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88화 (18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88화>

56. 내 자동차는 어디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제공항.

"읍! 읍!"

하도 동생, 동생 지껄이기에 입에 재갈을 물려 놓은 최종철의 뒷목을 움켜쥔 종혁은 옆에서 궁시렁거리는 최재수를 보며 의아해했다.

"쟤 왜 저래요?"

"너가 쓴 돈이 아깝다고."

"엥? 이제 비키니 미녀랑 못 놀아서가 아니라요?"

"뭐 그것도 있겠지. 그런데 솔직히 나도 좀 아깝긴 하다. 그 카밀라 모녀에게 준 1억."

카밀라네 세 가족은 그 돈으로 치안 좋은 곳에 집을 얻는 것도 모자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꽃집까지 열기로 했다.

종혁이 준 돈은 그만큼 큰돈이었다.

"아깝기는 무슨……."

어차피 나갔을 돈이다.

가르시아의 눈을 돌리고, 아이언 루카 직원들 회유하고, 거래처와 항구 직원 등 여러 사람 회유에 들었을 돈에 체류하며 쓸 비용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종혁의 말에 오택수는 입을 뻐끔거렸다.

"……그래. 네 똥 굵다, 새끼야."

"흐흐. 원래 이렇게 팍팍 써야 양질의 정보를 얻는 거 알면서."

"알았다고. 네 똥 굵다고. 나중에 돈이나 내놔. 알았어?"

"예, 충성. 자, 그럼 들어 갑시…… 음?"

종혁은 바로 앞에 멈춰 서는 검은색 차량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가 이내 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곤 피식 웃었다.

CIA의 린치 요원이었다.

"이봐, 다음엔 다를 거야. 내가 어떻게든 그 뻣뻣한 목을 꺾어 버릴 테니까!"

"……그 말 하려고 온 겁니까?"

‘이 양반 근성 있네.’

하지만 그렇다고 도발하러 온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해 주기엔 그의 성격이 용납지 않았다.

"글쎄요. 그건 지켜봐야 알겠죠? 다음에도 부탁해용, 린치 요원."

"이런 개……!"

"그럼 나중에 또 봅시다. 바이바이!"

종혁은 다시 최종철을 틀어쥐며 공항 안으로 들어갔고, 이를 뿌드득 간 린치는 쿵쿵 발을 구르다 차에 올랐다.

갑자기 불어왔던 자연재해도 사라졌으니 이제 다시 업무에 매진할 시간이었다. 다시 팀장으로서, 왕으로서 말이다.

발레리 등 SVR만 제외하면 이제 방해할 사람이 없는 이곳에선 린치 그가 왕이었다.

"흐흐. 발레리 그놈을 어떻게 쫓아내야……."

띠리링! 띠리링!

"예. 린치입니다."

-린치 요원? 본사로 복귀하라는 명령입니다.

"예? 하, 하지만 난 아직 할 일이……."

뚝!

왜라는 의문은 의미가 없다. 그런 걸 세심하게 알려 줄 조직이 아니니까.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다시 병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FUCK-!"

린치의 울부짖음이 국제공항을 꿰뚫었다.

*   *   *

"최종철-!"

"어?"

"우와."

사람이 난다. 그것도 대한민국 수십만 경찰의 정점인 경찰청장이 날아 이단옆차기를 날린다.

빠아악!

"어이쿠!"

‘브라보.’

짝짝짝!

종혁과 오택수는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고, 최재수는 그대로 얼어 버렸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어떻게! 친척한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악! 아저씨! 아악! 그, 그게……."

"닥쳐, 이 개새끼야! 누가 네 아저씨야!"

왕년의 가락을 자랑하듯 이곳저곳 안 밟는 곳이 없을 만큼 잘근잘근 밟는 최기룡 경찰청장.

종혁과 오택수는 서로를 봤다.

‘말리죠?’

‘응. 가자.’

둘은 경찰청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에헤이, 청장님!"

"여기 로비입니다. 패도 올라가서 패세요! 자자, 진정하시고."

"종혁아…… 정말 네 덕분에, 네가 아니었으면……."

종혁이 냄새를 맡지 않았으면 얼마나 큰 피해를 봤을까.

종혁은 충렬공파 전체를 구한 거다. 최기룡 본인까지도 말이다.

"예, 예. 알겠으니까 일단 올라가세요. 직원들이 보고 있잖아요."

최재수를 비롯해 로비에 자리하고 있던 경찰들은 언제나 점잖던 최기룡의 거친 푸닥거리를 보곤 얼어붙어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최기룡은 신색을 가다듬었다.

"허흠. 최 경위."

"경위 최종혁."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개새끼 데리고 올라와. 내가 직접 취조할 테니까!"

‘……와우.’

최종철은 이제 진짜 죽었다고 봐야 했다.

