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89화 (189/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89화>

시간대는 저녁 11시.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온 남자 두 명이 한쪽으로 향한다.

다시 봐도 걸음걸이가 참 여유롭고 자연스럽다.

그렇게 707호의 BMW 앞에 선 둘은 어딘가를 가리키며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이내 마치 자신들의 차인 것처럼 운전석의 문을 열고 올라타 차를 출발시켰다.

"이 새끼들 봐라?"

그냥 봐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일단 차문을 강제로 딴 게 아니야.’

그러기에는 차에 올라타기까지 걸린 시간이 너무 빨랐고,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 예비키가 있단 소리다.

종혁은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707호에게 다가갔다.

"형님, 혹시 누구에게 차키 맡긴 적 있어요? 부모님이라든가, 친구라든가, 여자친구라든가."

707호는 고개를 저었다.

"예비키도 모두 제가 가지고 있는걸요."

"흠. 그래요……."

‘그럼 어떻게 차키를 복사한 거지?’

707호 차가 어떻게 거기에 주차되어 있는지 알았는지도 의문이다. 순간 한 곳이 떠오르긴 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정말 그놈들이라면 내 차도 뽀려 갔…… 아니, 방금 그 새끼들이 가리킨 곳에 내 차가 있긴 했는데…….’

눈을 가늘게 뜨던 종혁은 아차했다.

"아."

종혁은 자신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두 경찰을 향해 지갑 속 경찰공무원증을 보여 줬다.

"본청 특수범죄수사과의 최종혁 경위입니다."

"헉! 추, 충성!"

갑작스런 중간 간부의 등장에 경찰들의 정신이 번쩍 든다.

"이번 사건 잘 좀 부탁드립니다."

"예, 예!"

종혁은 707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분들이 잘 해결해 주실 거예요. 곧 찾을 테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

"후우. 네, 그러길 바라야죠. 하아."

그 차가 어떤 차인지 알기에 어색하게 웃은 종혁은 낯빛이 어두운 정혁 빌딩 관리인에게로 향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시를 잘했다면……."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관리인은 어머니 고정숙을 보호하기 위해 SVR에서 파견 된 요원이다.

즉, 이들은 어디까지나 고정숙의 신변 보호만 잘하면 됐다. 다른 입주민의 일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잘해 주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정 신경 쓰이면 몇 명 더 데려와도 좋고요. 아니, 이참에 아예 관리 사무실을 확장하도록 하죠."

그동안 사적인 공간에 침범할 수는 없다며 바깥에서 경호를 하던 SVR 요원들. 그냥 이참에 아예 정혁 빌딩 안으로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예, 그러겠습니다."

아무리 고정숙만 보호하면 된다지만, 자신이 감시하고 있던 곳에서 차가 도난당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건지 이를 악무는 그의 모습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돌아섰다.

더 이상 자신이 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에고. 먼저 올라가라니까."

"형님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제가 어찌 그럽니까?"

"고집도 참……."

씩 웃은 순철은 이내 낯빛을 굳히며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한번 알아봐도 되겠습……."

따악!

딱밤을 맞은 순철의 부릅뜬 눈이 의문을 머금는다.

"한국에서 해킹은 범죄다. 그리고 너 그런 거 하라고 데려온 거 아니야."

"하지만……."

"씁!"

순철은 시무룩 어깨를 늘어트렸고, 종혁은 그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올라가자. 늦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옛! 충성!"

종혁은 순철의 등을 떠밀며 집으로 올라갔다.

*   *   *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한 종혁은 자리에 사건 파일이 잔뜩 쌓인 최재수의 자리를 보곤 피식 웃었다.

"최 순경 아직도 첫 사건 못 정했어요?"

"몰라. 대체 뭘 얼마나 대단할 걸 다루려는지……."

어젠 장기 미제 사건도 살폈다고 한다.

"제발 자기 주제에 맞는 걸 고르면 좋으련만……."

차라리 이거 하라고 강요하면 속이 시원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형사로서의 첫 사건은 오직 형사 개인의 결정.

절대 누구의 강요에 의해 정해지면 안 되는 게 형사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이다.

"엇, 충성. 출근하셨습니까."

양반은 아닌 듯 입에 뭘 묻힌 채 탕비실에서 걸어 나오는 최재수를 향해 손을 흔든 종혁은 그를 지나쳐 탕비실로 향했다.

그리고 커피와 간단히 씹을 걸 가져온 뒤 컴퓨터를 켜서 차량 도난과 관련된 신고 내역 목록을 살폈다.

관할서에 맡기려고 했지만 걸리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살폈을까.

갑자기 종혁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이것 봐라?"

"왜? 뭔데?"

최재수가 언제 첫 사건을 선택할지 모르기에 사건을 맡지 않아서 여유만만이던 오택수가 종혁의 중얼거림에 반응한다.

"어제 저희 건물에서 차량 도난이 발생했거든요?"

종혁은 사정을 설명했다.

"꾼이네?"

