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90화>
염상수 경위에게 수사 기록을 넘겨받았지만, 종혁과 둘은 실종자 이경미의 실종 지점에 있는 모든 CCTV부터 다시 뒤졌다.
납치는 어디까지나 염상수 경위 개인의 소견일 뿐이기 때문이다.
"실종 발생 시각 3시간 전후로 CCTV에 잡힌 차량이 총 246대."
"그중 택시가 총 78대고, 실종 발생 시각부터 3시간 후까지 그 앞을 지나간 택시가 총 5대."
"일반 차량이 총 12대."
왜 하필 3시간이냐면, 이경미가 들른 편의점의 알바생이 그 3시간 후에 담배를 피기 위해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 알바생은 이경미가 걸어간 방향을 보며 담배를 폈고, 이경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도로에 주차된 차들도 없어서 시야가 확보되었다는 증언이다.
"그중 일반 차량 11대는 시간상 그냥 스쳐 지나간 걸로 추정되고……."
왜 염상수 경위가 그 승합차를 의심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흠. 나는 이 택시들 확인해 볼게."
택시회사가 저마다 달라서 발품을 꽤 팔아야 할 듯싶었다.
"그럼 전 구청과 동사무소에 들렀다가 그 승합차 쫓아 볼게요. 그 후에 만나서 일반 차량들 확인해 보죠."
"오케이. 몇 시에 볼까?"
"저녁 8시에 만나죠. 그럼 최 순경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그때 보자. 야, 최재수. 잘 배워, 새끼야."
"예?"
"택시!"
종혁은 택시를 잡기 위해 뛰어가는 오택수를 뒤로하며 최재수와 함께 구청으로 향했다.
"여긴 왜……."
"목격자 찾으려고."
"……?"
"보면 아니까 그거 잘 들고 따라오기나 해."
종혁은 구청 안의 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웅성웅성!
뭐가 바쁜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공무원들.
종혁은 그중 가까운 공무원에게 경찰공무원증을 내밀었다.
"최종혁 경위입니다."
"아, 예. 무슨 일로……."
"유인물이나 플래카드 담당하시는 주사님이 누군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실종자 플래카드를 걸려고요."
"아, 그거라면…… 음, 아! 저기 조만득 주사님이 담당이세요. 만득 형님! 손님이요!"
"어? 나? 어, 보네!"
"저기로 가 보세요."
"감사합니다."
종혁은 오십대의 배불뚝이 공무원 앞에 서서 다시 경찰공무원증을 보여 줬다.
"최종혁 경위입니다. 혹시 관내에서 발생한 이십대 여성 실종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아, 그것 때문에 오셨구나. 안 그래도 저희도 안타깝던 차였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사하는 겁니까?"
"예. 그래서 목격자를 찾기 위해 플래카드를 걸려고 하는데……."
종혁은 최재수를 툭 쳤고, 화들짝 놀란 최재수는 얼른 들고 있던 홍삼 선물세트를 내밀었다.
"어이쿠. 당연히 협조해야 될 일인데, 뭘 이런 걸 다……."
"목 좋은 자리 좀 알려 주십사 빌러 온 거죠."
"하하. 그런 거라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구 내에 목 좋은 자리는 내가 가장 잘 아니까! 뭐 말 나온 김에 나가시죠. 아, 플래카드는 가져오셨죠?"
"아니요. 이제부터 제작할 예정이라 자리만 가르쳐 주시면 됩니다. 설치는 저희가 할게요."
"음. 이런 것까지 받은 상황에서 드라이브만 하면 미안한데……."
"나중에 또 도움 청할 일이 있으면 잘 봐주십시오."
"하하하. 당연하죠."
그렇게 종혁은 담당공무원과 함께 중구 내에 있는 모든 목 좋은 자리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후 동사무소에서도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차 검증을 한 종혁은 저녁 7시가 다 돼서야 승합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주택가의 입구 앞에 설 수 있었다.
"흐음."
"저…… 최 경위님."
