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92화>
아직은 한적한 오후 4시의 도로.
이제는 단종된 검정색 소나타 한 대가 도로를 누빈다.
운전대를 잡은 이십대 청년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전후좌우로 눈을 움직였다.
"살다가! 살다가! 나 살다가-!크으. 명곡이다, 명곡이야."
삐리링! 삐리링!
핸드프리에 달린 핸드폰이 맹렬하게 울자 청년은 얼른 볼륨을 줄이며 전화를 받았다.
-너 어디야, 새끼야!
"잠시 드라이브 나왔어요. 잠이 와서."
-뭐? 드라이브? 그런 놈이 작업용 차를 가져가? 내가 당분간은 작업하지 말자고 했지?!
"제 차 타고 나오면 기름값 들잖아요."
-얼씨구? 이 새끼 말하는 본새 좀 보소?
청년은 시작되려는 잔소리에 얼굴을 구겼다.
"예, 예. 지금 들어갈게요. 들어가면 되잖아요!"
-얼른 들어와!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보며 혀를 차며 핸들을 돌릴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부과아아앙!
귓가를 강렬하게 때리는 슈퍼카의 소리.
"음?"
고개를 돌렸던 청년은 눈을 부릅떴다.
옆을 지나가는 열정의 붉은색 매끈한 미녀 한 대.
그는 핸즈프리에 붙은 핸드폰을 가져갔다.
-뭐? 왜? 뭐 사 오려고? 그럼 난…….
"사장님, 포르쉐 떴어요."
-……뭐?
"그것도 국내에 세 대 있을까 말까 한 놈입니다."
청년은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을 굳이 던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결국 사장의 결단이 떨어졌다.
-작업해. 씨발, 한 반년 작업 안 하면 되겠지!
"옙!"
씩 웃은 청년은 조심스럽게 포르쉐를 따라붙었다.
그리고.
끼익! 쿠웅!
"헉! 괘, 괜찮으세요?"
"아오, 씨발.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청년 정호는 뒷목을 잡는 삼십대 후반 중년인을 보며 속으로 씨익 웃었다.
이후 일은 일사천리였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12시, 정호는 차키가 달린 열쇠고리를 흔들며 어느 주상복합빌딩의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야. 난 언제 이런 걸 살 수 있으려나."
정호의 경박한 목소리가 지하주차장을 울리자, 함께 온 삼십대 중년인이 한숨을 내쉰다.
"한 십 년 바짝 모으면 살 수 있겠지. 하, 나도 이런 거 하나 사서 월세 따박따박 받으며 살고 싶다."
"쯧. 다른 팀은 벤틀리였다면서요?"
"그놈들이 아주 좋아하는 세단이지. 값을 무려 반 배 더 쳐준다더라. 그쪽 팀만 노났지, 뭐."
"씨불. 우린 그런 거 하나 안 떨어지나. 아, 저기 있…… 씨부럴?"
그들이 타고 갈 포르쉐 옆에 허머가 세워져 있다.
군용차처럼 생겼지만, 그 출생지가 미국이라 때깔부터 다른 최고급 차량. 유리 전체까지 짙게 선팅한 검정색의 묵직한 마초를 보자, 둘은 군침을 질질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정호는 같이 온 중년인을 간절히 봤지만, 중년인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거부터."
"……씨불."
아쉬움에 한숨을 푹푹 내쉰 정호는 포르쉐를 향해 가지고 온 차키를 내밀었다.
삐빅! 탁탁! 부르릉!
"다음에 꼭 보자, 아가씨."
정호는 그 말을 남기며 차를 출발시켰다.
과우웅!
포르쉐가 굉음을 남기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허머의 트렁크가 열리며 종혁이 빠져나왔다.
담배를 입에 문 그는 포르쉐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옅게 웃었다.
"그렇지. 개가 똥을 참지. 뭐해요? 일어나세요. 자요?"
"어우. 역시 차가 고급이라서 그런지 트렁크도 겁나 편하네. 야, 나도 담배 하나만."
"진짜 좀 사서 핍시다."
"몰라. 마누라 지갑 사줘서 내 지갑은 빵꾸 났어."
변명도 참 가지가지였다.
포기한 종혁은 이내 담배를 물려 줬고, 그렇게 한 대를 느긋이 핀 둘은 그제야 차량에 올랐다.
