궁이라고요?"
"체인인데, 맛이 좋아 종종 시켜 먹습니다."
"체인이요? 하, 이런 맛집은 꼭 내 주위에만 없지."
"하하."
농담이라는 듯 같이 웃은 종혁이 눈을 빛낸다.
"그보다 삼전과 대현의 반응은 어때요?"
"어떻긴요."
박태규의 미소가 짓궂어진다.
"어제 삼전의 회장실에서 고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저희를 찾으라고요."
"그래요? 하지만 못 찾잖아요."
"당연히 그렇죠?"
삼전, 아니 삼전 할아버지가 와도 이젠 절대 못 찾는다. 종혁 본인이 권&박 홀딩스의 진짜 주인임을 아는 미국과 러시아가 입을 열지 않는다면.
중국 음식 때문에 느끼해졌던 속이 갑자기 시원해진 종혁은 배를 쓸어내리며 거하게 트림을 했고, 박태규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눈이 마주친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주가가 떨어지는 걸 보니 수익이 엄청 났겠던데……."
"두 기업, 아니 세 기업의 시총 검색은 안 해 보셨습니까?"
"할 필요가 있나요?"
그 오만한 말에 박태규는 역시 종혁답다며 실소를 터트렸다.
"바이 차이나 프로젝트에 꽤 도움이 됐다고만 아시면 됩니다."
바이 차이나.
미국, 러시아, 그리고 권&박 홀딩스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도움이 필요할 땐 적극 돕기로 암묵적으로 협의한 작전의 이름이다.
"안 그래도 아르헨티나 투자와 병행을 해야 되다 보니 가용 가능한 자금이 적었는데 잘된 일이죠."
"오? 그 정도예요?"
종혁은 조소를 지었다.
원래 남의 돈이었던 돈을 가지고 더 많은 돈을 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째지도록 좋아졌다.
‘이런 거라면 장웨이 정도의 범죄자는 한 번 더 송환시켜도 되겠는데?’
물론 그런 일은 앞으로 없어야겠지만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박태규는 눈을 빛냈다.
"그리고 어제 중국 전인대가 대만을 겨냥한 반분열국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종혁의 눈도 번뜩였다.
"결국 통과됐군요."
그러나 회귀 전을 생각하면 좀 늦었다고 봐야 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물어뜯기 위해서 달려들고 있는 걸 뻔히 알 텐도 통과됐다라……."
중국의 야욕이 그만큼 크단 뜻일 거다.
"보스는 중국이 어디까지 성장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종혁은 잔뜩 기대하는 박태규의 시선에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툭 뱉었다.
"G2."
"……예?"
커피가 더 있나 찻잔 안을 살피던 종혁은 눈을 부릅뜬 박태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제 예상대로라면 아마 세계 경제 순위 2위까지 치고 나갈 겁니다."
예상이 아니라 실제 벌어지는 일이다.
"무, 무슨! 정말 그렇게까지 성장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20년, 아니 10년만 지나도 세계에서 중국을 무시할 수 있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어질 겁니다. 저 미국마저도 말이죠."
블랙홀처럼 외화를 빨아들이면서 급격히 성장할 중국.
훗날 자충수를 두고 사방에 적을 만든다지만, 그래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만큼 하나 된 중국은 무서운 국가였다.
"명심하세요. 절대 그 흐름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휘말리면 이리저리 표류하다 난파될 거다.
그만큼 중국이 만들어 내는 흐름은 거대하고 격렬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말이다.
이런 종혁의 말에 박태규는 전율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가졌다.
‘만약 이번에도 보스의 예측대로 된다면…….’
박태규는 아마 종혁을 인간으로 여기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다. 인간이 아닐 것 같아서.
"걱정 마십시오. 주도하는 입장이 될 테니!"
"그래요. 그거면 됩니다. 그런데……."
"음? 더 하실 말이 있습니까?"
"저 국수는 언제 먹게 해 줄 거예요?"
"궭?!"
