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93화 (19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93화>

    57. 왜 또 너희지?

    구우우웅!

    하루 온종일 울리던 뱃고동 소리마저 잠잠해지는 새벽의 인천항.

    모두가 잠든 시간이라서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마저 크게 울리는 그곳을 커다란 트레일러 세 대와 자동차 두 대가 가로지른다.

    유일하게 불이 켜진 커다란 선박 앞에 멈춰 선 차들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내려 선박을 향해 플래시 불빛을 깜빡인다.

    그러자 선박에서도 불빛이 깜빡였고, 곧 남성 다섯 명이 선박을 내려온다.

    "음? 오! 박 사장!"

    "장 사장! 니하오! 니하오!"

    "니하오!"

    양측 선두에 선 사십대 남성들이 서로를 얼싸안으며 등을 두드린다. 그리고 떨어진 사내 중 중국인 중년인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런데 유 회장은 어디 갔소?"

    언제나 유 회장이 거래를 해서인지 중국인들의 몸이 굳는다.

    "갑자기 맹장이 터져서 제가 대신 나오게 됐습니다."

    "저런. 빠른 쾌차를 비오."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물건을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흠. 원래 형제끼리는 믿는 법인데……."

    중국인의 눈이 더 가늘어지자 박 사장은 피식 웃었다.

    "회장님께서 비즈니스는 확실해야 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역시 유 회장이군. 역시 한국인은 철두철미해."

    그제야 의심을 버린 듯 씩 웃은 장 사장은 가까이 있는 트레일러의 뒤로 향했다.

    덜컹, 끼이익!

    거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컨테이너 안을 본 장 사장은 눈을 부릅떴다.

    "포, 포르쉐!"

    "그 뒤에는 벤틀리입니다."

    "베, 벤틀리! 하, 하오! 하오-!"

    장 사장의 얼굴이 흥분으로 물든다.

    "이거라면 우리 고객들도 무척이나 만족할 것이오!"

    전 세계를 상대로 시장을 개방한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중국 졸부들.

    하지만 완전한 개방이 아니라 명품 차는 물론이고, 명품 패션 브랜드 등 많은 게 없다시피 해서 마땅히 돈 쓸 곳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는 그들.

    그런 그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특상품이었다.

    장 사장은 유 회장이 나오지 않은 것 따윈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번에도 정말 수고하셨소!"

    박 사장의 손을 뜨겁게 움켜쥐었던 장 사장은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 신호에 뒤에서 걸어 나온 사내들이 양손에 든 서류 가방을 내려놨다.

    "이번에도 세탁을 모두 끝낸 한국 돈과 금이요. 확인해 보시오."

    박 사장은 뒤를 힐끔 봤고, 이내 곧 덩치 큰 사내가 걸어 나와 가방 안 내용물을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박 사장은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나도 좋은 거래였소. 아, 그런데 이제 여성들은 취급 안 하는 거요?"

    "……죄송합니다. 요새 단속이 너무 심해져서 여자 근처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저런. 한국 여자들이 예쁘고 나긋나긋해서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철컥!

    "응?"

    장 사장은 이게 뭐냐는 듯 손목에 채워진 은색 고리와 그 고리를 쥐고 있는 덩치 큰 사내를 봤다.

    하지만 정작 그가 보게 된 건 얼굴로 날아드는 거대한 주먹이었다.

    "증언 확보다, 이 짱개 새끼야."

    쩌어어억!

    장 사장의 턱주가리는 맥없이 돌아갔고.

    팡! 팡팡팡!

    웨에에에에엥!

    그들이 있는 공간에 불이 켜졌으며, 수십 대의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다에서도 해경들이 배를 몰며 선박을 향해 다가와 갈고리를 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품에서 권총을 꺼내는 박 사장 패거리. 아니,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

    "엎드려! 엎드려, 이 새끼들아!"

    "……."

    얼굴을 구긴 중국인들은 양팔을 뒤로 하며 바닥에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두 개였지만, 알고 보니 한 개였던 이번 사건.

    중요 관계자들이 모두 검거되는 순간이었다.

    *   *   *

    "왜 또 이 새끼들일까?"

    그 조직 놈들이 도망친 곳도 중국.

    아르헨티나에서 나탈리아, 헨리와 이야기를 나눈 곳도 중국.