운전석에 오른 종혁은 옆에 장착된 위치 추적기를 켰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나탈리아에게 빌린 군용 GPS 추적기.
오차 범위 1미터의 무지막지한 놈이다.
"저쪽도 출발했단다."
"아, 그래요? 그럼 우리도 출발해야죠. 가는 길에 휴게소 있으면 우동 콜?"
"우동 좋지."
긴장이라곤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는 둘.
사람들은 이런 둘을 가리켜 베테랑이라고 불렀다.
* * *
콰르륵!
인천 쪽의 한 야산.
비포장길을 달린 포르쉐 한 대와 소나타 한 대가 한 거대한 창고 앞에 멈춰 선다.
조명은커녕 소음 하나 나지 않는 적막한 창고 앞마당엔 거대한 트레일러트럭 3대가 세워져 있다.
새벽이다 보니 귀신이 나올 것처럼 음산한 분위기.
그에 청년 정호는 핸들 옆에 달린 것들을 조작했다.
달칵! 달칵! 달칵! 빵빵!
세 번 깜빡인 하이빔과 두 번의 경적 소리에 창고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정호는 구르르릉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는 창고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그런 창고 안에는 이십여 명의 사람이 있었다.
키이이잉! 치이이이익!
번호판을 교체하거나 훔쳐 온 차량을 다른 색으로 도색을 하는 이들.
차에서 내린 정호는 다가오는 오십대 장년인에게 차키를 내밀었다.
"3팀이지? 오느라 수고했어. 미행은?"
"없었습니다."
10초 이상 정차도 하고 속도를 줄였다 높이기도 했지만, 누군가 따라온다는 건 느끼지 못했다.
"알았어. 올라가서 회포 풀고 가. 다른 팀들도 와 있으니까."
"헤헤. 넵! 형님, 가요."
정호와 함께 온 중년인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갔고, 남겨진 오십대 장년인은 포르쉐를 보며 눈을 빛냈다.
"미쳤네, 이거."
지난 3년간 이 장사를 했지만, 몇 번 못 본 매끈한 미녀.
"하. 이걸 팔아야 한다니……."
차를 좋아하는 남자로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비즈니스가 먼저였다.
오십대 장년인은 근처의 사내에게 키를 던졌다.
"예쁘게 치장해서 조심히 실어 놔. 이거 기스라도 나는 순간 네가 십 년을 일해도 못 갚으니까."
"예, 옙!"
고개를 끄덕인 몸을 돌린 장년인은 방금 전 정호들이 오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는 사타구니를 주무르며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한편 국도에서 옆으로 빠지는 샛길 앞에 선 종혁은 GPS 추적기를 힐끔 보곤 핸드폰을 들었다.
"과장님, 어디세요!"
-다 와 가! 1분!
정말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1분 후 십여 대의 차량이 종혁의 차 뒤에 선다.
그러며 차에서 내리는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
탁! 탁!
"여기야?"
"GPS 수신기가 가리키는 곳이니까 맞겠죠?"
놈들이 가다 서다 반복했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그래?"
희뿌연 담배 연기가 새벽의 어둔 밤 속에서 흩날린다.
"하, 새끼들. 지랄 맞은 곳에도 숨어 있다. 어디 도심지에 숨으면 좀 좋아?"
"그럼 제대로 숨지 못하잖아요."
"그건 맞지."
고개를 끄덕인 김종두 과장은 뒤를 봤다.
"자, 후딱 끝내고 뜨끈한 국물에 소주 한잔 걸치러 가자!"
"옙!"
다시 차에 오른 그들은 이내 샛길 안으로 빠르게 진입했다.
그런 그들에게 나타난 거대한 창고.
창문을 내린 상태임에도 소음 하나, 불빛 하나 없는 을씨년스런 창고의 분위기에 모두 미간을 좁힌다.
-칙! 이 새끼들 눈치 깐 거 아니야?
-씨발. 다들 창고 포위하고 절단기 꺼내! 쥐새끼 한 마리라도 도망가게…….
"다들 내리지 마세요. 다칩니다."
-엉?
"너?"
어느새 든 무전기를 내려놓은 종혁은 화들짝 놀라는 오택수의 반응을 무시하며 액셀을 강하게 밟았다.
부아아아아앙!
"야, 이 개새끼야-!"
"안전띠 맸죠?"
