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86화>
씻고 로비의 카페로 내려온 종혁은 피식 웃었다.
서로 마주 보며 앉아 말없이 커피를 홀짝이는 나탈리아와 헨리의 사이에 불꽃이 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그락!
"서운해요, 최."
나탈리아가 눈을 흘기자 종혁은 항복이라며 양손을 들었다.
"나도 말하고 나서 아차 싶더라고요. 권 이사가 갑작스레 찾아오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거든요."
"……거짓말인 걸 알지만 믿어 줄게요."
"하하."
헨리 스미스는 친한 둘의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그동안 그들 CIA가 잘못 파악하고 있던 정보였다.
‘빌어먹을! 선후가 바뀌었다니!’
러시아 최고위층과 연관돼서 권&박 홀딩스를 만든 게 아니라, 권&박 홀딩스의 주인이기에 러시아 최고위층과 연관된 거다.
러시아 최고위층이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권&박 홀딩스를 만든 게 아니었던 거다.
이 말은 즉 종혁은 고작 한국 나이로 17살에 IMF를 예견하고, 러시아 모라토리엄을 예견했단 소리다.
그 증거가 바로 어제 종혁이 한 발언이다.
하나 된 중국.
듣는 순간 토악질이 나올 뻔한 문장.
‘괴물!’
종혁은 괴물이었다.
저릿저릿!
그는 온몸을 내달리는 소름에 주먹을 꽉 쥐었다.
나탈리아는 그런 헨리 스미스를 보며 혀를 찼다.
‘오해해 줘서 좋았는데…….’
결국 진실이 알려지게 됐다. 그것도 결코 들키고 싶지 않았던 CIA에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친구인 종혁의 선택이다. 존중을 해 줘야 했다.
그리고 어차피 끝까지 들키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빨리 들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탈리아는 이에 대한 작은 원망을 담아 종혁을 노려봤고, 종혁은 다시 항복을 했다.
"하아."
"하하."
"웃지 마요."
재차 째려본 나탈리아는 이내 곧 낯빛을 굳혔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기엔 어제 종혁이 한 발언이 너무 강렬했다.
"그래서 하나 된 중국이란 말은 대체 뭘 뜻하는 건가요?"
헨리 스미스도 눈을 빛냈다.
종혁은 그들의 눈에 담긴 감정을 읽곤 제 몫으로 나온 커피를 홀짝였다.
"두 정보 기관에서 예상한 게 맞을 겁니다."
둘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헨리 스미스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중국이 10억 인구의 시장을 오픈해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겁니까?"
10억 명의 시장. 당연히 엄청나다.
아마 세계 각국 기업들은 너도나도 중국에 진출할 것이다.
또 진출하고 있다.
깃발만 꽂으면 10억이란 고객이 생기는데 그 어떤 바보가 움직이지 않을까.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중국의 경제는 분명 활성화될 겁니다. 그러나 중국은 절대 대국으로 발돋움하진 못할 겁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역량이 없습니다."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업 사회였던 중국.
제아무리 10억의 시장이 있다고 해도 기술과 인프라가 없는데 어째 대국이 될까.
미국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웬만큼 성장할 때까지, 즉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날 때까지 최소 30년은 걸릴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이런 스미스의 말에 종혁은 피식 웃었다.
"스미스 씨,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
"개발도상국 수준이라고요? 그게 뭐 어때서요?"
인프라가 부족하다면 만들면 되고, 기술이 부족하다면 탈취하면 된다. 중국 내에 진출한 세계 유수 기업들에게서 뺏으면 된다.
"그걸 기업들과 미국에서 지켜볼 것 같습니까?"
"지켜보지 않으면요?"
"무슨!"
"그땐 이미 10억 시장이란 마약에 중독되어 버린 후일 텐데,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포기 못하죠. 기술보다 10억 개의 물품을 파는 게 더 이득이니까. 기술이 유출된다고 해도 핵심만 아니라면 눈을 감아 버릴 겁니다."
종혁은 입을 다무는 둘의 모습에 손을 저었다.
"뭐 이건 일단 넘어가고, 아무튼 현재 중국은 사회주의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중입니다."
나라가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
나라의 이득이 곧 네 이득이다.
"참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실제로 10억 인민들은 현재 그 효과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월급이 오르고, 일자리가 생기고, 편의점이나 병원 등 편의 시설이 생기는 중이죠."
"자, 잠깐! 그 말은?"
"체제 굳히기를 한다는 건가요, 최?!"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 주석의 정권 내내 중국은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룩할 겁니다. 아메리칸 드림, 한강의 기적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사업에 뛰어들게 될 테고, 또 성공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정부를 찬양할 수밖에 없죠. 아니, 신격화를 할 테죠."