2초 만에 차 문을 열고 5초 만에 사라진다.

누가 봐도 꾼이다.

"네. 저도 그렇게 판단했고요. 그런데……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네요?"

종혁은 사건 파일에 첨부된 CCTV나 블랙박스 영상에 찍힌 범인들을 가리켰다.

어제 확인한 그놈들이었다.

"그것도 3번이나 똑같은 얼굴이."

모자나 마스크를 쓴 사진도 있다지만, 어찌 형사의 눈을 비켜 갈 수 있을까.

거기다 도난 신고가 된 차량 전부가 외제차다.

오택수는 묘한 공통분모에 허리를 세웠다.

"이 새끼들, 대포차 조직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죠?"

이리 보고 저리 생각해 봐도 외제차만 전문으로 다루는 대포차 조직이 저지른 범행이다.

종혁은 이 시기 암약하던 대포차 조직 대가리들의 얼굴을 주욱 떠올려 봤다.

‘분명 이 새끼들 중에 있을 텐데…….’

"야, 어떡할래? 이거 파 볼 거냐? 안 파 볼 거면 나 줘 봐."

아르헨티아에 다녀온 그날, 면세점에서 산 지갑을 건네자 그것을 꼭 끌어안으며 연애할 때처럼 웃던 아내의 모습.

그 모습을 보자 오택수는 그동안 자신이 참 무심했다는 걸 깨달았고, 저 미소를 계속 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보너스가 필요했다. 깜짝 선물을 살 수 있는 보너스가.

이런 조직 사건이라면 보너스를 제법 받을 수 있을 터!

"으잉? 어차피 오 경위님과 저는 파트너라……."

텅!

둘은 책상을 치며 일어나는 최재수의 행동에 입을 다물었다.

"좋아요! 저 정했습니다! 첫 사건!"

그 외침에 아침부터 바쁘던 형사들까지 모두 최재수를 응시하고, 김종두 과장이 흥미진진한 눈빛을 지으며 다가온다.

"뭔데? 어떤 사건인데?"

"서울경기 이십대 여성 실종 사건을 맡고 싶습니다!"

"……엉?"

"야, 씨발! 너 미쳤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오택수의 외침이 특수범죄수사과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최 순경, 아니 재수야. 이건 아니야. 이거 연관점도 없는 사건이잖아."

"자, 우리 재수 착하지? 그래, 그래. 옳지. 그 기획서 놓자?"

"목마르지? 형이랑 술 마시러 갈래? 술은 원래 아침술이야."

제아무리 형사로서의 첫 사건이 형사 개인의 결정이라지만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모든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재수는 요지부동이었다.

"싫습니다. 꼭 하고 싶습니다."

"아니, 왜?"

‘최 경위님의 첫 사건이 쓰레기 만두 파동이었으니까요!’

형사로서의 첫 사건에서 특별수사대책본부의 제1부본부장을 맡은 것도 모자라, 방송사마저 무릎 꿇린 종혁.

‘나라고 못할 건 뭐야?’

물론 입 밖으로 꺼냈다간 뭔 소리와 어떤 시선을 받을 줄 알고 있기에 최재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와, 암 걸리겠네."

"야, 놔 봐. 내가 저 새끼 죽이고 깜빵 간다. 아, 좀 놔 보라고!"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종혁은 최재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거지?"

"예! 꼭 하고 싶습니다!"

그의 단호한 눈빛에 종혁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대포차 조직은 다음에 쫓아야겠네.’

이놈들도 참 운이 좋다 싶었다.

종혁은 실실 웃으며 김종두를 바라봤다.

"그렇다는데요?"

"……하아. 그래, 재수가 하고 싶다면 해야지. 어쩌겠어. 첫 사건인데."

"이런 옘병."

"너 이 사건 끝내면 꼭 비싼 거 사라. 우리 돼지고기나 곱창 이딴 거 안 먹는다."

전가의 보도. 형사로서의 첫 사건.

형사들은 핸드폰을 들었다.

"응. 지연이 엄마? 오늘부터 못 들어가. 몰라, 얼마나 걸릴지."

"동호야? 아빠야. 응. 엄마 바꿔 봐."

"아니야. 속옷 안 챙겨도 돼. 종혁이가 많이 사다 놔서 괜찮아. 응응. 그래, 사랑해. ……아니, 욕은 하지 말고."

형사로서의 첫 사건은 같은 수사과 형사들 전부가 서포트한다.

그게 형사의 룰이었다.

종혁도 고정숙에게 당분간 못 들어갈 수 있다고 연락을 했다.

그렇게 서울경기 이십대 여성 실종 사건의 수사본부가 설치됐다.

*   *   *

"아니, 내가 여길 왜……."

"모르면 닥쳐. 닥치라고. 이걸 진짜 확!"

종혁은 오택수가 손을 들자 깨갱하면서도 반항적인 눈빛을 보내는 최재수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인연이 깊은 중부서 안으로 들어갔다.

"충성. 다들 잘 계셨습니까!"