"씨발놈아-!"
손잡이를 비명을 지르는 오택수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창고 문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꽈아아아앙!
문을 부수며, 아니 뚫고 들어간 허머.
카가각 소리를 내며 멈춰 선 허머에서 내린 종혁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어우, 죽겠다."
그래도 차가 좋아서 그런지 버틸 만했다.
종혁은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이십여 명의 사람들을 향해 허리춤에서 꺼낸 수갑을 던졌다.
차르르.
그들의 발치 앞에 멈춰 선 수갑.
"……?"
종혁은 의아해하는 그들을 향해 씩 웃었다.
"뭐하냐? 안 차고?"
"……짭새다!"
"죽여!"
단숨에 상황 파악을 끝내며 달려드는 그들.
뚜두둑.
어깨를 푼 종혁도 그런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랜만에 몸 좀 풀어 보실까!"
그리고 종혁의 시간이 급격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물속을 유영하듯 느린 시간 속에 단숨에 짓쳐 든 종혁은 가장 먼저 달려드는 놈이 휘두르는 렌치를 피하며 그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드득!
코가 뭉개지며 놈의 광대에 주먹이 닿는 게 생생히 느껴진다.
‘그래, 이거지!’
그동안 너무 풀지 않아서 녹이 슬었으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것 같다.
"일단 한 놈!"
"죽어!"
사납게 웃은 종혁은 자신을 향해 칼을 뻗는 사내의 손목을 후려치곤, 놈의 무릎을 전력으로 밀어 차 버렸다.
"넌 칼 들었으니까 병신 확정!"
뿌드으으윽!
꺾이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무릎이 꺾이면서 무너지는 놈을 보던 종혁은 그대로 몸을 뒤틀며 손바닥을 휘둘렀다.
쩍!
턱에 불꽃 싸다구를 맞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이를 일견한 종혁은 더 사납게 웃으며 포효했다.
"씨발, 다 덤벼-!"
"저 새끼 죽여-!"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오직 종혁만 노리고 달려들었다.
"와아아아악!"
"죽여! 제발 누가 저 새끼 좀 죽여!"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닌 광경.
"어후, 저 미친 새끼."
차에서 목을 잡고 내린 오택수는 맹수보다 더 흉포하게 날뛰는 종혁을 보며 질려 버렸고, 김종두 과장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4인조 망치 뻑치기 사건, 아니 그 전에도 알아보긴 했지만 역시 고삐를 잡지 않으면 위험한 놈이다.
"그래도 이런 상황 아니면 고삐를 놓지 않는 믿음직한 놈이지."
그래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
담배를 문 김종두는 2층에서 달려 내려오는 일단의 무리를 보곤 형사들을 향해 일갈했다.
"뭣들 해! 베테랑이란 새끼들이 종혁이한테 다 뺏길 거냐?!"
"어휴. 네, 네. 갑니다, 가. 아주 종혁이라면 껌뻑 죽지."
"어디 보자. 한 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어우. 오늘 몸 좀 제대로 풀겠는데?"
"종혁아-! 같이 놀자! 너만 즐기지 말고, 시끼야!"
"다들 저 새끼 죽여-!"
"우와아아아아!"
그렇게 형사들도 이 난장판에 참전했고, 담배 연기를 길게 뿜은 김종두는 난생처음 겪는 상황인지 얼어붙어 있는 최재수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너도 가, 시키야."
"어어어?"
"넌 또 뭐야!"
"헉! 이런 씨발!"
"죽어!"
"재수야-! 칼 맞지 말고! 대가리 알아서 보호하고! 그럼 산다!"
김종두는 물고 있던 담배를 던지며 옆에 세워진 쇠파이프를 들었다.
"그럼 나는 막아 보실까?"
종혁이 뚫고 들어오면서 퇴로가 되어 버린 공장의 거대한 문.
김종두는 오늘 장판파의 장비가 되기로 했다.
* * *
"아윽!"
"으으윽!"
"시끄러워, 이 새끼들아. 시끄러워."
빡! 빡!
무릎이 꿇려진 채 앓는 소리를 내던 대포차 조직 일당들이 저마다 뒤통수를 얻어맞고 입을 다문다.
"아오, 씨발. 이거 비싼 건데."
"어? 형님, 대가리에서 피나는데요?"
"됐어. 이따가 침 바르면 나아."
