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83화>
종혁이 이놈을 아는 이유는 단순했다. 당시 이놈을 잡기 위해 특별수사대책본부가 꾸려졌기 때문이다.
특수본이 꾸려진 것도 모자라 전국 경찰들이 이놈 하나 잡겠다고 상의 안주머니에 사진을 넣고 다녔다.
‘겨우 그 사이즈로 왜 특수본이 세워졌나 했더니…….’
연쇄살인 사건이나 아동 납치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아니면 쉽게 세워지지 않는 특수본.
이젠 알겠다.
놈이 충렬공파를 털어 버렸고, 은퇴한 최기룡 청장이 움직인 거다.
"조심히 올라가. 다음엔 꼭 어머니와 함께 오고."
어느새 말을 놓으신 할머님의 모습에 종혁은 활짝 웃었다.
"옙! 다음엔 날씨 좋을 때 올 테니까 꼭 마실 나가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시고요."
"호호. 그래, 그래. 종혁이도 김치나 장 떨어지면 말하고."
아쉬워하면서도 손을 젓는 할머님과 그런 그녀의 모습에 놀라는 종가 사람들을 뒤로한 종혁은 최기룡과 함께 차에 올랐다.
부우웅!
명절이 끝나고 복귀하는 사람들 때문에 막히는 도로 위.
"흠. 중국이라…… 아르헨티나라……."
종혁은 꽤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최기룡의 모습에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왜요? 관심 있으세요?"
"크흠. 나도 몇 달 후면 은퇴잖냐. 노후 준비해야지."
"흠. 믿을 만한 사람이긴 해요?"
"종철이는 잘 모르겠지만, 그놈 아버지는 잘 알지. 아주 강직한 사람이거든. 판사 출신이야."
같은 항렬이라서 더 잘 안다.
‘그래서군.’
이래서 친족 사기가 무서운 거다. 사기꾼이 별다른 작업을 안 해도 믿을 만한 배경이 있으니까.
보통 친족 사기는 거의 호부견자로 인해 발생한다.
종혁은 그래서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경찰청장인 최기룡마저도 그 배경에 껌뻑 넘어가 버려서 더.
"그건 믿을 만한 근거가 아니죠.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어떠냐는 게 문제죠."
"흠, 종철이의 됨됨이라……. 뭐 학창 시절엔 썩 좋지 않았지. 그래도 군대 다녀온 후엔 맘 잡고 사업을……."
최기룡의 말끝이 흐려진다.
"서, 설마. 그놈 아비가 아직도 멀쩡히 살아 있는데……."
종혁의 무심한 시선에 정신을 번쩍 차린 최기룡은 이를 악물었다.
"뭔데? 아는 게 있으면 얼른 말해 봐!"
"일단 제가 권&박 홀딩스와 안면이 있는 거 아시죠?"
"알지. 왜 몰라."
종혁의 종잣돈이 거기서 나왔다는 건 최기룡도 알고 있다.
"이모 말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에 원자재 붐이 일어난 건 맞다고 합니다. 실제로 권&박에서도 투자가 들어갔다고 하고요. 하지만 비전을 따지면, 글쎄요……."
현재 아르헨티나는 그렇게 벌어들이는 돈으로 인프라 및 기간망 사업에 투자를 하지 않은 채 돈 잔치만 열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결론은 하나다.
아르헨티나는 얼마 못 가 망해 버릴 나라라는 것이다.
"이런 걸 따져 보면 오히려 지금부터 발을 빼야 합니다."
단타로 한탕 크게 치고 빠진다면 딱 적기이긴 하지만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그냥 나가리다.
"만약 현재 타이밍에 투자를 해야 한다면 중국에 해야겠죠. 솔직히 이 타이밍도 늦은 거지만. 아니, 그보다 아르헨티나에 정말로 회사를 만든 건 맞을까요? 그 동네 치안이 거지 같아서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닌데……."
"……일단 차 세워 봐."
종혁은 가까운 휴게소에 차를 세웠고, 최기룡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담배를 뻑뻑 피기 시작했다.
종혁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오늘 본 충렬공파 종가의 모습은 판타지 세상이라고 할 만큼 이상적인 곳이었으니까.
그런 종가의 모습에 익숙해진 최기룡이기에 아마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거다.