"어이쿠. 그런 외계어를 쓸 만큼 권 이사가 좋으세요?"
권&박 홀딩스를 함께 만들어서 그런지 한때 심상치 않았던 둘의 관계. 종혁이 파악하길 이 둘의 관계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게 쿨룩, 쿨룩! 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그런 말 마십시오! 어디 그런 사나운 여자랑! 장가길 막힙니다!"
"흐응……."
‘이제 그만 좀 서로의 감정을 인정했으면 좋으련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지치는 둘의 관계.
하지만 자칫 무리하게 연결시키려다 둘 모두 잃을 수 있기에 선뜻 나설 수가 없다.
그저 될 때마다 이렇게 옆구리만 찌를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에혀. 밥도 다 먹었으니 그만 일어날게요. 다음에 봐요."
"어흐흠. 같이 내려가시죠."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박태규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럼 가 볼게요. 들어가 보세…… 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종혁은 옆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여성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박태규는 그런 종혁의 모습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현지 씨를 알아?"
직원들이 많은 로비이기에 반말을 하는 그.
종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안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죠."
아니, 안다.
중앙지검에서 명예 수사관으로 일할 때 처음으로 해결한 동출이파 사건.
동출이파의 마수에 걸려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억지로 몸과 웃음을 팔아야 했던 여성들 가운데 리더 격이었던 여성이다.
"저분 여기서 일해요?"
"일하다 뿐일까. 현재 부동산투자 사업부 총괄이야."
종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렇게 젊어 보이는데요?"
"젊은데 부동산 보는 감각이 엄청나거든."
2002년 혜성처럼 지방 부동산 업계에 등장해 2004년 권&박 홀딩스에 스카우트를 될 때까지 그녀 개인이 보유한 부동산 가치가 무려 200억 원.
그녀가 정말 대단한 점은 중소 기업의 경리나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으로 아득바득 모은 1억을 들고 이 바닥에 뛰어들어 그런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겨우 2년 만에 200배 수익. 주식이라면 모를까 부동산에선 거의 불가능한 수익률이었다.
"아!"
‘그 이현지가 저 이현지였나!’
회귀 전 보유한 건물이나 아파트가 거의 만 채에 가까웠다는 입지적인 인물이자, 부동산에선 김우중 회장을 제외하면 감히 따를 존재가 없다던 거물 이현지.
"대, 대체 어떻게 스카우트를 한 거예요?"
"권 이사가 돈은 무한대로 줄 테니 부동산 시장을 먹어 보라고 했다던데?"
순이익의 20퍼센트를 주겠다는 말로 꼬드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말을 하던 박태규가 흐뭇이 웃는다.
"우리 회사의 부동산 자산이 5배가량 늘어났지."
이미 어마어마했던 권&박 홀딩스의 부동산 자산이 5배나 늘어났다. 이게 그녀가 스카우트된 지 고작 1년 만에 이뤄 낸 성과였다.
"또 마침 정부의 헛발질 때문에 보유 부동산의 값이 나날이 치솟는 중이고."
정책 실패로 인한 부동산값 상승.
단순한 예로 재작년까지만 해도 1억이면 샀던 아파트가 지금은 1억 5천만원을 주고도 못살 정도다.
아마 이 열풍이 가라앉을 때쯤이면 부동산 투자 파트는 권&박 홀딩스에 없어선 안 될 든든한 기둥이 될 터였다.
그 전에 권력자들이 욕심을 내지 않도록 여러 작업을 해 놔야겠지만 말이다.
"아마 현지 씨도 이 정책이 실패할 걸 예상했기 때문에 스카우트된 걸 거야."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개인으로선 크게 먹을 수 없는 판.
영특한 여자였다.
"아."
좋다. 길을 걷다가 주인이 없는 1000억짜리 무기명 채권을 주우면 이런 심정일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대단한 분이네요. 지원을 아끼지 말아 봐요. 예상보다 더 클 수 있으니까."