눈을 가늘게 뜨며 주택가 안을 응시하는 종혁에게 최재수가 말을 건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 안 가지?"
최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래카드가 잘 보이라고 그러는 거야."
"예?"
"흠.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되나……. 일단 플래카드를 정해진 게시대 외에 설치하는 게 불법인 건 알지?"
"어? 그랬습니까?"
"응?"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은 종혁은 눈을 끔뻑였다.
그에 최재수는 다급히 변명을 했다.
"아니, 순찰을 하다 보면 많이 보이니까 허락을 맡고 하는 걸로만……. 저희도 아무렇게나 걸어서……."
"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 하지만 아니야."
물론 예외 대상인 경우가 몇몇 있고, 나중에는 지금과 같은 경우도 예외로 적용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플래카드들은 죄다 잘 보이는 곳에 설치된다는 말이지? 차량이나 지나는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이미 실종자를 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지났다.
이경미 씨가 실종된 지도 벌써 열흘. 이젠 혹시라도 있을 목격자의 제보가 절실할 때였다.
그 혹시라도 있을 목격자가 플래카드를 보고 연락해 주기를 바라며 잘 보이는 곳에 플래카드를 설치하려는 거다.
"그런데 동네에서 실종자가 나오면 어떻겠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집값 떨어진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이 구청과 동사무소에 민원을 넣는 것이다. 플래카드를 떼거나 잘 안 보이는 곳으로 옮겨 달라고.
"그, 그런……!"
"뭘 그런 거 가지고 놀래? 파출소에서 구르다 온 사람이."
"……."
"아무튼 내가 오늘 한 일은 그런 민원이 들어왔을 때 무시해 달라는 부탁이었어. 그리고 혹시라도 누가 떼면 바로 알려 달라는 부탁이기도 했고."
"아……."
몰랐던 걸 깨달은 최재수는 얼른 수첩에 기록을 했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참 마음에 든단 말이지.’
모르는 건 문제가 안 된다. 배우면 되니까.
하지만 가르쳐 줬는데도 배우려 들지 않는 건 엄청난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최재수는 정말 가르치기 흐뭇한 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배웠어도 형사 일에 잘 적용을 시키지 못하는 건 흠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것 하나하나가 쌓여서 진짜 형사가 되는 거지.’
아직까지는 잘 따라오고 있다. 일단 그거면 충분했다.
짝 박수를 친 종혁은 몸을 돌렸다.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볼까?"
"예!"
* * *
종혁은 주택가를 이 잡듯 뒤졌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블랙박스는 사건 발생 후 열흘이 지났기에 모두 영상이 삭제된 이후일 거라 의미가 없었고, 승합차가 이곳에 진입한 시간도 새벽 2시 이후라서 목격자도 찾기가 힘들었다.
"일단 여기에도 실종자 전단을 붙여야겠네……."
"최 경위님."
"차량 운전자들에게 모두 연락해 봤어?"
"말씀하신 대로 전화번호가 없는 차들은 번호판을 적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담배를 물었고, 최재수는 머리를 긁었다.
"하아. 정말 이 승합차를 어디서 찾죠?"
들어오는 입구는 하나, 나가는 출구는 셋이다.
주택가 안에 CCTV가 있긴 했지만 그걸로는 방향을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어떻게든 찾아야지. 일단 도로 CCTV부터 뒤져 보자고."
"예."
종혁은 가장 가까운 출구 근처의 식당 등 가게의 CCTV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확인했을까.
-지치고 힘들 땐…….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종혁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이쪽으로 넘어오세요."
-뭐야, 아직 다 확인 못했어?
"이제 도로 쪽 CCTV 확인 중이에요."
-알았어. 금방 넘어갈 테니까 식당에 들어가 있어. 배고파.
"옙!"
전화를 끊은 종혁은 그제야 자신들이 식사조차 안 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자 허기가 미칠 듯 밀려왔다.
꽈르르르륵!
"풉!"
"시끄러워."