한숨을 길게 내쉰 최기룡은 아직도 불신이 서려 있는 눈으로 종혁을 봤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한국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아르헨티나로 넘어가 회사를 세운 종철이가 지금 우리 충렬공파에 사기를 치려는 거다?"
"확실한 건 아니죠. 그분이 정말 좋은 의도로 투자를 권유한 걸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확실히 하려면……."
"거기에 직접 가 봐야겠지. 씨부럴. 좆같네."
그 비전에 혹해 퇴직금 일부를 밀어 넣을까 생각했으면서도 확인을 하려 들지 않았던 자신의 안일함과 같은 충렬공파 사람을 의심해야 된다는 꺼림칙함 등으로 인해 최기룡은 짜증이 솟구쳤다.
‘일단 알아보려고 해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가 경찰청장이라고 해도 확실한 정황조차 없는 사건에 형사를 보낼 수는 없다. 직권남용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경찰 인생에 그런 오점을 남기기 싫었다.
"제가 다녀올게요."
"야, 인마!"
"다녀오는 데 뭐 오래 걸린다고. 휴가나 며칠 더 주세요. 대신 이것 하나만 확실히 해 주세요. 청장님 부탁 때문에 가는 거 아닙니다. 그냥 제가 조른 거예요."
"대체 왜……."
"할머님을 위해서라고 치죠."
미래엔 계시지 않은 할머니.
노환이 아니라 이 일로 인해 화병으로 돌아가신 거라면?
종혁은 트렁크에 실린 김치와 온갖 장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난생처음 친족에게 받아 본 선물, 온정.
이거면 충분했다.
놈들에게 집중하던 시선을 잠시 돌리려는 이유로는.
* * *
"설을 잘…… 뭐야, 이 돼지들은? 명절 동안 뭘 어떻게 잡순 거야?"
"뭐 이 자식아?!"
"저 자식이?!"
발끈하는 특수범죄수사과 형사들을 무시한 종혁은 가장 안쪽에 있는 책상으로 향했다.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잠들어 있는 사십대 초반 중년인 하나와 그 옆에서 딱딱하게 굳은 채 눈치만 보는 멀대 하나가 새로 들여놓은 책상들을 차지하고 있다.
종혁은 눈을 감고 있는 중년인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왔구나.’
씩 웃은 종혁은 중년인이 앉은 의자를 툭 쳤다.
"여기가 안방입니까?"
"음? 어우, 너무 편해서 깜빡 졸았지 뭐냐. 의자 죽이네. 이거 얼마짜리냐?"
"에라이, 쪽팔리게 칼침 맞아서 전입이 두 달이나 늦었으면 눈치 볼 생각은 안 하고. 옆에 재수 좀 본받읍시다."
그랬다. 이 두 명은 오택수와 최재수였다.
본래 올해 초에 넘어왔어야 했는데, 인사 이동 결과 발표날 어떤 살인자를 잡다가 사이좋게 칼에 찔리면서 약 두달여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오택수보다 빨리 퇴원한 최재수는 이미 신고식을 거친 상황이다. 결과는 아슬아슬하게 성공.
오택수가 사람으로 만드는 데 성공을 한 것 같았다.
"아까 인사 다 했어, 새끼야. 이 새끼는 지가 불러 놓고 쪽을 주네? 죽을래?"
"됐고, 일어나기나 해요. 휴가니까."
"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일어나는 오택수를 일견한 종혁은 김종두 과장에게로 향했다. 오택수와 최재수가 오면서 파트너에서 물러난 김종두 과장.
"그럼 전 저 인간들 데리고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난데없는, 그것도 명절 연휴 다음 날의 휴가였지만 대충 사정을 들은 김종두는 허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즈는?"
"가서 확인해 봐야죠."
"오케이. 조심히 다녀와. 사고 치지 말고. 거기서 사고 치면 국제적 망신이다."
"아니, 내가 뭔 사고를 친다고……."
"대답."
"충성."
종혁은 그렇게 둘을 데리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부우웅!
달리는 차 안.
"어? 저희 집은 이쪽 방향이……."
당황하는 최재수를 무시한 오택수가 종혁을 보며 입을 연다.
"그래서 종목이 뭔데?"
종혁은 씩 웃었다.
역시 베테랑은 눈치가 빨라서 좋다.