"그런 건 걱정 마라. 그럼 가. 얼른 가서 이 나라의 치안을 지켜야지."
"하하. 예. 삼촌도 수고하세요. 충성."
"그래. 나도 충성."
그렇게 권&박 홀딩스를 빠져나와 차를 세워 둔 주차장으로 향하던 종혁은 돌연 멈춰 서며 웃음을 흘렸다.
"다행이네."
그녀가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망가졌음에도 끝내 다시 일어서다 못해 자신만의 길을 걷는 모습이 참으로 기껍다.
"그때도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종혁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차에 올랐다.
들을 것도 들었으니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때였다.
-지치고 힘들 땐…….
핸드폰이 울리며 익숙한 이름이 발신자로 표시된다.
언제 봐도 반가운 이름.
"예, 여보세요!"
-아, 거기 최종혁씨 전화 맞습니꺼?
‘응?’
의아해하던 종혁은 피식 웃으며 장단에 맞추기로 했다.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내 중앙지검의 강철선이란 검사인데, 살아는 있어예?
"네, 살아 있습니다."
-참말입니꺼? 그럼 그럴 리가 없는데…….
"왜요?"
-갸가 살아 있다면, 갸도 사람이라면 이리 연락을 안 할 수 있겠습니꺼?
"푸핫! 왜 그러세요. 얼마 전 명절에도 봤잖아요."
-그건 그때고, 이 문디 자슥아-! 니 진자 혼나고 싶나! 사건을 넘길 거면 으이?! 찾아와서 아버님, 이거 쪼매 잘 봐주이소 해야 될 거 아이가! 어디서 배워 먹은 버르장머리고-!
강철선은 경찰이 되더니 버릇이 나빠졌다고 툴툴거렸다.
"푸흐흐. 그래서 삐지셨어요?"
-모른다, 이 문디 자석아!
"흐흐흐. 삐졌네. 에고, 우리 아버님 삐져서 어떡해요?"
-콱 마…… 됐고, 밥 뭇나? 안 묵었으면 같이 뭇자. 넘어와라.
"음? 이 시간에요?"
시간을 확인한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벌써 오후 3시다. 제아무리 바쁜 검사라고 할지라도 벌써 밥 먹었을 시간이다.
-오면 이야기할게. 퍼뜩 넘어오래이.
"……호오."
사건이다.
눈을 빛낸 종혁은 서울중앙지검을 향해 차를 출발시켰다.
* * *
"어? 최 선수? 이야, 오랜만에 보네?"
"요즘 잘나가더라? 이제 그만하고 검찰로 턴해!"
"아하하. 잘 계셨죠? 김 검사님, 박 검사님? 앗! 최 검사님!"
"확 마! 다들 눈 안 돌리나! 내 거다!"
독 오른 살쾡이가 따로 없는 강철선의 반응에 검사들이 도망치듯 사라지자, 씩씩거리던 강철선이 돌연 종혁의 목을 졸랐다.
"야, 이 문디 자슥아! 거가 어디라고 가노! 거가! 니 몸이 뭔 강철인 줄 아나-!"
"케엑! 탭! 탭!"
"내가 파일 보고 얼매나 놀랐는지 아나-!"
이번 서울경기 이십대 여성 실종 사건에서 놈들의 아지트 창고의 문을 차로 뚫고 들어간 종혁.
그 사건 현장 사진에 달린 주석을 본 순간 강철선은 마시던 커피를 뿜어야 했다.
"태앱!"
종혁을 노려보다 손을 푼 강철선은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냈다.
"하이고, 인마야. 내가 니 때문에 수명이 준다, 줄어. 니 이래 혼날 것 같아서 파일만 던지는 기가?"
"에이. 형사 일이 다 그렇죠."
"그래서 잘했다는 기가?"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선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었다.
돌연 진지해지는 종혁의 모습에 강철선은 굳어 버렸다.
맞다. 형사라면 종혁의 말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아들처럼 생각하는 종혁이라서 걱정이 먼저 들 수밖에 없었다.