"실제로 삶의 질이 달라질 테니까요.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지지를 보내게 될 겁니다. 10억의 인구가."
월에 100달러도 못 벌던 애들이 120, 150 달러를 벌고 있다. 기본 소득이 20퍼센트에서 50퍼센트까지도 상승한 거다.
심지어 상승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될 터.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기에 이제부터 중국은 자국민의 소비를 부추길 거고, 온갖 명목의 세금을 붙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막대한 자금이 중국 내를 돈다는 뜻이다.
"정부가 이 돈을 가지고 뭘 하겠습니까?"
"……인프라 형성."
"눈을 감았다 뜨면 공장이 생기고, 도로가 생기고, 아파트가 올라가고. 또 감았다 뜨면 발전소가 생깁니다. 발전하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 겁니다."
"맙소사."
10억 명의 인구가 단합을 한다.
이보다 무서운 말이 있을까.
헨리 스미스는 종혁의 말이 허황된 망상이길 바랐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의 인구 전체가 단합했을 때 어떤 끔찍한 결과가 나오는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독일 나치! 소비에트!’
세계의 패권을 다퉜던 나라들이다.
배가 찢어질 듯 고프고, 곳곳에서 아사자와 동사자가 나오는데도 모든 힘이 다 할 때까지 밀어붙이고 또 밀어붙여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나라들.
"하지만 아직 중국엔 지식인들이 남아 있습니다! 만약 최의 말처럼 된다고 해도 그들이…… 빌어먹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기본이 뭐던가.
바로 정보의 통제다.
중국은 앞으로도 계속 프로파간다를 할 것이고, 그에 세뇌가 된 일반 시민들은 그런 지식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거다.
아니, 공감한다고 해도 외면할 거다.
왜? 삶이 풍족해지는 게 하루하루 체감되니까.
더욱이 지금은 미디어의 시대다.
중국에 컴퓨터 보급화가 이뤄진다고 생각하자 헨리 스미스는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그건 나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그다음으로 중국 정부는 뭘 할까요."
"기술을 배우겠죠. 10억 인민이……."
그렇게 되면 중국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속도로 기술을 습득해 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술을 배운 이들은 해외에서 많은 돈을 벌어 올 것이고, 그 돈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또다시 일자리 생성과 인프라 형성에 쓰일 거다.
여기까지 말한 종혁은 헨리 스미스를 봤다.
"이래도 개발도상국을 벗어날 때까지 40년이나 걸릴 것 같습니까? 전 길어야 10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꿀꺽.
"나탈리아, 아니 러시아가 왜 당신을 그리 숨겼는지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최종혁은 괴물이란 단어 따위로 설명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그러나 종혁의 말은 아직 안 끝났다.
"하지만 이건 결국 시작에 불과하죠."
"무슨…… 헉! 반분열국가법?! 아니야! 말도 안 돼! 어떻게 고작 그 법률 하나로 거기까지 예측을 한단 말이야!"
종혁은 화를 내는 헨리 스미스와 경악하는 나탈리아를 보며 냉소를 지었다.
"예. 대만은 시작일 뿐입니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를 통해 서쪽으로의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 타이밍에 그런 법을 통과시킨 거겠죠."
훗날 경제 대국을 이룩했을 때 시작될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말도 안 되는 계획.
종혁은 그걸 말하고 있었다.
* * *
"……."
그들 셋만 있는 카페에 적막이 가득하다.
너무 엄청난 걸 들은 헨리 스미스는 그 피로에 퍼져 버렸고, 나탈리아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종혁은 그들이 그러건 말건 커피를 홀짝일 뿐이었다.
‘아, 미지근해졌네.’
"대체 왜……."
"음?"
"대체 왜 이런 걸 알려 준 겁니까?"
러시아에게만 알려 줬어도 될 일이다.
종혁은 그렇게 묻는 헨리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였다.
‘싫어서.’
중국이 싫어서다. 동북공정도 모자라, 김치와 한복까지 자신들의 것이라 우기는 중국이 그냥 싫어서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순 없었다.
"어차피 못 막을 테니까 대비하라고요."
두 나라가 합심해서 막는다고 해도 막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 분명히 엄청난 이득은 볼 수 있을 터.
"호오. 이득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는 헨리 스미스는 눈을 빛냈고, 숨을 고른 나탈리아는 나른하게 웃었다.
"최는 우리가 최대한 많이 뜯어먹길 바라는군요."
‘정확히는 우리 러시아가.’
러시아만 달려든다고 해서 얼마나 이득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 판에 미국이 끼어들어 함께 흔들고 휘젓는다면?
러시아는 보다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만약 나를 통해 미국에 전달됐다면, 미국은 절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을 거야.’