"투자 사기요. 아직은 정황만. 장소는 아르헨티나."
"이야, 특수가 좋긴 좋네. 그렇게 먼 해외도 가 보고."
역시 오길 잘했다며 오택수는 사납게 웃었지만.
"서, 설마 사건입니까?! 그, 그것도 아, 아르헨티나요?!"
종혁은 놀라면서도 놀이공원에 간다는 소리를 들은 아이처럼 잔뜩 흥분하는 최재수를 가리켰다.
"저거 사람으로 만든 거 맞죠?"
"그러니까 데려왔겠…… 지?"
종혁과 오택수는 얼굴이 와락 구겨지는 최재수를 무시하며 차를 몰았다.
그렇게 인천공항에 도착해 티켓을 받은 그들은 출국게이트로 향했고, 종혁은 앞장서는 오택수를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거기로 가요? 우린 저쪽입니다."
"……응?"
종혁은 항공사의 퍼스트 라운지를 가리켰다.
둘은 눈을 껌뻑였다.
* * *
퍼스트 클래스가 처음인 최재수가 아직도 꿈에서 덜 깬 바보 같은 얼굴을 한 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국제공항의 입국 게이트를 나선다.
"푸후. 후끈하네. 여름이야?"
에어컨이 없어서 그런지 공항 안임에도 찜통처럼 덥다.
절로 점퍼를 벗은 오택수는 셔츠를 펄럭였고, 재킷을 한 손에 걸은 종혁은 입국 게이트 근처를 주욱 둘러봤다.
그러다 ‘welcome Korea choi’라는 팻말을 든 이십대의 미녀를 발견하곤 그에게 걸어갔다.
검정색 짧은 반바지와 달라붙는 반팔 셔츠를 입은 몸매 좋은 금발 미녀.
"권&박 홀딩스에서 나왔습니까?"
종혁의 입에서 나오는 능숙한 스페인어에 오택수와 최재수뿐만 아니라 미녀도 깜짝 놀란다.
"최?"
"최종혁입니다."
"와우! 한국에서 온다는 사람이 이렇게 핸섬할 줄이야! 조시예요! 조시 페르난데스! 권&박 홀딩스 해외투자사업부 아르헨티나 지사의 사원이죠!"
아르헨티나에서 한탕 크게 털어먹을 예정이라 세운 아르헨티나 지사.
종혁의 손을 잡아끌은 그녀는 까치발을 들며 종혁의 양 볼에 기습 뽀뽀를 날렸다.
"피휴우. 역시 아르헨티나답네요. 아니, 조시의 성격인가요?"
"조심해요. 우리나라는 열정이 넘치니까요."
혀를 귀엽게 빼무는 그녀의 모습에 혀를 내두른 종혁은 곧 오택수와 최재수를 소개시켜 줬다.
그녀는 오택수와 최재수의 양 볼에도 환영 인사를 했다.
최재수의 얼굴이 헤벌쭉 늘어졌다.
"가요! 차 가져왔어요! 아, 그리고 지갑 등 귀중품은 안주머니에 넣어요. 그 선을 넘는 순간부터 아르헨티나니까요!"
종혁은 무서운 이야기를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뒷주머니에 넣어 놨던 지갑을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부우웅! 빵빵!
뭐랄까. 마굴 부산이 연상될 정도로 번잡한 도로 위.
"흐음."
조시가 끌고 온 승합차에 앉은 종혁은 권&박 홀딩스 아르헨티나 지사에서 조사한 최종철의 회사, 아이언 루카의 서류를 보며 턱을 긁적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정도면 건실한 회사 아니야? 사업 규모는 작아도."
종혁은 끄덕였다.
재무재표를 보면 제법 수준이 아니라 꽤 건실한 회사다. 특히 수출량이 대단하다.
"조시, 이 자료 신뢰성이 얼마나 됩니까?"
조시는 고개를 저었다.
"닥치는 대로 긁어모은 거라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일단 시간이 부족했고, 인력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권&박 홀딩스 아르헨티나 지사의 인원은 총 다섯 명이다. 오히려 겨우 그 인원으로 여기까지 조사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였다.
"그보다!"
조시의 눈이 빛난다.
"대체 한국 본사와는 어떤 관계인 거예요?"