    이번 사건의 공범도 중국이었다.

    이 정도면 중국과 뭐가 있어도 있다고 봐야 했다.

    ‘하. 중국이랑 엮여서 좋은 꼴 본 적 없는데.’

    "이거 굿이라도 해야 되나?"

    종혁은 취조실 책상의 맞은편에 앉은 장 사장이란 놈을 보며 심드렁히 말했고, 그에 장 사장은 코웃음을 쳤다.

    "뭐라는 거야? 중화어로 말해라, 자라 같은 놈아."

    빠직!

    자라. 중국에선 제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하지 말아야 할 욕이다.

    "그래. 내가 이래서 너희가 싫어. 좆도 아닌 새끼들이 대가리만 꼿꼿이 세우거든."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난 종혁은 손목을 털었다.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장 사장의 얼굴이 굳었다.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 지금이라도 날 풀어 주는 게 좋을 거야!"

    이번엔 종혁이 코웃음을 쳤다.

    "아이고. 그러세요, 선생님? 야, 내가 중국어를 다 할 줄 알거든요? 근데 하기가 싫어. 그러니 일단 맞자."

    그 말을 끝으로 종혁은 허공을 날아 장 사장의 가슴을 걷어찼다.

    퍼어억!

    취조실 밖, 종혁의 취조를 지켜보던 김종두 과장은 옆 형사를 툭툭 쳤다.

    "뭐해? 카메라 꺼."

    "아, 예."

    "그리고 종혁이 진정하면 나오라고 해. 저러다 늙은 놈 잡겠다."

    "하하, 옙."

    "하여튼 저 또라이 새끼. 저건 왜 지 나이에 안 맞게 저렇게 지랄이야?"

    꼭 사, 오십대 베테랑 형사를 보는 것 같은 느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김종두는 취조실을 빠져나갔고, 취조실 안엔 구타 소리와 비명 소리만 울려 퍼졌다.

    "아오, 독한 새끼."

    피투성이가 된 주먹을 씻던 종혁이 혀를 찬다.

    입을 열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만큼 팼는데도 입을 꾹 다문다. 제대로 된 독종이란 뜻이었다.

    결국 알게 된 건 서울경기 지방에서 여성들을 납치한 놈들의 범행 수법뿐이다.

    여성들을 납치해 클로로포름 같은 마취제로 기절시킨 후, 정비소에서 빠르게 굳는 페인트로 차량을 도색하거나 래핑을 벗긴 후 번호판까지 교체해 유유히 사라진 놈들.

    ‘이러니 놓칠 수밖에 없었지.’

    혀를 찬 종혁은 다시 장 사장이란 놈에 대해 생각했다.

    "문신을 보면 그쪽 애들이 확실한데……."

    팔뚝에 있던 검은 뱀 문신.

    중국의 악명 높은 조직, 흑사회다.

    하지만 이게 참 웃긴 게 이 흑사회는 어느 특정 조직을 일컫는 단어가 아니다.

    땅이 넓기가 미친 듯 넓은 중국.

    사천 성도에도 흑사회가 있고, 청도섬이나 흑룡강성에도 흑사회가 있다.

    그냥 각 성마다 흑사회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 모두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각자 별개의 조직이다.

    "말투를 들어 보면 광동 쪽인데……."

    놈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런데 이렇게 장 사장이란 놈이 버티면 버틸수록 팔려 간 이십대 여성들을 찾기가 요원해진다.

    어떻게든 장 사장의 입을 열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뿌드득!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

    일단 놈을 잡은 이상 시간은 많다.

    종혁은 그동안 이놈이 계속 입을 다물 순 없을 거란 것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굳게 다짐을 한 종혁은 손에 흥건한 물기를 털며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때였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송환이라니요!"

    듣는 순간 불길함이 가득 느껴지는 단어, 송환.

    종혁은 눈을 부릅뜨며 일어나 있는 김종두를 봤다.

    "부청장님! 부청장님! 이런 씨발……!"

    전화기를 집어 던진 김종두는 씩씩거리다 종혁을 발견하곤 얼굴을 구겼다.

    "야, 최종혁!"

    "……예!"

    둘은 바닥을 박차며 경찰청장실로 향했다.

