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85화 (18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85화>

55. 수고비

"다, 다신 이 동네에 오지 마. 이건 그 조언의 수고비야! 하하핫!"

앤디 패거리가 물러나자 종혁들은 곧바로 몸을 돌려보카 지구를 빠져나왔다.

부우웅!

"잘했어! 아까 거기서 반항했으면 벌집이 됐을 테니까!"

가르시아가 칭찬을 하자 종혁과 오택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러나 최재수는 달랐다.

"씨발, 씨발……."

종혁은 분에 못 이겨 떠는 최재수를 보며 씁쓸히 웃었다.

‘오늘 일이 좋은 경험이 될 테지…….’

일반 관할서 형사라면 총에 익숙해지지 않아도 된다. 한국은 총기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나라니까.

그러나 수사에 거리와 성역이 없는 특수범죄수사과는 그래선 안 된다. 광역수사대, 마약수사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범죄자를 쫓아 해외까지 나올 수 있는 특별수사과들은 총기나 칼 등 여차하면 사람 목숨을 뺏을 수 있는 흉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내 몸을 지키면서 범죄자를 검거할 수 있다.

최재수가 어떤 의도로 특수범죄수사과를 희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온 이상 무조건 이겨 내야 할 문제였다.

‘이겨 내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초짜인 최재수를 배려하려다가 동료가 다칠 수 있기에 종혁은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택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도 일단 잘했어, 최재수.’

최재수가 발견한 그 여성.

아이언 루카의 직원.

하지만 그냥 직원이 아니다. 훗날 최종철이 중국으로 도주했다는 걸 알려 준 그 직원이었다.

‘그 여자가 보카에 살았다니!’

조시가 조사한 정보와 다르다.

하지만 더 좋다.

범죄 따윈 밥 먹듯 일어나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빈민가 보카 지구. 그 누가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을까.

그들이 딱 원하던 인물상이었다.

‘정말 잘했어!’

최재수의 발견이 아니었으면 꽤 시간을 낭비할 뻔했다.

종혁은 좀 있다가 칭찬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였다.

삐리링! 삐리링!

맹렬하게 울리는 가르시아의 핸드폰.

"음……."

망설이던 가르시아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내가 곧 다시 전화할게."

가르시아는 그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고, 종혁은 슬그머니 물었다.

"무슨 전화야?"

"아, 친구."

‘친구긴. 앤디란 놈이겠지.’

둘이서 눈빛을 주고받던 게 얼마나 요란하던지, 모른 척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무래도 이제야 종혁이 뿌린 씨앗이 앤디의 귀에 들어간 것 같았다.

"어흠. 그럼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다른 곳으로 안내해 줄까?"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숙소로."

"흐흐. 역시 총기를 심하게 단속하는 한국에선 이런 상황이 드물지? 여긴 일상…… 오우, 알았어.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쯧."

‘아주 최종철에게 의뢰를 받았다고 광고를 해라, 해.’

아르헨티나 사람인 가르시아가 그런 한국의 사정을 어떻게 알까. 고개를 저은 종혁은 창밖을 바라봤고, 그런 그들을 태운 차는 빠르게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맞이한 건 조시였다.

"최-!"

종혁은 화가 단단히 난 그녀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왜 보카에…… 후우. 일단 전화부터 받아요."

"전화? 누구요?"

종혁은 의아해하며 그녀가 건넨 핸드폰을 받았다가 기겁했다.

-최- 종- 혁-!

‘권 이사?!’

아무래도 조시에게 잔소리를 듣기 전에 권 이사에게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눈앞이 암담해졌다.

그런데…….

-너 거기 어디야? 아니 거기서 딱 기다려! 지금 가고 있으니까!

"응? 어딜? 여길?"

‘왜?’

당황한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한편, 호텔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가르시아는 앤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르시아, 확실히 말해! 정말 2천만 달러가 맞아?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난 운전만 해 주는데 2만 달러를 약속받았어."

-미친! 정말이었다니!

앤디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일단 우리나라로 도망친 듯한 그 범죄자 놈이 가진 2천만 달러에, 한국 놈이 가진 돈까지 가질 수 있다면?’

앤디는 온몸을 내달리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이걸 다 꿀꺽하기 위해선 정보가 더 필요해!’

-가르시아!

그 급박한 외침에 가르시아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장소만 만들어. 내가 데려갈 테니까. 대신 50 대 50이야."

-……좋아. 장소 만들면 연락하지.

그렇게 그들은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   *   *

지금 가고 있다는 권아영의 말은 진짜였다.

쿵! 쿵! 쿵!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입에 집에 넣다가 심상치 않은 기세에 고개를 돌린 종혁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권아영을 발견하곤 눈을 껌뻑였다.

"어?"