갑자기 아이언 루카에 대해 조사를 하라 말하질 않나, 종혁이 체류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고 하질 않나 등 여태까지 내린 지시와는 전혀 다른 지시들이 내려왔다.
그녀로선 호기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는 지인이 있어서 말입니다. 흠…… 일단 아이언 루카의 사옥부터 가죠."
"숙소가 아니라요?"
"그건 나중에."
종혁의 단호한 말에 순간 불퉁한 표정을 지었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언 루카의 사옥으로 향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심지 안쪽에 위치한 사옥은 겉으로 보기엔 제법 건실해 보였다.
15층 빌딩에서 한 개 층을 쓴다는 아이언 루카의 맞은편 도로.
종혁은 최종철이 넘긴 명함이 아니라 아이언 루카의 대표 전화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혹시 거기에 브루노 최라는 분이 있습니까? 나이는 오십대에……."
-네, 있습니다. 어디라고 전해 드릴까요?
"아닙니다. 곧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진짜라고?’
예상과 다른 상황.
종혁은 관자놀이를 눌렀다.
"왜? 있대?"
"있다네요."
"……정말 맞기는 해?"
"전 제 촉을 믿습니다."
"그럼 답은 하나지."
"……그렇죠?"
씩 웃은 종혁은 아이언 루카가 있는 빌딩을 향해 발을 뗐고, 담배를 문 오택수와 둘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한 최재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따랐다.
종혁은 도로를 가로지르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형님! 저 종혁입니다. 아, 왜 서울에서 형사 하는 종혁이요. 예, 예. 이번에 아르헨티나로 튄 범죄자 하나 잡으러 왔는데, 형님 생각이 나서요! 혹시…… 지금 사무실에 계실까요?"
그렇게 말하는 종혁의 눈은 무척이나 서늘했다.
* * *
4층에 있는 아이언 루카는 제법 큰 사무실이었다.
직원은 7명. 빌딩의 3분의 1을 쓰는 큰 사무실치곤 직원의 숫자가 적었다.
하지만 사업 규모를 생각하면 영 아닌 숫자는 아니었다.
"동생!"
안쪽에서 잰걸음으로 다가온 최종철이 양팔 벌려 맞이한다.
"이게 어쩐 일이야! 아니, 안으로 들어와."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종혁을 안내했다.
"이야. 사무실이 크네요? 이런 건 얼마나 해요?"
"여기가 낙후된 나라라고 해도 수도다 보니까 거의 서울만큼 하지."
"정말 성공하셨네……. 부럽습니다. 아, 이쪽은 제 사수이신 오택수 경위님과 팀원인 최재수 순경이요."
"순경?"
"그냥 사람 만들려고 데리고 다니는 거예요."
"아."
"아, 안녕하십니까."
애써 어색하게 웃고 있던 최재수가 머뭇머뭇 고개를 숙인다.
"오택수입니다. 종혁이에게 이런 큰 형님이 계신 줄 알았으면 빈손으로 오지 않았을 텐데……."
"어이구, 뭘요. 저도 이런 친동생이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저 먼 친척이란 게 아쉬울 뿐이죠."
"하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 친동생이었으면 확 쥐어박아 버렸을 텐데. 이걸 진짜 확 그냥."
"아니, 내가 뭘요?"
"으하핫! 그런가요? 그래도 저희 종혁이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그런데…… 범죄자를 잡으러 왔다고? 어떤?"
조심스럽게 묻는 최종철의 모습에 종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존속 살인범인데……."
퍽!
"억?!"
왜 때리냐고 오택수를 노려봤던 종혁은 부리부리하게 떠진 그의 눈에 아차 했다.
"아무튼 그래서 왔어요. 자세한 건 비밀입니다."
"아…… 그래? 살인범?"
"에헤이. 비밀이라니까요."
입을 막은 최종철은 눈을 빛냈다.
"그럼 명절 끝나고 바로 그런 사건을 맡아 여기까지 온 거야? 어이구.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
"하아. 저도 그걸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뭐 놈을 잡을 때까지 기약이 없으니……."
"쯧쯧쯧. 형사도 참 힘든 직업이네. 왜? 내가 좀 도와줄까?"
"어? 어떻게요?"
"내가 이 치안 나쁜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한 게 벌써 8년이야. 이렇게 저렇게 많이 알지."