"이야, 이게 누구야. 그렇게 같이 일하자고 꼬드겼는데 본청으로 날름 튀어 버린 종혁이 아니야? 우리 일단 맞고 시작할까?"

"사랑합니다."

종혁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자 손가락을 꺾으며 일어서던 종혁과 인연이 깊은 형사 3팀 반장이 피식 웃었다.

"무슨 일인데?"

"염상수 경위님 계실까요?"

"나?"

깜짝 놀라 모니터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미는 한 사십대 사내.

종혁은 씩 웃으며 다가가 경례를 했다.

"본청 특수의 최종혁 경위입니다."

"오택수 경위입니다."

"……."

오택수는 어리벙벙한 최재수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최, 최재수 순경입니다!"

"아, 이십대 여성 실종 사건 때문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 혹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물론 수고비도 가져왔습니다."

염상수 경위는 종혁이 드는 홍삼 선물세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배시시 웃었다.

"같은 식구끼리 뭘 그런 걸 다……. 뭐가 듣고 싶은데요?"

"다요."

종혁은 눈을 빛냈다.

"신고 접수를 받았던 상황부터 조사한 것까지 모두. 경위님의 사견까지요."

원래 사건에 대한 건 가장 처음에 접수하고 조사한 형사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게 완벽하지 않다 보니 언제나 사건 기록에 담지 못한 것들이 생기는데, 종혁은 그걸 듣기 위해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중부서 건물 바깥, 벤치에 앉은 종혁에게 염상수 경위가 자판기 커피를 내민다.

"자요. 마셔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우리 회사에 왔는데, 이 정도 대접은 해야지. 자, 그럼 보자…… 일단 현장은 둘러보고 왔어요?"

"대충 둘러보고 왔습니다."

"잘했네."

고개를 끄덕인 염상수 경위는 기억을 더듬었다.

"당신들도 봐서 알겠지만, 실종자 이경미 씨는 정말 연기처럼 사라졌어요."

시간대는 새벽 1시쯤이었다.

그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진 이경미는 초코우유를 사기 위해 집 앞이 아니라 편의점 앞에서 내려 계산을 마친 후, 편의점을 빠져나와 초코우유가 담긴 봉지를 흔들며 걷다가 사라졌다.

정말 연기처럼 증발한 듯 말이다.

"원래 그 시간대가 되면 인적이 드문 동네라 목격자도 없고, 블랙박스도 없고, CCTV도 딱 그 30미터만 안 비추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지."

이후 주변을 아무리 탐문해 봐도, 그 시각 그곳을 지나쳤을 택시가 있는지 알아봐도 실종자 이경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사건은 그렇게 단순 실종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런데 난 왠지 한 승합차가 의심스럽더라고."

종혁은 눈을 빛냈다.

"승합차요?"

"실종 발생 시각 2시간 전에 슬그머니 나타나서 그 사각에 정차하고 있다가 발생 시각 30분 후에 출발했거든."

처음 나타났을 땐 두 번이나 유턴을 했다.

"마치 주차 자리를 찾는 듯했지만……."

"그러기엔 그 시각의 거리는 텅 비어 있었죠."

"그렇지! 잘 아네!"

종혁은 입술을 핥았다.

보라. 벌써부터 이렇게 수고를 무릅쓰고 찾아온 보람이 있지 않나.

사건 기록에 담기지 않은 염상수 경위의 사견. 지금부터 나올 이야기는 염상수 경위의 개인적인 수사 내용이었다.

"납치라고 생각하신 거군요?"

"그게 아니면 사람이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 차량 동선을 따 봤는데……."

"따 봤는데?"

염상수 순경은 한숨을 탁 내뱉으며 미지근해진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이 차도 사라졌어. 주택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진 확인했는데……."

밖으로 나오는 건 확인되지 않았고, 주택가 전부를 뒤졌음에도 그 승합차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승합차도 연기처럼 사라진 거다.

"그래서 뭔가 이상해 본격적으로 파 보려고 했지만……."

이 외에도 밀려 있는 사건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같아서 참 기분이 더러웠다.

종혁은 그 뒷말을 차마 못하는 염상수 경위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웃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사 내용을 넘겨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합니다. 제발 찾아 주세요."

"예, 꼭 그러겠습니다."

뜨거운 악수를 나눈 염상수 경위는 기록을 가져오겠다며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종혁은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최재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왜 여길 왔는지 알겠지?"

"……죄송합니다."

"서류 안에 있는 것만이 다가 아니야. 그걸 명심하도록 해."

"……예."

오택수는 풀이 죽은 최재수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렇다고 방금 들은 그 말 때문에 편견을 가져서도 안 된다. 형사가 편견을 가지는 순간 진실은 사라지는 거니까. 알았냐?"

"예!"

"그럼 됐다. 어휴, 진짜 이 모자란 놈을 언제 사람으로 만들지?"

"……."

평소라면 발악했을 말에도 얌전한 최재수의 모습에 종혁은 이제 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여기 있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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