분명 웃고 있는데, 웃고 있지 않는 것 같은 권아영은 다가오자마자 종혁의 귀를 낚아챘다.

"아! 잠깐, 잠깐!"

"내가 못살아, 정말! 거기가 어디라고 들어가긴 들어가?! 호호, 종혁이 직장 동료분들이시죠? 잠시 이놈 좀 데려갈게요? 따라와!"

"잠깐! 잠깐만요!"

종혁은 살려 달라 오택수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는 신경을 끄며 다시 스테이크를 썰었고, 최재수는 세상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그렇게 레스토랑에서 끌려 나와 엘리베이터에 오른 종혁은 툭 그녀의 손을 걷어 냈다. 그런 그의 표정에선 당황을 찾아볼 수 없었고, 권아영은 황급히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보스."

종혁은 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형사 일이 위험하다는 걸 아는 권아영이다. 그런데 고작 빈민가를 들어간 일로 이렇게 찾아온다?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다 보스 얼굴을 잊을 것 같아서요."

"음?"

"우리가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은 해요?"

"……이런."

생각해 보니 작년 방범벨 제품 설명회 때 본 이후로 처음이다.

벌써 반년이 넘게 흘렀다. 박태규는 벌써 1년이 넘었다.

‘내가 너무 무심했군.’

"미안합니다. 일이 바빠서 미처 그 생각은 못했습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아무리 권아영이 자신의 사람이라고 하여도 자주 얼굴을 봐야 했다.

"후훗. 농담이에요. 내가 보스 바쁜 걸 모를까요."

"……그럼?"

권아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중국이 반분열국가법이란걸 통과시키려 하고 있어요. 이전과 달리 진심으로."

씨익!

종혁의 입술이 뒤틀렸다.

"조용한 곳으로 가죠."

종혁은 스카이라운지 버튼을 눌렀다.

반분열국가법.

대만을 겨냥한 독립 금지법이다.

애초부터 대만을 별개의 나라라 인정하지 않던 중국이라 특별할 것 없는 일이지만, 종혁은 2003년 중국의 주석이 바뀌면서 외자유치 등 중국 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자 이 일을 경고했었다.

그런데 딱 이것만 말했다.

그래서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달려왔던 거다.

"자, 이제 말해 봐요. 그 머릿속에 대해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해 죽겠다는 그녀의 모습에 푸흐흐 웃은 종혁은 푸른빛깔의 음료를 쭉 빨았다.

"권 이사는 이걸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이제 좀 먹고살 것 같으니 그간 골칫덩이였던 걸 정리한다고 생각했나요?"

권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중국이 2003년부터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 그럴 타이밍이 아니죠."

당장 현 주석이 집권하기 전까지 1인당 GDP가 1,000달러 미만 수준이었던 중국이다.

싼 인건비라는 무기로 해외 기업들의 하청 제조업 공장만 있는 중국이기에 이제야 숨통이 트인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으로 치면 자취생이 맨날 김치에 밥만 먹다가 겨우 계란프라이를 추가한 수준.

그래서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경제 성장만 보고 달려도 부족할 판에 내부에 우환거리를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종혁은 얼른 말하라 재촉하는 그녀를 보며 검지를 들었다.

"하나 된 중국."

"하나 된……."

벌떡!

"서, 설마?!"

‘하나 된 중국’이라는 키워드에 온갖 생각이 폭죽처럼 터진다.

"그, 그 말은 십억이 넘는 중국 인구가 하나가 되어 경제 성장을 이룩하겠다는 건가요?"

"예. 중국 정부는 단순히…… 흠……."

"보스?"

잠시 생각하던 종혁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듣고 있으면 나오시죠."

"……?"

"안 나오면 여기까지고."

"대체 무슨……."

의아해하던 권아영이 뭔가를 깨닫고 주변을 둘러보던 그때였다.

저벅저벅!

권아영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여성을 보곤 입을 떡 벌렸다.

"……조시?"

"미안해요, 권."

사과한 그녀는 종혁을 보며 어제처럼 매혹적인 눈웃음을 지었다.

"흐응. 어디서부터 들킨 건지 모르겠……."

"됐고. 당신 상관 오라고 해요."

"……!"

‘어딜 요원 따위가.’

종혁은 심드렁히 그녀를 응시했다.

*   *   *

달그락!

헤드셋을 내려놓는 소리만 울리는 객실.

5명의 남녀가 당황하며 한쪽에 앉아 있는 삼십대 백인 남성을 본다.

머그컵을 든 채 굳어 있던 그는 머리를 붙잡으며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대체 어디서 들통 난 거지?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억을 뒤지던 그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드폰을 들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린치입니다. 최에게 들켰습니다."

-……내가 너무 어려운 걸 부탁했나 보군.