    *   *   *

    뻐엉!

    "안 된다니까요!"

    경찰청장실의 문을 걷어차며 난입한 간 큰 놈이 누군가 해서 고개를 들었던 최기룡 청장은 한숨을 폭 내쉬며 둘을 말리는 경찰에게 손을 저었다.

    "커피 마실래, 녹차 마실래?"

    "청장님!"

    "일단 진정하고 앉아."

    종혁과 김종두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소파에 앉았고, 최기룡은 커피 세 잔을 손수 탔다.

    곧 청장실에 달콤한 커피 향이 가득 찼다.

    그들의 맞은편에 앉은 최기룡은 얼굴을 구겼다.

    "일단 나도 지금 이 상황이 정말 좆같으니까 잔말 말고 들어. 특히 최종혁. 종부님께 이르면 너 죽고 나 죽는 거다."

    화가 잔뜩 난 그의 얼굴에 종혁과 김종두의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대체 뭐 때문입니까?"

    "뭐겠냐. 딜이 들어온 거지."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핫라인입니까?"

    "그럴 리가. 뭔 정치 서열 오십 몇 위라는데…… 이 양반하고 우리나라 대기업들하고 좀 얽힌 게 있나 봐."

    "……설마 공장이나 플랜트 수주 같은 게 얽힌 겁니까?"

    "뭐 그런 거겠지. 일단 나 방금 전에 삼전 회장이랑 대현 회장에게 전화 받았다."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삼전이랑 대현?’

    "아, 이거 개 같네?"

    ‘그냥 망하게 해 버릴까?’

    둘 모두는 힘들겠지만, 하나 정도를 망하게 하는 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숨기고 있던 진실이 모두 드러날 테지만 말이다.

    "씁. 나 청장이고, 어른이다."

    "……아, 죄송합니다."

    "이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게 경제 원조를 받던 새끼들이 많이 컸네요."

    김종두가 툴툴거리자 최기룡은 씁쓸히 웃었다.

    "대가리 수가 어마어마하잖냐. 아무튼 이렇게 됐으니까 둘 다 좀 이해는 하자. 그리고 특수에서 특진할 사람 3명 뽑고. 김 과장이랑 최재수 순경 빼고 3명이야. 종혁이 넌 내년에 진급이니까 좀 참고."

    최기룡 청장은 이번 사건의 사안이 워낙 크기도 했고, 그동안 특수범죄수사과가 해결한 대형 사건이 많았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종혁과 김종두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꼭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것 같지 않은가.

    아니, 그게 맞았다.

    ‘누가 이딴 일로 진급시켜 준다면 좋아할 줄 알고?!’

    그 어떤 형사라도 좋아하지 않을 일이다. 그게 설혹 특진 대상자라도.

    "그럼 피해자들은요?"

    종혁은 눈을 번들거렸다.

    놈을 송환시키는 거 참을 수 있다. 거국적인 일이라니 어떻게든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고통 받으며 경찰을 기다리고 있을 피해자들은요! 그 사람들을 포기하자는 겁니까?!"

    김종두도 눈을 번들거리며 최기룡을 노려봤다.

    그에 최기룡은 이를 드러냈다.

    "나 못 믿냐, 새끼들아?"

    심장이 떨릴 만큼 분노 어린 음성.

    "그쪽에서 책임지고 찾아서 돌려보내 준다고 했으니까 걱정 마! 그게 아니었으면 나도 이런 거 허락 안 했어! 왜 이래?!"

    짜증이 가득한 일갈이 경찰청장실을 꿰뚫자 종혁과 김종두의 입은 다물어졌다.

    "어흠. 뭐, 그런 거라면……."

    보내도 된다.

    김종두의 입술이 꿈틀거린다.

    특진이다. 이제야 그 기쁨이 치솟는다.

    그러나 종혁은 조심스러웠다.

    "피해자들 송환 후에 놈을 송환하는 거죠?"

    중국이라면 보내 준다고 해 놓고 입을 닦을 수도 있다.

    "그래! 이제 됐냐?! 이 새끼들, 가만 보면 날 뭔 호구 병신으로 보더라? 야, 이 개새끼들아!"

    됐다. 그거면 이 끓는 속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어흠. 그럼 수고하십쇼! 가, 가자."