"캬, 역시 형님부터 찾아오길 잘했다니까! 거봐요. 내가 오자고 했죠?"
"흐하핫! 종가에서도 느꼈지만, 동생은 참 넉살이 좋아."
"흐흐. 감사합니다."
"있어 봐?"
책상에서 어떤 수첩을 꺼낸 그는 한 전화번호를 종혁에게 알려 줬다.
"감사합니다, 형님. 이놈 잡으면 꼭 은혜 갚을게요."
"뭐얼. 핏줄끼리 돕고 사는 거지."
손을 저은 최종철은 다시 눈을 빛냈다.
"그런데 듣기로 모친께서 자수성가를 하셨다고 하던데……."
그 질문에 종혁도 속으로 눈을 빛냈다.
알아서 접근하려는 최종철의 행동이 우스우면서도 고마웠다.
"에고. 그게 형님 귀에도 들어갔어요? 어휴. 이럴 것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었는데……."
"아니, 왜?"
"친가 쪽과 오래전에 절연을 해서요. 그 아시잖아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거."
"아아, 그런 거였어? 내가 괜한 말을 한 건가?"
"아뇨. 뭐 그게 대단한 비밀이라고. 흠…… 그래도 이왕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저도 형님 사업에 투자를 해도 될까요? 소소하게 한 3억?"
종혁은 눈썹이 꿈틀거리는 그를 보며 속으로 입술을 비틀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던 종혁은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며 건물을 빠져나왔고, 최종철은 무단횡단을 하는 종혁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들켰나 싶더니만……."
곧 경찰청장직에서 물러난다는 최기룡.
경찰이라서 냄새를 맡은 건가 마음을 졸였는데, 일단 아닌 것 같다.
그런 거였으면 철이 없어 보이는 종혁이나 애송이 순경이 아니라, 진짜 형사들을 보냈을 테니 말이다.
"하긴 경찰 따위가 이 먼나라 사정을 어떻게 알겠어?"
현지에서도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알 수 없는 일이다.
"저런 놈이 뭔 사건을 그리 해결한 건지……. 하여튼 최기룡 그 양반 고상함을 다 떨더니만 결국 혈연으로 밀어준 거였구만?"
그게 아니면 고작 25살 청년이 그렇게 큰 사건들을 턱턱 해결할 리가 없었다.
콧방귀를 뀐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어. 난데. 곧 내가 소개시켜 줬다고 한국인이 한 명이 연락할 거야. 한 이십 일쯤 요리조리 돌려서 제 입에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게 해 줘. 응, 그래."
전화를 끊은 그는 사무실을 나섰다가 얼굴을 구겼다.
종혁들이 나가고 나자 축 늘어져 있는 현지 직원들.
"일이 없어도 좀 하는 척을 해! 갑자기 누가 찾아오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내가 너희들한테 영업을 하라고 했냐, 아님 일감을 따오라고 했냐! 다 내가 하잖아! 내가!"
최종철이 저들에게 바란 건 혹시라도 사무실을 찾아올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러고도 월급은 받고 싶지? 어?!"
최종철의 그 외침에 현지 직원들은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부산을 떨었고, 종철은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왜 이런 나무늘보들을 뽑았나 몰라. 쯧."
한편 밖으로 나온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오 경위님도 못 들었죠?"
"……?"
뜬금없는 종혁의 말에 최재수는 의아해했지만, 오택수는 아니었다. 그는 입술을 뒤틀며 낄낄 웃었다.
"어. 그 긴 시간 동안 전화벨 한 번 울리지 않더라. 사업 규모는 작아도 건실하다는 놈의 사무실에 말이야."
"……?!"
이제야 깨닫는 최재수를 무시한 종혁과 오택수는 피식 웃었다. 역시 견적이 나오지 않을 땐 이렇게 직진하는 게 최고다.
보아라. 벌써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게 됐지 않나.
차로 돌아온 종혁은 조시에게 최종철에게 넘겨받은 핸드폰 번호를 넘겨줬다.
"이놈이 누군지 한번 알아봐 줘요."
최종철이 소개시켜 준 놈이다. 결코 정상일 리가 없었다.
종혁은 알아서 꼬리를 드러내 주는 최종철이 참 고마웠다.