종혁은 넝마가 되어 버린 최종철을 일으켜 세우며 앞서가는 최기룡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일명 최종철 투자 사기 사건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정말 한잔 안 할 거야?"

최종철을 잡아 왔다지만, 공식적으론 오늘까지 휴가다.

종혁은 아쉬워하는 오택수의 어깨를 잡으며 풋풋하게 웃었다.

"지금부터라도 부부 관계 개선하고 싶으면, 그거 가지고 집에 들어가셔서 오늘 하루 봉사하세요."

종혁은 공항에서 사게 한 지갑을 가리켰다.

며칠 만에 집에 들어가는데, 그것도 해외에 다녀왔는데도 빈손으로 들어가려던 미친 인간 오택수.

"야, 나 내 마누라랑 사이좋거든? 죽고 못 살거든?"

"개소리 마시고요. 경찰이랑 경찰 마누라 관계가 어떻게 좋을 수 있어요. 그냥 의리로 사는 거지."

"……씨발. 찌개에 쐬주가 땡기는데."

"그건 내일 드시고요. 최 순경도 집에 가면 할머님께 봉사해. 오늘 하루 레스토랑 같은 곳에도 가고, 어?"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같이 사는 최재수.

"우리 할머니 그런 거 안 좋아하는데……."

"너도 개소리하지 마. 여자는 다 똑같아. 네가 부담 될까 봐 차마 부탁을 못 하시는 거지."

"……."

종혁은 입을 다문 두 멍청이의 어깨를 두드리곤 차에 올랐다.

"그럼 내일 웃으며 봅시다!"

종혁은 그렇게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점심때라서 그런지 차가 막힘없이 나아가는 도로.

종혁은 보조석에 둔 종이백 세 개를 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엄마만 데리고 외식을 하러 갈……."

-서울과 경기도에서 이십대 여성들의 실종이 급증하고…….

종혁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낯빛을 굳혔다.

회귀 전에도 이맘때 갑자기 아무런 징조도 없이 급증했던 이십대 여성 실종 신고.

혹여 섬으로 팔려 간 건 아닐까, 장기 적출을 당한 건 아닐까 경찰들이 전국을 이 잡듯 뒤졌지만 끝내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다.

그에 결국 경찰은 우연이 겹쳐져 실종자가 급증했을 뿐, 단순 실종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윤영철 이 새끼가 한 짓인가 싶었지만 아니었지.’

채팅 연쇄 살인마, 윤영철.

종혁은 그가 벌인 일은 아니었을까 예상했지만, 이놈은 해당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정말 우연인 걸까.’

이번에는 회귀 전과 달리 곳곳에 CCTV까지 설치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실종자들에 대한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찝찝함을 지울 수 없는 건.

잠시 생각에 잠겼던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납니다. 그 여성들에겐 문제없습니까?"

실종자들 가운데 종혁이 기억하는 몇 명의 여성들. 그는 흥신소에게 부탁해 그녀들에게 감시를 붙여 놓은 상황이었다.

-예. 아직까진 별문제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계속 감시해 주세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대판 깨지겠네."

이유가 어떻든 뉴스를 탔다.

오늘은 든든한 아군이었던 최기룡 청장이 내일은 악마로 돌변할 거다.

"그냥 내일도 출근하지 말……."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무려 DMB를 지원하는 핸드폰에서 노래 벨소리가 흘러나온다.

"어?"

발신자를 확인한 종혁은 환하게 웃었다.

마침 신호 때문에 정지한 종혁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

종가의 할머니다.

-최 청장에게 말 들었다. 그게 정말이니?

"……어이구."

‘그걸 또 왜 말하셨대.’

-고맙다. 정말 고마워. 정말 종혁이 네가 아니었으면…….

종혁은 물기가 서린 그녀의 음성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 신호다.’

깜빡이를 켠 종혁은 핸들을 돌리며 액셀을 밟았다.

"할머니, 저 지금 운전 중이거든요? 이따가 다시 연락드릴…… 어?"

정말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쿠웅!

접촉 사고가 일어난 건 말이다.

직진 차선의 차량이 갑자기 우회전에 끼어들며 대각선에서 뒷자석 쪽을 들이받은 사고.

‘씨발?’

"이따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으응. 그래. 그렇게 하렴. 정말 고맙다. 고마워.

"아니에요!"

다급히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염병. 지랄 났네."

그래도 공업사에 들어갈 수준은 아니다.

무시해도 될 법한 경미한 접촉 사고.

일단 핸드폰으로 사진부터 찍은 종혁은 옆 차에서 슬그머니 내리는 이십대 남성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아니, 왜 직진 차선에서 우회전을 합니까!"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제가 초보라서!"

창백한 얼굴로 연신 허리를 숙이는 왜소한 체구의 남성.