"재수야, 괜찮냐? 누구야! 누가 우리 막내 얼굴을 이 꼴로 만들어 놨어! 안 그래도 못난 얼굴인데!"
"저, 저 얼굴은 안 맞은……."
"어떤 새끼야! 나와-!"
진압을 하는 중 다친 곳이 생겼는지 확인하는 형사들을 일견한 종혁은 그 와중에 두 놈을 때려눕힌 김종두를 향해 아직도 현역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김종두는 그런 종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자리에 무릎 꿇려진 28명 중 13명을 종혁 혼자 박살 냈다.
"미친놈."
히죽 웃은 종혁은 어슬렁거리며 1층을 둘러보다 감탄을 터트렸다.
벤츠, 아우디, BMW, 볼보 등 온갖 명품 외제차가 무려 10대나 재단장을 하고 있다.
이놈들의 규모가 크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여기 있는 놈들이 전부가 아니야.’
겨우 정비소 두 곳에서 이 차들을 모두 훔쳤다?
말이 안 된다. 다른 팀이 있다는 거다.
실제로 2층에서 내려온 놈들 중 반 이상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저놈들 이상으로 더 있을 수 있어."
운이 좋게 이놈들 조직의 조직원들이 이 자리에 다 모였다고 보긴 힘들다. 종혁은 그 단서를 찾기 위해 1층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발견할 수 있었다.
"과장님!"
종혁의 외침에 의아해하며 다가온 김종두는 한구석에 널브러지듯 쌓여 있는 번호판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와, 이 새끼들. 대체 뭘 얼마나 해 먹은 거야?"
대충 봐도 이백 개가 넘는다.
수천만 원, 여차하면 1억을 가볍게 넘기는 고가의 외제차들.
피해액이 어림잡아도 100억을 넘긴다.
종혁 덕분에 가볍게 놈들을 추적했기에 별생각이 없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이었다. 종혁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번호판을 발로 툭툭 걷어찼다.
그러다.
"어?"
"음?"
종혁뿐만 아니라 김종두도 딱딱하게 굳어 버린다.
‘이, 이게 왜 여기 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하, 이 개새끼들."
천장을 보며 머리를 쓸어 넘긴 종혁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왜 무시했을까.’
왜 촉이 섰음에도 무시했을까.
"왜!"
녹색 번호판, 3785.
서울경기 이십대 여성 실종 사건, 주택가로 진입해 사라진 승합차의 번호판이었다.
이 순간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과, 과장님!"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종혁은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기는 걸 느꼈다.
모포로 몸을 두른 채 2층 계단을 내려오는 여섯 명의 여성들.
구타 흔적이 가득하고, 머리도 가위로 아무렇게 자른 듯한 여성들의 사이에 실종자 이경미 씨가 있다.
"과장님! 여기 트레일러가 이상합니다! 안에 승용차가……!"
"하하."
웃음을 흘린 종혁은 몸을 돌렸다.
오싹!
2층을 보자마자 굳었던 고개를 돌린 김종두는 범인들이 있는 곳을 향해 흐느적거리며 걸어가는 종혁을 보곤 어떤 공포를 느꼈다.
"자, 잡아……."
"예?"
"종혁이 잡으라고-!"
* * *
붉은빛 조명이 내려쬐는 작은 방.
한 30대 남성이 얼굴 여기저기에 멍이 든 한 여성의 가슴을 주무른다.
그러나 여성은 벌벌 떨기만 할 뿐 뿌리치지 못한다.
그때는 주먹이 날아올 수 있기에.
이 남자들은 그런 폭력을 너무도 쉽게 휘두르기에.
남성의 손이 깊은 곳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몸을 비트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너희는 진짜 운 좋은 줄 알아야 해. 너희야 이렇게 좀 맞는 걸로 끝이지만, 팔려 나간 애들은 도망 못 가게 발목이 잘리고, 어?"
철렁!
심장이 내려앉고, 몸이 굳는다.
반항의 의지가 사라진다.
"아, 술맛 떨어지게 왜 그딴 소리를 해?"
"그런가? 뭐, 그냥 그렇다고. 자, 한잔 줘야지?"
활짝 웃는 남성의 미소에 여성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병을 든다. 남성의 손이 팬티를 젖히고 들어오지만, 다리를 벌린다.