    "충성!"

    "이젠 봐도 밖에서 보자. 제발이다, 이 문둥이 잡것들아!"

    "충성."

    혹여 찻잔에 맞을까 황급히 경찰청장실을 나온 둘은 옥상으로 향했다.

    "하……."

    "후우……."

    둘은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피해자들도 온전히 돌아올 거고, 자동차도 돌아올 테고, 특진도 하지만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 이유는 결국 장 사장이란 놈을 풀어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형사 생활을 하다 보면 참 많이 겪게 되는 이런 상황.

    그렇게 많이 겪었으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러지 못하는 건 고통받고 망가진 피해자들 때문일 것이다.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가슴이 답답해 담배를 피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건 김종두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 씨, 안 되겠다. 야, 그 새끼 얼마나 팼냐?"

    "죽으면 안 되니까 적당히 팼어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죽여 버릴걸."

    "오케이. 넌 좀 머리 식히고 와라. 그 새낀 내가 죽여 버릴 거니까."

    특진은 특진이고, 이건 이거다.

    몇 대 팬다고 해서 결정된 진급이 없어지진 않는다.

    "피해자들 귀국할 때까지 시간 좀 걸릴 테니까 적당히 패세요."

    "걱정 마, 인마. 내가 너냐? ……그리고 고맙다."

    "음? 뭘요?"

    "다, 인마. 다."

    종혁 덕분에 본청에 올 수 있었고, 또 이렇게 종혁 덕분에 진급을 할 수 있게 됐다. 나이가 오십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더 이상의 진급을 포기했던 김종두 과장.

    "네가 진짜 내 보배다, 종혁아."

    "……예. 저도 사랑합니다."

    둘은 서로를 뜨거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다 괜스레 쑥스러워진 김종두는 적당히 피고 내려오라는 말을 남기며 도망치듯 옥상을 내려갔고,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종혁은 푸흐흐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박 이사, 납니다."

    박태규. 이렇게 일적으로 전화하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종혁의 눈이 시리도록 차갑게 얼어붙었다.

    "삼전이랑 대현, 조리돌리기 가능합니까? 주가를 한 30퍼센트 정도 뺐으면 하는데."

    -……재밌겠군요. 안 그래도 요새 흥미진진한 일이 없다 느끼던 차였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일도 너무 순항 중이라서 정말 심심하던 차였다.

    -언제까지 해 드리면 될까요?

    "최대한 빨리. 가능하겠습니까?"

    -열흘 후에 신문을 보시면 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고, 종혁은 가슴 깊이 빤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공장? 플랜트?"

    이에 연상되는 단어로는 매출 상승, 일자리 창출 등이 있다.

    하지만.

    "좆까."

    기업 따위가 경찰에 압력을 넣는 순간 종혁 본인의 적인 거다.

    어떤 변명을 가져다 붙여도 그래선 안 되는 것이다.

    종혁은 핸드폰을 들어 다시 전화를 걸려고 그랬다.

    그 순간이었다.

    -지치고 힘들 땐…….

    "나탈리아?"

    -잘 지냈나요, 최?

    "딱 20분 전까진 잘 지냈습니다."

    -저런. 그런 하찮은 버러지 때문에 마음이 상하면 안 되죠.

    "……아하핫."

    -곧 도착할 내 선물이 당신의 기분을 풀어 줬으면 좋겠네요, 나의 친구.

    "우리 술 마신 지 꽤 오래됐죠?"

    -데이트 신청이신가요? 설레는걸요?

    "제가 풀코스로 쫙 준비할 테니 몸만 오세요. 아, 그 아름다운 미소도 함께요."

    -호호호호호호!

    전화를 끊은 종혁은 하늘을 보며 풀썩 웃었다.

    방금까지 끓고 있었던 머리가 이제야 좀 식는 기분이었다.

    "아드드드드! 그럼 일어날까?"

    -지치고 힘들 땐…….

    "응?"

    모르는 번호였다.

    종혁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가 이내 풀썩 웃었다.

    "헨리도 선물을 보내시게요?"

    -……이런. 제가 한발 늦었나보군요. 그래도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니 거절하진 말아 주십시오.