"아니, 그게……."

-곧 갈 테니까 정중히 모셔. 아무것도 묻지 말고.

"대체 이 최라는 인물은 누구입……."

달칵!

"FUCK-!"

쿵쿵 발을 구르던 린치는 기함하며 쳐다보는 팀원들의 모습에 이를 악물며 몸을 돌렸다.

"다녀오지."

하와이안 셔츠를 걸친 그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휘휘, 휘휘휘!"

휘파람을 불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던 그는 띵 소리와 함께 열리는 엘리베이터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닌 또래의 러시아 남성.

"……발레리."

발레리 유르고프.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사사건건 CIA의 일을 방해하는 SVR 아르헨티나의 요원이다.

그와는 앙숙이라고 할 수 있다.

"안 타나?"

"최가 러시아에 중요한 인물이었어?"

"안 타면 나 혼자 가지."

"……탈 거야."

린치는 허리 뒤춤에 손을 가져가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스르릉! 우우웅!

불편한 침묵이 가득한 엘리베이터 안.

"이봐, 발레리."

"나도 모르니까 묻지 마."

"그러지 말고……."

띵! 스르릉!

"쯧."

‘결국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나?’

그건 린치 본인의 특기다.

이십대 남성, 그것도 경찰 대학을 졸업한 지 1년도 채 안 된 애송이가 숨기고 있는 비밀 따윈 1시간도 안 되어 모두 알게 될 거다.

‘팀장님은 묻지 말라고 했지만…….’

어디 CIA가 돼서 그럴 수 있나.

야외 테라스로 향한 그는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CIA의 린치입니다. 저희 직원이 마음에 안 드셨나 보군요. 사과드립니다."

종혁은 세상 착하게 웃는 그를 심드렁히 응시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호텔 안에 있을 테니까 상관이 도착하면 찾아와요."

종혁은 발레리를 봤다.

"수영 잘해요?"

"남들만큼은 합니다."

"잘됐네요. 그럼 수영장에서 맥주나 한잔하죠."

"……알겠습니다."

"뭐해요? 가요, 권 이사."

"네? 아, 네!"

그렇게 셋은 떠났고.

"저 애새끼가……."

남겨진 린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봐요, 최! 대체 조시의 정체를 어떻게 알아차린 겁니까! 예?!"

이대로 물러난다면 CIA라고 할 수 없었다.

한편 수영장으로 내려온 권아영은 다급히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CIA라뇨?!"

"어떻게 되긴요. 들킨 거죠."

"네?"

"내가 권&박의 진짜 주인이라는 걸."

"……네에에?!"

‘솔직히 CIA가 알 거라곤 예상 못했는데 말이야.’

종혁은 누가 올까 기대하며 상의를 벗었다.

그러나 그날 새벽까지 누군가 종혁을 찾진 않았다.

*   *   *

탓탓탓탓탓!

해가 어스름히 떠오르는 아침의 아무도 없는 호텔 피트니스 센터.

"훅! 훅!"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러닝머신을 빠르게 달리던 종혁은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힐끔 옆을 바라봤다.

옆 머신에 팔뚝에 털이 숭숭난 배불뚝이 오십대 백인 남성이 오르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린 종혁은 속도를 더 높였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종혁은 속도를 늦추며 숨을 골랐다.

그 순간이었다.

"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겁니까?"

옆에서 빠르게 걸으며 땀을 내던 장년인이 뜬금없는 말을 한다.

하지만 종혁은 당황하기는커녕 씩 웃었다.

"단서가 너무 많았죠. 사무직답지 않은 거친 손바닥이라든가, 특별한 패턴의 굳은살이라든가."

공항에서 맞잡았던 조시의 손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굳은살은 권총을 많이 쏘면 생기는 패턴과 비슷했다.

결정적인 건 아이언 루카 직원들의 프로필을 너무 쉽게 구해 왔다는 점과 특별한 감정 교류가 없었는데도 유혹하려 들었던 점이다.

"그 외에도 걷는 습관이라든가 시선 처리 등 여러 가지가 거슬렸죠. 뭐 그보단 다가오는 사람은 잘 믿지 않는 주의지만요."

"이런. 애초부터 들킬 수밖에 없었군요."

혀를 찬 장년인은 손을 내밀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어제 도착했더니 새벽 2시더군요. CIA 동아시아 관리팀의 팀장, 헨리 스미스입니다."

"……피유. 엄청난 분이 오셨네요. 최종혁입니다. 그런데 본명이세요?"

"그게……."

"본명 맞아요, 최."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에 고개를 돌린 종혁은 피식 웃었다.

"왔어요?"

"……끙. 나탈리아, 당신이 온 건가."

그렇게 앙숙이나 다름없는 SVR과 CIA가 한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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