그건 맞은편에서 유린당하던 여성도 마찬가지다.
‘어, 엄마…….’
눈이 마주친 두 여성은 눈을 질끈 감으며 서로를 외면했다.
그때였다.
꽈아앙!
큰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린다.
"뭐, 뭐야!"
-우와아아아!
갑자기 시끄러워진 아래층.
"……씨발!"
서로를 본 두 남성은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몰라! 일단 튀어 가!"
시끄러워진 복도.
쾅!
닫힌 문을 보던 여성들은 그제야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다. 서로를 끌어안고 나서야 느껴지는 온기에 눈물을 흘린다.
‘누, 누가 제발 우리 좀…….’
간절히 바라지만, 결코 닿지 못한 소원.
둘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를 달랬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조용해진 건물에도 그저 서로만 끌어안고 있던 여성들은 덜컹덜컹 흔들리는 문에 어떻게든 버티자 눈으로 이야기하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며 쏟아지는 하얀빛.
눈이 부셔 고개를 돌렸던 여성들은 이내 곧 믿지 못할 단어를 듣게 됐다.
"박 형사님-!"
‘형사?’
그녀들은 우르르 쏟아져 들어와 한탄을 하는 남자들, 아니 형사들의 모습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 * *
"막으라니, 대체 왜……"
의아해하며 종혁을 본 형사들은 기겁했다.
심장을 파고드는 끔찍한 살의가 느껴지는 눈.
‘내 사건이 아니라고 무시한 건가? 아니면 회귀 전 실종으로 끝나서 외면한 거냐?’
왜 가능성을 외면했을까.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왜 무시한 걸까.
화가 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전력을 다해 의심하고 또 의심하지 않은 자신에게.
그리고 이런 끔찍한 짓을 태연하게 저지른 저 악마들에게. 인간이 아닌 짐승들에게.
눈앞이 흐려질 만큼 분노가 솟았다.
"조, 종혁아! 진정해…… 큽?!"
종혁의 어깨를 잡은 형사가 업어치기로 빙글 돌아간다.
"이 새끼…… 헉!"
쿠웅!
한 팔 감아 메치기로 바닥에 내리꽂힌다.
다리를 걸고, 송곳처럼 찔러 오는 주먹을 휘감아 던져 버리고.
결국 오십대 장년인 앞에 선 종혁은 뭔가 이상함을 직감하고 두려움에 떠는 놈의 턱을 구둣발로 후려쳤다.
뿌거억! 쿠당탕!
"……응어어어!"
피와 함께 하얀 알갱이들이 비산한 입을 감싸 쥐며 바닥을 구르는 늙은 벌레 한 마리.
종혁은 그런 그를 무심히 바라보며 그 목을 향해 발을 들었다.
‘죽일까?’
인간 같지도 않은 괴물들에게 살 가치가 있을까.
죽일까 말까 곰곰이 생각하던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놈쯤이야, 뭐.’
결정을 내린 그대로 발을 내리꽂았다.
그때였다.
"흡?!"
종혁은 다급히 양팔을 얼굴 앞에 교차했다.
그리고 곧바로 하나의 발이 그 가드를 후려쳤다.
퍼어억!
주춤 물러난 종혁은 발을 수습하는 오택수를 봤다.
담배를 문 채 비릿하게 웃는 그.
"진정해, 새끼야. 이딴 새끼 죽이고 깜빵 갈래? 재수 형사 안 만들 거야?"
겁을 먹었는지 파랗게 질려 있던 최재수가 억지로 의연하려 가슴을 편다. 그 모습에 왠지 웃음이 나왔다.
"……최 순경은 오 경위님이 만들어야죠."
"뭐 인마? 파트너끼리 이러기냐?"
"흐흐. 푸후우……."
마른세수를 한 종혁은 몸을 돌려 형사들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눈깔이 돌았습니다-!"
"……어우. 씨발, 깜짝아. 오케이! 그럴 수 있어!"
"내 대신 그래 줘서 땡큐!"
"사과했으니 오케이!"
걱정 말라는 듯 손을 젓는 형사들을 모습에 가슴이 술렁인 종혁은 다시 허리를 굽혀 사과하곤 장년인에게 다가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야."
"으어어."
"딱 한 번만 묻는다. 납치한 여성들 어디로 보냈냐."
종혁의 눈이 다시 살의로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