    "친구의 호의는 절대 거부하지 말아야죠. 고맙게 쓰겠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시니 저도 마음이 놓이는군요. 언제 시간 되면 미국으로 넘어오세요. 보고 싶으니까.

    "저 귀화시키려고요?"

    -이런 들켰나요?

    푸흐흐 웃은 종혁은 헨리 스미스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전화를 끊었다.

    "오."

    마음이 맞는 상대와 수다를 떨어서 그런지 놀랍게도 말끔한 머릿속.

    종혁은 이번엔 자신이 다른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그냥 적당히만 먹으려고 했거든? 근데 너흰 안 되겠다.’

    -오빠!

    "어, 미진아. 난데, 너희 혹시 중국에 진출해 볼 생각 없어? 내가 좋은 선물 보내 줄 테니까."

    에바 미진 킴.

    드바 로마노프 코리아의 진짜 사장이자, 빅토르의 오른팔.

    종혁은 여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옥상에서 내려와 두 친구가 택배로 보낸 선물을 받은 종혁은 다시 취조실로 향했다.

    잠시 들렀던 사무실에 앉아 있던 형사들이 특진 소식을 들었는지 눈물을 흘리며 달려들어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헉! 헉!"

    "어이고. 그러다 죽겠습니다, 과장님."

    "네가 할 말이냐?"

    "흐흐. 힘드시면 잠시 쉬다 오세요."

    갑자기 의기양양한 종혁의 태도에 눈을 가늘게 뜨던 김종두는 종혁이 들고 있는 두꺼운 대봉투들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모르지만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린 거다.

    "알았어. 씻고 올 테니까 이 새끼 괴롭히고 있어."

    "옙. 충성."

    종혁은 김종두가 나가면서 닫히는 취조실의 문을 봤다가 이내 의자에 앉아 바닥을 기고 있는 장 사장을 봤다.

    "안 일어날 거지?"

    흠칫!

    "너, 너 어떻게 우리나라 말을……."

    경악했던 장 사장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후회할 거다!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안다면……."

    "그래, 거기 누워서 들어."

    종혁은 나탈리아가 보낸 선물부터 열어 봤다.

    "어이구야."

    ‘다 있네.’

    정말 다 있었다.

    "이름 장웨이. 상하이 태생. 중국 내 정치 서열 59위 장 쑤윈의 배다른 형제."

    두 눈을 부릅뜬 장 사장, 장웨이가 불신 가득한 눈으로 노려본다. 종혁은 씩 웃으며 마저 읽어 갔다.

    "약 15년 전 흑사회를 결성, 형의 성공을 위해…… 아하. 아하하? 이래서 죽을 똥을 싸면서까지 널 꺼내려던 거였구나? 그래, 이제야 이해가 되네."

    장웨이는 장쑤윈의 수족이었다. 장쑤원이 성공할 수 있도록 성상납도 하고 온갖 험하고 궂은일을 다 한.

    즉, 장쑤윈이란 중국 정치인의 가장 큰 치부가 바로 장웨이란 소리다.

    장웨이의 입이 열리면 장쑤윈의 정치 인생도 끝난다고 봐야 했다.

    나탈리아와 헨리가 정말 제대로 된 선물을 보냈다.

    ‘이거 정말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해야겠는데?’

    "너, 너……!"

    종혁은 무시하며 서류를 주욱 훑었다.

    그러다 한 부분을 보곤 멈췄다.

    "와……."

    종혁은 감탄을 터트렸다.

    "이야, 너 마약도 취급하네?"

    "그, 그만! 그만-!"

    "그런데……"

    한 템포 쉰 종혁은 활짝 웃었다.

    "중국에서 마약은 사형이지 않나?"

    "……."

    입을 꾹 다물며 식은땀을 흘리는 장웨이.

    서류를 내려놓은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살고 싶지?"

    "흡?!"

    "살고 싶으면 불어. 네가 저지른 모든 범죄를. 한국에서 데려간 여성들을 어디다 팔았는지를. 그리고 네가 네 형을 위해 뭔 짓을 했는지를."

    그렇게 말하는 종혁의 눈빛은 놀랍도록 무덤덤했다.

    "참고로 난 이거 네 형이랑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보내면 그만이다."

    그럼 네가 살까, 죽을까.

    네 형도 살까, 죽을까.

    종혁은 그런 잔인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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