종혁은 화 풀라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강철선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래. 내가 이놈아를 우에 말리겠노.’
예전에도 못 말렸다.
피식 웃은 강철선은 이내 종혁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거 옆에 해 봐라. 어, 거."
"여기요? 시원하세요?"
고개를 끄덕이던 강철선은 이제 됐다며 종혁의 손을 두드렸다.
그러곤 손수 커피를 타와 종혁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그래. 마이 무라."
씩 웃으며 커피잔을 들던 종혁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사건인데요?"
"……좀 묵고 이야기하믄 안 되나?"
종혁은 강철선을 빤히 응시했다.
가족에 관한 일이 아니고선 여태껏 뭔가를 부탁할 때 이렇게 뜸을 들인 적이 없는 강철선이다.
사건은 더더욱 맡긴 적이 없다. 중앙지검에서 명예 사무관으로 일할 때도 종혁이 뭔 일을 하면 혼을 먼저 냈던 그.
물론 덕분에 사건이 빨리 해결돼서 좋아한 적은 있어도 그런 걸 바라며 일을 시킨 적은 없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뜸을 들일 일이라면 정말 골치 아픈 사건이라는 거다.
"하아. 문디 자슥."
강철선은 밑에 뒀던 서류 가방에서 얇은 파일 하나를 꺼내어 넘겨줬다.
그 첫 장을 넘긴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살인 사건? 재작년에 일어난 사건이네요?"
지방 한 공단의 외각에서 여고생이 살해됐다.
살해 도구는 발견됐으나, 범인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은 상황.
‘확실히 골치 아픈 사건이긴 한데…….’
형사부 부장검사인 강철선이 챙길 만한 사건이 아니다.
종혁은 그런 의도를 담아 그를 봤고, 강철선은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피해자가 내 은사의 손녀데이."
일단 거기까지 말한 강철선은 담배를 물었다.
치이익.
타들어 가며 잿빛으로 물드는 담배처럼 강철선의 눈빛도 흐려진다.
"참 마이 맞았제. 자갈치 시장 아지매 아들로 쥐좆도 없이 태어나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겠다고 만날 대거리만 하고 다니던 문디 자슥을 사람 만들겠다꼬……."
정말 많이 맞았다. 그 선생님은 쫓아다니면서 때렸다.
하지만 그 선생님 덕분에 결국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결국 한국대 법대에 입학해서 이렇게 검사가 됐다.
지금의 강철선을 만든 건 그 선생님이라고 봐야 했다.
학창 시절엔 참 태산 같고, 강철로 만든 소나무 같았던 선생님.
담뱃재를 툭툭 털은 강철선은 아프게 웃었다.
"그라던 분이 얼마 전에 갑자기 연락을 해 왔는기라. 제발 우리 손녀 한 좀 풀어 달라고 울먹이면서…… 와, 딱 돌아 삘겠데?"
"그만하셔도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종혁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듯한 강철선의 손을 두드렸다.
"그때 딱 네가 생각나는기라. 이 답도 없는 사건, 가마이 두면 미제로 빠질 사건. 하루라도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놈이 누굴까 생각하이까 너밖에 안 떠오른 기라고! 그러니 종혁아, 아니 최 경위님. 내 진짜 미안하고, 죄송한데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 누구도 아닌 강철선의 부탁이다.
또 피해자의 관계자가 이렇게 진심으로 부탁한다.
강철선의 말처럼 언제 답을 찾을지 모르는 사건이라도 수사를 시작하는 데에는 그거면 충분했다.
"부탁합니더, 최 경위님. 진짜 이렇게 부탁할게요."
종혁은 고개까지 숙이는 그의 모습에 이를 악물며 파일을 챙겨 들었다.
"검사님 바람처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니 검사님께선 마음 놓으시고 다른 사건이나 해결하고 있으세요."
종혁은 미지근해진 커피를 쭉 들이켜곤 몸을 돌렸다.
"잘 마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