다급히 입을 다무는 최재수를 일견한 종혁은 눈치 없이 소리를 낸 배를 매만졌다.
"에혀.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종혁은 세 번째 출구 바로 옆에 있는 정비소를 봤다.
"저기만 확인하고 식당 들어가자. 최순경은 뭐 먹을래?"
"유, 육개장 먹고 싶습니다!"
"확실히 아까 냄새가 죽이긴 했지? 오케이, 접수."
종혁은 이제 오늘 장사를 접으려는 듯 셔터를 내리려는 차량 정비소로 뛰어갔다.
"잠깐! 잠깐만요!"
화들짝 놀란 다양한 연령대의 사내들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종혁을 봤다.
"경찰입니다. 이번에 중구에서 발생한 여성 실종 사건 때문에 잠시 협조를 구할 게 있는데, 혹시 CCTV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종혁이 내민 경찰공무원증을 본 그들은 잠시 당황했다.
"음. 저희 이제 퇴근해야 되는데……."
"잠깐이면 되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들의 도움에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진지한 종혁의 말에 그들은 결국 승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호야."
"아, 씨. 왜 또 저예요. 하아, 알겠습니다. 따라오세요."
"그래. 수고하고 내일 보자."
"예, 예."
정호라 불린 이십대 청년은 툴툴거리며 안으로 들어갔고, 종혁은 마저 퇴근하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 감사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숙인 후 이십대 청년의 뒤를 따랐다.
한 대의 외제차가 리프트에 올라가 있는 정비 공간을 지나 안쪽 사무실로 들어간 그들.
"뭘 확인하고 싶으신데요?"
종혁은 불퉁한 청년의 반응에 싱긋 웃었다.
"열흘 전 새벽 2시 이후부터의 영상만 확인시켜 주시면 됩니다."
"열흘 전이요?"
눈을 껌뻑인 청년은 이내 CCTV를 조작했다.
"음…… 잠시만요. 아, 여기 있네요."
"제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아, 네."
청년이 물러난 자리에 선 종혁은 CCTV 영상을 봤다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거 검은 화면만 나오는데요?"
"네? 그럴 리가요. 어? 아…… 씨발. 또 이러네. 비싼 것 좀 사자니까."
"자주 이러는가 봅니다?"
"가끔요. 바깥에 놔둔 고철 훔쳐 가는 사람들이나 가끔 셔터에 돌 던지고 도망가는 미친놈들 때문에 설치한 거라……."
"아아, 신고는 하셨고요?"
"신고해 봤자 그때뿐이죠."
"같은 경찰로서 사과드립니다."
"아, 아니요. 아이 참,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닌데……."
"하하. 압니다. 그래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끄응."
볼을 긁는 청년에게 웃어 준 종혁은 CCTV를 계속 재생하다가 이내 시간대가 새벽 6시에 접어들자 그만뒀다.
"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고, 이거 저희가 너무 늦은 시간까지 폐를 끼쳤네요."
"아니요.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꼭 찾으세요!"
"예! 수고하십쇼."
종혁은 이번에도 허탕이라 작게 실망하는 최재수와 함께 차량 정비소를 빠져나갔고, 그런 둘을 배웅 나온 청년은 멀어지는 종혁과 최재수를 빤히 응시하다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식당 안으로 들어온 종혁은 메뉴판을 보며 군침을 삼키는 최재수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최 순경."
"예?"
"배고파?"
"예. 최 경위님도 배고프시다고……."
"에휴. 그래, 내가 뭘 바라냐."
갑작스런 질책에 최재수는 얼굴을 와락 구겼고, 종혁은 아직까지 해야 할 일을 깨닫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삼촌. 그쪽은 좀 어때요?"
"헉?!"
‘에라이.’
이번 수사의 선장은 어디까지나 최재수다.
그럼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선원들의 보고를 받지 않았으니 당연히 혼을 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야 당연히 글렀지. 실종된 지 벌써 두 달이나 됐는데 뭐가 있겠냐? ……그래도 좀 이상한 부분이 있긴 해.