거기까지 생각한 나탈리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상의 없이 CIA를 불러온 것을 경솔하다 생각했던 바로 어제의 자신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종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싱긋 웃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하루라도 더 더뎌질수록 좋은 판이잖아요. 좋은 건 서로 나누며 사는 거죠."
"최……."
‘후. 역시 무리해서라도 미국인으로 만들었어야 했나?’
헨리 스미스는 감동하는 나탈리아를 보며 혀를 찼고, 종혁은 그런 둘을 보며 눈을 빛냈다.
"어떻게 제 망상은 도움이 되셨습니까?"
"돌아가 상의를 해 봐야겠지만……."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을 진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럼 수고비, 아니 자문료를 지불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물론 자문료는 넉넉하게……."
"CIA랑 SVR 좀 씁시다."
"……예?"
종혁은 씩 웃었다.
* * *
달마저 구름에 가려져 어두워진 보카 지구.
솨솨솩!
전신을 검은색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소총을 앞세운 채 복잡한 골목길을 빠르게 나아간다.
그때였다.
그들 옆의 문이 열리며 한 소년이 걸어 나오며 기지개를 켰다.
그러며 집 안에서 쏟아져 나온 빛이 어둠에 잠겨 있던 그들을 비춘다.
"힉?!"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중 한 명이 손짓하자 양손으로 입을 막은 채 고개를 연신 끄덕인 소년은 안으로 들어갔고, 곧 소년의 집은 TV 소리마저 꺼지며 적막에 빠졌다.
그러자 그들은 다시 나아갔다.
이 소년뿐만 아니다.
사신이 왔음을 눈치챈 보카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숨을 죽였고, 그에 그들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She will wear you out linvin‘la vida loca!
9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라틴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어느 파란 집의 옥상.
슬쩍 고개를 들어 살핀 한 사람이 뒷사람들에게 수신호를 보낸다. 그에 몇 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지나쳐 위로 올라가고 옆으로 흩어진다.
죄다 가파른 경사에 지어진 집이라 조금만 올라가면 옥상이 마당이 되는 보카 지구.
대원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귓가에 손을 가져간 그들의 대장은 입술을 달싹이다 다물었다.
‘빌어먹을! 내가 왜!’
고작 삼십대의 나이에 하나의 현장을 책임지는 팀장이 됐다. 그런데 새파랗게 어린, 그것도 CIA 고위 간부도 아닌 한국 경찰 따위의 명령에 빈민가 삼류 갱이나 잡으러 왔다.
명령이야 헨리 스미스가 내렸지만, 그 타이밍이 종혁과의 대화를 마친 이후다. 뻔할 뻔 자였다.
얼굴을 와락 구기며 발을 동동 구르던 린치는 빤히 응시하는 대원들의 눈빛에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진입."
후다다닥!
그들은 옥상이자 마당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며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축구 경기가 한참인 TV를 보며 맥주를 마시던 이들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여자들의 경악하는 게 비춰진다.
그렇기에 그들은 단호하게 외쳤다.
"꼼짝 마!"
"엎드려!"
"헉!"
"으악!"
"엎드려! 엎드리라고!"
"팔 뒤로 해!"
"아, 알았어요! 쏘지 마!"
대원, 아니 CIA 요원들과 함께 올라온 아르헨티나 경찰특공대원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바닥에 엎드려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리자 긴장을 살짝 풀었다.
"제압 완료. 올라오면 됩니다."
평소처럼 옥상에서 음악과 축구와 맥주를 즐기다 횡액을 맞은 앤디 패거리들은 그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대체 어떤 놈이 누굴 건든 거야!’
‘우린 마약도 안 파는데!’
요 사이 크게 잘못한 게 없어서 의아하고 억울한 그들.
그런 그들을 향해 아래에서 누군가, 아니 종혁이 걸어 올라왔다. 오택수, 최재수와 함께 말이다.
느긋이 걸어 올라와 거수경례를 한 종혁은 낯익은 옷차림을 한 앤디를 발견하곤 눈살을 찡그렸다.
‘옷 좀 갈아입지.’
고개를 저은 종혁은 앤디에게 걸어가 그 머리맡에 주저앉으며 앤드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야, 고개 들어 봐."
"……헉! 너, 너는? 너희는?"
"일단 가르시아가 곧 올 거거든? 물론 지금 너희가 이렇게 엎드린 것처럼 타의로."
"무, 무슨……! 대체 왜!"
종혁은 발뺌하려는 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왜긴. 묻고 싶은게 많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우선 먼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뭐, 뭘……."
"혹시 이 사람 어디 사는지 아냐? 알면 살려는 줄게."
종혁은 사진을 보여 줬다.
훗날, 최종철이 중국으로 도주했다는 걸 알려 준 그 여성 직원의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