이제 군대나 다녀왔을까. 아니, 빡빡머리를 보니 아직 복무 중일지도 몰랐다.

순간 수호가 떠오른 종혁은 마음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하아…… 됐습니다. 그냥 가세요."

"아, 아뇨! 그래도 수리는 하셔야죠!"

"수리는 무슨."

부분 도색만 하면 될 수준이다.

"아니요! 그럴 순 없죠! ……나중에 신고하실 수도 있으니까."

종혁은 그의 기어 들어가는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빵! 빵빵!

"야, 이 씨발! 도로 전세 냈냐!"

"차 빼, 이 새끼들아!"

"……하아. 그럽시다. 그래요. 일단 갓길로 옮깁시다."

‘지가 알아서 돈을 쓰겠다는데, 뭐.’

결국 종혁은 사내가 잘 안다는 근처 공업소에 차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됐죠? 이제 안심하세요?"

"죄,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 타신 차가 너무 고가라서 제 벌이로는……."

"예. 이해합니다."

확실히 90년대식 승용차나 어수룩한 옷차림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젠 중고차 시장에서도 발견하기 힘든 엘란트라.

‘아마 부모님께 물려받은 거겠지. 아니면 부모님 차거나.’

고개를 저은 종혁은 공업사 직원을 보기 위해 몸을 돌리다 낯익은 뒤통수를 발견하곤 의아해했다.

"어라?"

종혁의 목소리가 커서인지 고개를 돌렸던 이십대 후반 사내도 화들짝 놀랐다.

"건물주 아드님?"

"707호 형님?"

정혁 빌딩 707호에 사는 입주민인데, 작은 PC방을 운영중인 걸로 알고 있다.

"와, 이게 무슨 우연이래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요 앞에서 접촉 사고가 나서요."

"헉. 이번에 큰맘 먹고 차 바꿨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저게 그 차구나."

BMW 재작년 모델.

"아드님은요?"

"저도 사고가 나서……."

종혁은 말을 하다가 눈을 껌뻑였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둘은 서로를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그 사거리가 사고 다발 지역이었나?’

"그럼 그 옆에 계시는 아저씨가?"

"예."

"에고. 힘내십시오. 아, 집에 가시는 길이면 같이 가실래요? 택시비는 뿜빠이로."

"그럴까요?"

씩 웃은 종혁은 공업사 직원을 봤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내일까지 말끔하게 끝내 놓겠습니다!"

"몇 번 문지르면 끝일 텐데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하하. 원래 도색이라는 게 마르는 시간도 있어서요. 감쪽같이 해 놓을 테니 맡겨만 주십시오! 아, 그리고 만 원만 주시면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데……."

종혁은 대답 대신 2만 원과 차키를 내밀었다.

"여기 공업사 서비스 좋네요. 저 형님 것도 같이 해 주세요."

"아, 아니!"

"입주민 서비스입니다."

707호 청년은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고,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2만 원을 받아 들었다.

종혁은 사고를 낸 청년을 봤다.

"앞으론 잘 살피면서 다니세요."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손을 저은 종혁은 공항에서 산 선물을 챙겨 들고는 707호와 도로로 향했다.

‘아, 나 방금 꼰대 같지 않았나? 음…….’

종혁은 도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택시-!"

그렇게 종혁의 하루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   *   *

역시나 다음 날, 본청에 있는 수사과 대장들은 청장실로 불려 가 조인트를 까이고 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리갈굼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이맘 때 일어났어야 하는데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한 사건이었다.

한 연예인의 자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연예인 스폰서에 대한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게 만든 사건이다.

그런 그녀에게 감시를 붙였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흠. 삼성클럽을 일망타진해서 일어난 나비효과려나?"

정말 그렇다면 너무나 다행이었다.

‘이런 나비효과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종혁은 미소를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왔니? 밥은?"

"먹었어요. 엄마는요? 별일은 없었고요?"

"시간이 몇 신데 당연히 먹었지. 별일도 없었고."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저녁 8시. 오늘도 정시 퇴근은 없었다.

"철이랑 희야는요?"

"희야는 애들이랑 논다며 놀이터 갔고, 철이는 잠시 뭐 좀 살 게 있다고 밖에 나갔어."

"알았어요. 그럼 전 씻고 올게요."

"커피 타 줄까?"

"커피 말고 바나나 주스! 감사합니다! 아, 엄마. 종가 할머님이 언제 한번 같이 내려오래요. 맛있는 거 해 주신다고. 좋은 분이니까 생각해 봐요."

고정숙은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고, 저게 반쯤 허락인 걸 알고 있는 종혁은 피식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빠!"

호다닥! 폴짝!

"어이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전속력으로 달려온 순희가 몸을 날리자 얼른 받아 든 종혁.