"그래요? 뭔데요?"
종혁은 슬그머니 허리를 폈다.
-실종 발생 시각 2시간 전후로 거수(거동 수상) 차량이 있더라고.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어? 진짜요?"
-왜?
"저희도 그런 차량이 있었거든요. 뭐 실종자가 사라진 것처럼 이 차량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지만……. 그쪽은요?"
-우린 지금부터 그 차 동선 쫓으려고. 하, 수원은 벗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에고. 수고하십쇼."
-그래. 너도 수고. 아, 그런데 재수 이 새끼 지금 어디 있냐? 왜 전화를 안 해? 지가 뭔 궁예야? 앉은 자리에서 다 볼 수 있어?
흐뭇이 웃은 종혁은 핸드폰을 최재수에게 넘겼다.
"받아 봐. 바꿔 달래."
"예? 예…… 여, 여보세요?"
-최재수, 이 개새끼야-!
"악!"
종혁은 핸드폰을 붙잡고 연신 사과를 하는 최재수를 무시하며 손을 들었다.
"이모, 여기 주문이요!"
그리고 이날, 종혁과 최재수는 끝내 승합차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 * *
따르릉! 따르릉!
서울과 경기 전역에 플래카드가 걸린 이후부터 특수범죄수사과에 전화가 빗발쳤다.
대부분, 아니 전부가 장난 전화.
목격자 증언 하나가 간절한 그들로서는 맥이 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
특수범죄수사과의 사무실이 조용하다.
딱딱하게 굳은 낯빛을 한 형사들의 입은 조개처럼 다물어져 있고, 몇몇은 헛웃음을 터트린다.
따르릉! 따르릉!
"씨발, 누가 저 빌어먹을 전화기 좀 조용히 시켜 봐라!"
김종두 과장의 외침에 형사들은 모두 전화선을 뽑은 후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모였다. 이제 사무실은 옆 사람의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불쾌한 침묵에 휩싸였다.
"후우. 다시 확인한다. 경기 남부 팀."
"거수 차량 발견. 추적 실패."
"경기 동부 팀."
"거수 차량 발견. 추적 실패했습니다."
"서울 동부 팀."
"이하 동문입니다."
"……."
지난 일주일 동안 서울경기를 이 잡듯 뒤진 형사들 가운데 반수 이상이 거수 차량을 발견했고, 이게 뜻하는 바를 모르는 형사는 이 자리에 없었다.
우연히 급증한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니라 조직적 납치일 가능성이 생긴 거다.
사건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최재수!"
"예, 예!"
최재수는 재빨리 메인 스크린에 차량 사진들을 띄웠다.
승합차나 승용차, 심지어 1톤 탑차도 있었다.
"거수 차량 전부 번호판을 확인했지만, 모두 대포차로 판명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거수 차량인데 하필 대포차다. 그것도 전부.
이게 뜻하는 게 뭐겠는가.
"와, 씨. 이거 우리가 안 맡았으면 절대 못 찾았겠는데?"
맞다. 특수범죄수사과가 서울경기 전부에서 일어난 이십대 여성 실종 사건을 조사했기에 생겨난 가능성이다.
아니었다면 이런 가능성은 생기지도 못한 채 단순 실종으로 마무리됐을 거다.
‘아니, 사망으로 마무리됐겠지.’
회귀 전엔 그랬다.
끝내 이 실종자들은 나타나거나 발견되지 않았고, 결국 실종자 전원 5년 후 사망 판정을 받게 되었다.
빠드득!
이를 가는 종혁과 형사들의 모습에 김종두 역시 이를 드러냈다.
"어떻게든 찾아. 이 차들이 실종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지 없는지는 일단 찾고 나서 판단한다. 알았어?"
"예!"
"뭐해! 움직여!"
"움직여!"
후다닥!
종혁도 재킷을 챙겨 들며 본청을 뛰어 나갔다.
그렇게 실종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