"오늘 또 늦었습네다. 순희가 보고 싶지 않았습니네까?"

이래서 딸을 낳아야 한다는 것 같다.

종혁은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서운함을 드러내는 순희의 애교에 오늘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걸 느꼈다.

"엄청 보고 싶었지. 우리 희야 너무너무 보고 싶었지!"

쪽쪽쪽쪽쪽!

위로 올려다보는 그 서운한 눈망울에 종혁은 결국 뽀뽀 세례를 날렸고.

"꺄르르르르!"

"저 정신 나간 애미나이."

순철은 잔망스런 동생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고정숙도 묘한 표정을 지었다.

참 흐뭇한 광경이지만, 부모로선 마냥 흐뭇할 수 없는 모습.

‘쟤도 결혼할 때가 됐나…….’

세월 참 빠르다 싶었다.

종혁은 그런 고정숙의 속내를 알아차렸지만, 모르는 척 소파에 앉아 바나나 주스를 쭉 빨았다.

"오빠 이것도 드셔 보시라요. 순희가 잘랐시오."

"그래? 어이구. 희야가 잘라서 더 맛있는데? 뇸뇸뇸."

"꺄르르!"

"얼른 안 내려오네? 형님 힘들게 뭔 짓이네!"

"오빠, 힘듭니까?"

"그냥 철이가 질투하는 거야."

"아, 아닙네다!"

"……에효. 그런 거라면 말하지 그랬시오. 이거나 처드시라요."

"아, 아니! 웁?!"

결국 과일 한 조각이 입에 박힌 순철은 불퉁한 얼굴로 턱을 움직였고, 종혁은 킬킬 웃다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근데 그건 뭐냐? 4월에 있을 검정고시 예상 문제 뽑은 거야?"

종혁은 순철의 옆에 놓인 A4 뭉치를 가리켰다.

"아, 아무것도 아닙네다!"

"음? 뭔데. 줘 봐."

"저, 정말 아무것도…… 앗!"

뺏듯 가져온 종혁은 피식 웃었다.

운전면허 예상 문제집이었다.

"뭐야. 차 사려고?"

"그, 그거이……."

"설마 여자친구 생겼어?"

"무, 무슨! 그거이 아니라!"

순철은 어느새 몰린 시선들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후. 저희 남매가 형님과 아주마이에게 신세를 많이 지잖습네까. 그래서 형님 안 계실 때 아주마이가 혹시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종혁과 고정숙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는 순철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들었니? 좀 배우렴."

"이렇게 변화구가 들어온다고?"

"셔럽."

억울해한 종혁은 둘의 대화에 안절부절못하는 순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네. 그럼 앞으로 우리 엄마 부탁할게."

"그, 그거이……."

"좋아! 그럼 우리 기특한 철이를 위해 선물을 줘 볼까?"

"예? 아, 아니……."

"따라와, 인마."

종혁은 순철의 어깨를 치며 일어나 지하 주차장 2층으로 향했다.

"어, 어둡습네다."

"기다려 봐."

종혁은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파바바바방!

불이 켜지면서 드러난 온갖 명품 차들의 향연.

"와아!"

"……이, 이거이 다 뭡네까?"

"뭐긴. 다 형 차들이지. 아무거나 골라잡아!"

"예에?!"

순철은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했지만, 거듭된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차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남자는 남자인 듯 온갖 차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순철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형님, 원래 이 자리엔 차가 없습네까?"

"응?"

고개를 돌린 종혁은 눈을 깜빡였다.

줄줄이 서 있는 차와 차 사이의 빈 주차 공간.

"아, 맞네. 저거 안 가져다 놨네."

어제 공업사에서 지하 1층에 주차시켜 놨다고 말한 차가 있어야 할 공간이다. 깜빡 잊었던 종혁은 생각난 김에 가져오기로 했다.

"난 차 가져올 테니까 고르고 있어."

종혁은 위층으로 향했다.

"아, 저기 있…… 아씨, 깜짝아!"

종혁은 빈 주차 공간에 쪼그려 앉아 있는 707호를 보곤 의아해했다.

"거기서 뭐하세요?"

"……제 차 찾아요."

"엥?"

"없어졌어요, 제 차가. 어젯밤까지 분명 있었는데……."

방금 전 저녁 타임 근무를 위해 출근을 하려고 내려왔다가 차가 사라진 걸 알게 된 거다.

남은 거라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차키 하나뿐.

"신고는 했어요? CCTV는요?"

금방이라도 울 듯 울상을 짓던 707호는 눈을 껌뻑였다.

"CCTV요?"

"저거요."

"……!"

"일단 CCTV부터 확인하죠."

종혁은 그를 데리고 관리실로 향했다.

그리고.

"예. 차량 도난 신고를 하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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